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no one is pure"

대단히 심각한 주제로 다루어야 할 사안인데 .....

지젝이 양비론자들이 흔히 하는 말의 대표적 예시로 든 문장이다. 

911테러를 전기삼아 이후 벌어진 올바른 윤리적 행위의 곤경에 처한 우리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모색한 지젝의 저서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2011, 자음과모음-아, 자음과모음이었네)를 읽으려다, 지젝 함께 읽기 프로젝트로 동시에 나온 로쟈의 해설서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를 먼저 읽었다. 

로쟈의 장점은 아주 쉽게 잘 풀어준다는 거다. 


여튼, 저 말은 지젝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적대와 전쟁이라는 사태를 놓고 저와 같이 양비론적 태도로 윤리적 행위의 의미를 '물타기'하는 것이 가장 나쁜 죄다(192)고 단호히 비판한 말이다.  


'결국은 다 똑같은 놈들이지', '민간인까지 공격하는 이스라엘 놈들이나, 그렇다고 폭탄 테러를 저지르는 팔레스타인 놈들이나 다 똑같은 놈들 아냐? 서로 좀 양보하면 되는 걸 갖고 말이야."(같은 페이지)

라는 식으로 말함으로써 모든 책임을 양쪽에 전가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은연중에 자신이 그들보다 도덕적으로 더 낫다는 점을 과시하고, 또한 "스스로 완전한 책임을 떠안고 상황을 분석하며 한쪽 편을 드는 어려운 임무"(실재의 사막, 165)를 피핲 수 있다는 점을 로쟈는 지적한다.(이중의 인용^^)


지젝은 이게 아니라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문제적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고 정확하게 한쪽 편을 지지함으로써(같은 페이지).


무서운 말이다. 

''면밀히 분석'하고 '정확하게 한쪽 편을 지지'해야 한다는 거다. 

죽을 힘을 다해 판단하고 한편을 들어야 한다는 엄중함. 










무겁게 마음에 새기고 있던 와중에 우치다 타츠루(하루키씨를 조심하세요로 알게 된 ㅋㅋ)의 오래전 책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2010, 갈라파고스)을 읽다가 사르트르와 카뮈 사이에 벌어진 20세기 한 논쟁을 새삼 바라보게 됐다. 

우치다는 양비론에 있지 않다. 카뮈의 편에 선다. 이미 결판난 판결과 같다. 

사르트르와 카뮈의 예는 전적으로 '한편을 든' 한 사례다. 

그래서 두 사람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아닌가?). 

우치다 타츠루는 구조주의 관련해서 레비스트로스로 인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무너져내린 광경을 펼쳐보인다. 

그러므로 사르트르와 카뮈, 본격적인 당시의 현장에 되도록 가깝게 가봐야 한다. 











...............


지젝의 책을 오랫만에 읽는데, 읽고나서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이게 우리가 해야할 일이라고? 쉽겠어? 그렇게 쉬웠다면 문제 자체도 안됐겠지... 라는 허탈함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의 글을 따라 읽는다는 건, 내가 편들 일이 아니라고 밀쳐두었던 일도 아니, 너는 죽을힘을 다해 판단해야해, 그리고 한편을 들어야해, 라는 상황으로 인도한다. 

난민과 테러. 브렉시트(2015년 저작이지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어리석게도 보수우파의 선동에 넘어가는 저소득층 낮은 학력의 사람들이라고 그들에게 내리는 비난이야말로 요즘 난무하는 국내 정치비평가들의 말들이 왜 그리 섬뜩거릴까. 

난민에 의해 일자리를 뺏긴다는 것이 결코 아니라해도 그들이 맞서는 두려움과 혐오를 어찌해야 하는가? 

당신은 보수꼴통우파에 속고 있는거에요, 어리석은 사람아. ... 이걸로 논평 끝?


이책에서 내가 더 주목했던 건 지젝의 좌파지식인들의 무능에 대한 질책이었다. 

우리에게 적용했을 때, 우리는 날서고 날것의 혐오를 추모로만 덮을 것인가, 우리의 무능은?

우리는 전진할 것이라는 믿음. 

새겨야할 말.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실제로 패배할 것이고 패배함이 마땅하다.(117)










그리고, 라캉에 대해. 

누군가는 라캉 따위를 다시 꺼내드는 것에 한심해 한다. 

그래도 나는 봐야겠다고. 끝까지 가봐야겠다고. 


