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역사는 커녕 만화로 보는 역사도 좀 별스럽단 생각이었다. 고우영씨에 대해선 몇번 들었지만 관심이 없었고, 왕자의 난은 사극마다 나오는거라 몰라도 아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굳이 책을 통해 역사를 보는건 흥미롭지 않았다. a가 고우영의 수호지, 초한지를 즐겨 읽는건 알았지만 정말 역사 만화책은 별로였다. 그런데 수레바퀴 6권의 가지와 복숭아, 그리고 19세 미만 구독불가에 꽂혀 이 책을 읽게 됐다. 

 그림으로 보는 역사책은 알기 쉽고 재미있다. 이 책은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돈다는 주제 아래 조선의 건국 과정에서 일어나는 야사를 다루고 있다. 고우영씨의 역사관은 일반적이고 가끔씩 끼어드는 유머는 썰렁하다. 그렇지만 책에서 짧은 단락으로 읽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야사의 맛이 만화에선 생생하게 살아있다. 아직은 고우영씨 만화라 좋은게 아니라 삼국지를 읽고 판단을 해보고 싶다. 다행히 도서관엔 삼국지뿐 아니라 초한지, 수호지까지 다 구비되어 있다.



 표지가 얄팍했지만 빵가게습격사건님의 페이퍼를 보고 괜찮겠다 싶어 희망도서로 신청했다. 어제 서문과 첫챕터를 읽었다. 책중독자의 고백에 대한 부분이다. 관심가는 분야가 생기면 책을 사고, 관심 분야는 또 생겨나 책을 사고, 또 산다. 그러다보니 지난 관심 분야의 책은 읽지 못하고, 언젠가 읽겠지 하는 상태가 지속되는 중독 상태에 빠져든다. 나도 그런적이 있다.

 서재에서 신간이 나왔다고, 이 책은 어떤게 기대된다란 페이퍼가 보인다. 페이퍼 행렬이 지나가면 리뷰가 나온다. 벌써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있는거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다. 솔깃할만한 내용이다. 당장 살 수 밖에. 나도 고백하자면 책중독자였고, 다른건 아까워서 수백번은 고민하면서 책만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대기 일쑤였다. 그 책들을 읽기도 전에 다시 또 책을 사고, 사놓은 책은 몇페이지만 읽다 말았다.
 
 도서관에 다니면서 책 사재기 충동을 좀 줄일 수 있었다. 혹할만한 신간이 나오면 그 작가의 전작을 읽어본다. 구미가 당기면 희망도서로 신청하고 아니면 그만. 후진 책을 쓴 작가가 갑자기 훌륭한 책을 쓸리는 없다. 영화를 배우나 시나리오보다 감독을 보고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 희망 도서 신청을 한다고 바로 책을 살 수 있는건 아니지만 기다리는 동안 책 갈증은 어느 정도 해소된다. 그렇게 몇번 하다보니 여전히 어떤 책이 너무나 갖고 싶은 충동을 조절할 수 있게 됐다. 그래도 여전히 몇십권씩 빌려가며 읽고 있다. 그러니까 이건 뭐, 중독이 그친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풀린건지도 모르겠다.



 일테면 이런식. <우리 동네>를 읽고나서 골목에 대한 책을 읽고싶다. 자전거를 타고 서울의 골목길을 다녀본 <그 골목이 말을 걸다>와 전국의 골목길을 다닌 최갑수의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를 읽는다. 사진은 참 좋다. 그런데 이야기가 없다. 골목의 역사, 가는 길, 심지어는 그곳 주민분들과 한 얘기까지 적혀있는데 그래서 뭘 느끼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지나고나니 어땠고 그 공간을 사유할 수 있는 방식은 뭐가 있었는지 등등에 관한 것은 없다.

