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 4대 문학상이라면 한국인 모두가 알고 있듯이 노벨문학상,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말라파르테상, 이상문학상이다. 그리고 소설가 한강은 이 네 가지 문학상을 석권한 국내 유일의 작가이자, 아직까지는 세계 유일의 작가로 이미 널리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노벨문학상은 노벨을 기념하려는 바이오, 부커상은 부커를 기념하려는 바이며, 말라파르테상은 말라파르테를 기념하려는 바이고, 이상문학상은 이상을 기념하려는 바이니, 결국 해당 인물 각각의 이상에 버금가는 작가가 수상자로 선정되거니 싶다.


그런데 이 가운데 다소 이질적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 하나 있으니, 바로 말라파르테상의 연원인 이탈리아 작가 쿠르초 말라파르테이다. 20세기 전반기에 유럽 각지를 누비며 활동한 이 작가 겸 언론인이 사실 정치 성향으로는 무려 파시스트 겸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분노하여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이어 나가던 사람들이라면 이 뜻밖의 제보에 솔깃할지도 모르겠다. 공산주의자인 것도 고약한데, 심지어 파시스트이기까지 했던 사람을 기념하는 상을 받은 한국 작가라면 그 성향 역시 의심스러울 테니.


실제로 말라파르테는 이탈리아 파시스트 운동을 적극 지지했으며, 무솔리니가 정권을 장악한 로마 진군에도 동행했다. 비록 나중에는 파시스트 정부에게 외면 받아 입장을 선회하게 되었지만, 설상가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이탈리아 공산당에 입당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예명인 '말라파르테'(Malaparte)조차 "나쁜 편"이라는 뜻으로, "좋은 편"이라는 뜻인 나폴레옹의 성 '보나파르트'(Bonaparte)를 뒤집은 것으로서, 저 유명한 군인 출신 황제의 가문이 과거 '말라파르테'에서 '보나파르트'로 성을 바꾸었던 것에 역행한 행보였다.


이처럼 수상쩍고도 위험천만한 인물인 말라파르테의 대표작이 바로 <쿠데타의 기술>인데, 단순히 문헌 자료만 뒤적인 것이 아니라 20세기 초반 유럽 각국에서 일어난 각종 사례를 직간접으로 체험한 현장감이 특징이다. 요즘 식으로 하면 '쿠데타 직관한 썰 푼다'쯤 되려나.


이는 또 다른 대표작 <망가진 세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듯이, 외관상 논픽션에다가 체험과 상상, 또는 사실과 허구를 뒤섞는 말라파르테 특유의 창작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그의 작품 전반에 대해서까지 찬반양론이 나온 것도 그래서이다.


<쿠데타의 기술>은 최초의 근대적 쿠데타로 평가된 1799년 나폴레옹의 정권 장악부터 1917년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1920년 폴란드의 5월 쿠데타, 1920년 독일의 카프 폭동, 1922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로마 진군 같은 실례를 통해서 쿠데타의 실제 전술을 분석한다.


급기야 볼셰비키 혁명의 주역인 트로츠키가 이 책의 내용에 '긁힌' 나머지 망명 중에 어렵사리 얻은 라디오 방송 연설 기회에서 할당된 시간 대부분을 말라파르테의 책 내용을 비난하는 데에 사용했고, '그만 하라'는 저자의 전보에 '너나 그만해'라고 응수하기까지 했다.


말라파르테는 이 책에서 히틀러를 '여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나치를 폄하한 것 때문에 뒤늦게 무솔리니의 눈 밖에 나서 탄압을 받았는데, 오늘날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여성 폄하 발언이야말로 히틀러 본인의 악의적 발언보다 더욱 문제가 될 법하다.(그래서 절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데타의 기술>은 쿠데타를 모의하는 쪽에게는 물론이고, 반대로 쿠데타를 방지하는 쪽에게도 유용한 자료로 간주되어서, 급기야 일부 국가에서는 책을 비판하고 금지하는 데에 앞장섰던 사람의 유품 중에서 발견되기도 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물론 오늘날의 역사학자들이 말라파르테의 저작 전반에서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배치되는 내용을 다수 찾아내고 있으니 그의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할 수는 없겠지만, 역사의 방향을 여러 번 바꾸었던 100년 전의 유럽에서 이 책이 큰 관심을 끌었던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쯤 되면 얼마 전 뜬금없는 비상 계엄 때에도 누군가는 이 책을 참조할 만도 했을 법한데, 사실상의 친위 쿠데타였던 그날의 시도가 결국 수포로 돌아간 것으로 미루어 실제로는 참조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이런 책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국내 유일의 번역본이 이미 절판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보수 정권으로부터 불온 사상 유포자 취급을 받는 소설가에게도 시상한 파시스트 겸 공산주의자 기념상의 유래인 작가이다 보니, 누가 굳이 소개했더라도 애써 외면해 버렸을 법하다.


