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2


 다음 무대에 나가길 탐탁치 않아 하는 둘을 떼놓고 나 혼자 나가 '또' 열심히 춤을 췄다. 이번엔 DJ가 직접 무대에서 공연을 보여준단다. 뜨거운 걸 원하냐고 묻더니 옷을 벗는다. 말캉말캉한 살만 보인다. 근육은 조명 속에 감춰둔 걸까. 하나도 안 뜨거웠다. '쳇' 하고 돌아서서 다시 춤을 추는데 사람들은 계속 DJ만 바라보고 있는 거다. DJ는 다시 뜨거워지고 싶냐고 묻더니 한참동안 자족할만한 안무를 선보였다. 그러더니 '나, 긴장 고조용 음악'이라고 불리는 음악이 흘러나오자 보란 듯이 바지를 벗었다. 바지 안에는 빨강과 파랑의 원색적인 티 팬티가 있었다. 으아, 손발이 오그라들려고 했다.

 사람들은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지만, 많이 잘못된 건 아니겠지 싶어 환호를 보내줬고, 난 그의 민망함에 호응을 했다. 그는 다시 열광의 도가니 어쩌고 하더니 티 팬티 사이로 자신의 성기, 그러니까 자지를 보여줬다. 사람들은 어어 하면서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난 사람들은 어어 하지만 난 음, 하면서 음미해야한다는 객쩍은 생각도 잊은 채 황급히 자리로 돌아왔다. 자지는 사람들이 자리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덜렁거리며 조명을 받고 있었다.

 어설픈 쇼였다. 보여주는 것보다 감추는 게 얼마나 더 섹시한 건지 모르는 낯 뜨거운 공연이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내가 희안하게 본건 남성 성기가 자리한 위치였다. -후에 나이트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그 성기는 가짜 성기란다.- 물론 허접한 자리라 대단한 뭔가가 나왔어도 사람들은 어이없어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남자 성기라니.

 어린 남자의 성기는 긍정의 상징이다. 고추는 아들이었고, 아들은 대를 물려줄 손을 의미했다. 반면에 여성의 성기는 함부로 보여주거나 드러내선 안 될, 가랑이라도 벌릴라치면 어른들의 꾸중을 들어야하는 천덕꾸러기였다. 커나가면서 여성의 성적 기관인 가슴과 보지는 훔쳐보거나 야릇한 충동의 대상이 되었다. 남성 성기는 예전처럼 자랑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여자와 남성을 구분 짓는 하나의 징표, 혹은 그저 성기 자체로 기능한다. 혹은 둘 다 찌라시 광고 모퉁이에 자리 잡은 강쇠, 웅녀 되기의 전복적인 도구일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에 본 방자전. 연애의 최고 고수는 죽는 순간 자신이 입으로 직접 오랄을 했다고 하고, 우리의 희경 언니는 욕실 거울로 성기를 보려다 낙상을 했다. 거울로 보면 될 것을 말이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면 장정일씨의 말처럼 영상으로 보는 나이트보다 실제의 나이트가 좀 더 극적이고 버라이어티 했다는 거다. 그걸 참 재미도 없게 늘려썼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Forgettable. 2010-06-26 0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우리 나이트에서는 여자도 벗던걸요. 트랜스젠더라는 소문이 ㅡㅡ
부킹한번 안당하고 땡?? 아쉽삼ㅋㅋㅋㅋ

Arch 2010-06-26 23:22   좋아요 0 | URL
거긴 또 어디에요!
애들 노는데서 뭔 부킹. 흥~

다락방 2010-06-26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자지를 본건 실화인데, 그 자지는 실제 자지는 아니었다는 거죠?

Arch 2010-06-26 23:22   좋아요 0 | URL
내가 말할 때는 몰랐는데 꽤 야릇해요.
네네, 다락방 말이 다 맞아요.

다락방 2010-06-26 23:58   좋아요 0 | URL
쓰면서도 야릇했어요. ㅎㅎ
쓰고나서 내 댓글을 내가 외워버렸어요. ㅎㅎ
샤워하면서 이 댓글 중얼거렸어요. 히히히히

Arch 2010-06-27 00:12   좋아요 0 | URL
주문처럼 말이죠? 그러니까 락방님은 지금 축구를 안 보는거네. 나돈데.

