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꼭 이럴 것 같다. 2049년의 서울특별시는 이럴 가능성이 높다. 물론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 정도에 이를지는 모르겠지만.  

소설가 김탁환과 과학자 정재승의 공저, 소설 [눈 먼 시계공]을 재미있게 읽었다. 솔직히 1권 프롤로그부터 턱 막혔다. 이 소설의 중요한 설정인 서울특별시 보안청 소속 일명 '스티머스' 시스템, 혹은 스티머스팀 소개가 나오는데, 이게 과학저널에 실린 리뷰나 기사를 읽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소설을 기대했는데 과학분야 책을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했다. 어떤 책이든 처음은 낯설고 조심스럽게 익숙해져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소설의 초반은 그 낯섬을 얼마나 빨리 해소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정면돌파를 택한 것 같다. 소설 공학이나 흥미 보다는 뇌과학, 로봇 공학 관련 전문분야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사실과 상상을 소개해 보는 게 더 핵심적이었던 기획소설이라고 나는 본다. 과학, 기술진화, 그에 따른 인간과 생활의 변화, 그로 인한 갈등과 고민해야 할 것들, 미래 도시를 상상해 보는 기회로서 읽는다 해도 제법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본다. 나쁘지 않다.   

이 책에는 대립 세력 중 하나로 첨단화된 도시문명을 거부하는 자연생태주의자들의 조직이 설정되어 있다. 뭐, 미래를 다룬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반문명주의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나는 우리 나라에서 과연 이런 세력이 이 소설에서 다룬 정도의 파워를 갖거나, 도시 테러를 한다거나 뭐 이런 식의 행동이 가능할지 내내 의심스러웠다. 미래일지라도.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나 세력에 대해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가진 극도의 혐오 또는 무관심의 편향이 심한 편인데, 미래라해서 우리 나라 사람들이 크게 변할 것 같지는 않다. 극단이라고 몰리면 중요 순간마다 연대를 압박하거나 철저히 무시되어 고립시키는 게 우리 나라 상황인 것 같아서 말이다. 에필로그에서 주인공 은석범의 선택이 고질적인 신파적 엔딩 강박의 폐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랬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관리 시스템이라고 할까. 도시는 철저히 시스템화하여 될수록 많은 것들을 '관리'하려고 한다. 소설에서 중요한 모티브 중 하나였던 앵거(anger) 클리닉이라든지, 도로에서의 과속이라든지, 위생관련 제어 시스템, 건강상태 관리 및 점검 시스템 등등. 복지와 관련된 것들이 관리될 때 이 또한 얼마나 피곤하게 만들지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관리에서 벗어난 순간 자유의지로 탈도시화된 삶을 살던지 또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 탈사회화되던지 어쩌면 양자택일 상황으로 내몰리는 세계가 되지 않을까.   

 

 

 

 

 

 

 

작가의 말에서 정재승 교수는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보자며 영화쪽 사람들과 술자리에서 이야기했지만, 진지하게 진행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하늘보다 넓은 뇌'를 가진 김탁환을 만나면서 비로소 이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밝힌다. 당연하다. 영화는 돈이 있어야 하고, 배우든, CG든 어쨌든 카메라로 찍기 위한 온갖 것들이 실제화되야 하는 것이다. 아마도 소설이 나온 후 영화쪽 관계자 10명 중 1 명 정도가 책을 만지작 만지작 거리며 영화화 가능성을 생각은 하겠지만, 그 1명 마저도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 것 같다에 한 표 건다.   

'고뇌하는' 주인공 은석범도 지금 보다 좀더 밝아야 한다. 명랑한 검사 나으리 정도 돼 줘야 한다. 우리 나라 관객 '가오'잡는 주인공 별로 안좋아 한다. 과거 이런 '고뇌하는' 지식인형 주인공이 한 때 주름 잡은 때도 있었지만 이젠 피식 웃음 나온다. 젊은 관객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듯 하다. 코믹 캐릭터들도 만들어줘야 하고.

로봇 격투기대회를 어쩔껴? 뺄껴? 그럴 순 없잖습니까. 로보트태권 V 한 두대도 아니고, 격투기 하는 로봇들이 나와줘야 하지말입니다. 투자대비 시장현황을 생각해도 후덜덜하지 말입니다. 현재 로보트태권 V 영화화(애니메이션 아니지 말입니다.)가 진행중이라서 되는 거 보면서 생각해볼 수는 있겠다. 그나저나 그 영화 진행은 잘 되나 몰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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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겼다.  

