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가 새로운 가수들의 합류로 비공식적인 2기를 시작됐다. 지난 방송을 보고 그다지 맘에 안 든 편곡을 한 김조한이 7위를 할 것 같았는데 어쩜 그렇게 비공식적 심사 기준이라도 되는 것처럼 소리를 질러댄 순서대로 순위가 나오나 싶었다. 인순이의 무대에서 자꾸 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교차 편집하는 바람에 노래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맺혔지만 노래가 그렇게 좋진 않았다. 관록 있는 가수만이 가질 수 있는 무게가 있고 노래에 맺힌 사연이 있었지만 그런 내용이 곧장 감동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새로 나온 윤민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성대다’란 느낌이 들 정도여서 노래를 듣는 게 피곤했다.

 조관우와 장혜진, 자우림의 무대는 참 좋았다.

 지난번 ‘누구없소’로 내지르지 않고도 가수가 목소리로 얼마나 다른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장혜진과 가성이 갖고 있는 힘을 적절하게 풀어낼 수 있는 조관우의 무대는 텔레비전 화면으로 무대의 느낌을 상상하는 사람에게도 큰 즐거움을 줬다. 애초에 무대에 집중하고 하나의 곡을 음미할 수 있는 정도로 ‘나가수’를 본 입장이지만 이 두 가수의 선전은 무척 신나는 일이다. 

 그리고 자우림. 예전 페이퍼에도 언급했지만 나는 자우림이 좋다. 김윤아가 예뻐서 좋고 락 밴드들이 마크처럼 달고 다니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없어서 좋다. 물론 김윤아의 ‘부러 비주류’를 표방하는 느낌은 좀 그렇지만. 그녀가 여러 가지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고 방방 뛰어다닐 때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나가수에서 자우림이 7위 하는걸 두고 누군가 쓴 글을 보고 뿔이 났다. http://media.daum.net/entertain/showcase/singer/enews/view?newsid=20110825112307257  ‘자신감과 여유를 가져야 한다.’,‘무대 바깥에서의 끝없는 진술들과 속내들이 엮어지고 그것이 무대 위로 집중되어 폭발할 때 힘이 생겨난다’ ‘김윤아가 리액션을 안 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도도하고 고결한 척 하는 인상으로 오인된다.’

 헐~ 맥락없는 글(맥락 없고 뒤죽박죽인걸로 나도 만만치 않지만)도 문제지만 과연 그래서 자우림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가 하는 부분은 납득이 안 간다. 글쓴이에 따르면 분위기 좋게 리액션도 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무대와 다른 가수들에 대해 떠들어야 한다는건데 그건 대체 누구를 위한 립 서비스일까. 가수들이 시청자들이나 미래의 청중평가단에게 아양을 떨어야하는걸까, 아니면 프로그램의 성격상 그래야하는 거니까 군소리 말고 열심히 해야하는 걸까.

 내가 보기에 자우림이 7위를 하는 건 청중들이 원하는 ‘내지르기’ 실력이 없거나 그러고 싶지 않아서 둘 중 하나가 아닐까. 가수들이 인터뷰와 리액션으로 끊임없이 자화자찬에 다른 가수 칭찬을 해대는 통에 -이 사람들 끄떡만 하면 기립이다.-나는 ‘나가수’가 재미없어지려고 하는데 굳이 자우림까지 나서서 그럴 필요도 없을뿐더러 가수가 자신의 무대 외의 것을 끊임없이 얘기하고 자신의 사연을 말해서 무대 위에서 폭발력을 갖는다는 것도 도저히 수긍이 안 간다.

 몇 가지 조언이랍시고 하는 소리엔 ‘나가수’의 부정적인 기능 중 하나인 가수들을 경쟁시키는 것 외에도 그들을 미디어의 포맷에 길들이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결국 청중평가단의 구미에 맞는 ‘내지르기’ 창법과 정말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한-대체 뭘 얼마나 더 열심히 해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우림은 계속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서 자우림을 ‘나가수’에서 오랫동안 보지 못하더라도 나는 지금의 자우림을 응원한다. 편곡을 세게 하고 훌륭한 리액션을 한다고 가수의 색깔을 잃는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왜 한 가지 방법만을 강제하고 의식적으로 염두하게 하는지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물론 그게 순위를 결정하는 사람들의 성향이라고 하더라도.