다락방 2010-06-27 01:14   좋아요 0 | URL
히히 축구 보다가 전반전 끝난 시간에 잠깐 들어온거였어요.
저 근데 별로 월드컵이라도 잘 안보기는 해요. ㅎㅎ
오늘껀 봤어요. 낮잠을 자서 눈이 말똥말똥 했거든요.

Arch 2010-06-29 12:43   좋아요 0 | URL
전 16강 끝나고 2차전은 언제 하냐고 아빠께 여쭸다가 귀국한다는 황당한 대답을 들었어요.

다락방 2010-06-29 13:20   좋아요 0 | URL
여기 제일 처음에 내가 단 댓글, 어쩐지 명문이지 않아요? ㅎㅎ

Arch 2010-06-29 19:46   좋아요 0 | URL
말해 뭐해요. 당연한걸
 


* 여긴 시립 도서관의 디지털실. 옆자리의 남자는 뭐가 재미있는지 노트북을 보면서 3초에 한번꼴로 큭큭대며 웃는다. 옆 눈으로 찌릿 눈치를 주지만 진즉에 눈치 있는 양반이었으면 웃지도 않았을거란 생각에 눈을 거둬들인다. 추수한걸 거둬들이는 것도 아니고. 추수라는 말은 얼마나 풍요로운가. 비 온다고 또 이러고 있다.

 아침부터 노트북을 짊어지고 이곳에 온건 인터넷을 하기 위해서다. 자발적 느림을 실천한다는건 웃긴 소리고 생활비는 과연 얼마나 절약할 수 있을까 궁금했고 습관적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소일거리를 하느라 다른 일 할 틈을 내지 못해서이기도 했다. 그냥 한번 해보고 싶었는지도. 인터넷을 하려면 큰 맘 먹고 해야 할 것을 메모한 수첩을 들고, 인증서가 필요할 때면 노트북까지 챙겨서 집을 나선다. 재미있다. 전원만 누르면 바로 인터넷에 접속할 때보다 조금 더. 불편한 게 그냥 불편하지만은 않다. 뭔가 빠지고, 일이 제대로 안 되고, 나는 왜 하는 것마다 요 모양일까 싶어 우울해지다가 아주 조그만 것에 반짝 기분이 좋아진다. 불편함은 약간의 편리함을 꽤 놀라운 신기술처럼 보일 수 있게 한다. 요즘 인터넷 접속이 그렇다. 궁상맞음은 내 취향과 맞다.

* 몇 달 전에 연극 끝나고 호기롭게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대'선언을 하고 다녔다. 그런데 며칠째 방바닥에서 등을 떼기가 싫은거다. 여행 가야 하는데, 여행을 꼭 가야 하는데, 이러다 일이라도 생기면 여행 못가는데. 간신히 등을 떼내고 여행갈 채비를 하는데 날이 춥다. 날이 풀려야 할텐데, 날이 추우면 여행갈 기분이 안 날 텐데. 날이 추우면 핫팩이라도 붙이고 떠나란 F 말에 힘을 얻어 무작정 길을 나섰다. 계획도 약속도 아무것도 없는 여행. 막연하게나마 김남희씨처럼 시골집 할머니 집에 머물며 남도를 떠돌 생각 정도를 했을까. 익산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중앙 시장을 둘러볼 때까지만 해도 좀 신나 있었다. 내가 여행에서 좋아하는건 허름하고 낡아서 누군가의 눈에는 '재개발해야할 건물들이 들어찬 곳'으로 보이는 곳이란걸, 생활 때가 켜켜이 스민 곳이란걸, 낯선 사람에게도 말을 걸어주는 누군가라는걸 아마 조금쯤 알았을까. 

 파리지앵에서도 그러지 않는가. 여행의 참맛을 아는 사람은 한적한 골목과 값싼 식당, 그리고 활기찬 시장에 발길을 두는 사람이라고. 여수에 도착했다. 날이 추웠다. 점점 더 추워졌다. 터미널에서 오동도까지 걷는데 비까지 내렸다. 귀찮아서 우산을 안 썼더니 물에 빠진 아치꼴이었다. 여행 기분은 커녕 춥고 추레했다. 일찍 들어간 민박집에선 무려 7시간 동안 텔레비전을 봤다. 한달치를 죄다 본 셈이다. 이것도 여행 기념이라면 기념이라고 할 수 있을까.

