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좀 더 압축했으면 좋았겠다. 300여 페이지인데 200여 페이지 정도로 압축했으면 가독성이 더 나았을 텐데. 이런 바람은 독자로서의 작은 불만일 뿐, 진실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소설적 재능이 빼어난 작가라는 것. 그 성과가 훈련의 산물이 아니라 태생적 요청이 아니었을까, 하는 부러움이 인다는 것.

  그미의 문체는 ‘행동체 단문’이다. 그저 이야기 흐름을 따라 손끝을 놀릴 뿐이다. 그게 문장이 되고 이야기가 되고 끝내 독자의 심장을 펄떡이게 만든다. 단편 작가들은 의도적으로  ‘내면화된 단문’을 겨냥한다. 문체로 승부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무엇을, 보다는 어떻게,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자칫 깊어 보이는 그 방식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정유정의 문체는 그것을 극복해서 술술 읽힌다.

  예단컨대, 그미는 아포리즘을 남발하거나, 내면을 낭창하게 읊조리는 작가는 되지 못할(않을!) 것이다. 장편에서 독자를 더 잘 끌어들이는 조건으로 아포리즘이란 칵테일이 적절하게 요구된다. 김연수나 윤대녕 류가 그런 조건을 잘 갖췄다. 하지만 그미는 존재의 근원 따위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지 않아도 용서된다. 대신 블랙유머와 눙치는 눈썰미와 앙다문 입 속에 예리한 혀의 칼날도 숨기고 있으니까.  




  어지간한 작가다. 탈출하기 위해 시계 흉기 장면을 등장시키면서 승민과 최기훈이 대치하는 부분을 이십여 페이지씩이나 녹아낸다는 것 -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독자로서의 불만은 접어두고- 그런 고구마 줄기 캐기식 연결이 현장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것, 그런 장면들이 너무나 세밀하고 자연스럽다는 것, 그것이 작가적 저력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한마디로 손끝에 다음 문장이 줄줄이 사탕처럼 물려 있고, 혀끝에 다음 대사가 칡넝쿨처럼 휘감겨 오는 것이다. 작가가 글을 짓는 게 아니라 글이 그저 이야기를 잣는다고나 할까? 이런 걸 작가적 재능이라는 말 대신 뭐라고 표현할 수 있나?

  그렇다면 재능 없는 자들은 쓰기를 그만 둬야 할까? 재능에 비견되는 엉덩이 굳히기,라는 미련한 방법도 있으니 그리 절망할 일은 아니다. 재능 있는 자 쓰기를 즐기고, 딸리는 자 엉덩이 의자에 붙여라. 그리하여 전자처럼 손끝 바지런히 놀릴지어다. 이런 절망스런 감상문을 쓰게 만드는 작가(소설이 아니라!)이다. 

  적어도 어떻게 쓰냐를 고민하지 않아도 될 작가다. 그저 무엇을, 왜 쓸 것인가, 만 고민하면 되는 작가로 보인다. 이건 독자로서 신진 작가에게 보내는 최대의 찬사이자 부러움이다. 그미의 성공 조짐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내공의 문제라기보다 성향의 문제라고 본다.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작가가 아니라 예견된 될 성 부른 떡잎이었다. 등단 한참인 작가들도 ‘무엇을’ 보다는, ‘어떻게’ 때문에 쓰기를 고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복 받은 작가, 천상 작가이고 말 작가를 오랜 만에 만났다고나 할까.




  문장, 일단 잔재미가 있다. 

 다들 같은이름을 쓰는 소식통을 정보 출처로 댔다. ‘정통한’ 소식통이라고. (130쪽)

 현선엄마는 현선이를 불렀고, 나는 애타게 잠을 불렀다. (130쪽)




 다행하게도 영화로도 제작된다니 작가의 의도와 잘 맞아떨어진 게 아닐까? - 읽을수록 디테일한 장면들은 영화를 염두에 둔 혐의가 짙다.

  불만이 있다면 넘치는 현장감과 모자람 없는 묘사나 대화에도 가끔씩 독해력이 딸리더라는 것이다. 필시 작가가 독자의 수준을 자신과 동일시한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리라. 친절한 설명은 독자를 모독하는 것이라 해도 과감한 생략 부분이 과도한 현장을 밀어내고 제 자리를 찾았더라면 가열찬 가독성을 보장하지 않았을까 인상 한 번 써보는 것이다.  




