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한 장 저 먼 강을 건넜다. 아직 한창 피워도 좋을 꽃잎이었다. 강 건넜다는 그 꽃잎 소식에 가만 속울음만 내었다. 저 먼 강을 아주 건너기 전, 그 꽃잎의 숙명은 마을마다 웃음꽃을 전파하는 일이었다. 웃음보란 깃발을 단 나룻배가 강어귀마다 정박할 때 많은 들꽃들은 그 꽃잎이 오늘은 무슨 웃음보따리를 내려놓고 갈까 호기심서린 꽃밭을 만들곤 했다. 단 한 번도 잘 웃지 않던 꽃들도 그 꽃잎이 머무는 동안엔 콧잔등에 실팍한 주름 하나 불린 채 어금니가 보이도록 입술꼬리를 눈쪽으로 올리곤 했다. 모두 꽃잎 한 장이 뿜어내는 웃음 바이러스에 감염된 덕이었다. 그 꽃잎 이름은 황수관이다.

 

 

  오늘 한 방송에서 황수관 박사의 특집 추모 강연을 보여주었다. 웃기 위해 천만 번쯤은 노력했을 안면 근육이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는데 이제 더 이상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신바람 지수가 높아지면 가끔씩 호흡이 달리는 소리가 났지만, 그 것조차 물에 젖은 토란잎 같은 목소리가 되어 시청자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는 느낌이었다. 에너지, 정신력, 활기, 유머, 해학, 진솔함 그 어떤 것도 빠지지 않고 사람들의 감성 밑바닥을 두레박질해주던 분이라 보는 내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평소처럼 웃다울다 하다 보니 특집 방송은 끝나고 있었다.

 

 

  오해를 세 번만 생각하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를 두 번만 하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심오한 철학을 주는 강연이 아니라 생활 속의 발견을 할 수 있는 이런 강연이 평범하고 지쳐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겐 무척 도움이 된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컴맹인 나는 사진 한 장을 올리려고 해도 어려워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식구들에게 너무 많이 물었지만 그 때마다 원점이니 일찌감치 남편은 지쳐 나가 떨어졌고, 딸내미는 내 눈빛에 연민이 이는지 꾹 참고 침착하게 다시 가르쳐 준다.

 

 

  황 박사가 말했다. 늙은 부모가 까치란 새의 이름을 잊어버려 아들에게 자꾸만 물었다. 세 번 물었을 뿐인데 아들은 ‘까치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돼요?’ 라고 쏘아 붙였다. 그 때 늙은 아버지가 오래된 일기장을 가져와서 펼쳐보였다. 그 일기장엔 세 살 먹은 아들이 까치의 이름을 물었을 때 무려 스물 세 번이나 군말 없이 가르쳐준 아버지의 기록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적혀 있었다. 부모와 자식의 차이점에 대한 비유인데 가슴에 팍 와닿는다.

 

 

  황수관 박사의 촌철살인하는 위트와 유머가 하늘나라에서만 빛을 발할 걸 생각하니 왠지 아쉽고 서럽다. 때론 자식 보다 남편 보다 내 편일 것만 같은 소박하고 아름다운 웃음 전도사를 새해부터 추모해야 한다는 게 무척 가슴 아프다. 문태준 시인의 말처럼 ‘나 혼자 꽃 진 자리에 남아 시원스레 잊지도 못하고’ 며칠을 앓을지도 모른다.

