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어제 알라딘에 들어와서 본 신기한 것들 가운데 최고는 끝도 없이 검색창에 뜨는 "패스트 라이브즈" 각본집 광고였다.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누군가의 말마따나 실제로 받을 거라고 믿은 사람은 드물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유력한 후보인 듯 언론에서 설레발을 치더니만 결국 수상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알라딘 검색창의 광고 문구는 "패스트 라이브즈 미 아카데미 각본상 불발"로 나오고 있으니, 나귀님 입장에서는 이걸 보고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잘 모르겠다. 혹시 "각본상 수상"으로 예정했다가 "수상"을 못했으니 다른 단어로 바꾼답시고 굳이 "불발"로 적은 걸까?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 노골적이다 보니 썩 보기 좋지는 않다.


굳이 따져 보자면 수상 대신 탈락, 또는 불발이 주제가 된 알라딘 이벤트는 이전에도 간혹 있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이수지의 경우에는 무슨 해외 아동 문학상 최종 후보까지 올랐다고 해서 알라딘에서 거창하게 주요 작품을 소개하는 축하 이벤트 페이지까지 만들었는데, 결국 수상에 실패하면서 축하라기보다는 위로 이벤트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패스트 라이브즈"의 경우에는 굳이 "각본상 불발"이라고 너무 빨리 결과까지 반영하기보다는 차라리 "각본상 후보작" 정도로 적어 놓았다면 무난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첫 작품으로 아카데미 후보에까지 올랐다는 점은 어쨌거나 자랑할 만한 일일 것이니 말이다. 굳이 삐딱하게 보자면 수상 실패를 들먹이며 "멕이는" 건가 하는 느낌도 있으니까.


희곡 좋아해서 예전부터 이것저것 사 모으던 나귀님이라서 최근 이런저런 시나리오가 활자화되는 것은 반가울 법도 한데, 대부분 화제작이나 흥행작 위주라서 딱히 구미가 당기지 않는 것은 영 아쉽다. 예전 무슨 영화 잡지에서 <7인의 사무라이> 시나리오를 전재하는 등 번역 작품도 일부나마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다시 보기는 어려우려나.


김수현 극본집은 예전 단권짜리를 갖고 있었는데 최근 십여 권짜리 전집이 나온 모양이니, 기회가 되면 한 번 훑어보아야겠다.(그런데 <작별>이 빠졌네!) 여하간 최근 이런저런 각본집 출간 현상은 영화와 드라마 제작이 활발해지면서 방송 작가 지망생이 많아진 영향인지도 모르겠지만, 반짝 인기라고 치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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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알라딘 들어와 기웃기웃하다 보니 신기한 게 몇 가지 있어서 끄적끄적해 본다. 검색창 광고에 "엄인호"라는 이름이 뜨기에 이건 또 뭔가, 왜 엄레논인가, 무슨 음반이라도 새로 만드나 궁금해서 클릭해 보니 RECORD OF A LEGEND라는 음악가 전기 시리즈의 북펀드 광고로 연결된다. 


"전설을 노래한 가수들을 기록하다"라는 광고 문구에 나온 것처럼 저명한 가수들의 자서전을 만든다는 취지인 모양인데, 샘플 페이지에 나온 형식을 보면 아마도 대담의 녹취록 형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긴 자서전 집필보다는 그쪽이 훨씬 더 간단해 보이기도 한다.


그 시리즈의 첫 타자가 신촌블루스의 엄인호라는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갔는데, 두 번째가 안치환인 것을 보니 문득 이 사람은 아직 좀 이르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예전에 무슨 논란이 있었던 듯한 기억이 나서 구글링해 보니 무려 마이클 잭슨과 관련된 논란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난 대선에서 김건희 논란이 부각되니까 대뜸 안치환이 풍자성 노래를 만들어 발표했는데, 그 제목이 하필이면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이어서 또 다른 논란을 부르고 말았던 거다. 잭슨이 생전에 성형 논란으로 구설수에 올랐음을 기억해 보면 당연히 크나큰 모독이다.