  비켜, 왜 하필 ‘비켜’였던가. 모르겠다. 그 순간 내 몸을 꿰뚫었던 것이 무언지만 안다. 통쾌함이었다. 해방감이었다. 깨달음이었다. 내 심장도 승민처럼 살아 있었다. 흉곽 속에서 아프게 요동하고 있는 것은 분명 내 심장이었다. 보트 한 대가 왼편을 스쳐갔다. 나는 핸들을 잡은 채 일어났다. 앞 유리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내 안에서 들끓는 것들을 토해냈다. 추격자들을 향해, 드넓은 호수를 향해, 수리 희망 병원 501호를 향해. 내가 떠나온 세상을 향해.

  “비켜, 다 비켜!”  (268쪽)




  사람들이 병원 규칙에 열심히 순응하는 것은 퇴원, 혹은 자유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갈망의 궁극에는 삶의 복원이라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그토록 갈구하던 자유를 얻어 세상에 돌아가면 희망 대신 하나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것 말고는 세상 속에 서 이룰 것이 없다는 진실. 그리하여 병원 창가에서 세상을 내다보며 꿈꾸던 희망이 세상 속 진실보다 달콤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기억의 땅으로 남을 뿐이다. 옛날, 옛날, 내가 한때 그쪽에 살았을 때 일인데……. (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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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0-01-08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느낌이 맞아요. 300페이지를 200페이지로 줄일 수 있으면... 그런 바람.
저만 한 게 아니었군요.
이전의 소설도 그랬습니다. 스프링캠프...

다크아이즈 2010-01-08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신예로서의 호기 정도로 보면 될까요? 가지치기를 끝낸 작가가 휘두를 필력이란 칼날을 생각하면 아, 여기서 그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질투심이...ㅋㅋ
 

 

 

  모 지방방송에서 책 소개 코너를 맡은지도 몇 개월이 지났다. 내 생각이 들어가는 리뷰식은 아니다.  책 한 권을 소개하고 청취자들로 하여금 '이 책 한 번 읽어 봐?' 하는 느낌만 가져도 성공한 편인데 잘 모르겠다. 청취자를 의식하기보다 이 덕에 스스로 책 한 권이라도 더 알게 된다는데 의의가 있을 뿐.   

  어려운 책도 안 되고(너무 어려운 책은 대중 청취자 뿐 아니라 우선 나도 접수 못한다.) 전문적인 책도 안 되고, 종교적인 책도 안 되고 등등 걸러내고 나면 소설류나 에세이, 심리서, 인생지침서가 대세를 이루고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시집도 보태진다.  

 

  한 번 가면 두 편을 녹음하는데 그 중 한 편을 올려본다. 본부장님이 엄할 땐 생방송으로 했고, 요즘은 녹음방송한다. 가끔 급하면 전화로도 연결하는데, 아무래도 스튜디오 녹음보다 나을리 없다.  이쁜 신입 아나운서가 멘트하는 걸 별로 즐기지 않기(?)  때문에 사투리 버전 격심한 내가 어쩔 수 없이 많이 지껄인다.  방송 체질 아닌 나는 그저 원고를 읊어댈 뿐이다.  원고는 8-10분 분량이다.

 

  언젠가 지금은 서재에 잘 안 오는 플라시보님이 방송원고 사진 찍어서 살짝 올린 적 있는데, 그 분은 어떻게 쓰는지 궁금했었다. 확대 사진이 아니라 자세히 볼 수 없었는데, 방송원고가 비밀일 필요는 없으니, 그래도 방송원고(대담식) 어떻게 쓰나 궁금해하는 사람들 있을까봐 공개해 본다.

 

 

 

 

 

<행복한 책읽기 4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A. 다음은 ***의 행복한 책읽기 순섭니다. 오늘도 *** ***씨 나오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애청자 여러분도 새해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A. 오늘은 어떤 책 소개해주실까요?

