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 우리는 '텃밭'이란 제목으로  쓴 누군가의 글을 합평했다. 평소 글을 잘 쓰시는 분이라 글 자체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조언을 할 만한 것은 크게 없었다. 오히려 좋은 글 덕에 농사 관련 단어 몇 개를 확실하게 알게 되어서 개인적으로 도움이 된 날이었다. 회원 중에는 짬짬이 농사를 짓는 분도 있었고, 글쓴이처럼 막 텃밭을 일구는데 재미를 붙이는 이도 있었고, 나처럼 밭고랑 제대로 밟아 본 적 없는 이도 있었다. 농사의 나라 후예답게 우리말은 과히 농사 관련 용어들이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산업사회를 지나 첨단 글로벌 사회를 지향하는 지금에 와서 그것들을 제대로 알기란 쉽지 않다.

 

 

  처음 궁금증의 도마에 오른 말이 ‘사래’였다. 남구만의 그 유명한 시조에 나오는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냐’ 할 때 나오는 그 말. 모두 앉은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한다. ‘이랑의 길이’나 ‘이랑의 옛말’로 그 가닥이 잡힌다. 사전의 예문에서도 ‘사래 긴 밭’이란 관용구가 나오는 걸로 보아 ‘사래’는 이랑이 좀 길 때 활용할 수 있는 낱말이란 걸 알겠다. 이랑이 길지 않다면 ‘두둑’이란 말이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누군가 자연스럽게 ‘이랑’과 ‘고랑’에 대해 알아보자고 한다. 차고 넘치도록 들어온 말이지만 개인적으로 개념이 확실히 잡히지 않던 용어였다. 잘됐다 싶었다. 이랑은 ‘고랑 사이에 흙을 높게 올려서 만든 두둑한 곳, 두둑’을 일컫는 말이다. 고랑은 ‘두둑한 땅과 땅 사이에 길고 좁게 들어간 곳으로, 이랑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그제야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해풍에 일렁이던 보리밭에도, 무서리 맞으며 단단해지던 배추밭에도 이랑과 고랑이 있었다. 다만 농사를 모르니 한 번도 의식해본 적이 없었을 뿐. 배수와 통풍의 길인 고랑이 없다면 씨앗과 열매의 길인 이랑도 보장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농사라면 고랑 없는 이랑도, 이랑 없는 고랑도 없다. 둘이 맞물려야 수확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처한 상황이 고랑이라고 의기소침할 일도, 이랑이라고 의기양양할 일도 아니다. 이듬해 이른 봄, 밭갈이 한 번이면 지난 이랑과 고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오히려 그 둘의 운명은 바뀔 확률이 높다. 그리하여 현명한 조상들은 이런 속담을 남기지 않았던가. ‘고랑도 이랑 될 날 있다’라고. ‘이랑이 고랑 되고, 고랑이 이랑 된다’고.

 

  이 한 밤, 이랑 드높이기 위해 제 운명의 고랑에서 호미질 가열차게 하고 있을 모든이에게 메리크리스마스!

 

 

 

 

**태그의 '글로 쓰지 않은 좋은 것이 내게는 없다'(106쪽)

   황인숙 시인이 한 말인데, 이 글 출처인 김도언의 이 책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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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2-25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님, 해피크리스마스 보내시고 계신가요? 우리들 마음에 늘 평강이 가득하길 빌어봅니다. 이 페이퍼는 나중 다시 잘 읽을게요. ^^

프레이야 2012-12-25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만사 새옹지마, 전화위복 이런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닌가 봐요. 고랑이라고 섣불리 기뻐하지도 이랑 이라고 쉽사리 슬퍼하지도 말아야겠지요. 작은 사람은 작은 일에 기뻐하고 흡족해한다고 하더군요. 마음속 중심 잘 잡고 살아야겠다 다짐해봅니다. 팜님 좋은글 고마워요~~♥

