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꼬마가 있었다. 친구들이 운동화를 자랑할 때 침을 꿀꺽 삼키며 고무신이 얼마나 좋은지 자랑하던 꼬마 말이다. 다 자란 꼬마가 그때의 자신에게 사실은 거짓말이지 않냐고 묻는다. 운동화 없는 게 부끄럽냐고 꼬마를 다그친다. 너 자꾸 그러면 어른 돼서도 거짓말만 한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대한민국 원주민 중>

 어렸을 때 열등감이 많았다. 친구들과 잘 지내는 아이들을 보면 부러웠고, 아무렇지 않게 뭔가를 이루는 애들을 보면 배알이 꼬였다. 예쁜 애는 예쁜 애라서 싫었고, 나보다 공부 잘하는 애들은 다른 많은 좋은 점에도 불구하고 미웠다. 평범하다는 것 자체가 열등감이었던 것 같다.
 지금이야 누군가 부럽고 약이 올라 죽겠으면 악에 바치도록 부러워하고 질투하다 제풀에 꺾이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자기 못난 것도 알고, 못난 자기지만 좀 더 사랑할 수 있는 방법도 배울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그때는 그럴 수 있었나.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내가 남보다 못하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부정하는 것 같았는걸. 그래서 딴에 생각해낸 게 내가 부러워하는 것에서 어떻게든 단점을 찾아내는 거였다.
 쟤는 공부를 잘하지만 뚱뚱해. 쟤는 친구랑 잘 지내지만 위선적이야. 나를 홀리게 하지만 가식이 몸에 배었어. 솔직하지만 남에게 상처를 줘. 멋지지만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면만 보여줘 등등. 생각은 주위 사람에 그치지 않고 여러 갈래로 퍼져나갔다. 연예인을 봐도 예쁜점보다 미운점을 찾고,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좋고 예쁜 것들을 봐도 흠을 찾아냈다. 우물 안 개구리 되는줄 몰랐다.
 그렇다고 부럽지 않은 것에 관대한건 아니었다. 약하고 초라한 것엔 부끄러울 정도로 기세등등했다. 수그러들기보다는 되바라졌다. 되바라져서 크게 한번 깨져봐야는데 그 정도까지 세게 나가지 못했다. 상대가 꿈틀한 후에는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요즘도 그런다. 뭔가가 부럽고 샘이나 죽겠어도 아닌척, 관심 없는척을 한다. 때로는 운이 좋았다거나 환경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애둘러서 딴청을 피운다. 그게 아니란걸 잘 아는데, 그런데도 잘 안 고쳐진다.

 그의 말처럼,
 그런 어른이 돼버렸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 같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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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4-28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상담 받으러 갈래요?
나도 요즘 딱 죽겠어요.
모든게 다 내탓이고 내 잘못인거 같은 그런 미친 마음이 도무지 사라질 생각을 안해요. 고치고 싶은데..


다락방 2010-04-28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아직 어른이 될려면 먼 것 같아요. 괜찮은 어른, 은 제게 너무나 먼 일이에요.

Arch 2010-04-28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이 무려 두개나 있어서 은근 기대했어요. ㅋㅋ 뭔 기대? ^^

뽀가 전에 말한 할머니한테 같이 가봐요. 난 페이퍼에 또 쓸거지만 이젠 한시름 놨지만 아직은 잘 모르니..
어차피 괜찮은 어른이 될거란 목표가 좀 우스울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좀 불량한, 어긋난, 엉망인, 그럭저럭 어른이 되는건 어때요. 나도 괜찮은 어른 되려다가 현상유지 정도만 하는걸로, 그러다 좀 못하면 못하는대로 좀 엄살도 부리면서 살려구요. 그래도 다락방님은 이런 말 한다고, 그러다 행려병자 된다고 겁주는 남자 친구는 없잖아요. 흑. 댓글이 슬퍼요.

아무튼, 힘내요. 응?
 