S. 새해 연휴 기간 동안 책 읽을 시간이 많아 좋았는데요,  많이 읽지는 못했습니다. 그 중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얘기해볼까 합니다.




A.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많이들 얘기하지만 제대로 읽은 분들이 많지 않을 만큼 긴 작품이라고 알고 있는데, 읽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S.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은 7권이나 되는 대하소설에 속합니다. 긴 내용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서사의 구조가 아닌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묘사들 때문에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저도 몇 번이나 처음 한두 권에서 들었다 놨다 하는 경우이긴 한데요, 이런 독자들을 위해 만화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것도 괜찮다 생각합니다. 저는 열화당에서 나온 만화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있는데, 스테판 외에의 그림과 프루스트의 원문이 잘 어우러져 접하기가 한결 쉬웠습니다. 원작 그대로 읽기가 힘들 때는 이런 차선책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소개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만화판 위주라는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A. 독자들이 읽기에 부담스런 작품들을 만화로 재해석해주는 또 다른 작가가 있다는 게 부러운데요. 

S. 네, 그렇습니다. 프루스트의 작품을 만화로 그려낸 ‘스테판 외에’의 수고가 없었다면 이 작품은 많은 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었겠지요. 프루스트 작품을 만화화한 스테판 외에의 이런 시도를 프랑스에서는 하나의 사건으로 다룰 정돈데요. 난해한 프루스트 소설이 만화화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합니다. 프루스트의 문학세계를 세밀하고도 애정 깃든 그림들로 복원해내는 외에의 화필에 매료되는 일도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합니다.




A. 스테판 외에의 이런 작업도 마르셀 프루스트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하겠죠? 원작자인 프루스트에 관한 소개도 좀 해주실까요?

S.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 ∼ 1922)는 1871년 파리 근교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의사 아버지와 유태계 부르주아 어머니 밑에서 자란 프루스트는 어릴 적부터 병약했으며, 9살 때 신경성 천식의 발작을 일으키는데, 이는 평생의 지병이 되어 그를 괴롭히게 됩니다. 일찍이 문재(文才)를 드러내어 에세이, 단편소설 등을 발표하며, 사교계와 문학 살롱에 출입하게 됩니다. 건강악화와 진실의 승리를 상징하는 <드레퓌스 사건> 구명운동으로 보수적인 상류계층과 소원해져 사교계를 멀리하게 되는데요, 이 사교계의 체험은 훗날 대작을 위한 풍부한 소재가 됩니다.

  1909년 건강이 악화된 가운데서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착수하며, 1911년에 제1편 <스완네 집쪽으로>를 탈고했으나 출판사를 찾지 못해 2년 뒤 자비 출판에 나서게 됩니다. 제2편 <꽃피는 아가씨들의 그늘에>는 1919년에 출판되었으며, 이것으로 콩구르 상을 수상합니다. 이후 프루스트는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와 싸우며 작품의 완성을 서둘렀으나, 1922년 11월,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A. 간단한 줄거리도 소개해주실까요?

S. 이 작품은 파리의 부르주아 출신으로, 뛰어난 지성과 섬세한 감성을 소유한 문학 청년 '나(마르셀)'의 1인칭 고백 형식으로 된 대하 소설입니다.

  한잔의 홍차에 적셔 먹은 마들렌느 과자가 화자인 '마르셀'에게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만드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소년이 매년 휴가를 보내러 갔던 콩브레에는 두 개의 산책로가 있습니다. 하나는 파리의 부르주아인 스완네 별장으로 향하는 길인데, 그곳에는 아름다운 딸 질베르트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길은 중세 이래의 명문가 게르망트 공작 부인의 저택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소년인 '나'의 마음에 깃들여 있는 두 갈래의 동경어린 방향이 됩니다.

  화자는 파리에서 재회한 질베르트와의 아련한 첫사랑이 깨진 후 할머니와 노르망디 해안으로 떠나고, 사교계에 몸담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이 휴양지에서 '나'는 또 게르망트 일족의 생 루나 같은 다정한 친구들을 사귀게 됩니다. 파리로 돌아온 '나'는 그들에게 이끌려 동경의 대상이었던 생 제르망 가의 귀족사회에 조금씩 발을 들여 놓게 되며, 또한 괴기한 소돔의 마을에도 가 보게 됩니다.

  한편, '나'는 휴양지에서 만나게 된 알베르틴과 사이가 깊어짐에 따라 그녀가 고모라의 여자가 아닐까 의심하게 되고, 질투심에 불타 그녀를 집에 가두게 되지만, 이윽고 알베르틴의 죽음으로 인해 그 지옥 같은 동거생활도 막을 내리게 됩니다. 만화판 총 12편 중 아직 5편까지 밖에 출간되지 않았습니다. 뒤편에 이어지는 얘기들에서도 결국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초시간적 인상이야말로 존재의 본질임을 깨닫게 되며, 이 초시간적 경험이야말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게 해줄 원천임을 알게 됩니다.  