물론 정치 풍자도 할 수 있고, 대선 후보 마누라라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으며, 결국 영부인씩이나 하는 오늘날까지도 이것저것 설쳐서 논란이 지속되는 것을 보면 김건희야말로 욕을 먹어 싼 사람이기는 한데, 그래도 왜 상관 없는 마이클 잭슨은 들먹여서 논란을 자초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설마 양키고홈 구호를 외치던 쌍팔년도 운동권의 사고방식으로 대중 가수, 특히 미 제국주의자들의 음악가 따위는 무시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싸이와 BTS를 비롯한 이른바 케이팝이 전세계를 호령하는 지금에 와서는 더더욱 부적절하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니었을까.


그러다 보니 알라딘의 북펀드에서는 영 이상한 그림이 나오고 말았다. 문제의 북펀드 광고 문구가 다음과 같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흔히 외국에는 대통령이나 정재계 인사들뿐만이 아니라 마이클 잭슨, 마돈나, 비틀즈, 롤링스톤즈 등의 유명한 대중 아티스트의 자전적 도서가 많이 있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외모를 들먹여 고인 모독을 가했던 안치환의 자서전 북펀드 광고에서 대놓고 마이클 잭슨을 맨 앞에 내세운다? 이건 누가 봐도 좀 아니다 싶다. 이른바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사진"의 가장 최근 사례인 손흥민과 이강인의 화해 사진보다도 훨씬 더 어색해 보이는 조합처럼 보인다.


민중 가요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 여러 가지 속성 가운데 오만이 거론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 와서는 그 대표쯤 되는 사람에게서 그런 기미가 엿보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포장마차"나 "영삼이의 일기"처럼 풍자와 해학이 두드러지던 민중 가요를 기억하는 내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아울러 한 마디 덧붙이자면, 마이클 잭슨 자서전은 미국에서도 출간 당시에 딱히 좋은 평판을 얻지는 못했었고, 타계 직후 우리나라에 간행되었던 초판본도 80년대 일어 중역본을 베낀 것이어서 상태가 완전 개판이었다. 따라서 이 북펀드의 광고 문구는 이래저래 부적절했다고 봐야 할 것만 같다.


해외 연예인의 자서전도 대부분 대필 작가가 써주는 것이어서 장점을 강조하고 단점을 축소하는 일종의 변명 같다는 비판이 흔히 따르며, 좀 더 객관적인 평가는 훗날의 결정판 전기에서나 가능하다. 같은 맥락에서 엄인호와 안치환의 자서전도 훗날의 평가를 위한 일종의 기초 작업인 셈이다.


조만간 나올 안치환의 자서전에 마이클 잭슨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시가 들어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다만 더 나중에 안치환의 전기가 나온다면 십중팔구 해당 논란에 대해서 다루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점, 아울러 그 오만에 대해 결코 좋은 평가가 나올 리 없으리라는 점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 말 나온 김에 마이클 잭슨 관련 수집품 사진 하나 투척. 쌍팔년도에 명보극장에서 개봉한 <문워커> 보러 갔다가 얻은 증정용 카세트테이프이다. <배드>의 수록곡으로 영화에서도 나왔던 BAD, SPEED DEMON, SMOOTH CRIMINAL, MAN IN THE MIRROR까지 모두 4곡이 들어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내가 왜 이걸 봤을까 후회막심했고, 이 테이프도 어디 굴러다니는지 모를 정도로 함부로 방치했었는데, 마이클 잭슨의 사후에 생각이 나서 꺼내 보니 세월도 제법 흘렀겠다 이제는 골동품 취급을 받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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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삼일절 105주년 기념으로 독립선언서의 일부 문구를 집어넣은 에코백이며, 독립선언서의 전문을 축쇄한 투명 책갈피며 하는 사은품을 만든 모양이다. 독립선언서라 하니 문득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육당 최남선 전집> 제1권을 꺼내 보았다. 1973년에 현암사에서 전집 1차분(1-8권)을 내놓으면서 사은품으로 독립선언서 복제본을 끼워 주었는데, 훗날 내가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에도 다행히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책의 B5 판형에 딱 맞게 제작된 하얀 봉투를 열면 독립선언서와 그 소장자였던 월탄 박종화의 소개글(19세 때에 탑동공원에서 배포한 독립선언서 가운데 한 장을 받아서 이제껏 보존하고 있었다는 설명), 출판사의 해설까지 깔끔하게 인쇄한 가로 65센티미터, 세로 48센티미터의 얇은 한지가 나온다. 독립선언서 자체는 가로가 45센티미터쯤 된다고 하니, 이 복제본은 실제보다 더 넉넉하게 여백을 두어 제작했다고 봐야 하겠다.


