의지와 열정, 소망이 얇은 이불을 덮고 잠들어있다.
앞의 문장은 머리를 감다 생각해냈는데 좀 유치하다. 머리 감을 때 생각한건 다 헹궈내야한다.
이것은 이면지에 가끔 끄적이곤 했던 '아무런 이야기나 지껄이기'다.
금요일밤도 아닌데 어깨가 축 처졌다. 양볼도 생기 하나 없이 죽죽 처져 볼썽사납게 됐다.
누가 날 좀 묶어줬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견딜 수가 없다.
플라스틱 통에 담겨져있던 음지 식물을 고추장을 담았었던 항아리에 옮겼다. 이건 숨쉬는 항아리라고.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쓴다면 그 글의 성격은 일관될 수 있을까. 혹은 몇주, 몇시간 단위라면

애인과 통화를 하다 나도 참 푼수구나 싶어 웃었다. 애인도 내가 푼수라며 길거리에서 춤추거나 노래부를 때 그렇노란 얘기를 했다. 징그럽게 일시키는 그 애 회사를 욕하다 느닷없이 오늘 본 잘생긴 남자 얘기를 해서였는데... 그 애와 난 푼수란 개념 자체가 좀 다르다.

원래 계획은 아주 잠깐 페이퍼를 쓴 다음에 임시저장을 해두는거였다. 페이퍼는 안 써지고, 영화나 볼까 하고 개봉작을 훑어보다 모든 영화의 예고편을 샅샅히 다 뒤져봤다. 한국 영화는 코미디, 애로 궁금증형 멜로, 급작스럽게 돌아가는 액션물로 나눠져 있는 듯. 어느 것 하나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볼까 말까. 예언자는 정말 보고 싶다. 물론 이곳 극장에서 상영할리는 없겠지만. 민원이라도 넣어볼까.
그래, 원래 계획은 잠깐 글을 쓴 후에 채털리 부인에 빠져드는거였다. 바흐의 합시코드 연주곡을 틀어놓고, 촛불을 밝히며 책을 읽는 것. 무엇 때문이었을까. 잠자는 시간을 늦춰야겠단 생각이 든건. 자기 전에 방광을 비워도 새벽에 귀신같이 일어나 화장실에 간다. 귀신을 본건지도 모른다. 이히히히

양화소록님과 휘모리님의 글을 보고선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녀의 완벽한 하루'를 찜했다. 보기 드문 재빠른 행동으로 장바구니에 담아 주문까지 해뒀다. 글쎄, 글쎄. 정말 이 책이 읽고 싶은건지 새 책을 갖고 싶은건지 모르겠어서 주문을 취소했다. 대신 아주 잘빠진 필통과 다이어리를 샀다. 집에 있는 책을 다 읽기 전엔 다시는 책을 안 사고 싶다. 마루야마 겐지 전작주의를 한다고 다 사놓곤 하나도 안 읽었다. 마누엘 푸익도 그렇고.

아무렇게나, 아무 이야기나는 점점 누군가에게 읽힐 이야기로 변해가고 있다.

도서관 근처에 있는 분식점의 비빔 국수에 중독됐다.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는데 면발은 물론이고 새콤달콤한 맛이 끝내주는 국수다. 면발을 잘 삶는 비법같은걸 전수해주면 좋으련만. 친해지면 살짝 여쭤봐야지. 국수집에는 오뎅바가 있다. 바 주위로 사람들이 둘러 앉아서 분식을 먹는다. 며칠 전엔 어떤 할머니가 아이 둘을 데리고 온 여자 분에게 '국산'이냐고 물은 사건이 있었다. 할머니는 국산 발언 이후 자신의 파란만장한 이력을 풀어놓으려다 같이 온 꼬장꼬장한 친구 할머니에게 붙들려 나간적이 있다. 국산 발언 할머니가 나간 후 오뎅 바에 모여앉은 사람들은 한마디씩 성토했다. 대놓고 국산이라고 한다느니, 국산으로 불려진 당사자는 이런 일은 정말 듣보잡이라 어안이 벙벙했다고 하고, 아이들은 자기 엄마에게 국산은 뭐냐고 묻기 시작했다. 이 모든 사태를 옆에서 지켜본 주인 할머니는 이국적으로 예쁘게 생겼단 뜻일거라고 한마디 거들었다. 예전에 거스름돈 100원을 안 남겨준적이 있는 할머니였다.

