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이 책을 읽고 싶어했는지 ... 기억이 안난다.

뭐? 기원전 8000년부터 20세기에 이르는 기나긴 폭력의 역사적 궤적을 따른 결과, 흔히 믿고 있듯 인류 역사에서 폭력은 증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소하고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덜 잔인하고 덜 폭력적이며 더 평화로운 시대라고?

그 결과를 읽기 위해 본문만 1100페이지를 읽어야 되는 것이여?

확실히 덜 잔인하고 덜 폭력적이지 그렇다고 평화로운 건 아니지.

모골이 송골송골해질 정도의 잔인한 폭력의 갖가지 사료들을 봐야 하는 것이여?

가끔 나는 왜 무모한 도전을 하려고 할까.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휘리릭 들쳐봤다.

글쓰기에 유익한 독서법으로 책 세 권을 추천했다. 한번 읽을 게 아니라 반복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는.

박경리의 [토지]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책세상),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토지]는 아주 오래전에 읽으려고 도전했다 1부 1권 읽다 그만뒀다. 어떤 출판사판을 봤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이것이 우리나라 문학의 최고봉 중 하나라는 작품이라고?... 몇번이나 의심하면서 보다가 포기했다..

 

이번 마로니에북스에서 나온 [토지]는 와전되거나 훼손되었던 작가의 원래 의도를 복원했다는 판본이라고 알려졌다.

1969년부터 연재하기 시작한 연재본을 판본으로 해서 정본을 시도한 것.

그러니 마로니에북스 걸로 봐야하겠지.

장장 20권. .. 이런 걸 ㅎㄷㄷ이라고 하는 것이제.

유시민은 1부(4권)라도 읽으라고 권했다.

그래서 1부 1권이라도 읽어보려고 마음 먹는데.. 이렇게 책만 또 먼저 구입해놓고 읽지 못하는 책들 쌓이는 게 이제는 무섭다.

책의 그 물리적 무게와 차지하는 공간을 (지금 집에 뭐 별로 있지도 않지만 그래도..) 보고 있자면 좀 숨이 막힌다.

여기 이사올 때 그래도 한쪽은 넓은 녹지와 공원도 있고 공간이 트여서 택했는데 .. 그 빈공간에 여지없이 아파트가 들어서고.. 이제 사방이 막히는 형국이라.. 산책이라도 하려 밖으로 나가 둘러보면 이제 숨이 막힌다.

서울을 떠나야 한다,...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맹렬하다가도 이것저것 생각하면 쉽게 정리가 안되고. ..

지쳐간다. ....

지친다...가 맞는 말이다. ... 고갈되고 지치고... 늙어가고... 생각보다 조로(早老)하는 것 같다.

 

[토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언젠가는 읽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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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1853~1890)가 남긴 어마어마한 편지를 이렇게 마치 한편의 드라마처럼 엮어 만들어 낸 역자이자 엮은이 신성림(그리고 출판사)의 신들린듯한 편집 내공에 감탄했다.

 

고흐는 27세에 화가로의 진로를 택했고 그리고 죽기전까지 딱 10년을 그림에 생을 걸었다.

 

그래,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생명을 걸었다.

그로 인해 내 이성은 반쯤 망가져 버렸지. (306)

(고흐 사망 당시 지니고 있던 편지 중)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테오의 답장이나 테오의 편지는 책 끝부분에 이를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

고흐의 편지만 넣은 건가, 했다.

그러다.. 고흐의 절망이 더이상 제대로 된 이성을 버티지 못할 때, 테오의 형에 대한 지극한 우애를 담은 편지가 나오기 시작한다.

고흐가 발작으로 쓰러지면서 본격적으로 절망과 슬픔에 사로 잡힐 때 테오의 형에 대한 걱정과 어떻게든 절망하지 않도록 격려하는 간절한 편지들을 실은 것이다.

 

1889년 4월 21일('요양원으로 가고 싶다') 고흐의 편지와 1889년 4월 24일('다른 방법을 찾아서') 테오의 편지에서 급기야 나는 눈물을 쏟았다.

이어 4월 30일('나 자신을 지키고 싶다') 편지에 고흐는 이렇게 썼다.