다크아이즈 2012-12-26 01:41   좋아요 0 | URL
프레님,맞아요. 새옹지마,이랑고랑~~이지요.
프레님도 새해 잘 맞이하시고, 건강 조심하시고, 여전히 빛나는 삶도 꾸려가시고... 어여쁘고, 글 잘쓰시고, 맘 드넓은 님을 알게 되어서 고마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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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꽃 중에 ‘데이지’가 있다. 색깔별로 키우던 데이지를 누군가의 창문 앞에 놓아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까만 플라스틱 모종 화분에 담긴 싸고 깔끔한 데이지꽃을 구경하기 위해 봄이면 화원 근처를 서성이곤 했다. 단 한 번도 누군가의 창문 앞에 놓인 적 없는 나만의 데이지였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환상을 유지함으로써 실체를 맛보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 데이지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다시 못다한 혼자만의 데이지꽃 이야기를 만들어본다. 저 먼 언덕에 파수꾼이 있다. J·D 샐린저의 소설에서처럼 피비 같은 어린아이들이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도록 호밀밭 주변을 감시하는 파수꾼. 호밀밭 가장자리엔 데이지꽃 만발하겠지. 어린아이는 언제나 언덕을 향해 비행기를 날리곤 했어. 그런 뒤엔 해풍 부는 언덕을 향해 머릿결을 쓸어 올리거나, 덧니가 드러나도록 순진무구한 미소를 날리곤 했지. 파수꾼은 행복했지.

 

 

  어느 날 지천으로 피어난 데이지꽃을 뜯어 꽃다발을 만들고선 언덕 아래로 내려와 어린아이에게 건넸지. 꺾인 데이지꽃을 보고 어린아이는 파랗게 질려 울음을 터뜨렸지. 어린아이가 종이비행기를 날린 대상은 파수꾼이 아니었어. 낭떠러지 가장자리에 아득히 피어난 데이지꽃이 바람에 일렁일 때마다 그 잔물결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 위로 비행기라도 날려 응원하고픈 맘 뿐이었어. 하지만 파수꾼은 어린아이의 작은 몸짓, 환한 미소가 자신을 향했던 거라고 착각했던 거지.

 

 

  언제나 환상과 실체의 경계에서 우리 삶은 진행된다. 그 둘은 눈곱만큼 정도의 교집합도 이루지 않을 때에만 서로의 존재 가치가 인정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환상은 언젠가는 실체라는 자명한 괴물 앞에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 너머 어떤 것'은 내 식으로 존재해 줄 때만 우리는 믿음이란 활력소를 얻는다.

 

 

  데이지꽃이라면 저 먼 언덕 끝에서 바람에 살랑일 때 가장 아름답고, 종이비행기를 날린 뒤 머리칼 사이로 스미는 손과 천진한 미소는 파수꾼 자신을 향한 것일 때 가장 행복하다. 데이지꽃이 꺾여 꽃다발로 다가오고, 어린아이의 손짓과 미소가 파수꾼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때 우리는 환상에서 깨어나게 된다.

 

 

  착각에 빠져 있으면 미욱한 일상이 따르고, 실체에 놀라면 피폐해진 영혼이 날을 세운다. 환상과 실체, 착각과 현상 그 경계를 넘나드느라 까진 무릎의 생채기가 오늘 따라 도드라져 보인다. 그래도 절망하지 않으련다. 데이지꽃이 전하는 말은 ‘희망과 평화’란 걸 억지로 기억해야 하는 뇌가 있으니.

 

 

 

  선거는 끝났고, 어쩔 수 없이 나는 허무주의자로 돌아갈 뿐이다.

  쇠고기 사무면 뭐하겠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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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12-21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킹메이커]라는 영화가 있었어요.
정치에 대한 환상을 품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유는 팜님도 아실거에요.