Vicky Cristina Barcelona에서 크리스티나 역으로 나오는 스칼렛 요한슨은 자유분방하고 매력적이다. 그런데 빅키의 남자친구는 그녀를 두고 튀려고 하는데다 너무 쉬워서 하룻밤 상대로 밖에 안 보인다는 소리를 한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시각은 분명히 다른데 가끔 까먹을 때가 있다. 혹은 과장할 때도. 그래서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은 무조건 부러워하고, 부러워하다 안 되겠으면 무슨 흠이라도 찾아내 깎아내려고 했다. 이 밤엔 그 모든 시도가 너무 터무니없게 느껴진다.

여러잔의 술을 들이킨 동생이 내 방에 드러누웠다. 난 어디서 자라고. 내 방은 손바닥보다는 크다. 난 동생에게 짜증을 냈고, 동생은 헤죽 웃으며 방을 나갔다. 나도 술이 떡이 돼서 아무데나 드러눕고 싶을 때 손바닥만한 방을 내줄 수 있는 언니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조르쥬 바타유의 눈 이야기를 볼 때는 탱고를 들어야지. 조지아 오키프의 전기를 읽을 때는 무슨 음악을 들을까.
채만식이 친일을 했단다. 이건 예전에 밝혀진 것. 이럴 수가. 나만 모르는 일들이 너무 많다.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 해독. 문학 비평은 집요하게 재미있다.
역지사지 글쓰기는 이제 좀, 스타일을 바꾸든, 공부를 더 하든 쫌!
아빠는 내복의 용도에 대해 말씀하셨다. 집에서 입고 돌아다니는게 아니라 밖에 나갈 때 겉옷 속에 입는거라고. 부녀지간엔 못할 소리가 없다.
배가 고프면 점심이고, 눈이 침침하면 한시간쯤 책을 읽은거다. 섹스를 하고 싶으면?
가장 비범한 재능은 무심함이다.

아, 채털리 부인은 언제 그 남자를 만날까. 나는 언제 잠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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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03-05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술에 떡이 되서 막내동생 방에 드러눕는 누나임미다. ㅋㅋㅋㅋ

마누엘 푸익 책은 뭐 읽나요? [천사의 음부]를 서점에 갈 때마다 만지작거리고는 있는데.. [조그만 키스]는 왠지 별로였어요.

Arch 2010-03-07 21:56   좋아요 0 | URL
자기 출국하기 전에 천사의 음부를 내가 다 읽어서 선물할게요. 구판도 괜찮나요?

비로그인 2010-03-06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전 비빔국수란 단어에 자꾸 눈이 갈까요?
아 비빔국수.. 봄되니 잃어버린 시간의 미각이 살아나고 있나 봅니다. ^^

Arch 2010-03-07 21:57   좋아요 0 | URL
비빔국수는 단어 자체도 눈에 쏙 들어오는 것 같아요. 바람결님, 그렇죠? 봄엔 정말 맛난 것만 먹고 싶어져요!
 

  * 무대 뒤에서 대기하는 동안 독서등을 켜고선 만화책을 세권이나 읽었다. 만화책 읽는게 소설 읽는 속도와 별반 차이가 없는 나로선 꽤 많이 읽은편이었다. 죽기 위해서 나오는 역할은 처음부터 별로였지만, 끝까지 별로일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여타의 일처럼 벌려놓은건 한가득인데 달아오르지 못했다. 시큰둥했고, 가끔씩 눈이 반짝이긴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워크샵 공연인데 들러리를 선다는게 내키지 않았는지, 좀 갑작스러운 공연이었던건지, 허영심의 발로 때문이었는지, 공연 외의 잡스런 사항들을 체크하는데서 질려버렸는지, 어차피 지방 공연이란 '어차피'의 영향인지, 결국 말로 연기를 다해버려 뭔가를 발견해내거나 새롭게 깨달은 것 없이 스케쥴 따라가기에 급급해서인지, 잘한다는 말보다 서로 서로 깊게 상해가는게 보여서였는지, 진즉에 지쳐있어선지. 정말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응원하고 보러와준 이들에게는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연기보다는 식사 메뉴 개발에 더 매진했던 몇달이었지만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누구 말대로 뭐하나 진득하게 하는 법이 없는 아치인지라.

