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재밌게 쓰는 소설가는 에세이도 재밌구나.

이야기의 바다를 항해하는 한가지 방법을 이야기해준다.

한권의 소설로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바다에 떠있는 섬들을 서로 연결시키며 또 하나의 이야기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재주를 만날 수 있다.

 

다른 책들은 많이 읽지만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돌아보면 어린 시절엔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세계문학전집의 책들을 의무방어전 하듯이 읽었지만, 청년시절엔 소설을 멀리했고, 중년이 되어서야 다시 소설을 찾았고 이제는 소설에 집중하고 있다.

마치 소설은 어릴 때나 읽는 것이라고 말하는 어른들을 종종 만난다. 그들이 소설을 읽지 않는 이유가 뭘까. 소설 읽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단단한 소설들, 고도로 정신을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소설들을 읽는 건 웬만한 인문서 읽는 것보다 어렵다.

"유일무이한 감정적 경험"을 겪어야 하는 부침이 있을 수도 있다. 때론 "아무 의미도 없는 이상한 세계에서 어슬렁거리"는 헛헛한 듯한 마음도 겪어야 한다.

소설가가 만들어놓은 "정신의 미로"에서 헤매는 것을 꺼려할 수도 있다.

방황하다 돌아왔는데 그 여파가 한동안 지속되는 기분을 제대로 감당하기 어려워할 수도 있다.

방황이나, 정신의 미로에서 헤매는 기분 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명쾌하고 분명한 세계를 읽는 것을 더 선호할 수도 있다.

어쩌면 자신이 보고 싶지 않은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기분을 다시 맛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내면을 건드리는 소설은 어떤 이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위험한 소설. 

 

소설의 문장 한구절, 단락 하나하나를 얼마나 신중하게 집중을 다하여 읽어야 하는지 다시 느끼게 해준다.

특히 셋째날, 읽다는 아주 흥미롭게 읽었고, 소설을 읽는 이유랄까, 뭉클한 진정성이 느껴지는 명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경유해야 할 곳 중 하나는 밀란 쿤데라인 것 같다.

쿤데라도 인생이 "안개속의 길들"을 따라 떠나는 여행이라서, 인간은 안개 속으로 나아가는 자이고, 소설은 그런 인간의 인생을 위한 독특한 존재론을 갖는다고 말한다. 

읽는 일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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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언 매큐언이 줄리언 반스 보다는 통속적인 듯 보인다.

각각 1948년, 1946년 생인 두 사람은 과문하게스리 내가 비교적 현대 영국작가로 알고 있는 작가들이다.

또 알고 있는 현대 영국작가 없나? ... 없는 것 같다. 여전히 고전 쪽에서 허덕이고 있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이런 사랑] [속죄] 그리고 이번에 읽은 [칠드런 액트]가 전부인데, 그 전 두 작품이 애매했었다.

재미없지 않은데 딱히 다루고 있는 문제들을 안고 내가 씨름할만한 것들이 아닌 것이라 여겼다.

읽은지 오래된 터이기도 해서 기억도 선명하지 않다.

우연히 마주친 사고, 갑자기 불어온 돌풍으로 기구가 하늘로 올라가면서 타고 있던 사람을 구하는데 참여하지 못한 주인공이 돌아와 짊어지게 되는 죄책감... 이었던가?

[속죄]는 질투로 인해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 때문에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죄의식을 다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작가가 주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회한'을 주제로 다룬 작품들을 쓴다고 하는데 '가지 않은 길' 혹은 '행하지 않은 액션', 그로 인해 안게 되는 마음의 불행을 즐겨 다루는 건 맞는 것도 같다.

 

[칠드런 액트]는 근래에 아주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평생 소설을 써온 작가의 능숙한 솜씨를 곳곳에서 느끼며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또한 역자인 민은영의 '옮긴이의 말'은 이 소설과 작가에게 진입하는 길안내를 아주 깔끔하고 명쾌하게 쓴 근래에 읽은 동류의 글 중에서 갑이라고 할만했다.(순전히 개취다)

 

이언 매큐언의 인물들은 주로 전문 영역에서 일하는 지성인들이다.

