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뼈마디가 노곤노곤하고 늘어져  활력을 찾을 수가 없다. 쉬는 날이면 이불에서 뒹굴뒹굴 굴러다니다 배고프면 기어나와 밥을 먹고 화장실을 드나들고 느즈막히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휘휘 돌아다닌다. 자전거를 타고 나오니 이렇게 좋다라고 말하지만 변변한 산 하나 없는 동네에서 '이렇게 좋을'만한게 있을리는 없다. 물론 이건 혼자였을때나 가능한 이야기. 8시가 넘어가자마자 배고프다는 옥찌들의 집단적인 항의에 꼼짝없이 밥순이의 소임을 했어야 했지만 좀 더 좀 더를 유예하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아침을 챙겨줬다. 아 어쩜 주말의 점심은 이다지 빠르게 다가오는걸까. 다시 점심을 후다닥 먹어치우고 잠깐 쉬는데 배가 고프다. 아이들도 배가 고프다.

 

 도저히 다시 뭔가를 해서 챙겨줄 엄두가 안 나 콩나물국밥을 먹으러 나가자 했다. 날씨가 추웠다. 꽁꽁 싸매고 손을 꼭 잡고선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양파와 달달한 쌈장이 반찬으로 나오는 뜨겁고 진한 콩나물국밥이 나오는 곳으로 갔다. 문 앞은 추울 것 같아 안쪽으로 들어갔더니 좌 조기축구회, 우 산악회가 자리하고 있다. 아저씨들은 왁자지껄하게 떠든다. 밥을 먹으며 본의 아니게 스테레오로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제 나도 나이가 찼으니 나이 든 사내를 아저씨라고 하긴 뭐하지만 그들 면면은 꼭 '아저씨' 같았다. 아저씨의 긍정적인 면이 아니라 아리송하면서 호불호를 모르겠고 혐오감까지는 아니지만 와닿지도 않는 그런저런 성향같은거 말이다.


 산악회쪽에선 '자신들을 홀리는 여자 대처법' 같은 얘기를 한다. 걔중에는 애들이 있으니 말을 가려서 하자는 사람도 있었지만 버젓이 여자에게 사기 당하고 떼인 얘기 끝에 성적인 수근거림을 이어나갔다. 바탕에는 고지식한 합리화가 깔려있고 개그콘서트적인 여성관이 보인다. 남자인 자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으니 돈이라도 써야한다는 식? 축구팀은 이번 경기를 분석하고 이권이 개입되었는지를 따져묻다가 수육이 참 괜찮다며 자기가 또 말을 잘 해서 이렇게 좋은 고기가 나온거라고 거드름을 피운다. 하나같이 못생긴 남자들이다. 테스토스테론이 왕왕 풍겨나오는데 하나도 흥미롭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나 역시 아이들 밥 챙겨주기 싫어 늦은 오후에 국밥집에 나타난 못난 여편네였을 것이다.

 

 얼마 전 맥거핀님 서재에서 정성일씨 트위터에서 옮긴 구절을 봤다.

 

교훈-임권택 감독님이 내게 해주신 말씀. 완전히 망친 장면 때문에 영화를 망치진 않아요. 그 장면을 버리면 되니까요. 하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양보하면 그게 쌓여서 결국 영화를 망치는 거지요.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던가.

 


 주말을 핑계로, 먹고 살아야 한다며 나는 어떤 것들을 양보하고 있을까. 무엇을 해야할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혹은 하고 싶은게 보이지 않는다. 집중을 다해 발끝을 세우지 않는한 이렇다할 즐거움도 없다. 무기력하다며 자꾸 질질 짜고 있다. 이렇게 살다가 나도 어쩔 수 없는 중년이 되어서 콩나물국밥집 한 귀퉁이에서 나를 홀리는 남자들 대처법이나 떠벌이고 다니는건 아닐까. 지금도 어린건 아니니 개연성 없는 일도 아니다. 누군가를 홀리는 나만의 비법이라면 주체적이니 마이너스를 반절만 할 수 있을까.

