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진경문고 5
정민 지음 / 보림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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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너무 길다

 

 

  창 너머, 겨울비 추적추적 내린다. 한낮인데도 잿빛 기운에 겨운 자동차들은 미등을 켠 채 빗속 행렬을 잇는다. 저 질척거림 속 역동의 파노라마가 주는 청각 이미지도 만만찮을 터인데 실내는 조용하기만 하다. 빗소리나 자동차 소음 심지어 작은 바람결조차 새어 들지 않는다. 날로 진화하는 창호 시스템 기술 덕에 방음 효과를 톡톡히 보는 셈이다. 태초에 소리라는 개념이 없었다는 듯, 저 모순되게 펼쳐지는 적요의 파노라마가 신기하기만 하다. 뮤트 상태에서 아주 역동적인 텔레비전 화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천식 기침과 만성 비염후유증으로 청력이 약해진 탓도 있겠지만, 소리 없는 풍경으로만 스치는 저 ‘부산한 고요’를 맘껏 즐겨본다.

 

 

  따뜻한 물 한 잔으로 기침을 누그러뜨리며 창밖을 내다본다. 독서 모임 아이들을 기다리는 중이다. 책 좋아하던 실학자 이덕무는 ‘기침을 앓을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가 목구멍의 걸림돌을 시원하게 뚫어 괴로운 기침이 갑자기 사라져버린다.’고 했다. 하지만 소리 내어 읽지 못할 정도로 내 목은 뻑뻑해져있으니 그 말도 위로가 되지는 못한다.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기침은 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평생 따라다닐 성가신 친구가 되어 버렸다. 며칠 새 컨디션은 더 나빠져 입술마저 부르텄다. 그래도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를 읽기로 했으니 기운을 내본다. 머리며 어깨에 내려앉은 겨울비를 털어내며 아이들이 자리에 앉는다.

 

 

  시에 관한 책 토론답게 아이들이 좋아하는 시나 책에 대해서 말문을 트기로 한다. 맏언니 같은 세온이는 론다 번의 『시크릿』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단다. ‘좋은 생각은 모두 강력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약하다고 우주에 선언하라’는 구절이 맘에 들어 메모장에 옮겨 놓았다나. 어라차, 시작부터 오늘 토론 주제의 중심부에 가 닿는구나. 정민 선생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도 그런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가. <패랭이꽃>을 지은 정습명과 <시골집의 눈 오는 밤>을 노래한 최해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았다. 패랭이처럼 작지만 당당하게 살아가리라는 긍정의 삶을 노래한 정습명은 임금의 총애를 받으며 평탄한 삶을,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자의 우울한 자화상을 읊은 최해는 불우한 생을 살았다. 긍정은 명랑을 낳고 부정은 비애를 낳느니라. 선현의 예를 들어, 긍정의 미학을 강조한 작가의 의도를 학생들이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귀여운 상연이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을 들먹인다. 두꺼운 책이지만 맘 내키는 대로 아무 쪽이나 펼쳐도 건질만한 게 나온다나. 중학생의 감수성을 기왕에 잃어버린 나는 그런가, 하고 고개만 끄덕인다. 작가의 기발함, 창의력을 너무 기대했기에 실망 또한 큰 책 중에 하나였다.

식성이 까다롭고 말이 없는 기훈이는 의외로 『정의란 무엇인가』 읽기를 시도했단다. 정의가 무엇인지 결코 말해주지 않는 그 철학 입문서를 중학생이 읽기엔 벅찼을 것이다. 우려한 대로 읽기 유보 중이란다. 중도 포기가 아니니 다행인가. 이 책이 베스트셀러인 것은 분명하지만 팔린 만큼 많이 읽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의문형 제목에 명쾌한 답을 얻고자 책 나무에 오른 독자라면 정의의 수많은 곁가지에 매달려 허우적대다 끝내 가시덤불에 떨어지고 말 것이므로.

 

 

  마지막으로 수현이의 얘기가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다른 친구들이 긴 책에 대해 말할 때 수현이는 대뜸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저는 초등학교 이학년 때 선생님께 들은 시 한 편이 너무 강렬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 다.”

