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청소가 필요해

 

  얼치기 주부로 살다보니 집안일은 뭐든지 대충이다. 지저분해진 집을 보며 남편은 지나가듯 한 말씀 해주신다!  ‘우리집에 손님 올 때 안 됐나?’ 방문객이 있어야 그나마 정리정돈 된 집안을 볼 수 있다는 남편식 완곡어법이다. 해서 남편은 누군가 집에 놀러 온다고 하면 반색을 한다. 사람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며칠은 쾌적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안도감에.

 

 

  멀리 사는 지인들과 경주 벚꽃놀이를 하기로 했다. 내친 김에 가까운 우리집에서 커피 타임도 갖기로 했다. 사람 오는 건 좋은데 청소가 문제다. 냉장고에는 뭔가 채워져 있긴 한데 실속(먹을거리)이 없고, 거실은 허전해서 깨끗해 보이지만 실은 먼지투성이다. 방이며, 화장실도 다를 바 없다. 필수품은 여기저기 널브러져있고, 제때 버리지 못한 잡동사니는 쌓여만 있다. 손 댈 엄두도 나지 않고, 치울 자신도 없다. 불쌍한 척, 힘든 척해가며 남편을 청소 현장으로 초대한다.

 

 

  그렇다고 너털웃음 지으며 묵묵히 청소해줄 남편이 아니다. 청소기 손잡이를 잡는 것이 큰 시혜라도 베푸는 것인 양, 의기양양 잔소리도 많다. 제대로 바닥을 치우지 않아 청소기 미는 손맛이 안 난다나. 평소 말이 없는 남편인데, 청소할 때만큼은 말이 많아진다. 자칭 주부 점수 과락인 걸 인정하지만 좀 심한 잔소리다 싶다. 대거리할 만한 명분이 없어 귀마개를 껴 못들은 척 꾹 참는다. 듣기 싫은 노래 끝나기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나는 부엌 청소만 열심히 한다. 마음 잠시 불편하고 몸 편한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잔소리는 됫박으로 안았지만 깨끗해진 집안을 보니 참기를 잘했다 싶다. 적어도 사흘은 이 쾌적한 상태가 유지되리라. 그 안에 못 부른 친구들을 초대해 차 한 잔 마시면서 스트레스를 날려야겠다. 오늘의 핵심, 잔소리 듣기 싫으면 평소에 치우고 살자. 아니, 그게 아니다. 잔소리 좀 들어도 함께 하는 청소는 유용한 것. 금세 어지럽혀지더라도, 집 치우고 친구보고, 밥 안 먹고도 (잔소리로) 배부르니 그야말로 도랑치고 가재 잡고 아닌가.

 

   *청소는 어여쁜 알라디너들을 맞기 위한 것 -

 

 

 

 

   

2. 데이지의 노래

 

  봄이 왔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이 꽃집에 들른 일이었다. 겨우내 방치했던 빈 화분에다 물오른 아젤리아며, 꽃대를 올리기 시작한 서양란을 심었다. 작은 플라스틱 화분에는 일년생 꽃인 데이지 모종을 옮겨왔다. 흰색, 연붉은색, 홍자색 등 다양한 색깔의 데이지는 볼수록 정겹고 소박하다. 빈 화분을 채운다는 건 명분일 뿐, 내가 꽃집을 찾은 진짜 이유는 이런 데이지를 맘껏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지는 언제부턴가 내 마음의 꽃이 되었다. 잎은 낮게 깔리고, 줄기는 곧게 뻗고, 꽃받침은 둥근 꽃 아래 숨어 있다. 꽃과 주변의 경계가 뚜렷해 깨끗하게 피고 진다. 꽃과 잎과 꽃받침이 마구 뒤섞여 너저분한 인상을 주는 팬지 같은 봄꽃에 비해 깔끔하고 소담스럽다. 화려하거나 눈에 띄지는 않지만 ‘들고 남’의 경계가 확실하다. 잎은 잎이요, 꽃은 꽃인 채로 제 소박함을 드러내는 꽃이 데이지다.

 

 

  좋아하는 꽃이다 보니 위대한 개츠비의 마음을 앗아간 못된 여주인공 이름이 데이지인 것이 몹시 마음에 걸리곤 했다. 꽃에 얽힌 전설 때문에 피츠 제럴드는 데이지를 주인공 이름으로 차용했는지도 모른다. 가장 아름다운 숲의 님프인 유부녀 베리디스는 오매불망 그녀만을 원하던 과수원의 신과 남편 사이에서 방황했다. ‘차라리 꽃이나 되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났으면.’ 하고 바랐는데, 소원대로 호숫가에서 데이지꽃으로 피어났다. 으뜸 미녀가 환생한 꽃이니 데이지의 꽃말이 ‘미인’인 것은 당연하겠다. 또, 전쟁미망인이 된 여자가 유복자인 아들마저 병으로 잃게 되자 소녀들이 ‘데이지의 노래’를 부르며 꽃으로 위로해줬다는 전설도 있다.

 

 

  두 전설 모두 기품과 비장미가 있으면서도 담백하고 깔끔한 데이지의 정서와 어울린다. 뚜렷한 경계가 있으면서 소박한 기품을 유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내 안에서 이상화된 그 데이지는 잠시 접어두고, 데이지의 꽃말에 ‘희망과 평화’도 있다니 그 말로 위안을 삼아야겠다. 이상이든 위안이든 어쨌거나 나는 봄이면 데이지를 보러 꽃집으로 달려간다.

 

                    

 

                                     

 

 

    

 3. 고통을 보는 자세

 

 

  타인의 아픔이나 고통이 언제나 연민이나 배려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 그것은 유흥거리로 전락해 이미지 조작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전쟁터의 육체적 고통이 가십거리가 되고,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음을 수잔 손택은『타인의 고통』을 통해 경고한다. 구경꾼으로 전락한 우리는 타인의 시련과 고통이 담긴 피사체를 유희나 호기심의 대상으로 본다. 왜냐면 그것들은 나와 먼, 한 편의 영화 같은 볼거리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녀는 인간 고통의 대표적 현장인 전쟁의 불필요성을 강조한다.

 

 

  인류는 전쟁의 역사였다. 그것은 남성성의 욕망 속에 전쟁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손택은 보고 있다. 전쟁의 참사 현장을 찍은 어떤 사진들은 사실성을 보여줄지는 모르지만 진실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타인의 고통마저도 소비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극적 전쟁 이미지들은 관음증적인 소비 주체자들의 구미를 끌어당긴다.

 

 

  로버트 카파 같은 유명 전쟁 종군 기자도 사진 이미지를 조작한다. ‘사진 없는 전쟁, 즉 저 뛰어난 전쟁의 미학을 갖추지 않은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손택은 말한다. 전쟁터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 특히 아군의 육체적 고통을 포착하는 것이야말로 이데올로기의 강화에 한몫한다. 갈기갈기 찢기고, 피 흘리는 피사체가 내 편이라면 분노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인지상정의 정서를 이용하는 쪽은 다름 아닌 집권자들이다. 국민들의 순수한 분노야말로 집권 이데올로기적 연대에 큰 보탬이 된다. 이런 순수한 분노야말로 무지하고 천박한 것임을 손택은 통찰한다.

 

 

  고통 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단순 욕망이 영혼을 갉아 먹는 동안, 우리는 전쟁 참상의 심각성을 놓쳐버리게 된다. 모든 전쟁은 모든 고통을 양산할 뿐이다. 세상 갈등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소통을 모색해나가려는 시도야말로 타인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이다. 전쟁은 불가피한 게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든 불필요하다고 수잔은 낮은 목소리로 역설한다.

 

 

 

  

 

 

 

 

 

 

 

 

 

 

 

 

 

4. 열하일기 만나기 좋은 날

  박지원의『열하일기』는 다양한 버전의 해설서로 먼저 만나는 게 이해하기가 쉽다. 맛보기 해설서로는 고미숙의『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추천할 만하다. 그린비 출판사에서 2003년에 출간된 이래 개정판을 거듭하면서 꾸준히 읽힌다. 연암의 삶과 열하일기 둘 다에 관해서 쉽게 풀어썼다. 한마디로 시대를 조롱하고 틀에 박힌 삶을 거부한 자유인 박지원을 재조명하는 책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열하일기를 웃음과 역설이 그치지 않는 한 판의 마당놀이 같은 것으로 보았다. 유목, 리좀, 클리나멘, 재영토화 등의 서양 철학 개념을 열하일기와 접목해 알기 쉽게 풀어놓는다. 말하자면 저자는 현대 철학이론으로 근대의 매력남이었던 박지원을 만나게 해준다. 열하일기 광팬인 저자는 연암의 빛나는 유머와 뜨거운 패러독스를 어떻게 하면 널리 알릴 수 있을까만 고민한 것 같다. 그 고민의 산물로 작가는 고전 평론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저자는 연암의 사유를 경쾌하면서도 깊게 중첩시킨다. 연암의 기질과 세계관, 문체반정의 의미, 연암의 호기심, 연암의 유머 코드, 연암의 철학적 사유 등을 차례로 언급한다. 부록의 재미도 지나칠 수 없는데 연암의 일정을 지도로 간략하게 보여주고, 열하일기의 등장인물을 코믹하게 소개하는 ‘캐리커처’도 싣고 있다. 곳곳에 배치된 웃음과 역설 때문에 틀에 박힌 여행기가 아니라 통쾌한 여행기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행원인 하인 장복과 창대 두 커플이 보여주는 순진한 기행, 주변 지식인들에 대한 조롱, 중국 현지인들과 나눈 우정의 필담 등을 통해 당대 주류 담론에 대한 일침을 가한다. 웃음과 도전이 넘쳐나는 한 자유인의 유쾌한 행보를 상상하며 작가 고미숙은 박지원의 광팬이 되었을 것이다. 시절이 하 수상한 요즘이야말로 유쾌한 웃음과 역설이 필요한 때이다. 더디게 변하던 조선 양반 사회에서 시대를 앞서 자유롭게 살다간 한 지식인의 발자취를 안내 받고 싶으면 고미숙의 이 열하일기 입문서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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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4-12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벚꽃 아닌 유채가 만발한 경주 풍경~ @@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동참하지 못했으니..................로 대신함.^^

