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읽고 있는 송경동 산문집. 


 시인은 이제껏 내가 풍문으로만 들었던 노동 운동과 꽃잎처럼 스러진 아까운 사람들의 사연을 전한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정제되지 못하고 미안한 맘 역시 많은데 그 맘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죄송스럽다. 책을 읽다 맘이 울컥했던 부분만 옮겨본다.


  절망은 이제 정말 지겹다고, 체념과 낙담도 이젠 싫다는, 그래서 신나게 놀고 오자는 날라리 희망버스를 지키기 위해, 나를 위해, 지금 누군가가 저 남도 끝에서 울부짓으며 '현대판 사제 용병'인 용역깡패들에 맞서 싸우고 있다.

  캠핑 가듯이 즐겁게 가자는 사람들의 마음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가 가진 건 연대의 마음뿐이라고, 힘이 되지 않는 시와 노래와 춤과 그림 뿐이라고, 그거라도 힘이 된다면 함께하자고, 가족들의 손을 잡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연인의 손을 잡고 소풍 가기 전날처럼 마음이 설렌 착하고 순박하기만 한 사람들으르 위해 지금 자신의 절망만으로도 어깨가 무너지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싸우고 있다. 회의를 중단하고 트위터상에 쉬지 않고 올라오는 실시간 글들과 동영상과 사진들을 보며 모두의 눈이 충혈되고 말이 없다. 


 운동을 좀 더 재미있게 하면 안 될까, 식전에 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투쟁을 외칠까, 왜 그 모든 운동의 형태와 맘가짐이 그토록 치열할까. 노동 운동을 얕게나마 지켜본 내 시선이 그러했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한순간에 내가 갖고 있던 생각들을 바꿀 수 있진 않겠지만 앞으로는 쉽게 예단하거나 섣부르게 내 생각을 말하진 않을 것 같다. 물론 노동 운동만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사안은 부차적으로 생각한다는게 아니라 노동운동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걸 염두해두자는 것이다.


  그동안 수차례 의혹이 제기되었던 삼성반도체 공장의 위험을 알리는 책이 출간되었다. 반도체에게 최적의 환경인 클린룸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최적일 수는 없었다. '삼성에서 일하다 직업병을 얻은 이는 138명에 이른다. 하지만 삼성은 이들의 병이 회사와 아무 관계가 없는 개인 질병이라고 주장한다. 근로복지공단 역시 직업병 피해자들의 산업재해 승인을 하지 않고 있다가 지난 4월 10일 처음으로 반도체공장 직업병에 대해 산재 승인을 했다.-알라딘 책소개 중-' 클린룸의 치명적인 위험만큼이나 놀라운건 개인은 물론 국가 기관조차 어찌할 수 없는 한 기업의 막강한 힘일 것이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2055

 삼성측은 언론 관계에서 자신들을 '을'이라고 하지만 매체가 구독료보다 광고수입에 의존하는 현실에선 형식적인 말에 불과하지 않을까. 어느쪽이 진실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관심도 없다. 다만 이 책을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소신있게 '여자 가슴' 발언을 일삼는 것 빼곤 다 좋은 허지웅 기자가 적극적으로 좋아한다고 밝힌 김수박의 만화다. '내가 살던 용산'과 '고래가 그랬어'에서 만화를 그린 김성희씨의 책도 나란히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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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4-28 0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사람들이 조금씩 생각을 하며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하나 하고
깨달으면 좋겠어요.

삼성 문제만이 아니잖아요.
현대이든 에스케이이든 대우이든 어디이든
다 마찬가지일 테지요.

중공업 공장이든 제철소이든 어디이든
언제나 똑같이 벌어지는 일이 되겠지요.

삼성도 삼성이지만,
삼성 말고도 수많은 공장에서는
사람들이 다 망가져요.

모두들 스스로 몸과 마음이 어떻게 되는가를
도무지 깨닫지 않아요...

