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의 철학자 겸 정치인 키케로의 삶에서 최고의 순간은 아마 카틸리나 내란 음모를 저지하고 '국부' 칭호를 받은 바로 그때였을 것이다. 하지만 더 넓은 견지에서 따져 보자면, 바로 그 영광의 순간이 키케로의 삶에서는 결정적인 패착이자 이후에 몰아닥친 역풍의 원인이었으며, 머리와 양손이 잘리는 비참한 최후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의 시작이기도 했다.
내란의 주모자 카틸리나는 본래 귀족 출신이지만 공직 선거에서 패배하자 앙심을 품었고, 포퓰리즘 공약으로 얻은 대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무력 행사를 통한 정권 탈취를 모의한다. 정보 유출로 모의가 사전 발각되자 수괴인 카틸리나는 로마를 빠져나갔지만, 공모자 가운데 여러 명이 체포되어 구금된 상태에서 그 처분을 놓고 원로원에서 긴급 회의가 열렸다.
당시 집정관이었던 키케로는 원로원에서 카틸리나를 비난하는 연설을 모두 네 번에 걸쳐 내놓았는데, 그중 마지막 연설에서는 구금된 내란 공모자를 즉결 처형하자고 주장했다. 카이사르가 대안으로 징역형을 제시했지만, 카토의 지지를 얻은 키케로는 결국 내란 공모자 처형을 집행했고, 그 결과로 앞에서 말했듯이 '국부' 칭호를 얻으며 모두의 칭송을 받았다.
후세의 역사가들이 지적했듯 카틸리나 내란 음모 사건은 위험성이 과대평가된 면도 없지 않지만, 제거 대상 1순위로 살생부에 오른 키케로의 입장에서야 상황이 위중하다고 판단할 이유가 충분했다. 문제는 신약성서에서 사도 바울의 사례로 널리 알려졌듯이, 아무리 비상 상황이라도 로마 시민을 정식 재판에 회부하지도 않고 처형한 것이 위법이라는 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년 후에 정적 중 하나가 과거 내란 관련자 처형의 불법성을 지목하며 반격에 나서자, 결국 키케로는 전재산을 빼앗기고 목숨만 건져 로마에서 탈출하는 처참한 신세로 전락했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힘겨루기로 인한 복잡한 정세로 망명 생활은 비교적 금방 끝났지만, 한때 '국부'로 추앙되던 키케로의 정치적 영향력은 크게 쇠퇴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카이사르가 반대했듯 제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도 로마 시민을 즉결 처형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처형된 공모자들이 하나같이 귀족 자제라는 점 역시 강대한 세력과의 숙원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원인이었다. 내란의 위협은 사실이었지만, 대중과 원로원의 지지가 굳건한 상황에서 좀 더 아량을 베풀었다면 어땠을까.
오래 전에 읽은 키케로 전기며 관련 역사서를 다시 한 번 꺼내 뒤적여 본 까닭은 당연히 최근 진행 중인 우리나라의 탄핵 정국 때문이다. 탄핵안 가결 직후부터 야당이 이미 정권이라도 교체된 듯 큰소리치기에 저러다 역풍 맞지 않겠나 싶더니만, 그렇잖아도 이번 공수처의 헛발질에 극우를 중심으로 보수가 결집하며 대립 양상이 점점 본격화되는 듯한 모양새다.
비상 계엄 해제 직후 누군가가 이번 일을 키케로의 카틸리나 내란 음모 저지에 비견했었는데, '선거'와 '내란'과 '살생부'와 '탄핵'이란 친숙한 키워드가 포함된 그 사건도 결국 깔끔하게 마무리되지는 못하고 시빗거리를 남긴 까닭에 키케로 개인의 불행과 로마의 국가적 혼란으로 이어졌음을 감안하면, 우리로서는 가급적 그 선례를 따르지 않기를 바라야겠다.
비상 계엄과 내란 모의를 놓고 지금 여러 갈래로 이루어지고 있는 수사에서는 너도나도 '법잘알'인 관계로 숱한 주장과 해석이 충돌하는 상황이다. 종종 분통 터지는 상황도 없지 않겠지만, 어쨌거나 절차의 정당성을 유지하면서 시빗거리를 남기지 않고 순리대로 진행하여, 내란 동조 및 비호 세력이 꼬투리를 잡을 만한 여지를 없애는 것만이 최선은 아닐까 싶다.
비상 계엄 당일에 해제 결의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한시가 급하니 서두르라는 일부 의원들의 볼멘소리를 가라앉히며, 이것도 다 절차적 정당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국회의장이 타일렀던 것처럼, 말 그대로 급할수록 차분히 가는 것만이 최선은 아닐까.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서는 못 쓴다는 점을 공수처의 헛발질이 보여주지 않았는가.
아울러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관계자들에게는 실실 쪼개지 말고 표정 관리부터 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진지함이 결여되면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사안이 엄중한 만큼 불필요한 조롱과 돌출 발언으로 공연히 상대를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 윤석열에 실망한 유권자라 해서 모두 이재명을 지지할 리 없다는 사실이 최근 여당 지지율 회복 추세로 드러나지 않았나.
비록 형세를 오판해 훗날 반격의 빌미를 자초했던 키케로조차도 내란 공모자 처형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카틸리나 비난 최후 연설의 말미에서는 혹시 자기가 내란 진압에 실패해 살해된다면 가족을 돌봐 달라 부탁하며, 나중에라도 자기 아들을 보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의 자식임을 기억해 달라고 모두를 향해 호소한다.
키케로의 직업에 항상 '웅변가'가 들어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감동적인 발언인데, 물론 탄핵을 주도한 야당 의원들에게 거기 버금갈 명연설을 요구할 생각은 없다. 다만 역사상 가장 똑똑한 철학자 중 하나였던 사람도 최대한 진지하게 행동한 (그런데도 역풍을 맞았던) 선례가 있으니, 그만도 못한 댁들은 알아서 눈치 챙기라고 핀잔을 주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