 

 

 

 

강을 건너가는 꽃잎처럼

 

 

 

강을 건너가는 꽃잎들을 보았네

옛 거울을 들여다보듯 보았네

휘어져 돌아나가는 모롱이들

울고 울어도 토란잎처럼 젖지 않는 눈썹들

안 잊혀지는 사랑들

어느 강마을에도 닿지 않을 소식들

 

나 혼자 꽃 진 자리에 남아

시원스레 잊지도 못하고

앓다가 귀를 잃고

강을 건너가는 꽃잎들을 보았네

 

강을 건너가는 꽃잎 꽃잎들

찬비에 젖은 머루 같은 눈망울들

 

 

『맨발』, 문태준, 창비 77쪽

 

 

 

 

 

  멀쩡한 사과를 반으로 잘랐더니 이렇다. 누가 건강을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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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1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3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진 2013-01-01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아쉽습니다. 황수관 박사님께서 남해에 오신 적이 있어요.
어떤 교회였는데, 그곳에 가 박사님의 이야기를 아주 재밌게 들은 기억이 납니다.
명복을 빕니다.

다크아이즈 2013-01-03 09:12   좋아요 0 | URL
이진 님은 직접 뵈어서 더 짠하겠어요.
타고난 이야기꾼 같아요. 재방송 모음인데, 울다가 웃다가 했네요.
이진님도 건강할 때 건강 챙기시어요.

마녀고양이 2013-01-02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 사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주위에서 너무 많은 분들이 건강으로 인해 힘들어하니까 불안해요.
실은 작년에 건강 검진 받아야했는데, 바빠서 기회를 놓쳤거든요.
받았어야 하는데, 가장 소중한건데...

그리고 아파하시는 분들, 떠나가시는 분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다들 건강하시기를.

다크아이즈 2013-01-03 09:14   좋아요 0 | URL
달여우님 꼭 검진 받아 보시어요.
가기 전 불안할 때와 가고 난 뒤 별 탈 없다는 소식 듣는 건 다르더라구요.
아픈 분들 주변에 많아서 걱정이에요.
달여우님도 건강부터 챙기시길.
 

 

 

 

<오늘 7시40분 우리집 마루에서 본 일출 - 창문에 반사된 두 개의 덧 태양ㅋ>

 

 

  2013년 새로운 태양이 떠오른다. 귀밑머리 쓸어 넘기고 옷깃 여민 채, 경건하게 해 마중을 한다. 커튼을 젖히자, 두꺼운 구름 사이로 우주의 붉은 기운이 서린다. 둥글고 선명한 실체에 앞서 저 이른 빛, 언제나 아침노을로 먼저 오신다.

 

 

  우리집 마루에서 본 새 해가 완전히 솟았을 때는 7시 40분이었다. 가까운 바다 냄새와 먼 산을 배경으로 둥근 해가 마침내 그 실체를 드러냈을 땐 그 광경이 너무 선명해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어느 새해 아침을 이토록 경건하고 장엄하게 맞이했던가. 비의를 품은 듯, 신비함을 실은 듯 새 아침의 아우라는 제 존재를 충분히 발산했고, 모든 물상들은 평화로운 풍경이 되어 그 빛을 수렴하고 있다. 해가 솟자마자 그 이후로는 신기하리만치 교교한 아침 분위기는 빠른 속도로 그 빛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한다. 언제 솟는 해를 기다렸냐는 듯 환하고 밝은 기운이 세상을 점령하고 만다.

 

 

  강렬하게 제 빛을 쏘아대는 둥근 힘에다 내 온몸의 기를 풀어헤쳐 의탁해본다. 새날을 여는 저 빛, 메아리 같은 소리가 되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길 바라본다. 한 해 동안 가슴을 데우는 따스한 말씀의 빛살이 되기를 기도한다. 새해에는 느낌표 같은 날들이 많아지기를.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날들이 될 것은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절망하는 가운데도 살아있다는 느낌을 발견하고, 희망하는 가운데도 그 살아있음이 배가되는 날을 꿈꾼다. 눈 뜨고 있다고 다 보는 것도 아니고, 눈 감고 있다고 못 보는 것도 아니다. 눈 뜨고 있으되 제대로 보지 못하면 온전한 느낌표를 얻을 수 없다. 반면, 눈 감고 있어도 제대로만 본다면 만족할만한 느낌표를 얻을 수 있다.