 텔레비전을 배경음 삼아 보통의 책을 읽었다. 책과 이별 가요에서 내 심정을 읽는 오바를 허용한다면,

 나 자신의 게으름과 좀 더 정상적인 관객들이 느꼈을 진지함을 비교하며 냉담과 자기 혐오가 뒤섞인 느낌에 시달리기만 했다. 나는 그냥 침대에 누워 있고 싶은 욕구, 가능하다면 얼른 비행기에 올라타 집에 가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혔다.

 그때의 심정은 딱 이랬다.

 느즈막히 일어나 돌산 대교를 거쳐 순천에서 남해 대교 가는 버스를 타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워봤다. 하지만 밖에 나오니 또 추웠다. 이대로 포기하는가, 아니면 도전해볼 것인가. 도전은 날 풀리면 하는 게 좋겠단 대단히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고 익산으로 돌아왔다. 익산역에서 우동을 먹으며 생각했다. 여행은 무슨. 내가 사는 동네도 모르는 주제에.


* 그래서 동네 여행을 다닌다.


 낮에 도서관에서 가뭇 잠이 들었다 깨서였을까. 본격적으로 잔다며 엎어졌는데 좀체로 잠이 안 왔다. 해서 빌린 책을 다 반납하고 자전거를 탔다. 내가 가볼 수 있는 곳까지 가볼테야. 모처럼 따뜻한 봄, 바람이었다. 시내를 벗어나 외곽으로 페달을 굴리며 엎어져서 잤으면 정말 억울했을 뻔 했겠다.

 골프 연습장을 벗어나자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시골길을 '나 혼자' 달리는 것도 모자라 처음 보는 새며, 풀벌레 소리, 유채꽃과 풀잎 냄새까지. 기찻길에 흐드러지게 핀 꽃과 어느 마을 초입의 파란 간판 무슨 상회. 낭만적인 인간이 되긴 싫지만 어쩔 수 없이 감동에 취약한 나로선 사르르 녹고 말았다. 다리 힘이 빠질 즈음에 만난 한증막은 얼마나 반가웠던지. 앞으로 정말 그런게 가능하다면 전국의 한증막을 돌아다니며 기행평을 써보고 싶다.


* 아이들이랑  같이 잠들어서 새벽에 깼다. 더 잘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잠을 더 잤고, 늘 그랬듯이 꿈을 꿨다. 야무지게 두개나.

! 예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날 못잡아 먹어 안달 난 상사가 전화를 했다. 내가 그럴줄 몰랐다며 고소를 하겠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혹시 내가 뭔가를 훔친걸 아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뇌에 1초간 머물렀다. 묵묵히 상사의 얘기를 듣는데 잘하면 내게 승산이 있어보였다. 나는 가만히 상사를 어떻게 힘들게 할지, 저렴한 것에서부터 지독한 것까지 하나하나 셈해 보았다.

! 누군가와 만나고 있었다. 이 사람과 오늘 밤을 같이 있어도 좋겠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저 누군가일 뿐이라 12시 종이 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집에 갈 채비를 했다. 나는 다급한 맘에 되지도 않은 억지를 부려볼까 하다가 가만히 있었다. 누군가는 아주 조용히 해변가 선술집-이 조합이란- 밖으로 나갔다.

 어디서 잔담. 바닷 바람이 몸에 축축하게 감겨들었다. 그때 옥찌들을 재우고 왔다며 B가 나타나 잘 곳으로 안내했다. 우린 고시원을 여관으로 개조한 못미더운 건물로 들어섰다. B가 건물 속으로 사라지는데 그곳으로 들어가기 싫었다. 밖에 남아 1층의 튀김집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골목에는 튀김을 한 후 남은 시커먼 기름이 세숫대야에 담겨 있었다. 기름에 몸이 빠지면 꽤 뜨겁겠단 생각을 했는데 어느새 오른쪽 다리가 기름에 빠져있었다. 다리는 색이 곱게 튀겨져 있었다. 뒤늦게 발견된 튀겨진 다리를 놓고 분식집의 책임이냐, 내 책임이냐란 설전이 오고 갔다. 상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침에 일어나 오른쪽 다리를 확인해봤다. 야들야들하게 잘 익어 있었다.


