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고색창연한 단어를 2014년, 대통령이 국민에게 한다는 담화문에 주워넣은 자는 누굴까?

기추니. .... 그래, 그 자라면.... 2007년 국회 본회의가 진행되고 있을 때 뒷줄에 앉아 이상배 의원과 한자쓰기 대결을 벌이며 놀고 있던 장면이 카메라에 딱 포착된 바 있다.

기추니, ... 그네 보는 것도 힘든데 기추니까지 보게 되는, 그네가 오니까 기추니까지 덤으로 보게되는 거지.

깜도 안되는 데다 표독스러웠는데 이제는 오버 연기까지 더해 가증스럽기가 하늘을 찌를 지경이다.  

이 현실을 참 ... 다들 어떻게 견디나 모르겠다. 비위가 약한 데는 단 것을 먹는 게 좋다해서 대추차에 호두,율무가루를 섞어 마시며 달래고 있다.

 

해경이 그토록 소극적으로 움직인 게 정말 조직이 말도 아니게 무너져 있어서 그런 것일까? 정말 그런 건가?

나는 정말 이해가 안된다. 아무리 조직이 무너져 있어도 그렇지 당장 눈 앞에서 배가 침몰하고 수백명의 아이들과 사람들이 배안에 갇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럴 수가 있다는 게 나는 도저히 도저히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지원 가능한 수단을 사용하지도 않고, 심지어 거부하면서까지 손놓고 있었다는 게 나는 정말 이해가 안된다. 아무리 매뉴얼이 없고, 매뉴얼대로 하기가 어려웠다해도 ... 그래도 그 정도까지였다는 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뭐가 있는 거야?

몇 년이 걸린다해도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당시 행동분석, 심리까지 철저히, A부터 Z까지 관련된 사항 전부를 촘촘히 분석한 보고서가 나왔으면 싶다. 국회, 정치 뿐만 아니라 학자들, 탐사기자들 모두 달라붙어 조사연구해줬으면 한다. 반드시 해야 한다.

..........................................................................

도돌이표 같은 생각. 이런 탐사와 연구와 분석, 대안 보고서들이 나올 수준을 갖춘 사회라면 ... 세월호 참사 같은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혹 사고가 났더라도 이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 

 

원래는 읽었던 책들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엉뚱한 글이 나왔다.

[영원한 제국] 이래 오랜만에 이인화의 [지옥설계도]를 읽었는데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이 비슷한 내용과 형식의 내가 읽었던 한국 소설로는 [팔란티어]을 떠올릴 수 있었다. [팔란티어]는 게임의 세계였고, [지옥설계도]는 최면의 세계라는 차이가 있지만 이인화가 게임폐인으로 살았던 경험을 토대로 집필된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면의 세계, 인페르노 나인은 곧 중세전쟁 게임의 세계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영원한 제국]에서 정조를 다룰 때도 느낀 거지만, 현실에서의 개혁, 저항 같은 것들에 허무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 게임 온라인 세계에서 수많은 게임자들이 가진 헌신에 대해서는 그렇게 간단히 '잊지못할 경험'으로서 감동할 수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부재하는 이상에 헌신하는 순교자'들을 어째 게임세상에서 발견한다는 건지 안타깝다.

강고한 현실의 힘을 과도하게 보기 때문이고 현실은 늘 약육강식의 원리대로 흘러간다는 믿음 때문일 듯하다.

김훈식으로, "인류의 역사가 약육강식으로 이루어져왔다는 것을 '긍정'할 수는 없어도 '인정'할 수는 있다"는 태도와 같은 것이려나? 

[스토리텔링 진화론]에서 [논어] 서사를 분석하는 데서도 공자의 제자들의 이상을 '어려운 꿈이고 너무 숭고한 환상'이라고 본다. 그래 '환상'일 수 있지. 그 환상에 헌신하는 게임자들의 순수를 보듯이 현실에서 이상을 향해 저항하는 자들을 볼 수는 없는 걸까?

환상같고, 도저히 이뤄지지 않을 것 같은 것을 향해 무모한 도전을 하는 자들에 의해 세상은 조금씩이나마 변화하고 진보한 것 아닌가?

[스토리텔링 진화론]은 읽고 있는 중이지만, '스토리헬퍼'와 함께 힘든 작업과 의미 있는 작업을 했다.

스토리헬퍼(storyhelper.co.kr)에 들어가서 이리저리 살펴봤는데 재미있고, 초보자들은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그거 들여다보는 시간에 상상력과 생각을 더 많이, 끝까지 가보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다. 스토리헬퍼 같은 글쓰기 도우미는 살짝 도와주는 도구일 수밖에 없다. 대신 수많은 영화와 애니메이션등을 분석하여 놓았다는 점은 대단하다고 밖에.