박범신의 [은교]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몰스킨' 노트가 뭔지 약간 궁금했지만, 바쁘니까 책만 후다닥 읽은 후 닫아두었다. 우연이었다. 회의 시작 전, 사람보다 먼저 한 자리잡고 있는 수첩과 노트에 문득 시선이 갔다. 젠장, M-으로 시작하는 어디선가 낯익은 이름이지 않은가. 헉, 그렇게 유명한 노트일 뿐더러 나도 전혀 몰랐던 것이 아니었더란 말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 연말연시에 선물 받곤 했던 기억이 새삼 났다. 젠장. 그렇게 가까이, 쬐끔 흔하게 봤던 것이었더란 말이냐. 회의 시작 전에 이 무식한 나를 위해 그 사람은 앞장서서 이 브랜드에 대해 얘기해주더라. 알고 봤더니 그 사람 이 브랜드 빠 수준이더만. 단, 그 사람, 만년필은 쓰지 않는다. BIG 펜으로 수첩에 끄적거리면 제법 간지나는 글씨와 그림이 그려진다.    

난 이런 노트, 수첩, 다이어리를 쓰지 않는다. 선물로 받더라도 다른 이에게 주거나 그냥 쌓아둔다.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징크스라면 징크스인데, 날짜 박혀진, 스케쥴러가 있는 수첩이나 다이어리는 절대 쓰지 않는다. 그 공란들이 난 불길하다.  

나는 대신 스프링 달린 기자수첩을 쓴다. 핸드폰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불편함은 없다. 이 막 대하는 수첩이 1년이면 대 여섯개 정도 된다. 이것도 ... 짐이다. 가끔... 대외적으로 계면쩍은 적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상하게... 미팅 때 펼쳐놓는 노트나 수첩, 다이어리도 그 사람을 읽게 하는 것이라 내가 다른 이에게 어떻게 보일지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뭐, 어쩔 수 없다. 오래된 습관이고 마음이 편한 쪽을 따르는 게 낫다.  

브랜드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은교]의 마지막에 은교는 시인 이적요가 남긴 노트를 불에 태워버린다. 그리고 알듯 모를듯한 말을 한다.  

"할아부지요. 몰스킨에다...... 만년필로 썼네요. 자기만 멋 내구......" 

"......노트요. 내가 갖고 싶었던 노트......"  

...... 시인 이적요는 검은 인조가죽 표지로 된 몰스킨 노트에, 만년필로 또박또박 써서 그것을 남겼다. 그러나 다 타버리고 남은 것은, 노트를 묶도록 된 검정 끈뿐이었다. "좋은 건데...... 노트만은 아까워요......" 그녀가 말했다.  

[은교]의 마지막 부분이다. 은교에게 이적요는 반 고흐, 피카소, 헤밍웨이처럼 '아티스트' 간지를 가진 어떤 환상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환상은 이적요에게 품고, 서지우와는 실제적 쾌락을 나눈다?  

브랜드. 명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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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밤에만 읽어'주길 바랬지만, 난 아침에도 읽고 낮에도 읽고, 저녁에도 읽었다. 밤에만은 읽지를 못했다. 잠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읽는 내내 사랑얘기를 쓰고 싶다던(치정얘기를 쓰고 싶다고 했던가?) 김훈이 소설을 썼다면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다시 한번, 나는 이런 격정적 감정이 휘몰아치는 이야기를 정말 좋아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소설은 삼각관계의 얘기를 기본으로 삼았다. 70이 가까운 시인과 그의 40대 제자,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들어온 여고생. 시인이 자기가 죽은 지 1년 후에 공개하라고 유언한 노트와 제자가 남긴  일기가 교차서술되는데, 일어난 같은 사건을 두고 두 사람이 다르게 받아들이며 사건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거기에 이제는 대학생이 된 그 여고생, 은교의 애매모호한 진술이 언뜻언뜻 끼어들며 이야기는 세 사람이 각자 품었던 갈망의 어긋남을 보여준다. 삼각관계의 흔하디 흔한, 그렇고 그런 얘기로 빠지는 걸 가까스로 막아준 것은 아마도 늙어감과 젊다는 것, 죽음을 가까이 보는 것과 아직은 아득한 것 사이의 긴장을 원숙하게 숙고할 줄 아는 작가의 세월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 은교의 것만은 진술이 없다, 소설 구도상 은교까지 진술할 몫을 가진다면 뻣뻣해진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보다는 70이 다 되어도 대상은 대상일 뿐, 그런 '자리'를 차지한 여자를 진술할 수는 없었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박범신의 다른 소설을 본 적이 없어서 자신할 수는 없다.  