신경외과의사(토요일), 고등법원 판사(칠드런 액트), 교향곡 작곡가(암스테르담), 현악 사중주단 리더(체실 비치에서) 등이며

이들의 행동을 가로막은 것들에 관해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칠드런 액트]는 제목만 보고 아, 아동법과 관련된 법적 문제를 다루는 범죄소설인줄로만 알고 읽을까 말까를 망설였다.

작가는 현대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미천한 독자의 상상을 넘어서니까.

59세의 고등법원 판사 피오나에게 판결의 이해관계자에 해당하는 18세 애덤의 '열정'(소설 마지막 문장의 말처럼)은 무엇이었을까.

핵심은 피오나가 애덤에게 할 수 있는 '역할'(역시 소설 마지막 문장에서)의 문제다.

당연히, 나라면, 이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나라면, 나였다면 그 상황에서 기민하게 움직였을 수 있을까?

왜, 무엇이 피오나로 하여금 어떤 조치든, 액션을 취하지 않게 만들었을까. 아니, 더 정확히는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은 액션을 취한 거라고 해야 하나.

이언 매큐언은 이 부분을 어떻게 전개시켰더라. 벌써 기억이 가물거린다.

아이 없이 평생 함께 살아온 남편이, 당당히 지금껏 의무를 다했으니 사랑을 위해 살고 싶다며 집을 나갔다가, 비로소 당신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더라는 깨달음과 함께 가방 들고 다시 돌아온 남편을 둔, 59세 고등법원 판사의 행하지 않은 액션.

 

.......

 

역자의 말처럼 이 소설에는 음악이 흐른다. 재즈, 클래식에 일가견이 있다는 작가의 음악을 작품 속에 녹여내는 솜씨도 괜찮다.

덕분에 구스타프 말러에 관해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말러는 숙제같은 거였는데 엄두가 안나서 모른채 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말러, 말러 하는건지, 조만간 간단한 전기나 평전이라도 좀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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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의 [우미인초]를 2백 페이지가량 읽었다.

1907년 신문연재로 발표한 작품인데 이때 소세키는 신경증과 위장병으로 고통 받았다 한다.

소세키 소설답지 않다. 집중이 전혀 안되는 터라 지금 더이상 읽는 게 무의미하다.

간결하면서도 유려한 소세키의 문장이 아니다. (번역도 이게 최선인지 갸우뚱하게 된다.)
참고 2백페이지를 넘겼지만.. 포기하려 한다. 나중에 다시 한번 도전해보자.

 

이 소설의 중심 서사는 고노 긴고와 무네치카 하지마를 중심으로 한 이십대 여섯남녀의 얽히고 설킨 남녀관계라고 한다.

무네치카의 여동생 이토코는 오빠의 친구 고노에게 관심있다.

고노의 여동생 후지오는 무네치카를 좋아하고 부친 역시 그를 사위 삼고 싶어한다. 그러나 후지오는 고노의 친구 오노 세이조와 맺어지길 원한다.

오노 세이조는 스승인 이노우에 고도가 도쿄로 이사오면서 그의 형편을 도와줘야 한다. 이노우에는 딸 사요코가 오노와 맺어졌으면 바란다. 그러나 오노는 고노의 여동생 후지오와 결혼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사는 발로 쓴 것 같은 느낌이고, .. 그동안 읽어서 익숙한 소세키와는 정말 다른 느낌이다.

재미있는 책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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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도 나오는구나.

책 정도를 탐하는 것 외에 별달리 욕심부리거나 갖고 싶어라하는 게 별로 없는 내가 유일하게 쇼핑을 즐기는 게 문구류다.