Arch 2012-04-30 10:5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걱정, 염려 가득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다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건 아닌가란 생각도 들어요. 마찬가지로 지금처럼 지속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죠.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이진 2012-04-29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꿈꾸는 자 잡혀간다> 읽고 계시구나.
저는 신간평가단 하면서 읽었는데 좋으면서도 괜히 읽었구나 했어요.
이 나이에 이런 걸 꼭 알고 느끼고 탄식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Arch 2012-04-30 11:12   좋아요 0 | URL
탄식까지? ^^ 저도 요새 그런 생각을 한적이 있어요.
조카들에게 내가 아이들이 원하는걸 다 해줄 수 없다는걸 어떻게 얘기해야하나, 신자유주의, 워킹푸어에 대해 말하려고 보자니 너무 웃기고 뭉퉁그려 그럴 수가 없다는걸 얘기하는 것도 답답하고. 그렇더라구요.
 

 슈스케 방송을 볼 때 제일 기다린건 울랄라세션 무대였다. 뮤지컬처럼 화려하고 퍼포먼스적인 무대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방송이 끝난 후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은 투개월과 버스커버스커의 노래였다. 서정적인 발라드나 신나는 음악도 좋지만 두 사람의 음색, 그들만의 색깔이 좋았다. 어떤 노래든 자기식으로 해석하지만 그러한 해석이 과하지 않고 적절했으며 제시한 포맷은 독특하고 흥겨웠다. 몇달 동안 투개월의 'the romantic'과 버스커버스커의 '동경소녀'를 자주 들었다.


 버스커버스커의 음반이 나왔다. 나오자마자 연일 음원 차트 휩쓸이를 하고 있다. 세고 강한 가사의 가요와 파워 보컬들의 노래 말고 흥얼대거나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노래가 호응을 얻는 것 같다. 물론 기획사의 물량공세 때문인지 하이에나 같은 언론의 집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연일 버스커버스커의 기사를 접하는게 좋지만은 않다. -대체 누가누가 버스커버스커 좋아하나 대회라도 열렸나- 하지만 누구나 한번쯤 가봤을 공간, 누구나 한번쯤 가져본 설레임, 나른한 오후의 감성, 쉽게 부르는 노래처럼 쉽게 쓴 가사 같은데 들을수록 좋아지는 이 앨범을 싫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화음은 조마조마하고 조금 높은 음이라도 내려하면 혹시나 실수할까 염려되지만 버스커버스커의 음악으로 여는 봄날은 기운차고 신난다. 셋이 친한 것 같진 않은데 묘하게 잘 어울리는 멤버들을 보는 것도 좋고, 범준의 웹툰도 재미있다. 카로스키에 가본 사람, 손!




 찰스 부코스키는 처음이다. 서재에서 다른 분들이 언급할 때 호기심이 생겼지만 소설이 잘 읽히지 않아 미뤄두기만 했다. 그러다 읽었는데, 와, 나는 부코스키가 완전 좋아지고 말았다. (내가 이래서 책 얘기 하기가 싫어. 좋다, 안 좋다라니)


 몇몇 도덕군자들은 이 소설을 쓰레기 같다고, 이래서 사서 안 읽고 훔쳐 읽는거란 근거를 댔는데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새로운 소설 경험을 한 나로선 더더욱. 쓰레기인 이유라도 알 수 있게 하던가. 소설에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마술적인 공간, 기이한 상황이 등장하지 않는다. 작가는 역사 속으로 피하지 않고 미래로 점프를 한 것도 아닌, 동시대를 그리면서 작가의 분신이라 일컬어지는 1인칭 화자인 치나스키의 입을 빌어 말을 한다. 