 초짜인 내가 봐도 답답한 배우가 있다. A는 배우로서의 재능까진 모르겠고 연기가 안 될 때면 웃음으로 때우고 말도 안 되는 변명하기에 급급한 사람이었다. A는 평소에도 자신이 뭘 원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혹은 설명하는걸 어려워해서 아예 말을 안 하는지도. 오늘도 감정이며 상황을 다 날려버리고 대사하기에 급급한 그를 보자니 내가 한 발 연기는 생각도 안 하고 답답해만 하고 있었다. 연출님도 그랬는지 다른 때보다 코멘트가 길어졌다.

 모든게 변하지 않고 딱 하나만 바뀌는건 드물어. 네 경우는 옆구리에 주먹이 들어오면 그곳만 움찔하고 말아. 하지만 옆구리를 때리면 온몸이 아프고 머리가 띵하고 감정까지 동요하잖아. 너는 하나만 바꿔서 쉽게 가려고 하고 있어. 변화된 뒤 상황이 괜찮지만 뭔가 어색할 경우, 별 영향을 안 주는 것으로 바꿀 수도 있어. 하지만 상황에 영향을 주는 경우라면 바꿔야해. 이것은 기본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려는 근성, 영향을 안 받고 그것만 해버리는 문제야. 아무리 작은 것이 와도 영향을 받고 온 몸이 영향 때문에 움직이고 흔들려야 좋은 배우야. 그렇지만 넌 안 움직이고 경직되어 있어. 배우로서 자세가 전혀 안 돼 있어. 극복하기보다는 피해가려 하고 노력하지 않아. 그러니 맨날 연습 해봐야 이 모양이다. 뭐가 오면 제대로 된 영향을 받아야해. 영향을 자기 나름대로 엉뚱하게 표출하거나 변형시키지 말고. 대표적인게 그냥 웃는 것이다. 받은 영향을 웃음으로 변형시킨다. 민망하거나 쑥쓰러우면 웃지 말고 그대로 표현해봐라.

 내가 모호하게 느낀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는게 연출가의 능력일까. A가 왜 그러는지 아무도 몰랐다. 열정이 없는건지, 노력하기 싫은건지,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줄 모르는건지.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단순하게 덮어놓고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단정하는건 달콤한 눈속임에 불과했다. 아무도 A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혹은 상처가 되는 말은 쏙 빼놓고 빙돌아 얘기를 했는지도.

 연습 몇 주가 지났지만 A는 번번히 혼나고 있다. 감정 상태에 있지 못한다고, 간신히 들어선 상태를 벗어나려고 한다고, 눈치 본다고, 자기 습관 나온다고. 혼나는 이유는 다양했지만 A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A랑 포스터 수정 작업을 하면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지만 성폭행 유발론에 대해 피상적인 얘기만 하고 말았다. 연습은 지지부진하게 흘러갔다. 코너에 몰린 한 사람에게 책임을 뭍긴 쉽지만 ‘그래서 어쩌라고’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렇게 혼나고 매번 우울하게 연기를 하던 A가 상황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헤어진 사람 얘기를 한 후 아무 대사 없이 가만히 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고 말았다. 그제서야 난 아주 강하게 연기를 하고 싶어졌다. 나를 바꾼다거나 아는게 아니라 내가 어떤 상태에 있을 때 어떤식으로 생각을 하고, 어떻게 날 보호하려드는지가 미치도록 궁금했다. 연기를 함으로써 나를 지켜보는 사람의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시간을 딱 한번이라도 느껴보고 싶었다.

 반짝이던 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결국 연출님은 손을 떼고 배우와 공연 일정은 변경됐다. A는 한시름 놨다는 표정이었다. '나라면'에 고착된 갈망은 연기 외의 잡무에 자리를 비워줘야했다. 난 요즘 풀뿌리니, 나를 표현한다란 듣기에 좋은 말들을 직접 해보는건 상상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 조금씩 깨닫고 있다. 비겁해지긴 쉽지만 후회 안 할지는 자신할 수 없어 여전히 나 역시 지지부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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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04-20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연도 얼마 안남았는데, 걱정이 많겠어요.
아, 미뤄진건가요?

