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진지하고 묵직한 영화...라고는 말하긴 어렵다.

대신 진짜 누구말대로 낙천적이고 밝은 기운을 주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너무 낙관적이라 비현실적으로 여겨져 영화가 너무 가벼운 거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지만, 가끔 이런 어처구니 없이 낙천적인 영화도 보면서 즐기는 게 뭐 어때, 라고 하면 된다.

영화 <마션>은 그냥 헐리우드 영화다. 실제 우주비행사들과 나사 과학자, 우주연구자들의 자문을 통해 화성이나 우주 비행과 관련된 사항들을 토대로 만든거라 아주 엉터리는 아닐 것 같은데, 보고 있자면 비현실감이 느껴질 정도로 SF스럽지 않다.

그만큼 저들의 발전 수준(스토리상 필요한 것 외엔 구구절절 설득을 위해 기술적인 설명들을 생략한 것과 과학 발전 수준을 바로 연결시키는 게 합당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과 나로호 하나 발사 시키기 위해 몇번 실패를 지켜보았던 우리 수준과의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는 영화같았다.

아, 내가 <인터스텔라>나 <그레비티>도 보지 못한터라 요새 헐리우드 SF 수준이 잘 가늠되지 않는 면도 있겠다.

언뜻 스치듯, 아, 쓰바, 저것들은 저러고 있는데, 박양을 대통령으로 만들어놓고 국정교과서 싸움이나 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한심스럽던지. 뭐 꼭 우주선을 쏘아올리고 우주비행을 하고 우주탐사를 해야한다는 건 아니지만... 수준이 너무 떨어지잖아.

 

더군다나 사고로 화성에 홀로 남겨진 한 사람을 위해 전 미국, 전 세계(우라질 이 미국월드라니)가 그의 귀환을 도모하는 영화적 현실은 수백명이 바다에 빠졌는데 초기에 헤엄쳐 나온 사람 건진 거 외에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는 나몰랑과 아예 묻어버리려는 작태를 안고 사는 우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수준이 너무 떨어지잖아.

영화는 그렇고 이번엔 이 원작소설이 꼭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랫만에 SF.

동양권 최초 휴고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관심이 갔는데, 도서관에서 빌려다 놓고 소세키 작품들을 먼저 읽는 통에 계속 미뤄졌다.

겨우 들고 읽기 시작했는데, 3페이지만에 아, 지금 당장 읽을 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응용과학자로 나노소재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주인공 왕먀오에게 군인 두명과 경찰 두명이 방문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그중 스창이라는 경찰은 날카롭지만 무례한, 어찌보면 전형적인, 까칠하지만 자기 일에서만큼은 철두철미한 전문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에 대해 두명의 군인이 서로 대화를 나눈다, 왕먀오를 앞에 두고.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모양이야."

이렇게 한 사람이 묻자,

"악명 높잖아, 몇 년 전 인질 사건 때도...." 주절주절...

정보를 흘리는 대화를 떡하니 나누는 것이다.

스킬이 뛰어나진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선입견이 생기고 만다.

그렇지만 읽어볼만한 이야기가 담긴 것 같긴 하다. 주나라 시대와 인물을 사이버게임으로 불러오며 시작하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기 이를 데 없지만... 마음이 여유롭지 못한 관계로 나중에 읽을 거리로 돌려놨다.

한때 미스테리소설, 특히 범죄스릴러 장르와 탐정물을 꽤나 좋아하고 많이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어느새 요사이는 장르소설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클래식으로 상찬되는 소설들도 많이 읽지 못했고 읽은 작품들 중에는 어린 시절에 읽었던 것들이 많아서 읽어본 적 없다는 듯이 완전 새 책 읽듯이 읽어야 하는 건데, 책은 길들여지는대로 읽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SF가 잘 들어오지 않는 건 어떤 일종의 타고난 SF적 감수성이나 감각이 없는 바에야, 길들여지지 않을만큼 많이 읽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는 소설을 아직 읽지 못했는데, 이 책은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번역출판된지(2012년) 3년이 지나고 있건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일까. 도서관에 여러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음에도 여전히 빌려보기 어려울 정도로 꾸준히 사람들이 찾는 책이다. 이쯤되면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구입해서 볼까..한때 게이고의 팬이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끊어졌다. 참 알 수 없는 사태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소세키 소설들이다.

예전에 소세키를 읽을 때는 일본작가답게 소소하고 일상적인 사건들을 담담하게 전개하면서도 심리묘사들은 본질을 건드리는 것 같고 참으로 현실적이어서 인상적이다고만 생각했었다.

예전에 분명 읽었던 것 같은데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거리는 책을 다시 읽거나([마음]), 미처 읽지 못했던 작품들을 챙겨서 읽어나가고 있다.