 

 오늘 본 변영주 감독의 인터뷰가 자꾸 맴돈다.

 

 현장에서 나는 뭘 놓쳤을까를 끊임없이 복기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또 다시 실패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통해 스스로 해냈다고 믿는 것들에 대한 자존감을 잃지 않기, 나에게 또 기회가 오지 않을지라도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를 잊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마흔 여섯이 됐는데도 여전히 삶이 불안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고 여전히 트렁크 하나에 내 인생이 다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그런게 다 나에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면 그 다음 길이 있는 것 같다.

 

 http://10.asiae.co.kr/Articles/new_view.htm?sec=people11&a_id=2012030707564950653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그저 그런 중년이 아니라 미안한 중년이 될 것이다. 정신 차리기는 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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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2-03-18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벌써 미안한 중년으로 진입 신고요~~~

Arch 2012-03-19 08:58   좋아요 0 | URL
머큐리님 멋진데, 괜히 그러신다.

nada 2012-03-19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그콘서트적인 여성관, 하나같이 못생긴 남자들이다...하하하하
아치님 글은 잘 읽어야 돼요.
감자밭에 꼬맹이 감자처럼, 유머가 막 숨어 있어요.

매일매일 조금씩 양보한 게 쌓여서 결국 망친다..
꼭 기억하고 싶은 말이네요.


Arch 2012-03-19 14:55   좋아요 0 | URL
하~ 꼬맹이 감자라니^^ 고마워요. 꽃양배추님.. 진짜 눈 크게 떠야 보이는건데 알아보시다니!

네. 저도 그 말에 많이 찔렸어요.
 

 화이트데이 상술이잖아. 나는 사탕도 안 좋아한다. 아침에 남직원들이 롤리팝이랑 초콜릿을 놔둬서 몇개 까먹은거 말고 화이트데이는 의미가 없었다. 2월 14일 전에 우리는 허례허식을 하지 말자며 a랑 약조한바도 있다. 연애를 하지 않았다면 좀 서운했을지도 모르지만 유별나게 연애티를 내는 사람도 없으니 없던 결핍까지 궁리할 일도 없었다.


 그런데 a가 사탕바구니를 선물했다. 연한 분홍색 장미꽃 하트에 역시 하트사탕 하트 숑숑인 꽃바구니. 나는 기뻐 미쳐 돌아가시는게 아니라 얘가 시들면 어떻게 처리하나란 생각을 했다. 바구니는 어떻게 쓰고 포장지는 어떻게 재활용하지. a는 그런 내 머릿속을 잘 안다. 나도 a가 가끔 한번씩 짠하고 이런 것도 해주고 싶어한다는 것을 아는지라 쑥쓰럽게 기뻐했다.


 책상 위에 놓인 화이트데이 사탕 바구니. c랑 다른 c가 한마디씩 보탠다. 작년엔 안 주더니 이번엔 주네, 확신이 생긴거겠지 등등. 둘의 쿵짝이 우스워서 격년제로 사탕바구니를 준다니까 c가 한마디 한다.


-  여러분들 들으시오.(남직원들은 삽질한다고 착출된지라 한적한 사무실) 맘은 전하되 사탕 바구니는 격년제로 하는 절제된 사랑을 나누시오.


 사람들은 못들은체 하고 c만 해바라기가 돼서 다른 c를 쳐다본다. 


난 영원한 사랑이나 뜨거운 사랑도 아닌 절제된 사랑을 하는 여자사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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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3-14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절제된 사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뭔가 사랑은 절제되지 않는게 좋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탕은 좀 절제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충치도 덜 생킬테고 말이죠. 그쵸? a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그런거 챙기지 말자고 했지만 그래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요. 알 것 같아요, 정말. 아치도 알겠지만 말이죠. 히히히히히. 사탕 바구니라니, 아치 쑥스럽지만 좋겠다.


