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책더미를 뒤지다가 몇 년 전에 알라딘 건대점에서 구입한 로버트 펜 워런의 <악마의 형제들>이 보이기에 꺼내 놓았다. 그 당시에 어떤 책을 사면서 배송료 지우려고 다른 책을 고르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작품은 생소해도 작가는 너무 유명하다 보니 주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로버트 펜 워런(1905-989)은 20세기 미국의 저명한 작가로, 소설과 시 양쪽에서 퓰리처상을 모두 세 번이나 수상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인물이다. 아울러 클리언스 브룩스와 공저한 <시의 이해>와 <소설의 이해> 등을 통해 이른바 신비평의 대표적인 비평가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특히 <소설의 이해>는 과거 우리나라 여러 대학에서도 교재로 사용된 까닭인지, 한동안 헌책방에서 복사본 원서를 흔히 볼 수 있었다. 그 속편 격인 책이 <소설의 분석>이라는 제목으로 현암사에서 번역된 적도 있었고, 단독 저서로는 소설 <천사의 무리>가 삼성출판사에서 번역된 바 있다.
사실 소설 중에서는 1947년 퓰리처상 수상작 <왕의 모든 부하(All the King's Men)>가 가장 유명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번역되지 않았다. 이 소설은 훗날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친 번스타인과 우드워드의 저서 <대통령의 모든 부하(All the President's Men)>의 제목 유래로도 알려져 있다.
흔히 "모두가 왕의 신하"나 "모두가 대통령의 부하"로 옮기는 제목이지만, 실제로는 마더 구스 동요집에 수록된 "험프티덤프티"의 한 대목에서 가져온 구절이기 때문에 ("왕의 모든 말들, 왕의 모든 부하조차, 험프티를 살리지 못했네") 문맥을 감안하면 "모든 신하"와 "모든 부하"가 맞다.
<악마의 형제들>은 시 분야에서 워런의 대표작으로 간주되는 장편 극시이다. "시와 대화로 된 이야기"라는 부제 때문에 구입 당시에 얼핏 살펴본 느낌으로는 운문 희곡이 아닐까 지레짐작했는데, 이번에 읽으며 다시 살펴보니 비록 희곡 형식을 띄고 있기는 하지만 시로 분류되는 모양이다.
번역서의 제목은 "악마의 형제들"이지만 원제는 "용의 형제들"(Brother to Dragons)이고, 구약성서 "욥기" 30장 29절의 흠정역 성서 번역문에서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이후의 영어 번역에서는 해당 구절을 "재칼의 형제들"로 옮겼고, 한글 성서에서도 "이리/승냥이의 형제"로 옮겼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리"가 "용"으로 오인되었는지는 몰라도, 욥이 자신의 몰락을 한탄하는 ("나는 이제 이리의 형제요, 타조의 친구가 되어 버렸다") 대목이니, 해당 구절도 "용"보다는 "이리"가 그럴싸해 보인다. 다만 성서에서 "용"이 "악마"의 별칭이니 "악마의 형제들"로 옮긴 게 아닐까.
물론 이 제목에서 가리키는 "형제"의 행적을 보면 "악마"라는 섬뜩한 표현도 아주 틀린 것까지는 아니다. 1811년 미국 켄터키 주의 한 농가에서 백인 릴번 루이스와 이셤 루이스 형제가 17세의 흑인 노예 소년 조지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심지어 그 시체를 토막내서 불에 태우기까지 했다.
강요에 못 이겨 소년의 살해와 시신의 훼손에 동참했던 다른 흑인 노예들이 입을 다물어 버림으로써 단순 실종, 또는 도주로 처리될 뻔한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바로 다음날 벌어진 대형 지진 때문이었다. 난리 통에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시신 일부가 결국 이웃에게 발견된 것이다.
비록 온전한 사람 취급까지는 못 받던 흑인 노예였지만, 그렇다고 당시의 법률상 함부로 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형제는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고, 교수형이 확실해 보이는 상황에서 유서를 쓰고 동반 자살을 감행했지만, 결국 형 릴번만 사망하고 동생 이셤은 살아남았다.
문제는 살인자인 이들 형제가 무려 미국 전직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조카라는 점이었다. 제퍼슨의 여동생 루시가 찰스 루이스와 결혼해서 낳은 두 아들이 릴번과 이셤 형제였기 때문이다. 그 성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 형제는 제퍼슨의 최측근인 탐험가 메리웨더 루이스와도 친척 관계였다.
