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 헌트의 <무엇이 역사인가>를 완독했다. 저자는 이 분야의 원로라고 알고 있는데 트럼프 시대를 맞아 역사와 거짓말에 관한 설명으로 시작한 이 개론서는 아쉽게도 저자의 명성에 버금갈 만한 통찰까지는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것 같다. 보통 원로 학자가 말년에 개론서를 쓰면 내용은 두말할 것 없고 몇 가지 일화만 가지고도 충분히 깊은 인상을 줄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기대가 컸던 까닭인지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런 것을 찾기 힘들었다.


그 만만찮은 가격에 비하자면 책의 내용도, 분량도, 심지어 편집도 영 충실하지는 않고 문자 그대로 얄팍했다고나 할까. 쓸데 없이 병기한 영어 단어는 종종 철자가 틀려먹었고,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혼동하는가 하면 6년과 60년을 혼동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13,000원이라는 정가도 알고 보니 1,300원을 잘못 적은 것이었을 수 있겠는데, 지금의 꼬락서니를 보자면 그조차도 너무 비싼 것이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나올 법해 보인다.



[*] 무슨 책이 나와 있나 보니 <인권의 발명> 빼고는 다 갖고 있는 셈인 것 같은데, 실제로 읽은 책은 <문화로 본 새로운 역사>와 <포르노그라피의 발명> 뿐인 것도 같다.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는 예전에 누가 바깥양반 통해서 빌려달라고 청해서 빌려줬던 것도 같은데 돌아왔는지 어쨌는지 모르겠다. 책이 많아서 그런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이제는 있는 책도 없는 줄 알고, 없는 책도 있는 줄 알고, 완전히 뒤죽박죽이다. 아니, <포르노그라피의 발명>이 아니라 <피임의 역사>였나? 아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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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샵을 뒤적뒤적 하다 보니 그 사이에 의외로 체스터튼 책이 여럿 번역되었기에 뭐가 있나 클릭클릭 하다가 북스피어에서 나온 번역서를 아직 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말이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그 시리즈에서도 엘러리 퀸 같은 것은 영 번역이 엉망이다). 마침 알라딘에 중고가 있어서 다른 책 구입할 때 슬그머니 섞어서 구입해 펼쳐 보니, 맨 앞에 "성공과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책의 오류"와 "부의 숭배"라는 에세이가 등장한다. 전자는 "모자 쫓기"와 함께 예전 을유 세계문학전집의 <영미수필선>에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후자는 이번에 처음 읽는 듯하다.


두 가지 에세이 모두 "성공론"이나 "부자 되는 법" 같은 자기계발 서적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성공이라는 것 자체가 기준부터 모호하고, "성공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식의 동어반복에 불과하며, 결국 부와 탐욕을 신비화하며 사람을 속물로 만든다는 것이다. "성공이라는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는 이런 표현을 선호한다면, 성공적이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무엇이 성공적이라는 말은 단순히 무엇이 무엇일 뿐이라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백만장자는 백만장자이기에 성공했고, 당나귀는 당나귀이기에 성공했다. 모든 살아 있는 인간은 살아 있기에 성공했다."(22쪽)


물론 시대가 많이 달라졌으니 체스터튼의 일갈도 지금 와서 고스란히 적용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부와 성공을 노골적으로 바라는 것이 일반화된 세상에서 사라진 가치를 환기시킨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백 년 전에는 근면한 견습공에 대한 이상이 있었다. 남자아이들은 검소하게 살면서 열심히 일하면 모두 시장이 될 수 있다고 배웠다. 이는 거짓이었지만 고결했고, 일말의 도덕적인 진실도 품고 있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절제는 가난한 이가 부유해지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이가 자신을 존중하게 되는 데는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30-31쪽)