 해상도 뛰어난 사진과 짤막한 글 따위를 적거나 나는 우울했어요, 행복했어요, 감미로웠어요 등등의 감상을 적어놓은 책은 별로다. 그건 내가 일기뿐 아니라 페이퍼에서도 줄곧 하는 짓인데 종이로 만든 책에서까지 그런 얘기를 듣고 싶진 않다. 여행서도 인문학적 관점을 지닌 사람이 쓴다면 어떨까. 푸코나 들뢰즈를 꺼내지 않아도 지식나열이 아닌 공간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두는 글 말이다. 

 골목에 대한 책을 다시 검색하다 황인숙씨가 쓴 책을 발견했다. 2005년도에 나온거라 3년 안의 신간만 희망도서로 신청할 수 있는 이곳 도서관에선 영영 볼 수 없다. 다행히 이곳 도서관에선 볼 수 없지만 군산 도서관엔 있다. 언젠가 집에 가면 꼭 빌려봐야겠다. 나를 실망시킬지, 각성시킬지, 좀 더 행복하게할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기대된다. 그러니까 어쩌면 책을 샀던건 그 책이 내게 가져다줄 온갖 잡다한 상념을 상상하는 시간이 달콤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베즈무아>와 성 어쩌고 하는 책들 사이에 있던 <광고, 리비도를 만나다>는 순전히 도서관에서 성인들의 성적 호기심을 제어하고 바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굳이 검색하지 않으면 찾을 수 없도록 이 책들을 서지 분류목록과 상관없이 한쪽에 숨겨놓은 덕분에 발견할 수 있었던 책이다. 넘치거나 부족함 없이 광고 속에 숨겨진 성적 키워드와 발상을 깨는 광고만으로 <광고, 리비도를 만나다>를 꽤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에서 자위하는 여성을 상상할 법한 광고를 언급하며 베티 도슨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제목은 알고 있으되 <네 방에 아마존을 키워라>는 영영 읽지 못했을거다.

<네 방에 아마존을 키워라>는 아마존 전사들처럼 전투적인 페미니즘을 연상시킨다. 나와 다른 것을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는 여성주의 운동은 외부의 비난뿐 아니라 나조차 수긍할 수 없는 점이 많았다. (그렇다고 내가 안 그랬거나 앞으로 안 그럴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책을 볼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은 제목과 다르게 여성의 자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여성의 다양한 성기 스케치(성적으로 깨인건 아니지만 적어도 멍청한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 부분을 보고 내건 비정상이란 생각이 확 달아났다.), 삽입의 부수적인 단계가 아니라 하나의 독자적인 행위로서 여성의 자위, 자위하는 방법, 남성뿐 아니라 여성, 남성 여성의 이분법을 벗어난 성에 대한 생각거리를 마련해줬다. 아쉬운건 자위 예찬이 지나치다보니 적정하게 자위를 하고 싶은 나같은 사람을 소외시킨다는 것, 이건 엄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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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1-04-03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가 하일라이트인데요.^^ 오랜만에 왔다 갑니다.^^

Arch 2011-04-04 09:17   좋아요 0 | URL
태그에 공을 들였는데, ^^

다락방 2011-04-03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책 엄청 많이 읽네요! 와우- 저는 평소에 아치님과 책 읽는 취향이 겹치지 않는데 저기 위에, [그 골목이 품고있는 풍경]은 저도 봤어요. 헤헷

Arch 2011-04-04 09:19   좋아요 0 | URL
황인숙씨거라 다락방님도 치니님도 봤을거라 생각해요. 엄청 많이는 아니고, 책 중독자의 고백을 보다보니까 뭔가 책 페이퍼를 쓰고 싶었어요. 예전에 읽은 책도 넣고 그랬죠~
 