A. 네, 줄거리를 들어도 완벽하게 이해되지는 않는데, 미리 말씀하신 대로 스토리 위주가 아니라 사물에 대한 인상이나 의식을 따라가다 보니 그런 것일텐데요, 작가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한 말은 무엇일까요?

S. 살아가면서 우리는 '시간'의 한계를 초월한 영원한 세계가 존재함을 느끼게 되며,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그런 세계가 모여 한 사람의 일생이 되기 마련입니다. 자신의 지나간 삶 전체를 재구성하기 위해 프루스트는 마들렌느 과자와 길가에 피어난 산사나무꽃에서부터 어려운 철학· 미술 등을 융합해 하나의 언어로 통하는 길을 보여줍니다, 이 책은 어린 시절이라는 옛 고향으로의 초대일 뿐 아니라, 일상적인 삶이 얼마나 위대한 역사가 될 수 있는가를 되짚게 만드는 책입니다. 




A. 얘기 듣다 보니 굳이 7권짜리 책을 차례대로 다 읽어야 할 부담감은 가질 필요가 없겠는데요. 취향에 따라 취사선택해도 될 것 같은데요.

S. 그렇습니다. 제가 만화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위주로 얘기한다고 했는데, 만화를 그린 스테판 외에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굳이 원본의 차례를 따르겠다고 고집하지는 않습니다. 때에 따라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하기도 했는데, 흐름을 이해하는데 모자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원 책에서 느끼는 상상력의 한계를 극복해주기 때문에 만화판 책이, 프루스트를 연구하는 책읽기가 아니라 일반적인 독서를 위한 것이라면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A. ‘상상력의 한계를 극복해주기 때문에 만화판이 도움된다’고 하셨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으셨는지도 궁금한데요.

S. 네, 제가 처음에 번역본 한 두 권을 들었다 놨다, 읽은 게 전부라고 했잖아요. 그 때도 그 유명한 마들렌느 과자 먹는 장면이 나와요. 엄마가 차려주신 홍차에 적신 마들렌느 과자를 먹으면서 그 옛날 콩브레 마을에서 이모가 준 그 맛을 상기하면서 희열감과 충만감에 쌓이는 주인공의 내면의식이 나오는데요, 도대체 마들렌느 과자가 어떤 것인지 상상이 안 가는 거예요. 이때 그림이라도 곁들여줬으면 참 좋겠다 싶었거든요. 한데 만화에서 스테판 외에가 그 장면을 아주 섬세하게 그려놓은 겁니다. 홍차를 스푼으로 떠서 거기에 마들렌느 과자를 적셔 먹는 성인 마르셀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나른한 희열 같은 것을 맛보았습니다.




A.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과 같이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기쁨일 텐데요, 이참에 마들렌느 과자 모양을 확실하게 알게 됐겠네요. (웃음)

S. 네, 저는 국화빵이나 타원형 과자 모양인줄 알았는데, 통통한 가리비 조개 모양이었어요. 지금 옆에 홍차가 있다면 찍어 먹고 싶을 만큼 이색적인 모양이었어요. 만화가, 접근하기 부담스러운 문학을 이해하는 차선책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셈이라고 할까요.




A. 마지막으로 밑줄 그을 만한 구절을 소개해주실까요?

S. 마들렌느 과자 때문에 마르셀이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인데요. 다음과 같습니다. <감미로운 행복감이 나를 엄습해와, 어찌 된 영문이지 나를 고립시켜 버렸다. 지금 내 안에는 과자 때문에 되살아난 이미지, 시각적 기억이, 이 맛의 뒤를 따라 내 자아에까지 이르고 있음이 틀림없다. 도대체 이 극도의 희열감은 어디서 온단 말인가? 나는 이 희열감이 홍차와 과자 때문에 생겨나긴 했지만, 단순한 감각의 차원을 뛰어넘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도달하려는 본질은 과자가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었다. 홍차에 적신 과자가 뭔가를 일깨운 것이다. 그 후 연거푸 열 번은 더 마셔봐야 했는데... 머나먼 과거의 기억이 과연 내 의식의 표면에까지 이를 수 있을지...> (열화당 1권 콩브레 편 15쪽)




A. 네, ***의 행복한 책읽기, 오늘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해서 얘기 나눠보았습니다. 오늘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S.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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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1-03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므느와르님, 정말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라디오방송을 들은게 아닌데도 프루스트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꽤 오랫동안 보관함에만 담겨있거든요. 읽을 엄두가 안나서 말이죠. 2010년에는 프루스트의 책을 읽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홍차와 마들렌느 부분의 밑줄긋기를 읽으면서 갑자기 드네요.