 정재형의 말처럼 ‘예술가는 착하거나 진지한 사람이 아니라 추하기도 한 일상을 아름다운 것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나가수’는 예술가를 잃고 예능인 내지는 프로그램 포맷형 가수를 얻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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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1. 교육을 받으며 구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였다. 밥을 먹고 식판만 옮기면 되는데 교육 마지막 날에는 부대찌개를 먹는 바람에 밥공기며 반찬 그릇까지 여러 개가 놓여 있어 어떻게 치우나 싶었다. 담당자는 식당에 계신 분이 치운다고 하셨는데 영 께름칙했다. 음식점에서야 모르겠지만 여지껏 밥 먹은 사람들이 식탁을 치워오다가 식판이 아니라고 안 치우겠다는건 좀 그랬다. 좀 그렇고 말면 될 것을 나서서 치우기 시작했다. 일하시는 분이 혼자서 음식 준비에 치우기까지 다 해야하는데 같이 도와서 하면 일찍 끝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신나게 치우고 있는데 그냥 가려던 사람들이 어색하게 돕기 시작했다. ‘나는 이게 좋아서 치우는거에요.’라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돌이켜보니 자발적인 행동이라고 했지만 결국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미지, 혹은 튀려는 수작은 아니었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그곳  담당자에게 돈을 주고 치우는 것까지 맡겼으니 치울 필요가 없다는 사람도 있었다. 같이 하면 일찍 끝나고 좋지 않냐며 계속 치우려고 했더니 나를 잘 아는 선생님이 말하셨다.

 ‘네가 이러는게 사람들을 불편하게 해.’

 장면2. 회사에는 새벽 4시에 나오셔서 12시간 일을 하고 퇴근을 하시는 청소 용역 선생님들이 계신다. 얼마 전 내가 맡은 곳의 청소를 그분들과 같이할 일이 생겼다. ‘치마도 못 입고 구부려서 일만 하게 생겼네’ 라며 하기 전부터 말이 많았던 나. 9시에 출근해서 걸레를 들고 갔는데 벌써 다 청소를 해놓으셨다. 하기도 전에 투정한게 죄송스러워 냉커피를 대접해드렸다. 안에 들어가서 편하게 드시라고 해도 한사코 마다하시던 분들은 내게 당신들 드시려던 슈크림 빵을 주었다.

 두 번째 경우에도 같이 하면 빨리 할 수 있으니 기꺼이 함께 했어야 했다. 하지만 영악한 감각은 그 일은 해도 안 해도 티가 안 난다는걸 잽싸게 알아차렸다. 어떤 곳에서 누군가를 도와줘야 티가 나는지 정말 귀신처럼 잘 아는거다. 결국 위선이었던거다.

 강준만의(그동안 선생님을 붙였더니 안 그럴려고 해도 자꾸 편애하는 맘이 새록새록 생겨나 그냥 이름만 적는다.) 새 책이 나왔다. 관심 있는 분야의 제목을 잘 뽑아내는데다 목차만 슬쩍 훑어봐도 마구 읽어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솜씨는 여전하다. 인물 비평을 확장해 ‘강남 좌파’의 자장 안으로 사람들을 그러모았다. 정치에 대한 얘기인데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재미있고, 동어반복인 느낌이 없지 않지만 여전히 승자독식, 지역차별, 정치에 대한 냉소와 열광의 이면에 대한 그만의 시각이 파닥파닥 살아있다.

 나는 강남좌파가 아니고 될 일도 없지만 내가 떠는 위선을 접하다보니 이런 이중성은 어떻게 사이좋게 지내야할지 고민 된다. 남들의 이목이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도와줌’을 선의인양 포장하는건 정말 아닌 것 같은데. 진정성은 희박하되 위선이라도 떨어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할까.