* 공연을 본 사람들의 한결같은 반응 중 하나는
- 아치, 너 평소 때랑 다르지 않더라.
였다. 극중에서 화내는 장면이 꼭 나란 얘긴데 그런 면에서 고작 '그 캐릭터'라고 했지만, 그것조차 제대로 연기해내지 못했던게 분명해진거다. 뭔가 탐탁치 않았던건 내가 연기에 재능이 없다는 결과를 인정하기 싫어서란걸 조금 후에야 알았다. 실제처럼 실감나게가 아니라, 겉도는거란걸.
 엄마와 애인은 소극장의 암전을 두고 갑자기 불이 나면 어떻게 하지란 공통의 근심거리 때문에 잠시 숨이 막혔다는 증언을 했다. 둘에게 서로 그랬노라고 전해주자, 알 수 없는 동질감에 뜨거운 눈물을 흘린건 아니고 그냥 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엄마는 내가 질질 끌려다니는걸 보고 팔다리가 늘어나면 어떡하나란 걱정을 했다. 엄마의 친구분은 아치의 물오른 아치벅지를 보고선 '쟤가 살이 찐거지'라고 물어보셨단다. 엄마의 친구의 친구분은 연극에 대해선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단다. 엄마에 따르면 그 아주머니의 남편은 아주 파렴치한 짓을 했단다. 건너 건너 아는 사람들의 기구한 운명은 엄마의 단골 얘깃거리다. 어른들은 얘기를 하면서 언뜻 살풀이 하듯 누군가를 저주하거나 입에 침이 마르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칭찬하는 말들을 하는데 그때마다 난 그게 참 연극적이란 생각을 했다. 
 엄마는 연극에 취미가 없었는데 딸 덕분에 좋은 구경을 했다고 말씀하셨다. 딸 생각엔 그 정도면 된 것 같았다.

* 연극이 끝난 후 나름 흥청망청 모드에 빠졌다. 곱창으로 과식을 한 후에 바에 가서 마티니, 잭콕, 블랙 러시안을 쓴줄도 모르고 진탕 마셨다. 나라 잃은 백성들처럼 마셔보자는 전유성의 말이 떠오를 정도로 아주 진하게 말이다. 다트를 한다고 바에서 설치다 외국 사람들이랑 시비가 붙을뻔 했고, 길가에서 노래만 흘러나오면 춤을 춰대서 일행들이 나를 떼놓고 간다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 왠일인지 신이 났다. 아무나 잡고 춤을 추거나 펑펑 울고 싶었다. 오늘까지가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우유를 나 혼자 꿀꺽 꿀꺽 마시다 속이 부글거리는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끙끙대는 느낌이었다.
 민폐의 끝점에는 애인이 있었다. 애인은 요놈 요놈하는 눈빛으로 나를 야려주다가도 엎어지려고 하면 부축해주고, 술 너무 많이 먹으면 걱정을 해줬다. 아마 우유 먹다가 탈이 나도 요 녀석 때문에 금세 나을 것 같다.

* 세트 철거 작업을 했다. 조명을 떼내고, 극단 내부를 무대가 아닌 연습장겸 사무실로 바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드릴을 써봤고, 장도리로 못을 뺐다. 못질을 하고, 나사로 돼지코를 조립했다. 나보다 백배는 일을 능숙하게 해내는 언니는 드릴의 버튼을 조작하는 법과 장도리로 못을 빼는 법을 알려줬다. 나, 제법 잘 한다. 여남 역할이 뭐가 문제될게 있냐며 호탕하게 웃어제끼고 싶은걸 꾹 참았다. 안 그래도 장기자랑 때 춰본다며 정줄 놓은 춤을 보여줫다가 광년이까진 아니고 뭔가 좀 힘든일이 있는건 아닐까란 눈짓을 받은지 얼마 안 된지라.