데이지하면 개츠비 맞네요!!!ㅎㅎㅎ
덕분에 기분이 좀 풀렸어요.^^
오늘은 외동지라네요. 꼭 팥죽을 안 먹어도 되는 날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런것도 몰랐어요.ㅎㅎㅎ

프레이야 2012-12-21 21:20   좋아요 0 | URL
나비님, 외동지는 뭐래요? 전 팥죽 못(안) 먹었는데
그럼 안 먹어도 서운해할 필요 없는 거에요? ㅎㅎ

다크아이즈 2012-12-23 00:42   좋아요 0 | URL
나비님, 바쁘실텐데 들르셨네요. 감사할 뿐. 팥죽 드셨나요?
전 식당에서 전식으로 나온 걸 먹었어요. 굉장히 맛났지요.
나비님, 데이지하면 개츠비, 프레님 데이지는 나빠요, 나빠2!

나비님 말씀은 애동지가 아닐까 싶어요. - 동짓달 초순에 든 동지를 일컫는 말. 동지는 양력 12월 21일 또는 22일로 그 날짜가 고정되어 있지만 음력 날짜는 유동적이다. 동지는 보통 음력 동짓달에 드는데 음력으로 동지가 동짓달 초순에 들면 애동지[兒冬至]라 하고, 동짓달 중순에 들면 중동지(中冬至)라 하며, 동짓달 하순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라고 한다. (네이버)


라로 2012-12-24 02:57   좋아요 0 | URL
애동지군요!!ㅎㅎㅎ
그날 찬모님께 오늘이 동지니까 팥죽을 먹어야 하는데,,라고 궁시렁거렸더니 혀가 짧으신 찬모님께서 '애동지'라고 발음하셨는데 혀가 짧으시니 외동지를 애동지로 발음하시는 줄 알았어요. ^^;; 저에게 설명하시길 음력 15일 이전의 동지는 외동지고 그 후는 짝동지라고 하시더라구요. 팜님께서 네이버까지 찾아주시니 이제 동지에 대해서 실수는 안 할것 같아요,,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12-12-21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님, 쇠고기 사무면 머하겠노! ㅎㅎㅎ
데이지꽃은 참 예쁘군요.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리..
개츠비의 데이지는 나빠요, 나빠.ㅋ

다크아이즈 2012-12-23 00:25   좋아요 0 | URL
프레님, 쇠고기 사무면 머하겠노, 기분 조켔제, 조으면 머하겠노,
쇠고기 사묵겠제.... 에휴~~~ 비겁한 허무주의자가 되렵니다.
데이지가 좀 단정하고 깔끔해요.

사람은 단정하고 깔끔한 사람도 좋지만, 너절하고 털털한 사람은 더 좋아요. 꽃이 너절하거나 털털하면 꽃답지 않을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요. ㅋ

프레이야 2012-12-23 10:56   좋아요 0 | URL
세가지 동지 잘 알게됐어요. ^^
너절한 꽃이라면 반쯤 시들어 꽃잎도 후줄근하게 떨어진 국화? ㅎㅎ ㅎ
행복한 일요일 보내세요 팜님, 무조건 위로의 하트 보냅니다~~♥♥
 

 

 

 

  매일 짧은 생각 하나씩을 글로 옮긴다는 게 쉽지는 않다. 공사다망하여 자정이 넘어 귀가하는 오늘 같은 날에는 더 막막하다. 귀가길 차안에서도 글감들만 궁리한다. 선거일이니 대선에 관해 쓸까, 아들 학교 축제에 대한 소회를 쓸까, 아니면 낮에 토론한 ‘솔직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쓸까, 여러 갈래로 생각이 뻗친다.

 

 

  이런 내 맘을 읽었는지 옆자리의 딸내미가 말한다. ‘휴학’에 대해서 한 번 써보란다.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딸내미와 입씨름 한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친구들 대부분이 스펙을 쌓기 위해, 대학 졸업하기 전에 한 번 이상은 휴학을 한다나. 자신도 그러고 싶다는 우회적 표현임을 금세 알아차리겠다. 딸내미에게 고리타분한 기성세대로 비치는 걸 원치 않지만 이럴 땐 나도 어쩔 수 없다. 학교를 쉬어가면서까지 그럴 필요가 있냐고 반문하는 순간, 이미 딸내미의 표정은 ‘세상 물정 모르는 엄마’라고 말하고 있다.

