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를 검색하다 그랬는지, 하여간 평소에는 정신 없는 홈페이지 디자인 때문에 외면하던 예스24에 들어가 보니 그린비에서 나온 마르셀 모스 전기를 재정가로 원래 정가의 40%에 파격 할인 판매 중이었다. 혹시 알라딘에서도 파는가 싶어 확인해 보니 여기도 마찬가지이기에, 잘 되었다 싶어서 다른 책과 섞어서 얼른 구입해 어제 받아 보았다.


그린비 인물 시리즈는 푸코와 홉스봄 전기라든지, 일전에 한 번 살펴보았던 리쾨르 대담집처럼 흥미로운 자료가 제법 많았다고 기억하는데 지금은 더 이상 간행되지 않으려는지, 시리즈 2번으로 간행된 모스 전기를 재정가로 할인 판매하는 것은 물론이고, 뒤쪽 책날개에 적힌 근간 예정 도서 가운데 몇 권은 다른 출판사에서 간행되고 말았다.


모스 전기와 리쾨르 대담집을 번역한 변광배는 사르트르 전기를 비롯해서 사르트르와 카뮈, 말로와 드골, 사르트르와 아롱 등의 공동 전기도 번역한 것으로 미루어 전기 분야에 각별히 흥미를 지닌 것으로 보이는데, 여차 하면 충분히 흥미로운 시리즈를 만들어낼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도 번번이 출판사를 옮겨 다니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마르셀 모스 전기의 경우, 나귀님 역시 <증여론>밖에는 아는 바가 없는 상태였지만, 역자 해설에서 밝힌 것처럼 저 인류학자의 생애를 스쳐가는 수많은 학자들의 이름만 일별해도 충분히 흥미로워 보이기는 한다. 개인적으로는 모스가 뒤르켐의 조카이자 아롱의 당숙이라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지만 말이다.(아롱 자서전을 확인해 봐야겠다).


역시나 변광배가 옮긴 사르트르와 아롱의 공동 전기는 아직 읽지 못했지만, 이 두 사람이야말로 평생의 라이벌이라고 해야 하나 싶은 느낌이 없지 않은 것 같다. 학문적 엄밀함이나 통찰의 정확함 면에서는 아롱이 앞서지만, 전반적인 명성이나 영향력 면에서는 사르트르가 단연 앞선다. 사르트르는 알아도 아롱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니까.


우리의 입장에서 사르트르와 아롱의 차이가 가장 두드러진 대목은 아마도 한국전쟁의 원인을 둘러싼 양측의 분석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련이며 공산당에 현혹되었던 사르트르와 대부분의 프랑스 지식인은 미국의 지원을 받은 남한의 북침이라는 주장을 그대로 수용했던 반면, 아롱은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남침이라고 정확히 추론해냈다.


하지만 당시의 분위기는 "아롱과 함께 옳은 편에 서느니, 사르트르와 함께 그른 편에 서는 편이 더 좋다"는 일종의 구호로 잘 표현될 만했다고 전한다. 나귀님은 이 구호를 디디에 에리봉의 레비스트로스 대담집에서 처음 접하고 놀랐는데, 나중에 아롱의 대담집을 살펴보았더니 그 역시 이 구호를 이미 알고 있었던 듯 직접 언급하기까지 했다.


사실에 입각한 합리적 판단과는 동떨어진 억지 주장일 뿐이지만 그 당시 소련에 대한 환상에 젖어 있던 상당수 프랑스 지식인이 이런 식의 동지애, 또는 팬심에 동조하고 있었다니 딱한 일이다. 오죽하면 아롱이 <지식인의 아편>이라는 저서에서 그런 작태에 대해서 일침을 가했을까. 하지만 현실은 아롱이 사르트르의 그늘에 가려 있는 상태다.