 

 

 

 

 

 

 

한겨레21에 실린 임옥희 씨의 글은 이 시대에 [은교]를 보는 또 다른 관점을 보태주는 듯하다.  

'왜 일흔 남자에게 열일곱 소녀가 필요한가 - 저물녘의 황홀, 불멸의 환상이 없는 노령화 시대가 맞이한 사랑의 정치경제학(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723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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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배우들과 유럽적 취향으로 꽤나 볼만한 영화를 만들어낸 톰 포드. <싱글맨>의 원작 또한 표지만으로도 멋지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마스트로얀니를 생각나게 하는 이미지다. 영화도 펠리니의 자장에서 크게 벗어나 보이진 않았다. 왕가윈가? 

 

이런 원작을 발굴해낸다는 거.  

 

 

 

 

 

 

 

원작이 궁금해진다. 1964년, 작가가 60세에 쓴 소설. 소설 띠지에 쓰여진 카피, '그가 없는 오늘도 삶은 계속된다'는 정말 적합한 카피인듯하다, 영화만 보고 짐작하건데. 

1946년생이라는, 그러니까 올해 65세인 박범신의 [은교]도 읽을 예정이다. 책 소개만 보자면 비슷한 갈망이 표현된 책 아닐까 싶어서.  

 

 

 

 

 

 

 

진공상태같은 상황 속에서 부지런히 책을 손에 쥐고 있다. 하루 해가 지는 게 안타깝고, 밤이면 까무룩 기절하듯이 무거운 잠을 자고, 새벽에 어김없이 일어나지는 희한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내 자신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두려움? 

아, 영화 <싱글맨>에서는 올더스 헉슬리가 언급된다. 주인공인 조지가 수업시간에 다뤘던 헉슬리의 책이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직 [멋진 신세계]도 읽지 못했으므로, 더불어 기억해둔다.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와 헉슬리가 공동 집필했다는 시나리오도 있다. 궁금하기도 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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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곡절을 좀 겪은 후 독일작가의 로맨틱 코미디 소설이라는 [이별대행 에이전시]를 주말에 읽었다. 참, 어쩌다 보니 내가 이런 류의 소설을 읽게도 되는구나, 싶었다. 자리잡고 앉아 펼친 첫부분부터 한심스러웠다.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잠을 자지 않나, 결혼식 꿈을 꾸지 않나,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분위기가 어떤지에 대해 전혀 무지한 여직원을 보는 불편함이 꾸역꾸역 밀려왔다. 참고 읽어봐야지, 왠걸? 점점 키득거리며 웃게 되었다.  

 

 

 

 

 

 

 

원제는 [위로반창고], [이별대행 에이전시] 번역본 제목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로맨틱코미디 장르가 지닌 요소들을 다 거느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웬수처럼 만나는 두 남녀 주인공, 우정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베프, '진정한' 어쩌구... 인물들의 변화와 성장, 헤피엔딩, 기타 등등)  

이 '에이전시'가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한마디로 '회사'다. 뭐라고 이름 붙이고 포장해도 '회사'다. 각종 다양한 종류의 업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의 존재. 사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까지 이제는 공공연한 의뢰와 서비스 제공을 통한 '산업'의 영역으로 포괄된다. 대중문화계에서 상상력이 이런 쪽으로 늘어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연극에서 이제 곧 영화화될 <김종욱 찾기>. <광식이 동생 광태>의 김현석 감독의 <시라노 프로젝트>(제목이 <시라노:연애조작단>으로 최근에 바뀐 모양이다. 연애성공을 위해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나온다.). 그리고 임성순의 [컨설턴트].   

탐정에게 어느 날, 의뢰인이 찾아오면서 시작되는 탐정소설, 추리범죄소설처럼, 회사에 어느 날, 고객이 찾아오면서 시작되는 이런 회사시리즈가 나올 법하다. 

 

 

 

 

 

 

어렸을 때 봤던 단편, 스티븐 킹의 작품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금연주식회사] 의 인상이 강했다. 스티븐 킹 단편집에 실린 모양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이런 류의 영화를 본 듯 하지만, 기억에 남는 건, <게임>(데이비드 핀처, 1998)이다. 어떤 대행회사, 어떤 내용을 담느냐가 역시 관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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