 

 (딸내미는 딱히 취업 때문에 휴학해야 할 이유는 없다. 토익도 그 업종 기준점을  지나 900은 가벼이 넘겼고, 어학연수는 갔다 오면 좋겠지만 안 간다고 취업에 불리할 것도 없는 전공이다. 학점 관리나 잘하지 그건 신경 안 쓰고 엉뚱한 휴학 드립이다.  보아하니 취업 순간을 늦추고 싶어한다. 산업 현장에 빨리 나가면 청춘이 억울하다나. 내가 청춘일 때는 빨리 졸업하고 취업하고 싶었다! 한 세대 차이일 뿐인데, 우리는 확연히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어쩌랴, 우리세대의 업보인 것을.) 

 

 

  어학연수, 인턴, 봉사활동 등 스펙 쌓기란 이유로 대학가의 휴학은 일종의 유행처럼 되어가고 있다. 취업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유예시키고, 공부 압박을 느끼는 청춘을 잠시라도 놓아주고 싶은 욕구 때문에 그렇단다. 대학생이란 신분이 주는 암묵적 보호 그늘을 조금이라도 늘여 사회로 진출하는 시간을 그만큼 미루고 싶어 한다. 취업하기 어려운 이유가 가장 크겠고,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세대라 전반적으로 자신의 물질적, 정신적 성장 속도를 인위적으로 늦추려 하는 점도 없지 않다. 

 

 

  상대적으로 덜 여문 이십대를 양산한 책임은 기성세대에게 있다. 학력․학점․토익점수․어학연수․자격증 등으로 청춘을 줄 세우는 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최대한 줄을 늦게 서는 걸로 저항하는 수밖에 없다. 스펙은 이 땅을 사는 청춘들이 안아야 할 커다란 부담이다. 기기나 시스템의 성능 제반을 말할 때 씀직한 스펙이란 말이 인간에게도 접목되는 걸 보니 참으로 비인간적이라는 생각만 든다. 인간 상세 설명서를 메우기 위해 오늘도 동분서주하며, 더러 휴학까지 생각하는 청춘들에게 뾰족한 답을 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기계적인 이력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창의적인 사고를 실현하기 위한 휴학이라면 백만 번이라도 좋으련만.

 

  어미로서 할 수 있는 말이란 게 고작, 휴학은 안 돼, 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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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2-19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큰애도 내년에 휴학을 한다고 해서 헐~, 하고 놀랐답니다.
스펙을 위해 또 에너지 충전을 위해서라나요. 말릴 수도 없고...

이렇게 소재를 정하고 나면 척~ 하고 쉽게 글을 뽑아내시는 팜 님을 우러러 봅니다.
저는 여유롭게 글을 쓸 시간도 없는데, 게다가 순발력마저 없으니 말이죠.
오늘도 투표하고 친정에 가니 글 쓰기는 틀렸네요. 끄응~~
그래도 팜 님으로부터 힘을 얻어 내일은 꼭 글을 써야징, 하고 있어요.ㅋㅋ

다크아이즈 2012-12-20 02:52   좋아요 0 | URL
페크님은 휴학 허락해주실 것 같은 분위기.
당위성이 있으면 휴학하는 게 옳아요. 하지만 청춘이 억울하다는 이유로 휴학한다고 그 누명이 쉽게 벗겨지간디요?
모든 생은 다소간 억울한 거잖아요. 그렇다고 동조해주시는 거지요? ^^*

프레이야 2012-12-19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ᆢ그렇군요. 전 신입생을 둔 엄마로서 처음 들어본 추세에요. 제가 정보에 좀 어두워요. 휴학 이유가 씁쓸하군요. 에효ㅠ

다크아이즈 2012-12-20 02:53   좋아요 0 | URL
야무진 프레님 따님은 그럴 일 없을 거예요.
그래도 혹 4학년을 앞두고 그런 말 하거들랑,
청춘이 억울한가 보다, 하고 이해해주시어요. 크~

이지연 2013-02-04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대학교 3학년을 앞두고 있는데요. 휴학을 하고 문학스터디를 1년간 해보고싶은데 부모님께서 휴학은 절대안된다고 반대하시네요ㅜㅜ 그냥 학교다니면서 혼자 글쓰는 것으로 보낼까요?