 

 이제는 이미 패배한 싸움을 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243)

 

이 즈음의 편지를 읽고 무덤덤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인생을 융단 위에서 노니는 사람일 것이다.

좋은 인생이다. 부디 그렇게 계속 살 수 있길 기도하고 싶다. 복받은 인생이다.

 

고흐의 절망의 편지들을... 아마 내가 조금 더 어렸었다면 이토록 절절히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고흐는 요양원을 떠나 자연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했다.

그리고 옮긴다. 그러나 그곳에서 보낸 편지에

 

어쨌든 여기서도 내겐 아무런 행운이 없다는 느낌이 들곤한다. (266)

 

... 인생의 운이 다함을 절감한다는 건... 인생의 대운이 끝난 뒤에도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살아갈 그 무언가가 있는가를 생각했던 지난 날이 생각나 잠시 책읽기를 멈춰야 했다.

 

동생 테오의 편지들, 1889년 5월 2일('형의 불행은 분명 끝날거야') 편지에서 형의 절망을, 자신의 생이 실패했다는 생각을, 자신의 그림들이 한점도 팔리지 못했고, 그래서 동생에게 모든 짐을 지우고, 그림에 생을 걸었건만 원점으로 되돌아 간 듯한 허무함에 시달리며, 이성이 망가져버린 형에게 어떻게든, 그렇지 않다고, 형이 얼마나 많은 화가들의 부러움을 받는지 아느냐고, 우리 희망을 갖기로 하자고 편지를 보내지만..

이미 그런 그림들을 그려낼 수 있었던 형이 도대체 왜 절망하는거야? (247)

 

고흐의 편지들은 오지 않는다.

 

형, 아팠던거야?

 

계속 테오의 편지 몇 편만 실린다. 드디어 전시회를 갖게 되었다는 소식, 칭찬이 쏟아졌다는 소식, 그림 한점을 400파운드에 팔았다는 소식.. 들을 알리는 편지들...

 

고흐가 총으로 자신을 쐈는지 또는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다 불행히도 총을 맞고 치료를 거부했는지 아직도 여러 얘기가 있는 모양이지만, 어쨌든 고흐는 끝내고 싶어했다.

고흐는 1890년 7월 29일에 사망했다. 그리고 동생 테오는 그로부터 6개월 뒤, 1891년 1월 25일 건강 악화로 33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다시 말하지만, 부디 무덤덤하게 읽을 수 있기를, 그런 생을 살고 있음에 감사하길.

그렇지 않고 뼛속깊이 울음이 난다면..

별까지 걸어갔을 고흐처럼, 언젠가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조용히 바라며 당분간 잊고 살기를...

이책을 읽게 해준 루시드폴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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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5-13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절절하네요. 저도 이 책 다시 책장에서 꺼내서 읽어봐야 겠 습니다.

포스트잇 2015-05-13 19:17   좋아요 0 | URL
고흐 편지 자체가 힘이 있습니다만..그걸 잘 엮어낸 기획력이 좋더군요.
그리고 책과도 때를 만나야 하는듯합니다. 아마 제가 더 어린시절 읽었다면 지금과 달랐을 수도 있구요..
지금은 고흐의 절망이 너무 와닿습니다..
 

˝화가가 자기 그림에 너무 몰두해서 감정적으로 점점 피폐해지고 가정생활이나 다른 일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간다고 할때, 그래서 그가 단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자기 희생과 자기 부정, 그리고 상처받은 영혼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면,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역시 그만큼 힘든 일이다.너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 화가와 똑같은 방식으로 너 자신을 희생 하고 있는 것이다. (197)˝


`그 화가`란 고흐 자신이고 `너`는 동생 테오이다.

1888년 7월 25일에 쓴 편지.
이즈음 그는 `발작`이 있었고 건강이 회복됐다고 말하지만 약해져 있었고 경제 사정도 악화되고 있었던듯 하다.

그럼에도 편지에 저렇게까지 흔들림을 적어놓고 보니 안되겠다 생각했는지 그 밑에 이렇게 쓴다.

˝아마 내가 더 많이 지치고 더 많이 아파할수록, 우리가 말한 이 위대한 예술의 부흥기에 훨씬 창의적인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체념 또는 다짐 또는.. 기도 같은 말로 끝낸다.

