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 범우사상신서 19
콜린 윌슨 지음 / 범우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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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깊게 너무 많이




  추석이 가까워온다. 짬 날 때마다 명절맞이 집안 청소를 해왔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차례는 우리집에서 지낸다. 제사나 차례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큰형님의 제안으로 삼 년마다 한 번씩, 추석은 나머지 형제들 집에서 지내기로 한 것이다. 여자로서 형님의 그런 심정을 백 번 이해한다. 아직까지 명절은 여성들에게(특히 며느리에게) 좀 더 가혹하다.

  진심이 사라진 차례 상, 의무만 남은 식구들은 제수(祭需) 높이만큼의 마음 부담을 느낀다. 누군가 이건 아니야, 라고 외칠 용기가 없기 때문에 저마다 가면 하나씩을 쓰고 조상 앞에 엎딜 뿐이다. 명절이 여성에게 고달픈 건 육체적 노동 때문이 아니라 심리적 불온을 조장하는 저 명절 지내기 방식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 모순을 느끼는 누구라도 쉽게 답을 내지 못하는.

  어쨌든 명절 준비 대청소는 주방에서 시작해 마루를 거쳐 드디어 책방까지 왔다. 엉망진창인 책꽂이를 보니 조상들 차례 준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책 귀신부터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버리기 좋아하는 나는 신이 나서 불필요한 책을 빼내서 묶는다. 아무리 과감하게 떠나보내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책이 나오기 마련인데, 그 중 하나가 ‘아웃사이더’(콜린 윌슨, 범우사)이다. 책방 정리를 할 때마다 버려야 할 책과 남겨야 할 책 사이에서 고민하는데, 아직까지 이 책은 단 한 번도 그 경계에 내몰린 적조차 없다. 그만큼 아끼는 책이다.

  내가 가진 ‘아웃사이더’는 1989년 판이다. 나는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온 때의 풍경을 또렷이 기억한다. 변변한 애인도, 뚜렷한 직업도 없던 그 막막한 가을(아마는 추석 무렵이었을 게다) 시를 배우러 가던 버스정류장 좌판에서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를 발견했다. 그 책에 대한 어떤 정보도 갖지 않은 채였다. 비교적 새 책이었는데, 정가 사천 원인 것을 단돈 천원에 팔고 있었다. 책 제목 ‘아웃사이더’에서 느꼈듯, 패배자나 열외자를 위한 위안서 쯤으로 생각하고 냉큼 집었던 게 틀림없다.

  하지만 첫 장을 펼쳤을 때 그런 내 생각을 거둬야했다. 앙리 바르뷔스의 소설 ‘지옥’을 언급하는 콜린 윌슨은 아웃사이더야말로 철인(哲人)임을 강변하고 있었다. 콜린 윌슨이 정의하는 아웃사이더는 주류에 끼지 못하는 주변인이 아니라 대중 다수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해 우뚝 선 자였던 것이다. 철저하게 자신의 고독을 응시할 줄 아는 사람, 그러다가 끝내 신이 되는 경지에 이르는 사람만이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 범주에 들어 갈 수 있어 보였다. 단순한 약자나 소수자를 넘어선, 깊은 파장과 울림을 동반하는 부류가 아웃사이더였던 것이다.

  콜린 윌슨은 가난 때문에 정규 학교를 거의 다니지 못했다. 독학으로 쌓아올린 문학과 철학에 대한 지식으로 자신 만의 비평 영역을 가다듬었다. 스물 넷, 인생을 알기엔 너무 빠른 나이였지만 그에겐 그것이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당시 유행하던 실존철학의 인물들을 그토록 실감나게 자신만의 철학으로 가공한 사람은 흔치 않았다.

