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h시 얘기를 하면서 가게와 비교해 편의점은 별로란 얘기를 했었다. 그런데 오늘 당면을 먹으러 편의점에 갔다가 좀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곳엔 CCTV가 4개나 설치되어 있고 주인은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다 일회용품과 편의용품이란 이름의 요란한 물건들이 넘쳐난다. 평일날 편의점엔 음침한 분위기를 띄는 알바생이 곤란하거나 뻘쭘하거나 반갑거나 신나도 항상 비슷한 표정으로 카운터를 지킨다. 수십개의 업무 메뉴얼이 있지만 싹 다 무시하고 인사조차 안 하는 알바생을 보는건 좀 즐겁다. 뭐랄까, 적은 임금과 단순노동을 하는 입장에서 굳이 친절하고 싶지 않다는 소극적인 저항을 한달까. 그냥 이건 말 좋아하는 내 생각일뿐 알바생의 생각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오늘 갔을 때는 알바생들이 교대를 하고 있었다. 전에 한번 본적 있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네시부터 일을 한다. 그 아이는 전에 친구들을 불러놓고 전자담배를 자랑했었다. 나는 그 옆에서 편의점 스파게티를 먹는다고 낑낑대며 저걸 사려면 대체 몇날 며칠 알바를 해야하나란 생각을 했었다. 그 아이는 보기 드문 사명감으로 괜찮다는데도 굳이 스파게티를 전자렌지에 넣어주겠다고 했다. 렌즈에서 플라스틱 용기를 꺼내다 손을 데놓고 얼굴을 찡그렸는데 그 표정이 좀 귀여웠다. 그 아이가 카운터에 있는 사이 당면이 뜨거운 물에서 먹기 좋게 불고 있는 사이 사람들은 편의점을 들락날락했다.

 하늘색 잠옷 바지 엉덩이에 PINK라고 씌인 옷을 입고도 거침없이 아이스크림을 사가는 사람, 팩으로 든 아이스커피를 몇개씩 사가는 사람, 1+1행사 한다고 아이스크림을 잔뜩 챙기는 사람. 그 아인 잔돈을 정리하는 사이 사이 물건을 계산했고 나는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렸다.(메롱) 아이는 계산을 하고 나는 뜨거운 국물을 쭉 들이켰다. 아이는 예전엔 좀 서툴렀지만 이젠 덤벙대지 않고 곧잘 계산을 잘 하고 있었다. 그 아이의 보드라운 낯이 예뻐서 식혜를 하나 사주고 싶었다. 부흥 슈퍼 아저씨에겐 선뜻 건네줄 수 있었던 음료수를 아이에게 주지 못한건 (굉장히) 나이 많은 누나가 갑자기 식혜를 주더라고 친구들한테 소문낼까봐선 아니었다.

 어렸던 내가 기특하다며 달걀과 음료수나 밥을 사주곤 했던 아저씨 아줌마들에게 난 그다지 기특한 애가 아니었다. 잘 모르면서 나이든 사람들의 삶을 지레 짐작했다. 그들이 적적해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일 때 씩씩하게 집에 잘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난 절대로 그런 어른 따위는 되지 않겠다고 자신있게 말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지금 내가 그때 그 사람들의 나이가 되어서야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을 조금쯤 알 것 같아, 그래서 가끔은 사무치게 뭔가를 되돌리고 싶어 끙끙대는데 그게 대체 뭔지, 뭐가 있기는 한건지 알 수 없는 상황도 있다는걸 막연하게 느끼는걸.

 선의를 의심할까봐 두려운게 아니었다. 명랑한 나이의 아이는 그렇게 명랑한채 놔둬야 할 것 같았다. 어느 것 하나 이룬 것도 없고 이룬다기보다는 소거해가는 중이면서 누군가의 꿈을 묻고,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설명하거나 열심히 하라는게 다인 하나마나한 소리를 지껄이며 꼰대의 경계를 위태롭게 넘나드는 요즘 나에게 젊은 사람은 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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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5-19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여기 공감하면 나도 꼰대의 경계인가요? 꼰대인가요ㅋㅋ

Arch 2011-05-20 10:43   좋아요 0 | URL
글쎄요... ^^ 내게 그런 어른이 없어서 아쉬웠단 이유로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어른이 된다는건 다른 문제 같아요.
 