그나마 제퍼슨의 대통령 임기가 사건 발생 전인 1809년에 이미 끝난데다가, 마침 해당 지역에 닥친 지진의 여파로 인해 그리 큰 스캔들로까지 번지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이성과 자유를 누구보다도 옹호했던 인물인 제퍼슨의 입장에서는 크나큰 충격과 체면 실추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악마의 형제들>은 이 사건의 당사자와 주변인 여러 명이 사후에 만나서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인 워런도 RPW라는 이니셜로 등장해서 이런저런 질문이며 감상을 내놓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피해자인 노예 소년 조지만큼은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듯이)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제퍼슨은 생전의 기록 어디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지만, 이 작품에서는 자신의 신념을 정면으로 부정하다시피 한 조카들의 행동 때문에 사후에도 수치와 당혹을 느끼는 것으로 묘사된다. 급기야 양아들이나 다름없던 메리웨더 루이스까지도 제퍼슨을 난처하게 만든다.
루이스는 제퍼슨의 비서로도 재직했던 최측근이었으며, 이 대통령의 대표 업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루이지애나 매입 직후에 해당 영토를 탐험하러 떠난 원정대를 지휘했을 정도로 크게 신뢰 받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훗날에는 정적과의 갈등을 겪으면서 좌절한 끝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루이스가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아무리 좋은 이상도 냉혹한 현실 앞에서는 무기력하더라고 주장하자 제퍼슨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고, 급기야 여동생의 간청을 받아들여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조카들을 용서하기로 한다. 인간에게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함을 시인한 것이다.
사실은 제퍼슨 본인도 흑백이 공존하는 모순적인 인물이 아닐 수 없었다. 새뮤얼 존슨의 비아냥처럼, '본인부터가 노예주인 주제에 자유를 가장 크게 부르짖은 인물'이기도 했으며, 노예제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 이용했을 뿐더러, 노예 여자에게서 사생아까지 낳았으니까.
따라서 제퍼슨이야말로 인간의 양면, 또는 모순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또 애써 억누른 사람이었다고 치면, 못된 조카들의 범행은 그의 가장 깊은 두려움을 현실로 불러낸 악몽 같은 사건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수수께끼로 남은 제퍼슨의 침묵 역시 그 반증일지도 모를 일이다.
역자 해설을 보면 남부 출신임에도 흑인 문제에 대해 침묵했던 워런이 본격적으로 이 주제에 대해서 입을 열기 시작한 작품으로도 평가하는 모양이지만, 그보다는 이성과 격정, 또는 천사와 악마의 공존이야말로 인간의 원초적인 상태임을 드러내는 것이 저자의 목표는 아니었을까 싶다.
워런은 <악마의 형제들> 초판을 1953년에 간행했고, 무려 사반세기 뒤인 1979년에 내용이 대폭 수정된 개정판을 간행했는데, 우리말 번역본은 그중 개정판을 옮긴 것이라고 한다. 운문 번역의 어려움을 감안하면 비교적 무난한 편이지만, 일부 대목에서는 살짝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다.
특히 편집 면에서 아쉬운 부분을 여럿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고유명사(미노토/미노타우로스)와 주요 용어(준주/테리토리)가 통일되지 않은 것이 거슬리고, 권말의 미주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본문에서는 해당 부분에 미주를 보라는 표시가 없는 것 역시 이해하기 힘든 실수이다.
역자 해설도 작품의 해석에 치중하다 보니, 일반 독자가 이 책을 읽기 위해서 필요한 사전 지식을 제공하지는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흑인 노예 조지 살인 사건의 개요는 물론이고, 제퍼슨과 메리웨더 루이스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배경 설명을 해 줬다면 어땠을까.
그나저나 <악마의 형제들>을 읽고 보니 워런의 다른 작품도 어떨지 궁금해진다. 내친 김에 오래 전에 사다가 묵혀 놓은 소설 <천사의 무리> 번역본도 읽어보려고 꺼냈는데, 함께 수록된 버드 슐버그의 크리스마스 단편을 읽다 보니 휴일이 지나가 버렸다. 과연 올해 안에 읽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