 그동안 읽어온 소설 속 화자들은 답답했다. 소설 속에서조차 이 사람들은 평균적인 도덕감과 때로는 염려될만큼 고압적인 모습들을 보여줬다. 혹은 바람에 날라갈 정도로 가벼웠다. 최악은 지루하게 자신의 내면을 설명해야만 독자가 납득할거라고 고지식하게 믿는거였다. 우체국의 화자 치나스키는 동물적으로 행동한다. 반노동을 얘기하지만 문장 어디에도 주장이나 설명이 들어있지 않다. 나는 그의 소설을 읽는다. 치나스키를 이해할 수 없지만 이토록 막무가내로 쓰여진 소설이 재미있고 의미있을 수 있다는게 신기하다. 내가 좀 더 글을 잘 쓰는 사람이면 '재미있고 의미있는' 것에 대해 아주 길고 의미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좋은걸 어떻게 풀어내야할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아직 누구를 선택할지, 어떤 당을 지지할지 정하지 않았다. 소중한 한표라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소중하기보다 투표 자체가 기만적이란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녹색당이나 진보신당의 정책과 면면을 들여다보니 오로빌이나 어쩌면 귀농에서만 찾을 것 같았던 적은 노동, 인간적인 삶, 자연에 해 끼치지 않으며 사는 삶도 가능할 것 같은거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정당이고 넘어야할 산이 많지만 막연하게 일자리 창출한다며 신물나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사람들을 속이는 행태보다 열배 백배는 낫다. (둘 다 속이는 거라도 속는 맛이 다르다) 엘리트끼리 서로 콩고물 나눠먹는 정치는 끝내고 이번엔 노동자와 일반 사람들이 각자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고 공생할 수 있는 판을 만들었음 좋겠다. 후지지만 이번 선거에서도 이런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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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7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07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poptrash 2012-04-07 0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코스키! 부코스키!

Arch 2012-04-07 17:54   좋아요 0 | URL
네네, 부코스키! ^^
 

  

 '술꾼의 품격'이 영화 속 술을 설명하는 고품격 안내서라면 '내가 만난 술꾼'은 술, 사람, 그들과 부대끼며 먹어온 술자리에 대한 에세이다. 임범은 줄곧 집요하거나 껄렁하지 않은 시선으로 지인들의 이야기를 썼는데 간혹 불편한 지점들이 있다. 자신이 학창시절을 보낸 공간이나 학연으로 얽힌 사람들과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부분에선 특히 그랬다. 서울대라는 상징적인 공간-저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에서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사람들의 일화를 들려주는건 독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지잡대라고 일컬어지는 어떤 사람이 자신이 만난 술꾼이란 타이틀로 글을 쓴다면 어떨까. 책을 출판하는 것은 물론, 아무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지방대의 누군가와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읽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인물 에세이에서는 저자의 관찰력과 글쓰기 실력만큼이나 '누가'도 중요하니 말이다. 모처럼 나온 술 에세이가 문제라고 말하는게 아니다. 임범이 작정한 듯 학교 얘기만 하는 것도, 자신이 인식하지 못한 특권의식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오히려 그는 시종일관 소탈한 문체로 술꾼 이야기를 했고 담담한 시선으로 일화를 풀어냈다. 그런데도 왠지 이런 기획이 먹힐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알만한 사람들만 아는' 술자리에 끼고 싶다기보다는 자꾸만 그래야했을까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readercolumn/410710.html


 윗 기사는 김의겸의 사설을 비판한 글이다. 비판받은 사설처럼 이 책이 직접적으로 자기성찰이 부족하고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애써서 쌓고 관리해야할 '인맥'을 '친목질' 하나로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는게 불편하달까. 


 

  한의원에 갔다. 몇마디 끝에 약 지어준걸 먹으면 된다고 한다. 침은 안 놔도 되냐니까, 맞을거면 맞으란 식이다. 침을 맞고 접수 창구에 갔더니 약값으로 몇 만원을 내야한단다. 의사한테 왜 이 약을 먹어야하는지, 어떤 성분인지 설명 들은게 전혀 없었다. 결국 건강보험 되는 치료만 받고 나왔다. 그 순간, 왜 나는 대범하게 몇 만원 정도 약값으로 낼 수 없는지에서부터 시작해 왜 의사들은 설명을 해주지 않는지 등등을 생각하다 귀까지 빨개져버렸다.