다크아이즈 2013-02-06 11:05   좋아요 0 | URL
지연님, 필요에 의한 휴학은 강추이지만 문학스터디 때문이라면 굳이 휴학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열정만 있다면 학기 중에도 문학스터디를 충분히 이끌어 갈 수 있잖아요. 그리고 문학은 근본적으로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게 더 옳은 답이지, 스터디가 완전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는 보지 않아요. 참고하시고 현명한 판단하시어요.
이 서재에서 지연님을 자주 뵙기를...
 

 

 

  나쁜 버릇인지 좋은 버릇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책을 읽을 때 여성적 시각을 좀체 버리지 못한다. 대부분의 고전이 남성적 시각을 견지하는지라 여성이 등장하더라도 제대로 자신의 자리를 꿰차거나 변변한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사라지는 게 그토록 안타까울 수가 없다. 아무래도 여성이라는 자부심보다 여성으로 살아야 하는 피해의식이 내 의식 속에 더 크게 자리잡고 있음이 틀림없다.

 

 

  요즘 다산 정약용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데 드디어 그토록 기다렸던 홍임 모녀가 등장한다. 다산과 헤어진 홍임엄마는 베 짜기와 바느질에 제대로 손댈 수 없다. 등불 돋워 밤 꼴딱 새우기 일쑤다. 옷도 그대로 입은 채, 닭 울음 그치고서야 벽에 기대 혼자서 신음한다. 옆의 어린 홍임은 늙은 아비인 다산이 보고 싶어 보채다 곤히 잠들었을 것이다.

 

 

  다산은 강진 유배 생활 말년에 소실을 들인다. 계약된 하인이 있긴 했지만 원체 게을러서 다산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다. 해약된 하인을 대신해 제자 윤규노의 강권으로 수발 들 여자를 들인다. 안정된 저술 활동과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도 안살림을 꾸려나갈 여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처음에 다산은 거절했지만 유학자이기 이전에 한 남자로서 여자가 필요한 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1812년을 전후하여 남당포에서 온 여자와 함께 살았고 그때 낳은 아이가 홍임이었다. 1818년 해배되어 남양주의 마재로 돌아갈 때 홍임모녀도 데리고 갔다. 하지만 다산의 아내 홍씨에겐 눈엣가시였을 수밖에 없다. 일찍이 자신이 입던 치마를 유배지에 보내 다산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가족의 유대를 공고히 했던 안주인이 아니었던가. 다산의 말대로 ‘아무 문제가 없지만 속이 좁은 것이 문제’인 홍씨에 의해 내침을 당하고 홍임 모녀는 강진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그 후 모녀의 지난한 삶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미루어 짐작컨대 평탄하지 않은 건 자명한 사실이렷다.

 

 

  이와 같은 얘기가 담긴 시가 바로 ‘남당사 16수’이다. 남당포에서 온 여인의 애상을 읊은 시라 그런 제목이 붙었을 것이다. 남당사가 발견되었을 때 연구자는 이 시를 강진의 어느 양반이 홍임 엄마를 대변해서 썼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삶을 바꾼 만남』에서 저자 정민 교수는 이 시를 다산 본인이 썼다고 보고 있다. 책을 읽은 독자들 대부분은 이 의견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당사자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 시편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홍임엄마가 되어 본다. 눈물로 얼룩져 화장은 엉망이 되고, 그리움에 진저리치다 보니 비녀마저 떨어져 있다. 남 볼까 겁난다. 웃다가 찡그리다 혼자 발광을 하다보면 어느새 다정한 낭군이 꿈속에나마 반쪽 침상을 찾아든다. 이런 서정적이고 은밀한 시를 쓰면서 다산은 소실과 자식을 제대로 건사할 수 없는 자로서의 죄책감을 남몰래 쓸어내렸는지도 모른다. 다산의 우유부단한 자책과 남당포 여인의 한이 독자의 어깨에 무거운 침묵으로 내려 앉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다산의 운명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데바람에 오래 떤 여성의 시각으로 보면 다산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카리스마 없이 고뇌만 안은 다산 곁에서 부인 홍씨는 왜 오랜 세월 기다린 보람도 없이 가위눌린 부담을 안아야 할 것이며, 홍임모 역시 무슨 처연한 연으로 그토록 모진 칼바람을 견뎌야만 했을 것인가.