앞의 책들을 경과해오니, 지젝의 [How to Read 라캉]이 조금은 익숙해져 보인다.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묻는 말들'에 대해 김훈은 뭐라 했지? 읽어보지 못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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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7-05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자 책 찜하고 이 책도 읽어야 겠군요. 흠흠..

포스트잇 2016-07-05 11:35   좋아요 0 | URL
곰곰발님이 읽으시고 나면 더 흥미로운 글을 쓰실 것 같습니다. 기대^^
 

영국, 브렉시트로 뭔가 하여튼 세계에 충격을 던져준 그 나라에 호가스 출판사라는 회사가 있나보다. 

이 출판사에서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지금 활동하는 내노라 하는 작가들이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중 하나씩을 다잡고 새로운 소설쓰기를 선보인다고. 

이미 두 권이 출판됐고, 앞으로 5명의 작가가 남아 있는 듯한데, 

물론 출판사로서는 계속해서 이어갈 모양이지만 현 리스트가 잘 돼야 가능할듯 싶다. 

이 리스트의 작품들은 일단 올해안에 어느 정도 번역돼 나올 모양이다. 



마거릿 애트우드와 요 네스뵈, 길리언 플린 세 작가는 나도 좋아하는 작가라 그들이 새로쓰는 템페스트, 멕베스, 햄릿이 궁금하다. 

물론 작가는 자신이 쓰고 싶은 걸 쓰고 싶을 때 쓴 그때 그 책이 충만한 영감과 노력이 배어 좋은 작품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획주문생산된 작품에 대한 어쩐지 믿음직스럽지 못한 면도 있지만 ... 어쨌든 애트우드 건 읽어보고 싶다.  












이미 출간된 두 작품을 보면 어느 정도 앞으로 나올 책들도 짐작해볼 수 있을까... 아니, 작가들이 다 다른데 어리석은 추측이다. 


머리 아프고 어려운 책들을 읽느라 진이 빠지는 중인데 반가운 소식이고, 집어들고 읽고 싶다. 



재닛 윈터슨













앤타일러











하워드 제이컵슨










마거릿 애트우드

(두말하면 입아픈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











요 네스뵈











길리언 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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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어렵다기 보다는 사건의 선후를 흔들어 흐뜨려놓고, 시제를 뒤섞고 내면의 의식이 불쑥 끼어들고 언제인지 모르는 회상이 섞인다.
실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그로 인해 지금 무슨일이 벌어지려하는지, 진짜 일은 뭐고 위장은 뭔가, 스파이물답게 `작전`은 무엇인지..실마리를 하나하나 이어가며 읽어야한다.

그냥 드라마로 보고 싶다.
영국 BBC1 제작으로 톰 히들스턴. 휴 로리. 올리비아 콜맨 주연으로 올 4월 방영된 모양이다.

내용이야 영상으로보면 쫙 꿰겠지만, 존 르 카레옹의 한숨이 배어있을듯한 문장을 더듬어나가며 이해해 가는 맛도 그럭저럭 좋다. 전체 분량의 1/4 정도 읽은것같다. 속도를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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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일흔셋인 테리 이글턴이 3년전에 쓴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How to Read Literature]은 문학의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겪은 노련한 전문가의 대중을 위한 아주 쉬운(......) 문학비평개론서다. 
(원제대로) '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섬세하게. !!!!
아주 섬세하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문학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라는 것. 
그러기 위해 테리 이글턴은 몇가지(첫도입부, 인물, 서사, 언어, 그리고 해석의 방식 등) 도구들을 다루는 방법을 시연해준다.
아주 노련하게, 정확한 문장으로. 
대중문학 따위는 끼어들틈이 없다. 
예를 들어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들처럼 '플롯'만 있는 범죄스릴러물은 다른 궤도를 돌 것을 권유받는 듯하다. 
그러므로 독서 또한 여러 다른 궤도를 돌 수 있다. 


이글턴은 문학에서 모더니즘의 영향이 가져온 변화들과 특징들을 설명할 때 특히 더 매력적인데 물론 모더니즘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을 따르고 있긴 하지만 그 표현을 참 멋드러지게 한다. 


모더니즘이 서사적 측면에서 그렇게도 모호하고 외연보다는 안으로 더욱 침잠해 들어가는 것은 20세기 상황에서 느끼는 어쩔 수 없는 서사의 헤맴을 지적한다. 
서사의 질서는 의도적으로 와해되고 독자 스스로가 세우는 질서 외엔 달리 없다는 말이라든지,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이 잘 보여주듯이 '어디에도 이르지 못하는 듯이 보이'는 주인공 말로우나 '앞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듯한 ' 그의 여행처럼, "콘래드의 서사가 곤경에 빠져 있다면 그 부분적 이유는 진보에 대한 19세기의 믿음 - 야만으로부터 문명으로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진보에 대한 믿음- 이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말은 얼마나 섹시한 지적인가..
 