그렇다면 이번 비상 계엄의 실패 역시 소설가 한강의, 또는 그가 받은 상의 유래인 말라파르테의 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귀님 눈에는 충분히 그럴 만해 보인다. 물론 무지한 사람들은 그 헛소동도 고집불통에 안하무인인 대통령의 오만함이 낳은 실책이라 보는 듯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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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반짜리 일장춘몽에 불과했지만 어쨌거나 전국은 물론이고 세계까지도 놀래킨 비상 계엄 사태가 진정되자, 이제는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는 모양이다. 쉽게 말해 준비도 허술하고, 실행은 더욱 허술했으며, 실질적으로 이득이라곤 되지 않은 그런 짓을 무슨 정신으로 저질렀을까?


정치인과 법조인과 평론가와 교수를 망라한 온갖 사람들이 뉴스에 출연해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면서 아내 사랑부터 판단 착오에 이르기까지 온갖 이유를 거론하기는 하지만, 현재까지의 잠정 결론은 그야말로 불가사의하다고 봐야 할 것 같고, 향후로도 아마 규명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새벽에 국회의 탄핵안 본회의 상정 표결을 지켜보다 생각이 많아져서 이것저것 책을 뒤적이다, 지난번 사과 가격 폭등에 생각이 나서 꺼내 놓았던 레이 황의 중국사 에세이를 펼쳐 보니 당 현종과 양귀비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대통령 마누라가 문제의 시작이었으니 이번도 경국지색인가.


<사기>에는 주나라 유왕이 애첩 포사의 웃는 모습을 보려고 군대를 긴급 소집하는 허위 경보를 수시로 발동했다가 결국 양치기 소년처럼 외면당해 나라가 망했다고 나온다. 비상 계엄 조치도 번번이 딴지 거는 야당을 향한 경고 차원이었다는 대통령의 변명을 듣고 보니 비슷한 것도 같다. 


하지만 뉴스 보도를 접하다 보니 살짝 의외의 곳에서 이번 사건의 이유가 아닐까 싶은 단서를 접하게 되었다. 바로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예정된 노벨상 시상식이다. 현지에서는 벌써부터 각종 행사가 시작된 모양이고,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역시 어제 시상식 참석차 출국한 듯하다.


이상하게도 이 작가는 수상 발표 이후 언론 접촉마저 회피하며 줄곧 침묵을 지켜 왔는데, 그런 까닭에 이번 시상식 참석을 계기로 어떤 입장을 밝히게 될지에 대해서 전세계가 주목하는 상태이다. 노벨상 시상식 일정에는 수상자의 소감 발표와 강연 행사도 있으니 뭔가 말을 하긴 할 것이다.


외국 언론으로선 도대체 한강이 왜 국내에서 논란이 되는지도 궁금해 할 법하다. 수상 발표 직후 주한 스웨덴 대사관 앞에 시위대가 모여 '한강 노벨문학상 시상 철회'를 요구하는 일까지도 벌어졌는데, 한국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라는 기록을 세운 작가에게는 부당한 대우처럼 보이니까.


문제는 한강이 평소처럼 침묵을 지키거나, 아니면 최대한 에둘러 말할 경우에는 그 진의가 잘못 전달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데보라 스미스가 잘 둘러대더라도 한계가 있을 터이니, 작가가 뭔가 말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계기가 꼭 있어야 하기에 결국 정부가 나선 것이다.


그 자체만 놓고 보면 동기 자체가 불가사의한 비상 계엄이지만, 한강의 입을 열기 위한 의도로 실행되었다고 보면 충분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우선 명분 없는 실행으로 온 나라와 전 세계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고, 신속한 해제를 허락함으로써 불의의 피해를 미연에 예방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한강의 대표작의 이해를 돕기까지 했는데, 소설  <소년이 온다>가 전두환 신군부의 비상 계엄 선포 직후 일어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삼았기 때문이다. 데보라 스미스의 명번역으로도 차마 넘어설 수 없었던 문화적 차이조차도 이번 비상 계엄 보도를 통해 극복되지 않았을까.