무슨 페이퍼를 이렇게나 쟁여놨어요 ㅋㅋㅋㅋㅋ

'연기를 함으로써 나를 지켜보는 사람의 상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욕망!! 아, 난 아치의 연기에 내 상태가 변했던 적 있어요. 그 자존심 상하고 무섭고 울분에 겨웠던 순간말이죠. 무척 울컥했다고요.
하지만 이런 상황(나를 지켜보는 사람의 상태가 변화하는)은 꼭 연기할 때가 아니더라도 찾아오잖아요. 사실 많죠. 이런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고, 좀 더 객관적으로 그 상황 속의 나와 상대방을 볼 수 있다면 나중에 연기를 할 때 많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나의 직접적인 상황에 몰입하지 못한다는 부작용도 있겠지만..

뭐, 관객의 입장에서 한 번 적어봤어요. ㅎㅎ

다락방 2010-04-20 13:15   좋아요 0 | URL
추천을 한번 더 할 수 있다면 이 댓글에 기꺼이 바치겠어요.

Arch 2010-04-28 09:20   좋아요 0 | URL
저도 다락방님 얘기에 동감.

뽀님, 그건 인물보다는 그냥 제 감정대로 연기를 한거라서, 전 연기보단 생활 연극쪽이 더 어울리는 것 같고 그래요.
 

  살림을 한다. 비자발적 실업자가 돼서 집안일을 하고 있다. 내키지는 않지만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취업을 안 하는건 아니, 못하는건 이력서를 쓰기 싫어서이기도 하고, 돈을 벌지 않아도 근근히 살 수 있어서이기도 하다. 용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소린 빼먹는다. 내가 돈을 벌지 않는다면 다른 가족이 내 몫을 부담하는건 알지만 그래서 다 늙은 부모에게 얹혀 사는 꼴이 된다는 것도 알지만 아는 것과 비겁하지 않을 수 있는게 매번 일치하는건 아니다.  
  오늘도 눈 뜨자마자 부산을 떨고 있다. 보라고, 이렇게 정신 없이 집안일을 한다고. 과시하듯, 잉여를 전시한다.  

  부산떨기는 잔소리에서도 나온다. 나는 눈 뜨자마자 끊임없이 가족들에게 잔소리를 한다. 불을 꺼라, 물을 아껴라, 쓰레기를 만들지 마라, 정리를 해라.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면 무심히 넘겼을 정리되지 않은 집안 곳곳의 물건들을 죄다 제자리에 놓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진이 빠지는 일이다. 진이 빠지는줄도 모르고 계속 잔소리를 한다.  

 어제는 밤에 습진으로 계속 온몸을 벅벅 긁는 민을 데려다 약을 발라줬다. 긁지 말라고 민을 위협을 하고, 때리고,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옷을 벗기고 약을 바르는데 진물이 나오는 몸에서 피가 배어나오는게 보였다. 얼마나 간지러웠을까. 난 정말 그동안 뭘 한걸까. 아무 말도 없이 약을 바르자 다른 때 같으면 칭얼대고 짜증을 냈을 민도 조용했다. 가족들이랑도 이렇게 적당한 거리에서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약이라면 몇천번이라도 바를 수 있으니 이렇게 악쓰고 잔소리 하지 않고 조용히 바라볼 수 있다면.

 정선희씨가 텔레비전 프로에 나오는걸 봤다. 라디오를 표방한 프로였는데 그녀는 버블 시스터즈의 '붉은 노을'을 자신이 가장 빛나는 순간에 즐겨 들었단 얘기를 했다. 저렴한 나는 이 방송이 언제쯤 나왔던건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빛나던 순간을 얘기할 때만큼 빛나는 얼굴을 언제 봤더라. 다음 선곡으로 힘들었을 때 들었던 노래가 나오고나서야,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어 훌쩍이고 말았다. 