* 오랜만에 컴퓨터를 켰더니 무슨 업데이트가 된다고 하더니 모래시계가 떴다. 어어 하고 있는데 파일이며 프로그램이 싹 삭제되고 바탕 화면에 휴지통만 하나 덜렁 남겨졌다. 이렇게 황당할 수가. 그 늦은 시간에 안 자고 있을 전문가들을 떠올리다가 왠지 모를 자신감에 고개를 쳐들고 다시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인터넷을 열어 비슷한 경험을 해본 몇몇의 사례를 조합해서 시스템 복원이란 많이 들어는 봤지만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것을 해보려고 시작 메뉴를 열었다.
 두차례의 재부팅 후에 컴퓨터가 살아났다. 주옥같은 명문이나 반짝이는 사진이 지워져서 다시 찾은거라면 해냈다는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폴더 속에 있던 글은 고만고만 하거나 형편없었고, 사진은 시간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다시 찍는게 나았을뻔한 것 뿐이었다. 사진은 뒤죽박죽 엉켜있고, 영화들은 언제 자신을 열어줄거냐며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
 시스템 복원이란 어마어마한 일을 수행한 후니까 좀 쉰 후에 다시 돌아봐야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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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3-02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생각도 딸 생각과 같아요. 그정도면 된 것 같아요, Arch!

다락방 2010-03-02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요, Arch.
난 Arch가 다시 취직했으면 좋겠어요. 나랑 같이 낮시간에 좀 놀아주게. 이젠 뽀도 떠나고 미잘님은 원래 나랑 안놀아줬고..나만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어요. 외로워요 ㅠㅠ

Arch 2010-03-02 23:37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다락방님.

아, 취직을 내가 맘대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흑흑 어흑, 한밤중에 들려오는 괴성, 이이이이이~ 다락방님 무섭죠!
쥬드님도 있고, 인기쟁이 다락방님이 외롭다니! 이런이런, 다른 서재 사람들 각성하라, 각성하라~ 아무래도 야간 서재질로 활동시간대를 변경해야할 것 같아요. 낮에 들러붙은 껌마냥 집에서 인터넷하는건 아치 나이대 숙녀들이 할짓이 아닌걸로 아뢰오!

turnleft 2010-03-03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 많았어요 Arch!

음.. 글쎄, 저도 고등학교 때 연극을 잠깐 했었는데, 보통 미치지 않고는 빠져들기도 쉽지 않겠구나 싶더라구요.
그러니 연극에까지 숨은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우울해하지 말고 평소의 씩씩 Arch 로 얼른 돌아오세요!

Arch 2010-03-03 19:20   좋아요 0 | URL
꼭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턴레프트님 고마워요! 아, 나 씩씩한 캐릭터였어요? 아치의 재발견인데요 ^^
 



 서울도 아니고, 예매할 수 있는 여건도 안 되고, 뭔가 까무러칠 정도로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서(나로선 배우고 완성되는 과정 자체가 너무 신났지만) 말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런데 아치 몸무게까지 대충 짐작할 정도로 여러가지 떠벌리고 다녀놓고선 이걸 말 안 하면 (almost famous에서 러셀이 말하듯) 가짜일 것 같아서 말해요.

저, 공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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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10-02-26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업계'에 종사하시는지 이제야 알았다는... 한발 늦은 람혼.^^;
Arch님의 공연을 그 누구보다도 축하하고 응원합니다!

가시장미 2010-02-26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축하드려요. ^^ 멋지세요~!!!

글샘 2010-02-26 0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공연...
그 동안의 수고가, 열매를 맺으시는군요.
좋은 공연 되길 빌게요. 힘 내세요~~~

turnleft 2010-02-26 0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머큐리 2010-02-26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작이 반이라는데...오오옷.. 축하드려요...!!

조선인 2010-02-26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아... 이것 참... 일단 축하부터 하고...