  전설의 프렌치 셰프 ‘줄리아 차일드’ (메릴 스트립). 외교관 남편과 함께 프랑스에 도착한 줄리아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생활에서 먹을 때 가장 행복한 자신을 발견하고 명문 요리학교 ‘르꼬르동 블루’를 다니며 요리 만들기에 도전, 마침내 모두를 감동시킨 전설적인 프렌치 셰프가 되는데...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뉴욕의 요리 블러거 ‘줄리’ (에이미 아담스). 한창 잘나가는 친구들과 잔소리 뿐인 엄마 사이에서 기분전환으로 시작한 요리 블로그. 유일한 지원군은 남편 뿐이지만 전설의 프렌치 셰프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을 보며 365일 동안 총 524개의 레시피에 도전하는 그녀의 프로젝트는 점차 네티즌의 열렬한 반응을 얻게 되는데는 성공하지만... (네이버 영화 정보 중)

 노 임팩트맨을 읽으며 시들해진 블로그 활동을 나도 노임팩트라는 목표를 갖고 해보면 어떨까란 생각을 해봤다. 일테면 줄리&줄리아에서 줄리가 줄리아 차일드의 레시피대로 1년 동안 요리를 하는 것처럼. 몇 가지 문제되는건 집에서 인터넷이 안 되기 때문에 회사에서만 글을 올려야한다거나 콜린 베번처럼 작심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할 깜냥이 내게 없다는 것 등이다. 물론 그것보다 더 문제되는건 내가 뭔가를 끝내거나 꾸준히 할 정도로 인내심이 없다는 것, 혼자 일을 벌여놓은 다음, 자멸할거란 것.

 콜린 베번에게 누군가 지적했듯이 환경의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으로 실천하는건 조직적이고 거대한 기업이나 국가의 무신경한 활동을 잠재울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나처럼 살아라'는 것은 아니지만 블로깅 중에 누굴 가르치고 싶어하는 잠재된 근성이 안 나올지 장담할 수도 없다. 게다가 그냥 뭔가가 아까워서 덜 사고, 덜 버리는걸 당위 차원에서 하는건 만만치 않은 스타일 같다는 생각도 든다. 콜린 베번이 얘기하는 것처럼 추상적인 문제들에 대해 떠드는 것보다 좀 더 실감나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어쨌든 아직은 보류. 사무실에서 넘쳐나는 이면지가 곧장 분쇄기로 들어가기 전에 나한테 주라고 하거나(거의 못쓰고 있다. 대체 이면지를 그토록 많이 쓸 일이 뭐란 말인가) 야채 포장한 스티로폼을 모아놨다 마트에 주는 것, a도 텀블러를 사용하는 점, 사람들 컴퓨터 모니터 끄고 돌아다니는 것(누가 자꾸 모니터를 끈다고 불평하는 소리가 간간히 들린다), 변기에 물 채운 PT병을 넣어놓는 것, 물건을 사면 가방에 대충 우겨 넣는 것, 면생리대를 쓰고 손수건을 갖고 다니며 코를 푸는건 어째어째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누군가 휴지를 한정없이 쓰는건 불편하지만 나도 여전히 화장실에선 휴지를 쓴다. 손수건을 놓고 나올 때, 걸레를 가지러가기 귀찮거나 걸레 빠는게 번거로울 때는 휴지를 쓴다. 커피 전문점에선 빨대로 음료를 먹는게 편해서 텀블러에 담아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변기의 물을 너무 자주 내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여전히 많이 버린다. 베이킹소다보다 치약이 좋고, 며칠 시도하다 머릿결도 거칠고 비듬이 생겨 빨래비누로 머리 감는건 그만뒀다. (전에 한겨레 신문 보니 메가쇼킹 만화가는 머리를 며칠마다 감는다고 하던데) 힘들면 걸을 수 있는데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끔은 귀찮고 나만 유별나게 굴거 뭐있나 싶어 전등을 안 끄고 점심을 먹으러 나간적도 있다.

 어쩌면 나 정도 하는 것도 어딘데, 굳이 프로젝트로까지 할거 있나란 맘도 있다. 어쩌면 위험은 증언되고 문제는 지속되고 있는데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아서 점점 더 무감해지는지도 모르겠다. 다행인건 불꺼라, 물 많이 틀지 마라 등등의 잔소리를 영리하게 새겨들은 a 덕분에 나의 나태함을 지적받을 수 있다는 것.  