  ‘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는 것 같다. 나는 너무 깊게, 그러면서도 너무 많이 본다.’ (14쪽) - 콜린 윌슨은 아웃사이더를 정의하기 위해 이처럼 앙리 바르뷔스의 ‘지옥’의 일부분을 인용했다. 책을 펼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누가 뭐래도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는 ‘너무 깊이, 너무 많이 보는 자’다. 그가 언급한 수많은 문학작품 속 등장인물과 현실에서 우뚝 선 예술가들도 따지고 보면 사물이나 대상을 너무 깊이 너무 많이 본 자들이다. 예를 들면 이방인의 뫼르소도 구토의 로깡뎅도 철학자 니체도, 화가 고흐도 단순한 소외자가 아니라 진정한 아웃사이더였던 것이다. 사회적 금기가 도덕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채 개인적 가치와 상충할 때,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는 내게 한줄기 빛처럼 다가왔다.

  그나저나 너무 깊이, 너무 많이 보는 자 있어서, 여성들의 명절 증후군 하소연을 콜린 윌슨적 시각으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명절맞이 대청소는 짧고, 진정한 아웃사이더의 길은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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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 - 완전판 문학사상 세계문학
안네 프랑크 지음, 홍경호 옮김 / 문학사상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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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마로니에




  안네의 일기에 나오는 나무가 부러졌다. 폭풍우 지난 뒤였다. ‘안네의 일기’(문학사상사, 1995)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학작품 중 하나이다. 그러다 보니 안네에 관한 소식이라면 작은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외신이 전송한 사진을 들여다본다. 밑둥치에서 일 미터 정도에서 부러진 나무는 허연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 채 널브러져 있다. 150년이나 된 아름드리나무였다. 안네가 은신처 뒤뜰을 내려다보며 자연의 소중함과 행복한 미래를 얘기하던 그 나무였다.

  사실 이번 폭풍우가 아니더라도 머지않아 쓰러질 나무였다. 곰팡이와 이끼로 이미 몸통의 절반이 썩어가고 있었다. 쓰러질 경우 주변 건물을 덮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에 베어질 운명에 처했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와 안네 프랑크를 상징하는 산 증거라며 주민들이 반발해 법정 공방 끝에 살아남은 터였다. 관리 받은 나무는 앞으로 평균 십 년은 버틸 것이라 했다. 하지만 철제버팀목, 영양제 등으로 보호 받은 지 2년 만에 강풍에 쓰러지고 말았다.   

  매체들은 하나같이 이 나무를 밤나무로 보도했다. 밤나무가 암스테르담에서는 가로수로 쓰이기도 하는구나,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 나무는 마로니에였다. 마로니에의 영어명이 horse chestnut이다 보니 번역(중역) 과정에서 실수가 있은 것 같았다. 혹시나 싶어 빛바랜 안네의 일기를 찾아 책꽂이를 뒤졌다. 내 책엔 분명 마로니에로 나와 있다. 은신처의 유일한 또래 이성인, 사랑하는 페터와 창가에 앉아 안네는 바깥 풍광을 감상한다.

  ‘그 때부터 우리 둘은 파란 하늘과 잎이 떨어진 뒤뜰의 마로니에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가지와 가지 사이에는 빗방울이 반짝이고, 하늘을 나는 갈매기와 그 밖의 새들이 햇살을 받아 은색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게 생기 있게 약동하며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어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우리는 잠시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271쪽)

   페터가 장작을 패러 나갈 때까지 그 둘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바깥 파노라마를 맘껏 즐긴다. 무심결에라도 입을 열어 이 한때의 설레는 마법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 둘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바깥 풍경과 만나 그 충만한 감정이 절정에 이른다. 이 순간, 페터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안네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소중한 자연이 배경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은신처의 안네는 가끔 열린 창을 통해 바깥 세계와 소통했다. 암스테르담 시가 너머 아득한 지붕의 물결, 멀리 보이는 수평선 등을 볼 수 있는 한 결코 불행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뇌에 가장 좋은 묘약은 밖에 나가는 것이고, 자연이야말로 그 위안이라고 적고 있다. 