다크아이즈 2010-01-04 07:4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반갑습니다. 제가 서재를 방치하는 동안 님은 졸리가 되어 나타나 응원해주시는군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친구 될게요.^^* 본 책이 버거우면 저처럼 만화판으로 다시 시작하셔도 좋을 거예요.

2010-01-07 0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0-01-04 07:34   좋아요 0 | URL
따님이 고3때 방송 데뷔했군요. 내친 김에 피디 하라고 권하심이... 제 담당 피디분도 여성인데 제 로망이죠.ㅋㅋ 만화판 잃어버린~은 중학생 아들이랑 같이 읽었는데 빛의 속도로 읽어 치우네요. 전 음미하느라 가슴이 콩닥거리는데, 걔는 뭘 느낄까 궁금한데 안 물어 봤어요. 지루하다거나 아무 느낌 없이 읽었을 것 같아서요. 그냥 청소년 도서로도 넘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해봤어요.

이매지 2010-01-03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한 번쯤 읽어보고 싶은 책인데,
어렵다는 얘길 많이 들어서 선뜻 손이 안 가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 소설과는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ㅎㅎ
팜므느와르님의 말씀처럼 만화로라도 읽어봐야겠어요 :)

다크아이즈 2010-01-04 07:37   좋아요 0 | URL
어렵다기 보다 지루하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엄격하게 따지면 의식의 흐름 기법과는 거리가 멀어요. 왜 그렇게 분류하는지 저도 의아해요. 스토리 위주의 당시 소설과는 확연한 차이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게 아닌가 싶어요.

글샘 2010-01-03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시절의 후각적 추억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죽으라고 풀어내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소설이지요. 저도 7권짜리는 언감생심 엄두도 안 내고 있구요. 1권으로 만든 다이제스트도 4,500페이지 정도 되더라구요.
마들렌은 생김새야 다양할 수 있지만, 빵처럼 촉촉한 케이크를 부르는 이름일 겝니다.
만화로도 나왔으니, 기회가 되면 저도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다크아이즈 2010-01-04 07:47   좋아요 0 | URL
글샘님 솔직한 댓글 공감해요.ㅋㅋ 지루하기 짝이 없는 가운데 작가의 본능적 통찰이 가끔씩 빛을 발하더군요. 하녀 및 이웃을 관찰하는 섬세한 눈썰미 같은 건 부정할 수 없었어요. 마들렌느의 정의를 확실히 알게 해줘서 감사해요. 이래서 여기가 좋다는. 국화빵이 국화모양이듯 전 마들렌느는 꼭 가리비 모양이어야 하는 줄 알았어요. 크~
 

 

  

특별한 연하장 두 장을 받았다. ‘구름’과 ‘386’이란 별호를 가진 두 사람이 보내온 것이다. 미리 밝히자면 그 둘은 수감자 신분이다. 최선을 다한, 각자의 친필이 녹아 있는 연하장에는 두 사람의 평소 개성이 잘 나타나 있다. 시를 쓰는 구름은 깔끔한 성격답게 흰 봉투에 매향 가득한 그림에 보랏빛 글씨로 안부를 물어오고, 그림을 잘 그리는 386의 연하장은  갈매기떼 호위하는 일출 장면인데 글씨체마저 예술 지향적이다.

  검열을 통과한 그들의 편지가 내 손에 쥐어지는 순간 나는 특별히 숙연해졌다. 요 몇 년 새 연하장 같은 걸 주고받은 기억이 없다. 언제부턴가 전자우편이라는, 멋없지만 편리한 문명의 이기가 친필 연하장을 번거로운 절차쯤으로 밀어낸 탓이리라. 오랜만에 접한 아날로그식 소통 방식도 신선한데, 생각지도 못한 이들에게서 전해진 것이라 더 놀랐고 고마웠다. 