 이건 균형과 문화의 문제다. 만약 수도세가 비싸거나 일회용 용기가 분해가 안 돼서 안 좋아요란 경고가 아니라 습관적으로 (의약용품이나 몇몇 필요한 경우를 제외한)일회용품을 쓰는 행위를 유행에 뒤떨어지거나 세련되지 못한 태도로 본다면? 북극곰이 걸을 빙하가 녹고 있다는 말 대신 온실 가스의 직접적인 위험을 경험하게 된다면?

 우리가 버린 검은 봉지는 바다에 떠다닌다. 바다거북은 비닐 봉지가 해파리인줄 알고 삼켰다가 숨이 막혀 죽는단다. 일회용품 쓰기, 물낭비뿐 아니라 나는 너무 많이 먹고, 많이 사며, 쉽게 버린다. 프로젝트를 할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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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4-02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노임팩트맨 장르소설인줄 알고 읽었었잖아요.
제 서재 어딘가에 리뷰나 페이퍼도 남겼던 것 같아요.
전 콜린 베번이나 님의 견해로 보면 한참 속물이지만요, 그냥 적당히 하고 살아요.
그렇게 된데는 수선 내지 않고, 프로젝트 따위를 만들지 않아도 그걸 실천하시는 저희 시어머니 같은 분들이 계시다는 걸 알기 때문이예요~^^

Arch 2011-04-02 09:08   좋아요 0 | URL
수선피지 않고 묵묵히 '제대로' 살아가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말이나 글로 나오지 못한 사람의 좋은 습관이나 성품이 더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도 알아요. 저는 그런 분이 되지 못해서 이렇게 징징대는 것 같아요. 이런 글은 개인적 윤리의 강박으로 비춰지고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뿐이고. 그러니까 저도 언젠가는 양철댁님처럼 될테고 그러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인 누구처럼 될지도. 지금은 어쩜 과도기죠^^

로박 2011-05-30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고, 제일 먼저 실천한 것이 에코컵 구입과, 되도록 BMW를 실천하는거였죠. 대중교통으로도 1시간이 넘는 출근길이라,저자처럼 자전거로는 좀 어렵더라구요. 사무실에서 이면지 활용이라던가,당연, 손님접대용 종이컵도 사용하지 않는답니다.

Arch 2011-05-31 09:15   좋아요 0 | URL
로박님 반가워요.

1톤의 종이를 만드는데 3톤의 나무가 필요하대요. 일회용품을 너무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도 문제인 것 같아요. 각자 자기가 있는 위치에서 고민하고 노력해야겠죠. 로박님은 저보다 나으신데요~
 

 라오스의 방비엔에는 '리버사이드'라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이름 그대로 강가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야. 거기서 일하는 남자가 하나 있는데 매일 그가 하는 일은 안내데스트에 앉아 강을 바라보는 일이야. 그게 전부야! 만약 손님한테 문제가 있으면 가서 해결해주고 돌아와 다시 강을 봐. 하루종일 말이야. 이런 완벽한 인생이 또 있을가? 물론 내 말은 이렇게 사는 게 모든 사람들에게 어울린다는 건 아니야. <자메이카의 트레이시 버튼 27세>

  사실 나는 가끔 세상을 바꾸려고 애를 쓰기는 했지만, 생각해보면 나의 정치적 견해로 미셸 같은 다른 사람을 바꾸려고 한 경우는 너무 많았던 반면 나를 바꾸려고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나는 남의 잘못을 꾸짖으면 내가 고결해진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정치적인 의사를 표시하거나 생활방식을 양보하는 일은 거의 없이 슬그머니 지나가버리면서도, 그 정도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우쭐거리는 데 남은 에너지를 쏟아붓는, 그런 진보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소제목; 나처럼 어리석은 인간이 이와 같은 허세에 말려든 사연 중>
  