 나는 그렇다치고 자칭 공인인 정치인들의 이중성은 어떻게 봐야할까. 내가 막연하게 바라는 것들을 강준만은 오랫동안 고민한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진심을 다해 얘기한다. 정당 민주주의가 좋지만 한국식 모델에 맞는걸 고민해야한다, 인물형 정치보다 정책과 정당이 추구하는걸 봐야한다, 검증되지 않은 정치 신인에게 몰빵으로 투표하는건 재고해봐야한다, 탈권위는 당사자가 권위를 내려놓았다고 말함으로써 인정되는게 아니라 사회의 전반적인 시선(대통령 혹은 권력을 가진 사람의 친인척이니까 잘 보여야한다는 인식)이 바뀌어야 가능하다, 민주화 이후에도 독재 정치 시대의 마인드로 핍박받는 정치인 이미지를 지향하면 결국 대중과 괴리될 수 밖에 없다, 총론은 진보지만 각론은 보수일 수 밖에 없는 국민들의 이율배반은 어떻게 봐야할까 등등. 거친 정리지만 결국 그가 말하고 싶은건 ‘봐라, 내가 말한대로 됐지.’가 아니라 ‘왜 자꾸 정치에서 이런 구태를 반복하는지 알아보자. 이런 방법은 어떻겠나’란 현상 분석 내지는 대안 제시와 맞닿아있다.

 그 동안 인물 비평으로 쌓은 만만치 않은 내공과 직설적이지만 화끈함 대신 성실함으로 쓰여진 이 책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놈현 관장사’에서 비롯된 유시민과 한겨레의 촌극은 한심했고 노무현 대통령과 남상국의 자살에 대한 부분은 대략적인 윤곽이 그려지는데도  여전히 진의가 (인터넷에 보니 진영에 따라 견해가 갈렸다.)의심스럽다. 뭐가 옳고 그른지,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다만 막대한 예산을 들여 선거를 치르고 (이런건 사비로 해야한다) 누구도 관심없었던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건다는 둥의 실소를 자아내는 쇼를 벌이고 있는 정치인은 좀 사라졌음 좋겠다는 바람 정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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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8-24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 멋지다. 아치는 똑똑해요.

Arch 2011-08-24 17:55   좋아요 0 | URL
아우, 다락방... 입이 귀에 걸리는데 댓글 달 말이 생각나지 않아요.

nada 2011-08-24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락방님 의견에 전격 동의.
몇 방울의 위선이나 이중성(사실 이런 단어도 과하죠. 그냥 쫌 멋져 보이고 싶은 거?ㅎㅎ)이 스며 들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아치님은 행동했잖아요.
가만히 있지 않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 게 뭐 어때서요.


근데 아치님을 잘 안다는 선생님이라는 분.
어떤 분인지 전혀 모르지만, 저렇게 말씀하시는 건 좀 재수없어요.ㅠㅠㅠㅠ


(오늘 페이퍼 두 개씩이나, 대박이에요!ㅎㅎㅎ)

Arch 2011-08-24 18:02   좋아요 0 | URL
꽃양배추님 저의 많은 단점 중 하나는 늘 이렇게 심각하다는거예요. 좀 괜찮은 사람이고 싶으면 그냥 그렇게 하면 되는데 그건 또 싫은거예요. 그냥 그런 사람하면 되는데.

선생님은... 조직의 생리, 쥐죽은 듯 조용히 있는 법의 이론 달인임에도 실전에선 그렇지 못해 자꾸 저한테 잔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가끔 별로지만 그렇게 해야만 욕 얻어먹지 않는다면 해봐서 나쁠거 없단 생각도 들고. '나'는 없고 '어떻게 해야하는 나'만 있는 것 같아요.

한창 때는 세개나 썼다구요! 헤헤^^
 

   
  

 

 

 

 

 
  처음은 다락방 페이퍼에서 시작했다. 예쁜 다락방은 금요일이라고(금요일이라고 책을 선물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다락방 밖에 없을 것이다. 딸랑딸랑) 책을 방출했는데 마침 ‘위대한 영화’가 눈에 띄었다. 영화보기만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해서 어떤 책인가하고 검색을 해봤다. 마침 바람결님 페이퍼가 보였고 위대한 영화를 읽기 전 ‘영화의 이해’를 읽으면 좋다는 내용을 발견했다. 영화에 대해서 이렇게 읽으면 영화를 좀 더 제대로 알 수 있는건가, 영화평도 잘 쓸 수 있는건가? 갑자기 맥락 없는 의욕이 솟아올랐다. 미친 검색질로 도서관에 책이 있는지 확인해봤는데 다행히 있다. 영화의 이해, 위대한 영화를 일단 빌리고 그 옆에 있는 연세대미디어아트연구소에서 풀어쓴 ‘복수는 나의 것’까지 빌리는 기염을 토했다.

 굳이 여기에 불꽃처럼 대단한 기세, 기염이라고까지 쓴 이유는  읽으려고 빌려놓은 책도 장난 아니게 많기 때문이다.  