 수감생활을 하는 그들을 정기적으로 만나왔다. 수감자들을 상대로 한 독서모임의 지도강사를 하면서 정작 많은 것을 배운 쪽은 나였다. 적극적인 독서활동을 통한 수감자들의 교화가 프로그램의 목적이었다. 남을 교화할 만큼의 입장이 못 되는 나는 이 프로그램을 스스로를 위한 교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교화(敎化)란 가르치고 이끌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함. 또는 부처의 진리로 사람을 가르쳐 착한 마음을 가지게 함, 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사전적 정의대로라면 신이 아닌 이상 누구나 평생 교화의 대상일 터였다. 스스로가 교화의 대상인데 누구를 교화한다는 말인가. 해서 나는 특별한 격식이 요구되지 않는 독후 토론 활동을 하면서 제일 목표를 ‘마음 터놓기’로 정했다. 착한 사람 되기 같은 현실성 없는 목표보다는, 책에서 읽은 내용을 토대로 회원들이 자연스레 사람살이를 얘기하면서 그들 내면이 한결 편안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열댓 명의 회원들 대부분은 프로그램에 적극적이었다. 폐쇄적 생활에서 오는 갑갑함을 풀어내고 뒷날을 대비하는 재충전의 의미로서의 독후활동이 자리 잡혀가고 있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던 자신만의 얘기들을 진솔하게 풀어놓는 모습에서 희망적인 미래를 보는 듯했다. 한 달에 한두 번, 때론 프로그램 일정에 따라 일주일에 한두 번 짧고 길게 그들을 만나는 동안 그들을 조금씩 이해하고, 그들 곁으로 한층 더 다가간 느낌을 받았다. 바깥에서 가졌던, 수감자들에 대한 막연한 편견들이 하나씩 걷히는 느낌, 그 자체가 스스로를 위한 교화가 되기도 했다.   

  집중독서치료 과정 마지막 날, 자그마한 파티를 연 적이 있었다. 기왕이면 그들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으로 파티를 열어주고 싶었다. 회원들에게 가장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대부분이 핏자와 햄버거라고 대답했다. 콘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도 했다. 영치금으로도 얼음과자를 사먹을 수 있지만, 빨리 녹아버리는 콘 아이스크림은 구경할 수가 없다고 했다. 파티가 시작됐을 때 그들은 진심으로 행복해보였다.

  그 때 특별히 고마워했던 회원이 구름과 386이었다. 오랜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구름은 12년 만에 처음으로 피자를 먹어본다고, 정말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며칠 전 크리스마스를 앞둔 수업 시간에, 구름은 자신이 쓴 시가 공모전에서 뽑혀 두둑한 상금을 받게 됐다고 자랑했다. 구름이 회원들 앞에서 그 시를 낭송할 때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386은 나에게 권할 피자조각을 들고 한참이나 그대로 있었다. 먼저 먹기가 미안했다며 눈도 잘 맞추지 못하는 쑥스러워하는 386은 출소를 앞두고 있다.

  분홍 매화 가득한 ‘구름’과 갈매기 환호하는 일출 장면의 ‘386’ 연하장을 번갈아 보면서 한 해를 갈무리한다. 그들에게서 배운 인생 공부를 적으면서 나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연하장을 대신해야겠다. 편견 없는 만남과 이해 많은 날들이 함께 하시라고. 그리하여 새해에는 보다 평화롭고 행복한 날들 맞이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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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끝으로 훔쳐본 세상
세노 갓파 지음, 박국영 옮김 / 서해문집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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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품절 책 구하기




  고양이 한 마리로 시작한 연상놀이가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면 분리수거함 옆, 자동차 밑에 숨어 있던 들고양이가 인기척에 놀라 도망가곤 한다. 뚜껑이 덮여 있어 끼니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언제나 고양이는 쓰레기통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며칠 전에 본 고양이는 한쪽다리를 심하게 절었다. 다친 지 오래인지 무덤덤한 절뚝거림이 도리어 연민을 자아냈다. 서러운 듯 영민한 그 눈빛이 잔상처럼 어리어 카스테라빵을 들고 다시 내려가 봤다. 고양이는 금세 사라지고 없었다.   