 

 

 오감을 연 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마사지를 하겠다. 그 중 가슴 쪽에 그 감수성의 손길을 가장 오래 머물게 하겠다. 내 무딘 감각의 어혈이 풀려 이제껏 보아온 것과는 다른 느낌으로 세상이 보였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그 대상마다 독특한 느낌표 하나 달았으면 좋겠다.

 

 

  제대로 된 느낌표를 얻기 위해 그 한 호흡마다 말줄임표 하나씩도 분양 받으련다. 살아난 감흥들이 뼈와 살이란 느낌표의 브랜드를 가지려면 진중한 사색의 얼굴도 필요할 테니. 숨어 희생하는 말줄임표가 있어야 꿈틀거리는 느낌표가 제대로 산다. 따옴표나 의문부호도 잠시 미뤄두겠다. 숱한 말들의 희롱이거나 잔치일 따옴표 대신 일단은 분양 받은 말줄임표 하나 벽에 붙여놓겠다. 어쩐지 공허한 따옴표 대신 느낌표 하나마다 왠지 느꺼울 말줄임표 하나씩 달아두겠다. 느낌표의 극대화엔 말줄임표라는 곁지기도 꼭 필요하겠다.

 

 

  말줄임표 곁들인 쌈박한 느낌표를 꿈꾸는 이 아침이 설레는 건 아직은 꿈꿔도 좋을 새해인데다 새날의 일출을 똑똑히 본 덕인지도 모른다.

 

 

 

  ** 새해 일주일 안에 당장 해결해야 할 책 세 권

  그 중 단연 김수영을 위하여, 이다. 

  강신주, 정민 이런 분들은 책 내는 기계이자 오롯한 학자 - 부럽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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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2013-01-01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곳에 있을 때는 정동진 같은 곳으로 세모 일출여행들 많이 갔었는데 요즘은 어디로들 가는지 모르겠네요. 사진 참 좋아요. 팜므느와르님은 그냥 앉아서 공짜로 저런 진풍경을 매일 보시고, 게다가 바다냄새까지 덤으로 맡으시네요. 저도 제 나름으로는 새해를 좀 단단하게 열어보자고 새벽까지 책을 읽다가 잤는데 그 여파로 하루종일 비실비실...안하느니 못... --;

팜므느와르님, 한결같은 격려 정말 감사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에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김수영을 위하여>는 저도 사놓고 아직 못 읽고 있어요. 리뷰 기다릴께요.(막 압박하기.)

그리고 아래 페이퍼에서 >>>한 호흡만 참았더라면 하는 자책>>>, 아, 저 엄청 많이 했어요 작년 한 해! 올해 이거 고칠 수 있을지... --;

다크아이즈 2013-01-03 10:52   좋아요 0 | URL
앗, 댈러님 넘흐 반갑습니다. 그곳에도 새해는 왔겠지요.
여전히 동해안 쪽으로 일출 여행을 가지 않을까요.
전 해 구경하러 집 떠나본지는 십 년도 넘었지만, 추위를 견디며 일출을 보는 장관은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긴 합니다.

김수영을 위하여는 짬짬이 읽고 있는데, 넘 인간적인데다 넘 고뇌하고, 넘 타협을 모른 매력적인 인물이네요 ㅋ

한 호흡 참지 못하고 속내가 드러나는 건 제 특기입니다. ㅋ 새해엔 저도 나아지기를...
댈러님의 건강과 멋진 리뷰와 맛깔스런 소식들 여전히 기대할게요.^^*

마녀고양이 2013-01-02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잠자고 새해의 태양도 못 봤는데....
사진을 보니 참 좋네요.