영화와 게임 시나리오에 적합하고 장르 소설 집필에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외 소설 집필 때는 글쎄.

 

플로베르처럼, 자신의 필체를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때까지 수정을 계속했듯이, 발자크가 교정본으로도 고치고, 또 고치고, 심지어 자기 돈을 들여 교정비를 대느라 원고료를 다 날렸을 정도까지, 생각하고 생각하고 끝까지 밀어부치고, 고치고, 고치고 ... 그러는 거다.

또... 츠바이크의 소설은 처음 보는데, [초조한 마음]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수다장이다. 그런데 한번 잡으면 놓기가 쉽지 않다. 이야기좋아하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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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먹고 혼곤한 낮잠.
깨고 일어 났더니 오후 해가 여전히 밝다.
그래, 34년전 5월 18일도 일요일이었다. 그날도 맑은 일요일이었다 ........................
엠비씨가 불에 타던 날이 며칠이었더라?
윤형빈감독의 영화 <군도> 결말이 어떨지 궁금하다.
죽음으로서 승리한다는거....너무 잔인하다. 참담하다. 오늘 패배하지만 결국 승리한다는 말 ...말장난같다.
한번은 넘겨야 할 일들을 넘지 못하는건 ....순해서인가? 저들이 너무 교묘해서인가?
끝까지 밀어부칠 힘을 왜 우리는 못갖는걸까?
늘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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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작가들 시리즈 세번째, [플로베르 : 자유와 문학의 수도승]의 저자 허버트 로트먼에 따르면,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플로베르 박물관과 크루아세 지역의 박물관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플로베르의 앵무새'란 플로베르가 57세에 발표한 단편 [단순한 마음(Un Coeur Simple)]을 쓰기 위해 자연사 박물관에서 빌려다 관찰했던 앵무새다.

루앙의 자연사박물관 대장에는 '귀스타브 플로베르 씨에게 대여함 : 아마존 앵무새의 박제 하나'라고 쓰여 있다, 고 로트먼 전기에 의하면 그렇다. 아마존 앵무새. 로트먼의 책에 사진도 있다.

줄리엔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그 앵무새를 찾아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내가 작년에 읽었다. 재밌게 읽었다.

플로베르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아마 그 때문이었는데... 소설은 생각나는 게 거의 없다.

그래서 이번에 또 읽어보려 한다. 읽고 꼭 페이퍼를 쓰....그때 봐서. 힛.

 

플로베르의 [단순한 마음]은 그가 아마 처음으로 시도해본 단편들 - 세가지 이야기, '수도사 성 쥘리앵 전', '단순한 마음', '에로디아스'- 중 하나다. 우리에게 번역된 건 민희식 번역으로 된 [플로베르 단편집]에 수록된 게 유일한 듯하다. 절판되지 않고 여전히 판매되고 있어 오늘 주문했다. 이럴 땐 감사할 뿐이다. 설마 번역이 집어던질 수준은 아니겠지.

 

 

 

 

 

 

 

 

 

 

 

 

 

 

[플로베르 단편집]엔, '순박한 마음'으로 되어 있다.

소설 한 편을 쓰기 위해 엄청난 자료와 독서, 관찰을 필요로 했던 플로베르였기에 [순박한 마음]의 내용,

'한 남자, 여주인의 아이들, 조카, 자기가 돌보는 노인, 그리고 앵무새를 차례로 사랑하다가 앵무새가 죽자 그것을 박제로 만들고 자신의 임종을 맞이하여 그 앵무새와 성령을 혼동하게 되는 한 불쌍한 시골 여자의 이야기'라고 지인에게 들려줬다니,

저 앵무새를 꼭 눈앞에서 오래 두고 관찰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앵무새의 습관과 질병에 관한 것을 알아보고 싶어져'.

 

그런데, 이 단편이 생각보다 대단한 모양이다.

오랜 벗으로 교류했던 조르주 상드에게 플로베르는 이 작품이야말로 '윤리적인 경향, 아니 그보다 인간적인 측면이 당신 마음에 들 것입니다! 안녕, 나의 스승, 당신께 부드러운 키스를 보냅니다.'라고 편지를 써 보냈지만, 플로베르의 마음의 변화를 보여주는 이 소설을 조르주 상드는 끝내 읽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조르주 상드는 늘 플로베르를 존중하고 그의 작품세계를 인정했지만, '당신이 쓴 작품에서는 당신의 일면이 전혀 드러나지도 폭로되지도 않는다는 점'을 불만스러워했고, 플로베르에게 왜 글쓰기가 그토록 어렵고 고통스러워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다. '조르주 상드는 감정을 중시했고, 플로베르는 감정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 예술가'였다.

게다가 이 [순박한 마음]은 [보바리부인]과 함께 플로베르의 대표작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한다. 그 정도의 작품인지는 봐야 알겠지만 .... 봐도 모를 확률이 높지만.   