결국 아무리 노력해도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던 대통령의 당혹스러운 비상 계엄 선포는 한강이라는 작가가 배출될 수 있었던 한국 특유의 정치사회적 배경이 어떠한지를 전세계에 보여주었던 대대적인 퍼포먼스였던 것이다. K팝과 K영화와 K문학에 뒤이어 K계엄까지도 전세계에 과시한 셈이다.


이쯤 되면 대통령이야말로 지상 최고의 로맨티스트가 아닐까? 개인적 인연이 없는 한강을 위해서도 이 정도라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는 더욱 지극하지 않겠는가! 이쯤 되면 한때 그의 손바닥을 장식한 왕(王) 자도 훗날 경국지색의 여러 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리라는 예언은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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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온 책에 대해서 글을 쓰다 보니 소와당과 서유구에 대한 이야기를 연이어 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새삼스레 <임원경제지> 번역의 현황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졌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임원경제지> 번역본은 본래 소와당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오다가, 지금은 번역을 주관하는 풍석문화재단에서 직접 간행하고 있다.


예전에 풍석문화재단 측에서 올린 해명에 따르면 <임원경제지> 자체가 워낙 방대한 내용이다 보니 출간 작업이 차일피일 지체되었고, 이 과정에서 참여자 일부가 이탈하며 그때까지 번역이 완료된 분량만 소와당을 통해 간행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소와당에서 나온 분량은 훗날 풍석문화재단에서 번역자가 바뀌어 재간행되었다.


<임원경제지> 번역은 2003년에 시작되었지만, 2008년에야 임원경제연구소가 발족하며 사업이 본격화되어, 2009년에 소와당을 통해 첫 번역서가 간행되었다. 이후 2015년에 풍석문화재단이 발족하며 번역서를 직접 간행하기 시작해서 2024년 현재 31책까지 간행되었다. 번역서도 원본처럼 52책이라 하면 5분의 3이 간행된 셈이다.


출간 지연의 가장 큰 이유는 번역 진행이 원활하지 못한 것이었는데, 원문 해석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번역료를 선지급하다 보니 돈만 날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가 지원을 받았던 <주자대전> 번역 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애초에 책상물림들의 돈 관리 자체가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돈 이야기를 하고 보니 책값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는데, 현재 권당 3만 원씩이니 52책 전권을 사려면 150만 원이 넘는 금액이다. 웬만하면 헌책이라도 사보려는 나귀님 입장에서도 영 손이 나가지 않는 수준이니, 아무리 대단한 책이라 하더라도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가격은 살짝 아쉽기도 하다.


여하간 이왕 생각난 김에 <임원경제지>의 편명과 분량, 간략한 내용에 대해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아래 내용은 풍석문화재단 홈페이지에 나온 다음 게시물에서 가져왔다. http://pungseok.net/?page_id=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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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권 52책. 필사본. 일명 ≪임원십육지 林園十六志≫ 또는 ≪임원경제십육지 林園經濟十六志≫라고도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이, 전원생활을 하는 선비에게 필요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기예와 취미를 기르는 백과전서로 생활과학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은 113권을 16개 부문으로 나눈 논저로 이루어졌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본리지(本利志, 권1∼13, 13권 6책):밭 갈고 씨 뿌리며 거두어들이기까지의 농사 일반에 관한 것을 다루고 있다. 전제(田制), 수리(水利), 토양지질, 농업지리와 농업기상, 농지개간과 경작법, 비료와 종자의 선택, 종자의 저장과 파종, 각종 곡물의 재배와 그 명칭의 고증, 곡물에 대한 재해와 그 예방, 농가월령(農家月令), 농기도보(農器圖譜), 관개도보(灌漑圖譜) 등에 걸쳐 서술했다.





2.관휴지(灌畦志, 권14∼17, 4권 2책):식용식물과 약용식물을 다루고 있다. 각종 산나물과 해초·소채·약초 등에 대한 명칭의 고증, 파종시기와 종류 및 재배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3.예원지(藝畹志, 권18∼22, 5권 2책):화훼류의 일반적 재배법과 50여 종의 화훼 명칭의 고증, 토양, 재배시기, 재배법 등에 대하여 풀이하고 있다.





