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아빠 어디가 - 강    ‘아빠어디가’, 박명 

 

1.   지아야, 지아야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은 웃음을 줄 때가 많다. 드라마는 습관이 되지 않아 지겨워서 못 보고, 텔레비전 영화는 작정하고 보는 것이 아니면 잠이 와서 포기하기 일쑤이다. 그나마 예능과 다큐멘터리에 쉽게 빠지는데, 예능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리는데 그만이고, 다큐멘터리는 경험하지 못하는 여러 상황에 대한 의문을 해소해주니 즐기게 된다.

 

 

  요즘 신설된 예능 <아빠, 어디가>덕에 웃다가 울다가 한다. 큰 즐거움이다. 아이들과 아빠들이 오지 마을 자연 속에서 여러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우선, 등장하는 아이들이 하나 같이 순진무구하다. 어린이의 외관만 가졌을 뿐, 성인 연기자 저리가랄 정도의 탤런트 기질을 뽐내는 여타 프로그램 아이들과는 좀 다르다. 시청자로서는 돈 들이지 않고 청량 음료를 마시는 기분이랄까.

 

 

  얼굴만 귀엽고 천진한 게 아니라 캐릭터 자체가 살아있다. 이유 있는 떼를 쓰다가도 의젓한 형 노릇을 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매사에 긍정적인 마인드로 넉살좋은 붙임성을 보여주는 아이도 있다. 청아한 모습으로 새침한 듯 무심한 매력을 발산하는 여자애가 있는가 하면, 애틋하고 난만한 모습으로 그 애를 따라다니며 보호하려는 아이도 있다. 그 어떤 가공된 연기 없이 아이들은 즉흥적이고, 순간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 중 윤후는 어린아이가 내뿜을 수 있는 좋은 캐릭터를 다 가지고 있다. 개구쟁이이면서 의젓하고, 호기심이 많으면서도 배려가 깊다. 이성에 대한 숨길 수 없는 관심이 있으면서도 남자애들 사이엔 의리도 있다. 매순간마다 ‘지아야, 지아야’를 외치며 여자애를 챙기는 윤후를 보면서 시청자들은 한 때 저마다 순수했을 어린 시절을 돌이키게 된다.

 

 

  살다 보면 세상이 동심을 잃게 하겠지만, 그 고운 천성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룻밤 기획으로 끝날 게 아니라 그 순수함이 시청자에게 통할 때까지는 살아남는 프로그램이 되어줬으면 한다. ‘지아야, 지아야’ 외치는 투명한 동심이 큰 위로가 되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2. 까뮈와 사르트르

 

 

  까뮈와 사르트르가 결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견해차이 때문이었다. 마르크스주의에 다가간 사르트르는 공산주의와의 연합을 꾀했지만, 공산당에서 탈퇴한 뒤 도덕적 대원칙에 충실했던 까뮈는 사르트르의 이러한 노선에 염증을 느낀다. 사르트르는 어느 순간 까뮈를 ‘완전히 참을 수 없는 사람’으로까지 여기게 되었다. 까뮈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간직할수록 자기 자신을 그와는 반대의 이미지로 규정하려 애썼다. 한 때 카뮈를 열렬히 부추겨주었던 사르트르를 생각한다면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까뮈가 스승 그르니에의 저서『섬』재판 서문에서 ‘의식은 예외 없이 다른 의식의 죽음을 추구한다.’고 사실상 사르트르를 지적했을 때, 사르트르의 입장은 희곡『닫힌방』을 빌려 ‘지옥, 그것은 타인들이다.’고 맞받아치는 격이 되었다. 까뮈는 진리에 반대되는 것들에 많은 지식인들이 매혹되었다는 것을 사르트르에 빗대 경고한 것이었고, 빈정대기 좋아하는 사르트르는 이런 까뮈를 인정할 수 없었다. 추도사에서조차 사르트르는 ‘당신은 완전히 참을 수 없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고 까뮈에겐 모독적인 태도를 취하기에 이른다.