 그녀가 말했다. 진실이란건 아주 커다란 돌덩이라 그것을 다 파헤치려면 아주 애를 써야한다고. 자신이 할 수 있는건 돌덩이를 안고서 침묵하는거라고. 그건 그 진실에 대한 예의일 수 있다고.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상처를 가지고 자기 연민에만 빠져있지 않게 되었다고. 그제서야 나는 좀 더 말없이 지내는 법을 배워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먹으면 모든게 좀 더 분명해지고 확실할줄 알았다. 그래서인지 어떻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보다 빨리 나이를 먹기에 바빴다. 늘 성급함이 문제였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강한게 아니어도 좋다. 이제는 진득하게 붙어서 때때로 우습지만 늘 한결같은 목젖씨처럼 오래가는 내 것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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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04-15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오랜만에 등장하는 목젖씨!!!!!!!
2. 나이 먹는 것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중이시구료.
3. 습진 ㅠㅠ 진짜 동병상련 ㅠㅠ 저도 애기때부터 지금까지 고생이지요. 요즘같이 건조할 때 피나는 건 기본. <-빈혈걸릴 지경. 막이래 ㅎㅎ 그래서 앞으로 집안일은 못할 예정이에요..고무장갑 껴도 설거지 한번 하면 확 오릅니다..

민아, 힘내자 우리 ㅠㅠ
4. 말 없이 지내는 것도 타고난 성정에 어긋나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어요.


Arch 2010-04-16 11:24   좋아요 0 | URL
1. ^^
2. 그냥 드문드문이죠. 쭉은 엄두를 못내고.
3. 빈혈? 그래서 요새 민이 가끔 정신을 놓나. 민에게 뽀란 사람이 있다고 얘기해줘야겠어요.
4. 명심하겠어요. 그런데 잔소리는 좀 줄여야겠어요. 내가 피곤해서 원.

gimssim 2010-04-16 0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를 먹는 거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 여기도 있어요!
근대 '공인'이면 침묵에 대한 예의에 대해선 다른 시각으로도 접근을 해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군요.

Arch 2010-04-16 11:26   좋아요 0 | URL
다들 생각하나봐요. 전 워낙 얕고 별게 없어서.
중전님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전 연예인이 공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개인의 사생활을 굳이 들춰내는게 '알 권리'라고까지 생각지도 않구요. 그런면에서 연애 프로는 좀 집요하고 위악스런 면이 있어요.

다락방 2010-04-16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에게 뽀란 사람이 있다고 얘기해줘야 겠어요.

이 말 무척 좋아요. 나란 사람이 있다는 걸,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 얘기해준다니. 이야기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잖아요. Arch 님은 멋진 이모에요.

Arch 2010-04-20 10:41   좋아요 0 | URL
아, 우리 집에서 단 몇분만 내 꼬라지를 본다면 아마 그런말 못할거에요. 아주 흉흉한 이모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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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3-24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거 아치님이 읽어주는 건가요?
내가 기억하는 목소리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고...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책은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죠.^^

여기에 책 담기를 해 주세요.
그래야 이 책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클릭할 수 있잖아요.

hnine 2010-03-24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듣긴 아까운 목소립니다.
잘 들었어요.

쟈니 2010-03-24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입니다. 아치님 덕분에 오늘 아침 따뜻하게 시작할 수 있겠군요.

마노아 2010-03-24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아요. 좋은 이야기가 더 좋아졌어요!

Arch 2010-03-24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제가 목소리 신비주의가 있어서 ㅋㅋ 제가 책을 안 담아도 다들 아실거란 생각에 그냥 놔뒀어요.
hnine님, 전 님 댓글 기다렸어요. 이번엔 어떤 말을 해주실까. ^^
쟈니님 반갑습니다. 감사해요. 쟈니님의 아침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더 열심히 할 자신도 있어요.
마노아님, 감사합니다. 늘 최고의 찬사는 마노아님거로군요.