  도대체 얼마나 감명 깊었길래? 모두 긴장을 늦추지 않고 녀석의 뒷말을 기다렸다.

  “프랑스 작가라고 들었는데 제목은 뱀이고 내용은 ‘뱀은 길다’라는 한 줄 시입니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오늘 소주제 중에 정민 선생이 말한 <시는 직접 말하지 않고 돌려서 말한다, 다 말하면 안 되고 숨겨야 한다, 설명하는 대신 깨닫게 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수현이가 말한 ‘뱀은 길다’ 라는 시구는 너무 직접적이지 않은가? 시를 아는 작가라면 저렇게 직접적인 문장으로 한 줄 시를 썼을 리가 없지. 의문을 가진 채 검색을 해본다.

 

 

  내 예상이 맞다. 『 홍당무 』의 작가 쥘 르나르가 쓴 <뱀>이란 시의 정확한 표현은 ‘뱀은 길다’가 아니라 ‘뱀, 너무 길다’였다. 그럼 그렇지. ‘뱀은 길다’ 와 ‘뱀, 너무 길다’는 하늘과 땅 차이다. 정민 선생 식이라면 ‘뱀은 길다’는 시가 되기 어렵지만 ‘뱀, 너무 길다’는 차고 넘치는 시적 은유가 아니던가. 돌려서 말해야 하고, 숨길수록 좋고, 깨닫게 해야 하는 시의 속성 앞에 ‘뱀, 너무 길다’라는 이 한 마디보다 더 나은 촌철살인이 어디 있으랴!

  시인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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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 장정일의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1
장정일 지음 / 마티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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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 기관 직원들을 상대로 독서토론을 진행한다. 도서 구입 담당 직원이 몇 백 권은 족히 되는, 비교적 신간 도서목록을 전해준다. 토론할 도서를 정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주욱 훑어 보니 인문 교양 문학 쪽보다 자기개발, 건강, 에세이 등이 더 많아 보인다. 자기 개발서는 인문, 역사 쪽을 읽다 보면 절로 감이 생길 것 같은 환상 때문에, 또는 개인적으로 직장이 없는 관계로 나는 선호하지 않는다. 반강제적으로 읽는 남편의 책들이 그런 쪽이기 때문에 볼 기회가 있는데, 그게 저거고 저게 그거인 것처럼 내용들이 비슷해 뵌다. 내가 절실하지 않으니 별 흥미가 없다. 건강 쪽은 꼭 챙겨봐야 할 책이긴 한데, 질병 컴플렉스가 심한 나는 언제나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비겁함으로(얼마나 그쪽으론 자신 없고 비관적인지!) 두려운 나머지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어쨌거나 그 분의 목록이 정말로 감사했으므로 그 중에서 내 취향에 맞는 책을 몇 권 골랐다. 그 중 가장 먼저 손이 간 것이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이다. 장정일 마니아까지는 아니지만 그가 쓴 독서일기라면 사서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는 소설가일 때보다 서평가일 때가 더 신뢰가 가는 인물이다. 읽지 않고 책을 평하는 사람 이야기도 이 책 안에 나오는데, 나도 굳이 말하자면 그의 소설에 대해선  읽지 않으면서도 왠지 손이 안 가는 쪽이다. (미안도 하여라! 하지만 많이 좋아하는 작가니 미워하지 마시라, 작가여.)

 

  계획표를 짜면서 느긋하니 4월 말에 이 책을 집어 넣었다. 내가 먼저 읽고 작가가 권하는 책이라면 수업 시간에 덤으로 그 책도 소개할 요량으로. 직장 있는 회원들이라 책 읽는 게 마음만 앞선 분들이 많다. 해서 주당 한 권은 무리라면서 대부분의 책을 두 주에 걸쳐 토론하기를 원한다. 이름하여 선토론 후독서라고 이름지었다. 책 읽을 시간이 없으니 다이제스트와 맥 집기를 진행자인 내가 해주면 그들이 다음 시간까지 최대한 읽어와 토론하는 방식이다.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하고 싶어하는' 분위기이기에 나는 최대한 그들의 조력자가 되어 보기로 한다. 부디 그들이 업무에 시달리지 않고 책 읽기 도전이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랄 뿐.

