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중에 <스탈린의 서재>라는 것이 눈에 띄기에 눌러 보니 제목 그대로 저 악명 높은 소련 독재자의 독서 생활에 관한 책인 모양이다. 문득 히틀러와 마오쩌둥에 대해서도 비슷한 책이 나오지 않았었나 싶어 검색해 보니, 아닌 게 아니라 <히틀러의 비밀 서재>와 <마오의 독서 생활>이라는 책이 각각 간행되었다가 지금은 모두 절판된 모양이다.


세 명 모두 역사에 부정적인 족적을 크게 남긴 사람들이다 보니, 독서라는 외관상 무해하고 종종 바람직한 행동과 연관지어 생각하기가 쉽지 않을 법도 하다. 십중팔구 그렇게 어마어마한 범죄와 실책으로 큰 후유증을 남긴 사람들의 인물됨을 이해하려는 다각도의 노력 가운데 하나로써 평소의 독서 습관에 대해서도 연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전하는 바에 따르면 스탈린은 2만 5천 권, 히틀러는 1만 6천 권에 달하는 장서를 수집했고, 마오쩌둥도 도서관 사서로 경력을 시작해서 말년까지도 독서를 즐겼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세 명 모두 만만찮은 독서 이력을 소유하지 않았을까 짐작할 만하다. 다만 현재 세 명 모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만 놓고 보면, 과연 책이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이건 사실 오늘날의 우리나라 정치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는데, 명목상으로는 이 나라에서 제일 똑똑하고 제일 많이 공부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대통령실이고 국회고 법원이고 검찰이고 정부종합청사고 기타 각종 기관에서는 수시로 실책이며 억지며 궤변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책으로 상징되는 상식과 지식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정치인이다 하면 최소한 <군주론>이나, 하다못해 <삼국지>는 한 번쯤 읽어보았음직 한데, 지난 정부나 현 정부에서나 그런 필독서에 나온 지혜나 조언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었다. 예를 들어 <삼국지>에는 유명한 "읍참마속"의 일화가 나오고, <군주론> 서두에도 신하를 희생양 삼아 백성의 환심을 사라고 나왔는데 말이다.


어쩌면 책과 현실의 괴리야말로, 이론과 실천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터이니, 이런 점에서 보자면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 3인의 삶을 이들의 독서 습관에서 찾으려는 시도 자체도 딱히 의미까지는 없을 수 있다. 제아무리 훌륭한 조언과 지혜를 수없이 이론으로 접했더라도, 정작 이들의 결정과 실천은 수백수천만 인류의 불행을 야기하고 말았으니까.


<전쟁터로 간 책들>에 나오듯, 히틀러에 맞서 싸운 미군 병사들도 진중문고를 통해 독서를 즐겼지만, 어떤 전투나 작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화나 노래처럼 팍팍한 삶에서 위로와 재미를 얻기 위해서였다. 쉽게 말해 현직 대통령이 아무리 책이며 영화나 노래를 많이 접해도, 정작 미쳐 돌아가는 사과며 대파 가격에는 별 영향이 없을 수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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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알라딘 부산센텀점에 누가 군사 분야 책을 여러 권 처분했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몇 권 줍줍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중 한 권인 <세계 전쟁사 사전>을 예전에 서울도서전에서 들춰보았던 기억이 났다. 확인차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14년에 써서 저장한 일기 파일을 오랜만에 열어보니 한동안 잊고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이 생각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보았다.


일기라고 해서 매일 저녁 꼬박꼬박 기록한 것은 아니고, 헌책을 주로 사다 보니 가끔은 중복 구입이 이루어지는 바람에 혼동을 방지하고자 최소한의 구입 일지를 작성하다 보니 어찌어찌 이날 이때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따라서 지금은 중간에 일주일씩 구멍이 숭숭 나버린 불완전한 기록이 되고 말았지만, 10년 전에만 해도 거의 매일같이 헌책을 구입했던 까닭에 내용이 많았다.


2014년에는 무엇보다도 세월호 사건이 있었는데, 막상 그 당일에는 나도 정신이 없었던 까닭인지 아무런 기록을 하지 않았고, 며칠 뒤에야 상황이 일파만파로 전개되는 것을 지켜보며 답답한 심정만 적어놓았을 뿐이었다. 그 외에도 신해철과 로빈 윌리엄스가 사망했고, 이병헌의 "성공적" 스캔들이 있었으며, 판교에서 포미닛 공연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추락사하는 일도 있었다.


책과 관련해서는 봄에 서울도서전에 다녀오고 가을에 와우북에 다녀왔던 기록이 있고, 11월 20일에는 도서정가제 강화 조치 전날이라서 알라딘을 비롯한 주요 인터넷 서점이 접속 마비되는 사태가 있었다. 알라딘 서재와 관련해서는 그해 벌어진 <이방인> 번역 관련 논쟁을 지켜보면서 적은 소감도 남아 있는데, 그 내용을 토대로 나중에 한 마디 슬그머니 거들기도 했던 것 같다.