  

 장정일과 ‘시크릿 가든’ 김은숙 추천사에 빨간 표지, 한유주의 번역까지 곁들여졌다. 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든 건 김은숙이 이 책이 스펙타클하며 기존의 작법 책과 다르다고 강조한 부분 때문이었다. 읽은지 얼마 안 돼 정말 괜찮은 책인지는 모르겠다. 작법 책을 읽는 것보다 직접 쓰는게 더 중요하다는 통설만 놓고 봐도 그렇다. 그렇지만 이런 부분은 참 좋다.

재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누구나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당신은 자신의 재능을 확신해야 한다.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지 않다. (이 나이에 뭐가 되고 싶다 이러는게 주책맞다는거 안다.) 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말하는 능력이 없다. 아니, 흥미가 없다. 나는 직접적으로 얘기하는데 익숙하고 분위기나 상황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것보다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글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만약에 본격적으로 글을 쓴다면 이런 책을 내고 싶다.

 서평을 쓰는 것도 고심하는 주제에 패디먼 같은 맘과 정성을 들여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원래 목표는 크게 잡으라고 하지 않았던가. (자기계발서 안 읽는다면서 하는 소리하고는) 의학과 사람 사이의 관계, 문화적인 차이까지. 내가 좋아하는 요소는 다 들어 있다. 그리고 앤 패디먼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몽족의 아이, 리아가 미국에서 치료를 받는 과정을 통해 현대의학과 다른 문화가 만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지만 <리아의 나라>에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인가란 질문만 있는건 아니다. 다른 문화는 신념이나 그 사회의 전통, 민족의 기질과 관련된 문제인데도 상대방 문화의 가치를 처음부터 평가 해버려 서로 소통을 할 수 없는 부분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자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몽족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은 무척 흥미롭다.

<리아의 나라>는 몽족 예찬이나 현대의학의 이면을 파헤치는 것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객관화된 시선을 담보로 한다고 할 때 객관화의 기준조차 때론 모호할 때가 있다. 객관화란 말은 주관적인 주장을 해놓고 그 주장을 방어하려할 때 쓰는 말 같다. <리아의 나라>가 객관적인 전달 대신 이해 가능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수 있었던건 이 책의 저자인 앤 패디먼의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 덕분이었다.

예컨대 이런 부분

몽족은 차를 몰고 친척들을 보러 가야하기 때문에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부정 행위를 해서라도 면허증을 따려고 한다.

  그날 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능력이 다른’이란 말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그것은 진보적인 기자들 사이에 한때 유행하던 표현으로, ‘장애를 가진’이란 말의 대용어였다. 나는 그 말이 완곡하면서 겸손한 체하는 표현 같아 늘 싫었다. 그런데 그날 문득 그 말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전에 나는 온종일 몽족이 윤리적인가 아닌가를 놓고 이리저리 재어보고 있었고, 드디어 늦은 밤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들은 ‘윤리가 다른’ 이들이었던 것이다!

 결론은 얼마나 슬프고 아름다운지. (급 마무리!)

 어떤 글을 쓰고 싶나에서 시작한 페이퍼인데 <리아의 나라> 적극 홍보 글이 되고 말았다. 리뷰를 꼭 쓰고 싶어서 책 귀퉁이를 수십 개는 접어놨는데 정리가 잘 안 된다. 리뷰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예전부터 말했지만 나는 잡글을 쓰고 싶다. 소소한 일상, 일상의 편린, 오늘의 단상. 이런 거창한 것 말고 남들하고 같은걸 봐도 나만 달리 볼 수 있는 것, 남들과 다른 경험을 했다면 경험 자체보다는 그런 부분이 어떻게 다른 경험들과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 쓰고 싶다. 시시껄렁한 글을 계속 쓰고 있지만 계속 이렇게 쓸 것 같지만 우선 꿈은 크게 갖는거다. 자기 계발서는 짭쪼름한 의욕을 심어준다는 면에서 때때로 쓸만하다는걸 이젠 고백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작가에게’ 보내는 ‘개코 원숭이도 될 수 있어’ 부분을 소개한다.  