 

  잡학다식한 독서광답게 장정일의 이번 독서일기도 흥미진진하다. 여담이긴 하지만, 방금 읽으면서 안 사실인데 난 그가 애독가이긴 하되 책 수집가는 아닌 줄 알았다. 한데 지금 그런 내 생각이 아리까리해진다.

 

  그는 확실히 애서광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벤야민이 작성했을지도 모를 애서광이자 수집가 설문지 31개 항목 중 0표 칠 것이 반도 안 된다.) 그럼 애서광이면 수집가이기도 한 것일까? 단언컨대 작가가 대답하진 않았지만 절대 수집가는 아닐 것이라 확신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수집가가 책을 읽게 되면 모을 수가 없을 테니까. 수집가는 책의 최대 기능인 독서로서 모으는 게 아니라 운명의 무대를 만나는 것처럼 책 자체에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이지 그것의 실용성에는 무덜 관심을 둘 테니. 이를 테면 비싼 도자기에 밥 퍼먹고, 술 따라 먹으려고 도자기를 소유하려는 게 아닌 것처럼 수집가들 역시 밑줄 긋고, 접어 가며 제 머리 속에 지혜를 담으려 책을 수집하지는 않는단 말이다. 수집 자체가 예술적 허영 쯤으로 허용된다면 말이 될까?  그러니 애서광이자 수집가 확인용  31개 테스트 항목에서 그가 네 개만 x표를 했다고 해서 곧장 수집가의 대열에 세울 수는 없다는 말이다. 애서광이되 수집가와는 멀어야지만 영원히 독서 일기를 쓸 수 있을 테니까.

 

  각설하고 당신이 얼마나 책을 사랑하는지 테스트할 호기심을 충족하고 싶다면 이 책을 사서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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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신 파랑새 사과문고 64
김소연 지음, 김동성 그림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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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아의 마시멜로




  성아는 결국 마시멜로가 든 파이를 받지 못했다. 별 것 아닌 과자를 성아에게 주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다. 거친 말투로 다른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시비를 거는 성아. 참지 못한 나는 ‘성아, 너 나가!’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성아는 잠시 쭈빗대는가 싶더니 곧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게 아닌데 싶었다. 잘못했어요. 성가시게 굴지 않고 조용히 할게요. - 내가 원한 답은 그거였다. 하지만 성아는 그런 대답 대신 공부방을 벗어나 창밖에서 서성거렸다.  다른 착실한 아이들을 위해서 성아에게 소리를 질렀다고 핑계를 대보지만 실은 내 인내심에 한계가 왔던 것이다. 복도에서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는 성아를 보고 금세 후회했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줄 걸. 

  2010 문학작가 파견 사업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하는 문화 사업의 일환이다. 전국에서 선정된 82개 도서관이 시행처가 되어 파견작가를 지원해주고 있다. 나는 이곳 시립도서관 소속으로 5월부터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의 사업 목표는 소외계층, 소외지역민들을 위한 문화 활동에의 적극 권유였다. 도서관 측과 나도 그 취지에 맞게 프로그램을 구성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심각할 정도의 지역 소외계층을 만난다는 건 쉽지 않았다. 해서 상대적으로 도움의 손길이 더 필요한 곳을 사업지로 택하게 되었다.

  지역아동센터 두 곳과 시립도서관에서 독서 및 글쓰기 강좌를 열어 아이들과 만나고 있다. 내가 만난 아이들 대부분의 얼굴은 밝았고, 표정 또한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그 어디에도 상대적 소외계층 아동들이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시작할 때면 목이 탈까 찬물을 떠다주고, 마칠 때면 앞 다퉈 흐트러진 책들을 가지런히 정돈해주곤 했다. 하루 일정이 끝날 즈음이면 아쉽다고 좀 더 하자고 보채는 아이들도 있었다. 퀴즈를 더 잘 맞히기 위해 책 속으로 파고들듯이 몰입하는 회원들을 보면서 책임감도 느꼈다.  

