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 마주하고 앉으면(꼭 술잔 앞에 앉지 않더라도) 감정이 북받치는 감이 없지 않다.

D.H. 로렌스의 [채털리부인의 연인]이 결핵을 앓으며 세 번이나 고쳐가며 쓴 마지막 장편소설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죽어가며 이렇게 펄떡이는 환희와 생명력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도 감탄했다.

스무살 젊은날에 읽어 좋겠다(요즘 젊은 사람들이야 알아서 잘 하지만). 그리고 찾아가면 좋을 듯하다.

문명비판 부분은 다소 의도적이고 노골적이라서 외려 울림이 적은 편이지만...

어쨌든 이번에 읽는데, ... 지금의 삶이 참 초라하고도,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면 말 다한 거지.

 

 

 

 

 

 

 

 

 

 

 

 

 

 

 

 

참 뭐하며 살았나 싶고, ... 돌아보면 내가 시나 노래를 그닥 좋아하며 살았던 적이 없어서 (노래방을 경멸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가게 되면 노래 잘 하는 사람을 넋놓고 보긴 한다,,,) 시에도 노래에도 인색했다.

그런데 대체로 노래나 시는 모두 특정한 사람들과 연관되기 마련이다. 그 사람이 불렀던 노래, 내가 알지 못하는 노래(당연하지 노래를 듣지도 않으니 모르는 노래 천지지)를 저렇게도 지 사연마냥 부르던 사람들은 여전히 내 가슴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시를 써서 건네주던 그때 그 사람도 있고... 제법 ... 그랬네. ...

연서에 셰익스피어 작품 한 구절(로미오와 줄리엣의 한구절이었다) 이 써 있던 것도 있고, .... 미안하게도, 천벌받게스리... 버렸다.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 사람... 다만, 그 연서를 받았을 때의 그 현장만이 여전히 기억에 있다. 어리석게도 그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어쩜 그리 어리석었을까. 난 천벌받을껴.

 

쿤데라의 [불멸]을 읽다가

 

시의 소명은 어떤 놀라운 관념으로 우리를 현혹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존재의 한 순간을 잊을 수 없는 것이 되게 하고, 견딜 수 없는 향수에 젖게 하는 데 있다. (45)

 

 

 

 

 

 

 

 

 

 

 

 

 

 

 

 

이 대목 보고, 책을 덮었다.

아, 씨바, 뭔 글을 이리 잘 쓰냐.

 

오늘 날씨도 그렇고... 하루가 스멀스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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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트의 [현기증.감정들]에서 호텔방에 틀어박혀 '오직 깊은 상념과 생각에 몰두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간단히 목숨을 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는 것과 정확히 대비되는 모습이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토마스가 등장하는 첫 장면일 것이다.

3인칭 시점인 작가 '나'는 토마스를 탄생시킨 이미지를 바로 '그[토마스]는 창가에 서서 건너편 건물 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서 찾았다.

 

토마스-테레사, 사비나-프란츠, 두 쌍의 얘기에서 내가 감정이입해서 본 인물은 토마스이다.

소설에서 그의 얘기가 가장 극적인 면이 있으니까, 어쩌면 자연스러울 것이다.

모든 일을 가볍게 가볍게 헤쳐 나가며 살아가던 한 남자, 외과의사 토마스가 예기치 않게 테레사를 사랑하게 되면서 결국 끝까지 가는 얘기로 볼 수 있다. 가벼움 속에 숨겼지만 지독한 사랑을 하는 남자 얘기잖은가.

쿤데라는 주요 인물 네 사람 중 무려 세 사람이 삶을 마감하게 한다. (결국 먼 훗날 사비나도 죽는다지만 구체적 언급은 없다.) 심지어 카레닌까지.

"테레사의 단 하나의 꿈이 불러일으킨 슬픔은 견딜 수 없었다." (263)

"테레사의 눈이 발산하는 슬픔을 견딜 수 없었다." (270)

이렇게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도대체 어떤 감정일 것인가.