 악인도 작가가 될 수 있다면, 미친 사람도 작가가 될 수 있고, 개코 원숭이도 작가가 될 수 있으며, 슬러지나 아메바도 작가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도 작가로 남아 있는 것 그것은 기나긴 여정이 될 것이다. (할런 엘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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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5-17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나 재능을 가지고 있을까요? 다들 그렇게 말하지만 재능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요? 아니면 재능이 있는데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걸까요? 재능이란 것에 대해서 저는 참 회의적이에요, 아치님.

앤 패디먼의 [리아의 나라]는 제가 좋아할 만한 책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앤 패디먼 이라고 하니까 조금 읽어보고 싶기도 하고. 흐음.

Arch 2011-05-17 09:53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긴 해요. 그렇지만 저런 말을 들으면 어쩌면 확신이 문제일지 몰라, 막 이렇게 되고. 변덕이 죽 끓듯 그래져요. 알랭 드 보통도 그런 얘기를 했어요. 재능이 없다고 말하는 대신 그만큼 해봤는지 자신에게 물어야한다고. 이게 난 자꾸 안 해서 안 되는거야 이러니까 정말 재능이 없는데도 자신을 희망 고문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리아의 나라>는 다락방이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전 모처럼 책에 빠져들었어요.

pjy 2011-05-20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계발서는 짭쪼름한 의욕을 심어준다는 면에서 때때로 쓸만하다는걸....
리뷰가 멋지다고 꼭 그책이 땡기는건 아닙니다ㅋ 저는 자기 계발서가 아주 가끔 쓸만하다고 느끼는 1人 이라서요^^;

Arch 2011-05-20 10:42   좋아요 0 | URL
리아의 나라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음 좋겠어요. 전 이 책을 제 나름대로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려구요. 올해 출간된 책이 아니라 올해 내가 읽은 책이란 면에서~
 

 

 연휴에 a랑 섬에 놀러가려고 했다. 준비래야 교통편 알아본 게 다였지만 차비가 많이 나오니 컵라면 흡입으로 끼니를 때워야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더랬다. 월요일부터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섬엔 다음에 가기로 했다. 흐리던 하늘에서 비가 내린 건 수요일이었다. 결국 배가 못 뜨면 어쩌나, 비가 와서 기대했던 섬의 정취를 못 느끼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발목을 잡고 말았다. 모처럼 길 위에서 긴 시간을 보내나 했는데 아쉽게 되고 말았다.

 그날 a와 나는 좀 일찍 일어났다. 새벽 수영반인 우리는 평소엔 니가 먼저 일어나라, 내가 먼저 일어나서 내뺀다 어쩌면서 티격태격하곤 했는데 그날은 쉬어서 그랬을까, 잠깐 눈 감고 있었던 것처럼 쉽게 눈이 떠졌다. 누룽지에 남은 반찬을 싹싹 긁어먹고 터미널로 갔다. 전에 h시를 갔을 때처럼 눈에 띄는 곳, 금방 갈 수 있는 곳을 찍었다. 차 안에서 꼬박 한숨을 자고 일어나니 D시였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별로 없었다. 쫄깃한 찰옥수수를 사서 나눠먹으며 푸조 나무가 우거진 강둑을 걸었다.

 

 여름이 되면 평상에 앉아 뒹굴 대면 참 좋겠다. 한차례의 축제가 지나간 끝물, 조악한 시설물과 무리한 공사로 이곳저곳이 파헤쳐져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난 여름에 왔을 때 맑고 시원하게 흐르던 강물은 죽어 있었다. 그냥 놔두면 좋을텐데 왜 이렇게 인간의 손을 타게 하려고 안달을 하는지 모르겠다. 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거나 좋은 산을 아스팔트로 덮으려고 할 때마다 참 속상하다. 자연이 언제부터 인간이 원하는대로 조물딱거릴 수 있는 찰흙 덩어리가 됐던가. 최소한의 간섭만 해도 그 풍요로운 품에서 쉬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올텐데. 경박한 미관 정비는 찾아오는 사람들의 맘 씀씀이까지 형편없게 만드는 것 같다. 