말줄임표와 느낌표. 아, 이것만 있으면 삶을 설명할 수 있을거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다크아이즈 2013-01-03 09:17   좋아요 0 | URL
저도 울집 마루에서 첫 태양을 볼 줄 몰랐다는.
그간엔 늦잠 자느라 생각도 못했는데, 올해는 꼭 보고 싶었고, 성공했네요.
달여우님께 받은 여러 좋은 기로 느낌표와 말줄임표를 실천하도록 노력할게요.

oren 2013-01-03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루에서도 새날에 떠오르는 일출을 맞이할 수 있다니 정말 환상적이네요.
저는 동해안에서 군복무중 새벽마다 일출을 너무 자주 봐왔기 때문에, 강추위에 떨며 새해 첫 일출을 보겠다는 욕심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마루에서 저렇게 편안하게 맞을 수 있는 일출이라면 무척이나 자주 보고 싶어할 것 같아요.

다크아이즈 2013-01-05 11:20   좋아요 0 | URL
오렌님 동해에서 그것도 군대에서 날마다 맞는 해라면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았을듯.
바다에서 떠오르는 그 큰 해는 민폐일 때가 많겠지요.
저도 동해안 언저리에 사는데 일출에 대한 로망은 그리 크지는 않아요.
오늘도 40분 전후로 뜨는데 지구 자전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금세 떠오르지 뭡니까
오늘의 교훈ㅡ해는 솟기 시작하면 금세 떠오른다 .뮝기적거리지 않는다. ㅋ
귀한 발걸음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렌님^^*
 

 

 

 

  바래지는 풀잎처럼, 스러지는 눈발처럼 또 한 해를 보낸다. 저리고 아쉽기만 한 나날들. 그야말로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허망하기만 하다.

 

 

  해마다 그랬듯이 올해도 새 아침이 밝아오자 달뜬 나머지 희망의 단춧구멍을 터무니없이 넓게 뚫어버렸다. 천의 질감, 옷의 종류나 활용도 등은 고려하지도 않은 채, 일단 계획이란 단춧구멍부터 뻥 뚫어버렸다. 구멍에 맞는 단추를 찾아, 온 열두 달을 헤맸지만 끝내 제대로 된 것 하나 구하지 못했다. 한 해의 끝인 지금, 자그맣고 어설픈 단추 몇 개만이  손바닥 위에서 민망해할 뿐이다. 이미 크게 터 잡은 구멍에 끼워봤자, 금세 단추는 쏙 빠져나가고 말 것이다. 거창한 계획에 미미한 결과, 해마다 이런 일을 되풀이하고 만다. 하기야 꼭 이뤄져야 하는 게 계획이라면 굳이 새해마다 그것을 짤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계획은 세우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야겠다. 그 실천 유무를 따지다 보면 안 그래도 치운 가슴 찬바람만 들어찰 것 같다. 대신 내 곁을 맴돌던 두 단어를 떠올리면서 한해를 마무리해야겠다.

 

 

  우선 ‘힐링’이란 말을 되뇌인다. 올 한 해 밥상 위의 숟가락처럼 자주 오른 말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마음 둘 곳 많지 않아 우왕좌왕한다. 당신과 나, 툭 터놓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나 외롭고, 어디서나 힘들다. 그뿐이랴. 무엇을 하든 상처는 곁에 있고, 언제나 마음은 흔들린다. 이런 나약한 속성을 지닌 인간에게 필요한 게 치유의 연대감이다. 위로의 주체이자 대상인 개별자끼리 공감하다 보면 진심으로 치유에 맞닿게 된다. 힐링은 연대의 감정이지 폐쇄적 구원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사람 곁에서 얻는 치유가 골방의 치유보다 한결 낫다. 상처이지만 이내 구원이기도 한 사람 곁에서 많은 것을 얻고 누렸다. 이보다 더한 개인적 힐링이 어디 있겠는가.

 

 

  그 다음 떠오르는 말이 ‘깨달음’ 이다.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인 거창한 걸 말하려는 건 아니다. 생활의 발견이란 말처럼 일상 속에서 얻는 깨알 같고, 바람결 같은 생각들이 내면을 키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깊고 늦게 오는 깨달음은 그만큼 크고 무겁다. 하지만 찰나적이고 순간적인 깨달음은 작고 가벼운 대신 내면을 따스하게 해준다. 생의 근원을 뒤바꿀 수 있는 큰 깨달음보다 제비꽃 같은 소박한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생활의 발견을 얻은 것만으로도 올 한 해 고마운 일이다.