 

 

  노벨문학상을 거부한 사르트르의 표면적 이유는 그 상이 냉전의 도구가 되어버렸다는 것이었지만 다분히 까뮈를 의식한 점도 있었을 것이다. 7년 앞서 까뮈가 ‘정의보다 앞에 있는 내 어머니’라는 수상 소감으로 그 상을 받고 상금으로 집을 산 것과는 대조적이다. 겉으로 보기엔 알제리의 가난한 집안 출신인 까뮈와 파리의 유복한 가정 출신인 사르트르 딱 그만큼의 다른 행보이다.

 

 

  개인적으로 까뮈 쪽에 정감이 더 간다. 하지만 누가 더 옳은가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당대의 석학 둘이 이런 논쟁을 벌일 수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갈등하는 맞수의 삶이 더할 나위 없이 인간적이라는 데 묘한 위안과 쾌감을 느낀다. 위대하나 평범하나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갈등하며 성장하는 존재인 것을.

 

 

 

                                                      

 3. 우리나라 여자의 사회적 이름은 언제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여성들은 공식적인 이름이 없었다. 하층민부터 상류층 여성까지 필요에 의한 호칭·애칭·별호 등은 있었겠지만, 결혼하면 이마저도 출신 마을에 빗댄 택호나 아이의 호칭에 붙어 누구 엄마로 불렸다. 상류층에서는 친정의 성씨를 따라 박씨 부인, 김씨 부인 등으로 지칭되는 것이 통례였다. 정약용의 부인은 홍씨 부인이고, 유희춘의 부인은 송씨 부인이 되는 식이다. 송씨 부인 호가 ‘덕봉’이라 해서 그게 공식적인 이름인 것은 아니었다. ‘송덕봉 부인’이나 ‘송덕봉 씨’로 불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구한말 재야 지식인 황현이 남긴『매천야록』에 이러한 여성의 이름과 사회 진출에 관한 부분이 나온다. 을사오적 중의 한 명인 이지용의 아내가 일본 사교계에 진출을 하면서 ‘이홍경’이란 이름을 사용하게 된 것이 여성 이름의 시초라고 황현은 적고 있다.

 

 

  국운이 기울면서 상류층 부인들도 저항파와 친일파로 나뉘기 시작했다. 나중에 독립운동을 돕게 되는 우국부인회와 이지용 부인 등이 소속된 친일부인회가 그 둘이다. 남편 따라 일본 나들이를 가면서 원래 홍씨였던 이지용의 부인은 자신의 성을 버리고 일본식으로 남편 성을 따라 ‘이홍경’이란 이름을 썼다. ‘예부터 우리나라 부녀자들은 이름을 쓰지 않고 다만 아무개 씨라고만 했다. 이때 왜국 풍속을 본받아 저마다 자기 이름을 써서 사회에 진출했는데, 이홍경에서 시작된 것이다.’라고 매천야록은 기록하고 있다.

 

 

  이홍경은 품행 문란으로 매국하는데 앞장섰다. 일본 실무자들과 상대를 바꿔가며 연애를 했다. 질투를 느낀 하기하라에게 혀를 깨물리자, 장안 사람들은 ‘작설가’(嚼舌歌)를 지어 비웃었다. 기왕 여성으로서 제 이름이 불리길 원했다면 좀 더 당당한 것이 그 시발점이었으면 좋으련만, 하필이면 매국의 사교장에서 그 첫 이름이 쓰였다니 아쉽기만 하다. 당시 여성 일각이 제 이름을 찾으려 맹렬히 나선 것은 응원할 만하나, 친일의 수레에 그 불명예의 이름을 싣게 되었으니 안타까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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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3-01-25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존철학하면 까뮈와 사르트르가 생각나는데,
실은 두 사람 사이가 그랬군요... 크... 이런.... 문득요,
상담을 하는 분들은 다들 배려하고 말하고 싸우지도 않고 타인을 이해할거라 생각되잖아요,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든요. 자신의 내담자에게야 노력하지만,
다들 똑같은 인간일 뿐인지라 상담하는 분들끼리도 계파가 다르면 다투기도 하고
따르는 이론이 다르면 다시 안 보기도 하고 머 그런 일도 있다 하는데....
그 생각이 나요. 다들 사람 맞네요, 그죠~