사생활 면에서의 이런저런 사건들도 기록되어 있었는데, 그중 몇 가지는 10년 뒤인 현재까지도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에 이래저래 기분이 착잡했다. 마침 노인네들과 또다시 으르렁뚝딱을 하고 나서 몇 주째 안부 전화도 피차 안 하고 있는데, 그 원인 노릇을 했던 사건이 딱 10년 전에 있었다는 기록을 보고 나니, 그게 지금까지 지속되나 싶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간 10년 전의 나를 졸지에 대면하고 보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세월 동안 나는 별로 변한 게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의 고민거리는 10년 후인 지금도 고민거리이고, 10년 전의 상한 감정도 10년 후인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며, 자잘한 돈 걱정이며 일 걱정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우습기도 하고 일면 슬프기도 하다.


심지어 10년 전부터 책 좀 덜 사자, 얼른 읽고 버리자 하는 이야기를 수시로 적어 놓았으면서 실제로는 10년 뒤인 지금까지도 읽은 책보다는 사다가 쌓아 놓은 책이 여전히 더 많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아마 앞으로 10년 뒤에도 나귀님은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내가 서울도서전에서 봤다고 생각한 책은 <세계 전쟁사 사전>이 아니라 <세계 군사사 사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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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크>를 찾겠다고 오랜만에 문고판 놓아둔 책장에 들어가 이것저것 뒤지다 보니, 기대했던 책은 못 찾고 엉뚱하게 옛날 문고판 사이에서 월간중앙 별책부록만 여러 권 찾아냈다. 지금은 없어진 홍제동 대양서점에서 예전에 우연히 들렀다가 누군가가 모아 놓은 별책부록만 저렇게 한 묶음 나와 있기에 일괄 만 원인가 주고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1973년 5월호 부록이어서 딱 반세기 전에 나온 책인 <투명한 물체들>은 예전에 안양에 있는 서점에서 인터넷으로 제법 가격을 쳐주고 구입했던 것인데, 불과 수년 만에 다른 헌책방에서 헐값에 구하게 되어 약간은 허무 개그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도 같다. 아껴두느라고 아직까지 읽어보지 않은 책인데 이번 기회에 읽어보려고 도로 꺼내 놓았다. 번역자인 석경징 선생은 과거 박영문고로 간행되었던 <어둠 속의 웃음소리>를 옮기기도 했었고, 일설에는 서울대 재직 시절 대학원 수업에서 톨킨의 <호빗>을 강독하여 결국 그 제자 3인이 <반지전쟁>을 번역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했다고도 전한다. 구글링해 보니 2017년에 타계하신 모양인데, 피천득의 수제자이기도 했고 타계 직전까지 <율리시스> 번역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이래저래 흥미롭다. 최근 나보코프 책이 이것저것 출간되다 못해 단편 전집이며 강의 모음까지 나오고 있으니, 어쩌면 <투명한 물체들>도 조만간 다시 한 번 간행되지 않을까 싶은데, 또 가만 생각해 보니 나보코프의 인기란 것이 살짝 한 풀 꺾인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사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나보코프 좋아하는 독자들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나저나 <라나크>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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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뉴욕타임스>에서 올해 최고의 시집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던 김혜순의 <날개환상통>이 전미도서상을 탔다고 광고가 나오기에, 그걸 우리나라 사람도 탈 수 있는 건가 싶어 다시 확인해 보니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s)이 아니라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National Book Critics Circle Awards)이었다.


이름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미도서상은 1936년에 시작되어 퓰리처상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도서 분야의 최고 영예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반면, 전미도서비평가상은 1975년에 시작된 것으로 아무래도 비슷한 이름의 전미도서상보다는 인지도나 무게감이 약간은 떨어진다고 봐야 맞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굳이 비유하자면 명칭은 똑같지만 인지도나 무게감 면에서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 미국 아카데미상(Oscar Awards)과 영국 아카데미상(BAFTA Awards)의 관계와도 유사해 보인다. 후자도 1949년에 시작되어 제법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그보다 20년 앞선 1929년에 시작된 전자의 명성에 미치지는 못해 보이기 때문이다.


여하간 알라딘에서는 두 가지 상의 정확한 명칭을 혼동했는지, 광고며 태그에서는 "전미도서상"이라고 잘못 표기했다가, 이벤트 페이지에서는 "전미도서비평가상"이라고 제대로 표기하는 등 들쭉날쭉하다. 물론 고의가 아니라 실수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정확히 무슨 상인지도 모르면서 홍보하는 셈이 아닌가.