 

 강둑에서 샛길로 난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섰다. 새로 지은 집도 있었지만 몇 개의 빈집이 보였다. 빈집. 아무도 살지 않고 돌보지 않은 집에는 잡풀이 한창 자라고 있었다. 근방에서 항아리를 옮기는 할머니께 이 집에 주인이 있냐고 여쭸다. 시골 할머니들이 으레 그렇듯 있다 없다 대신 다른 얘기를 하실 줄 알았는데 군청에서 다 사들였단 얘기를 해주셨다.

- a야, 이런 집에서 살면 어떨까.
- 아치는 산다고 하겠지만 얼마 안 돼 싫증낼걸.

이렇게 덩쿨이 우거지고, 사철 내내 나무들이 다른 모습을 보여줄텐데 쉬이 싫증을 낼까. 역시 모를 일이다.



 맞은편 마을에 갔더니 국수집이 있었다. ㅇㅇ국수란 이름의 상호를 참 오랜만에 봤다. 파전에 동동주랑 잔치국수를 먹었다. 시장은 최고의 반찬이라 우리는 무척 야무지고 맛있게 먹었다. 자랑하고 싶어서 사진을 올려본다. 마침 지금 딱 배고플 때다!(악랄한 미소, 으흐흐.... 나도 배고프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D시에 간다면 이 국수집을 알려줄 생각도 있다. 물론 D시엔 국수거리가 따로 있어 내가 갔던 곳이 아니더라도 다른 국수집에서 그 가게만의 국수를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가게에서라면 5살짜리 꼬마가 요요를 하며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는 나를 건들면서 왜 a처럼 자기랑 놀지 않냐며 바보 똥개라는 말을 하는걸 들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난 그동안 그 아이의 그 시선과 몸짓이 그리웠다. 그런 사람이라면 한번쯤 심부름도 잘하고 어린이집은 맘 내킬 때만 가는 이 꼬마를 보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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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염장파전과 쌈박국수*^^*
    from 즐겁게~재밌게~美色不同面 半夜佳人 2011-05-12 17:37 
    한가롭고 여유로운 푸르른~풍경과 보고나니 괜히 배고파지는 염장파전과 쌈박국수*^^*아치님, 이따각 퇴근해서 할머니와 국수먹을래요^^; 불행중 다행인지 홈쇼핑에서 지른 다시마국수가 잔뜩 있답니다~~아, 생계가 해결될만한 적당한 일이 풍경좋은, 공기좋은, 시외곽 지역에도 있다면 살아도 좋겠습니다.... 또는 생계가 해결될만한 적당한? 돈만 있어도 살만하겠죠~~지하철이 멀다면 차도 있어야겠습니다^^; 전 자전거는 못!탑니다--;아, 인터넷도 있어줘야하는데요~
 
 
다락방 2011-05-12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점심에 적셔먹는 돈까스로 포식을해서(이거 되게 배부르고 포만감이 오래가요) 전혀 배가 고프지는 않지만, 그래도,

저 파전은 몹시 땡기네요!!!!!
라고 쓰는 순간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어요. 아흑 ㅜㅡ

여행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아치의 여행기라면 읽어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지금 막, 이 페이퍼를 읽으면서 들었어요.

Arch 2011-05-13 09:18   좋아요 0 | URL
적셔먹는 돈까스라니. 지금 막 생각은 안 나지만 다락방은 뭔가 독특한 말들을 잘 만드는거 같아요.
놀라지 마세요. 저렇게 오징어랑 파가 듬뿍 든 파전이 오천원 밖에 안 해요. 이 페이퍼는 '변경'에 대한 얘기가 없어서 좀 그랬는데^^ 다락방이 좋게 생각해주니 좋아요.

무스탕 2011-05-12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심을 멀 머그까... ( ") 생각하다 밥은 없고 라면 끓여 먹기도 귀찮아서 다방커피에 식빵 두 조각 먹고 치웠더니 배고프다요. 그런데 아치님이 이 순간을 잘 노리고 먹거리로 고문을 하고 있다요 ㅠ.ㅠ

근데 군청에서 빈 집을 왜 사들이는건가요?