머큐리 2010-03-24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목소리에요..ㅎㅎ 발랄한 목소리와는 조금 다른 차분한 목소리...하지만 살짝 비음이 들어가 있는 멋진 목소리.. 연극때문에 발성과 감성이 더 좋아진걸까요?? 아니면 원래 이렇게 풍부한 감성의 성량을 소유했던걸까요?? 응?!

Arch 2010-03-25 14:06   좋아요 0 | URL
밤이라 그래요. 밤엔 목소리를 좀 깔게 된달까. 히~
아, 비음은 영원한 난제예요. 코맹맹이 소리 좀 내지 말라고 그렇게 말을 듣는데, 안 낼려고 노력했는데 이래요. 칭찬이 과하여 소녀, 몸둘바를 모르겠사와요.

다락방 2010-03-25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rch님! 어제 너무 듣고 싶었는데 하루종일 회장님 계셔서 오늘 들었거든요. 와- 목소리 완전 예뻐요. 만나서 얘기할때랑은 완전 다른 목소린데요!! 뭔가 더 차분하고 발음도 더 정확하고 더 여성스럽고. 왜 나를 만났을 때는 이런 목소리로 얘기하지 않는거죠? 네?


그리고 이제부터는 [100만년 산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
댓글로 봐도 그렇고, Arch님이 이 책을 읽은것도 그렇고, 이게..좋은가요? 전 친구가 엄청 좋다고 선물해줬는데, 몇번을 읽어도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구요. 무슨 얘기를 하는지..잘 모르겠어요. 왜 이 짧은 그림책을 이해할 수 없는걸까요?
[4월이 되면 그녀는]이라는 책에 보면, 젊은 남자가 연상의 여자를 서점으로 델꾸가서 [100만년 산 고양이]를 읽으라고 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리고 여자는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요.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이랄까요. 저는 그 책을 읽고 대체 이 책이 왜 사랑에 빠지게 하는건가 싶어서 다시 읽었는데, 역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Arch 2010-03-25 14:12   좋아요 0 | URL
대면하면 말이죠. 목소리보단 얼굴이 먼저 들어오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다락방님이 쎄고 비린 애기하는데 차분하고 발음이 정확한 말이 나올 수 있겠어요? 응? ^^

아, 100만 번(이거든요! 나도 자꾸 백만년 산 고양이라고 읽었는데. 찌찌뽕!)산 고양이 애기가 <4월이 되면 그녀는>까지 확장되는군요. 신난다. ^^
전 이 책을 바람구두님 리뷰를 보고 샀는데 바람구두님 말고 다른분들 리뷰도 정말 좋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이유는 요 고양이가 자긴 100만 번이나 살았다고 우쭐대다가 흰고양이에 반하잖아요. 한번도 다시 살아나지 못한 고양이한테요! 그 의외성과 사랑의 감정을 겪어나가는 고양이 모습이 좋았어요. 또 고양이의 옛주인들 얘기가 꼭 사랑을 하는 사람들 각각의 모습 같았어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사랑이 아닌 행위들. 그래서 둘이 같이 죽는다는 어떻게 보면 뻔한 결말이 참 예쁘고 아련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다락방 2010-03-25 16:12   좋아요 0 | URL
그러게. 백만번인데 백만년이래. 어쩜 좋아요. 나 Arch닮아가네 ㅎㅎ

뷰리풀말미잘 2010-04-03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 이건 정말 감동이에요!