 

  여성의 시각에서 다산을 둘러싼 일상사를 엮는다면 어떠할까. 깊은 우물 속 두레박을 내려도 물 한 모금 얻을 수 없는, 차마 처연한 마른 슬픔만 자꾸 길어 올리느라 제대로 구성조차 짜지 못할 게 뻔하다. 한 남자 때문에, 한 세월 때문에 슬픔의 두레박만 깊이깊이 내렸을 세 여자의 우물을 그려본다. 햇발도 머물지 않고 바람도 건너지 않는 그 우물, 무연하고 깊기만 하다.

 

  할 수 없이 나는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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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12-18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ㅠㅠ

다크아이즈 2012-12-19 04:16   좋아요 0 | URL
나비님도 여자라는 걸 항상 자각한다는 뜻으로 해석할게요. ㅋ^^*

페크pek0501 2012-12-19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란 없단 생각이 듭니다.
또 모든 면에서 훌륭한 사람도 없단 생각이고요.
그래서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점도 있는 걸까요. ^^

다크아이즈 2012-12-20 02:55   좋아요 0 | URL
페크님, 글치요. 전 이런 인간적인 다산이 좋은 걸요.
약간의 원망을 섞어, 그의 아주 많은 위대함과 약간의 속물근성을 신기하게 즐감하는 중이예요.

프레이야 2012-12-19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각자의 우물을 품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외로울 수밖에 없고요. 그 우물에 얼굴 한번 비춰봅니다. 어릴적 굉장히 인상적으로 새겨져 있는 우물. 그게 저같기도 해요. 팜님 저도 여자에요, 어쩔 수 없이. 이 책도 더 미루지못할 것 같아요. 팜님의 페이퍼는 지름신을 강림하게 해요, 제게요. ^^

다크아이즈 2012-12-20 02:57   좋아요 0 | URL
프레님, 이 책은 진짜 좋아요.
정민 선생의 부지런한 학자적 자세가 존경스러울 뿐.
제법 두꺼운데 금세 읽고 싶어진다니까요.
 

 

 

 

 

 

 

 

 

 

 

 

 

 

 

 

  왜 가볍게 스치는 바람에도 아린 피멍을 느낄까. 왜 덤덤하기만 한 저 가방이 무거운 짐으로 다가올까. 왜 노래하는 저 파도가 내겐 울음 섞인 아우성으로 비칠까. 세상사 맘먹기 달렸다고? 그러니 뭐든지 담대하게 툭 털어버리라고? 그런 건 무책임한 말을 뱉고도 좋은 말을 했다는 뿌듯함을 얻고 싶은 자의 립 서비스일 뿐, 실제 소심하고 예민한 소시민인 우리는 그런 충고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언제나 내가 처한 상황이 제일 힘겹고, 내가 당한 일들이 가장 분노할만하다고 단정 짓는다. 모든 것을 내 식으로 침소봉대한다. 자학하거나 피해를 자청함으로서 자기위안을 얻으려한다.

 

 

  우리 일상은 두루마리 휴지 풀리듯 술술 풀리는 게 아니다. 실크 블라우스에 붙은 껌 딱지를 떼 내는 것처럼 성가시고 힘들 때가 더 잦다. 살아갈수록 금세 해결되는 일보다는 뭉근한 시간을 요하는 게 훨씬 많다. 이미 이어온 날들은 불만족스럽기만 하고, 앞으로 이을 날들 역시 두렵기만 하다. 산다는 것 자체가 망설임과 회한의 날들의 기록이다.