Arch 2011-05-13 09:20   좋아요 0 | URL
ㅋㅋ 전문용어로 낚는다고 하죠~ 정말 집에서 뭘 해먹으려면, 게다가 혼자 먹을걸 하려면 답이 안 나올때가 많아요. 커피에 식빵 찍어먹는 것도 맛있잖아요!

그러니까요. 원래 할머니들은 그런거 다 얘기해주고 군청 누구도 알고 있고 그러던데...(할머니 편견) 제가 여쭤봤던 할머니는 좀 시큰둥하셨어요. 사람들이 너무 왔다갔다해서 별로였을까.

조선인 2011-05-12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당신이랑 국수를 먹을래요. 마주앉아서 먹고 싶어요. 부비부비

Arch 2011-05-13 09:23   좋아요 0 | URL
마로랑 해람이도 같이 먹어요. 제가 열심히 다녀서 조선인님이 오실 때쯤엔 이곳저곳에 도통한 사람이 되겠어요. 전에 군산에 초대해 놓고, 오신 분들이 더 좋은 곳을 아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으리란 법은 없겠지만. 그냥 맘 편하게 같이하면^^

치니 2011-05-13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이 글 넘 좋아요!

Arch 2011-05-13 16:06   좋아요 0 | URL
^^ 아유, 고마워요! 치니님이 아유하니까 재미있어요.
 

 아침에 먹은 누룽지로는 부족했을까. 조이 듯이 배가 고팠다. 당면 국수랑 삼각 김밥을 먹으러 근처 편의점에 갔다. 라면을 그만 먹어야는데 맨날 컵라면으로 때우니까 요새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건 아닐까, 요새 가슴이 아프던데 라면 때문은 아닐까 등등의 건강 걱정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왜 참치마요네즈가 없을까란 생각도 곁들여서 하고 있는데 왠 입김이 훅하고 귓가에 느껴졌다. 뭔가하고 옆을 봤는데 아침 10시에 취해 있는 분홍 셔츠의 사내가 보였다. 술이 취해서 균형을 못잡나.

 계산을 하려고 돈이랑 멤버십 카드를 내밀었는데 분홍 셔츠는 자기도 멤버십 혜택 없냐며 백화점 카드를 알바생에게 건네준다. 이달의 우수 점원으로 뽑혀 건성으로 일 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하겠다는 소감까지 발표한 알바생은 왜 그 카드가 안 되는지 설명을 해준다. 분홍 셔츠는 그 말을 알아듣고 그랬다기보다는 그냥 좀 더 비틀거리고 싶었는지 계산대를 떠나 국수 물을 받고 있는 나를 툭 치고 지나쳤다. 작작 좀 하지.

 전자렌지에서 삼각김밥을 꺼내 포장지를 벗기려고 하는데 다시 한번 훅, 남자의 입김이 와닿았다. 이건 술이 취해서 몸의 균형을 못잡은거나 실수한게 아니었다.

 지금 뭐하는거에요. 몇번씩이나. 왜 내 근처에서 얼쩡거리는거야.

 나도 깜짝 놀랄만한 크기로 소리를 질렀다. 남자는 입 주위에 질질 흘린 우유를 손등으로 닦아내고선 두리번거리다 이내 나갔다. 마치 내가 유령과 대화하는 미친 여자라도 되는 듯이 나를 지나쳐서. 

 나는 왜 별 것도 아닌 일에 큰소리를 냈을까나 알바생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그 남자가 좀 무안하지 않았을까, 술 먹어서 그런건데 내가 좀 과했나란 생각은 절대로 들지 않았다. 나는 오늘의 작은 승리에 기뻐했다. 나는 오늘 단지 생물학적인 성이 여성이란 이유로 당한 희롱과 폭력적인 시선을 처음으로 거부했다. 내가 원하는게 뭔지, 내가 지금 상대방 때문에 얼마나 불쾌한지 처음으로 대놓고 말했다. 그동안 착하지도 않은 주제에 착한척 아니 방어적이고 굴종적인 태도를 보이고선 얼마나 후회했던가. 후회의 더께가 많이 해소된건 아니지만 수줍게 자신감이 피어났다. 피하지 말고 직접 말하기. 누군가 이 상황을 정리해주거나 '객관적으로' 보고선 중재해주기를 기다리지 않기.