 읽느라 끙끙대면서도 이렇게 한자리에 모아놓고보니 왠지 뿌듯하다.





  

  

  
아무튼, 전부터 영화가 궁금했다. 시나리오상의 완결된 이야기 구조 말고 영화만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예컨대 인셉션을 보고서 내가 줄거리가 좀 단순해서 별로였다고 한다면, S는 이 부분 정말 멋있지 않냐, 난 그 영화 스타일과 테크닉이 정말 좋았다란 말을 할 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얼음만 아그작 아그작 씹어먹는 짓은 그만하고 싶었다. 그렇다. 이야기의 완성도를 따질거면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찾아서 읽을 것이지 굳이 영화를 볼 필요가 없지 않은가.
 내가 좋아하는 평론가 김영진은 ‘허삼관 매혈기’에서 시네필, 트뤼포 얘기를 하면서 ‘그는 그 당시 영화로 보여줄 수 있는 스타일을 모두 다 발휘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나도 그 스타일을 좀 알고 싶은 의욕에 어딘가 파르르 떨렸다.  

-평론가 매혈기를 본 a님은 유머가 아니라 정말 쌩라이브로 이런 말을 했다. '평론가 이름이 매혈기야?' a의 백치미 허벌 사랑해욥-
 
    
  ‘영화의 이해’ 첫 장. '영화는 사실주의, 형식주의, 고전주의로 나뉜다'로 시작한다. 내게 어떤 직감이나 괜찮은 것을 알아보는 감식안이 부족하다면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한다. 그렇다면 영화의 이해는 그 발판이 되지 않을까. 아, 갑자기 혜성처럼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의혹의 의욕. 문제는 이런 게 한두번이 아니란 사실.

  
  얼마 전엔 감은빛님 페이퍼를 보고 어, 이런 책도 있나 싶어 부리나케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 그래, 내 안에는 영양소랑 근육 이름을 줄줄 외워서 쓸만한 뇌란걸 보여주고 싶은 허영심이 있었지. 스트레칭 아나토미를 보니 더 많은 근육이랑 뼈 이름도 알고 싶어졌다. 의학 코너를 돌며 두꺼운 생리학 책을 펴들고 근육 이름을 찬찬히 훑어보는데 너무 재미있는거다. 그래, 이 근육은 이렇게 움직이고 뼈는 이렇고 저렇고. 나는 이런걸 알고 싶었던거야. 이랬는데 책이 너무 무거운거다. 이를 어쩐다. 우선 스트레칭 아나토미로 워밍업을 한 다음 자신이 붙었을 때 이 책의 무게를 감당해보자고.
 

 결론은 스트레칭 아나토미의 근육 세밀화가 참 괜찮았는데도 몇 가지 아쉬운 점 ‘같은 말 반복’과 내가 배워왔던 스트레칭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 것이 맘에 걸렸다. 물론 스트레칭 동작은 안다며 건성으로 넘기고 내용도 반복된다며 설렁설렁 봐버려 팔뚝에 촘촘하게 빗살지어진 근육 이름 하나 제대로 외우지 못했다. 역시 이놈의 몹쓸 의욕.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속적으로 의욕을 부려볼 참이다. 하나 걸리기만 해봐라란 몹쓸 장담과 더불어. 이런 의욕쯤 있어야 음식을 영양소와 칼로리로 나눠서 음식을 먹을 때 느낄 수 없었던 음식과 연관된 분위기와 기운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을 만나지 않겠는가. 책이 살짝 두서없는 느낌도 들지만 영양주의의 문제점과 (완전 공감) 무엇을 먹어야할까란 마이클 폴란의 제시는 두말할 나위없이 훌륭하다. 과식하지 말고 채식 위주로 규칙적으로 먹자는 얘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왜 그래야하는지를 이렇게 제대로 설명해주는 책은 만나기 힘들다.
  이런 것. 항산화제와 비타민을 잘 챙겨먹으면 된다는 얘기에 반신반의했는데 막연한 뭔가를 정돈된 언어로 얘기하는 책을 만날 수 있는 것. 몹쓸 의욕은 이렇게 작동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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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1-08-24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에 제가 언급되다니! 영광입니다! ^^
저 책은 보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실제로 동작을 따라해보면서 해당 근육에 자극이 가는지 느껴봐야 해요.
대부분의 동작들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책을 보면서 따라해보니,
예전에 알고 있던 동작이랑 다른 경우도 있더라구요.