다크아이즈 2013-04-13 05:41   좋아요 0 | URL
못 오신 그 맘보다 기다리고 기대했던 우리 맘이 더 아팠어요.
전부 순오기 언냐 생각하느라 맛있는 거 앞에서 기도만 했다는 ㅠ
담에 더 좋은 기회에 건강하게 뵈어요.^^*

2013-04-13 0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13 0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13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Jeanne_Hebuterne 2013-04-15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는 처음이라고 말하던 데이지를 팜므 느와르님의 글에서 다시 만나고 갑니다. 안나 카레니나에 이어 위대한 개츠비도 곧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다니 어쩐지 궁금해지는 새벽이에요. 앓았던 몸은 이제 괜찮으시죠? 봄나들이 가요, 팜므 느와르 님!

다크아이즈 2013-04-13 05:54   좋아요 0 | URL
에뷔테른님 저도 5월 16일만 기다려요. 디카프리오의 위대한 개츠비라니...
독서팀과 보러 가기로 약속도 해놓았어요. 독서팀이 두 개니 적어도 개봉관에서 두 번은 보게 될 것인데, 안나 카레니나는 일주일이었는데, 이번엔 디카프리오의 힘을 빌려 장기 상영으로 갈 수 있을라나... 왠지 고전 명작 영화 소식 들리면 불안해요.
못 보게 될까봐. 작년 폭풍의 언덕은 개봉도 안 하고 가더라는... 에뷔테른님은 대도시이니 상영했을 것 같아요. 아, 위대한 개츠비 기다리고 있었요...

에뷔테른님도 한 번 뵙고 싶어요. 섬세한 글쓰기의 로망이라고 제가 몇 번이나 고백한 적이^^* 부끄러워 휘리릭~~~

Jeanne_Hebuterne 2013-04-15 15:45   좋아요 0 | URL
버즈 루어만 감독인가 본데 화면이 아주 화려한가 봐요. 그 공허함을 어떻게 살릴지 궁금해집니다. 대도시라니오, 문화의 사각지대입니다. 그래서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개봉한 주에 바로 보러 가야만 되어요. 안그러면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말할 수밖에요!
생활이나 사람이 좀 섬세해져야 할텐데 모난 제 구석이 글에 늘 스미는 느낌을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언제 한번 뵈어요, 팜므느와르님 :) 남은 오후도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다크아이즈 2013-04-15 16:17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야 뭐 영화쪽은 잘 모르지만 일단은 위대한 개츠비니 무조건 봐야한다는 생각으로다가... 트렌디하게 현대적 해석을 가미했나봐요. 마치 요즘 사극이 6,70년대 사극과 때깔부터 다른 것처럼 ㅋ

전 혼자 님이 대도시에 산다고 착각했지 뭡니까ㅠ
섬세하고 민감한 사람들이 글을 잘 쓰지요. 전 씨잘데기 없는 데만 예민하고
실제로는 많이 덜렁대는 편입니다. 그래서 반대 성향인 님 글을 좋아하지요.
한 번도 모난 구석은 발견하지 못한 걸요.^^*
언젠간 뵈올 날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크~~

곰곰생각하는발 2013-04-13 0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탁.. 참, 글이 정갈합니다. 쏙쏙 읽히죠. 타인의 고통.. 제가 자주 읽는 책입니다.
정말 손탁은 존경할 만해요. 그녀의 책은 무조건 읽는 1인입니디ㅏ.

다크아이즈 2013-04-15 14:54   좋아요 0 | URL
손태그 글이 정갈한 건 그만큼 생각이 올곧게 정립되어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나저나 곰발님처럼 쓰려면 얼마나 읽어야?
하기야 읽는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닙디다.
알아먹도록 쓰면서 깊고 넓게 쓰는 님이 알라딘을 접수하는 건 당연하다 사료되옵니다.^^*

이진 2013-04-13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목련꽃을 참 좋아해요. 그걸 보고 있으면 하얗게 오른 목련처럼 마음도 깨끗해지는 것 같아서요. 저도 무척 게으르다보니 누군가 집에 놀러오겠다고 하는 걸 굉장히 꺼려요. 어른들은 며칠 전에 언질을 주지만 우리들 사이에선 불쑥 들이닥치기 마련이잖아요. 집이 학교 앞이고 하다보니 학교를 마치거나, 수학여행, 소풍 등 놀러가는 날 아침이면 친구들이 많이 모여요. 청소를 자주 해야겠는데 청소가 일단 시작하면 끝이 안 보이잖아요. 그 막막함을 마주하기 싫어서 안 하게 되네요. 희희

다크아이즈 2013-04-15 14:59   좋아요 0 | URL
요즘 자목련 한창이던데. 이진님은 백목을 좋아하시는구나. 그건 진작에 다 떨어져 버렸더군요.

누구나 갑자기 내 집에 들어닥치면 신경쓰이지요. 해서 저는 준비되지 않으면 누굴 부르지도 않고, 누군가의 집에 가지도 않는답니다. 한 번씩 좋은 친구들과 수다 떨기 위해 집 청소하며 기대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일년에 몇 번씩은 있는 일...ㅋ
마당쓸고 가재잡고 맞아요. 잔소리 먹고 다이어트도 되고 ㅋ

그나저나 이진님은 학교 앞이라 신경 많이 쓰이겠다. 뭐, 이진님 맘이 젤루다 중요하지요. ㅋ

프레이야 2013-04-17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이지의 꽃말이 미인이군요. 그날 전 데이지를 실제로는 처음 봤어요.
냉큼 사진에 담았지요. 위대한 개츠비를 두번 볼 예정 다 잡혀있으시다니..ㅎㅎㅎ
레오나르도 디 카프리오는 갈수록 더 멋있는 배우가 되는 것 같아요.
기대기대 중^^

다크아이즈 2013-04-17 23:13   좋아요 0 | URL
요즘 데이지가 한창이에요. 학교 화단, 꽃집, 거리 조경꽃으로도 많이 볼 수 있어서
최끔 행복합니다. 옆에 팬지가 있어서 더 돋보이는...
프레님 데이지 사진 넘 예뻐요.^^*
꽃말 따라 피츠 제럴드가 이름 지은 게 아닌가 혼자 생각해봤답니다. ㅋ

위대한 개츠비 세 번 보게 생겼어요.
중학논술팀도 그것 보기로 했거든요.(설마 19금은 아니겠지요.)

알로하 2013-05-03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쓰는 사람은 눌변이라는 말에 찔리고 갑니다. 그래서 제 말이 그렇게 빠른가보다며..ㅠㅠ 시집 추천을 마음에 담아갑니다.^^

다크아이즈 2013-05-07 19:42   좋아요 0 | URL
알로하님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말 빠르면서도 글 잘 쓰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요?
제 주변에도 그런 사람 있는 걸요. ㅋ
 

 

 

 

 

 

 

 

1. 며칠 앓았다 

 

 

  며칠 앓았다. 게을러서 미루기만 했던 일을 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다. 코 안이 헐고, 입술은 부르트고, 목은 따끔거렸다. 통증·발열·두통이 몰려왔고 온몸은 선인장 가시를 두른 듯 쑤셔댔다. 해삼처럼 몸이 바닥으로 퍼지는 느낌이었다. 휴식보다 나은 치료는 없는 법. 한나절이라도 쉬고 싶었다. 아파서 공부 선약을 지킬 수 없게 됐다고 양해를 구했다. 대충 빨랫감만 치워놓고 드러누우려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택배기사인가 싶어 얼른 문을 열었다. 웬걸, 양해 구하는 문자를 받은 친구들이 들이닥친다. 문병이란 건 핑계였다. 얼마나 재바른 손인지 그 바쁜 아침 시간에 이것저것 챙겨서 공부하러 가는 길에 부려놓는다. 차 한 잔 하고 가라는 말을 할 틈도 주지 않고 금세 사라진다. 곰국, 미역국, 레몬차, 복숭아효소, 물김치 등 아픈 사람 기운 돋게 하는 먹거리 앞에서 울컥하다 못해 망연자실하고 만다.