 

무기력하게 바라보며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것. (255)

토마스는 테레사를 만나고 돌아온 날 이후 창가에 서서 건너편 건물 벽을 바라보고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숱한 여성들과의 관계에서 우연히 만났던 한 여자에 불과했던 테레사는 그 만남 이후 토마스의 생각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녀를 다시 찾아 데려와야 하나, 토마스로서는 어이없게 '그래야만 하는' 여자가 된 테레사를 두고 생각을 거듭하지만 결정짓지 못하는 사이 그녀가 그를 찾아온다. 저 유명한 [안나 카레니나] 책을 들고. 그리고 그날 밤 고열을 앓으며 토마스의 집에서 자게 된다. 토마스는 그녀 곁에 무릎 꿇고 앉아 그녀를 보다가 고대 신화부터 있어왔던 '바구니에 담겨 버려진 아기' 메타포를 그녀에게 부여하게 된다. 토마스의 테레사에 대한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토마스가 다시 '창가에 서서 마당의 건너편에 있는 건물의 더러운 벽을 바라보고 있'게 되는 건 아들과 기자를 만나 그들로부터 정치범 석방을 위한 탄원서에 서명을 권유받은 다음이다. 그는 서명을 거절했다. 테레사 때문이다. 테레사가 받게 될 괴롭힘을 피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어떠한 정치적 사건과 연루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들과는 회복하기 힘든 관계가 되더라도.  

테레사에 대한 처음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창가에 서서 건너편 건물 벽을 바라볼 뿐이던 때.

 

한없이 자책하다가 결국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수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14~15)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기 때문에 한번은 중요치 않다.

그러나 토마스는 점점 무거운 결정들을 내려간다.

결국 테레사와 함께 막다른 곳에 도달한 시골에서 자신이 수리한 트럭에 자신을 위해 예쁘게 차려 입은 테레사를 태우고 가다 사고로 죽어 함께 묻힌다.

 

토마스는 체코 작가동맹이 발행하는 주간지 독자투고란에 오이디푸스와 같은 자기 처벌을 강조하는 글을 투고한다.

이 나라의 불행에 공산주의자들의 책임을 묻는 글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운명에 끌려들어갔던 오이디푸스가 진실을 알았을 때 자신의 눈을 버렸듯이 공산주의자들 역시 자신들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할 게 아니라 눈이라도 빼야 한다고.

그러나 독자투고란에 실린 그의 글은 형편없이 잘려진 채 실렸고, 이 때문에 토마스는 외과의사라는 자신의 '소명'(이라고 믿었던)을 버린다.

인간의 육체를 다루며 그에 부수되는 모든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사람, 의사로서 신성모독의 감정까지 느끼며 '필연'적인 '그래야만 한다'는 강력한 '소명'을 느끼며 의사가 되었던 그가 의사를 버린다. 거기에는

 

그때까지 자신의 소명이라 믿었던 모든 것을 털어버렸을 때 삶에서 무엇이 남는지 보고 싶은 욕망. (226)

 

'그래야만 한다' 그 너머를 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기도 했을 거라고 작가 '나'는 토마스의 결정을 짐작한다.

그리고 토마스는 유리창 닦이가 된다.

어떻게 되었을까? 토마스는 그 너머를 봤을까, 그 너머에서 남은 게 무엇이었는지 확인했을까?

2년 후, 그는 몸도 정신도 지쳐버린다. (260)

테레사와 함께 시골로, 막다른 곳으로, 더 이상 갈 곳없는 곳으로 간 것이다. 그곳에서 죽음을 맞는다. 테레사는 그가 이제 더 이상 메스를 잡을 수 없을 만큼 손이 굳었고, 머리가 세었고, 늙었음에 안도한다. 그 안도 속에서 갑작스런 죽음을 맞는다.

 

모든 것을 털어버렸을 때 삶에서 무엇이 남는지 보고 싶지... 않다.

보고 싶은가? 난 보고 싶지 않다.

어쩔 수 없다면 어쩔 것인가.... 지금까진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아마 20년도 넘어 다시 꺼내 읽기 시작했는데, 초반 읽고 한 몇 개월 동안 집어들지 못했다가 이번에 뒤이어 읽었다. 눈물, 눈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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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깊은 상념과 생각에 몰두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간단히 목숨을 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65)

 

설을 지나고 돌아와 비로소 책을 쥘 수 있었다. 책조차 방기할만큼 마음이 복잡했던 시기가 이제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오래전에 몇 장 읽고 놓아두었던 제발트의 [현기증 감정들].

위의 문장을 읽는 순간, 마치 위로받듯이, 내 마음 내 상태가 바로 그러했다고 내가 그에게 털어놓듯이 공감했다. 

그가 베네치아로부터 배를 타고 주데카 만으로 들어가 어느 호텔방에 틀어박혀 상념과 생각에 몰두했던 것처럼.......