이제 본격적인 총선 유세가 시작되었다. 나귀님의 기준으로는 하나같이 위선자에 불과한 사람들이 근거 없는 막말과 허위 공약을 일삼는 혼탁한 선거판이지만, 또다시 팬심이 발동하면 역시나 아롱보다는 사르트르라는 식의 여론몰이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물론 가장 큰 문제는 아롱에 해당하는 후보자가 도무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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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양반이 넷플릭스에서 "위아더월드" 녹음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겠다며 틀어놓기에, 뭐, 예전에 제인 폰다가 해설한 비슷한 다큐멘터리도 이미 봤었는데, 거기서 더 나올 이야기가 있나 싶었더니만, 막상 보고 있자니 새삼 반가운 얼굴도 있고 뜻밖의 이야기도 많아서 의외로 흥미진진하게 시청했다.(이놈들아, 리즈 시절의 실라 E를 그렇게 푸대접했다니! 알고 보니 알 재로와 스티비 원더가 빌런! 밥 딜런은 자기 노래밖에 못 부르는 바보...). 


제인 폰다 해설 다큐멘터리와 일부 겹치는 내용도 있었지만, 일부 빠진 내용도 있으니 (예를 들어 스티비와 레이의 추가 녹음 장면 같은 것) 넷플릭스를 본 사람이라면 유튜브에서 이것도 함께 찾아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하간 녹음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지켜본 바깥양반의 총평은 "퀸시 존스가 고생했네"라는 한 마디로 요약되었다. 역대급 포함 당시의 최고 스타 40여 명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통솔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


넷플릭스에서는 마침 퀸시 존스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있기에 앞부분만 잠깐 보다 말았는데 (중간에 전혀 안 닮아 보이는 아가씨들이 나타나서 아빠라고 부르기에 무슨 영문인가 생각해 보니, 한때 캣피플 언냐랑 살면서 낳은 아기가 이제는 다 커서 어른이었다. 혹시 정준영이 말한 "퀸시 존스 딸"이 바로 그 딸이라도 되었던 건지?) 나중에 알라딘에 들어와 보니 퀸시 존스 자서전 북펀드가 뜨기에, 혹시 돌아가셨나 싶어 확인해 보니 아니었다.


그런데 알라딘 북펀드에 근간 예정으로 나온 책은 퀸시 존스의 "자서전"이라고 광고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에세이"라거나 "자전적 에세이"에 불과해 보인다. 왜냐하면 존스의 공식 자서전은 2002년에 나온 <큐: 퀸시 존스 자서전(Q: THE AUTOBIOGRAPHY OF QUINCY JONES)>이고, 이번에 나올 책은 인생론이나 예술론에 해당하는 <12음: 인생과 창의성에 관하여(12 NOTES: ON LIFE AND CREATIVITY)>라서 원제부터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자전적 에세이에도 저자의 인생에 대한 회고담은 들어 있겠지만 본격적인 자서전만큼 상세하지는 않을 터이니, 혹시나 퀸시 존스의 인생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1차 자료의 번역서를 보기 위해 북펀드에 참여하거나 구매에 동참하는 독자가 뒤늦게나마 속았다는 기분이 드는 일이 없도록 "자서전"과 "자전적 에세이"를 정확히 구분해 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쉽게 말해 퀸시 존스가 "직접 쓴 책"이 모두 "자서전"은 아니라는 거다.


그런데 최근 나온 책들 중에는 "자서전"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게 아닌가 싶은 것들도 없지 않다. 또 다른 북펀드인 엄인호와 안치환의 "자서전"도 실제로는 "대담집"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무하마드 깐수의 "회고록"도 실제로는 이런저런 쪽글을 엮어 만든 "자전적 에세이"에 가까워 보이니 말이다. 어쩐지 "유모차"와 "미망인"을 문맥 무시하고 직독직해해서 어그로만 끌었던 무지와 악의가 "자서전"에까지 적용된 결과인가 싶기도 하고...