 

  한 호흡만 참았더라면 하는 자책, 원망보다는 이해, 미적거림보다는 재바른 발걸음, 우울보다는 환희 등을 깨쳐준 이는 다름 아닌 내 곁의 사람들이었다. 어느 누구도 대놓고 이렇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라고 충고하지 않았지만 온당한 그들 삶을 보면서 많은 걸 느꼈다. 더 많이 내어주고, 더 많이 보듬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많이 베풀어라고 몸과 마음으로 가르쳐준 모든 이에게 감사하는 한 해이다.

 

  좋은 사람들이 품은 가없는 기를 느끼면서 내가 얼마나 미흡한지를 절로 알게 된 한해였다. 잡다한 생각들이 온몸과 마음으로 휘몰려올 때 저릿하고 따뜻한 그들의 한 호흡을 떠올린다. 내 부실한 나무뿌리를 안 그런 척 하면서 슬쩍 다독여준 모든 가르침을 준 이에게 감사장을 대신한다. 내 어설픈 한 해가 감사로 아롱지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내일이면 오늘을 잊고 새 태양을 마중하러 나갈지라도 내게 소박한 깨달음을 준 모든 이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아듀,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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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12-31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 곁에서 얻는 치유가 골방의 치유보다 한결 낫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진심으로요. 그리고,
제가 제 스타일을 고수하는 한, 당연히 저를 편안해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밖에 없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스타일을 고수하는 쪽으로 선택할 것임을, 그러므로 제가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함께 받아들여야 함을 수용하게 된 한 해였습니다.

팜 언니, 언니라고 불러도 되겠지요... ^^
또 한 분의 좋은 언니를 알게 되어서 너무 기쁩니다, 년말에 큰 기쁨 중 하나네요.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즐거운 새해 맞이하셔요.

다크아이즈 2013-01-01 09:02   좋아요 0 | URL
달여우님, 귀한 동상 한 분 생기는 건가요? ㅋ
연배는 언냐일지 몰라도 하는 짓은 동생만도 못할 수 있으니
이해해주신다면야 기꺼이...

인간 기본 성정을 꿰뚫고 있는 달여우님 한 말씀,말씀이 제겐 구슬이고 보배이옵니다. 모든 이를 다 내 안에 담는 건 불가하니 내 안에 오신 이라도 제대로 보듬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랄게요. 달여우님 감사해요. 해돋이 보러 먼 길 떠나을 수도 있겠네요. ^^*

프레이야 2012-12-31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힐링과 깨달음! 이거야말로 제가 올해 팜님글에서 얻은 선물이었어요.
위에 달여우님도 제게 그렇구요. 아..좋아라. 왠지 마음 따스해져요.
고마워요. 참 많이요^^

다크아이즈 2013-01-01 09:06   좋아요 0 | URL
제가 프레님께 얻은 건 다사로움과 우아한 아우라~~
결 곱고, 성실한 님께 많은 걸 배웠지요.
올해도 열심히 따르렵니다. 오늘 거나하게 울집 마루에서 해돋이를 해서 왠지 기분이 좋습니다. 크~ 프레님 ㄱㅖ신 곳도 비슷 할 듯... ^^*

2013-01-01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3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진 2013-01-01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님! 팜므느와르님이라고만 부르다가 오늘은 팜님이라고 부를게요 ㅎㅎ
제 서재에 들러주시고 댓글 달아주시고 관심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사람에게서의 치유, 위로... 팜님 덕분에 많이 얻었고, 이젠 제가 보답해드릴게요. ㅎㅎ
2013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크아이즈 2013-01-01 09:12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다정한 님들처럼 팜님이라 불러주세요.
제 개인적으로도 이진님께 거는 기대가 크답니다.
알라디너들의 희망이자 한국 문단의 미래인 그대를 언제나 응원합니다.
많은 걸 깨쳐주신 소이진님께 제가 감사드려야지요.
새 날이 밝았으니 소이진님께도 그 햇살이...^^*
 