그 색색의 펜들의 향연이며 각종각양의 노트들, 포스트잇의 화려한 정연함, 등등...갈수록 보도듣도 못한 문구류들이 진열된 문구점에서 한참을 구경하며 보내곤 한다.

색감의 화사함이며 맵시들을 보고 만지다보면 보고만 돌아설 수 없게 된다.

 

 

 

 

 

 

 

 

 

 

 

 

 

 

 

 

볼펜, 클립, 스테플러, 포스트잇 등 문구가 탄생하고 사용된 역사를 살펴보는 책이라고 한다. 

문화사, 사회사, 생활사, 산업사의 주요 장면들을 들여다볼 수 있겠다.

 

볼펜 끝이나 잉크에 압축된 정밀한 공학 기술들까지 풍성하게 소개하며 이것들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와 삶의 모습을 바꾸어놓았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돕는다.
또한 색인 카드에 짧은 글을 써두고 이리저리 퍼즐을 맞추듯 소설을 완성해나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노란색 리걸 패드에 작품을 써내려간 노벨상 수상작가 토니 모리슨, 포스트잇에 소설을 구상하고 완성한 이후에도 모두 스크랩해서 보관하는 윌 셀프 등 자신만의 도구에 애착을 가진 작가들과 그들의 특별한 문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소개 중) 

 

볼펜의 두 종류, 두 M이 다투던 시절이 있었는데. 학생이었던 우리들은 어떤 볼펜에서 이른바 '똥'이 더 많이 나오느냐를 비교하며 자신이 더 많이 사용하는 볼펜편을 들었던 때가 있었다. 두 M이란 모나미와 문화였다.

모나미와 문화가 이후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도 궁금해진다. 한국의 문구 기업의 흥망성쇠도 다뤄보면 우리의 생활사, 문화사, 산업사, 기술공학사 뭐 그런 게 되지 않겠나?

여튼 당시 일제 펜이 좋다는 식의 얘기들이 떠돌았고, 실제 일제 연필은 써본 적이 있다. 아마 선물로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필이어서였는지 크게 차이가 났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 같은데, .... 

그리고 학생 시절 나는 모든 것에 그랬듯이 문구류에도 그닥 관심이 없었다. 연필, 검정 파랑 빨강 볼펜. 지우개. 뭐 딱 이 정도만 필통에 넣고 다녔던 것 같다. 내 당시만해도 주위 친구들 중에 펜 사랑이 유난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화사한 필통과 필통안의 문구류들을 구경하며 왜 이 친구는 이렇게 많고 다양한 필기류를 가지고 다니는 걸까.

다 쓰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공부하는데 색색이 펜들로 밑줄이나 별표등을 구분하고 치장하느라 집중이 될까를 궁금해했던 적이 있었다. 그 친구들은 여전히 무언가를 꾸미고 화사하게 만드는 걸 좋아하며 살고 있을까?  하하하.

언제부터 문구류를 좋아라했는지 정확히 시점을 말할 수는 없으나 중년 넘어서 책을 본격적으로 좀 보게 되면서 문구에 대한 관심도 따라 높아졌던 것 같다.

지금도 딱히 고집하는 특정 브랜드나 종류의 펜이나 그런 게 있는 건 아니다.

그때그때 꽂히면 그것만 한동안 쓰다 또 다른 것에 눈독들이는 식으로 변덕 심한 소비자이자 쇼핑족에 해당한 듯 하다.

 

어렸을 때, 미드나 영화 등에서 그 노란색 줄쳐진 노트에 (리걸패드란 걸 나중에 알았다) 열심히 메모해 가며 뭔가를 연구하거나 조사해가던 장면을 보며 그 펜과 노트가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그걸 나중에야 우리 문방구에서 볼 수 있었다. 그때 주저없이 샀었던 기억이 있다.

관심가는 책이다.