사람마다 각자의 상황이 다를 터이니, 어떤 한두 가지 조언을 만사에 적용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체스터튼의 비유를 활용하자면, 높이뛰기 금메달리스트가 줄 수 있는 조언이라고 해야 '힘껏 달리고, 높이 솟구치라'는 정도의 일반론에 그치지 않을까. 그런데도 여기서 더 구체적인 조언을 바라며 땅 짚고 헤엄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심심찮게 보도되는 뉴스에서처럼 각종 투자 사기에 휘말려서 거액을 날리게 되는 터일 것이고 말이다. 체스터튼은 성공에 대한 조언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지만, 어쩌면 조언 자체는 유효하지만 실천이 어렵다고 봐야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체스터튼의 시대와 달리 최근에는 실제로 수십억과 수백억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각종 "성공론"과 "부자 되는 법"을 저술하고 있는 모양인데, (벌써부터 수십 개씩 붙은 서평으로 미루어 보면) 그런 "찐" 부자들의 책도 딱히 새롭거나 특별한 조언을 담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은 아이러니라 하겠다. 물론 진짜 아이러니는 이런 평범한(?) 부자들이 책이며 강연으로 각종 비법을 공개하느라 바쁜 사이, 자수성가로 아예 재벌이 된 누군가는 정부 당국 조사에 불려다니느라 바쁘고, 또 누군가는 무슨 이유에선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했다는 점이겠지만 말이다.






[*] 체스터튼의 책을 사러 들어갔다가 "하와이대저택"이라는 광고 문구가 뜨기에 혹시 최근 화재가 벌어진 그 섬동네의 재건이나 건축에 관한 내용인가 궁금해서 클릭해 보니 의외로 무슨 부자 출신 성공 강사의 책이라고 해서 살짝 김이 빠졌다.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라는 <세이노의 가르침>도 신문 연재분을 살펴보니 조언 자체는 어딘가 옛 어른들 말씀과 별 차이 없는 것 같고, 뭐, 이 사람은 그렇게 살았나보다 정도의 느낌이라서 몇 개 살펴보다 말았는데, 그걸 금과옥조로 여기고 출간 전에 제본까지 해서 돌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니 신기한 일이다.(예전에도 미네르바인가 뭔가가 있었지). 똑같은 말이라도 돈 없는 어른이 하면 꼰대의 라떼질이고 돈 있는 어른이 하면 불변의 진리인가 싶기도 했는데, 사실 누군가가 돈벌이에 성공했다는 것은 그 사람의 특질에서 비롯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즉 한두 마디, 또는 한두 권 설명으로 전수될 만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이야기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똑같은 교과서로 공부했는데 왜 누구는 1등 하고 누구는 꼴등 하느냐는 거다). 문득 예전에 홍대 앞 헌책방에서 누군가가 팔아치운 자기계발서 수백 권을 본 기억이 난다. 재테크를 하겠다면서 성공이며 부에 관한 자기계발서만 잔뜩 사서 읽다가 중도작파하고 팔아치웠다는 이야기를 주인으로부터 들은 다른 손님이 (아마도 항상 과학책만 찾아 다닌다고 해서 헌책방 주인들 사이에서 "과학 아저씨"로 통하던 중년 남성이 아니었나 싶은데) 혀를 차면서 "이 사람이야말로 결국 문자 그대로 '성공에 투자' 한 격이 아닐지" 하기에 그것도 제법 그럴듯한 평가로구나 싶었다. 어쩌면 지금 와서 온갖 "성공론"과 "부의 법칙"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도 비슷한 상황은 아닐까 싶기는 한데... 막상 쓰고 보니 지난 달 카드값도 빵꾸난 나귀님이 할 말은 아닌 것도 같고 좀 그렇다.(클렘페러 박스 때문이야... 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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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정당 이름도 이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쨌거나 그 밥에 그 나물이니 그냥 그렇다고 치자!) 인요한과 이준석 간에 "탈룰라"에 "패드립"까지 오가는 것을 보니 참으로 희한한 구경 다 한다는 느낌이 앞선다. 특히 인요한이란 양반은 비록 본인 입으로는 토종 한국인 드립을 쳤지만, 외모만 놓고 보면 아무래도 이질적인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에는 이준석을 향해서 버르장머리 타령을 하며 꼰대 노릇을 제대로 했으니, 이쯤 되면 확실히 한국 할아버지 인증을 제대로 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여기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네이버 월요 웹툰 "엘프"다. 비무장지대(DMZ) 안에 임진왜란 때부터 시작된 외래인 부족이 숨어 살고 있었다는 황당한 설정을 깔고 있다. 그 부족은 대부분 흔히 게임 광고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엘프"와도 유사한 미남미녀 백인인데 정작 한복을 걸치고 한식을 만들어 먹는 것으로 묘사된다. 부족의 족장 3인 가운데 우두머리에 해당하는 백인 노인은 의관을 정제하고 인의예지를 노상 들먹이며 외지에서 온 주인공을 걸핏하면 구박하는데, 그래서인지 이번 인요한과 이준석의 설전을 지켜보며 어딘가 친숙한 느낌도 들었던 모양이다.