저도 몹쓸 의욕이 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요즘 좀 의욕이 없네요.

Arch 2011-08-24 15:15   좋아요 0 | URL
제가 가치 없는 짓을 좀 잘해요. 잘 안 느껴지더라구요. 감은빛님 말대로 몸 만들려면 좀 해야는데 의욕만 앞서니 잘 되지 않더라구요.

계절이 바뀔 때라 그런가봐요. 책읽는 것도 잘 읽히다가 말다가 하니까 곧 의욕이 생기겠죠. 힘내요!

다락방 2011-08-24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저도 마이클 폴란의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준비해두고 있어요. 내가 뭘 먹든 혹은 뭘 먹지않든 뭔가 제대로 알아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물론 가지고만 있지 아직 읽고있지는 않아요. 읽고 싶은 의욕은 충만한데 말입니다.

평론가 이름이 매혈기야, 에서 완전 빵터짐.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저 얼마전에 남동생과 산책하다가 나에겐 왜 백치미가 없을까, 나도 백치미 있고 싶어, 라고 했더니 남동생이 저한테 그랬어요. 누나는 동치미만도 못해..하하하하하하하하하. 썰렁한가 ㅠㅠ

Arch 2011-08-24 15:17   좋아요 0 | URL
첫장을 펴고 그냥 쭉 읽어버려요.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다락방은 똑똑한 여자 사람이니까 금세 다 읽을거예요.

유머는 분위기잖아요. 다락방이랑 동생과의 관계, 그때의 상황에 따라 깔깔깔 웃게 되는 것. 전 아직도 흥부전이 생각나요.

다락방 2011-08-24 15:27   좋아요 0 | URL
흥부전은 바보죠. ㅎㅎㅎㅎㅎ

nada 2011-08-24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몹쓸 의욕, 완전 공감해요.
일단 도서관에서 자르륵 책부터 빌려다놓고 시작하는 건, 어쩜 그렇게 저랑 똑같은지!
(요즘 저는 위키리크스에 빠져가지고 몹쓸 의욕을 불태우고 있어요;;;)

[행복한 밥상]은 안 읽었는데, [잡식 동물의 딜레마] 읽어보셨어요?
완전 좋아하는 책이에요!
육식이 문제가 많다는 건 아는데 도저히 육식의 즐거움을 포기할 순 없다고 말하는 저자가 인간적으로 마음에 들었고,
그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존경스러웠어요.
현대사회에서 섭식의 딜레마를 해결하려면 스스로 농사를 짓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채집과 사냥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도 색달랐고요.

a님, 대박!!!!!!ㅋㅋㅋㅋ


Arch 2011-08-24 15:20   좋아요 0 | URL
정말요? 나만 그러는줄 알았는데. 물론 꽃양배추님은 정말 '잘' 읽으시겠지만, 저는 형편없어요.

'잡식 동물의 딜레마'도 곧 읽어보려구요. 꽃양배추님이 완전 좋대니 갑자기 또 의욕이 막 솟아나서 '그래, 행복한 밥상을 얼른 읽고 빌려봐야지.' 막 이래요. 채집과 사냥이라. 와~ 저도 처음 접해보는 대안이에요. 2차 의욕이 다시금 화르르~

a가 좀 귀여운 구석이 있어요.

pjy 2011-08-24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반짝반짝 백치미이군요ㅋ 저도 가끔? 친구도 가끔^^; 웃으면서 괜찮은데, 같이 일하는 사람이 업무적으로다가 실제로 저런 백치미를 뿜어요 ㅠ.ㅠ

Arch 2011-08-24 15:2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말실수와는 다른, 뭔가 좀 깨는 구석이 있잖아요.