 

이번 결정은 쉽지 않다. 너무 어려운 숙제다. 내 인생 통 틀어 가장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일에 부딪혔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마음먹기는 쉽지 않고, 결국 일단 생각을 접었다. 결론을 내려야 할 때까지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일단 보류했다. 나의 봄은 과연 어떠할 것인가.

 

생각을 멈추고 결정을 보류하자 비로소 책을 쥘 수 있었는데, 여행과 기억과, '지독한 쇠락'(39)과 폐허의 기억을 더듬는 제발트의 이번 여행을 읽으며 어제 하루 묘한 슬픔에 잠겨 보냈다. 제발트가 연상해내는 기억의 여행기가 나와 무관할지라도 그가 불러내주는 기억에서 수많은 감정들을 떠올리며 빠져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 소설은.

 

스탕달, 카프카를 비롯해 제발트가 소환해내는 인물들에 대한 기술과 묘사에서도 기억이 자아내는 감정들이 실려있다.

나는 특히 <외국에서> 장에서의 클로스터노이부르크(빈의 도시, 카프카가 세상을 떠난 곳)의 한 요양원에서 연금으로 살아가는 에른스트 헤르베크를 만나는 장면을 좋아한다. 한문장 한문장이 그냥 무심히 쓰여져 있는데, 놀랄만큼 감성을 자극하는 명문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무심한 문장들인데도.

 

번역자인 배수아는 제발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가 기억을 불러내오는 독특한 기술에 매혹되곤 한다는데 자전적인 내용이 포함된 <귀향> 이라는 장을 읽어내는 데는 특히 유효한 진술이었다. <귀향>은 독일인인 제발트가 고향을 버린 후 수십년이 지나서 다시 찾아간 고향에서 유년의 기억들을 통해 카프카의 단편 [사냥꾼 그라쿠스]와 연관된 환상을 연결시키고, '파괴의 비전'을 꿈꾸며 대단원이 지어지는 부분이다.

읽다보면 나는 이상하게도 영화, 유럽영화에서 많이 보았던 사내아이의 눈으로 본 유년의 어떤 분위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눈. 밖에는 눈보라가 치고, 사내아이는 죽음의 장면들과 정사를 목격한 후 감당하지 못하고 병을 앓는다. 침대에 누워 창밖으로 내리치는 눈보라와 창문을 때리는 늘어진 나뭇가지의 그림자와 소리에 공포를 느끼지만 고열로 인한 환청과 환각에 시달릴 뿐 움직일 수 없는. 몽환적인 겨울밤을 보는 듯한. <닥터지바고>의 어린 유리의 모습이 떠올려지기도 하고. 

 

사방은 눈으로 가득하여 천지가 크리스털처럼 반짝였고, 내 머리 위로 밤하늘을 가득채운 무수한 별들이 영롱한 빛을 깜빡이고 있었다. 머리 없는 거인 오리온이 광채를 내뿜는 단검을 허리에 차고 막 검푸른 산그늘을 올라가는 중이었다. 한겨울 밤의 숨 막히는 장관 아래 나는 오래오래 서서 살을 에는 냉기에 몸을 맡긴 채, 하늘의 모든 발광체가 자신의 궤적을 따라 느리게 움직이며 내는 소리에 귀기울이고 있었다. (222) 

 

 

 

 

 

 

 

 

 

 

 

 

 

 

고향에서는 여관에서 살았는데, 귀향해서 돌아와보니 건물은 개조된 채 그대로 있고 나는 거기에 머문다.

그곳에서 유년시절 로지나 초벨이라는 여관 건물의 여주인에 관한 기억 대목을 읽으면 또 한편의 영화를 떠올릴 수 있다. 

소설과 기억과 영화로 이어지는 연상은 책을 읽는 내내 일종의 향수, 회한, 놓아버리고 온 아름다운 기억들, 그리고 왠지 자꾸만 허망하게도 황폐한 현실 속에 버려진 듯한 쓸쓸함 등 갖가지 감정들을 불러모으면서 소설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라는 감탄을 하게 만든다. 온전히 감정에 빠져 있다 나오면 한뼘쯤 인생을 알 것만 같다.

다시 한번 읽고 싶다.

 

기억이라는 주제 하나만으로 문학을 얘기해보는 것, 작가들은 기억을 어떻게 다루고 무엇을 창조해내는지.  

 

제발트, 토마스 베른하르트, 우엘벡 등이 최근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작가들이다. 모두 뭐라 딱히 규정할 수 없는 슬픔을 안겨준 작가들이다. 