 

 

  우정을 얘기하는 고사성어 중에 간담상조(肝膽相照)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일 수 있는’ 흉허물 없는 사이를 말한다. 당나라 때 어려운 처지에서 더 어려운 친구를 생각한 유종원의 우정을 기리는 묘비명에서 따온 말인데, 간담상조하기의 어려움을 강조하는 의미도 있으리라. 평화로운 나날에는 웃고 떠들고 기뻐하며 친구 되기도 쉽다. 하지만 막상 이해득실에 얽히면 눈 돌리고 고개 틀어 서로 모르는 얼굴이 되기도 하는 게 사람이다. 그만큼 친구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간, 쓸개 내놓고 사귀는 극단의 우정까지 갈 것도 없다. 심심하고 덤덤한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건 큰 힘이 된다. 관계란 언제나 상대적이다. 친구를 얻으려면 먼저 친구가 되어주면 된다. 우정이 없다고 신세타령할 시간에 우정을 찾아 나서면 된다. 단, 평화로운 날에도 힘든 날에도 한결 같아야 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착한 친구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간담상조는 좋은 친구가 되려는 진심어린 노력이다. 우정에서도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

 

 

 

 

2. 야생의 나날

 

 

  장국영은 만우절날 죽었다. 시시껄렁한 거짓말로 하루를 눙치는 대신,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피는 꽃에도 우울과 몽상으로 4월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온통 그의 추모 특집이다. 천녀유혼에서 그의 눈빛은 여전히 순정하고 맑다. 그래도 어쩐지「아비정전」에서의 그의 어깻짓만은 못하다. 발 없는 새의 운명을 예감하고 추던 속옷 바람의 맘보춤, 엄마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뒤돌아보지 않던 그 발걸음. 그 궁극의 지점에서 언제나 그의 어깨는 흔들렸다. 젊음을 제 멋대로 탕진하는 자의 슬픔 같은 것이 그 어깨에 걸려 있곤 했다.

 

 

  아비정전은 제목부터 관심을 끄는 영화였다. 아Q정전, 아비정전에서처럼 ‘정전’(正傳)은 ‘이야기’ 쯤이 되겠다. 아비정전은 영어 제목에 와서야 제대로 빛을 발한다. Days of Being Wild라니. 내친 김에 프랑스 제목도 찾아 본 적이 있다. 프랑스판 DVD 제목은 Nos annees sauvages이다. 의미는 영어와 같지만 오감이 훨씬 열리는 느낌이랄까. 중화권의 아비정전 제목이 왠지 딱딱한 문어체라면, 서구식 제목은 구어체이면서도 날 것의 냄새이다. ‘야생의 나날’이라니!

 

 

  상처투성이 인간은 사랑을 쉽게 믿지 않는다. 필연적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인들까지 커다란 우물 같은 공허를 안기기 마련이다. ‘발 없는 새가 있다지. 날다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에 꼭 한번 땅에 내리는데, 그때가 죽을 때지.’ 아비의 이 독백을 떠올릴 때마다 발 없는 새의 휴식처가 ‘바람’이었다는 것이 못내 걸리곤 했다. 공허함의 정점에서 내딛는 지상의 발자국이 곧 죽음이다. 이 기막힌 메타포를 실험하기 위해 장국영은 서둘러 길 떠났나 보다.

 

 

  아비가 된 장국영은 천국의 꽃밭을 여행 중이고, 상처만 얻은 숱한 수리진(장만옥)은 이렇게 남아 원망 같은 벚꽃을 맞는다. 웬만하면 4월엔 뒤돌아보지 마라. 야생의 나날에 대한 기억의 회로 때문에 슬픔 많은 어깨들, 벚꽃 아래 울고 있으리니. 당신 또한 거기 그렇게 울고 있을 것이기에.

 

 

 

  

3. 마음의 복사꽃

 

 

  복사꽃이 피기 시작한다. 봄 언덕을 온통 분홍으로 휘감는 복사꽃은 제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는 꽃이다. 꽃은 꽃이기를 자랑할 때 그 가치가 극대화된다. 복사꽃이 좋은 이유는 비슷한 시기에 숨어 피는 다른 꽃에 비해 제 화사하고 선명한 자태를 한껏 드러내기 때문이다.

 

 

  피는 복사꽃 더불어 마음의 복사꽃도 이맘때면 맡을 수 있다. 장애인예술제에 출품된 문예작품들을 감상하는 일이 그것이다. 시, 수필, 서예, 그림, 사진 등의 종목에서 자신들의 기예와 진정성을 겨루는 이 잔치에 초대되는 것을 나는 ‘무릉도원 가는 길’이라고 명명하곤 한다. 복사꽃 피는 봄마다 작품을 만나는데다, 눈물콧물 범벅인 채로 감상하고 나면 마치 무릉도원을 지나온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무릉에 배 저어간다. 작년보다 더 많은 작품들이 응모되었다. 근육 경련을 참아가며, 땀내 풍겨가며, 허리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을 견디며 생산해낸 창작품들은 저마다 고유하고 구체적인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복사꽃 만발한 셈이다. 아프지만 달달한 향기는 글 계곡 가득하고 사연이란 꽃잎은 바람에 흩날린다. 장애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뒷전에 숨어 어린 딸의 공연을 지켜봐야 했던 아버지의 눈물, 비록 말을 하진 못하지만 좋은 음악으로 현실의 고통을 긍정의 아이콘으로 승화시키는 아가씨, 몸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사고만은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몇몇 분들의 문학적 감수성. 꿈결인 듯 동굴 깊숙이 빨려 들어가다 보면 환한 빛이 보이는데 그게 바로 별천지다.

 

 

  인생은 고통이자 곧 환희다. 가슴 한 쪽이 통점으로 짓눌러대는가 싶다가도 그 고통을 유머나 긍정의 화답으로 이끄는 찰진 정신력에 이르면 읽는 이의 마음도 어느새 복사꽃처럼 환해진다. 고통과 고뇌 없는 삶의 꽃밭이 어디 있으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가오는 그것들을 끌어안아, 끝내 복사꽃밭으로 만들고야 마는 그들의 단단한 내면. 겨우내 제 고통 농밀했기 때문에 그 언덕 저토록 화사한 절정을 맞는 게 아니던가.

 

 

 

 

 

4. 나이 든다는 것

 

 

  아직까지는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크게 두렵거나 실망하지는 않는다. 이제껏 그러했듯이 어제보다는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산다. 다만 젊었을 때에 비해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확실히 마음의 준비를 필요로 한다. 인간의 삶과 가치를 연구해온 코넬대의 칼 필레머 교수가 그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 그의 저서『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에는 결혼, 양육, 일, 여가 등에 관한 취재기적 충고가 나오는데 그 중 ‘두려움 없이 나이 드는 5가지 조언’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우선 나이 드는 건 생각보다 괜찮은 일이다. 이 말은 중년의 생각이나, 여유, 감각, 포스 등이 얼마나 즐길만한 것인지 겪어보지 못한 젊은이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 나이를 온몸으로 관통해봐야만 그 ‘괜찮음’의 의미를 알게 된다.

  두 번째, 백 년을 쓸 몸 아껴라. 이 충고는 뼈저리게 새겨들어야 하는데 생각보다 실천이 어렵다. 몸을 방치하면 나도 괴롭지만 주변 가족마저 고통스럽다. 그건 어리석은 이기심에 지나지 않는다.   

  세 번째, 미리 걱정하지 마라. 대부분 닥치지도 않은 미래나 죽음을 앞서 걱정한다. 걱정을 걱정하는 시간에 대비하는 게 더 생산적이라는 말씀이렷다.

  네 번째, 관계의 끈을 놓지 마라. 중년에 들면 의식적으로라도 관계의 장을 넓혀가란다. 이 역시 쉬운 건 아니지만 우울증이나 자괴감을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이라 하지 않는가. 마지막으로 노후의 거처를 계획해두라. 노후에 대한 현실적 주거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심신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 소박하고 구체적인 노후 환경 계획을 떠올리다 보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오지 않을 것 같은 미래인 노년이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것에 대한 몇 가지 명시적 조언을 새기는 것만으로도 그 시간의 반은 준비된 기분이다. 가장 지혜롭게 인생을 나는 방법은 끊임없는 자기 훈련에 있다는 것을 ‘두려움 없이 나이 드는 법’은 알려 준다.

 

 

   

5. 박병선 박사

 

 

  박병선 박사에게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를 구해본다. 적절한 걸 찾지 못하겠다. 박병선은 그냥 박병선이란 고유명사 단독으로 반짝였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부려본다. 허난설헌이나 신사임당이 앞뒤 어떤 수식어를 받지 않아도 그 이름이 고스란히 빛나는 것처럼.