비로그인 2011-08-26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바람결님이 페이퍼에 올려둔 책. 아치님께 좀 뭔가 도움이 될만한 구석을 발견하셨을까요? ㅎ

저는 이런 책을 볼 때마다 영화를 볼 때 스크린에서 한발짝 물러나게 되더라고요. 확실히 텍스트를 대할때와는 조금 다르게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히히. 아치님 오랜만이어요~ 순하디 순한 개님도 저를 반겨주네요 ㅋ

Arch 2011-08-27 08:5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읽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지지부진이에요. 그런 느낌을 배우고 느끼고 싶어서 읽으려고 했는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네, 바람결님 오랜만이에요. 개님? ㅋㅋ
 

 그럭저럭 괜찮은줄 알았다. 나에 대한 말이 왜곡돼서 외부로까지 흘러나간걸 굳이 전해주는 다른 사람만 아니었다면. 그 다른 사람이 조직이란 이런 것이다, 조직이 나를 밀어내면 내가 바뀌어야한다는 열변을 들을때만 해도 괜찮았다. 어차피 이 사람들한테 맘 있는 것도 아니고 의례적인 관계와 뻔한 수작만 부리는 것에 동조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으니까.

 하지만 괜찮지 않았다. 일하기 싫은건 둘째치고 대체 언제부터 밥벌어 먹고 사는 일이 가혹한 육체적인 마모를 겪거나 정신적으로 고도의 인내를 해야하고 훼손을 감당하는 일이 되었는지 짜증나 죽겠는거다. 게다가 조직 어법에 맞지 않은 언행과 존재 자체가 늘상 부인당하고 있다는 느낌은 참기 힘들다. 쪼잔하고 더럽고 치사하고 역겹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아직 이런 모든걸 감당할 정도로 어른이 되지 못했거나 혼자 고고한척 놀이를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고고한척이 아니라 사실 왕따, 아니 은따가 된 것도 모르고. 

 아침에 도시락을 싸다가 a에게 점심 먹는게 즐겁지 않다는 말을 했다. 어디 가나 있는 얌체와 그 얌체가 뭔가를 조금 갖고 있을 때 표변하는 모습이 좀 웃긴달까. 나는 그 웃김을 조소하는 대신 싫은티를 내고 앉았어서 결국 사람들의 오해를 사고만다. 오전에 a가 전화를 걸어 그깟 점심 식사까지 스트레스 받는걸 보니까 속상하단 말을 건넸다. 그때 나도 모르는 에너지 같은 것이, 조직의 일원이면서 독자적인 아치란 사람이 갖고 있는 어떤 말이 생겨났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나 예전에 몇달(와, 정말 오래 울궈먹는다.) 연극을 한적 있잖아. 지금도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면 맘이 편할거 같아. 왜 저럴까, 왜 이래야하지라며 속상해할게 아니라 조직의 일원이 되는 연기를 하는거야. 궁금한걸 묻기보다 직접 알아보고, 답답한건 연기자의 연기 특성이거나 연기를 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어떤 장치같은거라고 생각하는거지. 상사가 말하면 내 생각을 말할게 아니라 '네'라고 대답하는거야. 왜냐하면 조직의 일원이란 역은 고집 세고 문제를 일으키는 타입이 아니거든. 조직의 일원은 안전에 대한 문제나 아주 큰 일 이외에는 'No'란 답을 하면 안 되는거지.' 

 이렇게 써놓고보니 다시 씁쓸해진다. 시스템이 굴러가는걸 나 혼자 바꾸려는 어마어마한 생각이 있거나 투철한 사명감이나 직업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조금 어긋나는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무슨 큰 문제인 것마냥 부풀리는게 좀 힘겨운 것 뿐인데 무슨 연기까지 싶은거다. 이러다 진짜 감정은(진짜 감정은 뭐고?) 뭔지 제대로 알아채지 못할까, 의례적인 사람이 될까 걱정된다.

 들어온지 얼마 안 된 직원이 상사들의 무능함과 자신이 배운 지식과 다르게 돌아가는 시스템이 좀 이상하단 얘기를 한적이 있다. 그때 나는
 
'그래, 너라면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놓을 수 있을거야, 이 조직도 좀 더 효율적인 방식(노동의 유연화 이런거 말고)에 대해서 생각할 때가 된거야. 너는 좀 더 야무지고 똑똑하게 하렴.'

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너도 얼마 못갈걸.'

에서 그치고 말았다. 그 아이는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그나마 개운하다며 밝게 웃었다.  젊고 야무진 이 아가씨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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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8-18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씁쓸하지만 아마도 저처럼 조직에 적응해가는 직장인이 되지 않을까요. 이젠 조직속에 깊게 침투해버린 그런 직장인이요.

Arch 2011-08-19 09:41   좋아요 0 | URL
별게 아닌데. 게다가 다들 잘 하고 있는데 내가 자꾸 엄살 피운단 생각이 없는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뭔가 답답하고 폭폭해요.