4.만학지(晩學志, 권23∼27, 5권 2책):31종의 과실류와 15종의 과류(瓜類), 25종의 목류(木類), 그 밖의 초목 잡류에 이르기까지 그 품종과 재배법 및 벌목수장법 등을 설명하였다.





5.전공지(展功志, 권28∼32, 5권 2책):뽕나무 재배를 비롯해 옷감과 직조 및 염색 등 피복재료학에 관한 논저이다.





6.위선지(魏鮮志, 권33∼36, 4권 2책):여러 가지 자연현상을 보고 기상을 예측하는 이른바 점후적(占候的) 농업기상과 그와 관련된 점성적인 천문관측을 논하였다.





7.전어지(佃漁志, 권37∼40, 4권 2책):가축과 야생동물 및 어류를 다룬 논저로서, 가축의 사육과 질병치료, 여러 가지 사냥법, 그리고 고기를 잡는 여러 가지 방법과 어구(漁具)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8.정조지(鼎俎志, 권41∼47, 7권 4책):식감촬요(食鑑撮要)는 각종 식품에 대한 주목할 만한 의약학적 논저와, 영양식으로 각종 음식과 조미료 및 술 등을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였다.





9.섬용지(贍用志, 권48∼51, 4권 2책):가옥의 영조(營造)와 건축기술, 도량형기구와 각종 공작기구, 기재·복식·실내장식·생활기구와 교통수단 등에 관해서 중국식과 조선식을 비교해 우리 나라 가정의 생활과학 일반을 다루고 있다.





10.보양지(葆養志, 권52∼59, 8권 3책):도가적(道家的) 양성론을 편 논저로, 불로장생의 신선술(神仙術)과 상통하는 식이요법과 정신수도를 논하고, 아울러 육아법과 계절에 따른 섭생법을 양생월령표(養生月令表)로 해설하였다.





11.인제지(仁濟志, 권60∼87, 28권 14책):의(醫)·약(藥) 관계가 주로 다루어져 있으나 끝부분에는 구황(救荒) 관계가 다루어지고 260종의 구황식품이 열거되어 있다.





12.향례지(鄕禮志, 권88∼90, 5권 2책):지방에서 행해지는 관혼상제 및 일반 의식(儀式) 등에 관한 풀이이다.





13.유예지(遊藝志, 권91∼98, 6권 3책):선비들의 독서법 등을 비롯한 취향을 기르는 각종 기예를 풀이한 부분이다.




14.이운지(怡雲志, 권99∼106, 8권 4책):선비들의 취미생활에 관해 서술한 것이다.





15.상택지(相宅志, 권107·108, 2권 1책):우리 나라 지리 전반을 다룬 것이다.





16.예규지(倪圭志, 권109∼113, 5권 2책):조선의 사회경제를 다룬 것으로 양입위출(量入爲出)·절생(節省)·계금(戒禁)·비예(備豫) 등을 다룬 것과 무역이나 치산(置産) 등을 다룬 화식(貨殖) 등이 논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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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에 미국 대통령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연이어 읽은 기억이 난다. 저서나 자서전은 물론이고 측근의 회고록과 리더십 평가서도 제법 나온 상태였고, 심지어 은밀한 사생활이며 에어포스원의 역사에 대한 책까지 의외로 많은 자료가 있어서 나름대로 재미있는 주제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책은 <이런 대통령 뽑지 맙시다: 미국 최악의 대통령 10인>이라는 것이었는데, 지금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니 놀랍게도 무려 22년 뒤인 지금까지도 절판되지 않고 판매 중인 것으로 나온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철 지난 자료가 된 것 같지만 말이다.


부제에 나온 것처럼 당시까지의 미국 대통령 40명 가운데 최악으로 선정된 10인의 약전을 모아 놓았는데, 이 당시의 최악은 탄핵 직전까지 가서야 하야를 선택한 리처드 닉슨으로 꼽혔고, 순위에는 들지 못했지만 당시 성추행 스캔들에 휘말린 빌 클린턴에 대해서도 언급되었다.


지금 와서 다시 검색해 보니, 최근에 와서는 닉슨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이루어졌는지 오히려 순위가 상승하여 중위권에 진입한 반면, 링컨 이전의 제임스 뷰캐넌을 비롯한 몇몇 대통령과 가장 최근의 (그러나 또다시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가 최하위권으로 손꼽히는 모양이다.