육당 전집이라면 초판이 최소한 수천 부쯤은 간행되었을 법하니 이 복제본도 대략 그 정도 숫자가 돌아다닐 법도 한데, 의외로 지금은 대부분 그 존재를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인지, 이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도 드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일각에서는 현암사 복제본을 마치 원본인 양 착각하는 듯하니 우스운 일이다.(예를 들어 <한국일보> 미국판의 다음 기사를 보라. http://dc.koreatimes.com/article/20160301/973257)


그나저나 독립선언서의 복제본이 육당 전집에 사은품으로 따라온 까닭은 두말할 필요 없이 이 문건이 최남선의 창작이기 때문이다. 훗날의 친일 행적 때문에 요즈음에 와서는 최남선이라는 이름 석 자만 언급해도 '친일파'라는 딱지가 따라붙게 마련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독립선언서 작성부터 역사 연구, 고전 보급, 언론 활동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활약한 선각자 겸 지식인의 면모가 분명히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친일 행각 때문인지 과도하리만치 부정적인 이미지를 최남선에게 덮어씌우는 것이 아닌가 싶은 억지 비판도 없지 않던데, 예를 들어 독립선언서 첫 줄에서 "조선"이 "선조"로 오식된 것조차도 육당 탓을 하는 주장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는 육당이 작성한 글을 인쇄소에서 식자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잘못임이 분명하며, 당시에 인쇄 작업이 비밀리에 이루어졌음을 감안하면 충분히 일어날 법한 아쉬운 실수일 뿐이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런 실수가 서지학적으로는 초판본을 확인하는 중요한 단서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향후 어디선가 오래 된 독립선언서가 발굴되었을 경우, 첫 줄에 "선조"라는 오식이 없다면 그 역사적인 날에 나온 초판본까지는 아니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알라딘 에코백에 들어 있는 문구에는 "선조"가 "조선"으로 바로잡혀 있으니, 이것 역시 독립선언서 초판본의 충실한 재현이라고 볼 수는 없겠다.


물론 알라딘에서야 단지 오식을 바로잡으려는 선의의 수정을 시도했을 수도 있지만, 굳이 원문씩이나 가져다가 인쇄하기로 결정했던 애초의 취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도 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없었다면 더 좋았을 법한 실수 때문에 지금 와서는 애꿎은 육당만 원흉 취급을 받아 비난을 받는 실정이지만, 이쯤 되면 "선조"라는 오식도 105년 전 그 날 그 사건과 함께 이미 역사의 일부분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추가]


글을 올리고 나서 사진을 첨부하고 다시 살펴보니, 현암사의 독립선언서 복제본에 붙은 설명에서 "육당이 밤을 새우며 직접 쓰고 조판, 교정한 이 '독립선언문'은" 하는 구절이 뒤늦게야 마음에 걸렸다. 작성이야 본인이 했다 치더라도 식자와 인쇄까지는 도맡지 않았을 터이며, 심지어 인쇄도 천도교 측 보성사에서 담당했었다고 전하는데, 어째서 이 설명에서는 육당이 "직접" 조판과 교정까지 담당했다고 나오는 걸까?