 

 

  이런 이야기가 기억난다. 그다지 가난하지 않은 시골청년이 부모를 여의자 서울로 돈 벌기 위해 떠나기로 한다. 고향을 떠나 본 적 없는 청년은 앞일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이장에게 찾아가 덕담을 부탁한다. 그때 서예 연습을 하던 이장이 한 마디를 써준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비결은 단 두 마디면 충분하다고 말해준다. 나머지 한 마디는 다음에 알려주겠다고 한다. 세월이 흐른 뒤 그는 서울에서 성공했고, 여유도 얻었다. 하지만 그 자신이 원하던 모습은 아니었다. 걱정과 회한만 쌓여갔다. 결국 30년 전에 찾아갔던 이장을 다시 찾아갔다. 하지만 이장은 벌써 세상을 뜨고 가족 중 누군가가 청년에게 남긴 편지를 전해주었다. 조심스레 봉투를 뜯었다. 그 안에는 이장이 예전에 약속했던 나머지 한 마디 덕담이 쓰여 있었다. ‘후회하지 마라.’ 이미 중년이 되어버린 청년은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두려워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기. 이 두 마디만 새겨도 덜 피곤한 삶이 펼쳐진단다. 하지만 여린 바람에도 잿빛 피멍을 느끼고, 무던한 가방이 무거운 짐으로 다가오고, 발랄한 파도가 울음 섞인 아우성으로 비치는 날들이 쉬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저 짧은 두 마디는 여전히 실천하기 어려운 말씀일 뿐이다. 두려워 망설이고, 건너고선 후회하는 게 인생의 강물 아니던가. 그래도 삶이란 동네엔 이장의 저런 덕담이 필요한 거다. 상처 많은 인간을 위한 덕담의 효용은 실천에 있는 게 아니라 위무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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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2-17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님, 포스팅 시간 보니 헉..
그 시간이 일어나신 거에요, 그 시간까지 깨어있었던 거에요?
저 위의 책 중 한 권 담아갑니다.^^
마지막 세 문장도 다시 읽구요. 좋은 말이 그래서 필요한 건가 싶어요.
오늘하루도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시기 바래요*^^*

다크아이즈 2012-12-18 00:00   좋아요 0 | URL
낮에 푸지게 자고(초저녁에는 푸짐하게 자고 ㅋ), 자정 쯤에 일어나 혼자놀기합니다. 아침에 잠자리에 들어 언 발로 남푠 허벅지를 도발해 마구 깨웁니다.^^*
프레님, 뭐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된 생활 패턴이지요? 어이하리이까?

근데 책 내용과 제 단상은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단상이 허전할까 아무 거나 클릭한 거니 프레님은 책 선정에 신중을 가하셔야 하옵니다.^^*

라로 2012-12-18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담은 위로를 위해 있는 거군요!! 올려주신 이장님의 덕담은 제게도 위로가 되는군요. 특히나 요즘처럼 딜레마에 빠져 있는 저에겐 말이죠,,,제가 팜님의 글을 찾아서 읽는 이유 중 하나도 거기에 있어요. 저에게 무척 도움이 된다는!!! 복 많이 받으실거에요~~~.ㅎㅎㅎ^^;;

저도 가끔 혼자 밤에 서재에서 놀다가 차가운 발로 남편을 깨운 적 있는데,,,것도 막 잠이 든 남편을,,,팜님은 양반이십니다!!힛

다크아이즈 2012-12-19 04:21   좋아요 0 | URL
나비님, 실제 그런 건진 저도 몰라요.
그냥 모든 덕담은 위로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오늘도 본의 아니게, 새벽에 남푠 언발로 치대기 돌입해야 하네요.ㅠ
나비님도 그렇다니 우린 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