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의 [용감한 친구들]이 왔길래 인용 문구만 찾아 봤더니만 내 추측이 틀렸다.

운명에 굴복하는 최상의 길은 그런 운명을 원하는 것이다와 욕망이 복잡해졌다면 의무를 굳게 붙들면 된다의 각 주인들은..

어제 책 받아놓고... 노래만 들었다 ㅠ .. 지금도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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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에 굴복하는 최상의 길은 그런 운명을 원하는 것이다.

 

이게 뭐야... 운명에 복수하는 최선의 길인가? 그럴 것도 같네. 오늘 하루종일 생각해봐야겠다.  

이런 글도 있다.

 

"욕망이 복잡해졌다면 의무를 굳게 붙들면 된다."

 

줄리언 반스의 2005년 작 [용감한 친구들]에 나오는 문장. 주제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서 코난도일의 일대기를 재창조했다고 한다.

반스가 누구인가,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쓴 사람이다. 그러니 코난도일을 어떻게 다룰지 짐작할 수 있다.

 

'상상하길 좋아한' 아서는 소설가가 되고, '상상력이 부족했던' 조지는 이름없는 사무변호사로 성장한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벌어진 한 사건을 통해 서로 달랐던 두 사람이 만나게 되고, 그 사건을 통해 두 사람은 변모한다.

갈등하고 주저하는 조지와 결단하고 행동하는 아서.

23년 후 상상력이 좋았던 아서의 부고를 받고 장례식을 찾아간 조지는 그 사건 때 자신은 보지 못했던 어떤 것을 본다는 것이다, 아서는 이미 보았던 것을. .... 지난 무려 '54년간' 알지 못했던, 아니 이미 보았음에도 알지 못했던 것을.

 

그렇다면 앞의 두 인용 문구가 수수께끼 같아진다. 

운명에 굴복하는 최상의 길은 그런 운명을 원하는 방식으로 가는 사람과,

욕망이 복잡해졌다면 의무를 굳게 불들고 가는 사람.

전자는 아서이고 후자는 조지일까, 그 반대일까, 아니면 한 사람일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처럼, '감 못잡고' 있는 것과 비슷한, 누군가는 알아보고 누군가는 전혀 감조차 잡지 못했던 어떤 것.

운명은 그렇게 달라지는 것일 수도 있다. 아예 모른 채 살다 죽으면 좋겠다, 끝까지. 내가 알았던 것만 알고 살다 가면.

다 늙어,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때 비로소 알게 된다는 건... 그 회한을 어떡할 것인가. 다시 묻어야 하는 그 마음을 견딘다는 건...

차라리 모른 채 살다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비록 바보였다고 사람들이 손가락질 한다해도......... 아닐까? 난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

 

책은 냅다 던져두고 시간나면 정승환의 노래만 듣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너무 슬퍼서 미련이라고 하기도 힘든 아픈 감정들...'을 '애써 자기를 위로하려는 마음을 공유하고 싶어서' 기나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곡으로 <만약에 말야>를 선곡했다는 그 아이를.

나의 2015년 늦겨울부터 초봄을 온통 사로잡고 있는 아이라서 딴 데 신경 못쓴다.

내 운명도 그 중 하나다.

 

  

 

 

 

 

 

 

 

 

 

 

 

 

 

이 책을 좀 ,,,;; 읽어볼까,, 한다. 운명에 관하여 힌트 하나 얻을 지 누가 알겠는가...

연중 가장 이쁜 계절. 여린 잎들로 살랑거리고 아련거리는 꿈같은 봄날에, 도통 정신 못차리고 있는 중이다.

그 와중에 오늘 귀에 꽂히는 노래는 들국화의 <걱정말아요 그대>. 이어폰 꽂고 무한반복 중이다.

아 시바, 걱정하지 말라는데 ........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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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쿤데라가 이런가? 아님 지극히 내 개인적 상태로 인한 과도함인가?

[불멸], 왜 이렇게 슬픈 거야?

자신이 써본 것 중에서 가장 슬픈 사랑이야기가 될 거라던 이 소설을 읽으면서 결국 쿤데라에게도 사랑을 읽는 것, 사랑을 아는 것이 가장 미스터리였던 것 아닌었을까 싶었다.

주인공 아녜스를 완전히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자신의 얼굴을 물망초 꽃 한송이로 가리고 싶다던 그녀의 바램, 죽기 직전까지 남편 폴이 오기 전에 죽어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는 완전히 두 손 들었다.

