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을 차일피일 미루며 미적대다가 마음이 점차 우울해지는 현상을 많이 겪는다. 지금이 딱 그짝이다. 어차피 해야할 일이다. 그래도 어쨌든... 느즈막히 일어나 토요일에 게시되는 프레시안 북들을 살펴보는 데 오늘도 역시나 만만찮은 분량의 글들을 읽느라 오전 시간이 훌러덩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태블릿PC가 이런 기사 읽는데 유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요즘 든다. 아무래도 좀 편한 자세에서 글들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긴 해도 여전히 긴 글들을 스크롤해가며 보는 건 불편할 듯하다. 종이에 인쇄해서 편하게 보는 쪽을 따라갈 수 없을 것같다. 덕분에 짐이 늘어가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사람마다 편차가 있겠지. 종이야 미안해.
눈에 띄는 책은 역시 선대인의 [프리라이더]. 보관함에 넣어뒀다가 잊어버리고 있었다. 지난 주 금요일에 주문했던 책들은 안내와 다르게 바로 다음날 일찍 도착했었다. 민망하게도... [박근혜현상]을 제외하고 다른 책들은 첫페이지도 들쳐보지 못했다. 뭐 급한 책들이 아니라 두고 읽으려고 주문했던 책들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일주일동안 그 책들에 눈길 한 번 주지 못하고 방치(모셔뒀다기 보다)했다는 건 좀 심각했다. 가끔 브래드버리의 [화씨451]에 나오는 방화서장 비티를 생각한다. 책이 금지된 미래, 방화수들은 책을 불태우는 일을 하는데 바로 그 책임자 서장의 집에는 어마어마한 책이 소장되어 있다. "책을 소유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네,몬테그. 읽는 게 문제지. 그래 맞아. 난 이것들을 그저 가지고 있을 뿐이지 읽지는 않는다네." 난... 읽는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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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길로 샜는데, [프리라이더]에 대해 이상이 제주대 교수이자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가 논평한 글도 일단 프린트해두었다.
올해와 '대회전'의 시기인 2012년을 앞두고 화두는 단연 '복지'가 될 것 같다. 뭐, 북한변수가 있긴 하겠지만 제발 쫌. 선택적 복지든 보편적 복지든 어쨌든 정치권이 이 화두를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만큼 20세기 말부터 21세기 10년을 통과해오면서 사람들이 너무 지치고 불안해있는 것만은 분명하므로. 그리고 이제 더 이상 피해갈 수도 미룰 수도 없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래서 몇 년 전만 해도 복지를 위한 증세가 내 일이 되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만 생각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단 공정과 정의가 밑바탕에 깔려야 감수할 의지도 생길 것이다. 그러므로 제 아무리 '포퓰리즘'이니 국가를 망국적 상태에 빠트리는 얘기라고 노발대발해도 어느 시점에서는 돈마련을 제대로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공세를 벌이는 국면으로 변할 것이다. [프리라이더]를 이 시점에서 읽어봐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이상이 교수는 좀 아쉬움을 표한 것 같지만.