 서문부터 맘에 든다. '철학자 가다머, 현대의학을 말하다'와 같이 보고 있는데 완전 쑝 간다. 의약분업 이야기만 나오는게 아니라 한국 의사들의 전반적인 비리와 관행에 대해 예리한 칼날을 대고 있다. 설마 이렇게 비합리적이고 '제 얼굴에 침 뱉기'를 할 수 있나 싶은 대한의사협회의 말바꾸기와 국민을 인질로 해서 벌이는 의료수가 인상과 의료파업, 리베이트와 탈세, 치료 오남용까지. 차라리 저자가 너무 비판적이라 글이 센게 아닐까 싶은 부분이 한두군데가 아니었다. 물론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을 수는 없겠지만 반절만 믿는다고 해도 기가 찬다.  


 기가 찬 건 이 책의 리뷰 역시 마찬가지다. 예스보다 알라딘의 리뷰가 좀 더 세고 재미있다. 그렇게 깔거면 제대로 까던가, 인신공격은 김빠진 콜라처럼 맥없고  논리는 허술하다. 도리어 이 책이 화제가 되었다면 비난이든 또다른 고발이든 온갖 얘기들이 풍성하지 않았을까란 아쉬움이 남을 정도다. 



  본의 아니게 두 분야 직업군의 사는 법이나 산다는 것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


  문학사상 주간 권영민이 소설가들에게 창작론을 의뢰했다. 소설가들은 각자의 색깔에 맞는 창작론을 보내왔다. 이 책은  그 글들을 묶은 것이다. 작가간 어떤 유기적인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고 각각 따로 봐도 무리가 없으며 소설 창작론 같은 기획 의도에 맞는 글을 찾으려다간 큰 코 다칠 수 있다.


 엮인 글, 기획된 주제로 묶인 글을 모아서 만든 책은 태생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그건 바로 글쓴이가 간절하게 쓰고 싶어서 쓴 글이 아니란 것. 정말 쓰고 싶어서 쓴 글도 호불호가 갈리는데 주문에 따라 쓰는 글은 얼마나 더하겠는가. 물론 때때로 예기치않게 영리한 기획자의 의도로 꽤 괜찮은 책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완성도나 글의 성격은 물론 기획에 맞는 글인지조차 오리무중. 결국 이름빨로 독자를 낚고 작가들은 원고료를 받고 출판사는 책을 팔아먹을 수 있는 것이다. 너무 거칠게 말하는걸까.


 김경욱의 글을 볼 때까지만 해도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했다. 괜찮잖아! 미시마 유키오와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에 대한 글은 3인칭 관점과 화자가 저자인 관점의 차이를 명료하게 보여주잖아. 식견이나 경험의 잉여가 아닌 해석의 잉여를 통해 소설이 열린다는거지. 왠지 다시 소설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부푼 희망까지 생겨났다. 그런데 계속 덜커덩거린다. 여름과 작별하는 일은 마흔여덟 번도 더 남았다던가, 마음이 시큰했다는 감상이 공감 안 되는 김애란의 글에서부터 조사에서 말문이 막힌다는 김훈-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김훈이 조사의 선택에서 망설이는 것마저 사랑하겠지만 나는 그의 소설이 인상적이지도, 재미있지도 않다. 그럴 때면 어떤 조사를 사용할지는 부차적인 문제가 아닌가.- '소설가가 아닐지라도 어쩌면 모든 사람들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란 얘기를 하기 위해 문을 잠근 남편 때문에 밖에서 밤을 지세운 얘기를 왜 하는지 모르겠는 서하진, 콜라에 정액을 빠트리면 어떨까란 시답잖음식의 자유연상법으로 희롱하듯 글을 쓰는 박민규까지. 아직 책의 반절도 읽지 못했는데 더 읽고 싶은 맘이 안 생긴다.