조선인 2010-02-27 12:00   좋아요 0 | URL
흙... 결국 출근... 다음 기회에... ㅠ.ㅠ

다락방 2010-02-26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다~~ +.+

穀雨(곡우) 2010-02-26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극을 매번 나를 통해 남을 보는 작업이라 생각했는데,
Arch님이 배우셨군요. 군산 작은 추억이 깃든 곳인데....
축하드립니다.^^

이매지 2010-02-26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축하드려요 :)

비로그인 2010-02-26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아치님!

마노아 2010-02-26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왓, 넘흐 근사해요!!! 축하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10-02-26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포스터를 한참 보고 아치님이 어디 있는지 알았어요.
축하해요~

라주미힌 2010-02-26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연 잘 하세용.. ㅋ

쎈연필 2010-02-26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십니다~ 군산에 오래 못 본 친한 친구가 있는데, 언제 친구랑 같이 공연보러 가야겠어요.
근데 어느 분이 아치님? ㅎㅎ

토토랑 2010-02-26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축하해요~~

2010-02-26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냐 2010-02-26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멋진걸요. 축하해요~

무스탕 2010-02-26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보~~
아치님. 멋져요!!!
공연 성황리에 잘 마치시길 바랍니다 ^^*

hnine 2010-02-27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시작하시고, 지금 막 두번째 공연 시작하셨겠네요.
응원합니다!

Forgettable. 2010-02-27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 누구보다도 빛나는 여배우였답니다. 혹자는 군산김태희라고까지 하더군요.

Arch 2010-03-02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 모두 감사해요. 제 어줍잖은 연기가 조금이나마 괜찮아보였다면 그건 다 여러분들 응원 덕분이었을거에요. 이름을 다 언급하지 않아도 제 맘 아시죠?

먼길까지 드레스 입고 와준 뽀님(정말 입을줄 몰랐음^^)과 추묘 미잘님에게도 정말 감사해요.
 

 시체인 나는 이리저리 잘 넘어진다. 넘어지는 나를 들어서 옮기는 몇명의 배우는 번번히 힘들어한다. 한두번은 좀 민망했고, 나는 왜 이렇게 무게가 많이 나가서 민폐를 끼칠까 싶기도 했지만 얼마 안 가 그들의 체력을 구박하고 남자는 힘인데 이거 좀 안쓰럽게 됐다며 혀를 차주는 오두방정을 떨어댔다. 요즘 난 푼수질 크리다. (크리란 말을 이럴 때 쓰는거 맞나?)
 그러던 와중에 '날 드는 남자 1'이 기존에 드는 방식을 바꿔서 들어보겠다며 시도를 했다가 허리가 나갈뻔 했다. 나로 말하자면 요새 푼수질 크리라 내가 보통 몸이 아니라며 콧방귀를 뀌며 룰루랄라 해줬다. 그런데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설날에 내려온 후로 오갈데 없어 저녁이면 극단에 상주하는 예전에 연극 좀 해봤던 남자 2'가 반색하며 내게 달려들었다. 그는 은근한 말투로 한번만 나를 들어볼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새침하게 (통할리가 없다) 내가 과감한 몸무게라 정말 허리에 무리가 갈 수 있다고 겁을 줬다. 그는 두터운 허벅지를 두드리며 정말 한번 안아, 아니 들어볼 수 없냐고 간청을 했고 누구 애닳아하는거 내가 더 못참겠는 나는 멈칫거리며 몸을 내줬다.
 성적인 호기심 때문이거나 정밀하게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지가 궁금해서는 아니었다. 잠시 쉬는 시간엔 할일이 너무 없었다. 업히거나 들려서 몸이 뜨는걸 좋아하니까 별 상관없단 생각 정도였다. 남자2는 몇초 안 돼 나를 내려놓더니 무게가 상당한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여자가 이 정도 몸무게는 나가줘야 정수기 물통은 든다고, 튼튼한거라고 어쩌고 하려고 했다. 헌데 말들이 목에 걸려 나오지를 않는거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몸을 내줬다'가 확실히 무거운 여자가 됐다.
 