 

정승환이 어제 선곡해 부른 에코브릿지(with 나얼)의 <첫째날>을 들으며 이제는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는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피아노 반주가 그 영화를 기억나게 하는 방아쇠였다. 정승환의 노래 또한 그랬고.

아주 오래전에 본 영화인데 내용도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딱 한 장면만을 여전히 잊지 못했다. 

아마도 마리아 칼라스의 생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었던 영화 아닌가 싶은데, 프랑스 뉴웨이브 끝물에 있었던 영화였던 것도 같고. 아마 남편이자 제작자였던 이가 떠나자 무대를 떠나 은둔해버린 오페라 흑인 여가수를 만나게 된 청년(기자였었는지 가수였는지 정확하지 않다)의 얘기였던 것 같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꺼리던 여가수를 청년은 마침내 그녀의 집에서 만나게 된다.

청년은 그녀를 그녀 스스로 유폐시켰던 집으로부터 거리로 데리고 나온다. 파리를 산책하는 씬이 바로 내가 기억하는 장면이다. 

<첫째날>과 비슷한 피아노반주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거리 윗부분에서 카메라로 잡은 장면인데, 아래 거리부분으로부터 여자의 양산이 나타난다. 그녀는 여전히 예전 시대의 무대 옷차림과 같은 클래식한 옷차림과 고혹적인 양산을 받쳐들고 파리의 거리를 걷는다. 그 뒤로 남자가 그녀를 보는듯 무심한 듯 함께 걷는다. 그녀가 양산을 들고 벤치에 나른하게 앉아 있는 장면에 흐르는 피아노 곡은 또 어떻고. 두 사람은 그냥 산책을 하는데, 한가로운듯하면서도 다소 몽환적이고 묘한 슬픔이 담긴 장면이었다. 그 장면과 그 피아노 소리만큼은 아마 20년이 될지도 모르는 시간 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기억의 연상은 이어지고 있었다.

기억이 마음을 유리처럼 만드는 지도 모른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위태로운 유리같은 상태다.

 

유희열이 정승환에게 남자멜로디를 부르라는 말은 아쉬웠다. 남자멜로디에 유폐시키는 것처럼 들려서.

나얼은 매끈하고 시원하면서도 화려하다. 김범수의 노래도 김범수답게 막힘없이 세련됐다. 두 사람 모두 뛰어난 가수다.

그렇지만 요즘 나는 이 아이 노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게 위로든 도피든 어쨌든 생각을 멈추고 결정을 보류한 채 이 아이 노래만 들으며 나고 있다. 그 아이가 부르는 김광석 노래는, 김광석이 아쉽지 않은 느낌을 받은 드문 경우였다. 다음주에 또 한 곡의 김광석 노래를 부른다.

 

정승환의 영상에 달린 댓글 중 유독 눈에 뜨인 글이 있었다. 정승환을 아예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한번 들으면 중독되지 않긴 드물다,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배수아가 [현기증 감정들]에 붙인 해설 <그렇게, 제발트를>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제발트를 아예 읽지 않은 많은 사람이 있겠지만, 제발트를 한 권만 읽고 끝내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한다고.

그 댓글 작성자는 혹 제발디언이었던가. 풋,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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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2-23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영화 장 자크 베닉스의 < 디바 > 라는 영화 같군요.

포스트잇 2015-02-23 20:22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내용도 제 기억과는 많이 다르겠네요...,하지만 저 산책 장면과 피아노곡은 비슷한 모티프가 있기도 하고요..
오래전에 본 영환데 저 피아노 소리에 단번에 연상됐다는 게 신기할 뿐이네요.
누벨이마주니...장자크 베네의 베티블루니....아주 오래전 얘기네요....꿈같았네요..
영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곰곰발님^^
 

정승환이라는 애 얘기다.

고등학교 졸업하는, 작년에 열아홉이었고 이제 스무살이 된 아이다.

일요일 이후 이 아이 음악만 들으며 보내네. 지난 일요일 생전 안보던 Kpop 스타라는 프로그램에서 이 남자애를 처음 봤다.

승승장구하다 하필 내가 봤던 회차에서 실망스러운 노래를 불렀다는 건데, 나는 이미 이 아이가 무대 들어설 때부터 확신이 없었다고 느꼈다. 불안했는데 역시나 노래 전개가 어려웠다. 부르는 동안 박진영의 말처럼 자연스럽게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뭔가 스스로 미심쩍어 한 채 노랠 시작했다는 게 보였다. 노래 끝나고 나서도 그런 자신을 잘 알고 있다는 걸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는 모습에서 나는 이 아이에게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얘 뭐지? 누구야? 그렇게해서 이 소년 같지도 소년 아닌 것 같지도 않은 아이에게 빠져들었다. 