 이런 느낌이 좀 과하다는걸 안다. 하지만 이 나이 먹도록 그런 순간에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이 느낌이 과한 것 만은 아닌 것 같다. 지하철에서 성기를 엉덩이 주변에 대고 문대던 녀석, 데이트 핑계로 옷춤에 손을 집어넣어 가슴을 만지려 했던 놈, 강제로 키스를 하고, 힘을 써서 자신이 남자인지 보여주려고 애를 썼던 사람. 그들 앞에서 욕을 하거나 때려주는 대신 조용히 그 상황을 합리화하면서 아무 소용없는, 다시는 그런 일이 안 생길거라고 나를 위로했던 일은 이제 안녕. 

 모든 장담이 그렇듯 내가 모든 순간에 능수능란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오늘 같은 경우는 텀이 있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고 상대가 별거 아니란 심리적 우위도 있었으니까. 만약 다른 경우라면 어떻게 될지, 또 같은식으로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오늘은 그저 이 날의 기쁨을 남기고 싶어 이렇게 페이퍼를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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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1-05-07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과한 느낌이 아니에요. 저라면 역시 무서워서 슬슬 피하고 나중에 짜증만 냈을 거 같아요. 짝짝짝, 아치님. :)

Arch 2011-05-08 09:21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치니님. 사람이 별로 없어서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붐비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선 엄두도 못냈을거에요. 그렇지만 앞으론 여러번 생각하는 대신 확 질러버리려구요.

다락방 2011-05-08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아치님. 정말 잘했어요. 나 역시 아무런 말도 못했을 거에요. 아치는 정말 용감한 여자에요!!

Arch 2011-05-12 09:16   좋아요 0 | URL
저는 그때만 '용감했던 여자'예요. 한번 해보니까 이제는 덤벼만 봐라, 이렇게 자신만만해졌지만 앞으로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nada 2011-05-08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한 문장, 한 문장이, 절절하게 공감되어요.
아치님이 느꼈을 그 기쁨, 충분히 이해되고 저도 기뻐요.
축하해요!

Arch 2011-05-12 09:17   좋아요 0 | URL
꽃양배추님 고마워요. 좀 뻘쭘하지만.
같이 기뻐하고 축하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에디 2011-05-08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도 치니님처럼 저어어어어어언혀 과하지 않아요. 고! 아치! 고!

Arch 2011-05-12 09:17   좋아요 0 | URL
히~ 에디님 어디로 가라는거에요. 벽 뚫고 막 가? ^^ 고마워요!
 

 

 골목으로 들어서자 슈퍼 하나가 보였다. 솔직한 누구 입에서 아무 말이나 툭툭 뱉어지듯 골목에 있어서 상호가 골목 슈퍼인 곳이다. 골목 슈퍼에서는 대낮부터 술판이 벌어졌다. 아저씨들은 여린 잎의 무 이파리에 집 된장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마신다. 불콰한 낯의 아저씨들은 왠 여자의 출연에 장난기가 발동했다. 옥수수 알갱이가 씹히는 아이스크림을 고르고선 셈을 하려는데 아저씨는 주인에게 학생이니까 싸게 해주라고 한다. 학생 아니라고 했더니 꼭 대학생 같다며 수작을 건다. 그 기세가 썩 나쁘지 않았다. 나도 낮의 열기에 취했다면 아마 자리에 앉아 거하게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며 안주가 단촐하다며 히힉 웃어댔을테니까.


 
 h시에 온 것은 우연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원룸과 유흥주점, 고기 집, 마트뿐이다. 좀 더 색다른걸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원룸과 고기 집, 마트를 벗어난 곳을 가고 싶었다. h시는 버스로 몇 분 안 걸리고 시내버스가 수시로 다니는 곳이다. 내가 제대로 피한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도 괜찮았다. h시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눈에 띄는 프랜차이즈 상호를 보며 결국 뻔한 걸 뻔한 방식으로 피하는 방법은 없는건가란 생각을 몇 분 정도만 하고 목적없이  무작정 걸었다.