그제야 관련 자료를 뒤져 보니, 앞서는 간과했던 몇 가지 사실을 새로 알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육당이 "직접 쓰고 조판, 교정"을 담당했다는 설명은 사실이다. 독립선언서 원고를 완성한 후에 자신의 인쇄소인 신문관에서 직접 조판(식자)과 교정을 해서 천도교 인쇄소인 보성사로 넘겼다기 때문이다. 육당은 17세 때 출판사 겸 인쇄소인 신문관을 설립했으니, 인쇄 실무에 대해서도 충분히 잘 알았을 것이다.


손자 최학주의 회고록 <나의 할아버지 육당 최남선>에도 "당신이 직접 신문관에서 조판하고 교정까지 본 후에 인쇄만 천도교 측 보성사로 넘겼다. (...) 급박한 상황에서 극비리에 진행한 일이라 선언문 첫머리에 '조선'이 '선조'로 돼 있는 것을 놓쳤다"(159쪽)는 증언이 들어 있으니, 이쯤 되면 (나귀님이 앞서 쓴 글의 내용과는 정반대로) 문제의 오식에 대해서만큼은 육당을 탓해도 딱히 변명할 여지가 없을 듯하다.


다만 인쇄 업무의 특성상 육당 외에도 여러 사람이 이후 작업에서 관여했음이 틀림없었을 터인데, 어째서 그처럼 눈에 띄는 오식을 미리 발견하고 수정한 사람이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던 중에도 민족 대표 33인의 명단이 몇 차례 바뀌는 바람에 수정이 이루어졌으며, 최남선의 초고에 대해 오세창이 이의를 제기해서 단어 수정도 이루어졌다고 전하니 말이다.


구글링해 보니 고맙게도 한양대 사학과 박찬승 교수가 "3.1.독립선언서 인쇄 과정과 판본의 검토"라는 논문에서 독립선언서 제작 부수 관련 논란이며, 서로 상이한 초판본 존재에 따른 진본 논란 등 여러 가지 쟁점을 명료하게 규명한 상태였다. 이 논문에 따르면 육당이 자신의 인쇄소 신문관에서 직접 활자를 조판해서 천도교 인쇄소 보성사로 보냈다는 증언이 당시의 수사 자료며 언론 보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다만 보성사의 당시 책임자는 육당이 만든 활판의 세로 길이가 자기네 인쇄기에는 맞지 않아서 새로 조판했다고 증언했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조선"이 "선조"로 바뀌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조선/선조"의 위치가 첫 줄 상단임을 감안하면 해당 활자를 굳이 움직였을 가능성은 없고, 보성사의 책임자 역시 당시 활판의 내용을 자세히 읽지는 않았다고 증언했으니 추가 교정도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후 33인의 명단이 수정되는 과정에서 연판이 3종이나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조선/선조" 오식도 미리 파악하기만 했었다면 이처럼 충분히 수정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육당의 친일 행적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늘어난 까닭인지, 지금은 이런 실수에다가 오세창의 단어 수정 제안까지도 졸지에 육당을 폄하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문제의 "조선/선조" 오타가 훗날의 독립선언서 원본 논란에서 중요한 단서 가운데 하나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보성사에서 인쇄한 독립선언서는 현재 8점이 남아 있는데, 훗날 최남선의 신문관에서 별도로 인쇄한 것이라고 주장되는 독립선언서 이본이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다. 그 이본은 조판과 서체 등이 기존의 독립선언서와 확연히 달랐기 때문에 그 진본 여부를 놓고 팽팽한 논쟁이 펼쳐지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자칭 신문관 이본이 후대의 맞춤법을 따르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 때문에 (예를 들어 ㅅㄱ 대신 ㄲ을 사용했다) 초판본이 아니라 1950년대에 제작된 위작으로 입증되었는데, 어째서인지 이런 사실이 제대로 규명되기도 전에 문화재청에서 보성사 진본과 신문관 위작 모두를 문화재로 지정하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양쪽 모두 국가등록문화재 2016-1호와 2016-2호로 남아 있는 황당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어째서인지 문화재청에서는 구체적으로 진위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그냥 다 문화재로 지정해 버리자는 식의 황당한 논리를 즐겨 펼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진달래꽃> 초판본을 둘러싼 논쟁이다. 이전까지 초판본으로 간주되던 한성도서본과 다른 중앙서림본이 발굴되고, 그 소장자의 조사로 맞춤법의 차이(ㄲ와 ㅅㄱ)가 결정적인 단서로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규명 없이 모두 문화재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문화재의 발굴과 보존뿐만 아니라 진위 판별에도 각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마땅한 정부 기관으로서는 영 어울리지 않는 행태인데, 그만큼 고서나 서지학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면 나중에 가서는 나귀님이 갖고 있는 것과 같은 현암사의 1973년 복제본 사은품조차도 월탄 박종화 소장 독립선언서 원본으로 인정되어 국가등록문화재 명단에 오르는 것도 시간 문제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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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강 출판사에서 번역가 정영목의 주도로 (아마 그가 강의하는 번역학과 학생들과의 공동 작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이어 간행되었던 로알드 달 작품집이 (단편집 네 권과 장편 <나의 삼촌 오스왈드>) 어째서인지 그만 절판된 이후, 엉뚱하게도 아동서 전문인 베틀북에서 “로알드 달 탄생 100주년 기념 컬렉션”이라는 단편집이 전5권으로 간행되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확인해 보니 몇 년 지난 지금은 모두 절판되었다. 