다크아이즈 2013-01-26 00:07   좋아요 0 | URL
사람 다 똑 같은 건 맞는 것 같아요. 크~
훈련되고, 단련되고, 절제하고, 인내할 것 같은 상담가들끼리도
갈등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했어요. 그래도 일반인들하곤 그 과정이나
방식이 조금은 다를 거라 생각해요. 좀 더 많이 생각했다가 터질 것 같은 느낌.
내담자들께 자제심을 발휘하는 것만 해도 어딥니까. 그래야 안심하고 상담할 수 있잖아요.
달여우님 덧글 덕에 상담료 안 내고 치유 받는 느낌 월매나 많은데요. 다른 알라디너 분들도 그런 걸 느낄 걸요.^^*



프레이야 2013-01-25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한다는 남녀사이에도 정치적 입장이 기본적으로 다른 경우 힘든 거 같아요. 울집은다행히 그렇진 않은데 그런 경우 있더라구요. 까뮈와 사르트르, 이런 비하인드스토리가 있었군요.
매천야록 재미있어보여요. 눈독 들여요. 매국노 여인 이홍경은 그럼 원래 홍홍경이었던거에요? 아님 이름까지 바꾼거에요? 중요한 건 난 팜님 글이 참 좋아요^^

다크아이즈 2013-01-26 00:14   좋아요 0 | URL
프레님 부부 정치적 성향이 같다니 부럽부럽^^*
전 달라도 넘 달라서 분위기 험악할 때 많아요.
이젠 꾀가 나서 제가 자제합니다. 긁어 부스럼 만드는 쪽이 저였으니ㅠ

매천야록 - 일부분에 저런 얘기 나온거지 내용은 너무 단편적이라 많이 건질 건 없어요. 당시의 풍문, 기사, 경험 등을 짧고, 넓게 기록한 책이라 두서가 없어요.

프레님, 이홍경은 아예 이름이 없었겠지요. (아명이 홍경일 수도 있겠네요) 당시 전통을 따랐다면 <이씨 부인>으로 불렸겠지요. 크~

2013-01-26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27 0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3-01-26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카뮈가 더 좋아요. 좀 더 인간적이라 느껴져서 그럴까요???
근데 그당시 신여성이라고 불리웠을 이홍경이라는 여성이 품행문란으로 매국하는데 앞장을 섰다니 매국을 하는 길도 여러가지군요.ㅠㅠㅠ

다크아이즈 2013-01-27 02:40   좋아요 0 | URL
그쵸, 그쵸? 유치하다고 놀려도 저도 까뮈가 더 좋아요.
이홍경 여사는 시대가 낳은 희생양 쯤이라고 해줍시다. 누군들 그 시대에 태어나면 옳은 행동만 할 수 있었을까요?
역사 관련 책들 읽으면 지금이 얼마나 태평성대인가(!?)를 실감할 정도로 처절하고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그나저나 나비님 잘 견디시는 것 맞지요?
소식 궁금하지만 올라올 때까지는 꾹 참을게요. 힘내시어요^^*

순오기 2013-01-28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후와 지아 이야기를 다른 프로에서 귀동냥하고 어제는 일부러 찾아서 보았어요.
시간을 잘 챙기지 못해서 끝부분만 조금 봤지만...그래도 행복했어요.
우리도 한때 저렇게 해맑은 아이였구나, 부모에게 기쁨이었겠구나~ 생각하면서요!^^

다크아이즈 2013-01-29 10:29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도 보셨군요. 아래께도 보면서 저 아이들이 <붕어빵> 아그들처럼은 안 되어야 할텐데 하는 생각했어요. 그런 시점이 오는 날 이 프로는 접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답니다. 넘흐 아그들이 사랑스럽더군요. 므흣한 미소와 때론 박장대소로 지켜봤어요. 전 저럴 때 어땠을까 생각하면서요. 크~~
오늘도 상큼한 하루 맞이하시어요. 순오기님^^*
 

 

 

 

 

 

 

 

  사랑은 어떻게 올까? 대개 찰나적이고 때론 서서히 다가오는 게 사랑이다.