아까 이메일 확인하려다가 우연히 그런 기사를 봤어요. 화이트데이에 여성이 받기 싫은 선물 1위는? 하는거요. 나는 거침없이 그건 바로 사탕! 이라고 대답했는데 아니나다를까, 화이트데이에 여자들이 가장 받기 싫어하는 선물이 사탕이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난 빵터져가지고. 그런데 왜 여자한테 사탕주는 날이 된걸까요. 바보같은 화이트데이에요. 초콜렛이나 육포를 주는 날로 바꿨으면 좋겠어요.
우리 회사 남자직원들은 하나같이 초콜렛을 주더군요. 나는 아주 크게 만족했어요!! 히히히히히

Arch 2012-03-15 10:26   좋아요 0 | URL
과장님이 사랑은 절재하지 말되 사탕은 절제하라는거였어요. 그게 말처럼 쉬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정말 사탕 싫어요. 이가 썩는다면 초콜릿 때문에 썩었으면 좋겠어요. 꺅꺅~ 아냐, 이 썩는건 싫어.

다락방을 위해 육포데이가 있었음 좋겠어요. 6월4일 정도? ^^

숲노래 2012-03-14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늘이 그런 날이었군요!

저는 오늘
전라남도 고흥 시골로 옮긴 지 반 해가
훌쩍 지났구나 하고 생각했답니다~

Arch 2012-03-15 10:27   좋아요 0 | URL
네, 오늘이 그런 날이었어요. ^^
일년이 다 돼가는 소감은 어떠세요?

된장님, 혹시 전남 귀농학교에 대해서 아시나요?

2012-03-14 1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5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12-03-14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제가 들은 화이트데이 일화 중 가장 멋진 스토리인데요, 절제된 사랑! 멋지다, 아치 님도, a 님도.

Arch 2012-03-15 10:31   좋아요 0 | URL
항상 어디선가 쏙쏙 뽑아낸 듯한 최상의 댓글을 달아주는 치니님~
그렇게 말씀하시니 쑥쓰럽지만 전 괜히 으쓱으쓱해져요. 히히~

비로그인 2012-03-14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좋으시겠어요!! 전 방금 알았어요, 오늘이 화이트데이하는 사실을 ㅎㅎ
제가 연애라는 걸 했다간 아주아주 절제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랑을 할 거 같네요 :)

Arch 2012-03-15 10:32   좋아요 0 | URL
하, 절제의 극치는 또 어떤걸까요.^^ 저도 아침에 초콜릿 받고선 오늘이 그런 날이구나 했죠.
말없는수다쟁이님의 연애는 어떨지 궁금해요
 

 * 집착할수록 기대할수록 욕망은 미친 듯 몸뚱이를 불리기 시작한다.  k팝 스타를 보고 싶은 마음은 쥐알만 했는데 노트북의 다운과 애플 컴퓨터로는 도저히 다운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빵빵 터져주자 오로지 그것 하나만 보길, 그게 단 하나의 소원인양 애면글면한다. 스도쿠 한판을 4분 안에 끝내길, 테트리스로 달이 되고 별 등급이 되길 바란 것처럼 무용하고 모자란 욕심들이 끝도 없이 늘어진다. 

 

 * 예전 페이퍼를 보면서 이건 좀 숨기고 여긴 고치고 이건 아예 없애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깝다. 짧든 길든 잘 쓰든 못쓰든 몇년 전의 기억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페이퍼를 단촐한 서재로 만들 생각으로 없앤다는게. 혹시 아는가. 예전 페이퍼에 반해 매일같이 서재를 들락날락하며 글을 읽고 있을 사람이 있을지.(망상이 심각한 수준) 하긴 요즘처럼 뭘 끄적여도 재미가 없는 글만 쓰는 때에는 그나마 예전 페이퍼-자꾸 예전예전하니 한 오백년 서재질을 한 것 같음-라도 있어야 면목이 설지도. 