* 대개의 날들은 그저 묵묵히 살아갈 일만, 열심히도 말고 그 자리에서 쭉 살아야만 하는 시간으로 남아 있다. 언젠가는 이런 나이듦을 바란게 아니라고 어딘가에 떼를 쓰기도 했다.-요즘도 그렇다- 그런데 이런 '살이'도 하다 보니 는다고, 별일 없이, 아주 즐겁고 짜릿한 것 없이도 살아진다. 젊음의 유치함과 황당함과 무모함, 안하무인의 절망감까지도 가끔씩은 목마를 정도로 부럽다. 같은 이유로 젊은 게 정말 싫으면서도.

북으로 창이 난 내 방에 눕는다. 약간 춥고 어둡다. 요즘 내 맘이 딱 그렇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0-06-01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rch님, 여행 다니면서 글 쓰시면 위의 김 남희님 못지않게 잘 쓰실 것 같아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그저 묵묵히 살아가는 일, 열심히도 말고 그 자리에서 쭉 살아가는 일, 그거 만만치 않던데요.
오늘따라 arch님 글 속으로 몰입이 잘 되네요.

어째 이 정도 길이의 페이퍼를 쓰시면서 맞춤법 틀린 것도 하나도 없으시담~ ^^

Arch 2010-06-04 09:48   좋아요 0 | URL
항상 좋은 말 해주셔서 감사해요. 힘이 나는데요.

맞춤법은 한글 프로그램이 봐줘서 ^^ 히~

다락방 2010-06-06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간 춥고 어둡다. 요즘 내 맘이 딱 그렇다.
내 맘도 그래요, Arch님.

1층의 튀김집 옆에 앉아있었던게 꿈이라서 다행이에요. 정말로요.

Arch 2010-06-08 10:16   좋아요 0 | URL
나는 페이퍼를 묵히고, 다락방님은 댓글을 묵히고 ^^
 


 여자분은 나이트 죽순이라도 되나보다. DJ는 여자가 앞에서 버티고 있는데도 별로 당황한 기색 없이 안부를 묻는다. 여자는 흐느적거리며 몸을 흔들었다. 우리들도 -누가 우리들이래- 나가서 춤을 췄다. 춤을 추며 여자를 힐끔거렸다. 여자는 하고 싶은 말을 입 속에서 우물거리고 있는 것처럼 몸을 부풀렸다 가라앉히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생각났다는 듯이 음악 소리만큼 크게 고함을 질렀다.

 DJ가 세 번씩이나 바뀌도록 스테이지는 우리 차지였다. 여자도 흐느적거리는 것에서 벗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혼자 추면 외로울 것 같아 여자 곁에 다가가 같이 춤을 추었다. 여자는 나를 보며 엄지 손가락을 바짝 세웠다. 그럼 그렇지, 외롭고 즐겁고 간에 간과할 수 없는 웨이브와 춤 실력은 따로 있구나란건 순전히 내 생각이고, 그녀는 아무데나 엄지 손가락과 발길질을 할 정도로 취해있었던거다.