그리고 많은 모더니즘 소설이 그렇듯 해석하기 어려울 정도로 쉽게 씹어먹혀지지 않는 문장들. 
"작가의 의미를 풀어내려고 몸부림치며 비틀리고 꼬인 구문에 이끌려 들어가다 보면 독자는 마치 작가와 작품을 공동으로 창작하는 듯이 느끼게" 될 정도의 난해함. 
의도적으로 흐트러뜨리고 하나로 질서지어지지 않는 모더니즘 문학작품의 세계는 결국 독자의 적극적인 동참을 통한 읽기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한다. 


바로 저 '믿음'이 '어마어마하게 타격받은 상황. 
이글턴의 책을 떼고 존 르 카레의 [나이트 매니저] 1권을 읽다 뒀던 데서부터(고작해야 몇페이지 안되지만) 다시 읽기 시작했다. 문득, 왜 존 르 카레의 스파이소설은 쉽게 읽기 어려운가를 생각했다. 
(아, 빨리 마저 읽고 싶네...)


정교하게 고안된 플롯이 단순한 문장들을 따라 이어지고, 시간순은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치되고, 독자들이 행여 복잡한 플롯에 길을 잃지 않도록 가끔 멈춰서서 지금까지의 일들을 정리해주고 무엇이 풀어야 할 문제들인지를 명료하게 쥐어주는 장르물답지 않게 존 르 카레는 그 서사의 세계로 쉽게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헨리 제임스만큼은 아니지만 존 르 카레 또한 비틀리고 꼬인 구문을 잘 풀어헤쳐가며 한걸음한걸음 나아가도록 한다. 
왜 이렇게 쓸까. 
그 역시 이미 스파이들의 세계가 정치와 돈, 선과 악, 정의와 불의, 동지와 그냥 일적 관계,정확한 의도를 알기 어려운 상부의 정체들....로 혼탁해져버렸다는 데서 조금이라도 명확했던 상황이 풀어헤쳐져버린 채 '믿음'이 어마어마하게 타격받은 상황 하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형식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문득. 
존 르 카레의 어쩌면 현재의 상황에 대한 비판이 내용에만이 아니라 이렇게 그의 글쓰기 형식에도 분명히 스며들어 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존 르 카레의 소설들도 '섬세하게' 읽어야 한다. 
왜 이야기에 흠뻑 빠지게 허용하지 않는가, 그것이 늘 궁금했다. 


여기에 이글턴은 '가치'항목을 빠뜨리지 않는다. 
까다롭고 (글만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엄격한 까탈스러움이 있다.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가치를 평가하는 것보다 취향의 문제이지만 도스토옙스키를 존 그리셤보다 더 숙련된 소설가로 생각하는가는 순전히 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도스토예프스키가 그리셤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은 타이거 우즈가 레이디 가가보다 골프를 더 잘 친다는 것과 같은 의미 입니다. .. 어떤 경우에, 가령 어떤 특정 브랜드의 몰트위스키가 세계 최고급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몰트위스키를 잘 알지 못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몰트위스키를 정확히 안다는 것은 그런 판별력을 내포할 테니까요. ((347~348)
 


그러므로 우리는 '가치'로움을 지켜야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파인애플보다 복숭아가 더 맛있는지를 결정하는 경우와 달리 골프나 픽션에서는 탁월함으로 간주되


는 것을 결정하는 데 기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기준은 공적인 것이고, 개인의 우연적인 사적 선호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

분은 어떤 사회적 관행에 동참함으로써 그 기준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349)


그렇다, 배워야 한다. 
그리고 또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내용도 있다. 
그렇다면 훌륭한 문학이란 어떠함을 말하는가. 


왜 하필 나는 [나이트 매니저]를 손에 들었을까. 구입해둔 더 훌륭한 문학책들이 많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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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이글턴의 [문학을 읽는다는것은](책읽는수요일) 읽는데, 185페이지에서 책이 떡실신하듯이 양옆으로 쫙 퍼져버렸음.
아주 가르마타지듯 접착부분이 다 드러나버렸음.
곧 한장 한장 낱낱이 분해될지경.
책 좀 튼튼하게 만듭시다 거.
책의 적나라한 가르마 보고 싶지 않슴다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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