 

 

 

 

 

 

 

 

 

 

 

 

 

 

 

  한 어머니, 아들 전화 받고 서울나들이 가신다. 임신한 며느리 힘드니 아이 둘 좀 보살펴달란다. 고향 떠나 사흘 밤도 잔 적 없는 어머니, 난생 처음 일주일 예상으로 서울행 기차에 오른다. 아들의 두 번째 부인인 며느리는 덩치 크고 머리 큰 어머니에 비할 바 아니다. 황소 같은 몸집에다 성격은 착하다 못해 맹하기까지 하다.

 

 

  아들의 핏줄이 아닌, 며느리가 데리고 온 두 아이가 ‘할머니’라고 부르는 소리를 어머니는 듣고 싶지 않다. 냉랭한 아들은 어머니를 살갑게 챙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장 깨끗하고 넓은 공간인 지하실에 어머니의 침실을 마련해드렸고, 당신도 그곳을 딱히 싫어하지는 않는 눈치지만, 이웃들이 그런 자신더러 어머니를 지하실에 처박아 두었다고 비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한다. 다만, 그 옛날 수학선생님이었던 어머니가 동료 교사와 사랑에 빠져, 자신과 아버지를 돌보지 않은 채 자주 신경질을 냈던 것은 기억하고 있다. 잘못했다는 소리를 절대 하지 않는 어머니 때문에 아들은 유년 이후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왔다.

 

 

  첫 결혼에 실패한 것도, 그 후 고향에 돌아오지 않는 것도 어머니 때문이다. 이혼 전문 사교 모임에서 두 번째 아내를 만났고, 상처 많은 두 영혼은 정신과 상담의의 도움으로 정신적 자립을 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오죽하면 상담의를 따라 서울로 이사를 갔을까.

 

 

  예정된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어머니 짐을 싸신다. 핏줄 아닌 손주가 부르는 ‘할머니’ 소리 때문도 아니고, 변할 것 같지 않은 아들의 냉정한 시선 때문도 아니며, 대책 없이 맹한 며느리 성격 때문도 아니다. 어머니를 서울로 오게 한 아들의 진짜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극도로 변덕스러운 어머니 때문에 어릴 때부터 입 다물고 살았던 아들은 커서도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다. 아들 부부는 상담의의 권유로 ‘용서하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어머니를 초대했던 것이다. 심리 치료 모임에서 아들이 이 모든 걸 재연할 걸 생각하니 어머니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아들은 어머니를 이용하고, 속수무책 상황에 처한 어머니는 수치심에 치를 떤다. 어머니는 사흘 만에 고향 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용서에 대해 생각한다. 용서하거나 용서받는다는 건 지극한 이기심의 발로이다. 용서하는 자는 준비가 필요하고, 용서 받는 쪽 역시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편하고자 성급히 용서를 바라도 안 되고, 용서할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에는 섣불리 그것을 받아들여서도 안된다. 급하면 체한다. 주고받는 용서의 방식은 어느 누구의 일방적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 상호 합의에 도달했을 때 가장 명쾌하다. 당사자 둘 다 만족하는 이기심이어야 하는 용서란 얼마나 힘든 것인가. 시간만이 그것을 해결해준다

 

 

** 여기 나오는 어머니는 뉴욕에 간<올리브 키터리지>의 서울 버전입니다.

    소제목 <불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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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12-27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변 사람 이야기인줄 알았어요.^^
용서란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날 때만 할 수 있겠죠~
저도 내일은 서로 화해할 분과 점심을 먹기로 했어요.
먼저 손내밀지 않으면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꽁하고 있었는데 어제 오해를 풀자면서 청하더군요.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갈리는 거 같아요.
이 글을 읽고 내일 어찌해야 할지 답을 얻은 것 같아~ 고맙습니다!^^