 

소설 한 편을 쓰는데 보통 5년 정도가 걸리는 플로베르였던 듯 싶다. 1848년 파리혁명 등 격동을 보면서 이미 '그 시대의 어리석음(플로베르는 귀족정치에 대한 믿음을 가진 걸로 보인다)을 경험한 후에 그 어리석음의 기록을 수집하기 시작하는 두 필경사의 이야기'를 착상했던 때로부터 1872년 집필을 시작하여 그 한해만 150권 정도의 책을 봤다.

이 [부바르와 폐퀴셰]는 1872년부터 약 10년 뒤 1880년까지 1500권이 넘는 책의 내용을 요약, 수십건의 색인노트를 만들어놓았지만 결국 플로베르가 죽은 그해까지 완성하지 못했다. 미완성이 되었다.

지독하다. 불행하다. 플로베르의 만년은 평생을 돌보았던 조카딸 부부의 파산으로 플로베르에게 빚독촉 문서가 날라오고 그때마다 플로베르는 감정적으로 심하게 흔들렸던 듯 싶다. 돈 때문에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지인들에게 일자리를 부탁했고 도서관 자리 하나 때문에 권력싸움에 밀려나는 굴욕을 맞보기도 하는 등, 쉽지 않은 말년을 보낸다. 작가들을 비롯해 지인들의 방문을 받기도 하고 자신이 움직여 만나기도 했지만 말년의 시간 대부분은 혼자서 지내며 14시간은 보통이고 18시간 정도를 집필하며 글을 썼다.

 

20년 어린 에밀졸라와의 관계, 그리고 서로 다른 생각과 스타일 등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플로베르는 표면을 다룰 뿐 인물의 내부에 이르지는 못한다'는 평이라든지, '졸라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 하게 재현하고자 했고 플로베르는 언어에서부터 출발했다'.

플로베르 자신도, 정작 당사자도 친자관계를 몰랐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떠돈 기 드 모파상과의 관계도 새삼스러웠다.

모파상에게는 작가라면 '독창성'을 요구했다.

'아주 작은 사물에도 알려지지 않은 것이 담겨있는 법이다. ... 불과 들판의 나무를 묘사하려면 다른 불이나 나무와 비슷하게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앞에 서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앵무새는 꼭 가져왔어야 했다.

정작, 졸라, 플로베르와 함께 선배 대접을 받으며 한 스타일로 묶였던 에드몽 드 공쿠르가 성실하게 남긴 메모에는 '한 시간에 한 단어씩 써서 책을 쓰는 사람'이라는 놀림과 함께 '독창성 없는 지극히 평범한 재능 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평이 남아있다. 

 

생전의 오랜 적이었던 쥘 바르메 도르비라는 이는 '(플로베르는)영감을 받은 예술가이기 보다는 자신의 작업에 매우 성실한 문학노동자'라고 평했다. [부바르와 페퀴셰]는 '단순소박한 중얼거림일 뿐'이라는 것이다.

 

장폴 사르트르는 플로베르 연구서 [집안의 천치]를 남겼는데, ...... 연구서로서의 결점을 많이 지적받는 모양이다.

혹, 플로베르 연구서로서 보다는 사르트르 자신의 분석으로서 플로베르를 우회한 것 아닌가, 아님 플로베르란 단순히 맥거핀에 불과한가? 안 봤으니 알 수 없다.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한 작가를 맥거핀으로 하여 스스로를 숨긴다 혹은 밝힌다?

 

프랑스 현대작가들에게 플로베르는 한 '물결'의 선배가 됐고, 라틴아메리카 일단의 작가세대에게 플로베르는 또 선두 깃발이 되기도 했다 한다. 플로베르의 힘이란 무엇인가?

[보바리부인]을 읽어보려 노력하고 있다. 간결, 명확, 도약, 유머. 내가 좋아하는 문장의 요소다.

그에 비하면 [보바리부인]은 익히 알고 있는 엠마를 빼면 냉담하게 읽게 된다. 플로베르가 '바로 그거야'하며 웃을 일일지도 모른다.

프란츠 카프카도 숭배했던 플로베르.

급기야 줄리엔 반스는 [플로베르의 앵무새]까지 관심을 가졌다.

 

다음엔 허버트 로트먼의 [카뮈 :지상의 인간]을 볼까 한다. 당장은 아니지만.

 

이렇게 긴 글을. 쯧, 난 긴 글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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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북만으로 나와있나?

아직 e북은 영~......................

대실해밋 단편 모음집 3권이다.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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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지지율이 40%대로 내려앉았다는 보도.

내가 잘못 생각했다. 33~35%대가 콘크리트 지지율이라고 생각했는데, 40% 정도가 콘크리트 지지율인 듯 싶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선. 아, 무섭다. 그리고 별로 기대할만한 세상이 못된다는 걸 다시 확인한다.