 

  캠퍼스 느티나무 그늘에서 희고 긴 손가락으로 무심하게 고스톱 패를 돌리는 여학생의 특이함에 남학생은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도무지 그 긴 손가락과 고스톱과 무심한 얼굴이 왜 떠오르는지도 모르는, 그 부조리한 상황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며 단박에 사랑에 빠져버리는 것. 거기엔 이유도 조건도 없다. 반면에 몇 년 간 알고 지내던 여학생이 서서히 여자로 보이기도 한다. 취업과 결혼을 해야 하고, 부모님과 2세 걱정도 하는 시기가 맞물려 사랑이란 감정이 자연스레 싹튼다. 이유와 조건이 충분한 사랑이다.

 

 

  사랑의 흔한 두 예를 들어 보았다. 그 중 사랑의 염결성에 더 가까운 쪽은 찰나적 사랑이다. 적확하고 조리 있는 눈을 가진 자는 즉흥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흐린 눈으로 봐야 첫눈에 반할 수 있다. 계산 없는 사랑은 ‘사랑을 하는 단계가 아니라 사랑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후자의 필요에 의한 사랑도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 시작은 ‘찰나적’ 사랑만큼 순도 높은 건 아니다.

 

 

  불교 용어 중에 돈오(頓悟)와 점오(漸悟)라는 말이 있다. 수행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단박에 깨치는 것이 돈오이고, 수행의 공을 쌓아 서서히 깨닫는 게 점오이다. 사랑으로 견주자면 돈오의 사랑이야말로 순수한 사랑의 시작이라 할 만하다. 흔히 나이 들도록 사랑 한 번 못해 봤다고 말했을 때 이는 돈오의 사랑을 못해봤다는 의미이다. 점오의 그것은 타협의 의미가 깃들어 있기 때문에 그 시작이 돈오의 사랑만큼 강렬하지는 않다.

 

 

  돈오든 점오든 그 사랑의 시작은 창대하나 그 끝은 제 각각이다. 하늘과 부처가 아닌 이상 그 사랑의 유지와 책임은 오롯이 당사자들에게 있다. 한 눈에 반하든, 서서히 반하든 서로 물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과정에 필요하다. 깨지기 쉬운 사랑의 속성 앞에서 갈등하는 갈대로 스치듯 스미듯 살아가는 게 필부필부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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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01-21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님, 오랜만에 인사 드려요. 제가 좀 뜸했지요.^^
돈오와 점오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시네요.
사랑의 본질도 과정도 중요하겠어요.
태그의 두번째, 심오한걸요. 죽은사랑도 견디는 것.
도대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견디지 않아도 될 사항은 뭘까요? 없나봐요.ㅎㅎ
1월도 중반으로 들어섰는데 날마다 행복하게 건강하게 잘지내고 계실거라 믿어요.

다크아이즈 2013-01-24 21:59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보면 더 반갑잖아요.
그래도 자주자주 알라딘에 들러주세요.
며칠 정신 없다 저도 이제야 들렀어요.
프레님 글 보면서 공감하고, 녹음 작업도 막 상상했네요.^^*

견디는 것도 사랑이려니 하고 내공을 쌓고 있는 중입니다. 흐흐~~
그래도 사랑은 돈오지, 점오 따위가 무슨 사랑이려니 하는 맘도 여전하지요.
돈오적 사랑은 거짓을 모르지만 그 끝을 장담할 수 없고, 점오적 사랑은 구라를 연마하는 과정인데, 그게 또 짠한 거 같아요.

2013-01-22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24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수수가 붉어졌네

 

 

  모옌이 노벨문학상을 받지 않았다면『홍까오량 가족』을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화 ‘붉은 수수밭’의 강렬한 인상이 모옌의 원작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느꼈다. ‘홍까오량’은 ‘붉은 수수’를 뜻하는데, 이 책 1,2장「붉은수수」및「고량주」부분이 영화의 근간이 되었다. 하지만 영화는 어디까지나 감독 ‘장이모우’와 배우 ‘공리’를 위한 것이었다.

 

 

  관람객 입장에서 원작가인 모옌까지 주목하기는 쉽지 않다. 원작을 떠난 영화는 그 자체로 독립된 예술이기를 원하고, 개봉 당시는 모옌이 전 지구촌 작가도 아니었다. 웬만한 이슈가 되지 않고는 영화의 원작가를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모옌은 행운 작가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이란 쾌거 하나로 장이모우나 공리 못지않게 ‘붉은수수밭’ 하면 떠오르는 인물로 거듭나게 되었으니.