  안네의 일기는 무삭제 완전 판을 읽어야 제격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여타 안네의 일기가 모두 덜 된 밥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안네의 일기를 처음 출간할 당시, 안네 아버지와 출판사에 의해 일정 부분 왜곡되고 삭제되었다. 은신처 사람들 중 유일한 생존자인 아버지로서는 안네의 사생활, 가족의 애증, 이웃과의 갈등 등이 노출되기를 원치 않았다. 그러다 보니 유대인 대학살의 만행과 그 희생자로서의 안네만 부각되었다.

  하지만 원래 안네의 일기에는 그 이상이 담겨있다. 폐쇄된 공간 속에서 십대 소녀가 겪어야 했던 희로애락의 구체적 화법이 빼어난 감수성에 의해 점점이 묻어나온다. 인간의 오욕과 자연의 위대함을 성찰했던 것이다. 은신처의 생활이 절망적이고 구차할수록 안네는 창밖 풍광 너머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 희망이란 물결이 암스테르담 지붕들과 먼 수평선과 햇살에 나부끼는 뒤뜰의 마로니에로 나타났다. 구름 낀 우울의 날들, 비록 태풍에 허리 잘리는 운명을 맞이하더라도 내 안의 마로니에 한그루를 심어보는 건 순전히 안네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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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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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에는 원북 행사의 일환으로 독서공개토론회가 열렸다. 시립도서관 소속 연합 독서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시민들과 함께 소설 덕혜옹주에 대해서 토론했다. 토론회장 분위기는 소박하나 진지한 열정으로 가득했다.

  경술국치 100주년,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 되는 올해 덕혜옹주에 관한 소설이 원북으로 선정된 것은 어쩌면 지당한 사회적 요청인지도 모른다. 가슴 아픈 우리 근대사, 그 질곡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온 황족과 그 주변부를 조명함으로써 국가와 민족의 소중함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모든 역사를 거시적 시각으로만 보는 것을 경계하는 쪽이다. 모든 잘못된 역사의 피해자는 결국 개별자이다. 물론 조국이나 민족(집단) 없이 구성원 개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잘못된 혹은 치욕스런 역사 속에서 무조건 애국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시선엔 거부감이 든다. 숱한 전쟁 역사 속에서 가해국, 피해국으로서의 역사의식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각 개별자의 고통과 실존이라고 생각한다.  

  덕혜옹주를 읽으면서도 그런 미시적인 사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몰락한 대한제국 황족으로서 덕혜옹주가 겪어야 했던 고통은 당시 집권층의 운명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독자로서 덕혜옹주는 슬픔과 답답함과 분노 지수를 번갈아 갈아타게 하는 인물이었다. 일본순사에 의해 위안부로 끌려갈 뻔한 복순을 구해주는 장면에선 올곧은 성정과 민초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황족으로서의 위엄도 맛볼 수 있었다. 원하지 않은 결혼 생활, 남편 소 다케유키와 딸 정혜의 완벽한 이해를 구하지 못한 것은 같은 여자로서 충분히 연민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작가의 말처럼 그녀의 가장 큰 불행은 황족 신분이었다는 것. 하지만 자신의 운명을 조금이라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했다면 나라 잃은 설움 뒤에 숨은 큰 에너지를 제대로 발휘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당시 역사적 진실을 떠나 어차피 소설이니 덕혜옹주의 캐릭터가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넘어 구국의 염원과 민초들의 삶에 대한 역동적 지지로 승화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조선의 운명을 뒤바꿔놓을 만큼 강인하지 못할 캐릭터의 덕혜라면 차라리 개별자로서의 갈등을 감정을 배제한 채 객관적으로 그려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인 복순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작가는 복순을 철저하게 덕혜옹주를 위한 희생양으로 삼았다. 독립투사 자녀인 복순은 충분히 독립적인 개체가 될 수 있는 피를 타고 태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황족에게 충성하는 것이 곧 나라를 구하는 일’이란 작가의 의도대로 복순은 피동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일본인에게 강제추행을 당해도, 일본인의 피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낙태를 감행하는 장면에선 모성보다 조국애의 이데올로기의 우위를 말하는 것 같아 심적으로 불편했다. 복순을 안일하게 죽음으로 내몬 것은 민초들의 운명을 황족사 안에만 가두려 한 것 같아 갑갑하기도 했다. 개별자의 존엄성이 때에 따라 한 집단의 부속품으로 전락해도 마땅한 것인가 라는 생각에 미치자 내가 너무 허무주의에 경도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 덕혜옹주 남편인 소 다케유키, 딸 정혜도 개별자로 돌아가면 모두가 잘못된 역사의 피해자였다. 자발적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그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소 다케유키는 나름 최선을 다했다. 역사의 굵은 수레바퀴를 떠나 그 구성 집단 속 개별 신분으로 돌아가면 모두가 희생자일 뿐이다. 한마디로 전쟁을 원하는 소수 집단을 빼면 대부분의 개인은 희생자이고 피해자일 뿐이다. 원북 한 권을 통해, 우리 근대사의 비극적 단면을 조명하고, 국가 또는 민족 나아가 개별자의 운명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거리를 갖는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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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의 진실
마이클 코더스 지음, 김훈 옮김 / 민음인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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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깃발 