닉슨이 최악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촉발된 선거 관련 불법 행위에 대해서 거짓말을 늘어놓아 탄핵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그에 못지않게 최악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지지자의 의회 습격 사건을 비롯한 각종 막장 행보 때문이겠고 말이다.


거짓말과 의회 압박이라는 사안 각각만 놓고 보더라도 역대 최악의 대통령 소리를 듣기에 충분한데, 어젯밤 우리나라에서 갑작스럽게 선포되었다가 불과 두 시간 반 만에 국회의 결의안 통과로 싱겁게 끝나 버린 비상 계엄령 조치야말로 이 두 가지 사안의 조합이라 할 만하다.


애초에 그런 조치를 할 만한 상황도 아니었는데 일방적인 발표가 나왔다는 것도 뜬금없었는데, 마지막 계엄령으로부터 워낙 오랜 세월이 지난 까닭인지 비록 군대가 출동하고 국회에 진입했다지만 예상만큼 기세등등하지는 못하고 흐지부지되었으니 더욱 황당무계한 일이다.


영화 <서울의 봄>에도 묘사되었던 것처럼 애초에 군인 출신 대통령이라면 군대에 대한 장악력이라도 확실해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을 터인데, 병역의 의무도 이행하지 않고 심지어 현재 지지율이 10퍼센트대인 대통령이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라면 사상 최초 탄핵의 주인공인 박근혜가 되지 않을까 싶었고,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나 전두환이 차점자쯤 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이번 계엄령 사태를 계기로 결국 쫓겨나게 생긴 윤석열이 이들 모두를 능가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소련 말기에 쿠데타가 일어나서 고르바초프를 억류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옐친이 시위대를 이끌고 군대를 설득하며 탱크에 올라가 연설함으로써 반란이 진압되고 소련 해체가 가속화되었던 것처럼, 기껏해야 두 시간 반짜리였던 계엄령이 향후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하다.


나귀님이 학교 다닐 때에만 해도, 사회 시간에 대통령 탄핵에 대해 배울 때에는 실현 가능성 없는 이야기라는 선생님의 조언이 덧붙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일어나게 되었으니 참으로 살다 살다 별 꼴을 다 보는구나 싶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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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첫 화면에 <이웃집 빙허각>이라는 아동 소설을 광고하기에, 이게 누구던가 싶어 클릭해 보니 <규합총서>의 저자였다. 옛 여성들은 이름이 없거나 망각되어 당호(집에서 따온 이름)로 지칭된 경우가 종종 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이다. '당'과 '헌' 모두 건축물을 가리키는 말이니,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신래미안과 허대방엘리움로얄카운티1차쯤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202호 신씨와 1001호 허씨이거나.


<규합총서>는 예전에 신구문고 판본으로 갖고 있었던 듯해 책장을 뒤져 보았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기린원 판본으로 갖고 있었나 싶어 또 다른 책장을 뒤져 보았지만 역시나 발견하지 못했다. 어쩌면 책더미 속 깊은 곳 다산과 실학 저자들의 각종 국역서 옆에 들어 있거나, 아니면 <제민요술>이나 요리 관련서, 아니면 서유구 관련서나 기타 다른 책에 곁들여 읽으려 꺼내 놓았다가 엉뚱한 데에 방치해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어쨌거나 국역본을 하나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후 여러 번이나 헌책방에서 <규합총서> 번역서를 보고도 딱히 구입할 생각은 없었다는 점이다. 이번에 구글링해 보니 판본이 여러 가지인데 특히 정양완의 번역본이 대표적이라 하니, 어쩐지 몇 번쯤 봤던 것 같은 그 책을 미리 구입하지 않은 것이 아쉽기도 하다. 참고로 정양완의 아버지는 위당 정인보, 남편은 국문학자 강신항, 아들은 논란이 있었던 수학자 강석진이다.


아동 소설의 줄거리를 살펴보니 몰락 양반가의 딸인 주인공 소녀가 이웃집 할머니 빙허각을 만나 <규합총서>의 저술에 일익을 담당하는 내용인 듯하다. 어쩐지 에밀리 디킨슨의 이웃집 소녀가 등장하는 그림책이 생각난다. 최근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숨은 조력자' 모티프를 빙허각의 사례에 가져다 붙인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한데, 문제는 실존 인물을 소재로 삼은 경우에 자칫 역사며 사실 왜곡 논란이 발생하기 쉽다는 점이다.