[*] "엘프"의 작가인 "홍작가"는 네이버에서 연재한 전작이 뭔가 좀 어두컴컴한 느낌이어서 무료 연재 당시에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이번 작품은 일단 그림도 단순하고 밝은 느낌이고 유머 감각도 딱 내 취향이라서 (특히 마름모눈)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다. 알라딘에 검색해 보니 이전에 나온 단행본은 그림체가 많이 다르던데 또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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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사전> 1권을 구입하고 나서 그 문제점에 대해서 몇 마디 해 볼까 생각만 하다가 이래저래 바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해서 차일피일 하다 보니 (어차피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뭘!) 어느새 2권도 간행되어 버렸다. 이왕 이야기할 거면 출간 전에 할 걸 그랬나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기는 하는데, 뭐, 기껏 떠들어 보았자 출판사에서 귀담아 듣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니 굳이 시기를 따지고 자시고 할 이유는 없어 보이기도 한다.


여하간 <지옥사전>의 번역은 살짝 의외였다. 그렇잖아도 최근 웹툰이며 웹소설 창작이 늘어나서인지 온갖 트리비아를 모아 놓은 사전들이 많이 나오는 모양인데, 이것 역시 2차 문헌이기는 하지만 최근 양산되는 3차와 4차 문헌보다는 조금 더 원전에 가까운 편이며, 게다가 간행 연대를 따져 보면 이미 그 자체로 고전이라고 할 만하니 말이다.


알라딘 서평을 보니 아마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해서 예약 판매를 했고 이후 일반 서점으로도 유통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출판사 운영자가 저 엉터리 <한국 요괴 도감>의 저자이고 (이 책에 관해서는 곽재식의 유사한 책과 함께 이미 비판한 적이 있다), <지옥사전>에서는 윤문과 교정을 담당했다기에 약간 미심쩍은 생각도 없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보기에 <지옥사전>에서는 세 가지 부족한 점이 눈에 띄었다.


첫째는 일관성 부족이다. 


예를 들어 "클레오파트라" 항목을 보면 Plutarch는 "플루타르코스"라고 그리스어식으로 적은 반면, Mark Anthony는 "마크 안토니"라고 영어식으로 적었는데 당연히 라틴어식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라고 적어야 맞다. 프랑스어 원문은 Marc Antoine이었으니 굳이 영어식 철자를 찾아서 병기하면서도 현재 통용되는 라틴어식 표기를 외면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프랑스어 고유명사에 굳이 영어 고유명사를 일일이 병기한 것을 보면 애초에 영어에서 중역되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최대한 현행 표기법을 존중했어야 한다. 항목 표제어도 마찬가지여서 "드리덴(존)"은 영어식인 "드라이던(존)"이 되어야 맞고, "뒤러(알베레히드)"는 독일어식인 "뒤러(알브레히트)"가 되어야 맞다. 명색이 사전인데 표기법이 제멋대로라면 활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둘째는 식견 부족이다. 


예를 들어 "티아나의 아폴로니오스" 항목에서 "에우세비오 교황"이라고 번역한 인명은 "[교회사가] 에우세비오스"라고 해야 맞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세비우스"라는 영어식 이름으로 유명한 사람을 말한다. 짐작컨대 번역자/교정자가 구글링을 하다가 교회사가(260/265-339) 대신 동명이인 교황(?-310)만 찾아낸 모양이다. 기독교에 대해 약간의 지식만 있었어도 그 이름을 들으면 교황보다 교회사가를 떠올리는 것이 당연한 귀결인데, 사실 이런 책을 번역/교정하려면 고전과 종교에 대한 식견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발행인/교정자의 식견 부족은 저서인 <한국 요괴 도감>에서 여실히 드러난 바 있어서, 유명한 고전의 서명을 틀리는가 하면 내용도 1-3-5-7-9로 앞뒤가 맞지 않게 옮기는 등의 문제가 속출했었다. 그래서 나 역시 어떻게 만들었나 궁금해서 <지옥사전>을 구입하면서도 미심쩍을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짐작컨대 이 발행인/교정자가 "저자"로 나온 다른 책에서도 상황이 비슷하지 않을까.