 

 


  깃발 나부끼는 세상이다. 집 나서자말자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각종 깃발일 정도이다. 대로변 사거리, 전봇대나 가로등 기둥 사이를 가로지르는 형형색색의 플래카드들. 볼 살 확 빼드립니다 - 경락마사지를 권유하는 문구부터, 뼈다귀 해장국집 신장개업 안내를 지나, 스포츠 댄스 회원 모집에 이르기까지 펄럭이는 깃발은 현대인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과연 제멋대로 휘적대는 저 깃발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 가진듯한 유명 여성 산악인도 그 깃발의 끈에서 자유롭지 못한가 보다. 붉은 깃발 하나가 영웅시된 그 산악인의 발목을 잡아당기고 있으니. 8000미터 이상 히말라야 14개 봉우리를 거침없이 정복해 국민적 희망으로 떠오른 그미를 둘러싼 의문이 공중파 방송을 탔다. 14좌 중 적어도 칸첸중가의 정상은 밟지 않았을지도 모른단다. 그 몇 가지 증거 중 하나가, 가지고 간 깃발이 정상보다 백여 미터 아래에 돌쩌귀로 네 모서리가 가지런히 눌려 있었다는 것. 그 깃발은 등산 당사자가 중간에 잃어버렸다고 했다. 하디만 정작 정상 정복 증거 사진 속에서는 가슴팍에 고스란히 품어져 있었단다.

  방송을 보면서 내 관심은 등정 사실 여부가 아니었다. 정확한 내용은 전문가들의 판단과 당사자들의 양심에 의해 판가름 날 것이다. 등반에 문외한인 나로선 그 멀고 힘겨운 고산 등반 중에 깃발을 몇 개씩이나 품고 간다는 사실만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민족주의 이념이 팽배한 우리네 정서이니 태극기 정도는 애교로 봐 줄 수 있을 것 같다. 한데 품고 간 깃발은 태극기, 후원업체, 방송사, 대학 모교 등 네 개나 되었다.

  때에 따라 지녀야 할 깃발이 더 늘어날 수도 있겠다 싶어 고산 등반에 관한 뉴스를 검색해보았다.  도움 주는 이가 늘어날 경우 품고 가는 깃발도 더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어떤 남성 산악인의 경우 로고 박힌 후원사들의 깃발 무게만 해도 장난이 아니라고 토로하고 있었다. 정상에서 깃발 하나하나씩을 꺼내 현장 인증 사진을 찍어줘야 한다. 자신들의 등반을 도와준 후원업체들을 서운하게 할 수는 없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 서로가 이기는 게임이고 인지상정처럼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를 나무랄 수도 없다. 에베레스트 같은 고산 등반일 경우 엄청난 비용이 드는 게 사실이니까. 