 혼자 놀기의 궁극의 경지, 혼자 고기 구워먹기까지는 들어봤지만 혼자 나이트 와서 놀기는 대체 어느 경지일까. 클럽이 아니라 나이트 말이다. 부킹과 허세와 뽕짝으로 믹싱한 음악이 터져나오는 나이트. 가슴이 답답할 때면 집에서 음악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춘 게 다인 나로선 상상이 안 된다. 뭐, 이것만 상상이 안 될까 싶지만.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바깥에서 나이트 들어갈 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기세로 밀려 들어왔다. 나이트는 신속하고 빈틈없이 '젊은 사람들로' 들어차기 시작했다. 어깨만 살랑이며 춤을 추는 여자애들과 연습했을법한 춤을 보여주는 남자애들. 그들은 젊고 젊어서인지 수줍어했다. 한껏 멋을 낸 차림으로 시간 맞춰 나이트에 들어와놓고선 기운차게 놀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간을 봤다. 그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설렘과 분위기가 부러웠고, 그래서 내가 나이 먹었다는 게 절실해졌지만(꼭 나이만은 아니란거 잘 안다. 흑! 급나이트행이라 품행이 방정맞았다) 그땐 그저 춤추는 자리가 점점 비좁아지는 것 정도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느린 음악이 나오는 동안 사람들이 자리로 들어왔다. 이곳 저곳에서 담배 연기가 뿜어져나왔다. 나른해지는 스모킹 타임에 부킹을 한답시고 늙은 웨이터들만 분주히 왔다갔다 했다. 물론 우리 자리론 파리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느닷없이 아무 웨이터의 아무 상대라도 좋으니 손목 잡혀 끌려가는건 어떤건지 간절히 알아보고 싶은 바람이 생기고 말았다. 그때의 내 손목은 누군가의 손으로 꽉 움켜졌을 때 약간의 공간이 생길 정도로 가늘어야 한다거나, 늙은 웨이터의 손이겠지만 나를 잡는 손은 푸른 핏줄이 도드라지거나 힘이 느껴지는 손이면 좋겠다든가 등등의 상상을 했던가, 맥없이 내 손목만 만지작거렸던가.

 일전에 나이트를 좋아한다는 누군가에게 부킹해서 남자 만나는거랑 술집에서 일하는거랑 뭐가 다르냐고, 고용됐다는 것만 다를 뿐이라고 열변을 토한적이 있다. 그땐 정말 그랬다. 남자들은 겉치레용 룸에서 웨이터에게 팁을 찔러주며 여자들을 만나고, 여자들은 외모로 평가 된다. 남자들은 자기 돈 내고 술을 먹고, 여자들은 덩달아 공짜술을 먹는다. 지금도 그 차이가 뭔진 잘 모르겠다. 이미지만 갖고 속단했을 수 있다. 말로만 듣던 부킹에 대한 반감-내가 못해봤지만, 뭔가 재미있을지도 모를-이 가져온 극단적인 설정이었을 수도 있고, 그냥 어설프게 주워들은 것으로 만들어낸게 딱 고만한 결론 정도였을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이지 부킹이 하고 싶었다. 내 나이엔 나이트가 아니라 스탠드바에서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눈을 사이키 조명으로 감쪽같이 숨기고선 수작을 부려야하지 않을까란 생각에 이르러선 더더욱 말이다. 어쩌면 부킹이 되는 조건에 괜히 시샘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나이트-3
    from 기우뚱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 2010-06-26 00:36 
     다음 무대에 나가길 탐탁치 않아 하는 둘을 떼놓고 나 혼자 나가 '또' 열심히 춤을 췄다. 이번엔 DJ가 직접 무대에서 공연을 보여준단다. 뜨거운 걸 원하냐고 묻더니 옷을 벗는다. 말캉말캉한 살만 보인다. 근육은 조명 속에 감춰둔 걸까. 하나도 안 뜨거웠다. '쳇' 하고 돌아서서 다시 춤을 추는데 사람들은 계속 DJ만 바라보고 있는 거다. DJ는 다시 뜨거워지고 싶냐고 묻더니 한참동안 자족할만한 안무를 선보였다. 그러더니 '나, 긴장 고조
 
 
 

 인사동에서부터 걸었다. 덕성여대를 지나 삼청동의 시네 코드 선재(행정구역상으로는 소격동)에 들렀다. 장기 상영 중인 '위대한 침묵'을 볼까, 유레루로 인상적인 라스트신을 보여준 니시카와 미와의 신작'우리 의사 선생님'을 볼까. 경계도시2에서 작은 연못까지. 보고 싶은 영화가 많았다. 보고 싶은 영화만 골라서 상영해주는 영화관은 얼마나 오랜만인지. 시간이 맞는걸 찾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이 눈에 들어왔다. 상영 후 GV와 타바코쥬스의 콘서트도 한단다. 운이 좋다. 
 
 인디 밴드의 이야기를 만든 다큐멘터리라, 왠지 구린 느낌이 났다. 궁상맞은 얘기가 나올 것 같고, 우리 이렇게 힘들지만 재미있게 잘 지낸단 소리를 철지난 계절상품처럼 우격다짐으로 반복할 것만 같았다. 잘못된 선택일까. 나루토를 보며 '우린 안 될거야.'라고 말한 타바코쥬스 보컬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할까. 