더불어 관심가는 도서는 지난 몇 년 사이에 복지국가의 전망을 얘기해온 책들이다. 최근에 읽은 조국,오연호의 대담집 [진보집권플랜]을 통해 알게 된 건데, 2007년에 다음 세 권이 한꺼번에 나왔다는 것이다. 유시민의 [대한민국개조론]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복지국가혁명], 민노당 진보정치연구소의 [사회국가, 한국사회 재설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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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이상이 교수가 공동대표로 있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나온 책들을 살펴보고 싶다. 복지국가이야기 시리즈로 1권은 [복지국가혁명]이고, 이어 2,3,4권이 2010년에 연이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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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현상]과 관련하여 프레시안의 대담이 정리되어 있어서 흥미롭게 봤다. 책에서 안병진의 글<포스트모던 시대, 박근혜 정치의 작동방식>은 박근혜현상의 문화정치학적 분석을 시도하면서 다른 글들과 다소 차별성을 갖는 듯했는데 끝까지 읽어보면 자신이 끌어대온 논리나 이론과 박근혜가 과연 맞는 예인지 아리송하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안병진은 아무래도 박근혜를 자기가 시도하는 논리에 흥미롭게 시험해볼 대상으로 보고 있는 듯했다. 아님 박근혜의 '귀족적 우아함'을 흠모하는지도. 내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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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현상에 박근혜가 없다는 말은 본질의 일부를 나타내는 말인 것 같다. 30년 넘게 정치판에서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극적인 순간에 힘을 보여주는 정치인으로서의 파워도 보여줬고, 여전히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여주고 있지만, 나는 어째서 박근혜 거품론을 거품물고 지지하는지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갖게 되는 편향적 견해일 수도 있다. 책에서도 필자들이 지적하듯이 박근혜가 가지고 있던 박정희의 아우라를 아이러니하게도 MB가 집권하면서 휘발시켜버렸다. 글쎄 사람들이 더 이상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박근혜를 통해 보려고 할까? 어른들은 어떨지 몰라도 20대, 30대에게 먹힐 수 있을런지. 그래서 박정희가 아니라 육영수라고? 내 참, 할말이 없다.
그래서 문제는 대항마인데, 요즘 민주당을 비롯하여 범진보세력간에 연합이니 통합이니 난리도 아니다. 사람들의 의식이 중도,좌클릭함으로써 지형은 이들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는데 이들이 믿을만한 결과물을 내올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리고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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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란 이해하기 무척 어려운 사람들이다. 무슨 여자의 마음잡기 이런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든 존재론적으로든 다루기 까다로운 주체라는 것이다. 일전에 로쟈님 덕분에 <다윈의 대답>시리즈를 읽게 됐는데, 그 세 번째 권이 [다윈의 대답3:남자 일과 여자 일은 따로 있는가]이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에게 주어지는 일자리의 열악함과 불안정함을 꼭 짚고 넘어가야 하겠지만, 어쨌든 일반적으로 생물학적인 성차와 성공에 대한 다른 정의, 일의 우선순위와 행복을 느끼게 되는 사안이 다른 점들을 생각해보게 해주는 책이었다. 이러니 여성들이 어찌 까다롭지 않을 수 있는가. 어려운 문제다.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카피들은 이렇다.
"비즈니스 정글보다 더 위험한 스위트홈에 대하여", "여자의 경제적 자립과 행복에 대한 도발적 담론". 원제목은 "여자들의 오류 The Femine Mistake"라는데, 오늘날 여자들이 하게 되는 오류, 실수는 무엇일지 들여다볼만 하겠다. 몇 장 읽지 못한 [안나카레니나] 3권. 안나가 저지른 오류가 뭐길래 기차에 몸을 던져야 했나, 아직도 알지 못했다. 결혼한 귀족 여성으로서 새 남자와 바람났기 때문에, 애까지 버리고... 같은 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단순 연결이 아니라 안나 스스로 느꼈을 그 어떤 심리의 과정을 톨스토이가 어떻게 써놓았을지에 대한 기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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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머리맡에 둔 책들은 제러미 러프킨의 [노동의 종말]([박근혜현상]을 읽다 안병진의 글을 보면서 제러미 러프킨의 '종말' 시리즈를 모셔뒀음을 깨닫고 한 권 꺼내놓았다. 오래된 책인데 미래를 넘겨볼 수 있을만한지 궁금했다.)과 장하준이 소개한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다. 꽤 오랫동안 머리맡에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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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부터 서서히 나의 독서성향이 소설로부터 사회경제서적으로 방향전환하고 있는 것 같다. 읽고 싶은 장르소설도 많지만 지금으로선 사회돌아가는 걸 좀 신경써서 봐야할 것 같다.
책 생각하다 오전이 가버렸다. 점심 먹고는 일 마무리를 지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