* 다시 심리게임 이야기.

  a랑 오만가지 이유로 싸우면서 심리게임이 자꾸 생각나 이건 또 어떤 게임인가 골똘하게 된다. 예컨대 a가 내게 귀염을 떨 때 나 역시 그의 귀여움에 맘과 몸을 한껏 열어젖히면 아무 문제가 없다. 헌데 귀찮거나 갑자기 '나는 누구인가'에 빠져있을 때, 배가 고플 때, 피곤에 쩔어있을 때는 게임이 시작된다. 같이 맞장구 치거나 더한 귀여움으로 상대의 오바를 사전에 막는 방법도 있지만 그마저도 내키지 않는다. 훠이훠이하거나 내 기분을 짧게 말하면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너 잘 걸렸다' 게임을 하려고 폼을 잡기 시작한다.


 왜 너는 내 기분 하나 못맞추냐(그건 아무도 못맞출거다)에서 시작해 왜 자꾸 라면을 먹는지, 쓰레기를 누가 버리는가란 문제까지 후다닥 배열을 정렬해 공격 태세를 갖춘다. 급기야는 애먼 까뮈를 누가 챙기냐, 우리에게 미래가 있냐까지 나오면 슬슬 a도 '보자보자하니 누굴 보자기로보나' 게임을 할 준비를 한다. 이때 내가 심리게임을 잘한다면 한숨을 푹 쉬며 그만하자고 할 텐데 나는 a를 도발하고야말고 결국 서로 상처를 받는데까지 이르고 만다. 


 심리게임의 강점은 내가 의식하지 못하고 하는 말과 행동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분석할 수 있게 하는 점이다. 다만 그런다고 내가 사람들을 더 잘 대하거나 심리게임을 잘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심리게임의 문제는 게임하는 사람들 사이의 진심이 보였을 때, 게임이 아니라 진짜 싫어서 짜증을 내고 맘이 식어서 토를 달기 시작할 때 생긴다. 이럴 때는 내가 무슨 게임을 걸든 상대가 독창적인 게임을 생각해내든 백전백패. 게임의 '게'자도 꺼내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부정과 윽박지름의 심리게임 대신 진심을 부드럽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울 일이다.


 심리게임 책에 대해 얘기할 때면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란 의구심이 든다. 그런데 또 책은 제대로 읽지 않는다. 맨날 화이트 부인과 화이트씨 얘기만 읽는 듯.


*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대화가 통하는 사람. 얌체같지 않고 어느 정도 눈치 있는 사람. 과장 화법을 지양하고 자기 얘기만 늘어놓지 않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랑만 얘기하고 싶다. 이렇게 사람을 가려서 사귀니 친구가 별로 없다. 사적인 관계에서는 물론 공적인 자리에서도 소신을 힘껏 발휘하는 모난 부분 때문에 다른 사람과 껄끄러운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까칠함을 적대시하며 어떻게든 조직의 일원으로 만드려는 이곳의 부드러운 압력 덕분에 나는 차라리 눈을 감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박수를 치면 정력에 좋다는 말을 하며 고등학생들의 박수를 독려하는, 성장기의 청소년은 오로지 생식기능만 있다는 듯 구는 선생이란 작자에게는 (강의 맥락과 상관없이 걸그룹 동영상을 보여주며, 열정이 보이나요, 가슴이 좋나요. 이러고 있다) 좋은 낯으로 못대할 것 같다.


 이런 글을 쓴 건 다 이 책 때문이다.


 감정에 대해 얘기하며 다른 사람의 맘에 안 드는 점을 참을줄 모르는 사람은 공동체에서 배척된다는. 나는 아마 죽을 때까지 이 문제로 고민할 것이다. JJ 말대로 계속 비슷한 문제가 찾아온다.
















