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어서 겨울이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겨울은 언제나 낯설다. 내년 2~3월 위기설이 횡행하고 있어서 봄을 기다린다는 것도 어째 좀 쓸쓸하다. 겨울이 지나지 않거나 올 봄이 멈출 일도 없을 것이다. 웅크리고 있다보면 모든 게 다 지나가는 거 아니겠는가?
신동일 감독의 <나의 친구, 그의 아내>를 관람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이 영화를 '올 해 나온 한국영화 중 가장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영화', '죽비처럼 매섭게 내려치는 영화'로 상찬하고 있지만, (http://blog.naver.com/lifeisntcool/130036924153) 영상이나 연기면에서
글쎄... 먼 길 찾아 수고롭게 영화관에서 관람하기에는 들인 시간과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면 너무 인색한가?
프랑스 로케이션 촬영을 굳이 해야할 이유가 있었을까? 제작비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영화이기에 가져본 트집일 수도 있지만 ... . 사정이 있을 수도 있겠지.
이야기 자체는 아주 싸~한 영화였다. 매우 무겁게 다가오는 영화 한편을 봤다고 할 수 있다.
'누구 덕에 사는데'... 이 대사가 지닌 파괴적이고 속물적인 속성이 내내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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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프랑스 파리 로케이션은 필요했었던 듯 하다. 80년대 운동권이었던 세 사람(재문,지숙,예준) 모두 한번쯤은 '혁명의 나라' 프랑스에 대한 선망이 있었을 것이다. '민혁(민중혁명)'을 자식의 이름으로만 붙여둔 채 쓰다듬는 일밖에 남지 않은 듯한 지숙이 찾은 파리는 지상은 안온한 듯 하지만 다리밑에서 노숙하는 이들이 줄이어 있는 회색의 도시처럼 보일 뿐이다. 그곳을 예준의 돈으로 지숙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찾은 것이다. 감독은 이 쓸쓸한 아이러니를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의 386들의 모습이 대중문화 속에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는 듯 한데, 이 영화만큼 전면적으로 다룬 것들은 보지 못한 것 같다. 나의 과문함에 따르면 그렇다. 무능하거나 타락한 속물로 나이들어가는 환멸적 태도가 그들을 보는 지금의 세태인 듯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