로알드 달이라면 스테디셀러 작가인데도 불구하고 굳이 절판시킨 이유는 혹시나 아동서 전문인 베틀북에서 로알드 달의 “성인용” 단편까지 간행했다는 점이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 베틀북은 이 단편집에서 그나마 미성년자관람가인 것들만 골라서 녹색지팡이라는 자회사를 통해 “십대를 위한 로알드 달”(전3권)이라는 그림책을 간행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여하간 이것 역시 지금은 절판 상태이다. 


<복수는 나의 것 주식회사>에는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로알드 달의 숨은 걸작 9편”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지만, 당연히 사실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로알드 달의 단편 중에서도 가장 성인물(?)이라 할 수 있는 “아내 바꿔 먹기”(The Great Switcheroo)가 이전에 <플레이보이> 게재 단편 선집에 수록되어 번역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제목 그대로 이웃지간인 두 부부가 남편들의 작당으로 스와핑을 한다는 내용이다!)


그 사이에 <헨리 슈거>는 <백만장자의 눈>으로 번역자가 바뀌어 담푸스에서 재간행되었고, 강/정영목 번역서 가운데 나머지 세 권은 교유서가에서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전3권)이라는 이름으로 재간행되었다. 중복 작품이 많으니 (번역의 질은 따지지 말고 보면) 최선의 조합은 베틀북(전5권) + <백만장자>(또는 구판 <헨리 슈거>)일 듯하다. 참고로 강, 베틀북, 담푸스, 교유서가 단편집 수록 작품의 상관 관계는 다음과 같다:




(가) 강의 “로알드 달 단편 선집” (총33편. (나)와 26편 80% 중복 / (다)와 7편 20% 중복 / (라)와 21편 60% 중복. 유일 번역 작품 없음).