지난 겨울 누군가 분명 얘기했던 것 같은데, 그땐  정신 없던 때라 아예 관심이 없었다. 역시 사람은 때가 중요하다.

노력은 하겠지만 때는 대체로 하늘이 주는 것 같다.

그래, 난 뻔한 발라드, 신파를 좋아하는구나. 이 아이 노래, 참 좋다. 특히 첫음을 기가막히게 참 잘 놓는다. 보아하니 학교에서도 노래 꽤나 하는 아이로 통했던 것 같고, 고3인데도 여기저기 오디션 프로그램을 부지런히 노크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제야 때를 만난 듯하다. 보노라면 세상사가 참 그렇다.

유투브에 올려진 이 아이의 몇 개의 영상, 이 아이가 이렇게 유명해지기 전(고작 열아홉을 넘겼는데) 학교에서 친구들이 그냥 찍어준 영상 속에서는 노랠 곧잘 부르며,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아이의 자연스런 무심함이 담겨있다. 그러다 점점 프로그램이라는 틀에서 경쟁해가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 사이의 고민이 보인다. 그냥 편하게 노랠 불렀었는데 언제부터 그게 잘 안되더라는 아이의 말에는 무심함 대신 들어선 엄청난 시선들에 대해 의식하면서 갖게 된 두려움이 담겨 있기도 하다. 교복이나 청바지에 대충 걸쳐 입고 부르던 아이의 모습과 정색하고 차려 입은 채 나와 부르는 아이의 모습 사이의 긴장 만큼이나 어렵다. 변화를 겪어낼 준비는 어차피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다. 주변에서 변화를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지금도 좋지만, 좋아하는 노랠 그냥 터뜨리며 부르는 고등학생 때의 자연스러움이 묘하게 더 좋았다. 고등학생 아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며 자신의 진로를 찾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 아이 또한 이렇게 주목받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또 누군가 새로운 아이가 나타날 것이고, 세상은 그렇게 흘러간다. 쓸쓸한 일이지만 그러므로 그냥 지금 이 순간, 이 시기를 맘껏 향유해야 한다. 생각이 많아진다는 건 참 쓸데 없는 일 같다.

 

내가 좀체 뭔가에 빠지는 게 잘 안되는 사람인데, 이 아이에 대한 관심도, 지나가겠지만, 지난 5일은 푹 빠져 지냈다.

그러느라 집중을 못해서 고생이다. 일해야 하는데, .... 일해야 하는데, .... 아 씨바.

일해야 해.

 

로렌스의 [채털리부인의 연인]을 읽기 시작한지 꽤 됐건만 진도를 못 내고 있는데, 민음사판 번역의 우스꽝스러움이 아쉽다.

사냥터지기 멜러즈의 사투리 말투를 맞춤법을 틀리게 하는 방식으로 표현했는데 ... 나는 영 몰입이 안 되네.

"당신이 조금만 더 있을 수 이따면 좋으련만..." (282)

"언제 한번 내가 사는 지베서 만납씨다!" (284)

다른 번역본은 어떻게 해결했지? 이래서 여러 번역판을 읽어봐야 한다는 건가.

80년대 영화 <차타레부인의 사랑>의 실비아 크리스텔이 남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여자인 나는 알 바 없지만, 나도 영화는 봤는데, 별로 기억에 없다. 굳이 책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고전이라지만 이 책을 읽지는 않았으니까.

나이 들어 이제 읽는다. 흥미롭다.

 

 

 

 

 

 

 

 

 

 

 

 

 

 

 

 

 

아, 정승환과 함께 박윤하 라는 여자아이도 좋은데, 음색이 정말 좋다. 민음사 회장 손녀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네.

와, 민음사래.

노래는 입가에서 맴돌고, 머리는 음악 끊고 니 앞의 일더미를 잡으라고 아우성치는데, 마음만 소란하고 ....미치겠네.

 

p.s.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초반에 칭찬이 집중되며 주목받은 도전자가 결국 1위 우승자가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군.

몇 차 무대까지 갈지 모르지만 여튼 하는 동안 좋은 노래로 잠시라도 행복하게 만들어주면 좋겠다.