 헐렁한 창작론에도 관대했는데 왜 이러는걸까. 헐렁한 창작론, 글쓰기 방법론에 관대했던건 그 글이 짚고 있는 부분이 실용적이기도 했지만 괜히 이름값에 기대어 무리를 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애초의 기획의도대로 글을 취합하겠다는 집념마저 없다. 그렇다고 당당하게 책 팔아보려고 이 책을 냈다고 하지도 않는다. 솔직하지 못하다. 결국 이 책을 삐딱하게 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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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2-04-02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셋 다 안 읽은 책인데, 왜 다 아치 님 말씀에 깊은 공감이 가는 걸까요?!

Arch 2012-04-02 16:18   좋아요 0 | URL
^^ 치니님. 무플을 방지해주셔서 고마워요. 꼬옥 (=\ \=)<--안는걸 표현해봄. 역시 아니군
 














 강연회는 별로다. 부가적인 즐거움이래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 뿐. 책으로만 보던 사람의 음성을 듣고 얼굴을 보고 그가 하는 말을 직접 듣는 것 말고 강연회가 책보다 더 지적인 자극을 준다고 볼 수도 없을 것 같다. (정희진 선생님 강의는 직접 듣는다면 숑 반하겠지만) 하지만 한번쯤 엄기호씨의 강연은 들어보고 싶다. 강의를 진행한 내용으로 만든 책에서도 그가 하는 말이 또렷한데 실제로는 어떨까란 궁금증. 만날 기회는 요원하지만 이렇게 가끔씩 인터뷰 특강 형식의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정동 문예아카데미의 팔로우 특강에서 엄기호는 자신이 낸 시험문제를 통해 공부하는 방법과 공부를 경험하는 방식에 대해 얘기한다. 요약하느라 애썼다. 그만큼 어느 문장 하나 버릴게 없는 글이다. 호불호로 따지자면 엄기호, 정혜신, 정희진의 글이 좋았다. 김진혁씨는 그의 저작에서 더 나아간 내용이 없었고 강신주의 '매 맞는 아내가 어느 날 안 맞았더니 우리 남편이 기력이 쇠했나'란 생각을 하더란 부분에선 답답했다.(이것을 여성주의 시각으로만 재단하고 불편하게 본 건 아닐까란 생각만 하고 있는 중. 전체적인 맥락에선 무리가 없지만 깨어있지 않음을 꼭 이런 식으로 비유해야하는지 의문) 조국의 강연은 이슈화된 몇몇 내용만 다뤄 실속이 없었다.



  엄기호는 시험을 볼 때 오픈 북에서 전화찬스까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시험을 볼 수 있게 한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시험이 공부한 것을 테스트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경험할 수 있는 또 다른 시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공부를 압축적으로라도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내가 어떤 개념을 배웠는가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 그 개념들로 나는 이 사례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정말 이 사례를 살아 있는 언어로 배운 것인가를 정말로 점검하면서 쭉정이를 키로 까부르는 시간을 만드는게 그가 정의하는 시험이다. 다음은 그의 시험 문제다.


 가출을 해서 노숙자가 된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친구들에게 돈을 빌렸다가 돈이 떨어지면 또 연락을 해서 돈을 받는 일이 계속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굉장히 의미심장한 변화가 일어난다. 처음에는 만나서 달라고 하다가 다음에는 전화로 달라고 하다가 그다음에는 문자로 계좌번호만 보내면서 돈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이 돈을 빌리러 다니는 아이로부터 우리 시대의 동시대성을 발견하고, 동시대성이 보여 주는 우리 시대의 문화적 특성을 발견하고, 그 문화적 특성 속에서 어떤 조언이 필요한가를 쓰고 그 이유를 밝혀라.