* 카펫이며 소파에 오줌과 똥을 싸대는 까뮈(까매서 까미인데 까뮈란 이름이 더 좋길래)에게 며칠 목끈을 매서 일정한 반경에서만 움직이도록 했다. 목끈이 있는데도 식탐을 못이겨 먹는 소리만 들리면 목이 아플 정도로 팽팽하게 당기길래 어제 저녁에는 인터넷 검색을 해가며 잘 매지지 않는 어깨끈으로 바꿔줬다. 오늘 아침, 밥 먹을 준비를 하며 꼼지락대는데 까뮈는 꿈쩍도 않는거다. 식사 준비를 마치고 먹으려는데 말끔한 얼굴로 기지개를 쭉 피며 까뮈가 이불 속에서 나왔다.  like a virgin처럼

 어깨끈은 이불 속에 팽개쳐져 있었다. 어떤 반전보다 놀랍다.

 


 

투표기간 : 2012-02-22~2012-02-23 (현재 투표인원 : 11명)

1.예전 페이퍼가 좋아. 그대로 남겨두길 바람.
18% (2명)

2.아니다, 뭔가 난삽하다. 줄일건 줄이자.
0% (0명)

3.전에 있던 페이퍼는 읽어보지 않음. 이 서재도 오늘 처음임.
9% (1명)

4.리뉴얼할 생각말고 부지런히 하던대로 하삼.
81% (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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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2-22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나 4번에 투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2-02-22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까뮈는 고양이라는 거에요 개라는 거에요?

Arch 2012-02-22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뮈는 개예요. 미니핀이라고 저번에 말했는데~ 다락방 거기다 댓글도 달았으면서

다락방 2012-02-22 16:12   좋아요 0 | URL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웽스북스 2012-02-22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5번. 무조건 아치님 마음가는대로!

Arch 2012-02-23 09:55   좋아요 0 | URL
아! 그 방법이 있었네. ^^
난 시키는대로 하는 것도 좋아해요.

nada 2012-02-22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4번이 압도적이군요. 저도 4번!
like a virgin처럼 나오는 건 도대체 어떤 거예요.ㅋㅋㅋ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턴 이 직유, 맘에 들어요.

본능에 충실한 동물들 보면 너무 귀엽고 쨘해요.
식탐이 많은 까뮈라니. 아 쨘해. >.<


박수를 치면 정력에 좋다라.
강용석스러운 발언인데요..

Arch 2012-02-23 10:02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까뮈는 옷을 입은 건 아니지만 목줄은 차고 있었거든요. 어디에 묶여 있으나 안 묶여있으나. 그런데 몸에 아무것도 안 걸치고 이불 속에서 유유히 걸어나와 기지개를 켜는데 바로 저 말이 생각나더라구요. 익숙하게는 마돈나 노래에서부터 안 어울리게는 아치의 비유로 쓰이는 말이랄까...^^

배가 빵빵해서 더 먹으면 안 될 것 같은데도 그래요. 어제는 벽지를 갉아놓고 아무데나 똥을 싸고 '이래도, 이래도? 나한테 제대로 안 해?' 이러는 것 같아요. 흑...

진짜! 올해의 비유인데요~


순오기 2012-02-23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투표했어요~ 몇번에? 고건 비밀~~ ㅋㅋㅋ

Arch 2012-02-23 10:03   좋아요 0 | URL
3번이요? 헐~ ^^ 3번엔 내가 한 것 같고... 몇번에 하셨을라나.

치니 2012-02-23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1번과 4번에서 망설이다가 4번 했어요. 히히.

Arch 2012-02-23 10:04   좋아요 0 | URL
히히~ 고마워요. 치니님.
서재가 하도 썰렁하고 심심해서 해본건데 무려 10분이나 참여해주셔서 전남 영광이에요.
 