 
- 가로수 관리를 하는 공무원이 있었어.
- 재미있는 이야기야?
- 들어봐.
- 차가 가로수를 들이박으면 이 공무원은 가로수를 다시 심거나 보수해야해. 차주인이 밝혀지면 모르겠지만 가로수를 들이박는 사람 중엔 뺑소니가 많아. 그럼 이 사람은 사고 경위 및 경찰 신고를 한 공문서를 작성해.
- 잡힐리가 없잖아.
- 그렇지 그건 그냥 형식적인 절차야. 그리고 예산을 받아서 가로수를 고치는거야. 차가 가로수에 받을 때마다 이 사람은 이 모든 형식적이고 번거로운 일들을 계속 해야만해.
- 그 얘기를 왜 하는거야?
- 글쎄.
<몇달 전 전주 샤브샤브 집에서 친구랑 한 얘기인줄 알았는데 '위풍당당 개청춘'에 나온 내용>

 
 자본주의는 사람들을 불행, 두려움, 근심, 짜증 속으로 몰아넣어 반쯤 넋을 놓고 살게끔 설계되어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소비하고, 소비하고, 또 소비하도록 할 방법이 없다. 물건을 사도 행복해지지 않는 마당에 고객서비스가 무슨 수로 행복을 주겠는가! 자본주의는 이렇게 말한다. “직장을 구하고, 일을 해라. 일하면 자유를 얻는다. 자유는 쇼핑이다. 하나님도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했다. 일하지 않으면 돈이 없고, 돈이 없으면 죽는다. 죽으면 끝이다.”
<영화 속 신랄함과 유머만 못했지만 가끔 낄낄거리게 만들었던 마이클 무어의 책>


- 뭐가 힘든지 말해봐.
- 웃을거잖아.
- 장담은 못하지.
- 사람들이랑 어울리는게 힘들어. 알아서 눈치보고, 알아서 처신하라는 것도 싫고, 어쩌고 저쩌고.
- 아치야, 직장은 직장이잖아. 적어도 내 할일만 하면 자존감 무너지는 말은 안 듣잖아. 나는 결혼이 현실이라는걸 근 몇년간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 그건 불가항력 같은거야.
 <결혼한 친구의 이야기>

 <다시, 카오산 로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여행서>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데, 그 영화에 등장하는 아빠와 그의 가족들은 모두 정답을 찾으려 노력해. 어느 날 정답을 아는 사람이 찾아와 '정답은 42'라고 말하는데 모두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 질문이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답을 알고 있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잖아.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지만 찾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 같아. <이스라엘 여행자 카렌>
- 그래서?
- 그래서는 무슨. 네가 좋아하는 것, 만족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 것만큼 지금 네 현실에 충실하라는거지. 잊지마, 행복은 구해서 얻는게 아니라 어떤 마음의 상태라는걸. 그리고 자꾸 징징대면 얼굴에 주름 생긴다! <카렌의 대답을 상상해본 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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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3-26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샤브샤브집에서 나누었다는 대화 한 자락이요, `위풍당당 개청춘'에서 가로수 담당 공무원의 이야기에 거의 비슷하게 등장했어요. 전 처음 글 첫단락을 읽을 때 그 책의 부분발췌인가, 생각했지 뭡니까. 이런 기묘한 겹침이 참 재미있어요.(슬프게도 그 책은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노 임팩트맨을 읽으셨다면, 굿바이 쇼핑도 읽어보시기를. 그 책은 권하고 싶어요. 아치 님이라면 제대로 읽어주실 것 같습니다.

Arch 2011-03-27 09:10   좋아요 0 | URL
쥬드님 말 들으니까요. 위풍당당 개청춘에서 저도 읽은 것 같아요. 뭐지?
위풍당당 개청춘이 맞는거 같아요. 그런데 난 이걸 왜 친구가 해준 말로 생각했을까. 재인씨와는 일면식도 없는데. 흠, 좀 야릇해요.

아직 안 읽었어요. 읽고 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기분이 좋아요. '굿바이 쇼핑!' 네!