 이 시험문제를 낸 이유는 이 친구를 ‘우리 사회의 병리적인 현상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예외적인 현상으로 볼 것이냐’를 묻기 위해서이다. 이 친구로부터 어떤 문화적 특성 또는 우리 사회가 경향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떤 문화적 특질을 추출해 낸다면 그건 우리 사회의 경향성 문제이지만 이 친구의 개인적인 특성에 의한 것이라면 심리 치료나 정신의학적 치료가 훨씬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하이데거가 얘기한 ‘세계 내 존재’라는 의미의 고유한 특징이 있다. 세계라는 건 인간 바깥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간 안에 있다는 게 하이데거와 아렌트의 주장이다.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관계 속에 있을 때 비로소 세계가 창조된다. 이걸 응용해서 얘기하면 이 친구는 지금 사람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자기가 돈을 달라고 요청하는 친구들 사이에 있지만 이 친구와 다른 사람들의 관계라는 건 오로지 돈과 문자, 즉 보편화되고 디지털화되어 있는 관계인 것이다. 시험문제의 그 친구에게 돈을 입금하면 그 친구가 받는 건 통장에 찍히는 숫자밖에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친구는 엄밀하게 얘기한다면 ‘세계 내 존재’가 아니다.


 들릴 권리, 권리는 관계의 방식이지 나 혼자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권리는 세계가 있을 때만 존재한다. 유령은 권리를 박탈당한 존재이다. 인권은 나의 고통을 사회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사회에서, 내 고통을 드러냈을 때 내가 모욕 받지 않을 수 있는 사회에서 구현할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상처와 고통의 위기와 위험은 결코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문제는 그것을 드러냈을 때 어떻게 대접받는지의 여부이다.


  노숙자가 된 아이의 선배에게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일러줬다고 한다.


 찾아올 때마다 밥은 주겠다. 밥 한 끼라도 얻어먹으려면 사람을 만나야 된다는 것. 그리고 사람을 만나서 배려의 말, 아니 잔소리라도 들어야 된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너의 고통을 이야기할 수 있고 그걸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라고 했다. 유령 상태에서 벗어나기 말이다.



이어 책의 취지에 맞는 공부 자체를 경험하는 것에 대한 내용.


 경험은 보편화, 일반화되는 것에 굉장히 격렬하게 저항하는 걸 말한다. 우리는 더 이상 어떤 매체를 거치지 않고서는 무엇을 향유할 줄 모른다. 여행을 가서 내가 감상을 하고 향유를 하고 너무너무 좋아서 돌아서기 싫은 안타까운 마음에 사진을 찍었을 때 그게 진짜 사진이 된다. 진짜 경험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우연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연을 우리 삶에서 추방하고 있다. 내 삶에 우연이 개입했을 때 흐트러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스케쥴대로 움직이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우리가 주체가 된다는 것, 뭔가를 경험하고 향유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사는 게 불안하다. 불안하면 불안할수록 우리 삶에서 우연이라고 하는 걸 추방하고 싶어 한다. 경험에는 우연이 개방되어 있기에 가장 핵심적인 위험은 바로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경험은 체험이 아니다. 체험은 새로운 걸 알게 되는 과정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확인하는 작업일 뿐이다.

 

 우리의 경험이 우연에 열려 있을 때 우린 극단적으로 경험이 없는 걸 경험한다. 그걸 통해서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건 ‘경험’그 자체다. 아무것도 못 했다는 것에서 경험이라는 게 무엇인가를 경험할 수 있는 것 말이다. 두렵기 때문에 경험이 죽어 버린 시대를 살 수 밖에 없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경험을 했을 때는 추상화가 될 수 없다. 지나가 버리는 것에 격렬히 저항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격렬히 저항해도 그 순간은 지나가 버린다. 그때 우리가 보게 되는 게 바로 죽음이고 결국 영원한건 없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다.


 우연의 순간이, 경험의 때가, 카이로스의 시간이 희박하다. 그런데 이런 순간이 내 삶에 왔을 때, 내가 허투로 보내는 게 아니라 그걸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갈고 다듬을 수밖에 없다. 공부를 하기 위해선 공부 자체를 경험해야한다.  산들바람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 바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의 깨어 있어야 한다.



 














덧붙여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란 책 제목의 의미


- 너희가 말하는 청춘은 도대체 언제 가능한가. 청춘은 도대체 뭔가. 그 조건을 말하지 않으면서 청춘이 아니라고 말하는건 얼마나 권력적이고 폭력적인지 반성하라.