 

 

 

 

  정재승과 진중권의 크로스에는 재미있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정재승의 과학적이고 생물학적인 시선과 진중권의 철학과 예술, 인문을 아우르는 글의 방향을 따라가는건 퍽 즐거운 독서경험을 안겨준다. 그런데, 그런데 나는 이 책의 많은 꼭지들의 담백한 정보들보다 더 기억에 남는게 있다. 그것은 바로 레고 얘기를 하면서 진중권이 아들과의 일화를 얘기한 부분이었다. 혹자는 그 부분에서 진중권의 담백함을 봤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왠지, 어, 진중권도 못쓰는 글이 있네란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못쓴 글은 아니었지만 에세이 전문(잉?) 독자가 보기엔 특별하거나 재미있지 않았다. 사람마다 잘 쓰는 글이 있다는걸 안 순간이었다.


 문제의 핵심을 뽑아내는 탁월한 직관력, 독특한 상상력, 허를 찌르는 유머가 아니더라도 '각자가 잘하는 글쓰기'란게 있었던 것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잘 쓴 글'을 잘 쓸 자신이 없으니 내 나름대로 꾸준히 쓰면 되는 것이었다. 추천수에 연연하고 있지만 그럴 필요도 없으며(필요가 없다고 안 그런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하고 싶은 얘기를 쥐어짤 일도 없었던 것이다. 쓰고 싶을 때 쓰고 쓰기 싫으면 안 쓰면 된다. 새해 들어 즐찾이 초큼 늘었다고 그분들이 심심하지 않게 해야한다는 과도한 의무감 때문에 페이퍼 양으로 승부를 보는 대신 내가 잘 쓸 수 있는 글을 쓰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제 자기 전에 머릿 속에 떠오르는 책들로 페이퍼를 구성해봤고 그 내용이 퍽이나 만족스러워 흐뭇한 기분으로 잠이 들었던 터이다.

 

  헌데 어제 아침에 다락방의 페이퍼를 봤다. 노인과 바다에서 청새치 수놈을 떠올리는건 이 세상에 다락방 하나 밖에 없을 것이다. 그토록 독특한 페이퍼를 부지런하게 이미지를 첨부해서 올린걸 보니 페이퍼 쓸 의욕이 숑 달아나버리는 것이다. 독특함으론 다락방보다 나을 수는 없겠어. 독특함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나 사는 이야기'에 집중할 생각으로 한의원에서 방귀뀌다 간호사에게 혼난 아저씨 얘기를 생각해냈는데 냄새가 나는 것이다. 잘 풀어내면 재미있을만한 이야기인데 언뜻 떠올려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 역시 '산골소녀투쟁기'의 산골소녀가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 것과 내가 쓸 글을 비교해보니 별로였던거다.

 그럼 나는 문장을 가다듬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글을 써보는거야. 헌데 하필이면 요즘 읽고 있는 책이 김혜리의 것이다. 맙소사.(김미려처럼) 대체 이 그림을 보고 이렇게 생각해낼 수 있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문장은 아름답고 글은 유려하게 흐른다. 나는 넘볼 수 없는 경지란게 있는거다. 물론 독자로서 이만한 책을 읽는 수고만으로 접하고 느낄 수 있는건 즐거운 일이지만.


 그럼 내가 재미를 느끼고 즐겁게 쓸 수 있는 글은 뭘까.

 

 흥미를 느끼는 타인들간에 둘러싸여 그들의 말을 적고 미묘하게 흐르는 긴장감을 잡아내고 그들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써내려간 글.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고 잘쓰더라 싶다. '잘 쓴다'는건 순전히 내 기준이지만.