A. 맛 (2005. 총10편. a와 8편, b와 2편 전체 중복 / 1과 6편, 3과 1편, 4와 3편 전체 중복)

A-1. (a-1) (4-2) 목사의 기쁨

A-2. (a-2) (3-8) 손님

A-3. (a-3) (1-6) 맛

A-4. (a-4) (1-9) 항해 거리

A-5. (a-5) (4-4) 빅스비 부인과 대령의 외투

A-6. (a-6) (1-3) 남쪽 남자

A-7. (a-7) (1-10) 정복자 에드워드

A-8. (b-7) (4-8) 하늘로 가는 길

A-9. (a-8) (1-2) 피부

A-10. (b-8) (1-7) 도살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 (1=양고기 살인)


B. 세계 챔피언 (2005). 총7편. b와 6편, c와 1편 100% 중복 / 3과 4편, 4와 3편 100% 중복)

B-1 (b-1) (3-6) 클로드의 개 (세계 챔피언 / 피지 씨/ 쥐잡이 사내 / 러민스 / 호디 씨)

B-2 (c-3) (3-7) 탄생과 재앙

B-3 (b-2) (4-3) 조지 포지

B-4 (b-3) (4-4) 로열 젤리

B-5 (b-4) (3-1) 달리는 폭슬리

B-6 (b-5) (3-5) 소리 잡는 기계

B-7 (b-6) (4-1) 윌리엄과 메리


C.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2006. 총7편. c와 3편 40% 중복 / “백”과 100% 중복)

C-1. (c-8) (백-5)  헨리 슈거의 놀라운 이야기 (백=“백만장자의 눈”)

C-2. (c-7) (백-2)  히치하이커

C-3.        (백-3)  밀덴홀의 보물

C-4.        (백-4)  백조

C-5. (c-6) (백-1)  동물과 대화하는 소년

C-6.        (백-6)  행운: 나는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가

C-7.        (백-7)  식은 죽 먹기: 나의 첫 번째 이야기


D. 개 조심 (2007. 총9편. c와 1편 10% 중복 / 2와 100% 중복)

D-1.        (2-10)어느 늙디늙은 남자의 죽음

D-2.        (2-1)  아프리카 이야기

D-3. (c-1) (2-7)  마담 로제트 (c=로제트 부인)

D-4.        (2-3)  카티나

D-5.        (2-8)  어제는 아름다웠네

D-6.        (2-5)  그들은 늙지 않으리

D-7.        (2-4)  개 조심

D-8.        (2-2)  오직 이뿐

D-9.        (2-6)  당신 같은 사람 (2=그들도 우리처럼)




(나) 베틀북의 “로알드 달 탄생 100주년 기념 컬렉션” (2017, 전5권. 총46편. (가)와 27편 60% 중복 / (라)와 23편 50% 중복. 유일 번역 작품 15편)


1. 남쪽 남자 (총11편. A와 6편 55% 중복 / a와 5편, b와 1편 55% 중복)

1-1.                  고이 잠들라 (Nunc Dimittis)

1-2. (A-9 / a-8)   피부

1-3. (A-6 / a-6)   남쪽 남자

1-4.                  자동 작문 기계 (The Great Automatic Grammatizator)

1-5.                  보티볼 씨 (Mr. Botibol)

1-6. (A-3 / a-3)   맛

1-7. (A-10 / b-8) 양고기 살인 (A/a=도살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

1-8.                소원 (The Wish)

1-9. (A-4 / a-4)   항해 거리

1-10. (A-7 / a-7) 정복자 에드워드

1-11.                독 (Poison)


2. 어제는 아름다웠네 (총10편. D와 9편 90% 중복 / c와 1편 10% 중복)

2-1. (D-2)        아프리카 이야기

2-2. (D-8)        오직 이뿐

2-3. (D-4)        카티나

2-4. (D-7)        개 조심

2-5. (D-6)        그들은 늙지 않으리

2-6. (D-9)        그들도 우리처럼 (D=당신 같은 사람)

2-7. (D-3 / c-1) 마담 로제트

2-8. (D-5)        어제는 아름다웠네

2-9.             병사 (The Soldier)