 

 

  연작 중편들로 이루어진『홍까오량 가족』은 항일 무장 투쟁, 애달픈 민중들의 삶, 한 가족의 애증사 등이 일렁이며 붉어가는 수수밭 사이로 교차 편집되어 있다. 읽을수록 울림이 큰 것은 우리의 일제강점기 역사 또한 그 작품 속 궤도와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서걱대는 수수잎에 손가락이 베일만큼, 익어가는 고량주에 온몸이 취할 만큼 아련하고 강렬한 이야기지만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식은 조금 아쉬웠다.

 

 

  소설가를 이야기꾼과 문장꾼으로 나뉜다면 모옌은 전자에 속했다. 할 말이 넘치다 보니 구성이 산만해져버렸다. 중복되는 에피소드와 반복되는 묘사 때문에 피로함이 몰려왔다. 생생하고 사실적인 표현도 너무 잦으면 독자는 지루해진다. 몸과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자유롭게 쓰는 작가이다 보니 곁가지치기를 덜한 것 같다.

 

 

  목마르다고 끊임없이 두레박질만 할 수는 없다. 효율적인 두레박질은 목을 충분히 축일 때까지 만이다. 선명한 이야기에 분명한 호흡을 기대한 독자라면 책 두께가 조금 더 얇아도 좋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홍까오량 가족』은 이야기와 구성을 동시에 바라는 걸 버린 뒤에야 더 잘 몰입하게 되는 작품이다.

 

 

 

2. 괜한 걱정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을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많은 시간을 걱정하는데 허비한다. 건강 문제부터 시작해 밑도 끝도 없는 온갖 걱정을 달고 산다. 하지만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다. 오히려 걱정한다는 그 걱정 때문에 골치만 아플 뿐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 역시 걱정이 많다. 가족들이 좀 더 건강하기를 바라고, 자식들 미래가 평탄하기를 원하며,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기를 욕망한다. 얼마나 현실적 이기심으로 가득한 걱정인가.

 

 

  알고 보면 모든 걱정은 괜한 짓거리이다. 그 말 속엔 미래적 함의가 숨겨져 있다. 오지도 않은 일을 가불해서 생각하는 것이니 비생산적인데다 영혼을 갉아먹는 행위이다. 과거를 말할 때 우리는 걱정이란 표현을 쓰지는 않는다. 과거는 ‘후회’는 할 수 있을지언정 ‘걱정’할 대상은 아니다. 걱정이란 오롯이 현재 이후의 다가오지 않은 시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어나지도 않은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지나지 않으니 얼마나 쓸모없는 짓인가.

 

 

  한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걱정을 끌어안고 산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끊임없이 되새기고, 법륜 스님의 강의를 열심히 쫓아다니고, 혜민 스님의 어록을 쉴 새 없이 밑줄 그어도 걱정에서 해방되기는 어렵다. 담백하게 자신을 버리는 게 쉽지는 않다. 어느 누군들 자유를 얻기 위해 팽팽한 삶의 밧줄을 쉽게 놓아버릴 수 있을 것인가. 갖춘 종교인의 경지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걱정이란 일상의 부담이 많이 줄어들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하는 걱정은 타인에겐 사소하게 보일 때가 더 많다. 제 삼자에게 설득시키지 못하는 걱정은 걱정으로서의 값어치가 없다. 걱정은 부정을 전제하는 것이지 긍정을 사는 행위는 아니다. 우리가 걱정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걱정을 이만큼 하고 있다’ 는 자기 보상 심리 때문일 것이다. 소심한 자가 쓸데없이 걱정할 때 적극적인 사람은 보란 듯이 행동한다. 걱정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날들을 꿈꾼다.

 

 

 

* 홍까오량 가족 - 번역조차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종결어미 방식에 일관성이 없다. 번역의 기본일 터인데.

                         이유없이, 설명없이 내레이터의 종결어미 방식이 왔다갔다 한다.

                         원작에서 그랬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 ~습니다, ~지요, ~했다 >등이 적절한 설명 없이 마구 혼재되어 있다.