2010-04-07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민이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있었는데 가던 방향에서 뒤를 확인 하지 않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차소리가 안 났고, 모자를 쓰고 있어서 뒤돌아보기 귀찮았던거다. 아뿔사,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오토바이가 있었고, 하마터면 부딪칠뻔 했다. 미안해서 어쩔줄 모르겠어 가만히 서있는데 오토바이 운전하던 사람이 욕을 하고 지나갔다. 
-씨발년이 진짜 확
 깜짝 놀라서 그 사람을 쳐다봤다. 그 사람은 나를 지나치면서, 신호가 떨어진 교차로를 지나가면서, 그리고 좀 더 멀어질때까지 계속 나를 쳐다봤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차들이 경적소리만 내도 불끈거리며 욕지거리를 해대던 내가 꿀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었다. 
 내가 잘못한게 맞다. 도로를 건널 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머뭇거리느라 사과할 타이밍도 놓쳤으니까. 하지만 대놓고 욕을 하는건 심했다. 그 사람은 내가 자기를 따라가서 같이 싸우지 않을걸, 같이 욕하지 않을걸, 막상 싸우더라도 얻어터지기만 할거란걸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아무말도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잘못치고는 네 반응이 과하단 항의도, 같이 대들지도, 내가 화났다는 표시도 내지 못했다. 남자가 화난걸 내게 풀까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난 병신같고, 재수없었다. 

 만일 내가 잘못을 안 했는데 아무 이유없이 욕을 먹었더라도 나는 가만히 있었을까. 아마도. 욕을 하고, 싸우는걸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통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누가 힘이 더 센지는 싸우기 전에도 분명히 알 수 있으니까.

 오만가지 생각이 났다. 자전거를 끌고 다닌다고 교통비도 절약되고 얼마나 좋냐고 나불댔던 입을 꼬매고 싶었고, 나 나름대로는 그래도 이만큼 용기내서 살아가는 것도 대견하네 어쩌네했던 생각도 수정하고 싶었다. 옥찌들한테만 큰소리치고 나보다 힘센 사람 앞에선 아무 말도 못하는 비겁함에 치가 떨렸고, 세상이 내 맘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오만했던게 폭폭했다. 나는 나를 조금씩 안다고 자신했지만, 결국 내 틀에서 반발자국도 못미쳐 정체가 드러나고 만거다.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온갖 생각 가운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었다. 결국 여성주의 공부를 해도 소용없다는 것, 그 사람이 내 얼굴과 자전거 모양을 보고 나중에 복수하면 어떡하지란 것,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자전거 타기조차-이 같잖아지는 것, 내가 바뀌고, 세상이 조금씩 바뀔 수 있는 방법은 책을 읽는 것보다 차라리 쌈질을 배워서 싸움을 하고 다니는게 더 낫지 않을까라는 것 등등. 정말, 그러다 한대 맞기라도 했으면 생각은 이보다 더 터무니없이 날뛰었을거다.  

 잘 아는 언니가 있다. 남자 친구들한테 맞은 얘기를 하길래, 정말 무식하고 폭력적인 질문을 하고 말았다. 왜 맞았냐고. 그건 곧 난 안 맞게 눈치를 잘 보는데 왜 넌 맞냐는 질문이기도 했다. 언니도 안단다. 어느 지점에서 말을 멈춰야 여남 관계의 허구적인 틀을 유지하면서 매끄럽게 싸움이 종료되는지를. 하지만 자신은 멈추지 않았단다. 계속 자극했고, 이러다 맞을 수도 있겠구나, 그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지만 같이 싸웠단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보다 그렇게 싸운 그 언니가 부럽다. 그 언니는 끝까지 가봤다. 맞을까봐, 험한 꼴 당할까봐, 무수한 핑계를 제쳐두고 죽을때까지 같이 싸웠다.