 

 

  ‘KBS스페셜’ 다큐에서 박병선 박사의 삶을 알게 되었다. 고인이 된 여사는 이십 년 이상,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 집념을 불태웠다. 한국전쟁 직후 33세에 프랑스로 유학 갔다. 역사학자의 뜻을 품고 떠나는 그녀에게 스승은 당부한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외규장각 의궤를 꼭 찾아보라고. 그렇게 의궤 찾기는 선생의 일생일대 목표가 되었다. 도서관을 자주 드나들다 관계자에게 발탁되어 1967년부터는 프랑스국립도서관 사서로 근무했다. 선생에겐 기회였다.

 

 

  각고의 노력으로 베르사유 도서관 지하창고에 버려지다시피 한 외규장각 의궤를 발견할 수 있었고, 끝내 그것은 고국의 품에 안겼다. 그 과정에서 ‘직지’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금속활자 및 인쇄사의 흐름을 뒤바꾸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직지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직지의 대모’, ‘의궤의 어머니’는 그렇게 선생 앞에 붙는 별칭이 되었다. 한국의 스파이로 오해 받아 사서직을 떠난 뒤에도, 선생의 연구는 멈춤이 없었다. 정부·민간단체와 힘을 합쳐 의궤 반환운동을 전개했다. 2011년 5월, 297권의 외규장각 의궤는 145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의궤가 돌아온 지 반년 만에 선생은 세상을 떠났다.

 

 

  박병선 선생의 치열한 삶, 올곧은 조국애를 보면서 세 가지 단어가 떠올랐다. 집념, 시간, 건강이 그것이다. 뚜렷한 목표(그것이 조국애이나 인류애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괜찮다)가 있다면 이 세 박자만 갖추면 두려울 게 없다. 박병선 박사가 존경스러운 건 조국애란 큰 물줄기를 잡아놓고, ‘집념’이란 의지로 매 ‘시간’을 자기화했다는 것이다. 건강이 허락한다고 누구나 그렇게 살아지는 게 아니니 더 숙연해질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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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04-07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좋습니다. 복사꽃 하니 갑자기 동사서독이 생각났어요.
눈이 곧 멀 양조위는 복사꽃 구경을 위해 마적단과 싸우죠.
막 싸우다가 왼손잡이 무사에게 목이 베이죠.. 그때 그의 독백이 흐릅니다.


칼이 바람보다 빠를 때
상처에서 터지는 소리가 듣기 좋다는데...
내 목이 베일 때 그 소리를 듣는구나.

이 양조위의 대사 하나 때문에 이영화가 좋아졌던 기억이 나네요...
동사서독 리덕스'가 돌아다니더군요.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스비다.

다크아이즈 2013-04-12 22:34   좋아요 0 | URL
곰발님. 정말이지 시간 날때마다 왕가위 것 차례차례 자꾸자꾸 보고픈데 것도 제 맘대로 안 되네요. 시간이 언제나 모자라요. 잠부터 챙겨 자다 보니 ㅠ
동사서독, 중경삼림, 해피투게더, 아비정전, 그리고 화양연화...
전 화양연화가 젤루다 꽂히지 뭡니까.

세실 2013-04-07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셨구나. 이런.....좀 괜찮아 지셨어요?
그런 와중에도 따뜻한 문자 보내시공....
낼 왔다갔다 무리하지 마시고 그냥 경주에서 놀아요.
님이 장거리 운전하기 피곤하실거 같아요~~~
좋은 친구가 되려는 진심어린 노력, 좋은 부모가 되려는 진심어린 노력, 좋은 자식이 되려는 진심어린 노력......ㅎㅎ

다크아이즈 2013-04-12 22:37   좋아요 0 | URL
세실님 하나도 안 피곤하고 재밌었는걸요.^^*
언제나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해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것보다 더 빨리 가는 시간.
끝까지 챙기지도 못했는데 감기 걸리진 않으셨는지요?

프레이야 2013-04-07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ㅜㅜ 심하게 아프셨군요. 내일 무리하지마시고 세실님 말씀대로 해요, 팜므언니. 매사 최선을 다해 정성을 쏟는 마음이 느껴진답니다. ^^ 많이 드시고 오늘까지 푹 쉬세요.
장국영의 아비정전에서의 모습, 기억속에 되살려봅니다.

다크아이즈 2013-04-12 22:40   좋아요 0 | URL
프레님은 왠지 여태 여독으로 앓고 계실 듯 ㅠ
언능 일어나 기운 차리시길.
담엔 비염 깃든 우아한 불어 발음을 기대하겠어요.^^*

아비정전의 쓸쓸한 그 모습, 만우절만 되면 거짓말처럼 떠오르는 장국영...

페크pek0501 2013-04-07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셨군요. 다 나으신 것 맞죠?
으음 ~~ 글을 보니 다 나으신 듯해요.
좋은 글 보고 가요.
님은 자기만의 방식의 글쓰기를 갖게 되신 것 같아요. 이것, 축하할 일이죠?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다크아이즈 2013-04-12 22:41   좋아요 0 | URL
페크 언니 따라 가려면 한참 먼 걸요.
<자기만의 방식>으러 글쓰기에 능한 분은 바로 페크님...
많이 부러워하고 배우고 있답니다. ^^*

hnine 2013-04-07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은 고통이자 환희다.' 이문장에 눈길이 머무네요. 고통을 주기 때문에 환희의 순간도 가져다주는 것이겠지요. 고통을 환희로 바꾸는 것도 팜므님 글 읽다보니 결국 우리의 몫이었어요.
저도 며칠 전에 우연히 KBS 스페셜에서 박병선 박사에 대해 나오는 것을 보고 방송이 끝날때까지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봤어요. 저는 위의 두권 중 왼쪽 책을 읽었는데, 읽기 전에 작가분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죽음의 선고를 받고 나서도 일을 완결시키지 못해 시간을 다퉈 일하셨다고, 자기 개인적인 얘기는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치 않으셨다고요. 먹먹했지요.
'내가 알고 있는걸...' 저 책은 제가 서재에 리뷰올렸을때 댓글 달아주셨더랬지요 ^^
건강 챙기셔야지요. 봄이란 계절은 병주고 약도 주는, 그런 계절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다크아이즈 2013-04-12 22:44   좋아요 0 | URL
나인님 나타나면 벌렁벌렁^^*
저, 좋아하는 것 보이지요?
박병선, 저는 그날 처음 알았지 뭡니까.
세상엔 존경할 분도, 진정성 있는 분도, 치열하게 사는 분도, 공익을 위해 사는 분도
많다는 걸 느꼈어요.

내가 알고 있는 걸, 이 부분은 나인님 리뷰 보고 저도 자극 받은 걸요.
봄이 절정이네요. 나인님도 크게 앓지 말고 봄 잘 다독이시길 바라요.

2013-04-07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12 2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진 2013-04-14 19:13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 잘 모르는 배우인걸요.
가스파르 울리엘이라는 프랑스 배우인데 참 잘생겼지요.
눈이 아주 깊고, 보조개가 파인 것이 우리나라 배우인 김범을 닮았다고도 하구요.
트와일라잇 남자 주인공 배역을 요청받았으나 거절했다고 해요.
로버트 패틴슨 전에 있던 남자가 이 남자지요...희희

다크아이즈 2013-04-15 14:52   좋아요 0 | URL
이진님도 잘생긴 얼굴에 약하구나 ㅋ
프랑스 배우답다는...
대표 얼굴이 바뀔 때마다 이진님 얼굴을 갈아 치우는 상상도 재미나네요.^^*
봄날 파이팅~~
 

 

 

 

   

 

1. 행락의 키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키치(Kitsch)’에 관한 작가 고유의 예화들로 가득하다. 주인공들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각자 고유 캐릭터인 가벼움과 무거움의 속성을 바탕으로 상호 교류한다. 그 과정에서 진실로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은 인간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즉 키치에 관한 것이었다.

 

 

  키치는 한마디로 ‘저속함’을 말한다. 그 말의 본래적 태생을 떠나, 밀란 쿤데라 이후 이제 그것은 ‘삶을 바라보는 가짜의 태도’로까지 영역을 확대하게 되었다. 쿤데라 식으로 이해하자면 키치는 ‘싸구려 잣대로 공감대를 유도하는 유치한 놀음이자, 우연하고 당위적인 실체를 위선적인 미적 가치로 환원시키려는 모든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봄이 왔다. 너나할 것 없이 벚꽃놀이를 간다. 달리는 차창밖의 모든 풍광들은 봄빛에 조화롭다. 저 꽃과 나무들이 풍기는 시각적 향연, 저 들판에 솟구치는 대지와 공기의 냄새. 이런 것들을 기대하기까지는 키치가 끼어들 틈이 없다. 백년이 넘은 아름드리 꽃길에 행락객이 부려지는 순간, 우리의 눈길을 이끄는 건 흐드러진 꽃가지가 아니라, 나무 사이마다 빼곡하게 들어찬 좌판대의 물결이다. 멀리서 바라봤던 벚꽃은 환상이나 거짓의 풍경으로 밀려나고, 가까운 생존의 물결은 진실이 되어 시야를 불편하게 한다. 일차적 키치의 현장을 목도하는 순간이다. 웬만한 서민적․대중적 코드에 무난한 나 같은 사람도 그 키치적 부담 앞에선 견디기 힘들었다.