 

 h시의 성당과 사격장, 근처에 있는 몇 억짜리 기념탑을 훑어봤다. 대체 이런 큰 건축물을 세워야만 뭔가를 기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답답하다. 근방은 인적이 드물어서 무척 고요했다. 오래 된 나무가 있고, 백구 한 마리가 갸우뚱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나도 고개를 모로 돌려 개를 쳐다보며 멍멍 해봤다.
 살짝 느끼해 보이는 아저씨가 공원 근처에서 바람을 쐬고 있었다. 아저씨한테 가서 h시 시장에 가려면 어떻게 하냐고 묻자, 멀다면서 대체 거기는 왜 가려고 하냐고, 오늘이 장날이냐고 묻는다. 네네, 아무것도 모르고 준비도 안 한 채 무작정 떠난 사람이 뭘 알겠어요 대신 네네를 하는데 아저씨가 말한다.

- 그나저나 바나나 먹고 가요.

 h시의 사람들은 뭔가를 권한다. 화장실을 갔다가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나오는데 경찰 아저씨는 하드를 권했고, 부흥 슈퍼 아저씨는 좀 더 평상에 앉아 있을 것을 권했다.

 언덕에서 내려오자 h시의 읍내가 보였다. 골목 사이사이 오래된 상가와 세월의 잔때가 묻은 돌담이 보였다. 만져봤다. 나는 세련되고 아름다운 것을 부러 찾아서 보고 느끼는 것에 둔하지만 오래되고 낡은 것에는 비상한 관심을 보인다. 물론 그걸 제대로 보느냐는 또 다른 문제지만. 

 한참을 돌아다녔더니 다리가 아파서 쉴 곳을 찾았다. 도시의 쉼터가 카페테리아라면 읍내의 쉴 곳은 누군가 사심 없이 마련해놓은 평상이다. 부흥슈퍼 평상에 앉아 쉬고 있는데 주인 아저씨가 물건을 실어내리는게 보였다.

- 저 여기 앉아도 돼요? (앉아있으면서 질문을 한다.)
- 누가 뭐라 그래~

 h시의 화법은 색다르다. 앉아도 된다, 앉으면 안 된다가 아니라 명확한 의미 전달 대신 실실 웃음 나게 하는 말을 한다. 아저씨가 다시 자전거에 뭔가를 실으시길래 도와주려고 일어섰더니,

- 앉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디

한다. h시의 말에는 오지랖 코러스가 뒤따른다. 지나가는 옆집 가게 아주머니에서 주인 아저씨를 잘 모르는 사람까지 우리 둘 사이의 대화를 거든다. 이 상황을 지켜보지 않은 것은 물론 어떤 말을 했는지도 감이 안 잡힐만한데도 꼭 끼어들어 말에 말을 보탠다. 그게 꼭 상황을 객관화하고 감정을 정리하는 코러스는 아니지만 실실 웃음이 나는건 어쩔 수 없다.

 평상을 떠나는 길에 아저씨께 홍삼음료를 드렸다. 당신이 대접해야하는데 왜 자기가 그걸 받냐고 멀뚱하게 나를 바라보던 부흥 슈퍼 아저씨. 아저씨의 가게는 아저씨의 인생이 고스란히 배어있었다. 어두컴컴한 실내에 빼곡이 들어찬 물건들과 구석에 마련된 방에 붙은 자식, 손주들의 사진. 당신의 지루함을 달랬을 고물 텔레비전과 몇몇 집기류들.

 섬처럼 존재했다가 수익이 나지 않으면 떠나버리는 편의점이 아니다. 내 필요로 하게 된 가게지만 어느새 자신의 삶 한 켠에서 순하게 숨 쉬는 짐승처럼 되어버린 슈퍼. 자기 자신처럼 낡아버려 휘황찬란한 편의점과는 경쟁이 되지 않는 슈퍼.

  장사 안 돼도 단골 때문에 문 열어둔다는 부흥 슈퍼 아저씨. 그 정도의 품이래야 평상 하나 뚝딱 만들어 지친 다리를 쉬게 할 수 있는거겠지.