  그렇다면 예전에도 후원사들의 깃발이 히말라야 정상에 나부꼈을까? 우리나라 최초로 히말라야 등정에 성공한 고상돈 때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때 사진을 보니 오른쪽 손엔 태극기, 왼쪽엔 네팔 국기를 들고 만세를 하고 있다. 당시 후원을 아끼지 않았을 후원사의 깃발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후원사가 이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대놓고 ‘우리가 물주요’ 하고 깃발 나부껴주기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후원사들의 존재를 깃발로 알리는 것이 산악계의 오래된 전통이나 관습은 아니었던 것처럼 보인다. 산이 있으니 거기 올랐을 뿐이라는 순수함이 어느 정도는 통하는 시절이었다. 

  등산 업계 얘기만이 아니다. 자고로 우리는 깃발 너무 나부끼는 세상에 살고 있다. 깃발의 효용은 눈에 띄는 거다. 눈 가진 자들이여, 제발 이 깃발 한 번 봐 주오. 대중을 향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쳐대는 것이 깃발의 운명이다. 어쩌면 문자 이래로 가장 가엾고 비열한 선전도구로 진화해온 것이 깃발인지도 모르겠다. 현대 사회는 인증 사회다. 툭 하면 뭘 증명하란다. 관공서 보고를 해도 증거를 원하니 깃발 내걸린 행사장 앞에서 사진을 떡하니 박아야 하고, 유명 인사의 강연회에서도 깃발을 내걸어야 그럴듯해 보인다. 

  깃발 천국 세상, 그토록 많은 깃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실제로 나는 그들의 물리적 운명이 궁금한 적이 있었다. 전시회 카탈로그 작업을 하는 사진작가가 보여준 사진 한 장에서 그 궁금증이 풀리는 동시에 약간의 감동을 느꼈다. 염전 물막이용 보자기로 재탄생한 깃발에서 그 진정한 쓰임새를 발견한 것이다. 사진을 보는 순간 깃발이야말로 재활용될 때 더욱 빛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염전 물막이가 되거나 장바구니와 낙엽 담는 마대로 거듭나거나 양식장 로프로 가공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깃발은 펄럭여야만 그 쓰임새가 최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재활용될 때 더 숭고한 밥벌이가 되기도 한다. 저 차고 넘치는 깃발의 시간들을 넘어서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순수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끼는 세상에서 나는 읊조린다. 사람들아, 깃발이 석탄광 정도라면 폐 깃발이야말로 노다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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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지다 - 상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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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보다 가족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망설이고 주저할 때 누군가 ‘이 한 권의 책’을 권해 준다면? 그리하여 읽고 났을 때 한낮의 무더위 속 소나기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면? 권한 이도 읽는 이도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이다.

  얼마 전 한 젊은 동화작가의 소박한 강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어린이 독서클럽 회원들과 그 작가를 만나러 갔다. 부산스런 한두 아이가 설사라도 난 것처럼 번갈아 강연장 안팎을 들락날락하는 바람에  애가 쓰인 나는 집중하기가 조금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그날 얻은 가장 값진 선물은 한 일본 작가를 뒤늦게 알게 된 일이다. 그날 동화작가는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북하우스, 2004)라는 소설을 가장 감명 깊은 작품으로 소개했다. 동화책을 답으로 준비할 것 같았던 내 예상을 뒤로 하고 작가는 일본소설을 추천했던 것이다. 신뢰할만한 작품을 쓰는 작가가 권하는 책이라면 얼른 사서 읽어도 실망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날 당장 책을 주문했다. 결과는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무더위 속에서 첫 대면한 아사다 지로는 숲 깊고 바람 서늘한 휴양 섬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해주었다. 두 권으로 된 책은 저물어가는 막부 시대의 한 사무라이의 개인사와 심상에 관한 것이었다. 130여 년 전 막부시대가 막을 내릴 즈음의 격동기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요시무라 간이치로는 실존인물이란다. 패전을 앞둔 전투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한 하급 사무라이 요시무라는 원적지로 기다시피 피신해온다. 그는 천황을 모시고 양놈을 배척한다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며 원적지를 이탈한 배신자였다. 막부의 깡패집단이나 마찬가지인 신센구미 일원이 된 그의 탈번(脫藩) 이유는 단 한 가지, 돈 때문이다. 아니, 사랑하는 아내와 세 명의 자식이 먹을 밥 때문이다. 아내가 살림하고 자식이 배곯지 않도록 뒷받침 해주는 것만이 사무라이로서 그의 존재이유이다.  