 

 

  여기서 그치면 키치에 대한 쿤데라 식의 완전한 정의가 될 수 없다. 쿤데라는 ‘똥’에 대한 절대적 부정이야말로 키치라고 단언했으므로. 부어라, 마셔라, 떠들어라 식의 정서적 친밀감이 서린 그 행락 문화는 관찰자의 피로와 염증을 수반하더라도 그 자체가 키치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그런 풍경 속에 골치가 지끈거리면서도 흐드러진 봄꽃 잘 보고 왔다고 역시 자연은 위대하다고, 자연 만이 살길이라고 기만적 힐링을 외친다면 그것이 곧 키치이다.

 

 

  좁은 땅에서 일시에 많은 사람들이 향연을 즐기려니 온갖 물리적 야단법석은 필수가 되고 만다. 그러다 보니 꽃구경은 힐링이 아니라 킬링이, 스트레스 해소가 아니라 스트레스 해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가 이 봄 구경을 포기할 수 없는 건 오래된 절집 텃밭에서 피어오르는 똥 냄새야말로 우리 삶의 근원임을 알게 되는 그 짧은 순간들의 영속성 때문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생존과 관련이 있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똥을 수반한다. 똥을 부정하지 않는 시선, 키치로 전락하기 직전의 그 경건한 한 순간을 위해서도 우리에게 봄은 필요하다.

 

 

 

  

2. 신중과 경솔

 

 

  신중함이 고급한 미덕인 것만은 틀림없다. 애석하게도 나는 신중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대체로 급하고 다혈질이라 실수가 잦다. 젊은 한 때 환경적 요인에 의해 무척 신중한 시간들이 내게도 있었다. 좋게 말하면 신중하고 생각이 많은 편이었고, 나쁘게 말하자면 소심하고 걱정이 많았다. 아마 그때 별로 만족하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부러 신중함 앞에서 결례를 일삼는지도 모르겠다.

 

 

  신중한 사람은 겸손하고, 과묵하며, 들뜨지 않는다. 경솔한 사람은 허둥대고, 오지랖을 떨며, 참지 못하고 앞선다. 신중한 사람은 소심하며, 무례하지 않고, 절제한다. 경솔한 사람은 대범하며, 적극적이며, 즉흥적이다. 신중한 사람은 견해를 자제하며, 판단하기를 주저하며, 통솔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경솔한 사람은 말이 앞서고, 판단에 서두르며, 의기투합하기를 즐긴다.

 

 

  써놓고 보니 하늘이 보시기에도 일견 신중한 사람에게 후한 점수를 주게 생겼다. 하지만 신중한 것이 좋고 경솔한 것은 나쁘다, 꼭 이런 얘기가 성립되는 것만은 아니다. 경솔의 실수가 신중의 갑갑함보다 인간적일 때도 많기 때문이다. 좋은 쪽으로도 참지 못하는 그들은 먼저 행동하고, 앞서 배려하며, 빨리 나아간다. 신중파에 비해 실수가 잦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다소 거친 듯 에너지가 넘치는 그들 곁엔 사람들이 몰린다. 지루한 평화보다는 어설픈 열정이 훨씬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실수나 과장이 주는 약점이 갑갑한 무결점 보다는 훨씬 인간적이라는 건 본능이 알아차린다.

 

 

  신중이 개별성에 함몰되면 지겹거나 매혹이 반감되고, 경솔로써 대중을 호도하면 밉상이 되거나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극단적이지 않다는 전제 하에 신중과 경솔 중 누구를 친구로 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후자를 택하겠다. 경솔이 인간적 미덕이 되는 딱 그 지점에서 추가 멈췄으면 좋겠다. 신중함의 불편 보다는 경솔함의 편리함, 즉 제 안에 갇힌 햄릿보다는 말 달리는 돈키호테가 훨씬 내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3. 송덕봉의 유머 코드

 

 

  조선시대에 활약한 여성 문인들은 많았다. 신사임당을 비롯한 황진이, 이옥봉, 이매창, 허난설헌 등이 그들이다. 물론 송덕봉도 빠질 수 없다. 송덕봉은 16세기 초중반 활동한 주부 시인인데 인간적 재치와 유머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미의 문학적 성과 대부분은 남편인 미암 유희춘이 남긴 ‘미암일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인품과 학식은 믿을만했지만, 키가 작다는 이유로 가족은 미암과의 결혼을 반대했다. 그러자 편지로 미암에게 신행 올 때 버선발에 두꺼운 솜을 켜켜이 넣어 신고 오라고 충고했다. 우리나라 키높이 신발의 원조가 될지도 모를 에피소드가 덕봉에게서 나온 셈이다. 한편 장난끼 많은 미암이 부인에게 이런 시를 지었다. ‘부인이 문 밖에 나갈 때 코가 먼저 나가더라.’ 콧대 센 부인을 놀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가만히 있을 덕봉이 아니었다. ‘남편이 길을 갈 때 갓끈이 땅을 끌더라.’ 미암의 작은 키를 농으로 받아치는 여유를 발휘한다.

 

 

  오랜 귀양 생활 끝에 벼슬길에 다시 오른 미암은 고향에 남아 있는 덕봉에게 자신의 행실을 자랑하고 싶었다. 지난 몇 개월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았으니 큰 은혜를 입은 줄 알라고 편지를 보낸다. 덕봉은 답한다. 늘그막에 홀로 지새는 것은 당신 건강에나 좋은 일이지 마누라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은 아니라고. 더구나 시모의 삼 년 상을 거두고, 귀양살이 때 먼 길 찾아 나선 것과 비교하면 어느 것이 나은 것이냐고 일침을 가한다.

 

 

  저토록 거침없는 화법과 진솔한 여성적 유머 코드가 용인된 당시 조선 사회는 확실히 여성에게 열린 사회였다. 논리적이고 담대하며 문학적 감수성 면에서도 결코 미암에게 뒤지지 않았던 덕봉 여사의 한 궤적도 남편인 미암의 배려 없이는 꽃피우기 힘들었을 것이다. 비 따라 봄 오는 오늘 같은 날, 봄꽃을 앞에 두고 덕봉과 미암은 어떤 시로 부부의 정을 나눴을까. 그미를 위한 온전한 시집은 사라지고, 미암의 기록만으로 그 시절을 되돌려야 하는 게 조금은 애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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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3-03-31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각조각 흩어진 단어들을 모아 돌아오고 싶지만 영 할 일이 많네요.
댓글로나마 단어들을 집합해봅니다.
이 페이퍼는 제 마음 한 구석을 콕콕 찌르는 데가 있어요. 밀란 쿤데라와 애덤 스미스는 언젠가 꼭 읽으리라 다짐은 하고 있지만 알라딘에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처럼 어떤 연유 때문에 읽지 못하고 있거든요. 한국소설도 못 읽는 판에 ... 흑
쿤데라는 정말 읽고 싶네요. 키치.

다크아이즈 2013-04-07 10:27   좋아요 0 | URL
애덤 스미스는 미루더라도 쿤데라는 소이진님 읽어도 감흥이 올 듯.
확실히 재미로만 보면 우리 소설이 좀 처지는 듯.
그래도 쓰려면 무척 어려운 게 우리말 소설...
감각적인 외국어 소설들이 저를 울리는 아침입니다.^^*
이진님 봄날 가네요. ㅠ

2013-03-31 2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07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3-04-01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쿤데라,,,멋진 작가에요,,,
그리고 애덤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최근 제 장바구니에서 가장 많이 들락거린 책인데 아직도 구입하지 못하고 있네요,,,흥미위주의 책을 먼저 구매하게 되는 것 같아요,,ㅠㅠ하지만 보관함에 있으니 언젠가 사게 되겠지요,,ㅎㅎㅎㅎ
밑에 글들도 댓글은 못 달았지만(한동안 제 컴이 고장) 다 읽었어요,,,힛

다크아이즈 2013-04-07 10:23   좋아요 0 | URL
저도 제 흥미위주로 보는 걸요.
컴 고장 나도 나비님의 책사랑, 알라딘 사랑은 쭈욱~~
알라딘에서 님 위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없는 동안 맛보았지요.
봄날 파이팅^^*
내일도 파이팅 흐흐~~~

굿바이 2013-04-01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한민국 예식장 건물만큼 키치라는 단어를 잘 상징하는 것이 또 있을까요?^^
쿤데라는 저렇게 멋지게 그것을 표현하는군요. 역시나 브라보~!입니다!!!