셋째는 정성 부족이다. 


예를 들어 "예언가" 항목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버질에 대해 쓴 세르비우스의 글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기독교가 자리 잡기 전, 버질은 흑사병이 창궐한 마르세유에서 고급 음식으로 어느 가난한 자의 배를 불리고 온 도시를 걷게 하며 큰 목소리로 저주를 내린 다음 내쫓았다." 그런데 이 대목은 오역이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세르비우스가 베르길리우스의 작품에 붙인 주석의 내용' 속에 '마르세유의 희생양 관습'에 관한 페트로니우스의 기록이 간접 인용되어 있다는 뜻이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번역/윤문을 하다 보니 영 엉뚱한 내용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나귀님은 이런 내용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알기는 뭘 알아!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 되어서 구글링해 보니 딱 뜨더구만! 이처럼 검색 한 번만 하면 해결될 내용을 그냥 어물쩍 하고 넘어가버렸다는 점에서 정성 부족이라고 보는 것이다. 다른 항목에서도 이런 식으로 오역으로 뒤죽박죽된 내용이 드러나는데, 굳이 아르바이트 할 이유는 없으니 일일이 지적하지는 않겠다.


이런 문제가 계속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괴물이나 요괴나 오컬트나 하는 구체적인 주제에 대해서 관심은 있다지만, 고전이나 종교 같은 더 커다란 주제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때문에 불균형이 빚어지는 것이다. 장르의 공식에만 충실하다면 홈스를 몰라도 미스터리를 쓸 수 있고, 톨킨을 몰라도 판타지를 쓸 수 있고, 아시모프를 몰라도 SF를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확성이 생명인 참고도서류, 특히 사전을 만드는 과정에서 배경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은 단점일 수밖에 없다.


무려 권당 2만 2천 원이나 되는 책을, 그것도 크라우드펀딩으로 예약까지 해 가면서 구입한 열혈 장르 독자들이라면 요즘 유행하는 말마따나 "눈탱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 만하지 않을까. 여전히 이놈의 나라에서 장르 독자로 살아가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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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바깥양반이 팔자에도 없었던 유럽 출장을 가게 되었다면서 이것저것 챙기던 물건 중에 빈대 약이 있었다. 무슨 트란실바니아 같은 심심산골로 가는 것도 아닌데 그런 듣도보도 못한 살충제를 챙기는 이유가 뭔지 물어보았더니, 함께 가는 사람들에게 나온 공지사항에 빈대 관련 주의사항이 있더라고 하기에 그것도 참 희한한 일이다 싶었다. 빈대라면 우리나라에서도 6/25 전후로나 흔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사실상 멸종했다고 간주되었고, 나도 실물을 못 본 것은 물론이고 우리 엄마도 실물을 못 보았다고 하던데 (다만 외할머니가 깔끔 떠는 성격이셔서 그랬을 수는 있다. 엄마도 어린 시절에 남의 집 가서 벽에 붙은 빈대 잡은 핏자국을 본 적이 있었다고 하시니까) 최근 몇 개월 사이에 전국 각지에서 재발견되었다니 이것도 희한한 일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빈대의 재등장과 재창궐 자체는 그렇게 생소한 일도 아니다. 이미 2000년대에 미국 여러 대도시의 숙박 시설을 중심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서 난리법석이 났었기 때문이다. <빈대는 어떻게 침대와 세상을 정복했는가>라는 책을 보면, 저자도 해외 여행을 갔다 와서 빈대에 물리는 지독한 경험을 한 이후 조사를 통해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각지에서 빈대의 재등장과 재창궐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이 고약한 해충의 습성과 해악과 연구를 총정리하게 되었다고 하니까. 지금 돌아보자면 시대를 너무 앞서간 까닭에 결국 가장 수요가 폭발할 법한 시기에 절판본이 되어 버린 이 책을 다서 꺼내 보니,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뒤적일 수 있었던 작년 이맘때와 달리 새삼 등이 근질근질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 기분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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