˝마음의 평화와 믿음을 다시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그림을 더 잘 그리는 것 뿐이라고. (198)˝

˝나에겐 그림밖에 없다˝고 그것 하나 붙잡으려는 마음이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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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로잡고 있는 책은 이미 오래전에 나온 [반 고흐, 영혼의 편지]다. 이제야 읽는다.

초판이 1999년, 개정판이 2005년에 나왔다. 개정판을 읽고 있다.  

루시드폴은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에서 그의 팬이 준 책이었던 고흐의 편지를 몇번이나 반복해 읽었다고 썼다.

"문장이 유려해서가 아니라 고흐의 시선과 그가 세상을 살아내는 모습이 감동적이었기 때문" 이라고.

나는 이제 고흐가 서른 셋 나이의 벨기에 앤트워프 미술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전의 편지들을 읽고 있다.

그는 당시의 미술 아카데미의 그림들을 비판했다.

나무랄 데 없이 정확하고 잘 그린 그림들로 "그 이상 더 잘할 수 없"(129)지만 "그것들이 "우리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끔 이끌어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그는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신경증 때문에 결국 1년을 견디지 못했지만, 그토록 확신에 차서 비판했던 아카데미식 그림과 기법들이라 할지라도 그가 배워야 할 필요를 느낀 뭔가가 있었던 것일까.

 

 

 

 

 

 

 

 

 

 

 

 

 

 

고흐는 평생 800여 편이 넘는 편지를 남겼다고 한다. 발견하지 못하거나 이미 상실된 편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니 그는 그야말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전하고 싶은 욕구가 강렬했던 사람이었다고밖에 달리 할말이 없다.

(고흐가 간질을 앓았다는 것, 그리고 일종의 하이퍼 그라피아를 가지고 있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27세에 비로소 그림을 시작한 그가 37세에 죽기 전까지 10년 동안 1,100점 이상의 스케치, 900점 이상의 유화를 남겼다는 점 - 한 주에 2점을 그렸다는 얘기란다, 어마한 양의 편지 들을 볼 때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뭔가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한 그 어떤 기질이나 병적 행동이 남긴 것이라고 후세의 우리는 쉽게 얘기하는 거겠지.)

 

레오 젠슨(Leo Jansen)이 모아서 출간한 [Vincent van Gogh : The Letters]는 무려 6권이나 된다고 한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그림 연습과 그림을 그리며 보내는 사이사이 동생 테오에게 또는 동료 화가에게 또 누군가에게 글을 써 보냈다.

자신의 귀를 자를 정도로 광기의 화가로만 알고 있었다면 그의 편지에서 보여준 어마무시한 신념과 확신, 굳은 의지와 단호한 생각들을 접하면 그 거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잠시 편지에서 눈을 떼고 생각해보게 된다. 아니, 그 정도의 강한 의지를 가진 인간이었기에 귀를 자를 수 있었을까..

 

고흐는 자신이 그린 그림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기도 한다. 그 설명의 표현력도 대단하다. 창작자 자신이 직접 설명하는 자신의 작품의 처음과 끝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줄 아는 예술가도 드물지 않을까. 감탄하며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아끼며 천천히 읽고도 싶고... 나이들어가는 고흐의 내면을 빨리 읽고도 싶고... 흘러가는 시간이 아쉬울 뿐이다.

 

(고흐가 아꼈던 물감 중 하나가 '크롬 옐로우'인데, 당시 기술로 새로 개발된 물감이었다고 한다. 화학적으로 불안정했고 결국 시간이 흐르며 변색이 될 수밖에 없어 고흐 당시의 원색의 느낌이 제대로 살지 않는다고 한다. 고흐는 여러모로 불행했다고 할수밖에 없겠다. 늦게 그림을 시작했고 단 한 점의 그림을 팔았을 뿐이고, 화가로서 알려지지도 좋은 평가를 받지도 못했다. 병을 앓았고, 결국 불행한 죽음을 맞았다(자살인지 타살인지 총에 맞았지만 치료를 거부했다고 한다). 남은 그림 중에서 고흐가 원했던 느낌을 우리가 제대로 볼 수 있기나 하는 건지.

동생 테오의 편지는 어땠을까. 동생 테오의 관점에서 본 형 빈센트의 삶은 어떻게 보였을까. 그것도 궁금하다.)