 인천 부평구 모텔촌. 그곳에 루비 살롱이란 까페가 문을 연다. 까페 사장님은 까페만으로는 성이 안 찼는지 루비 살롱이란 레이블을 차린다. 이 영화는 바로 루비 살롱의 소속 멤버인 타바코쥬스와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모텔촌에서 시작하지만 이야기의 끝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내가 섣부르게 상상했던 내용은 절대로 나오지 않았다. 세상에서 대빵으로 찌질한 남자들(타바코쥬스)과 우주의 혼을 받아 음악을 하는 깜장옷 밴드.(갤럭시 익스프레스) 키치적일까, 정말 찌질한게 다야? 게으른건 알아줘야겠군.(누군!) 영화를 보며 낄낄대다 과연 이 영화는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걸까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과는 별개로 나는 오랜만에 영화보는 재미를 담뿍 느끼고 말았다. 와이드 스크린에서 뿜여져나오는 로큰롤 열정은 내가 로큰롤에 대해 쥐뿔도 모르면서 '그래, 저게 바로 로큰롤이야'라고 무릎을 칠 정도로 (아, 상투적이야.) 상큼하고 즐거웠다. 굳이 웃기려고 하지 않는데도 계속 키득거리게 만들고, 결국 이 밴드들을 좋아하게 만드는 힘도 이 영화의 아주 큰 장점 중 하나다. 나만 찌질한게 아니었어, 더 찌질한 사람이 있네에서 오는 위로감은 크지 않다. 결국 누군가는 찌질할 수 밖에 없다면 좀 더 재미있고, 엉터리로 찌질해진다면 괜찮겠네란 용기 정도. 이건 좀 위악인가.  

 GV에서 술에 취하지 않은 타바코쥬스의 수줍은 모습은 좀 귀여웠고, 노래 역시 좋았다. 원한다면 좀비떼 동영상을 보여줄 수도 있다.

 아무튼 리뷰를 잘 못쓰는 내가 영화 본지 무려 2주만에 이 영화의 리뷰를 쓰는건 뒷북이나마 입소문을 내기 위해서라는데, 글쎄 효과는 장담 못하겠다. 다만, 반드시 크게까지는 아니어도 좀 웃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길 바란다. 홍대 상상마당에서 절찬리 상영 중이다. 

 추신: 
* 왜 음악했냐는 질문에 '여자 따먹고 싶어서 음악했다'는 부분은 좀 그랬다. 그만큼 솔직하다는건데 솔직한 것과 다른 입장은 * 어떻게 봐야 할까. 결국 적당함의 문제인데.
소리가 뭉개져서 들릴 때가 있다. 
* 현재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루비살롱과 더 이상 같이 활동을 하지 않는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rch 2010-05-06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월미도다.

Forgettable. 2010-05-06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미돈지 어케 알아요? 나 배경만 뚫어져라 봐도 잘 모르겠구만 ㅋㅋㅋㅋ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며 치는 기타는 촘 간지. 비록 좀비같더라도 멋지다...

메일 보냈어요 ㅋㅋ

Arch 2010-05-06 16:18   좋아요 0 | URL
난 딱 보니까 알겠더만. 노래보다 뮤직 비디오가 더 타바코쥬스 같아요.
메일 봤어요. USB 갖고 와서 저장해가야지^^
블로그에 포게터블 이름으로 사진 올려야지~

머큐리 2010-05-07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건 몰라도 사운드하고 노래 부르는 친구의 수염은 맘에 드는군요...
얼마전에 뽀님 보니 아치님도 보고 싶던데...자동연상의 법칙인가 봐요.ㅎㅎ

Arch 2010-05-11 09:39   좋아요 0 | URL
그래서 오랜만에 제 서재에 댓글을 남기신거로군요. 틈틈히 뽀님께 부탁 좀 해야겠어요. ^^
영화 보세요. 정말 재미있을거에요.
 