다크아이즈 2012-12-28 12:09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주변 이야기라면 제가 여기 블로그 있는 거 아무도 모르지만 쓸 수는 없을 것 같아요.ㅋ 몸짓이 주는 상처는 견딜만하고(누구나 그 정도는 하고 사니까),말이 주는 상처는 그 사람 인품을 규정짓는 잣대로 삼으면 되니 그런 대로 필요악이지만,글이 주는 상처는 흔적을 남기니 그건 못할 짓이지요. 해서도 안 되구요.

먼저 손 내미는 것 진짜 중요해요. 잘 해결한 뒤 차 한 잔 하고 있을 순오기님 상상하옵니다. 서로 준비가 됐을 때 화해해야 후유증이 없거든요. 연말 잘 맞이하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페크pek0501 2012-12-27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서... 혜민 스님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남을 용서하라고 썼죠.
그런데 용서라는 것도 진짜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마음이 이성의 판단력에 따라오기까지 시간이 걸려서요.
아주 천천히 흐르는 게 마음이란 거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변덕을 부릴 때처럼 갑자기 마음이 변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론 너무 천천히 흐르는
마음 때문에 시간이란 간격을 필요로 하지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정신적인 상처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좋은 글이에요.

다크아이즈 2012-12-29 17:19   좋아요 0 | URL
페크님 맞아요. 용서는 남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하는 거 같아요.
용서하고 용서받는 거야 말로 가장 이기적인 행위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편하려고 하는 거다 보니, 타이밍이 절절하게 맞아야 제대로 된 효과를 보는 거지요. 어느 한 쪽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용서하겠다고, 용서 받겠다고 한다면 좀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는 거지요.
가장 이기적인 행위인 용서지만, 가장 필요한 인간 행동 양식이라고 생각해요. 페크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마녀고양이 2012-12-28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서 뿐만 아니라 충고도 마찬가지인거 같아요.
받을 상대가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거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선물도요. 상대에게 필요없는 선물을 강권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기다림.... 저는 그게 참 필요하지만 어렵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새해 즐거운 일 가득하셔요.

다크아이즈 2012-12-28 17:4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오지랖 떠는 충고도 참 보기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충고랍시고 하는 모든 말들은 상처가 되지요.

그래도 이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해결된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달여우님 학문 닦는 틈틈이 공유하고 교류해요. 늘 응원하고 따를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어요.^^*

프레이야 2012-12-30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안', 아주 인상적이었지요.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사두고 못 읽었는데 그걸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올리브의 아들은 불안은 두려움이라고 했지요?^^
안나 카레니나,에선 이성이 있는 이유는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라는 구절이
나오더군요. 팜님, 저는 비이성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요즘 들어 부쩍부쩍 더 들어요.^^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서 늘 그르치는 것 같아요. 새해엔 좀 더 이성적인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어요 팜님, 저말이에요.^^
용서에 대해 용서에 필요한 시간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전 불안만 얘길했네요.

다크아이즈 2012-12-31 15:15   좋아요 0 | URL
프레님처럼 이성적으로 참한 사람이 있을까요? 혹,비이성적인 면이 있더라도 전 그런 프레님을 더 좋아할 것이야요.