죽음이 먼저일까, 남편의 도착이 먼저일까,라니.

 

 

 

 

 

 

 

 

 

 

 

 

 

 

 

 

화가가 되고 싶었던 루벤스의 실패에 대한 이야기도 얼마나 슬픈가.

실패임에도 딛고 가야 하는데, 어느 순간, 더이상 새로움이 없을 거라는 걸 인정해야 하는 생이란 얼마나 암담한가.

이 소설 역시 좀 시간이 지나 다시 한번 읽고 싶다.

 

[작가란 무엇인가2], 로쟈님의 추천사 제목이 "신들의 인간적 고투, 그 비참과 영광"이다.

신들이 인간적으로 지독한 고투 끝에 평범한 인간들에게 내놓아준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고 살아야 한다.

로쟈님 추천사 끝내준다. 언제부터 이렇게 쉽고 재밌게 쓰셨다지?

 

 

 

 

 

 

 

 

 

 

 

 

 

 

 

 

또다시 서서히 가동되기 시작했다. 결심은 여전히 서지않고, 동동거리기만 하는데, 이거 이렇게 가도 되나, 안되겠지...

TV도 드라마는 못 보겠고, 몇 편의 예능에 관심 갖기 시작했는데, 보자고 해서 같이 앉아 보다 웃겨 죽는 줄 알았다.

<너의 목소리가 보여>. ㅋㅋ 이런 컨셉을 기획해내는 기획자에게 박수를. '대박웃음주는 음치와 감동주는 실력자'.

실력자는 뭐 대충, 그렇고 ... 음치는 와, 와, 음치가 감동을 줘.

뒤이어, <언프리티 랩스타> 와, 대박. 치타 언니. 화이팅입니다요. 멋져요. 제시는 뭐 우월하고.

처음보는 지민 양은 청춘영화에 나오는 여린 반항아 같아 보여, 헐리우드 영화에서 몇 번 만났던 캐릭터 같아 이상하게 끌렸다. 그래도 어제 무대는 아니쥐, 아이돌짓(미안하지만)을 거기서까지 해야되나 싶었다.

아침에 이야기하다 싸울 뻔했다.

알았다, 이놈아, 너랑 나랑은 어떻게 사사건건 다르냐... 상사한테 일 안한다고 갈구는 네 놈을 언젠가...

말할 수 없는 비밀처럼 여기에 쓴다, 이놈아, 그래도 난 네가 좋다, 이놈아.

너랑나랑은 남으로서 복되다. 김훈 작가님의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요.

일하자. 

 

P.S. 우울했는데, 페이퍼쓰다, 급기분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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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보고 싶은 책을 나열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날씨에 책읽으며 보내는 건 나무에 꽃에 미안하잖은가. 그것들을 더 많이 봐줘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에 겐자부로의 2009년작 - 생각보다 늦게 도착했다 - [익사].

 

『익사』의 주인공은 이미 오에 겐자부로의 예전 작품들에 여러 번 등장했던 작가의 페르소나 조코 코기토다. 그에게는 유년 시절 강에서 아버지가 탄 배가 뒤집히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과거가 있다. 군인들과 궐기를 준비하던 아버지가 홍수로 갑자기 불어난 강에 배를 띄웠다가 죽은 일은, 코기토에게는 아직도 큰 상처로 남아 있다. 그는 육십 년이 넘도록 아직도 그 장면을 꿈에서 보곤 한다.

 

소설가인 주인공은 결국 계속 실패해왔던 자신의 아버지, 아버지의 죽음의 이야기를 쓰게 된다는 것인데, 그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천착해서 들려주는 얘기가 뭘지 대단히 궁금하다. 만년에 아버지를 돌아본다는 것, 어떤 문학적 사유를 보여줄지를 들여다보고 싶다.

제목 '익사',... 우리에겐 아, 너무 아픈 단어인데....

얼마전 <삼시세끼> 만재도 편의 한 에피소드를 우연히 보다가, 만재도 앞바다의 회색같은 날과 만났다.

이번 만재도 편은 거의 보지 못했는데, 그날따라 지나가다 하필 그 장면을 봤다.

뭔지는 모르지만, 유해진이 바위 비탈에 앉아 고기잡이하는 장면이었다. 바다는 그야말로 폭풍이 오기 전처럼 '부풀대로 부풀'어 올라 거대한 장막이 술렁이듯 파도는 두껍게 몰려왔다 가곤 하는데, 날은 곧 비라도 올듯이 캄캄해져가는 그런 장면.