그나마 전미도서비평가상은 명칭을 통해 대충 어떤 상인지 짐작이 가는 반면, 가끔은 도대체 들어 본 적도 없는 온갖 생소한 문학상들의 수상 실적을 후광처럼 두르고 나오는 책들도 있으니 우스운 노릇이다. 이에 비하자면 하버드나 서울대 추천 도서라느니, 모 유명 인사의 추천 도서라는 정도는 차라리 양반이다.


심지어 예전에 어떤 출판사에서는 이미 다른 곳에서 간행 중인 책을 중복 간행하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학회를 만들어낸 다음, 자사의 번역서가 그곳에서 수여하는 번역상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일까지 있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수상 실적에 대한 과다한 집착이 부조리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그나저나 나귀님으로선 앞서 <날개환상통>의 영역본을 "2023년 최고의 시" 가운데 하나로 선정한 칼럼니스트 엘리사 가버트의 <뉴욕 타임스> 기사에서 함께 소개된 다른 시집에 눈길이 가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 기사에서 소개한 다섯 권 가운데 하나가 한국계 미국인 여성 작가 모니카 윤의 <프롬프롬>이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베트남계 미국인 여성 작가 에이미 콴 배리의 <옥션> 표지에는 한국인 설치미술가 서도호의 천으로 만든 변기 사진이 들어 있다는 점도 특이했다. 이른바 K-컬처니 국뽕이니 하는 것에는 질색하는 나귀님조차도 이쯤 되니 뭔가 이전과는 다른 조류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인 말고 한국계 미국인으로까지 폭을 넓혀 보면 전미도서비평가상 말고 전미도서상을 이미 수상한 사람도 없지 않다. 이번에 전자를 수상한 김혜순의 시집 번역자인 최돈미가 2020년 전미도서상(즉 후자) 시 부문 수상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인보다 번역자가 더 대단한 사람이라 해야 하는 것 아닌지...








[*] 월요일(3/25)에 다시 확인해 보니 알라딘에서 해당 문구를 슬그머니 고쳐 놓았다. 이놈들아, 알바비 내놔라!





[**] 아직 하나 더 남았다. 이놈들아. 도대체 몇 개를 틀린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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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알라딘 메인에서 얼핏 광고를 보고 아멜리 노통브 (내가 처음 읽었을 때에는 그냥 "노통"이었는데 지금은 "노통브"다. 다음에는 "노통브로"나 "노통브라더" 쯤으로 또 바뀌려나...) 신작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다시 살펴보니 최근 나온 영화 스틸을 표지에 그대로 사용하다 보니 어리숙한 나귀님이 속았던 모양이다.


SF인지 판타지인지 하는 모양이어서 원작자의 다른 작품이 있나 클릭해 보니, 예전에 뿔에서 나왔다가 절판된 <라나크>의 저자였다. 이거... 출판사가 없어지면서 쏟아져 나온 악성 재고 가운데 하나가 되어 알라딘 중고샵에서 권당 천 원씩에도 팔았던 책인데, 지금도 몇 권 눈에 띄기는 하지만 완질은 구하기 어려운 듯하다.


분명히 그때 네 권 모두 사다 놓았던 것 같아서 책장을 뒤졌는데 결국 못 찾고 말았다. 판형이 일반적인 것보다는 살짝 작았다고 기억해서 문고판 넣어둔 책장을 먼저 살펴보았는데, 아예 다른 책더미를 또 파헤쳐야나 싶기도 하다. 생각난 김에 한 번 읽어볼까 싶었는데, 이렇게 또 차일피일 하다가 또 못 읽고 넘어가는 건가...


그나저나 <가여운 것들>이라는 소설 제목을 보니 얼마 전에 읽은 패트릭 화이트의 단편집 <불타버린 사람들>이 생각난다. 원제인 The Burnt Ones 는 보통 "불쌍한 사람들"(poor unfortunates)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관용어의 직역이라고 하니 말이다. 번역은 후졌지만 꽤 오랜만에 읽은 잔재주 없이 묵직한 단편 소설들이었다.


저 표현은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에서 마녀의 노래 "불쌍한 영혼들"(Poor Unfortunate Souls)로 아마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싶다. 더빙판에서는 연극 배우 박정자가 불렀는데, 애초에 <인어공주> 캐스팅이 들어오자 나도 공주 한 번 하는구나 싶어 좋아하다가 "엄마는 마녀겠지!" 하며 딸에게 팩폭을 받았다는 일화도 있었던 듯...


패트릭 화이트는 얼마 전에 <전차를 모는 기수들>을 구입하면서 덩달아 단편집까지 구입한 참이었다. <인간의 나무>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대략 30년쯤 전의 일인데, 아직 책장에서 내가 가진 유일무이한 (아마도) 호주 소설로서 오랫동안 잠자고 있었으니 다시 꺼내서 연이어 읽어보고 정리하든지 해야 되겠다. 





[*] 그런데 솔직히 아멜리 노통브랑 생긴 게 비슷하지 않은가?




[**]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패트릭 화이트의 작품을 더 많이 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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