2011-08-18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9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리치킹 2011-08-19 0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육체적인 마모를 겪거나 정신적으로 고도의 인내를 해야하고 훼손을 감당하는 일이 되었는지 짜증나 죽겠는거다. 게다가 조직 어법에 맞지 않은 언행과 존재 자체가 늘상 부인당하고 있다는 느낌은 참기 힘들었다. 쪼잔하고 더럽고 치사하고 역겹다.
- 나 역시도 -

Arch 2011-08-19 09:49   좋아요 0 | URL
인용한 구절, 문법이 엉망인 것 같아요. ^^ (하루이틀 일도 아니지만)

리치킹님 반갑습니다.

2011-08-19 0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9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11-08-19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건 몰라도, 아치 님의 이런 고민이 절대 엄살로 느껴지지 않아요. 그러니 그런 걱정은 접어 두시고,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라는 말대로 해야 하는지, 그럭저럭 다른 이유로나마 견딜만 한지, 그것만 생각하시믄 될 거 같아요.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최우선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누구나에게 있다면, 아치 님에게도 그런 게 있을 거고, 그걸 건드리지만 않는다믄 연기하듯, 혹은 무시하듯,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지 않을까요. (흑, 하지만 이런 말 하는 저 역시나, 조직의 일원이 되는 데 그닥 소질이 없어서 결국 포기했다능.)

그래도 a 님이 있어서 든든하네요! ^-^

Arch 2011-08-19 11:59   좋아요 0 | URL
엄살이라고 느낀건 알라딘 사람들이 걱정해주시고 염려하는 것만큼 그렇게 힘든가 싶으면 또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좀 오바한게 아닐까 싶어요.

중요한거라.. 이렇게 버틸만한 중요한거. 그런게 없어요. 밥벌이는 해야겠다는 것 정도. 여태 그거 안 하고 도망쳐다니면서 자기합리화했거든요. 그래놓고 맨날 나는 왜 태어났나, 뭘 하려고 이러나 푸념하고. 밥 벌어먹는게 중요한거라면 중요한걸까요.
죽는 순간 분명 내가 밥벌어먹지 못해서 후회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살아가려면 밥은 벌어먹어야하니까. 그냥 이런 상태예요.

치니님, 저는 치니님이 있어서 든든한걸요.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누군가 추천한 책이거나 관심있는 분야라 따로 메모해 놓았던 책들이다. 특히 이 두권의 책은 정말, 재미있다. 철학이 일상과 어떤 연관이 있고, 철학적으로 사고하는게 어떤건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일상과 철학이라는 범주는 나의 책 연대기로 보자면 알랭 드 보통에서 시작하는데 어렴풋이 감만 잡고 있다가 이유선의 책을 통해 개화했다고나 할까. 아직 그 꽃의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이유선이 제시하는 '철학을 통해 생각하는 법'은(저자는 그저 에세이를 쓴 것이기 때문에 이런 규정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리처드 로티의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데 절대적인 사조나 지향점 없이도 생각의 결을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소시민의 삶을 다룬 부분과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는 다른 소제목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그 둘을 같은 맥락으로 읽어내려가면 두개의 생각을 묘하게 관통하는 정서가 보인다. 결국 소시민으로 살아도 남들에게 지탄받거나 자신의 삶을 변명하지 않아도 괜찮으려면 그런 삶이 가능하도록, 태평하게 사는 것도 가능할 수 있는 삶의 조건들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 어떻게보면 당연한 진리를 까맣게 잊고 어떤걸 선택하도록 강요받은적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이유선이 보여주는 글쓰기의 장점은 생각을 강요하거나 행동에 옮기기를 촉구하지 않는데도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변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이르게 하는 점이며 그러면서도 재미까지 있다는 것이다. 고민하면서 재미까지 느끼기란 알다시피 쉬운 일이 아니다.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는 구조주의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사소한 내용만 서술하거나 저널리스트의 숙고 대신 글쓰는 기계 같은 일본의 전문 분야 저자들의 책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라 저자가 우치다 타츠루라는게 맘에 걸렸지만 이 책은 우려를 단숨에 불식시킬만큼 매혹적이다. 구조주의에 대해서 처음 듣는 사람이라도 푸코나 라캉의 이름은 익히 들어봤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많이 들어본 이름이지만 그들의 책을 읽자니 낯선 용어에서 어려운 문체까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우치다 타츠루는 구조주의의 개념에서 시작해 각각의 학자들의 중심 사상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제시해주고 있다. 방대하거나 논점이 분산돼서 읽다가 쉬이 지치는 철학책 대신 간략하고 읽기 편한 형식으로 말이다. 푸코의 '성의 역사' 부분과 바르트의 어려운 개념들을 이렇게 알기 쉽게 풀어서 써준대다가 구조주의 철학자의 저작을 꺼내서 읽고 싶게 만드는건 이 책의 초초 강점!