 어렸을 때 난 무겁지 않았다. 아니, 그때도 이 몸무게였으니 무겁지 않다는 말은 거짓이다. 다만 무겁다거나 살쪄보인다는 소리를 별로 듣지 않았다. 내 몸은 바람직하게도 신체 말단 부위가 날씬해서 슬쩍 봤을 때는 좀 말라보인다. 게다가 난 어렸다. 아무리 살쪄보인다고, 그 무게를 어떻게 하냐고 떼로 달려들어 잔소리를 해대도 모든 잡소리들을 싸그리 잡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 그 나이의 난 터무니없이 자신만만했다. 갑자기 몸무게가 입 안에서 껄끄럽게 돌아다니는건 자신감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상황이라 당황스러워서일 수도 있다. 이제 나이 좀 먹었다 싶은, 여자라기보다는 나이로 구별되는 어느 선에 들어섰다는 확연한 느낌에 정색했달까.

 나이를 먹어서 좋은줄 알았다. 유치한 애교를 강요당할 일도 없고,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랑 생각하는게 다르다며 날 귀여워해주는 늙은 아저씨들 덕택에 괜히 으쓱해질 필요도 없으니까.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그동안 해왔던 가락이 있어 날 좀 알 수 있고, 예전보다 나아졌단 손바닥만한 자부심도 생겼다. 그런데 좀 소외된 기분이 든다.

 이젠 내가 하는 짓을 언급해서 귀엽다거나 독특하다고(귀엽다는 쑥쓰럽지만 독특하단 평은 괜찮다.) 언급해주는 나이 든 사람들이 없다. 오히려 나이에 걸맞는 위엄과 책임감을 보여주길 바란다.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나이에 걸맞는 내가 되는게 미덥지 못하다. 여전히 나는 인정받고, 북돋아줄 누군가의 시선이 필요한데 주위에 있는 사람은 너무 어리거나 무심하다. 그들은 나의 칭찬과 곁들이는 말을 아낌없이 받아들이기만 한다. 어쩌면 나이듦보다 나이듦으로 인해 '주류'에서 밀려난단 서운함이 더 클지 모르겠다. 어쩌면 발랄하고 젊고 예쁘지만 자신의 매력엔 무심한 친구가 옆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위축되는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난 정말, 늙을 준비가 안 되어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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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2-24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에게 Arch역시 '발랄하고 젊고 예쁘지만 자신의 매력엔 무심한 친구'인데, 옆에서 북돋아주기에는 내가 너무 멀리 있나요?

Arch 2010-02-24 12:44   좋아요 0 | URL
하악하악~ 부추겨달라고 올린 페이퍼는 아닌데 말입니다. 아, 쑥쓰러워요.

조선인 2010-02-24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게 아치는 너무나 젊고 귀엽고 어린 친구인데, 우후~

Arch 2010-02-24 12:44   좋아요 0 | URL
후후~ 조선인님 낯간지러워요.

쎈연필 2010-02-24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애닳도록 간청할 정도의 미모

저도 언제 나이 들었다는 걸 실감하냐면, 연하랑 교제해 본 적이 없는데... 이성적으로 두근거리게 한 연하도 없는데, 요즘은 어린 아가씨들 보면 그저 귀엽고 예뻐 보입니다 ^-^; 사심없이 흑심없이 그저. 김연아를 보면서 그저 헤벌쭉 웃는 것과 같달까요. 어느새 아저씨가 됐나 봅니다. ㅠ.ㅠ

Arch 2010-02-25 01:10   좋아요 0 | URL
저도요, 어린 남자 아이들을 귀엽고 예쁘게 봐요. 누나야, 누나. 이러면서 농담하는게 요즘 제 낙이에요. 흐흐

무해한모리군 2010-02-24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 이번주 토요일에 공연하는거죠?
아치가 늙다니 말도 안되욧!

Arch 2010-02-25 01:11   좋아요 0 | URL
네, 휘모리님 오실거죠? ^^ 라주민님이랑 같이 와요. (어디인지 말도 안 하고~)
그럼요, 밤되면 살아나는 야생아치라 지금은 쌩쌩해요.