 부흥슈퍼에서 산 두유는 유통기한이 한참 남아있었는데도 상해 있었다. 그게 아저씨 마음 같아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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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8 0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08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da 2011-05-08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참 좋아요.
어제 읽고 오늘 한 번 더 읽는데도 좋네요.
읽는 내내 슬며시 미소가 지어져요.
상한 두유.. 에구, 어떡해요.ㅠㅠㅠㅠㅠ

Arch 2011-05-12 09:21   좋아요 0 | URL
하루키의 여행법 읽으면서 내가 여행기를 쓴다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어요. 여행기는 아무래도 여행을 하는 사람 안에서 많은 얘기가 나올 수 있어야 좋은 글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전 아직 부족하죠.
꽃양배추님, 좋아해줘서 고마워요.

두유를 먹는 순간 고소한 맛이 입안에 감돌걸 생각했는데 쓰고 탁한 맛이 났어요. 순간적으로 이래서 편의점을 가는거야,란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좀 맘이 안 좋았어요. 그건 제조업자가 잘못 만든건데, 아저씨 잘못이 아닌데.

다락방 2011-05-09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페이퍼를 읽고 아치님은 진짜 나랑 엄청나게 많이 다르구나, 하는걸 깨달았지만, 그건 그거고,
이 페이퍼 좋아요.
:)

이를테면 아치님은,
'h시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눈에 띄는 프랜차이즈 상호를 보며 결국 뻔한 걸 뻔한 방식으로 피하는 방법은 없는건가란 생각을 몇 분 정도만 하고 ' 라고 썼잖아요.
저는 가까운 지방에 결혼식 참석차 갔다가 너무나 낯선 환경에 완전 주눅 들어서, 고작 한시간도 안되는 시간을 그곳에 있었을 뿐인데, 남부터미널에 내려서는 눈에 띄는 프랜차이즈 상호를 보고 안심하고 안도했거든요. 어휴, 왔구나, 하고 말이지요. 밥도 남부터미널 에 도착해서야 먹었어요.

Arch 2011-05-12 09:47   좋아요 0 | URL
꽃양배추님이랑 찌찌뽕^^ 나는 알아요, 다락방은 도시여자사람인걸.

다락방은 도시에서 나고 자랐잖아요. 나는 오래된 동네, 낡은 골목, 논이랑 바다랑 산이 보이는 곳에서 나고 자랐고. 다를 수 밖에 없죠. 저는 어디서나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랜차이즈 상점보다 주인 각각의 개성이 담겨있는 가게가 더 좋아요. 우리집 앞 편의점에선 가족들이 하는지 정해진 틀 안에서 살짝살짝 생활하고 있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아, 도시여자사람 좀 보고싶다^^

다락방 2011-05-12 14:22   좋아요 0 | URL
오늘 출근했군요!!!!!

Arch 2011-05-12 14:30   좋아요 0 | URL
다락방이 이제 들어왔으니, 그럼 남은 한명은 누굴까. 아침부터 딱 한명만 찍혔었는데...
방문자수 많은 다락방은 이 기분 모를거야^^

네, 오늘 출근했어요.

다락방 2011-05-12 16:02   좋아요 0 | URL
왜 모른다는거야!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즐찾 40명되면 벅차서 서재를 운영할 수 없을거야. 그러니 즐찾 40을 찍는 순간 나는 서재를 은퇴하자.

이런 생각 했던 시절이요. 그런데 정신차려보니 어느틈에 55명이 되어있었고, 아아, 나는 이제 너무 커버려서 돌이킬 수 없겠구나, 이 55명을 두고 은퇴를 하는건 너무나 무책임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야 말았어요. 딱 40일때 알아챘어야 했는데!!

알아요, 안다구요!

Arch 2011-05-13 11:54   좋아요 0 | URL
정신을 잃은거군요! ^^

다락방, 당신을 즐찾한 사람들을 위해서 있는 것도 좋지만 다락방이 서재에 있는게 행복하고 좋아서 있어주면 좋겠어요. 물론 지금 그러고 있다는거 나 다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