만재도 앞바다는 강렬했다. 순식간에 품어줄 수 있을 듯해 보였다. 어떻게 그런 때에 그런 곳에서 낚시를 할 수 있을까.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일까. .... [익사]에서의 아버지가 배를 띄운 곳은 강이다.  

게다가 역자 박유하는 최근 뜨겁게 오르내리는 인물 중 하나인 모양이다.

 

 

 

 

 

 

 

 

 

 

 

 

 

 

 

 

레이먼드 카버의 [풋내기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의 카버 원본을 되살린 책이다.

편집자였던 고든 리시가 손대기 전 카버의 것. 다만,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제목으로 뽑은 기획편집자의 한수는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예전에 읽었던 단편들이지만 예전과 전혀 다른 거 아니겠는가. 첫편 <춤추지 않을래?> 하나 읽었다. 좋다. 카버의 단편은 언제 읽어도 스릴이 있다. 일상이란 때론 스릴러 못지 않게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최근에 본 영화 <버드맨>에 이 소설이 주요하게 쓰여졌다. 환갑을 맞은 옛 헐리우드배우 '버드맨'이 연극판으로 돌아와 첫 제작자이자 주연으로 손댄 작품이 바로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다. 눈물이 앞을 가려 혼났다. 요즘 내가 시도때도 없이 울다보니, 그러나 영화, 좋았다. 어쨌든 초라한 자기의 존재증명을 해야 하는 인생 이야기로 봤다. 더구나 한물 간 배우, 예술가로서 겨우겨우 존재증명해 나가며 버티는 이야기.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 하는 가엾은 인생이 떠올라 주체하기 힘들었다. 연극이 성공한다고 한들 그 피로와 공허를 채울 순 없을 것이다. 아, 씨바.

주인공은 대학시절 연극무대를 찾은 레이먼드 카버가 자신에게 건네준 냅킨(!)을 평생 간직해왔다. 연극으로 버틸 수 있도록 지탱해준 메모. 그것이 그렇게 단 한순간에 변할 때.... 아.

 

 

 

 

 

 

 

 

 

 

 

 

 

 

 

그리고 기형도.

기형도는 두번째 시집을 준비중이었고, 아마 시집 제목을 [내 인생의 중세]로 지을 것이라고 마음 먹었을지도.

 

이제는 그대가 모르는 이야기를 하지요

너무 오래되어 어슴프레한 이야기

미루나무 숲을 통과하던 새벽을

맑은 연못에 몇 방울 푸른 잉크를 떨어뜨리고

들판에는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나그네가 있었지요

생각이 많은 별들만 남아있는 공중으로

올라가고 나무들은 얼마나 믿음직스럽던지

내 느린 걸음 때문에 몇 번이나 앞서가다 되돌아오던

착한 개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나그네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았지요

 

요한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을 탐독하고 있던 때라서였는지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난, 아직도 이 책을 읽지 못했기에 읽어보려 한다. '내 인생의 중세'라,,,,,,, 어미 '-지요'를 고른 것도 시인답다.

 

 

 

 

 

 

 

 

 

 

 

 

 

 

책장에서 꺼내진지 오래지만 여전히 읽다 말다 하고 있는 책들....

쿤데라는 왜 불멸을 얘기하고 싶었을까.... 불멸은 죽음과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이기에, 그걸 말하고자 한 것이었을까.

어서 어서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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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거리가 내 마음을 운반했구나

 

기형도의 시집 [입속의 검은 잎] 중, <가수는 입을 다무네>에서.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질투는 나의 힘> 중)

 

다시 꺼내들고 그의 시집을 읽다. 작정한 것은 아니었다. 

몰랐다, 예전엔. 이 정도로 비극적인줄. 난 참 바보다.

한동안 다른 시를 읽을 수 없을 것 같다.

 

 

 

 

 

 

 

 

 

 

 

 

 

 

 

 

 

"인파속에 날 지나칠 때

 단 한번만 내 눈을 바라봐

 난 너를 알아볼 수 있어 단 한순간에

 Cause, here I stand for You"

(N.E.X.T. 신해철, Here I Stand for You)

 

여전히 거리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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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3-12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포스트잇님..

포스트잇 2015-03-12 11:13   좋아요 0 | URL
...햇살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