무스탕 2010-02-24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늙을 준비는 누구나 안되어 있어요. 지나보니 늙었더라구요 ^^;
나이 신경쓰면서 살면 골치아파요. 그냥 살아요, 전.
나이어린 친구들 부러워 하지도 않고 나이 먹었다고 서러워 하지도 않고 나이 많은 분들 안됐어 하지도 않고 그냥 살아요.
다만 한가지 분명한건 전 젊은애들이랑 바꿀래? 물으면 안바꿀거에요. 여지껏 43년을 사느라고 내가 어떤 고생을 했는데 또 다시 그 세월을 살란 말이에요?! 절대 노~~~~! 에요 :)

Arch 2010-02-25 01:12   좋아요 0 | URL
나도 절대 안 바꿀래요. 왠지 나이가 마일리지 같은데 그거 리셋하라고? 저도 절대 반대입니다.

나무처럼 2010-02-25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소외된 기분"... 나이든 다는 건 외로워진다 것, 외로움에 익숙해진다는 게 아닐지... 아참, 전 어려서 잘은 몰라요 (후다닥)

Arch 2010-02-26 01:12   좋아요 0 | URL
어어~ 어디 가세요 ^^
젊어서 모르시는구나. 난 잘 알겠는데. ㅎㅎ
 

 무리를 하고 있었다. 다들 언제쯤 자리에서 일어날지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동석한 커플의 집에 놀러간다고 우겨댄건. 예의바르고 모범적인 그들은 아치의 지난 음주 실력에 비해 술이 늘었다는 우스개소리를 하거나 부페 음식치고 맛있는건 없다는 식의, 무난한 날씨 얘기만 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하게 시간이 한토막 날아가버린 날. 두토막의 시간이 사라졌다면 집에 가서 잠을 자거나 원대한 계획이었으나 반년 넘게 다짐으로만 그쳤둰 미룸 목록을 처분할 수 있을텐데... 반토막이라면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으로 소일하며 보냈을텐데... 이 한토막이 문제다.
 나는 당장 전화를 해서 불러낼 수 있는 친구들의 목록을 머릿 속에 떠올려봤다. 누군가의 시간을 메우기 위해 호명되는건 별로라는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날 나는 꽤 많이 한토막의 시간에 친구들에게 연락했고, 그들도 아낌없이 나를 불러냈다. 그들의 면면과 아주 흡족할 정도로 보고싶은 맘은 아니란게 떠올르자 열의는 금세 사라졌다.
 아무도 나를 알아볼 수 없는 조용한 모텔에서 쉬는건 어떨까. '조용하고 한적한'에서 모텔이 아닌 호텔을 떠올리는건 부르주아를 동경하는 중산층의 호기로 본다고 하더라도 왠지 자연스럽게 어떤 지위를 떠올리게 하는 연상을 하는건 좀 부럽다. 모텔의 제각각 조명 아래서 할 수 있는거래야 텔레비전이나 영화보기가 다일테니 더더욱.
 토막난 시간. 삐뚤어져보고 싶었다. 술을 진탕 먹거나 피부 각질층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음식을 많이 먹는 것. 숨이 찰 때까지 달려보거나 음악을 아주 크게 틀어놓고 고함을 빽빽 질러보는 일. 그리고, 그리고. 대체 왜 그래야하는지를 설명할 수 없는 짓을 해보고 싶었다.
 모임이 끝나고 풀이 죽어 옥찌들과 집으로 걸어오고 있을 때였다. 다른때라면 자기 정말 다리 아픈데 어디까지 가느냐고 따져물을 옥찌에, 탱탱볼처럼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민 때문에 정신이 없었을텐데 오늘은 그냥 좀 그러려니, 그렇게 지나가려니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잔소리 없는 이모를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아직은 심하게 상태가 나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후 자기들끼리 재잘되기 시작했다. 옥찌는 가끔씩 내게 몸을 돌려 생일 때 고모가 크림이 잔뜩 묻은 딸기 케익을 만들어준다며 자랑을 하거나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게 뭔지 아느냐며 나를 자꾸 찔러봤다.
 귀찮고 피곤해서 건성으로 응응. 내 손을 잡고 재잘거리는 입을 보지도 않고 응응, 아주 오랫동안 응응.
 그런데도 옥찌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 이모, 오늘은 정말 좋은 것 같아. 맛있는 케잌을 아주 많이 먹었잖아. 이모도 좋았지
 그제서야 나는 내 한토막의 시간이 어디로 간건지 알게 되었다. 다른 때였다면 잔소리하고 의욕한 질문들로 건성이었던 옥찌와의 대화가 내가 어쩔줄 몰라하는 사이에 달라져 있었다. 그러고보니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지치고 힘들어서 옥찌들 어깨라도 빌려 엉엉 울고 싶은 때였다. 울어버리면 바보 이모라고 옥찌들이 놀릴까봐 울음을 꾹꾹 참으며 민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나 해야할 일을 점검하는 대화가 아니라 지금 이 시간을 견디는 방법으로 주고받는 이야기. 민이 이렇게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는 아이이고, 먹을 것에 대한 묘사를 정말 최고로 잘할 수 있는 녀석이란걸 이전에는 결코 알 수 없었다.