저야말로 비이성적인 사람이예요. 이성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아요. 그런 사람들 보면 자신이 이성적인 것에 대해 은근 자부심을 풍기는 듯해서 재미가 없는 걸요. 약간은 모자란 듯, 주책인 듯, 헬렐레한 듯 그런 사람이 되어도 좋을 듯해요. 프레님께 그런 면을 상상한다는 건 힘든 일이긴 하지만 ㅋ

프레님 새해에도 멋진 행보 기대할게요. 고맙고 사랑합니다^^*
 

 

 

 

 

  깊은 밤 자다가 깨는 시간이 잦다. 나이 탓도 있고, 생활 리듬이 변한 탓도 있다. 그간 글을 쓸 때는 웬만해선 늦은 밤까지 활용하지는 않았다. 변변한 직장이 있는 것도, 규칙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늘 있는 것도 아니라 글 쓸 일이 있어도 꼭 밤까지 미룰 이유가 없었다. 집에 있는 한, 직장인들 근무하는 셈치고 낮에 주로 글을 써왔다. 한데 어느 순간 체력은 달리는데 해야 할 일은 늘어나면서 밤 시간 대로 쓰는 일이 미뤄지기 시작했다. 너무 피곤하면 깊은 잠을 잘 수 없다. 깨다 자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불면증까지는 아니다. 30분 이내로 다시 잠들기 때문에 재수면도우미로 텔레비전만 있으면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시청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잠들곤 한다. 대개 무엇을 본지도 모르고 잠들 경우가 많은데 며칠 전 새벽에 본 특집 다큐멘터리는 마치 한 번 만났을 뿐인데도 강렬한 매혹을 남기는 그런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난 가을 오스트리아인 펠릭스 바움가르트너는 고도 39킬로미터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했다. 헬륨 가스 기구에 달린 캡슐을 타고 지구 성층권까지 올라가 단숨에 지상으로 뛰어내리는 장면이 고스란히 중계되었다. 중간 지점에 이르렀을 때 기압과 공포를 이기지 못해 펠릭스의 눈빛이 두어 번 흔들리긴 했다. 지상 관측소에서는 객관적인 정보 외에는 그 어떤 충고나 의견 없이 펠릭스의 결정을 차분히 기다려주었다. 인류 최초 최고의 높이에서 점프에 도전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는 펠릭스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펠릭스는 잠시 망설인 끝에 도전을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초정밀 우주복을 입은 그가 캡슐 문을 열고 까마득한 지상을 향해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캡슐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가 잡은 공활한 무대는 장관이었다. 둥근 지구 표면이 보이고, 육지와 바다의 경계도 어렴풋이 보였다. 저 먼 지상을 향해 뛰어내리기 직전 그가 한 말은 보는 이의 가슴에 잔잔한 감흥을 일으켰다. ‘높은 곳에 올라와 봐야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나는 지금 집으로 갑니다.’ 이 한 마디를 남기고 그는 주저 없이 캡슐에서 뛰어내렸다.

 

 

  자유낙하는 거침이 없었다. 수초 만에 음속을 돌파했고, 최대 낙하 시속은 1100킬로미터가 넘었다. 낙하 초반, 의식을 잃은 펠릭스는 마치 바람에 종잇장이 흔들리듯 이리저리 허공을 맴돌았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낙하 운동을 재개했다.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안도의 환호성을 질렀다. 뉴멕시코주 한 사막에 펠릭스는 허무할 정도로 안착했다. 감사의 인사로 대지를 향해 고개 숙일 때 세계인들은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극한 도전 중에 하나인 고공 점프를 생각해내고 실천한 인간 의지력에 무한한 경외심이 인다. 작은 일에도 힘겨워하고, 어려워하고, 마침내 포기하기 일쑤인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고만고만한 나약함을 공유한 사람끼리 그 나약함을 서로 위안하는 일은 공허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얼마나 나약한지 아무도 모른 채 다만 서로를 연민할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한 상황, 광활한 무대에서 들여다 본 스스로의 존재감은 평소와는 훨씬 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지켜 본 사람들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드넓은 우주 공간에서 인간사 아귀다툼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따라서 내 삶의 현재가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를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나 존재의 근원을 찾아 지상 최대 낙하를 꿈꾸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말 - ‘나는 지금 집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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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6 2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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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7 00: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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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7 22: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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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8 11: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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