소세키를 좋아하는 사람들, 하루키가 있었고, 강상중 교수가 있다. 또 누군가가 있겠지만 아직 다 살펴보지 못했다.

하루키는 20대에 읽었던 [문]을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적이 있고, 강상중 교수는 아예 [마음]의 뒷부분을 창작하는 팬심의 일단을 실천하기도 했다. 집필 순서대로가 아니라 닥치는대로 읽고 있지만 소세키는 정말이지 꼭 읽어야 할 작가라고 생각한다.

소세키는 고작 1905년부터 1916년 사망시까지 약 10여년 활동한 작가다. 문학론과 에세이들, 그리고 십수편(장편 14작품)의 소설을 집필했다. 장편 14작품 정도는 반드시 읽어야 할 것 같다.

조선의 패망을 관통하는 시대동안 소세키에게 문명과 국가와 개인의 문제가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도 관찰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게 그럴 능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강상중은 소세키의 주인공 인물들의 특징을 '과잉된 자아'를 안고 사는 인물로 정의한다.

과연 그렇다. 과잉된 자아로 자신만의 성을 쌓아가며 사는 당대 지식인의 모습들을 관찰할 수 있다.

[도련님]은 초기작인데, 여기에는 예민함에 베일 것 같은 젊은 인물 '나'가 등장한다.

이런 '나'들의 변화 또는 변하지 않는 것 같은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가 될 것이다.

시바타 쇼지의 [다시읽기]는 읽을만했고 다시 생각해볼만하다.

쇼지는 소세키와 하루키의 공통점을, 첫째, 외국생활을 통해 일본을 타자화한 점, 둘째, 작품에 드리우는 폐쇄감, 셋째 문단과 무관한 작가, 넷째, 시대를 뛰어넘은 문장가로서의 면모를 들고 있다.

또한 국가와 개인, 모던이라는 주제를 놓고 두 작가를 비교하는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좀더 흥미를 끈건, 소세키에게 텅빔, 쓸쓸함이 하루키에게서도 공통된다는 점를 해석해나가는 대목이다.

하루키의 초기 3부작(흔히 쥐3부작)과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태엽감는 새], 그리고 [해변의 카프카]와 [1Q84]를 보다 집중해서 분석한다. 다시 읽어보고 싶다.

두 작가의 작품을 따라가다 읽어보면 돈이나 사회적 폭력 속에서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고민해봄직하다는 건 쇼지 보다는 강상중교수가 더 강조한 것이다.

 

생각이 뿔뿔이 흩어지는 일이 잦아져 책을 집중해서 읽기가 상당히 어렵다. 초조한 마음.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는 동제목의 글만 읽고 뒀다. 세세하게 들여다보며 더듬어 사물과 일의 본말을 다잡아 표현해 내는 능력은, 쓰바, 여전하지만,, 왠지 ... 그냥 둬도 좋을 것들을 억지로 풀어헤쳐 보이려는 미련?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자연, 스스로 그러함... 자연스러움은 스스로 그러해서 아름다울 수 있도록 하는 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하고, ..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다 읽었냐고?

마지막 권 4권을 남겨두고 딴 책들 보고 있다. 재미없어서냐고? 반대다. 진짜 재밌다. 부코스키가 자기는 톨스토이가 별로라고 했다지만, 드라마의 황제가 톨스토이라고 생각한다. 

이러다 새 번역책이 나올지 모른다. 그것도 좋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깨비 2016-07-02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는 라면을 끓이며 동제목 글 그거 바로 다음 글까지 읽고 내려놓았어요. 저도 요즘 현암사 소세키 전집에 푹 빠져 있습니다.

포스트잇 2016-07-02 12:00   좋아요 1 | URL
현암사 소세키 전집은 이번에 `명암`, `마음`, `한눈팔기` 세권이 나왔더군요.
현암사 전집으로 또 새로 구입해야 하나... 고민이 쫌 되네요.
.......... 그러고보면 제가 소세키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건 아닌가 봉가.... 싶습니다 ㅎㅎ
 

라면 끓여 먹고 싶다.

라면이 급 땡기네.

 

 

 

 

 

 

 

 

 

 

 

 

 

 

...

라면 ..좋아하지 않는다가 맞겠지.

1년에 먹는 라면이 열그릇도 되지 않을 걸? 대여섯그릇 정도?

몇 개월만에 한번 정도 먹는 것 같은데...

라면도 뚝딱 먹어 치우고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이 늘 부러웠다.

노동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 같았다.

먹는 걸 가리고 조금밖에 먹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들은 야생에서라면 아마 예전에 죽었을 것이다.