  그날 밤 ‘버려진 고양이, 다친 고양이, 길고양이 키우기’ 등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비염을 앓는다는 핑계 때문에 집에 들여 키울 수는 없지만, 어릴 적 고양이와 쌓은 정 때문에 나도 모르게 측은지심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고양이 검색 놀이는 급기야 일본의 ‘고양이 빌딩’까지 미쳤다. 고양이들이 사는 아파트인가 싶었는데, 그 유명한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 빌딩 이름이란다. 책이 좋아 생업까지 포기한 채 책을 모으고, 읽고, 쓰기만 한다는 다카시의 책방 건물이었다. 자신만의 책 빌딩을 갖고 있다는 것에 찬사와 부러움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책은 모으는 것보다 잘 버리는 것이 좋다’ 쪽이기 때문에 책 많은 그가 부럽진 않다. 물론 많이 읽고, 잘 쓰는 그가 존경스럽긴 하지만.  



  정작 내가 부러운 이는 따로 있었다. 세노 갓파였다. 세상에! 책 빌딩 외관에 커다란 검은 고양이를 그린이가 세노 갓파란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책벌레 친구를 위해 그 프로젝트를 수행했단다. ‘방심할 수 없는 검은 고양이’의 눈빛을 그리기 위해 고심했다는 갓파의 필치를 보면서 몇 년 전에 만난 그의 책 한 권을 떠올렸다.  


  내게 세노 갓파는 길에서 만난 작가였다. 언젠가 대구행 버스 옆자리 아가씨가 세노 갓파를 읽고 있었다. 상세 그림이 곁들인 가로가 긴 듯한 특이한 장정의 책이었다. 섬세한 그림에다 손수 쓴 듯한 글씨는 훔쳐보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무슨 책이냐고 물었다. 그림 잘 그리는 작가의 에세이라고 답해준 아가씨는 친절하게도 그 책을 훑어볼 기회까지 주었다. ‘펜 끝으로 훔쳐 본 세상’(서해문집,1999)이란 책이었는데, 어감에서 오는 강열한 포스 때문에 ‘갓파’라는 작가 이름도 금방 기억할 수 있었다.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유머가 있되 가볍지 않고, 세밀하나 아프게 찔러대지는 않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실성과 감성이 적절히 배합된 그 책에 감질 맛을 느꼈다. 당장 수첩에다 작가와 책 제목을 적었다. 꼭 사서 꼼꼼하게 읽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잊거나 귀찮아하는 동안 여기까지 왔다.  



  그날 고양이가 아니었다면 세노 갓파에 대한 내 관심은 더 미뤄졌을 것이다. 당장 ‘펜 끝으로 훔쳐 본 세상’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는 순간 기대는 무너졌다. 품절이란 빨간 글씨가 뜬다. 품절- 물건이 다 팔리고 없다, 는 뜻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재출간 될 수도 있다는 뜻인가? 출판사의 자발적 철회를 의미하는 절판이 아니니 기대해도 되는 것일까? 혼란을 가다듬고 인터넷 중고서점을 쏘다녔다. 절판된 책 구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갓파의 다른 책을 검색해본다. 오호라, ‘소년H’란 책이 보인다. 역시 그림 곁들인 책이라 구미가 당긴다. 오랜 세월 간판장이로 현장을 누린 그가 쓰고 그렸다는 이 자전 소설로라도 내 관심을 대신해야겠다. 혹, 그대들이여, 세노 갓파의 ‘펜 끝으로 훔쳐 본 세상’을 보거든 연락 좀 주시라. 길에서 우연히 만난 갓파, 또 다른 운명의 길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  
 


  아참, 그날 이후로 뵈지 않는 그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 품절 책 소식만큼이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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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힘 - 믿는 대로 된다
조엘 오스틴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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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즐거움




  김장철이다. 가사노동(어쩌면 모든 노동을!)을 버거워하는 편이지만 해마다 김장김치만은 손수 담가왔다. 내 어설픈 살림솜씨를 아는 지인들은 내손으로 김장을 했다고 하면 의외라는 눈치다. 시댁에서 가져오거나 친정 덕을 볼 거라고 생각한다. 그도 아니면  파는 김치를 애용할거라고 지레짐작한다. 그간 돼먹잖은 ‘가사노동에서의 해방’이라는 핑계로 제 게으름을 선전하고 다닌 때문이리라. 시댁 김치를 가져다먹기엔 양심 찾을 중년이고, 홀로이신 친정 엄마는 이웃에게 얻은 김치만으로도 차고 넘치니 딸을 위해 부러 김장할 일은 없다. 그렇다고 김치를 사먹을 만큼 생업에 바쁜 처지도 아니니 그간 좋든 싫든 김장을 해왔다. 밥상 차리기, 라는 주부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이 김치이기 때문에 김장만은 게을리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허전한 식탁에 올릴 김치라도 냉장고 가득해야 안심되니까.   