나이가 들면서 변한 것 중 하나가 이 사회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게 된 것이다.

난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적대시하는 건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새누리당이 미국같은 나라의 보수당과 같은가?

일제시대, 해방후, 이승만의 한독당, 박정희의 자유당,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 이 뿌리를 인정하라고?

그들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가 30%를 훌쩍 넘고 40%에 이르는 이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나?

미안하지만 늘 이 정도 수준에서 맴돌거라 생각한다. 이게 내가 사는 나라다. 어쩌겠나? 난 떠나고 싶은 마음 없다. 떠날 수도 없고.

 

5월 독서계획이라고 거창하게 잡아봤지만 ... 풋, 언제나 그렇듯, 잡아놓은 고기 밥 안주듯, 챙겨놓고는, 다른 책들을 보고 있다.

책을 구입한지 좀 됐지만, 이제야 떠들어 보고 있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서간집,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대실해밋과 레이먼드 챈들러의 스타일이 좋다. 지난 달, 조금씩 조금씩 읽으며 몸 떨리게 좋았던 대실해밋의 중단편집, [중국여인들의 죽음]

이미 발간된 그의 전집을 구입해 읽기도 했지만, 다시 한번 그의 작품을 대하며 내가 그의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걸 확인했다.

짧고 간결한 문장, 얼척없는 비유를 통한 유머, 알짤없는 도약, 세상사에 대한 참혹하지만 별일아니듯 주어삼킬 수 있는 쓸쓸하면서도 담백한 냉소, 낭만적인 인물들까지.

대실(1894~1961)은 환갑이 넘어,

"내가 자기 복제를 하는 것 같아서 글쓰기를 관뒀다. 자신의 스타일을 발견한 순간, 그것은 종말의 시작이다." (1956)

라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그를 절망케 한 것이라니, 비극이다.

이제는 너무도 유명해진, '챈들러 스타일'.

자신은 '영감을 기다리는 편'이라며,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야말로 생명력을 지닌 글이라는데,

'전업작가라면 적어도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일정한 시간을 두고, 그 시간에는 글쓰기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고 주장한다. '글을 쓰거나 아무 일도 하지 말 것'.

저마다 일하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초보작가는 따를 만하지 않나 싶다.

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사람 많다.

 

 

 

 

 

 

 

 

 

 

 

 

 

 

[보바리부인]은 거의 5년 여에 걸쳐 작업됐는데, 1851년에 '나는 어젯밤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벌써부터 문체의 어려움이 나를 불안하게 합니다...'로 편지를 쓰며 알린 지 5년 뒤, 플로베르는 1856년, 오랜 지인이자 <라 르뷔 드 파리> 편집자인 뒤 캉에게 원고를 보낸다.

뒤 캉은 너무나 상세한 묘사들 때문에 '평판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고 별로 흥미롭지 못한 문체의 복잡한 작품으로 데뷔를 하게 될 것'이라며 수정할 권리를 달라고 보챈다.

물론 플로베르가 이를 받아들일 리 없다.

[보바리부인]은 풍기문란을 이유로 법정 소송도 당하고 잡지에는 삭제된 채 대신 이유가 들어선 연재를 겪는 등, 난리 법석을 겪은 후 별다른 수정없이 출간하게 된다.

플로베르의 문체에 대한 과도한 근심은 꽤나 유명한 모양이다.

'자신의 필체를 보기만해도 구역질이 날 때까지 수정을 계속'해대는 작가였다.

작가의 팔자도 참. ...

여튼 그런 작업 방식을 지닌 플로베르의 [보바리부인]이니, 정말 세심하게 읽어야 하지 않겠나.

샤를과 엠마가 결혼 후 엠마의 권태가 시작되는 지점까지 읽은 후 나의 독서는 멈춰있다. 

이번에 읽을 땐 달리 보이겠지?

 

 

 

 

 

 

 

 

 

 

 

 

 

 

 

줄리안 반즈의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읽었는데도, 잘 모르겠다. 읽긴 읽었는데, 기억이 잘 안난다. 다시 읽어봐야할 책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자서전도 도서관에서 빌려다놨는데, 읽을만 한지 모르겠다.

그리고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도. ... 자서전, 자서전 비슷한 것, ... 자신을 돌아보는 방식은 어떤가.

그런데... 다들 오래전 사람들이다.

악필인 작가들도 있는 걸로 알지만, 대개는 정서가 정연한 작가들이 많은 듯하다.

출력된 인쇄물이아니라, 글씨로 저마다의 성품을 보여주며 쓰여진 원고나, 수정고들을 보노라면, 늘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쨌든 자신의 주어진 시간을 살다 간 것이니까.

 

당일배송으로 어제 왔어야 하는 책이 여태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건 딱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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