다락방 2011-03-26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에겐 어울리나요?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종일 강을 바라보는 일.
나에겐 어울릴까요?

Arch 2011-03-27 09:12   좋아요 0 | URL
나는 곧 싫증내겠죠. 나는 무엇에든 어떤식으로든 쉽게 싫증내는 사람이니까. 이렇게 말하는데도 여전히 일 하는거 보면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쉽게 싫증내는건 아닌가란 생각도 들고.

nada 2011-04-01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노임팩트 맨의 저자가 허세에 말려든 사연이 무척 궁금해지는데요.
아치님은 도대체 어디서 저런 책들을 발견하시는 거예욧!!
저는 들어본 적도 없는 책이라는.(슬푸다ㅠㅠㅠ)
근데 보니까 제가 좋아하는 번역가 분이 번역하셨네요.
꼭 읽어봐야겠어요.

굿바이 쇼핑은 좀 장황해서 지루했는데, 그 중에 아주 마음에 드는 몇몇 부분이 있었어요.
쇼핑과 굿바이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이미 알뜰한 당신에게는 불필요한 책일지도 몰라요.
:)

Arch 2011-04-01 13:25   좋아요 0 | URL
노임팩트, 그러니까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는 프로젝트를 시작한걸 저자는 허세로 생각하더라구요. 이 책은 도서관에서 발견했어요. 영화는 자막이 없어서 못보고 있었는데 마침 잘 됐다 싶더라구요. 번역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매끄럽고 잘 읽히게 번역된 것만은 분명해요. 옮긴이에 대해서 찾아봤는데 청소년 문학 책을 번역하셨더라구요.

그런데 꽃양배추님은 제가 알뜰한지 어떻게 알아요? ^^

책에서 본 책을 보기도 하고, 신간이 나오면 도서관에 신간이 아직 없으니까 그 작가의 구간을 읽어봐요. 그러다 또 책지도를 그려보고 그래요.

nada 2011-04-01 13:57   좋아요 0 | URL
ㅋㅋ 아닌가요?
우린 재활용을 좋아하잖아요! ^^


Arch 2011-04-01 14:37   좋아요 0 | URL
전 회의가 들어요. 녹차 티백도 많이 버리고, 재활용할 수 없는 것까지 쓰레기 봉투에 버리기 싫어서 재활용 쓰레기로 분리하고.

그렇지만 재활용하는건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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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1-03-18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마리아야. 라는 뜻이에요. ㅋㅋㅋㅋㅋㅋ 아는척 ㅋㅋ

Arch 2011-03-18 11:59   좋아요 0 | URL
나는 마리아란 얘기를 정말 강렬하게 얘기하는 것 같지 않아요? 스페인언가? ^^
 

  
 

 

 

 

 

 

 

 

 

<나는 고백한다, 현대 의학을>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으면서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행히 마태우스님 덕에 이 책도 볼 수 있었다. <나는 고백한다, 현대 의학을>에서 외과의사로서의 고민과 한계를 느꼈다면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한다>에선 시스템과 의사, 치료 외적인 사안들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의료소송과 샤프롱, 의사의 성실성과 의료보험에 대한 꼭지들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갖을 수 있게 됐다.
 
 

얼마 전 <내 인생이다>에서 유의미한 일을 벌인 의사가 나왔다. 우리나라 의사들이 올바른 의학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개설한 http://www.koreahealthlog.com/ 가 그것. 

 ‘질병과 관련한 정보와 판단을 전부 의사에게 위탁하고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거죠....결국은 더디더라도 환자가 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정확한 정보는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더 똑똑해지는 수밖에 없죠.’