다크아이즈 2013-04-07 10:18   좋아요 0 | URL
현상적 키치도 키치요, 마음의 키치는 더한 키치로 그려내는 쿤데라 식 통찰에 혀를 내두릅니다.
굿바이님 굿모닝^^*

2013-04-01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07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표절 예방 교육

 

 

   논문 표절 시비에 휘말린 유명 배우가 학위 반납을 하겠다고 해서 화제다. 쿨하게 인정하고 발 빠르게 대처하는 걸 보고 언론에서는 신선한 충격이라며 호들갑을 떤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이미 배우로서 난 사람인데 학위 하나 반납했기로서니 대학 강단에서 쫓겨나거나 밥벌이에 지장이 있겠는가. 이리 빼고 저리 변명하는 다른 혐의자들에 비해 즉각적이고도 현명한 대처를 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렇다고 잘못이 잘못 아니게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 표절이 개인만의 잘못일까. 우리나라만큼 어릴 때부터 도덕 교육을 철저하게 받는 나라도 없다. 인사 잘해라, 어른 공경해라, 자리 양보해라, 나라에 충성해라, 부모에게 효도해라 등등 도덕 교육의 절반 이상은 예절이나 충효의 덕목에 발목 잡혀 있다. 오죽하면 이러한 우리 도덕 교육의 현주소를 빗대 김상봉 교수는 ‘도덕 교육의 파시즘’이라거나 ‘노예 도덕’이라고 일갈했겠는가. 그러면서도 정작 표절에 관한 교육은 받아 본 적이 없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그들은 ‘표절은 범법 행위’라는 캐치프레이즈 하에 유치원부터 철저하게 가르친다. 한 문구, 한 소절을 쓰면서도 남의 것인지 아닌지 습관적으로 점검한다. 따 온 문장의 경우 ‘인용’이나 ‘각주’는 필수다. 만약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왕따를 감수해야 한다. 귀에 못이 박이도록 표절에 관한 가르침을 들어왔는데, 범법자의 길을 간다니 주변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반면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우리 교육의 어떤 커리큘럼 카테고리에도 표절에 관한 것은 들어 있지 않다. 이럴진대 누가 개별자에게만 표절의 혐의를 씌울 수 있을 것인가. 대학원 논문 전체를 대상으로 엄격하게 검증한다면 표절에서 완벽히 자유로운 경우는 드물지도 모른다. 아직 늦지 않았다. 표절의 부당성에 대해 점진적으로 교육하는 환경이 필요하다. 과도한 파시즘적 교육 항목이 줄어든 자리에 표절에 관한 경종 같은 가르침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무지가 낳은 표절의 가시방석에서 온 국민이 자유로워졌으면.

 

 

 

        

2. 진정한 이력서

 

 

  타당한 증거로서 효력을 가지려면 문서로서의 발자취가 있어야 한다. 학교나 회사가 자기소개서나 이력서를 중요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가 말로만 백 번 ‘나 괜찮은 사람이니 뽑아주시오’ 라고 해봐야 소용없는 메아리가 된다. 효율성과 객관성을 증거하기엔 서류보다 나은 방식이 없기 때문이다.

 

 

  조직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가장 합리적인 사람 뽑기 방식이 자기소개서나 이력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신을 증명해줄 문서 하나를 위해 온몸과 마음을 쏟는다. 학문적 성과를 위해 대학원을 가고, 영어 공인 점수를 높이기 위해 학원을 드나들며, 그럴듯한 현장 스펙을 쌓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이 모든 것들은 문서화된 내 자료를 구축하기 위한 수단이다.

 

 

  졸업반인 딸아이도 자기소개서 준비 때문에 오는 봄이 부담스럽단다. 스트레스가 쌓이는지 부쩍 기숙사에서 집으로 오는 주기가 당겨졌다. 집밥으로 충전을 하고 가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젊은이들의 하루를 보면서 자기소개서나 이력서만큼 허울 좋은 겉치레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봉사 단체에서 한 청년에게 시쳇말로 꽂혔던 적이 있다. 갓 성인의 문턱을 넘은 앳된 그는 재바른 듯 침착한데다 야무지고 상냥했다. 누구나 곁에 두고 싶어했다. 신문을 나르고, 차를 타고, 편지를 정리하는 단순한 봉사를 하는 것뿐인데도 무슨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은 사람처럼 성실하게 임했다. 작고 섬세한 행동으로 신선한 주의를 끄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이력이 될 정도였다. 문서화 되지 않은 진정성으로 자기증명을 해보이는 것이었다.

 

 

  자기소개서나 이력서가 한 사람을 다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 사람의 작은 행동, 섬세한 몸짓 하나가 훨씬 많은 이력을 보여준다. 진실로 믿을 만한 이력서는 그런 것들인데 우리는 그것을 간과한 채 살아간다. 그 견고한 이력이 무시될 수밖에 없는 사회의 풍랑 앞에서, 제 이력서를 채울 스펙을 위해 내 딸 네 딸 할 것 없이 그들은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다.

 

 

 

   

3. 프라하의 요네하라 마리

 

 

  쉽게 썼는데 깊게 읽히는 작품을 만나면 잠 못 이룬다. 요네하라 마리의『프라하의 소녀시대』는 천부적 재능을 갖춘 이가 독서력을 겸비했을 때 어떤 매혹적인 글쓰기를 보여줄 수 있는지의 좋은 예가 된다. 빼어난 유머 감각, 섬세한 관찰력, 놀라운 기억력의 조합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는 참신하기 그지없다.

 

 

  소설체 문법을 차용한 이 논픽션은 단숨에 읽힌다. 1950년대 말 공산당 국제 교류기관의 편집자로 파견된 아버지를 따라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를 다니던 소녀 마리의 추억담이 주요 내용이다. 각 나라 공산당 핵심 간부들의 자녀로 이루어진 학교는 다국적 소수정예 멤버를 자랑한다. 인민의 평등과 해방을 위해 모였다지만 특권의식, 패권주의, 계급의식 등 부모 세대가 안고 있는 모순을 어린 마리와 친구들은 깊이 통찰하게 된다.

 

 

  레닌에 관한 전기 영화를 보면서 마리 친구인 리차는 ‘레닌은 꽤나 잘살았나봐’라고 속삭인다. 혁명가로서의 이미지만 부각하다 보니 부르주아였던 생활상까지는 조작하지 못한 것을 어린 소녀의 눈은 잡아낸다. 레닌이 노동과는 거리가 먼, 소작료를 받아 생활한 지주 출신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된다. 강의록은 연습장에 썼다가 노트에다 다시 정서해야 한다. ‘한 번 쓴 글은 도끼로도 못 깎아’내는 게 그들의 철칙이다. 쉽게 고칠 수 있는 연필로 쓴 것을 남에게 보여준다는 건 그들에겐 무례한 것으로 통했다. 지울 수 있는 것, 변화되는 것에 대한 강박적 두려움이 그들을 지배했던 것일까.

 

 

  마리 여사의 경험담은 ‘다름’에 대한 수용 가치를 역설하고 있다. 이국 먼 동유럽의 교육 방식과 문화는 일본의 그것과 다르며, 그들 유럽 각각의 역사나 민족의식 역시 고유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 다양성을 인정하는 일도 중요하고, 그것을 넘어 다른 것을 접한 뒤에야 자기 영역을 넓힐 수 있다고 보았다. 역사와 시대의식이 녹아 있는 그녀의 프라하 시절 추억담은 나와 타자를 둘러싼 삶의 여러 방식에 대한 지평을 넓히는 자극제가 되어준다.

 

 

 

   

4. 착하다는 것

 

 

  착한 사람은 사랑을 정의하기에 가장 적절한 유형이다. 왜냐면 착하다고 말할 때 그 대상은 자신이 아닌 타자를 향해 있기 때문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자기를 넘어서는 타자라는 대상이 있어야 사랑이란 말이 성립된다. 상대에 대한 이해나 관심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타자에게 수렴되지 못하는 일방적 감정은 욕망이고, 나를 향한 사랑, 즉 자기애는 한낱 이기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분명 사랑의 대상은 타자인데, 몹쓸 사랑의 속성은 욕망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제 인격적 호의를 타인에게 베푸는 행위가 몸에 밴 경우 우리는 ‘착하다’고 한다. 세상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허당인 사람, 현명한 사람, 착한 사람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주부인 친구 세 명이 시장엘 갔다 치자. 마침 늙은호박 세 덩이가 떨이로 나와 있다. 한 친구는 작은 애호박 하나가 덤으로 붙은 것을, 다른 친구는 눈썰미를 발휘해 알뜰살뜰 따진 것을, 마지막 친구는 두 친구가 고르고 난 남은 것을 선택한다. 차례대로 허당인 사람, 현명한 사람, 착한 사람으로 명명할 수 있겠다.