  지난 주 드디어 김장을 했다. 내 생애 최초로 김장행사에 이웃사촌들을 초대까지 했다. 선하고 배려 많은 사람들이라, 나 아니라도 김장 도와주러 갈 이웃이 많았겠지만 기꺼이 함께 해주겠단다. 사실 스무 포기 남짓한 절임배추로 김장을 하는 건 한나절도 걸리지 않는다. 해서 그간에는 휴일을 이용해 남편과 함께 했다. 능률면에서는 남편과 후딱 해치우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웃과 함께 할 달콤한 시간이 기대되기도 했다. 남편은 ‘진작에 그렇게 할 것이지’ 라며 반색했다.  



  정성껏 김치를 버무려 줄 이웃을 초대해놓고 보니 점심 걱정이 앞섰다. 갓 담근 김치에다 굴 곁들인 보쌈으로 해결하면 된다지만 수육조차 제대로 삶아 본 기억이 없다. 보쌈을 시켜먹는 최악의 경우만은 피하고 싶었다. 숫제, 김장은 뒷전이고 보쌈용 편육 삶기가 최대 과제가 되어버렸다. 인터넷을 뒤진다, 이웃에게 물어 본다, 궁리 끝에 독서모임의 인생 선배 한 분의 가르침을 접목한 편육 요리(?)에 도전하기로 했다.

  착하고 다정한 이웃들이 배추 속을 넣는 동안 나는 주부라면 익히 알고 있을 돼지고기 삶기에 도전했다. 인생 선배의 노하우는 압력솥과 통후추와 월계수잎이었다. 압력솥 자박한 물에 고기를 넣고 통후추와 월계수 잎 넣는 것만 잊지 않아도 실패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기본에다 된장, 커피, 와인, 바질, 양파, 생강, 대파, 마늘 등 다국적 양념 및 향신료를 조심스레 첨가했다. 깊은 맛은 못 내더라도 누린내라도 없애야겠다는 맘이었다.  



  맑은 햇살이 창을 뚫고 마루로 전진해왔다. 압력솥 추가 돌아가고 고기 익는 냄새가 집안에 감돌았다. 김장 속같이 걸쭉하고 매콤한 얘기들이 덩달아 쏟아졌다. 있는 그대로 서로를 인정하는 아줌마표 수다가 이어졌다. 저마다의 일상을 얘기하는, 굵거나 잔잔한 목소리 속에는 큰 울림이 숨어 있었다. 괜히 마음 한구석이 충만해졌다.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긍정의힘, 2005) 한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 마음은 자동차 변속기와 비슷하다. 자동차 변속기에는 전진기어와 후진 기어가 있는데, 우리는 차를 운전할 때 어떤 기어를 넣을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뜻대로 인생의 행로를 결정할 수 있다. 우리가 긍정적인 생각을 품고 하나님의 복에 마음을 두기로 결정하면 어떤 어둠의 세력도 목적지에 이르는 것을 막지 못한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을 품고 불가능만 바라보는 것은 후진 기어를 넣고 승리에서 멀어지는 일이다.’ (127쪽)  


  옳은 말만 하는 인생지침서를 보면 옳은 말만 떠벌이고 실천하지 못하는 여러 상황들이 떠올라 거부감이 든다. 하지만 흐트러지고 무너지기 쉬운 하루, 내면의 동요를 느낄 때 스스로를 다독이는 처방전으로 이런 책이 필요할 때도 있다. 긍정의 감기약 같은 이 책 한 구절이 이웃들과의 다정한 한 때와 겹쳐진다.  



  뒷설거지가 끝나고, 몇 통 가득한 김치는 냉장고로 들어가고, 된장과 월계수잎 냄새가  밴 편육 보쌈이 식탁을 점령한다. 어설픈 솜씨에 설익은 고기를 다시 쪄내야했지만 김장 끝에 싸먹는 보쌈은 감질나기만 했다. 흔한 말이지만 즐거움은 가까이 있고, 내 안에 있다. 이웃과 함께 하는 사소한 긍정이 보쌈 양념으로 얹히는 일, 그게 행복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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