                         내가 보기에 존칭 종결어미 다 버리고 그냥 <~했다>로 통일하는 게 가장 깔끔한 것 같다. 원작가의 의중이 있었다면 부연 설명이 필요했던 부분이다. 구성이 산만한데 번역까지 정돈이 안 되니 독자도 갈팡질팡. 별 것 아닌데, 문학과지성사는 까다로운 독자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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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1-22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과 지성사, 라면 꽤 괜찮은 출판사인데요...

걱정에 대한 글에 공감해요. 저만 해도 쓸데없는 걱정을 할 때가 있어요.
"제 삼자에게 설득시키지 못하는 걱정은 걱정으로서의 값어치가 없다."
- 이 말을 제게 하고 싶어요. ㅋㅋ

다크아이즈 2013-01-24 22:12   좋아요 0 | URL
페크님, 원작이 어떤지 모르겠는데, 여하튼 부연 설명없이 종결어미를 통일하지 않은 부분은 일차적으로 번역자께서 설명 좀 해줬음 좋겠어요. 거기다 큰 의미를 두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더 큰 문제지요.

넘 쓰잘데기 없는 걱정을 달고 사는 저인지라 채찍질하고 싶었어요^^*

마녀고양이 2013-01-22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타인을 설득하지 못하는 걱정이 과연 걱정이 아닐지에 대해서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 생각으로 인해, 나 자신을 더 괴롭히게 되는게 아닐까 생각도 들구요.
아마 타자도 동일한 고민을 가진다면, 그것이 자신의 고민이라면 고민할 거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듭니다. 나의 타당화는 내가 해야지, 타인이 해주어야만 한다면 너무 힘들어요...

음, 제가 횡설수설하는 거 같아요.... 실은
바탕 화면이 제 컴터에서는 진한 감빛으로 나와서,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팜언니~ ^^

다크아이즈 2013-01-24 22:17   좋아요 0 | URL
달여우님 말씀 들으니 그렇네요. 열심히 그 쪽으로 연구하시다 보니 절로 깊은 생각이 따라오는 걸까요?^^*
<내가 걱정되니 걱정하는 것>이지, 남들이 <그 걱정은 걱정 아니다>라고 말한다고 그 말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그 말씀이지요? 이렇게 명쾌한 답을 얻다니? 그럼 걱정한다고 스스로 넘 쫄지 않아도 되지요? 감사합니다.홍홍~~
 

 

 

 

  몇 개월째 왼쪽 어깨가 아프다. 흔히 말하는 오십견이 온 건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한데 점점 통증이 심해진다. 팔을 뒤로 젖히거나 위로 올리기가 힘들고, 밤에는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욱신거린다. 병원 가는 걸 싫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도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겨우 병원을 찾는다.

 

 

  석회석건염이란다. 어깨 힘줄 사이에 돌이 생기는 것인데 노화현상 중 하나란다. 뼈 사진을 보니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석회석이 쌓여있다. 어깨를 움직일 때마다 그 돌이 다른 조직을 긁어 대서 그렇게 아팠던 것이다. 빨리 왔으면 치료 기간을 줄일 수 있었을 거라고 담당의가 말한다.

 

 

  치료과정의 번거로움과 시간적, 물적인 부담에 앞서 부끄러웠다. 병원 가기가 귀찮거나 두려운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의 하나가 자가진단이라는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별 거 아닐 거야’와 ‘큰병이면 어쩌지?’ 사이를 왔다갔다하다 끝내 별 것 아닐 것이라는 자기합리화를 꾀하고 만다. 그 시간에 병원 뛰어갈 것이지, 자가진단을 하고 처방전까지 스스로 써댄다. 그러는 사이 몸과 마음은 황폐해진다.

 

 

  합리적인 것 같으면서도 모순투성이인 게 사람이란 동물이다. 제 삼자의 일일 때는 대개 객관적이고 옳은 답을 아주 쉽게 내놓는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처한 상황’으로 바뀔 때에는 모범적이고 지당하신 그 답안들은 쓸모가 없게 되어버린다. 답안과는 상관없이 끝까지 미루고, 내 식으로 판단하다 일을 그르치고 만다.