 가끔씩 토막난 시간은 이전과는 다른 패턴의 관계를 보여준다. 아주 가끔 찾아오는 순간, 나는 아주 충실히 내 곁에서 노래 부르고 통통 발을 구르는 옥찌들에게 귀를 기울여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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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0-02-20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지금까지 아낌없이 눌렀던 추천이 당신의 서재지수를 살찌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략 멍해졌던 어제 새벽. 아, 내가 호랑이 아치를 키웠네요.

Arch 2010-02-22 00:26   좋아요 0 | URL
그거 어떻게 알았대요? 서재지수는 어떻게 정산하는지 몰라서 대략 무시했는데 이거이거 미잘 때문에 서재지수도 경쟁 붙게 생겼네. ^^
어흥~ ^^*

Forgettable. 2010-02-22 01:54   좋아요 0 | URL
신빙성있는 정보인가요? ㅋㅋ
서재지수 만큼은 나도 누구 부럽지 않네요!

Forgettable. 2010-02-21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이글이 더 좋네요. 추천수는 아래글이 더 많지만 ㅎㅎ

저도 술 많이 마시면 피부의 각질층이 떨어져나가는데.. 예전의 빨간반점에 이어 우리 피부에는 공통점이 많은듯!
[굿바이 솔로]에서 이재룡이 그랬죠. 울고 싶을 땐 벽에 기대라고 ㅎㅎ 인생 돛대입니다.

전 엉엉 울고 있을 때 옆에 가만히 있어주던 고양이를 잃어버린 후로는 잘 울지 않게 됐어요.

뷰리풀말미잘 2010-02-21 23:35   좋아요 0 | URL
집 나간 고양이 잡아드립니다. 단돈 500냥, 멍석말이는 옵션이에요. -추묘 미잘-

Arch 2010-02-22 00:32   좋아요 0 | URL
나도 오랜만에 깜짝이야, 옥찌 아니면 전 추천수 받을 일이 없어요, 흑 ^^

전 많이 먹어서예요, 이놈의 문장은 참, 수정했는데 전보다 더 어색한 것 같고. 나도 굿바이 솔로 참 좋았는데 이재룡이 한 말은 기억이 안 나요.

추묘꾼 미잘에게 고양이를 부탁해~ 미잘은 대체 추묘를 어떻게 생각해낸걸까, 아마도 미잘은 전생에 추아, 추뽀, 추다... 뭐 그랬었나? 히~

Forgettable. 2010-02-22 01:48   좋아요 0 | URL
헤~ 저도 오밤중에 대폭소했네요. 추묘 ㅋㅋㅋㅋㅋ
전 당신들과 있으면 나도 좀 더 센스있길 미칠듯이 바란답니다!

옥찌 말고도 자체로도 좋은 글 많은걸요.

뷰리풀말미잘 2010-02-22 12:16   좋아요 0 | URL
조선 최고의 추묘꾼이 될거에요.

즐거운 월요일 오후에요!

Arch 2010-02-23 01:14   좋아요 0 | URL
뽀밖에 없어~
추묘꾼은 아무나 되나. 은여우 소리 말고, 고양이과의 소리를 낼 수 있어야하고 교태는 기본입니다. 미잘은 곰과는 아닌데 그렇다고 고양이과도 아니고, 그냥 저냥 뭐랄까. ^^ 미잘은 강장동물인가요, 연체동물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