 

고흐의 편지 중 동료 화가 반 라파르트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영혼의 편지2' [반 고흐, 우정의 대화]는 절판된 상태인데

출간될 때도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 모양이다. 어떤 차이가 있을지 그것도 궁금하다. 보유하고 있는 도서관이 있으면 모를까 구해보기 쉽지 않겠다.

 

 

 

 

 

 

 

 

 

 

 

 

 

 

 

편지가 이토록 좋은 형식이 될지 몰랐다.

누군가에게 나도 이토록 끊임없이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5월 들어와 간절해졌다.

그리운 누군가가 이토록 없단 말인가.

내 마음은 어디로 가는가.

 

존 레논의 편지들도 함께 읽고 있다.

요코를 만나기 전 인도에서 요가와 명상에 빠져 있던 1968년 초의 편지들까지 읽었다. 

존의 편지들은 ... 평범하다고 해야 할까. (편지보다는 간단한 엽서, 메모, 심지어 비행기 등에서 하는 설문지 같은 존이 남긴 것들을 모았다.)

인상적인 글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의 생과 편지를 쓸 때 당시의 상황들에 대한 엮은이 헌터 데이비스의 안내가 그럭저럭 잘 이끌며 읽을만하다.

존의 생과 음악을 생각하면 간단하고 특별한 정서를 담지 않은 그의 편지가 재미없진 않다.

남은 편지들이 기대된다.

어제는 오랫만에 존의 음악들을 찾아 들었다.

<Love>는 각별한 게 있어서 반복해서 들었다.

존 역시 흔히 말하는 가창력 쩌는 가수가 아니다. 그런데 그의 음색이나 창법에서 뭐라 딱히 규정할 수 없는 쓸쓸함 같은 게 배어 나온다.

스무살 되기 전에 신시아에게 빠진 존은 편지와 엽서, 카드 등을 통해 끊임없이, 줄기차게,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를 써서 구애했다. 얼마나 솔직한가. 여기에 뭐 가식이나 밀당이나(했을지 모르지만...) 눈치보거나 그런 거 없다. 그림까지(솜씨가 좋다) 그려 넣어가며 Love, Love를 빼곡히 써서 보냈다. 사랑한다지 않는가, 내가 너를 아주 많이, 완전히 사랑한다 하지 않는가.

그리고 막 결성되어 연애나 결혼같은 가십을 숨겨야 할 필요가 있던(당시는 그랬다) 비틀즈에서 유일하게 결혼한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미혼이라고 했지만 곧 팬에게 자신이 결혼했고 아이(줄리안)도 있음을 고백했다. 사랑한다지 않은가.

담백하고 간결하고 직선적이다.

 

 

 

 

 

 

 

 

 

 

 

 

 

 

 

그리고 이에 비해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접하게 될 책은 이오덕, 권정생 사이의 편지글이다.

 

 

 

 

 

 

 

 

 

 

 

 

 

 

 

두 사람 다 내게는 먼 사람들이다. 이오덕 선생이야 [우리말 바로쓰기]로 접했지만 그의 엄격함이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고 할까. 이분들의 편지에서는 또 무얼 느끼게 될지 궁금하다.

 

요즘은 마음을 울린다는 거에 대해 생각한다.

무엇이 마음을 움직이나.

무엇이 울컥하게 하고 그립게 만드나.

나는 어떤 내상(內傷) 을 입지는 않았는가. 올해 초 무섭게 몰아쳤던.... 간신히 빠져나온 듯 하지만 .. 위태롭다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인지 따듯한 걸 찾는 모양이다. ...

화려한 것들, 엄청난 물량공세로 들이닥치는 것들 사이에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소식이 없다.

 

늙어지고 가난해지고 못생겨지고 병들어갈수록 가장 빛나는 색깔과 눈부신 조화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

세상에 대한 내 복수가 될 것이다...

 

(마종기,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 p109에서 인용)

 - 고흐의 편지에 나온 한 구절을 시인 마종기가 옮겼는데 [영혼의 편지]에 포함된 글인지 아직 모르겠다.

 

 

가장 빛나는 색깔.. 눈부신 조화...그게 이다지도 불우하게 들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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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테나뮤직에 관심을 가지면서 예전엔 들었다가 언제부턴가 잊었던 루시드폴을 다시 들여다봤고, 연휴사이에 손에 쥔 두 책은 루시드폴을 정말 다시 보게 만들었다.