 

 

  좋은 일은 예고 없이 와도 안 좋은 일은 예고 없는 게 드물다. 어느 날 갑자기 애인이 헤어지자고 하는 일은 없으며, 충분히 준비했는데 시험을 망치는 일은 없다. 인간에겐 직감이란 게 있어, 변심한 상대의 행동을 눈치 챌 수 있고, 덜한 공부로 생기는 심리적 불안을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을 애써 무시하거나 자기 식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일이 커진다. 모든 일은 예고할 때 빨리 대처하는 게 낫다. 미루어 판단하다 보면 너무 늦다.

 

 

 

 

 

 

 

 

 

 

 

 

 

 

*인간은 몸의 약이 듣지 않음을 알게 되면 마침내 마음의 약을 찾기 시작한다.

-파샤르트

*병도 긴 눈으로 보면 하나의 수양이다.

- 허준

*어리석은 일 중에 가장 어리석은 일은 이익을 얻기 위해 건강을 희생하는 것이다.

- 쇼펜하우어

*질병은 천 개나 있지만 건강은 하나밖에 없다.

- L. 뵈르네

*질병은 몸의 고장이 아니라 마음의 고장이다.

- 에디 부인

*질병은 인생을 깨닫게 하는 훌륭한 교사다.

- W.NL. 영안

*인간은 몸의 약이 듣지 않음을 알게 되면 마침내 마음의 약을 찾기 시작한다.

-파샤르트

*인간은 타인의 사소한 피부병은 걱정해도, 자기의 중병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 탈무드

*건강은 근로에서 오고 만족은 건강에서 온다.

- 스마일즈

*인간은 자신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건강한데도 불구하고 죽어간다고 생각하며, 또 죽어가면서도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 파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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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1-18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그런 일이 있었군요. 걱정이 되네요.

*어리석은 일 중에 가장 어리석은 일은 이익을 얻기 위해 건강을 희생하는 것이다."
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가장 와 닿네요.
저도 예전에 비해 몸이 많이 안 좋아졌는데, 책을 많이 읽어서라고 봐요. 어깨와 목에 디스크 있고 안구건조증 있고 그래요. 그래서 한때 책을 끊어야 하나, 라는 생각마저 했답니다.
이젠 무리하지 않고 조금씩 보는 편이에요. 무리하면 벌써 몸의 신호가 오거든요.
컴퓨터 사용도 많이 하면 신호가 와요. 어깨 아프고 눈이 피로해져요.

팜 님, 무리하지 마시고 몸을 많이 아끼세요. 빨리 완쾌되시길 빌겠습니다.
우리 건강히 오래 오래 이곳에서 만나며 살자고요.
그럴려면 지금부터 건강 관리에 힘써야 해요, 우리.^^

2013-01-20 08: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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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8 13: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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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0 08: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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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8 18: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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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0 08: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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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0 17: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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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1 02: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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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1 19: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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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01-21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깨나 허리 쪽으로 아프다는 분들이 주변에 정말 많더라구요.
팜므님도 아무쪼록 빨리 나으시길 바랄께요~

다크아이즈 2013-01-24 22:24   좋아요 0 | URL
오렌님 말씀처럼 병원 가면 그런 분들 천지빼까리(!)지 뭡니까.
낫지도 않고, 고질병 될까 걱정이옵니다.
오렌님 어깨는 안녕하시겠지요?^^*
 

 

 

 

  1. 애도의 방식

 

 

  누군가 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눈물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내가 아는 한 그미는 효녀였다. 오랜 병구완을 한 이도, 임종을 지킨 이도 그미였다. 나는 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은 게 아니었다. 어머니 곁에서 이미 숱하게 울었기 때문에 더 이상 흘릴 눈물조차 남아 있지 않았던 것.

 

 

  눈물과 애도는 크게 상관이 없다. 눈물을 많이 흘린다고 애도가 깊은 것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애도가 얕은 것도 아니다. 애도의 양상은 다양하기 그지없다. 애도란 그 대상과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심리적, 정서적 상태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를 읽는다. 어머니에 대한 애도 단상집이다. 사진으로 어머니를 추억한『밝은 방』을 읽었을 때 이상으로 신선한 충격이다. 스물셋에 전쟁 과부가 되어 일흔넷에 죽은, 그의 모든 것이었을 어머니를 작가는 애도한다. 노트 네 조각 낸 메모지에다 마음 깊이 어머니에 대한 단상을 이어간다. 이 년에 걸친 그의 일기는 어머니에게 다가가고자하는 작가의 내밀한 어록이다.