나보코프가 색인카드에 글을 쓰며 작품을 구상해나갔다는 건 이제 알려진 얘기다. 게다가 그 색인카드에 사용하는 펜도 정해진 종류였다는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부분부분 쓰여진 인덱스카드들을 맞춰가며 소설을 완성한 후엔 태워버렸다고 한다.

유작으로 남겨진 [오리지널 오브 로라]는 나보코프가 최종적으로 편집하지 못한 138장의 카드를 가지고 만든 작품이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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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10-17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 책 재미있겠네요. 이런 사소한 사물의 탄생 이야기가 의외로 재미있더군요..

포스트잇 2015-10-17 11:48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문구류에 얼마나 정밀한 공학적 기술이 들어갈지는 깊은 생각 하지 않아도 짐작할만 합니다. 구미가 마구 당깁니다, 홍홍홍

낭만인생 2015-10-17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구... 정말 읽고 싶네요..

포스트잇 2015-10-17 14:24   좋아요 0 | URL
문구류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무척 재밌어할거같아요^^
 

하루키의 초기작이 그리웠다.

직접적으로 방아쇠를 당긴 건 시바타 쇼지의 [무라카미 하루키&나쓰메 소세키 다시읽기]였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1985)는 아마도 8년 여 전에 하루키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을 때 읽었을 것이다.

아마도 하루키 소설 중에서도 애정하는 작품에 해당할 것이다. 하루키의 최근작보다는 그의 초기작들이 좋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세계가 숨 쉬는, 하드보일드한 절망과 무심함이 유머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세계.

 

다시 꺼내들고 읽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권은 30여 년의 시간을 버티고, 내가 처음 읽은 후 8년 여의 시간을 견뎌 내게 다가왔다.

1권 15장까지 읽었다. 13장과 15장만큼 더 좋은 장이 나타날까?

'나'에게 찾아온 2인조 침입자.

거구와 왜소한 남자.

수많은 레퍼런스를 들이댈 수 있는 장면. 당연히, ... 왜소한 남자는 리더고, 거구는 행동한다. 

거구는 '나'의 아파트 세간 전부를 아주 세밀히, 성실하게 깨어부수고 짓부수고, 파괴한다.

왜소한 남자는 칼로 '나'의 배를 아주 조금, 얕게 갈라놓고 떠난다. 13장.

 

겨우 치료를 마치고 자근자근 파괴된 아파트로 돌아와 간신히 남겨진 위스키 몇 모금과 맥주를 찾아내 마셔가며 '나'는 투르게네프를 읽는다. 15장의 소제목은 "위스키, 고문, 투르게네프"다.

널부러진 책 속에서 찾아내 집어든 책은 투르게네프의 [루딘](루진). [봄의 물결](봄 물결]을 읽고 싶었으나 폐허의 공간을 헤집어가며 찾기 싫었다고. 

결점을 지닌 인간들. 그 결점을 고칠 수 없다는 것에서 연민을 느끼며 '나'는 계속해서 스탕달의 [적과 흑]도 읽기 시작한다.

이미 열다섯에 결정되어버린 그의 성격적 결점에 동정을 느끼며.

취기와 상황과 소설이 주는 아마도 어쩔 수 없는 절망감 같은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어진다.

"투르게네프-스탕달적 인 어둠"에 휩싸인 채 졸음에 겨워한다.

 

"새로운 문제는 새로운 절망감으로 맞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246)

15장.

 

하필이면 이어폰으로는 신해철의 <절망에 관하여>가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오기 전 하루키의 이 소설을 읽게 된 건 행운 같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985년에 출간됐으니 올해 30년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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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 2016-08-15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쓴 페이퍼에 누군가 좋아요를 눌렀다는 알람이 있어, 들어와 읽어봄. ...작년 이미 마음 결정은 내렸고 그야말로 `절망`에 휩싸여 짐 정리하던 때였을 것이다. 이곳에 와서는 휩쓸리듯 살고 있어서 새삼 절망스러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건....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두려움으로 오싹해질때가 있다는거. 주저앉아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