 다만 좀 아쉬운건 시의성과 인터넷 연재라는 한계 때문인지 사안마다 폭넓은 분석이 보이지 않는 점이다. 어떤 칼럼에선 의학과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 게재되기도 했다. 그래도 위안을 삼자면, 병가를 낼 정도로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환자가 원인을 알아야한다며 객관식 답 찍듯이 스트레스냐, 감기냐’를 선택하라는 의사나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면 항생제 처방을 안 받으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인터넷에서 보고 하는 소리냐며 항생제가 의학 발전에 이바지한 내용으로 일장연설하는 의사에게 주눅 드는 대신 제대로 알고 항변할 수 있게 됐다는 정도가 아닐까. 물론 내가 의사가 아닌 다음에야 의사만큼 잘 알리는 없지만 ‘흰색 가운의 권위’ 때문에 궁금한 것도 못 묻고, 의심나는 것을 꾹 참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좋겠다.

 
 일요일에는 뒹글대며 DMB를 봤다. ‘출발 비디오 여행’을 시작으로 ‘개그 콘서트’까지 재미있는게 계속 하는거다. 읽어야할 책과 봐달라는 영화가 쌓였는데 오랜만에 보는 텔레비전은 참 나긋나긋해서 다른걸 해볼 생각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새로 선을 보인 ‘나는 가수다’에서 오랜만에 노래가 주는 감동을 -노래만큼 기획이 똑똑했다- 맛본 터라 재미없는 1박2일까지 봐버리는 기염을 토하고 말았다. 개인적인 선호도를 밝히자면 이소라가 분위기를 압도하며 부른 ‘바람이 분다’가 제일 좋았다.  


 오늘은 아침 내내 옥상 청소를 했다. 
 아저씨는 나보다 키가 한 뼘 정도 작았다. 작업장에서 나온 흙과 낙엽을 건축자재 폐기물 옆에 놔도 되냐고 묻자 분리수거 규칙에 대해 알려주셨다. 위압적이지 않았다. 아저씨의 입 주위에 빨간 물이 들어있다. 점심으로 매운탕이나 김치찌개를 드셨나보다. 낙엽이랑 흙을 어떻게 분리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자, 아저씨는 놓고 가도 안 가져갈거란 얘기를 하신다. 그때 한 무리의 아저씨들이 오셨다. 아저씨들은 다정하게 자판기 커피를 드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 중 한 아저씨가 수레에서 흙더미를 내려주며 놓고 가라고, 그래도 된다고 하셨다. 처음에 분리수거 안 된다고 한 아저씨도, 낙엽 있어도 암시랑 않다고 하신 아저씨도 커피를 마신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볕이 따뜻했다. 문득 아저씨들이랑 바람이 잠든 양지에 앉아 달달한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나눠 피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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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3-07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저는 매일 보는 텔레비전이 왜 그리 나긋나긋한지 모르겠습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꼭 보고 싶은 것들이 있는 날은 하루가 행복하기두 하구요.
아아....... 읽을 책이 엄청나게 쌓여있는 그 바로 옆에서 말이죠. (애써 모른척~ ㅡㅡ;;)

달달한 커피, 정말 땡깁니다만, 오늘부터 죽어도 다이어트 해야 해서, 그러나 달달한 커피.. 너무 땡기네요. 흑.

Arch 2011-03-08 10:05   좋아요 0 | URL
책을 안 빌려야겠어요. 부담은 되는데 그렇다고 열심히 읽지도 않고.
예전에 10시 드라마 챙겨보던 기억이 나요. 정말 감질났는데^^

커피랑 프림 안 넣고 먹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아, 그럼 달달한게 아니지.

다락방 2011-03-08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씨들이랑 달달한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나눠 피고 싶은 마음은 나도 마찬가진데요, 아치, 그렇지만 그전에 아저씨들하고 밥도 같이 먹고 싶은 마음도 추가해요. 매운탕이나 김치찌개로 같이 배부르게 먹고 입주변을 발갛게 물들이고 난 뒤에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는거죠. 기똥차죠? ㅎㅎ

Arch 2011-03-08 11:52   좋아요 0 | URL
난 담배도 못피는데 말이죠! 네, 매운거 같이 먹고, 커피 나눠 마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다락방은 좀 아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