글이 참 좋고, 글이 좋은 건 그 사람다운 삶을 별다른 꾸밈없이 쓰고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오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그가 집중하고 있는 그다운 삶을 찾으려는 노력과 자기다운 음악을 찾으려는 행복한 노력.. 치열하기도 하지만 정말 행복해하면서 해나가는 노력이 가슴에 닿았다.

 

 

 

 

 

 

 

 

 

 

 

 

 

 

 

 

 

그는 지금 제주도에서 산다.

5월말에 사흘, 서울 공연을 하는데, 주제가 '목소리와 기타 - Quiet and Comfort'다.

읆조리듯, 고음이 되지 않아서 한없이 자신없어 하던(?) 그가 자기 음역대에서만이라도 정확하게 내기 위해 숱하게 마음앓이 하며 방법을 찾았던 몇 해를 보내고  기타 하나 외 '기댈 곳' 없이 노래를 들려주는 공연을 하고 있다.

마치 수도하듯이 시끌벅적하지 않게 집중해가며 목소리로 그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 공연을 하고 나면 자기 안에 힘이 생긴다고 한다. 행복하다고. 그는 좋겠다.

 

팬이 준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 고흐의 글이 어느 문학가의 글보다 훨씬 더 가슴 깊은 감동을 준다고 했다. 문장이 유려해서가 아니라 고흐의 시선과 그가 세상을 살아내는 모습이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뮤지션 루시드폴은 자신이 받은 감동을 전한다. '나는 더 나아지고 있다'는 고흐의 말이 그에게 남다른 울림을 주는 모양이다.

어제보다 오늘 나는 더 나아지고 있다... 더 나아지고 있다...

 

루시드폴은 '나이진다'는 것을 더 '나'다워진다는 것으로 짐작한다.

 

음악적으로 '나아진다'는 것이 뭔지 잘은 모르겠어요. 더 많이 알게 된다는 거나, 더 능숙해진다는 것만은 아닐 테지요. 어쩌면 그건 더 '나'다워진다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작가가 그 작가의 작품과 더 가까워질수록 작품에 힘이 생기는 것일 테니까요. 단순한 위안이나 감상이 아닌, 말 그대로 '힘'을 주는 작품이 있잖아요. 그 힘의 원천은 작가가 살아가는 모습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 '나'의 모습도 괜찮은 모습이어야 노래도 괜찮게 나오겠지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노래의 시선이 되니까요.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 175)

 

 

 

 

 

 

 

 

 

 

 

 

 

 

올해 들어와 특히 이제와서 나는 내가 부끄러워 사람 앞에 나설 수가 없다는 걸 알았다.

괴롭히는 게 가지가지다.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

혼자라는 게

때론 지울 수 없는 낙인처럼

살아가는 게

나를 죄인으로 만드네.

.............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는 스위스로 옮긴 후 마냥 춥던 날에 썼던 곡이라고 한다.

사람들도 차고, 아무리 껴입고, 문을 닫아봐도 춥고 시렸던 날들에 썼다고 한다.

 

김연우에게 곡을 줘서 그의 3집에 실렸지만, 루시드폴 3집 《국경의 밤》(2007)에서 직접 불렀다.

김연우에게서 느끼는 거지만, 가창의 신.. 뭐 이렇게 불린다는 건 알지만 나는 그의 노래가 너무 건조하다.

노래 기교가 좋은 사람들, 너무 쉽게 고음을 내고 뭐 각종 스킬들에 능숙한, 그들에게서 가끔 느끼는 건데, 너무 소리를 잘 내니까 그들 스스로가 심드렁해서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닐까 싶은 느낌을 가질 때가 많다

한때 김건모에게서도 그런 걸 느꼈고, 이후 김건모는 오래 슬럼프를 가졌다. 물론, 김창환과 헤어진 후여서 일수도 있지만.

김창환과 잘 나가던 때 그가 느꼈을 일종의 권태가 있었지 않을까 싶다.

여튼, 김연우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 고음이라곤 내지 못하는 루시드폴의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가 그 느낌을 더 잘 전달해준다. 이 역시 각자의 취향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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