[*] 책이 결국 나왔기에 살펴보니 출판사에서도 "자서전"이라는 말을 슬그머니 "자전적 에세이"로 바꿔놓았다. 애초부터 좀 제대로 알고 쓸 것이지... 그나저나 미리보기로 확인하니 요상한 비문도 들어 있고 해서, 딱히 제대로 만든 책 같지는 않더라만... (이것도 알려주면 슬그머니 고치고 입 싹 닫겠지!) 이놈들아, 알바비 내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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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중에 <스탈린의 서재>라는 것이 눈에 띄기에 눌러 보니 제목 그대로 저 악명 높은 소련 독재자의 독서 생활에 관한 책인 모양이다. 문득 히틀러와 마오쩌둥에 대해서도 비슷한 책이 나오지 않았었나 싶어 검색해 보니, 아닌 게 아니라 <히틀러의 비밀 서재>와 <마오의 독서 생활>이라는 책이 각각 간행되었다가 지금은 모두 절판된 모양이다.


세 명 모두 역사에 부정적인 족적을 크게 남긴 사람들이다 보니, 독서라는 외관상 무해하고 종종 바람직한 행동과 연관지어 생각하기가 쉽지 않을 법도 하다. 십중팔구 그렇게 어마어마한 범죄와 실책으로 큰 후유증을 남긴 사람들의 인물됨을 이해하려는 다각도의 노력 가운데 하나로써 평소의 독서 습관에 대해서도 연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전하는 바에 따르면 스탈린은 2만 5천 권, 히틀러는 1만 6천 권에 달하는 장서를 수집했고, 마오쩌둥도 도서관 사서로 경력을 시작해서 말년까지도 독서를 즐겼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세 명 모두 만만찮은 독서 이력을 소유하지 않았을까 짐작할 만하다. 다만 현재 세 명 모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만 놓고 보면, 과연 책이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이건 사실 오늘날의 우리나라 정치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는데, 명목상으로는 이 나라에서 제일 똑똑하고 제일 많이 공부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대통령실이고 국회고 법원이고 검찰이고 정부종합청사고 기타 각종 기관에서는 수시로 실책이며 억지며 궤변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책으로 상징되는 상식과 지식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정치인이다 하면 최소한 <군주론>이나, 하다못해 <삼국지>는 한 번쯤 읽어보았음직 한데, 지난 정부나 현 정부에서나 그런 필독서에 나온 지혜나 조언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었다. 예를 들어 <삼국지>에는 유명한 "읍참마속"의 일화가 나오고, <군주론> 서두에도 신하를 희생양 삼아 백성의 환심을 사라고 나왔는데 말이다.


어쩌면 책과 현실의 괴리야말로, 이론과 실천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터이니, 이런 점에서 보자면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 3인의 삶을 이들의 독서 습관에서 찾으려는 시도 자체도 딱히 의미까지는 없을 수 있다. 제아무리 훌륭한 조언과 지혜를 수없이 이론으로 접했더라도, 정작 이들의 결정과 실천은 수백수천만 인류의 불행을 야기하고 말았으니까.


<전쟁터로 간 책들>에 나오듯, 히틀러에 맞서 싸운 미군 병사들도 진중문고를 통해 독서를 즐겼지만, 어떤 전투나 작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화나 노래처럼 팍팍한 삶에서 위로와 재미를 얻기 위해서였다. 쉽게 말해 현직 대통령이 아무리 책이며 영화나 노래를 많이 접해도, 정작 미쳐 돌아가는 사과며 대파 가격에는 별 영향이 없을 수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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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알라딘 부산센텀점에 누가 군사 분야 책을 여러 권 처분했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몇 권 줍줍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중 한 권인 <세계 전쟁사 사전>을 예전에 서울도서전에서 들춰보았던 기억이 났다. 확인차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14년에 써서 저장한 일기 파일을 오랜만에 열어보니 한동안 잊고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이 생각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보았다.


일기라고 해서 매일 저녁 꼬박꼬박 기록한 것은 아니고, 헌책을 주로 사다 보니 가끔은 중복 구입이 이루어지는 바람에 혼동을 방지하고자 최소한의 구입 일지를 작성하다 보니 어찌어찌 이날 이때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따라서 지금은 중간에 일주일씩 구멍이 숭숭 나버린 불완전한 기록이 되고 말았지만, 10년 전에만 해도 거의 매일같이 헌책을 구입했던 까닭에 내용이 많았다.