2-10. (D-1)     어느 노련한 조종사의 죽음


3. 달리는 폭슬리 (총8편. B와 3편 40% 중복 / a와 1편, b와 3편, c와 2편 75% 중복)

3-1. (B-5 / b-4)  달리는 폭슬리

3-2.                 사랑하는 나의 여인 나의 그대여 (My Lady Love, My Dove)

3-3.                 목 (Neck)

3-4.         (c-2)  여주인 (c=하숙집 여주인)

3-5. (B-6 / b-5)  소리 포착기

3-6. (B-1 / b-1)  클로드의 개 / 쥐잡이 사내 / 러민스 / 호디 / 피지

3-7. (B-2 / c-3)  탄생과 재앙

3-8. (A-2 / a-2)  손님


4. 목사의 기쁨 (총8편. A와 3편, B 4편 90% 중복 / a와 2편, b와 5편, c와 1편 100% 중복)

4-1. (B-7 / b-6)  윌리엄과 메리

4-2. (A-1. / a-1)  목사의 기쁨

4-3. (B-3 / b-2)  조지 포지

4-4. (A-5. / a-5)  빅스비 부인과 대령의 코트

4-5. (B-4 / b-3)  로열 젤리

4-6. (B-1 / b-1)  세계 챔피언

4-7.         (c-4)  돼지

4-8. (A-8 / b-7)  천국으로 가는 길


5. 복수는 나의 것 주식회사 (총9편. c와 2편 20% 중복)

5-1.             복수는 나의 것 주식회사 (Vengeance is Mine Inc)

5-2             우산 쓴 노인 (The Umbrella Man)

5-3.             집사 (The Butler)

5-4.        (c-5) 아내 바꾸기 (c=대역전)

5-5.             마지막 행위 (The Last Act)

5-6.             암캐 (Bitch)

5-7.             아 삶의 달콤한 비밀이여 (Ah, Sweet Mystery of Life)

5-8.        (c-9) 서적상 (c=책장수)

5-9.             외과 의사 (The Surgeon)




(다) 로알드 달의 백만장자의 눈 (2014. 총7편. C와 7편 100% 중복 / c와 3편 40% 중복. 유일 번역 작품 없음)

백-1 (C-5 / c-6) 동물과 대화하는 소년

백-2 (C-2 / c-7) 히치하이커

백-3 (C-3)         밀덴홀의 보물

백-4 (C-4)       백조

백-5 (C-1 / c-8) 백만장자의 눈 (C/c=헨리 슈거의 놀라운 이야기)

백-6 (C-6)       행운: 나는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가

백-7 (C-7)       식은 죽 먹기: 나의 첫 번째 이야기





(라) 교유서가의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2021. 전3권. 총25편. (가)와 21편 85% 중복 / (나)와 22편 90% 중복 / (다)와 3편 10% 중복. 유일 번역 작품 없음)


a. 맛 (총8편. A와 8편 100% 중복 / 1과 5편, 3과 1편, 4와 2편 100% 중복)

a-1. (A-1) (4-2)        목사의 기쁨

a-2. (A-2) (3-8)        손님

a-3. (A-3) (1-6)        맛

a-4. (A-4) (1-9)        항해 거리

a-5. (A-5) (4-4)        빅스비 부인과 대령의 외투

a-6. (A-6) (1-3)        남쪽 남자

a-7. (A-7) (1-10)       정복자 에드워드

a-8. (A-9) (1-2)        피부


b. 클로드의 개 (총8편. A와 2편, B와 6편 100% 중복 / 1과 1편, 3과 3편, 4와 4편 100% 중복)

b-1. (B-1) (3-6) 클로드의 개 (세계 챔피언 / 피지 씨 / 쥐잡이 사내 / 러민스 / 호디 씨)