'숨은 조력자'란 문자 그대로 어떤 업적의 주인공의 그늘에 가린 중요한 조력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가리키는데, 최근의 유행에서의 시발점은 논픽션으로 시작해 영화로도 제작된 <교수와 광인>이 아니었나 싶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제작 과정에서 정신병원에 수감된 광인이 자료 조사를 자원했다는 실화를 다루었는데, 이후 <나랏말싸미>와 <말모이> 같은 한국 영화에서도 이 모티프를 차용한 바 있다.


문제는 두 편의 한국 영화 모두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렸다는 점이다. <나랏말싸미>는 세종의 한글 창제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승려 신미가 핵심으로 관여했다는 줄거리이고, <말모이>는 일제 시대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 과정에서 전과자에 까막눈인 판수가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줄거리이다. 양쪽 모두 '숨은 조력자' 모티프에 충실하려다 보니, 역사적 사실을 과장하거나 무시함으로써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미국의 우주 개발에 관여했지만 주목 받지 못한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히든 피겨스>와 그 원작인 <로켓걸스>, 비슷한 여성 서사를 원자폭탄과 암호해독으로 옮겨놓은 <아토믹걸스>와 <코드걸스>, 또는 일종의 도시 전설로 자리잡은 '아인슈타인에게 업적을 가로채이고 사회적으로 매장된 첫 번째 아내'에 대한 소문도 마찬가지이지만, 역사적 사실을 뒤집다 보면 사안을 실제보다 과장하고 왜곡할 위험이 상존한다.


왜냐하면 영화와 책에서 부각시킨 것과 달리, 위에 언급한 각종 '걸스'와 밀레바 아인슈타인이 각각의 유명한 업적에서 담당한 역할은 어디까지나 조연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도 나름대로는 중요한 역할을 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사람들도 많았다는 것이다. 에베레스트 초등에서도 텐징 노르가이의 공헌이 컸지만, 에드먼드 힐러리를 비롯한 영국 원정대가 없었다면 저 셰르파 혼자서 성공하지는 못했을 터이다.


'숨은 조력자' 모티프도 대중의 구미에 맞아 유행하는 것이겠지만, <나랏말싸미>와 <말모이>처럼 무작정 대입하다 보면 어느 순간 선을 넘으면서 역사 왜곡 논란으로 치닫게 되는 듯하다. 비교적 잘 대입한 경우에도 논란은 여전한데, 걸작으로 칭송되는 영화 <서편제>조차도 토속적인 소재라는 외양과 달리 핵심 줄거리는 한국적인 한의 모티프가 아니라 그리스 비극의 카타르시스라는 국문학자 조동일의 비판이 나오기도 했었다.


지난번 <고려거란전쟁> 드라마의 역사 왜곡 논란도 비슷한 맥락이 아니었나 싶은데, 그때 참고하려고 꺼냈던 박용구의 <역사소설입문>을 다시 뒤적이니, 역사소설은 사실에 충실하되 허구의 여지도 감안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작가도 사실과 허구의 선을 명확히 그어야 하고, 독자도 상상의 여지를 충분히 허락해야 한다는 뜻인데, 갈수록 의견 대립이 첨예화하는 사회에서 그걸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번에 나온 <이웃집 빙허각> 역시 해당 인물에 관한 사료가 절대 부족한 점이 난관이었을 법한데, 과연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나 궁금하다. 흥미로운 점은 빙허각 이씨 자체야 사실상 무명에 가까운 채로 남았지만, 그 주변 인물 중에는 방대한 저술을 남긴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야 완역이 시도되었을 만큼 방대한 조선 시대의 실용 백과 <임원경제지>의 저자인 서유구가 바로 빙허각 이씨의 시동생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서유구가 젊은 시절 형수에게 글을 배웠다고도 전하니, <이웃집 빙허각>에서도 중요한 조연으로 등장하지 않을까 싶다. 서씨 집안에는 원래부터 전해 내려오는 장서가 많았다고 하니, <규합총서>와 <임원경제지> 모두 개인의 업적일 뿐만 아니라 가문의 장서와 학술적 기풍 같은 환경의 산물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또 누군가는 이걸 보고 '시동생에게 연구 성과를 빼앗긴 형수'의 이야기를 구상할지도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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