선곡이 중요하겠다. 이미 유투브 등에 올려진 영상에 나오는 곡들을 다시 불러달라는 댓글도 보이는데... 그건 좀... 악수일 수 있겠다. 이전보다 월등한 실력을 보이지 않는 한 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건 분명하기에 유리하진 않겠다.

마냥 여린 음성도 아니고 대단히 남성적인 발라드라서 기존 발라드 가수들과 조금 다르게 들리는 것 같다.

그러고보면 심사위원이라는 세 사람이 아주 애먼 말을 하진 않는 듯.

근데 저 세 사람 회사로만 가는 거라며? 그게 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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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물건이다.

이미 앞서 별점을 쓰신 분이 '오랫만에 떨림을 느꼈'다고 할만큼 나 역시 그렇다.

김무성 같은 이가 개헌을 이야기하는 게 불안을 넘어 공포를 갖게하는 건 그들만의 장기집권 계획, 권력구조개편을 위해 꼼수를 쓰려고 한다는 선전포고같아서 이다.

선거제도 개혁 없는 권력구조개편 논의는 현재의 보수우익, 자유시장주의자들, 그들끼리 나눠먹는 천년만년 권력을 만들려는 사악한 의도를 지녔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하는 선제적인 공격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새정치연합의 당대표 선거가 지들끼리 하는지 안하는지 모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도 영 엉뚱한 얘기들만 하고 있어서이다.

김무성, 이재오 뿐만 아니라 이미 새누리쪽에서는 젊은 전현직 의원들을 중심으로 상당히 진척된 논의들이 오가는 것 같은데, 이때 제대로 방향이나 원칙 등을 잡지 않으면 죽 써서 또 누구 주는 꼴이 된다.

 

최태욱 교수의 [한국형 합의제 민주주의를 말하다 - 시장의 우위에 서는 정치를 위하여]는 유익한 책이 될 것 같다.

 

 

 

 

 

 

 

 

 

 

 

 

 

 

 

대통령도 단순 일위투표제, 국회의원도 소선구제 하에서 일위투표(비례대표가 있다 해도 갈수록 줄어들어 현재 300석 중 54석밖에 안된다)를 구사하고 있는 현재 한국의 선거제도로는 계속 이모양 이꼴, 더하면 더하지 나아지기 힘들다는 건 다 아는 사실.

그래서 무력해지고 패배감만 난무하는 거 아닌가. 나처럼 '멍청한 국민' 소리만 운운하고. ...반성.

이 책은 우리가 계속해서 자꾸 죽을 쓰는 이유를 잘 풀어주고 있다.

투표할 때마다 '전략적으로 투표'하느라 골머리 앓을 필요없이 선호하는 정당, 후보에 '진심투표'하는 게 가능해지는 제도를 만들자는 거다. 양당제라서, 할 수 없이 괜찮은 생각과 태도 지닌 사람들조차 양쪽으로 모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알량한 득표 얻은 걸로 모든 걸 다 갖고 헤쳐먹는 독식체계를 고치자는 것이다.

포괄적인 민주적 연립이나 합의제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 어떤 점들을 생각해야 하는지를 잘 정리해주는 책이다.

꼭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뭘 알고 무기를 쥐어야 싸움에 나가서 제대로 벨 수 있지 않겠는가.

선거제도 공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모른 채 당할 수도 있기에 잘 준비해서 몰아가야 한다.

워낙 유불리가 첨예한 문제라서 어려울 것은 분명하나, 어쨌든 선거제도를 바꾸는 방법밖에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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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1-29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법기관 국회가 이 선거제도를 채택하게 만들려면 얼마나 걸릴 지...계류, 계류, 계류 그 소식만 또 듣겠지 싶어 벌써 한숨이...
김영란법처럼 희망을 걸어보는 수밖에요

포스트잇 2015-01-29 14:58   좋아요 1 | URL
오래걸리겠지요, 첩첩산중일테구요. 그래도 넋놓고 있다 당하지 않도록 잘 대비하고 있어야죠.
모이면 길이 열리겠지요. 중요한 논의니 화력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AgalmA 2015-01-29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인 거 같아요. 잘못된 건 아는데 움직이진 않고 클릭질만...에효.
암튼 이러저러 알리기라도 해야죠ㅜㅜ

포스트잇 2015-01-29 15:25   좋아요 0 | URL
꽉 막혀 있다시피 하는 상황이라 답답함이 느껴지는거겠지요, 실망하지 맙시다!
선거제도는 어떻게 디자인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니 좀 까다로운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