b-2. (B-3) (4-3) 조지 포지

b-3. (B-4) (4-5) 로열 젤리

b-4. (B-5) (3-1) 달리는 폭슬리

b-5. (B-6) (3-5) 소리 잡는 기계

b-6. (B-7) (4-1) 윌리엄과 메리

b-7. (A-8) (4-8) 천국으로 가는 길

b-8. (A-10)(1-7)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


c. 헨리 슈거 (총9편. B와 1편, C와 3편, D와 1편 55% 중복 / 2와 1편, 3과 2편, 4와 1편, 5와 2편 65% 중복 / “백”과 3편 30% 중복)

c-1. (D-3) (2-7)        로제트 부인

c-2.       (3-4)        하숙집 여주인 (3=하숙집 여주인)

c-3. (B-2) (3-7)        탄생과 재앙

c-4.       (4-7)        돼지

c-5.       (5-4)        대역전 (5=아내 바꾸기)

c-6. (C-5)       (백-1) 동물과 대화하는 소년

c-7. (C-2)       (백-2) 히치하이커

c-8. (C-1)       (백-5) 헨리 슈거의 놀라운 이야기 (백=백만장자의 눈)

c-9.       (5-8)        책장수 (5=서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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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요즘에는 뭘 잘못 누르기만 하면 북펀드 광고로 이어져서 짜증짜증 하던 참이었는데, 이번에는 예전에 나왔던 웅진출판의 "20세기 일문학의 발견" 시리즈가 박스세트로 재간행된다기에 호기심이 일었다. 원래 열두 권짜리였다가 여섯 권으로 분량도 절반쯤 줄어들었는데 "중고거래가 10배!"니, "문학 수집가들이 찾던 전설"이니, "유명 희귀본 수집가들이 헌책방을 순례하고 발품을 팔아가며 구했던 그 시리즈"니 하는 어마어마한 광고 문구를 보니, 문득 "정말 그랬던가?"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내 기억으로는 웅진이 한동안 서점용 단행본보다는 방문판매용 전집류에 전력투구하다가 (원래 뿌리깊은나무/헤임인터내셔널에서 출발한 회사이니 사실 방문판매 쪽이 기본인 출판사이긴 하다) 간만에 분위기를 쇄신하여 내놓은 단행본 시리즈가 "포스트모더니즘 걸작선" 전5권과 "20세기 일문학의 발견" 전12권이었는데, 사실 그 당시에만 해도 반향이 아주 크지는 않았다고 기억한다. 절판본이 절판본인 까닭은 쉽게 말해서 안 팔렸기 때문이어서, 나중에는 이 책들도 반값 매대에 자주 나왔었다.


나귀님도 "일문학의 발견" 완질을 갖고 있지만 딱히 급하게 산 것은 없었고, 헌책방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한두 권씩 골라 잡다 보니 얼떨결에 짝을 맞추게 되었을 뿐이다. 맨 먼저 산 것은 아쿠다가와 단편집 같고, 맨 나중에 산 것은 의외로 보기 힘들었던 야마다 에이미 책이었는데, 이건 어째서인지 하드커버이다. 그런데 애초에 전12권 하드커버가 나왔다가 소프트커버로 갈아입은 건지, 아니면 1차분 몇 권만 하드커버였다가 2차분부터는 스포트커버로 갈아입은 건지는 알 수 없다.


이왕 다시 내려면 전12권을 고스란히 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세트에서 빠진 여섯 권은 각자 다른 출판사에서 재간행된 모양이니, 원래의 모습은 아래에 나귀님이 올린 사진처럼 구판을 통해서나 짐작할 수 있을 법하다. 사카구치 안고의 책도 있기는 한데, 오래 전에 빼서 딴데 꽂아 놓다 보니 사진에는 담기지 않았다. 굳이 꺼내서 다시 올려놓을 수도 있기는 한데 귀찮아서... (그나저나 다시 확인해 보니 전6권 재간행본은 2017년에 이미 나온 거던데 왜 지금 갑자기 박스세트인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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