 나는 끝까지 가지 못했으니까 아무말도 해선 안 된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왠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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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3-22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이었어요.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신발을 벗어두어야 하는 곳이었죠. 저는 부츠를 벗어두고 밥을 먹고 있었는데, 한 아저씨가 들어오더니 저 신발을 누가 벗어두었냐고 소리를 지르는거에요. 저는 잘못한게 없었고, 당연히 제 신발이니까, 제껀데요, 하고 손을 들고 당당하게 말했어요. 그러자 아저씨는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셨어요. 생각이 있는거냐 없는거냐, 신발장이 있는데 왜 저기다 벗어두는거냐, 저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다시 신발 벗는 곳으로 가보았더니, 제가 신발을 둔 곳은 사람들이 신발을 벗은채로 발을 디디는 곳이었던 거에요. 저는 거기에 신발을 올려두었던 거구요. 그래서 아뿔싸 싶어서 신발을 다시 옮겨두고 죄송합니다, 라고 했어요. 잘못했으니까요, 사람들이 신발벗은채로 발을 디디는 곳에 제가 신발을 두었으니 불쾌했을거 아녜요. 죄송합니다, 라고 전 말했어요.

그런데도 아저씨는 화를 풀지 않으셨어요. 또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소리를 지르셨어요. 무슨 내용인지 알아먹지도 못할 말들을 자꾸만 자꾸만, 그 식당안에서 제게 퍼부으셨어요. 저는 그 뒤로도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두번쯤 아니면 세번쯤 더 한 것 같아요. 그런데도 아저씨는 밥이 나오기 전까지 계속, 계속 뭐라고 하셨어요. 저는 너무나 무안했고 민망했고 속이 상했어요. 같이 밥을 먹는 친구는 아무말도 해주지 않았죠. 묵묵히 밥만 먹었어요. 전 당연히 아무말도 할 수 없을거란걸 알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밥만 먹는 친구가 속상했어요. 남자였다면, 남자가 같이 있어줬다면, 이렇게 밥이 안 넘어가는 상황까지는 되지 않았을텐데, 하는 어쩔 수 없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아주 비싼 뮤지컬을 예매해두었고, 그 공연을 보기 전이었어요. 십몇만원따위, 개나 줘버리라지,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집으로 돌아가서 엉엉 울고 싶었어요. 왜 내가 낯선동네에서 누군가에게 그렇게 욕을 먹어야하지? 왜 죄송하다고 사과했는데, 나는 타이밍을 놓친것도 아니고, 공손하게 말하기까지 했는데, 거기서 그렇게 사람들 많은데서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욕을 먹어야하지?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시간이 흘렀지만 저는 여전히 그때 제가 맞서 싸우지 않은 것을 잘한거라고 생각했어요. 맞으면 어떡해, 한대 맞겠다, 싶었거든요. 아주 순간적으로 한대 맞고 경찰에 신고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러나 그 모든 일련의 과정들은 비참하고 초라하고 귀찮을 것 같았어요. 그때...싸웠어야 했을까요? 한대 맞아야 했을까요? 아니, 어쩌면 한대가 아니라 여러대쯤, 맞아야 했던걸까요?

그때만큼 제가 여자란걸 실감한때가 드물었던것 같아요. 그때만큼은 제가 여성성있는, 여성적 매력이 있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약한' 여자라는걸 실감했던 때가 정말이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무식한 남자 앞에서 오히려 한없이 초라해지는게 슬퍼요.


Arch 2010-03-23 00:09   좋아요 0 | URL
무력감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 난, 말 말고, 내가 뭔가를 좀 했으면 좋겠어요.
다락방님 많이 놀랐겠다... 그 아저씬 혹시, 미친 XXX?

마노아 2010-03-22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분의 글 모두 싸아하게 아파요. 내가 힘없는 상대라는 게 저릿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잖아요. 어휴, 이럴 땐 어떤 위로가 필요한지 모르겠어요. 그냥 슬퍼요...ㅜㅜ

Arch 2010-03-23 00:09   좋아요 0 | URL
ㅜㅜ 슬퍼 말아요. 마노아님!

머큐리 2010-03-22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Arch 2010-03-23 00:10   좋아요 0 | URL
머큐리님... 이젠 괜찮아요. 아, 미안하게시리... 정말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