 

 

  애호박 덤이 붙은 호박을 산 친구는 그 속을 갈랐을 때 안이 다 썩어 있었다. 요모조모 따져가며 산 친구는 똑 소리 나는 살림꾼이긴 한데 인간미는 없다. 마지막 남은 것을 고른 이의 호박은 제일 작았겠지만 맘 만은 컸음에 틀림없다. 앞의 두 친구가 호박이라는 ‘물건’에 시선을 뒀다면 착한 친구는 타자라는 ‘관계’에 눈길을 줬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타자에게 선의의 시선이 먼저 가는 사람, 즉 착한 사람은 관계 지향적이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세상의 온도는 생각보다 따뜻하지 않다. 착함의 숭고함이 평가절하 되는 나날인 것을 착한 사람들조차 느끼는 것일까. 요즘엔 누군가에게 ‘착하다’고 말하면 그다지 반기는 것 같지가 않다. 착하다고 말하는 것이 결례일 정도로 ‘영리한 현명함’을 강요하는 사회를 우리는 살아가는 게 아닌지. 착하기보다는 현명하기를 학습시키는 사회가 바른 것인지 헛갈리기만 한다.

 

 

 

 

  5. 간헐적 단식

 

 

  인체의 신비는 어디까지일까. 한 방송에서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간헐적 단식’이란 생소한 방식을 전해주고 있다. 그간 서구에서는 다이어트나 건강 유지 방법으로 활용한 사례가 있다고 한다.

 

 

  간헐적 단식이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16~24시간 정도의 배고픈 상태를 지속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삼 시 세 때 규칙적인 식습관을 갖는 것이 건강의 척도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서구에서 시작된 이 새로운 식생활 패턴은 우리 몸의 건강을 좀 더 잘 유지시켜 줄 수 있음을 조심스레 증명하고 있다. 공복이 주는 식습관 메커니즘은 단순한 다이어트만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다. 당뇨병, 치매, 암 등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수명까지 연장할 수 있음을 실험으로 보여주고 있다. 임상에 있는 의사들을 상대로 검증한 바에 의하면 배가 고프면 장수 유전자가 활성화 되고, 손상된 세포를 치유하는 시스템도 가동되며, 노화 속도를 늦추는 호르몬이 분비된다는 것이다.

 

 

  인류의 식문화 역사를 더듬어보면 앞의 얘기들이 일견 타당하게 와닿는다. 유구한 인간 역사에서 먹을 것이 풍부했던 시기는 최근 백 년 남짓이란다. 우리 몸은 굶주린 상태에서 견딜 수 있도록 진화(?)되어 왔던 것이다. 이런 과학적 근거를 현대인에게 적용한 방법이 간헐적 단식인 셈이다. 하루 두 끼도 겨우 먹던 인류가 이제 과식과 투쟁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과식이 인체에 무해하다면 이런 상황까지 연출될 필요도 없다. 모든 현대질병의 원인 중 으뜸이 ‘너무 먹어서 탈’인 지경에 이르다 보니 이런 프로그램에까지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간헐적 단식의 과학적 실증 유무가 결론이 나기까지는 과학자들의 연구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이참에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팔랑귀를 가진 나 같은 이는 간헐적 단식을 시도해 봐도 좋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방식에 초연해도 되는 대부분의 건강한 신체를 지닌 사람들까지 이런 의견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는 것. 우리는 그간 쏟아지는 다이어트 비법과 건강법에 너무 자주 신체를 저당 잡혀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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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03-29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을 위해 간헐적 단식 그리고 걷기.....제가 실천하고 싶은 것 중 두가지입니다.
경주에서 만날때까지 2킬로만 빼야겠어요. 불끈^^ ㅎ
요네하라 마리는 저도 좋아하는 작가랍니다.

2013-03-31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9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학위 반납 보고 뭘 그리 호들갑이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하나의 대처법일 뿐.
제가 본 가장 악랄한 도둑은 블로그 1회부터 끝까지 전부 긁어서 자기 이름으로 올린 사람입니다. 대단하더군요....ㅎㅎㅎㅎㅎㅎㅎㅎ 이건 표절이 아니라 갑자기
보르헤스의 페이르 메나르'가 생각나서 웃은 기억이 납니다.

다크아이즈 2013-03-31 11:33   좋아요 0 | URL
누가 곰발님 이렇게 멋지구리한 글을 공개적으로 훔쳐갔나 봅니다.
탐나는 글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러면 안 되잖아요.
곰발님 불끈하셨겠는데요. 흐흐~~
덕분에 피에르 메나르를 검색해본다는.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13-03-30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문 표절 문제는 이번 사건으로 개선되었으면 좋겠어요.
진정한 이력서의 발견, 저도 공감합니다.
일일일식을 하더라도 쌀을 적게 먹으면 탈모가 된다고 하니 이 점을 주의해야 할 듯해요.

긴 글을 꼼꼼히 읽었습니다. 많이 배워 갑니다. ^^

다크아이즈 2013-03-31 11:34   좋아요 0 | URL
쌀 적게 먹고 싶어요. 대머리 걱정은 여자니(가 아니고 머리 숱이 많아서ㅋ)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밥 많이 먹고 운동 안 하니 살이 띠룩띠룩~~
날렵해지고 싶습니다. 페크님~~~ 절규 버전ㅋ

라로 2013-04-0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이화여대는 생각보다 허술한 면이 많다고 느껴져요,,,그건 다음에 만나서 얘기해 줄게요,,,
암튼 저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말씀하신 대로 표절이 다른 죄와 마찬가지로 나쁜 것이라고 배웠는데 여기선 여전히 표절이 도마에 오르니,,,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드네요,,,팜님의 글을 신문사로 보냈으면 좋겠어요!!

2013-04-07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삶이란 젠가 게임

 

      다 컸지만 우리집 아이 둘은 아직도 젠가jenga 게임을 즐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마련한 그 나무 블록은 모서리가 닳아 반들반들하다. 몇 번의 이사를 거쳤고 아이들은 다 자랐는데도, 버리기 좋아하는 내 손에 그 장난감이 살아남은 것을 보면 아이들이 젠가를 얼마나 아끼는지를 알 수 있다.

 

 

각자의 기숙사에서 돌아온 딸과 아들은 스마트 폰과 친구하기도 지겨운지 젠가 게임을 시작한다. 3개씩 18층으로 블록을 올린 뒤 맨 위층을 제외한 나머지 층의 블록을 하나씩 빼서 맨 위층에 다시 쌓아 올리는 놀이가 젠가이다. 블록을 제대로 빼지 못하거나, 제대로 쌓지 못해 탑을 무너뜨린 사람이 진다. 한 마디로 ‘잘 쌓은 것을 잘 지켜내야 하는’ 게임이다. 새로 쌓거나 덧대는 게 아니라, 아무리 빼고 쌓아도 18층 높이에 변화가 있는 건 아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라는 속담이 무색할 만큼 순간의 실수로 블록을 잘못 뽑거나, 뽑은 것을 쌓을 지점을 잘못 선택하면 탑은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우리 삶도 그러하다. 아무리 제대로 쌓아도 지키는 데 무신경하면 무너지기 십상이다. 무너지는 건 순간이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채우기에만 급급하다. 교양을 쌓고, 인맥을 넓히고, 지식을 거두며, 경력을 높이는 것이 삶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비거나 모자란 채로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조급해진다.

 

 

  하지만 실은 채우는 것보다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 위로 쌓고, 옆으로 넓히는 것 못지않게 본래적 심성이 갖고 있는 고유결을 지키고 재구성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잘 못 빼면 한 방에 무너지는 게 삶이기 때문이다. 보도에 의하면 한 방에 실수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행(失行)으로 추락하고, 실언과 실문(失文)으로 낭패를 당한다. 있는 것을 재배치하는 것보다 더 쌓으려는 욕심이 강하다 보니 실수 또한 잦게 된다. 쌓아온 자신만의 사명을 유지하고 성찰하는 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내가 가진 소박함의 품위,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을 젠가 게임에서 읽는 저녁이다.

 

 

 

 

2.자원봉사라구요?

 

  가끔 흥분지수가 높아질 때가 있다. 가령 뮤지컬 레미제라블 공연사의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 같은 것을 접했을 경우가 그렇다. 6개월간의 제작 현장 서포터를 구하는데 이력서는 기본에다 운전 가능자 우대란다. 주말 근무까지 하는데 처우는 교통비 지급, 식사 제공, 활동증명서 발급이 전부란다. 자원봉사자란 그럴듯한 계급 포장을 씌워 무급 노역자를 구하겠다는 심보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상업적 공연 예술이다. 영리 추구가 목표인 기획품이지, 문화생활에 소외된 자들을 위한 무료 공연 작품이 아니란 말이다. 상업적 활동에 자원봉사자를 구한다는 것 자체도 말이 되지 않지만, 스펙 쌓기나 꿈 이루기에 목말라하는 젊은이들의 심리를 업체의 이기심에 활용하려 했다는 점에 화가 난다. ‘활동 증명서’ 한 장과 신성한 노동을 맞바꾸기엔 너무 기운 계산법이질 않나.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엔딩곡이자 주제곡은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팔아서 돈을 벌기는 쉬워도 가난한 민중의 노랫가락을 들어주기는 어려운 이 아이러니! 하기야 노동을 착취당하고도 일정 부분 제 허영심을 충족시켜주는 부분이 있기에 사람들은 그 함정에 자발적 형식으로 빠져든다. 폭력적이고 기만적인 사회는 인간의 그런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하려 든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자원봉사’나 ‘재능기부’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절박한 사람들의 마음을 앗아가기 시작했다. 세상은 만만한 사람들에게 더 인색하고, 가진 쪽일수록 타인의 노동 가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나, 약자에 대한 연민이 없는 사회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기부나 봉사란 자발적이라야 의미가 있고, 가진 자가 소외된 자들을 향하는 것일 때 더욱 가치가 있다. 못 가지거나 덜 가진 자가, 다 가지거나 많이 가진 자에게 노력 봉사하는 건 노예 생활이지 자원봉사가 아니다. 일상생활에 허덕이는 자들이 봉사나 기부에 동요되는 사회는 건강하다고는 할 수 없다.