  기왕의 작품에 등장하는 마초적이고 영웅적인 사무라이 세계가 아닌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차별이자 미덕이다. 번듯해 보이는 명예는 밥을 보장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아내와 세 자녀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사무라이의 기본정신인 충의를 저버릴 수도 있는 것. 생활인으로서, 가장으로서 가족에게 충실한 것이 더 중요한 삶의 가치가 아니냐고 작가는 말하는 것 같다. 불명예와 바꾼 밥이야말로 소박하나 숭고한 삶의 방식이 아니냐고 절절한 펜으로 독자의 감성을 자극해댄다.

  작가가 변주하는 요시무라의 독백과 주변인물들의 회고담은 일본 근대사의 큰 물줄기 속에서 시종일관 소박한 삶에의 지향을 추구한다. 삶의 정의는 무엇인가? 사무라이의 가치는 무엇인가?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 대의명분을 위해 기꺼이 할복하는 것? 천만에! 하급 사무라이인 요시무라의 행적을 좇는 작가는 그것을 오로지 가족애에 둔다. 어디에도 무사로서의 길들여진 위엄과 충성의 이데올로기가 도드라지지 않는다. 처절하고 절실한 가족애야말로 사무라이들의 기저를 지배하는 인간적인 꿈이라고 말한다. 

  사무라이 요시무라는 생활인으로 돌아가면 일반인들의 정서와 다르지 않다. 남의 피를 거둔 칼이 번 돈으로 아이와 아내가 먹을 쌀을 구한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바보가 되어도 무시를 당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푼돈을 아끼느라 이발을 제때 하지 못하고, 차림새는 추레하기 그지없다. 비루하기 짝이 없는, 하지만 잘 웃는 이 수전노 사무라이는 가족에게 돈을 부칠 때 가장 행복하다. 이런 요시무라를 누가 감히 탓할 것인가.

  ‘높으신 분들이 한결 같이 말단 무사에게 죽어라 죽어라 다그치는 것은 스스로 죽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던가. 전장에서 죽는 것이야말로 무사의 영예라니, 대체 어느 누가 그런 바보 같은 말을 시작했단 말인가. 공자님은 그런 말씀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주군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라고는 하셨어도 충효를 위해 죽으라고는 하지 않으셨어.’ (237쪽) 

 가족애를 가장 우선에 두는 사무라이로서의 삶이 쪽팔리는 가치라면 당신의 그 위대한 가치라는 게 무엇인가, 라고 허세부리는 사람들에게 작가는 팔을 걷어 부칠 기세다.

  오류 많은 사무라이의 길을 걸었지만 요시무라의 삶을 관통하는 자세에는 거짓이 없었다. 사랑을 지켰고, 자식을 건사했으며, 우정을 사수했다. 크게 얘기하고 그럴듯하게 포장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종으로 이 책은 읽힌다. 개별자의 존재 가치야말로 당당히 보호 받는 세상 그것이 정의여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빨 빠진 칼에 스스로 져서 끝내 이기는 요시무라의 절절한 울림에 정신없이 밑줄 긋는 한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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