 

 

  어머니에 관한 그 어떤 형태의 문학적 완성품을 생각하면서 메모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이 글이 문학이 될까봐 경계하다가도 결국 문학이 될 거라는 모순을 예감하기도 한다. ‘내 말들이 문학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런데 다름 아닌 문학이야말로 이런 진실들에 뿌리를 내리고 태어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라고 적는다.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애도일기는 문학적 성과물로 재탄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다. 한 가지 안심인 것은 애도일기가 그 어떤 다른 형태의 문학 작품으로 가공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그의 죽음이 앞당겨지지 않았더라면 그의 애도 일기는 새로운 형태의 문학 작품이 되는 바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완성된 문학작품보다 때로는 날것의 육성이 더 가슴을 후벼 팔 때가 있다. 온전히 일기로만 살아남은 애도일기를 읽는 것은 독자로서는 행운이다.

 

 

 

 

 

 

 

 

 

             다다다            

<아들이 보는 만화영화 다다다, 이런 아들, 무려 고등 졸업반이다 ㅠ>

 

 2. 열정이 더 중요하단다, 아들아

 

 

  나 어릴 적,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이 가장 부러웠다. 시골에서는 피아노 교습소가 있는지도 몰랐다. 고작해야 어깨너머로 배운 풍금으로 기본 화음을 넣어 '꽃밭에서' 정도를 치는 정도였다. 그것도 감지덕지였다. 도시로 나왔을 때는 한 반에 예닐곱 정도는 피아노를 배우는 것 같았다. 역시 부러웠다. 하지만 한 번도 부모님께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얘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웃자란 눈치가 알아서 욕망을 제어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피아노를 배우지 못한 건 관심과 열정 부족 때문이었다. 간절히 바랐다면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었고, 그도 아니라면 다른 길도 있었다. 심지어 성인이 되어 경제력이 확보되었을 때라도 배우면 그만이었다. 피아노를 치고 싶었던 게 아니라, 피아노를 칠 수 있는 그 환경을 부러워했는지도 모른다. 간절히, 열렬히 원하면 이루게 되어 있다. 그 가난하던 시절, 열성적인 남자 동창은 엄마를 졸라 피아노를 배웠고, 끝내 성악가가 되었다. 진실로 원한다면 환경은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렇더라도 그 옛날처럼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하고 싶었던 걸 못했다는 소리를 자식에겐 듣고 싶지 않다. 그래서 방학 중인 아들녀석이 무에타이와 드럼, 영어와 일어를 배우고, 여행과 헬스도 하겠다고 했을 때 '무조건 오케이'라고 답했었다. 하지만 방학 전의 욕망은 다만 희망 사항이었을 뿐, 막상 아들은 그 어느 것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방구들 한 쪽을 차지하고 그 동안 못했던(?) 게임만 즐긴다. 그토록 원했던 건전한 활동(?)들은 차일피일 미루기만 한다. 겨우 영어 공부한다고 제스처를 취하는데 마뜩잖기만 하다.

 

 

  언제나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하기 쉬운 게 사람이다. 간절함이 없는 시도는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다. 성과를 이루는 데는 환경이 아니라 의지가 중요하다. 내가 피아노를 끝내 배우지 못한 것은 부모 탓이 아니라, 내 바람이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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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5 09: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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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6 09: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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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01-15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악가가 된 동창분의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공자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ㅎㅎ

(子曰 三軍 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삼군의 사령관인 장수를 빼았을 수는 있지만 필부의 뜻을 빼앗을 수는 없다.)

만약에 어떤 뜻을 세우고 밀고 나가다가 이런저런 사정상 그 뜻을 접었다면, 그건 애초부터 '진정한 뜻'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겠지요.

다크아이즈 2013-01-16 09:47   좋아요 0 | URL
오렌님 절대공감이요. 사정상 뜻을 접으면 그건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니었음을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진작에 공자님께서 저런 말을 했다는 게 약오르옵니다.^^*

2013-01-15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6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