 

 

 

 

 

3. 마트로시카 속의 비결

 

  외적 인격 즉 페르소나의 긍정성을 나는 옹호한다. 천성이 곱고 바른 사람들이야 겉과 속이 같으니 가면 쓸 일도 별로 없다. 하지만 오감이 발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상황에 따라 적당한 가면을 쓰게 되어 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다. 내면의 성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면 그건 잘못 없는 타인에게 무례한 일이고, 결국 자신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학부모 모임에서 여중생 딸의 고민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하소연을 들었다. 유독 한 아이가 ‘교복 치마를 왜 그렇게 길게 입어? 필기는 왜 그렇게 꼼꼼하게 해? 체육 시간에 뛰는 모습 진짜 웃겼어.’ 이런 말로 딸에게 스트레스를 준단다. 누가 봐도 흠 잡을 데 없는 모범생에 대한 시샘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유행하는 신조어 중에 ‘중2병’이라는 게 있다. 사춘기 또래가 지닐 수 있는 심리 상태의 한 유형인데, 한마디로 괜한 허세를 부리는 것을 빗대는 말이다. 그것은 나보다 잘 난 것에 대한 시샘과 피해의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위악과 허영심을 동반한다. 한데 그 중2병은 한 때로 끝나지 않고 성인에게도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두 친구가 각자 회사를 차렸지만 하나는 승승장구하고 다른 한 친구는 문을 닫았다. 실패한 친구가 찾아가 성공 비결을 물었다. 친구는 러시아 목각 인형인 마트로시카를 건네주었다. 그 안에 답이 있다고 했다. 믿는 둥 마는 둥 차례로 다섯 개의 작은 인형을 꺼냈고 가장 작은 마지막 인형 안에서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내가 성공한 이유는 항상 나보다 큰 사람을 곁에 뒀기 때문이야.’

 

 

  제 그릇 작은 줄은 모르고 타인의 멀쩡한 그릇을 탓하는 건 중2병만도 못하다. 나보다 큰 사람은 도처에 널렸다. 어딜 가나 그 큰 사람들을 눈여겨보고 곁에 두려는 노력만으로도 일상은 풍성해진다. 마트로시카 다섯 개 인형이 뚜껑을 열수록 점점 작아지고, 가장 작은 것 안에 답이 있는 건 제 그릇 크기를 항상 되새기라는 깊은 뜻이 숨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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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3-03-23 0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저 마트로시카를 친구에게 건네준 사람의 이야기, 그러니까 그런 형식을 취한 아포리즘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껴요. 저런 생각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역시 경험 덕이겠구나, 하면서요.
전 젠가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 살벌한 긴장감을 견디기 힘들달까요. 저는 게임 자체를 원체 좋아하지도 않고 잘 하지도 못하는 편이라, 아마 심장이 약해서 일지도. 친구들이 들으면 파안대소할 말이네요.
활동증명서, 자원봉사증 하나에 목숨걸게 만드는 사회가... 참 박할 뿐이지요 ㅠㅠ

다크아이즈 2013-03-24 06:57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이진님, 누가 이진님 젊은 재능을 이용해서 봉사하거나 기부하라고 하면 저얼대 속아 넘어가지 마세요. 단, 진짜로 봉사가 필요한 곳엔 예외구요.^^*

저도 젠가 아니라 모든 게임을 안 좋아한답니다. 가끔씩 화투는. 흐흐~~

appletreeje 2013-03-23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트로시카, 좋아해요~~*^^
팜므님의 좋은 글,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다크아이즈 2013-03-24 06:58   좋아요 0 | URL
나무늘보님. 반갑습니다.
러시아 갈 수 있다면 딴 건 몰라도 오리지널 마트로시카를
공수해 오고 싶어요. 요원하겠지만. ^^*

세실 2013-03-23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가족도 주말이면 젠가를 꺼내놓고 하나씩 빼내기를 합니다.
어느 정도의 성공후엔 하나씩 비워내기 해도 좋을듯 합니다. 그동안 놓치고 산 것들.....
가끔 젠가로 도미노 게임을 즐기기도 하는데, 하나라도 잘 못 세워 놓으면 딱 멈춤! 요거에서도 인생이 보여요. ㅎㅎ

주말이면 인근 고등학교 학사반 아이들이 도서관에 봉사하러 오는데, 가끔 그런 생각 합니다. 과연 이 아이들은 책을 정리하면서 책에 관심을 가질까? 그냥 시간 떼우기는 아닐까? 좀 더 도움이 될수 있도록 챙겨야 겠습니다.

다크아이즈 2013-03-24 07:00   좋아요 0 | URL
세실 님도 젠가 좋아하시는군요.
전 아이들이 하자 해도 별 재미를 못 느껴 구경꾼 노릇이나 한답니다.
남푠은 낑길 때가 있구요.

봉사하러 오는 학생들, 책 보다는 당근 시간 떼우기겠죠.
그 중 한두 명은 진짜 책벌레일거구. 둘 다 유의미한 활동이라고 생각해야
우리 맘이 편할 것 같아요.^^*

blanca 2013-03-23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젠가 지름신을 부르시는군요. 가족과 함께 하기도 좋을 것 같아요. 중2병. 아직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아이 두고 나중에 내가 사춘기 아이를 잘 컨트롤할 수 있을까, 싶어 한숨이 나오곤 해요. 시기, 질투. 이 감정이 인간의 핵심적인 감정은 아니라도 한 인간이 어처구니없는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맞는 것 같아요.

다크아이즈 2013-03-24 07:05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아이 아직 어리니 젠가 마련해보시어요.
평생 장난감이 될 수 있어요. 남녀노소 다 즐길 수 있는...
단, 다이어트는 잠시 미루시는 게.
야심한 밤, 피자나 통닭 내기 게임으론 쥑여줍니다.^^*

블랑카님이라면 현명하게 아이를 잘 키우실거예요. 넘 앞서가지 마시어요.^^*
어처구니없는 발언, 제 안의 저를 억누르지 못할 때 그런 뻘짓 잘해요.
자중 또 자중해도 순간적으로...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3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늘 당연시하는 것 중 이상한 것 하나가 재능 기부'입니다. 보면 잇속은 전부 기업들이 가지더라고요. 재능 기부 한다는 것으로 기업 이미지 광고 왕창 하고서는 한다는 짓이 재능 기부예요. 텔런트들 재능 기부야 그렇다고 쳐도 보면 늘 허기진 예술 노동자들도 재능기부로 엮어서 강요합니다. 예술 노동자들에게는 오히려 품삯을 줘야 되는 현실 아닌가요 ? 하여튼 좀 웃긴 놈들이에요...

다크아이즈 2013-03-24 07:08   좋아요 0 | URL
글치요, 곰발님^^*
잇속 챙기는 일에 자원봉사나 재능 기부라뇨?
기업을 위한 재능기부라면 저도 사양입니다.
특히, 허기진 예술 노동자의 일말의 허영심을 이용하는 기부라면 더더욱이요.
품삯 없는 노동에도 예술인들이 휘둘리는 건
자존과 허영의 경계에 그들의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Shining 2013-03-26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님!(저 확정지었어요?^^) 이렇게 좋은 글을 쓰시면서 겸손하시기까지 한 팜님!
고매하다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하하). 환영해주셔서 감사해요, 댓글을 많이 안 남겨서 그렇지(무슨 말을 써야할지 모르겠는 글도 많고, 제가 낯을 좀 가려요^^;) 자주 방문한답니다! 앞으론 더 자주 오고 댓글도 많이 남길게요 :)

다크아이즈 2013-03-29 16:39   좋아요 0 | URL
샤이닝님 저야 팜님이라 불러주시면 영광이죠. 친근해 보이잖아요.
저도 은근 낯 가리기 때문에 샤이닝님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는 걸요.
댓글 안 남기셔도 좋아요. 샤이닝님 좋은 글 덕에 설렐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저야 영광인걸요.(물론 댓글 방문도 해주시면 더한 영광인 것은 사실, 헤헤~~~) 봄날 샤이닝님답게 블링블링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