- 왜 꼭 청춘을 물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 우리 사회가 이 모양 이 꼬라지인 건 동시대 모두의 문제. 20대가 투표 안 해서 벌어지는 문제가 절대 아니다. 결국 동시대의 짐을 같이 나누어지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젊은 사람들한테 책임 회피를 하는 것에 불과하다.


 

 엄기호의 새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작처럼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경험하며 그러한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쓴 글이길 바란다. 요즘 읽고 있는 '육아전쟁'은 경험을 언어화하는 측면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이고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는 그야말로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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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2-03-27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박스에 있는 시험문제 얘기는 '우리가 잘못산게 아니었어'에서도 나온는 이야기에요...^^ 신촌 숨책에서 만난 엄기호씨는 수줍으면서 지적으로 보이는 청년 이미지던데... 엄기호를 잘 아는(?) 친구 말로는 굉장히 까불까불(?)하다는...ㅎㅎ

Arch 2012-03-28 09:47   좋아요 0 | URL
그래요? 그럼 '우리가 잘못산게 아니었어'를 읽었다면 뭐야, 엄기호씨 울궈먹은거? 이랬겠네^^ 수줍으면서 지적이다니! 후와~ 그런 타입 참 좋은데~ 까불이, 까불이. 그런 면도 좋은데요. 어쨌든 당분간은 그냥 책으로만 그 사람을 아는게 좋을 것 같아요.

빵가게재습격 2012-03-27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대박! 추천 백방 누르고 싶어요! 언니 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최고!!!!!^^

Arch 2012-03-28 09:48   좋아요 0 | URL
빵가게님, 그럼 백방 눌러주세요.

이 댓글에 깜짝 놀랐지만 뭐가 최고인지 얘기를 해주셔야죠. 그래야 구체적으로 어깨도 으쓱하고 그러죠.

2012-03-27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8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R님 말대로 똑똑하지만 잘난체 하는 대신 똑소리나게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애니 레너드는 그녀의 책에서 부드럽지만 강한 어조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 모든 것은 시스템의 일부로 존재한다. 어떤 것이든 다른 것과 관계된 일부로 파악해야한다. '너무 싼 가격'에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존재한다.

- '성장 자체를 위한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은 진짜 목표들을 너무나 자주 훼손한다.  

- 시민적 자아가 소비자적 자아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내야한다. 

- 물건을 살 때, 이 물건에 필요한 자원을 추출하고 물건을 생산하는데 들어간 모든 노력, 그리고 물건값을 버느라 내가 일해야 하는 시간, 이것들을 다 들일만큼 그 물건이 가치가 있는가, 사지 않고 빌리는건? 빌리고 빌리는건 환경적인 이점뿐 아니라 사회적인 이점도 있으며 일단 재미있고 공동체도 탄탄해진다.

- 가장 유독한 시설들은 유색인종이 사는 곳에 모이고, 그 시설의 운영은 이들에게 부당하게 많은 부담을 지우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며 환경 계획이나 의사결정과정에서는 이들을 배제한다.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뜨끔할만한 대목도 있다.

 

‘너무나 많은 물건’이라는 말이 갖는 부정적인 함의에서 책은 면제된다는 느낌을 갖고 있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임헤지의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임혜지의 이야기가 직관을 바탕으로 한다면 '물건 이야기'는 직접 눈으로 보고 자료를 조사해서 내린 결론을 토대로 한다. 

http://blog.aladin.co.kr/numinose/3336493#Comment_3336493

 