 흑맥주에서 한약 맛이 났다. 거품이 풍부하고 깊고 진한 맛이 나는, 다 마신 후에 감칠맛이 입 안에서 맴돌아 한잔 더 한잔 더 하다가 얼굴이 흑색이 되도록 퍼마시게 되는 흑맥주까지 상상한건 아니었지만 너무했다. 첨가물을 넣었는지 쓰기만한 맥주를 보약 마시듯이 들이켰다. 감자튀김이랑 딸려서 나온 비린내 나는 소시지를 보기 좋게 썰어놨다. - <헝그리 플래닛>과 도축 사진을 다양하게 본 후로 내가 먹는 고기는 짐승으로 보였다. 고기에선 몸의 냄새가 났다.- 그토록 먹고 싶었던 케이준 감자튀김은 너무 기름지고 바삭거렸다. 이런 감자튀김을 원한게 맞지만 맥주 때문에 꽁해있는 기분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배는 부르고 취기는 살살 도는데 흥이 나지 않았다. 나를 매개로 만난 친구 녀석들은 무료한 김에 잘됐다 싶었는지 좀 전부터 서로의 호구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가 알고 있는 사실보다 자신에 대해서 과장하거나 생략했다. 두 녀석의 긴장을 핑계로 버틸 수 있었음 좋으련만 어쩌나. 오늘은 금요일인걸.

 그때 느닷없이 '나이트행 고고씽'이란 글자가 머리 위에서 반짝였다. 충동적인 나이트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친구들을 은근히 대놓고 떠봤다. 남자앤 자기는 잘 놀 줄 모르고, 나이트도 별로 안 좋아하고, 가면 술만 먹겠다는 오만가지 설명을 한 끝에 오케이를 했다. 여자앤 화장도 안 하고, 꼬라지가 말이 아니니 다음에 날을 잡아서 다른 지역 클럽을 순례하자고 했다. 나중에 보자고 하는 것들 다 필요없다며 대성통곡하길 2초, 여자앤 대신 부킹만 하지 않는다면 글쎄, 어디 한번, 스텝 좀 밟아줄까라며 운을 띄웠다. 어딜 가나 이렇게 꼭 한번씩 튕기는 애들이 있다. 튕기는 애들 다 싫어!

 나이트 전문가 H에 의하면 나이트는 최소 11시 이후에 입장해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인숙만필>에서 고스톱이 너무 치고 싶어 사람수를 맞추느라 싫어도 싫은척 못하는 사람이 어디 그녀 뿐이겠는가. 친구들이 행여 맘을 바꿀까, 또 다음을 기약하고 앉았을까 염려되어 공식 시간인 11시를 지킬 수가 없었다. 도리어 친구들이 말리는데도 일찍 가서 안주 먹으며 분위기랑 리듬감을 익혀야한다고 설레발을 쳤다.

 나이트 시간대로 치면 초저녁에 나이트에 들어섰다. 약간 뻘줌했다. 정말이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손님을 가장한 웨이터들은 좌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DJ는 무조건 빠른 비트로 노래를 틀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을 하고 주문을 하자마자 안주와 술이 나왔다. 초스피드다. 웨이터들은 음악 비트에 최적화된 서빙을 하고 있었다.

 무대에 나가서 춤추기도 우습고 앉아있자니 뭐하는가 싶어 셋 다 멍 때리고 있었다. 여자앤 어깨로 리듬을 맞추고, 남자앤 보란 듯이 술을 푸기 시작했다. 언제쯤 나가서 뱃살에 회오리 칠 정도로 흔들어볼 수 있을까. 조바심이 났다.

쭈뼛거림에 그동안 먹었던 술마저 깨려고 했다. 맥주 한잔을 쭉 들이켰다. 그런데 저건 누구지. 어떤 여자분이 DJ 앞에서 버티고 있었다. 남색 트레이닝복에 짧은 파마 머리. 여자분은 미동도 하지 않은채 DJ와 눈싸움을 하고 있었던거다. 왠지 용기가 생겼다. 아무도 없잖아. 이건 우리 놀라고 벌려놓은 판 아니겠어, 라고 최면을 걸어봤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얼그레이효과 2010-05-12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rch님 글 읽고 아침 맞이합니다.~^^ 글이 생글생글합니다.

Arch 2010-05-13 10:36   좋아요 0 | URL
히~ 2편 쓸 기운이 조금 나려고 하는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