 

 어제 누군가 '별 게 다 비밀인 남자'란 제목의 페이퍼를 쓰라고 부탁을 했지만 나는 그 페이퍼 대신 그 페이퍼를 쓸 수 없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 다음에 만나면 우리 사이에서 빛을 보지 못한 서로의 캐릭터도 발견하고 그동안 쟁여놓은 이야기들도 풀어놓고 싶다. 어렸을 때 모범생도 아닌데 학교와 집만 오갔던 것처럼 지금은 회사와 집만 오가는 재미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지만 잠깐씩 그들과 한눈을 팔았으면 좋겠다. 하이킥에서 말한 것처럼 지리한 일상을 견디게 하는건 짧은 일탈의 순간일 수 있으니까. 난 아직까지 그들과 있어야 좀 더 '나답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아이가 그들 안에선 무례하거나 비사회적인 누군가가 아닌 그냥 '아치'가 되니까. 나 역시 애면글면 사회인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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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2-05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그림을 한참이나 들여다봤어요. 생선을 잡고있는 노인이네요. 아치, 저 그림을 삽입한 노인과바다 페이퍼를 구상했던거에요? 써줘요, 써줘요!! 청새치로 독특한 페이퍼가 됐다면 그림으로 독특한 페이퍼가 되는거잖아요!! 바보. 아치는 바보야!!

그건그렇고,
비밀건은 어떻게, 나름 해결한거에요? 하핫

Arch 2012-02-06 09:18   좋아요 0 | URL
저건 책을 넣으려가다가 안 예뻐서 넣어본거에요. 노인과 바다는 문고본으로 읽은 기억밖에 없어서^^ 저 그림에서 노인과 바다를 떠올리다니, 맙소사!

비밀건은 해결 안 했어요. 뭘 해결해야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나는 '뚫린 입'이 되어버렸어요.

다락방 2012-02-06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말에는 거의 알라딘에 안들어오게 되는데(토요일은 술마시고 일요일은 쉬고) 아치는 토요일 밤에(!!)페이퍼를 남겼네요. 오오~

Arch 2012-02-06 17:39   좋아요 0 | URL
저는 이곳에 고립되어 있어서 술 먹을 일이 없잖아요^^ 저번에 다락방이 주말에도 페이퍼를 읽길래 이것도 읽겠네 했죠. 제가 다락방님 취향은 잘 몰라도 사이클은 조금 알잖아요.
 

 

 

 

 

 

 

 

 

 

 

 

 

 

 

 

 한 생명체가 지닌 삶의 권리가 무엇인가를 따질 때에 가장 중요한 기준은 지능, 이성 또는 감각이 아니라는 것이 싱어의 주장이었다. 지능이 높은 주체가 지능이 떨어지는 생명체의 삶보다 더 가치가 있을까. 생명체를 존중하고 그 생명체가 지닌 삶의 권리를 인정해주어야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 생명체가 스스로 기쁨과 고통을 느끼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싱어는 쾌락은 선이고 고통은 악이라는 벤담의 공리주의를 자신의 논리로 받아들여 모든 생명체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쾌락과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동물은 인간과 원칙적으로 동일한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이 입 안에서 느끼는 단순한 즐거움의 무게는 이를 위해 자신의 육신과 삶을 내놓아야 하는 동물들의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비하면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다.

 

 싱어의 의견들은 첫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확신에 가득 찼지만 수많은 철학자들로부터 그만큼 격렬한 반론 또한 불러일으켰다. 도덕적인 경계가 이성 및 감각을 지닌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에 속한다는 단순한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싱어의 주장처럼 고통을 고통을 느끼는 능력에 있다고 한다면 이때 도덕적인 경계는 어디에 있는걸까. 동물까지는 짐작할 수 있지만 물고기나 조개, 채소의 경우 고통을 느낀다는 것에 뚜렷한 경계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동물의 직접적 체험을 제 3자의 입장에서 언급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감정과 의도를 동물들의 내면적인 삶에 단순하게 투영시켜놓고, 이를 그들의 실제적인 내면세계라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다고 동물을 순수하게 기능적인 메커니즘으로 관찰하는 것도 단순한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우리가 주변 사람들의 내면을 알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을 괴롭힐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음과 마찬가지로 동물들의 감정을 유추하는 방법밖에 없다. 뇌연구자들은 인간을 포함하여 척추동물의 뇌가 반응하는 방식을 연구해본 결과, 척추동물의 뇌에서 발견되는 동일한 양식의 반응 구조는 질적으로 서로 비교될 수 있는 체험과 각각 연관되어 있다는 추정에 도달하였다.