 요즘은 공익 광고에서도 단순히 북극곰 얘기만 하지 않고 우리 이웃, 곧 나의 문제라는 식으로 접근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내 문제'란걸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귀찮고 재미없으니까 모른체하는건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뭔가를 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음료수 대신 맛난 효소를. 물건 이야기하다 급반전이지만 물건 이야기도 하고 싶고 봄이네 살림도 소개하고 싶어 한 페이퍼에 두 이야기를 쓴다. 윤리적인 소비는 없다. 다만 윤리적이고 싶은 소비만 있을 뿐. 윤리적이고 싶다기보다는 사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전라도 닷컴 독자 특집 첫 페이지에 봄이네 살림 얘기가 나오는데, 나는 그 기사 곳곳에 형광펜으로 표시를 해뒀다. 나도나도, 언젠가 마루에 앉아서 빳빳하게 마른 빨래를 개우고 싶어요.) 효소 역시 맛날 것 같아 봄이네 점빵에서 이것저것 주문했다. 배쨈은 벌써 동나고 모과차는 겨울동안 나와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줬다. 옥찌들은 냄새는 좀 그렇지만 도라지차가 맛있다며 '한잔 더'를 외친다. 

 

http://haeumj.tistory.com/90

지리산 닷컴을 통해 알게 된 봄이네 살림. 봄이네 살림 덕분에 알게 된 아정님 블로그. 아정님 블로그 때문에 본 인간극장의 '여기 사는 즐거움'

 


 겉치레 많은 광고나 포장으로 물건을 대신하는 제품 대신 건강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물건을 파는 작은 가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런 물건이라면 물건 이야기에서 나온 고민들을 덜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을 시민적 자아보다 무엇을 사는 게 좋은지만을 가리는 소비자적 자아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몰라서 실천하지 않는게 아니란 것 정도는 알만한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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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2-03-17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마음 놓여요. 제 소비의 모토는 늘, "싼 게 비지떡!" 이거든요. 헤.

Arch 2012-03-19 14:47   좋아요 0 | URL
치니님^^ 저는 이 댓글에 막 호응하고 싶은데 이해가 잘 안 돼요... 라고 댓글을 달려고 했는데
아아, 그 얘기였구나.
어렴풋이, 아아, 그 얘기였어요! 싶어요.

nada 2012-03-19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봄이네 살림 물건 넘 이쁘네요.
윤리적이고 싶은 소비만 있다는 말에 동감해요.
정말 윤리적이려면, 이제는 소비를 안 하는 게 지구를 돕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또, 이쁜 거를 보면 동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란 말입죠.ㅠㅠㅠ
저기 차랑 잼 병만 봐도, 뚜껑에 한지 포장이랑 노끈은 없어도 되는 거잖아요(비닐보다야 훨씬 낫지만).
근데 저렇게 해놓으면 이쁘단 말이죠.
미적 욕구도 어느 정도 충족하고, 윤리적이고 싶은 명분도 챙기려면
한지랑 노끈, 최대한 알뜰하게 재활용하는 수밖에 없겠다 싶어요.
이제 와서 원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고 어차피 씨알도 안 먹힐 테고,
그저 제조사들이 재활용 가능한 포장에라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저는 여기저기 가입하고 그러는 거 귀찮아서 한살림만 이용하는데
한살림도 맘에 안 드는 것들이 많고, 또 점점 거대해지는 것도 좀 불안하고..
봄이네 살림 한번 이용해보고 싶어지네요. :)


Arch 2012-03-19 15:01   좋아요 0 | URL
꽃양배추님이 한 말들 있잖아요. 나도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꼭 내가 한 생각을 꽃양배추님이 대신 써준 것 같아요.
너무 예쁜데, 저 노끈은 어떻게 한담, 저 용기는 계속 쓸 수 있을까. 이런.

최근엔 전라도닷컴을 이용해요. 물건이 많이 없지만 가까운 곳에서 배달을 하니 안심되고 투박한 포장이 맘에 들더라구요. 유기농 업체들이 몸을 불리니 애초에 기획한 의도(어떤 기획인지는 업체마다 다르겠지만)가 사라지는 것 같아요. 기존과 비슷한 체제지만 이름만 유기농인 느낌이랄까. 면대면이어야, 번거롭더라도 그쪽으로 나간다면 농부들 사정도 이해하고 중간에서 장난치는 사람들도 없을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