2014년에는 무엇보다도 세월호 사건이 있었는데, 막상 그 당일에는 나도 정신이 없었던 까닭인지 아무런 기록을 하지 않았고, 며칠 뒤에야 상황이 일파만파로 전개되는 것을 지켜보며 답답한 심정만 적어놓았을 뿐이었다. 그 외에도 신해철과 로빈 윌리엄스가 사망했고, 이병헌의 "성공적" 스캔들이 있었으며, 판교에서 포미닛 공연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추락사하는 일도 있었다.


책과 관련해서는 봄에 서울도서전에 다녀오고 가을에 와우북에 다녀왔던 기록이 있고, 11월 20일에는 도서정가제 강화 조치 전날이라서 알라딘을 비롯한 주요 인터넷 서점이 접속 마비되는 사태가 있었다. 알라딘 서재와 관련해서는 그해 벌어진 <이방인> 번역 관련 논쟁을 지켜보면서 적은 소감도 남아 있는데, 그 내용을 토대로 나중에 한 마디 슬그머니 거들기도 했던 것 같다.


사생활 면에서의 이런저런 사건들도 기록되어 있었는데, 그중 몇 가지는 10년 뒤인 현재까지도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에 이래저래 기분이 착잡했다. 마침 노인네들과 또다시 으르렁뚝딱을 하고 나서 몇 주째 안부 전화도 피차 안 하고 있는데, 그 원인 노릇을 했던 사건이 딱 10년 전에 있었다는 기록을 보고 나니, 그게 지금까지 지속되나 싶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간 10년 전의 나를 졸지에 대면하고 보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세월 동안 나는 별로 변한 게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의 고민거리는 10년 후인 지금도 고민거리이고, 10년 전의 상한 감정도 10년 후인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며, 자잘한 돈 걱정이며 일 걱정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우습기도 하고 일면 슬프기도 하다.


심지어 10년 전부터 책 좀 덜 사자, 얼른 읽고 버리자 하는 이야기를 수시로 적어 놓았으면서 실제로는 10년 뒤인 지금까지도 읽은 책보다는 사다가 쌓아 놓은 책이 여전히 더 많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아마 앞으로 10년 뒤에도 나귀님은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내가 서울도서전에서 봤다고 생각한 책은 <세계 전쟁사 사전>이 아니라 <세계 군사사 사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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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크>를 찾겠다고 오랜만에 문고판 놓아둔 책장에 들어가 이것저것 뒤지다 보니, 기대했던 책은 못 찾고 엉뚱하게 옛날 문고판 사이에서 월간중앙 별책부록만 여러 권 찾아냈다. 지금은 없어진 홍제동 대양서점에서 예전에 우연히 들렀다가 누군가가 모아 놓은 별책부록만 저렇게 한 묶음 나와 있기에 일괄 만 원인가 주고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1973년 5월호 부록이어서 딱 반세기 전에 나온 책인 <투명한 물체들>은 예전에 안양에 있는 서점에서 인터넷으로 제법 가격을 쳐주고 구입했던 것인데, 불과 수년 만에 다른 헌책방에서 헐값에 구하게 되어 약간은 허무 개그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도 같다. 아껴두느라고 아직까지 읽어보지 않은 책인데 이번 기회에 읽어보려고 도로 꺼내 놓았다. 번역자인 석경징 선생은 과거 박영문고로 간행되었던 <어둠 속의 웃음소리>를 옮기기도 했었고, 일설에는 서울대 재직 시절 대학원 수업에서 톨킨의 <호빗>을 강독하여 결국 그 제자 3인이 <반지전쟁>을 번역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했다고도 전한다. 구글링해 보니 2017년에 타계하신 모양인데, 피천득의 수제자이기도 했고 타계 직전까지 <율리시스> 번역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이래저래 흥미롭다. 최근 나보코프 책이 이것저것 출간되다 못해 단편 전집이며 강의 모음까지 나오고 있으니, 어쩌면 <투명한 물체들>도 조만간 다시 한 번 간행되지 않을까 싶은데, 또 가만 생각해 보니 나보코프의 인기란 것이 살짝 한 풀 꺾인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사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나보코프 좋아하는 독자들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나저나 <라나크>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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