 

 뇌 연구자들은 각각의 척추동물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일치현상과 개연성이 높은 연관성을 일일이 검증해보았고 그 과정에서 인간들이 자신의 감정을 손쉽게 이입할 수 있는 동물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동물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돌고래를 관찰하고 있으면 돌고래의 표정에서 곧바로 미소를 연상할 수 있는 미러 뉴런이 작동을 한다. 하지만 ‘낯선’ 얼굴을 지닌 동물들은 인간의 미러 뉴런에 아무런 활기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뇌연구로 동물들의 내면세계까지는 알아낼 수는 없다.

 

 생명체의 삶의 가치를 평가함에 있어 ‘자의식’을 유일무이한 척도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직관에 반할 때가 발생한다. 예민한 코끼리와 밀렵꾼 중 어떤 자의식을 더 높게 봐야할까. 싱어는 갓난아이나 정신적으로 중증 장애를 겪고 있는 인간의 가치를 평가절하할 의도가 아니라, 동물이 지닌 삶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불러일으킨 반향은 의도와는 달리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우리가 동물을 어떻게 다루는 것이 옳은가를 토론하는 경우에는 이성적인 측면뿐 아니라 본능적인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우리의 도덕적인 감정을 우리가 잔잔한 호수에 돌을 하나 던지는 것에 비유하자면 중심에서 가까운 원에는 가족과 친구들이 그 다음 원에는 알고 지내는 사람들과 애완동물, 그 다음 원에는 일상생활에서 보통 부딪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동심원의 맨 바깥에는 송어나 프라이드치킨 같은 것들이 산재해 있다. 이러한 도덕적인 동심원들은 임의로 확장하거나 순서를 바꿀 수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식용으로 이용되는 동물들이 원의 중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것은 자연적인 법칙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을 배척하고 이들에 대한 관념을 인위적으로 조작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서구 유럽사회에서 이러한 도덕적인 감정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정점에 올라 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도덕은 언제나 문화적인 감수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도덕을 좌우하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추상적인 개념 정의가 아니라 한 사회에 잠재되어 있는 감정의 상태다.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 문제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거나 구역질이 나지 않는 이유는 동물들이 도살될 때에 어떤 고통을 받는지를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러 뉴런은 도살장에서 죽는 송아지를 보면 반응을 하지만 일정한 모양으로 먹음직스럽게 각을 떠서 포장된 송아지 고기 앞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침묵을 지킨다.

 

 얼마만큼 육식을 멀리할 것인가는 나름대로 심사숙고한 결과를 바탕으로 개인이 각자 알아서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곰곰이 따져보면 육식을 반대하는 논리가 육식을 찬성하는 논리보다 더 설득력이 있고 더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는 점은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동물의 비릿한 냄새 때문에 고기를 못 먹다가 철분도 부족한 것 같고 유난을 떨기 싫어서 부러 사먹진 않지만 가끔씩 고기를 먹는다. 식품에 관한 책을 읽다보니 제정신을 갖고 뭔가를 먹는게 참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육식을 하지 않았음 하는 당위의 약발이 떨어져 피터 싱어와 리하르트의 책을 훑어봤다. 내가 싫어하는건 무엇을 먹을건가보다는 음식에 대한 탐욕과 과도한 낭비, 과식쪽이다. 나 역시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않다. 리하르트의 잘 다듬어진 생각을 통해 육식을 줄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이 부분을 요약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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