 

찬 공기를 타고 라면 냄새가 넘실대며 나는 것 같다.

인공의 냄새 속의 구수함이 섞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룰 수 없는, 그러니까 마감에 쫓기고 있는데 막막하기도 하고 일 하기도 싫어 아침에 [전쟁과 평화] 3권을 계속 읽었다.

제2편의 1812년 8월 25일 보로지노 전투를 앞둔 여러 정황들이 묘사된다. 여기에는 이 소설을 평할 때 늘 중요하다고 언급되는 안드레이 공작과 피에르 베주호프 백작 간의 전쟁을 두고 벌이는 대화 - 안드레이의 일방적인 전쟁관과 역사에 대한 주장이지만 - 등이 나오는 장이 있다.  

역사와 우연과 필연, 인간의 의지 등에 대한 톨스토이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대목들이 있다.

 

앤디 밀러의 [위험한 독서의 해]에서 선택한 50권의 책 중에는 [전쟁과 평화]도 있는데, 앤디 밀러는 [전쟁과 평화]는 톨스토이가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고 그 사상을 구현한 작품이라고 평한다.

헤겔과 동시대 철학자로서 살면서 이성의 철학자 헤겔에게 한없이 밀렸던 의지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주 저서도 봐야 하는 건가, 라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며 [전쟁과 평화]를 읽게 된다.

 

앤디 밀러에 의하면, 톨스토이는 공공연히 밝혔다고 한다, [전쟁과 평화]의 철학적 결말, 특히 역사와 개인의 의지에 대한 기다란 단락들은 쇼펜하우어로부터 가져왔다고.

앤디 밀러의 부인이 톨스토이의 "인간 본성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인생의 각 단계를 놀랍도록 신빙성 있게 묘사해내는 능력"(330)에 감탄했다면, 앤디 밀러는 "톨스토이가 본래 쓰려고 했던 내용과 대중에게 이를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소설이라는 양식에 대한 그의 불안감 사이의 갈등에 매혹되었다"(331) 한다.

 

[전쟁과 평화]를 쓰면서 톨스토이는 점점 더 소설 자체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완성할 때쯤에는 아예 정이 뚝 떨어져 있었다. 그가 쓰고 싶었던 것은 오직 쇼펜하우에게서 영감을 받은 철학적 견해들뿐이었다. (331)

 

톨스토이의 소설에 대한 불안은 뒤로 갈수록 더해진다는데 이러한 견해들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읽어야 한다.

나는 [전쟁과 평화]를 읽으면서 아무래도 앤디 밀러의 부인이 감탄한 부분에 동감하며 읽고 있다.

인간본성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인생의 각 단계를 묘사하는 능력. 장면을 구성하고 묘사하는 부분도 흥미롭게 보고 있다.

역시 나타샤와 안드레이 공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을 다룬 2권(범우사판) 후반부는 아마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직도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는 상황인데 마음은 급해지고 어서 읽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읽다가 중단하다 다시 읽고 하는 와중에 그래도 드디어 3권을 읽기 시작했다.
전 4권이기 때문에 앞으로 약 1천페이지 정도만 더 읽으면 어찌됐든 이 대작을 성인이 돼서 다시한번 읽게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안나 카레니나를 더 대단한 작품으로 꼽는거같은데 내 취향은 전쟁과 평화가 더 재밌긴 하다.
이 범우사판으로도 대단함을 충분히 느낄수 있지만 보다 정확하고 오탈자 없는 번역본을 보고 싶다.
도대체 언제쯤 볼 수 있는 것인지...

요즘 독서에세이 쪽으로 관심이 간다.
위험한 독서의 해 라든지, 내인생을 구한 독서 따위의 제목이 많아지는 걸 보니 힘든 세상 책읽기로 뚫고 나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렇다.
약 10년..아마 이 서재를 알게 되고 시작한 그 언저리쯤부터 그 시간을 책읽기를 통해 견딜 수 있었다.
그이전 약 10년을 정신없이 살다가 물려서 물러난 그때부터 내가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책 때문이었다.
이후 10년이 지났고 또 한번 10년을 정리해야 한다는 어떤 일종의 인생 전환점 같은 것..
평생 꾸준한 사람들의 인생이 늘 부럽다.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돌아보니 한없이 초라해서 나를 살려준 책들을 더 정성들여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읽지 못한 책 몇권을 보충하고 다시 읽을 책들을 뽑아서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려한다.

전쟁과 평화도 새 번역본으로 다시 읽어야 할 것이다.
우선 남은 3, 4권을 마저 읽고..다 읽기 전에 새 번역본이 나올 거 같지 않다..아마 그럴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