 요즘 큰 즐거움이 되고 있는 두권의 책을 2010년 올해의 책 페이퍼로 추천해준 빵가게 재습격님께 감사의 배꼽인사를 드린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19세기 영국의 상황, 오전에 온 사람이든 오후에 온 사람이든 같은 1데나리우스로 합의한 성경의 내용을 보고 이 책을 읽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간디, 톨스토이, 버나드 쇼까지 존경한다는 사상가의 책이라니. 왠지 권위에 호소하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헌데, 도덕 교과서 같은 선언과 좋은 취지를 소개하는데서 그치고만 이 책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19세기 영국이라면 모르겠지만 자본의 속성을 자세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다 자본주의 이후와 대안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는 요즘과는 어울리지 않는달까. 어쩌면 자료를 파고들고 책 자체가 완결성을 갖고 있는걸 좋아하는 내 취향 탓일지도. 적극 추천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 아닌 것도 아니기에 출판사의 책 정보를 붙여놓는다. 

   
  성경의 한 구절로부터 시작한 존 러스킨의 이야기는 사회경제체계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한편 약자의 고통과 상처를 따뜻하게 감싸안는다.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나중에 온 사람’이란 사회경제적 약자의 다른 이름이다. 마지막 남은 일자리라도 붙잡기 위해 해질녘까지 인력 시장을 떠나지 못하는 노동자, 냉혹한 경쟁 속에서 능력으로 인간성마저 심판받아야 하는 고용인들, 그리고 불안한 처지에 놓은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존 러스킨은 오늘 이 순간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물음을 던진다. 사회의 마지막 자리에 서 있는 이들은 어떤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러스킨은 노동자의 노동할 권리와 공평한 보수로써 생존할 권리를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선택받는 것은 유능한 노동자가 당연히 받아야 할 보수’이다. 또한 존 러스킨은 ‘나중에 온 사람들’이 동등하게 배려 받는 ‘조화로운 불평등’을 추구하는 사회가 더 큰 사회적 부(富)를 생산한다고 주장하며,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사회의 불평등과 고용문제들을 돌아보게 한다
 
   

 








식품주식회사는 익히 마이클 폴란과 에릭 슐로저에 의해 얘기되어온 식품산업을 영화화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책이다. 에릭 슐로저의 인터뷰와 식품주식회사를 영화화한 내용까지 읽고나니 다수의 저자 글이 나온다.

 식품산업에 흠집을 내고, 유기농을 주장하고, 근거리 농산물을 생산 소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책에서 보이는 일관된 줄기가 안 보이니 좀 답답하다. 여러 명의 저자가 참여하는 책의 경우 그 모든 내용들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사람의 역할이 중요한데 일종의 짜집기같은 느낌이 드는건 어쩔 수가 없다. 우리의 경우라며 소개한 내용도 좀 부실한 느낌이고. 좀 더 읽어봐야겠지만 절반 정도 읽은 느낌은 이 정도.

 한권의 완벽한 책이 탄생하기 위해선 어떤 과정이 필요한걸까. '저자의 죽음' 이후 '독자의 탄생'을 선언했던 바르트의 말대로라면 책을 읽는 행위는 단순히 앎이나 지적 만족뿐 아니라 의미를 재생산하고 복사해서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는 것까지 이어져야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정도의 품평에 갈증나면서도 두 번 읽어서 새로운 의미를 찾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게으르다. 어쩌면 책을 추천하는건 그 책이 완벽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내가 갖고 있는 성향 문제일 수도 있겠다. 뭔가 좀 어렵고, 몇번은 읽어야만 될 것 같은 책들이래야, 흠집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흠집이 있어도 내가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책들이래야 추천할 수 있는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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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1 0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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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1 1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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