  하지만 몇몇 아이들의 첫인상은 워낙 강렬했다. 말투는 거칠었고, 행동은 즉흥적이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은어나 비어, 속어를 툭툭 내뱉었고, 이유 없이 상대방에게 싸움을 걸고 지우개를 던졌다. 몰래 유치한 그림을 그려놓고 옆 친구를 툭툭 건드리며 키득거렸다. 성아도 그런 아이 중 한 명이었다. 아이들 집중력을 유도하기 위해 상품으로 마련해간 마시멜로 파이. 밖으로 쫓겨난 성아는 끝내 받지 않았다. 그 다음 시간에 성아는 아예 공부방에 들어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복도에서 만화책을 들고 보란 듯이 어슬렁거렸다. 그렇게 저항(?)해서라도 사랑받고 싶은 제 본심을 분명히 전하고 싶어했다.

  이 사업을 마치는 지금에야 그 아이들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마디로 주목 받고 싶고, 사랑 받고 싶은 거였다. 주변 환경에 아이들이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동화책을 함께 읽으면서 아이들을 좀 더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별 생각 없이 내던지는 말, 참을성 없이 불쑥 나가는 주먹은 그들 천성이 악해서가 아니었다. 그런 환경에 노출될 기회가 많다보니 옳고 그름의 판단에 앞서 자신도 모르게 그런 행동이 불쑥 나오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김소연 작가의 ‘꽃신’을 통해 작은 맘이 모여 큰 감동의 강물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금이 작가의 ‘큰돌이네 집’을 통해 이 세상 모든 새엄마는 나쁜 엄마라는 생각을 버리게도 되었다. 서로를 배려하고, 조금씩 양보하고, 얼마간은 참아야 하고, 꾸준히 견뎌내야 한다는 것은 파견 작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내가 얻은 삶의 지혜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여전히 수선스럽고, 시샘하는 가운데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한다. 그 모습은 마치 바람 따라 흔들리며 수런거리는 들꽃을 닮았다. 이 들꽃들의 속삭임이 파견작가 프로그램을 통해 한층 너울지기를 바란다. 다음 주에는 특별히 성아만을 위한 마시멜로를 따로 준비해야겠다. 하얗고 쫀득쫀득한 내 마음의 파이를 성아가 받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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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융, 기억 꿈 사상 - 카를 융 자서전
칼 구스타프 융 지음, 조성기 옮김 / 김영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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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 없어요

                                                 




  콤플렉스 용어를 가장 강조한 이는 칼 구스타브 융이었다. 그에 의하면 누구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종류도 얼마나 다양한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외모 콤플렉스, 학벌 콤플렉스, 슈퍼우먼 콤플렉스, 온달 콤플렉스 등, 이름 붙은 세상의 모든 것에 콤플렉스라는 말을  접목시켜도 될 정도이다. 전문적인 심리학 개념을 떠나 어릴 적 경험, 사소한 습관, 주변 환경 등에 의해 생겨난 복합적인 소용돌이가 콤플렉스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런 인간 심리를 잘 이해해서일까. 융에 의하면 우리가 콤플렉스라는 말을 붙이길 좋아하는 것은 반드시 잘못된 것만은 아니란다.

  간단하게 ‘마음속 응어리’ 로 정의해도 무방할 콤플렉스는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스스로를 위축시키고 상처를 덧키운다. 하지만 적당하면 에너지원이 되고 자기발전의 단서가 되어준다. 하지만 그 적당하기가 어디 쉬운가? 그런데 그것을 넘어 아예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일상의 승리자라 할 수 있겠다. 의외로 이런 초탈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을 만날 때가 있는데 속으로 뜨끔해진다. 가당찮게도 대부분이 나처럼 많은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간다고 착각했는데, 그게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를 깨치게 되니 부끄러워서 뜨끔해지는 거다.   

  L여사는 언제 봐도 유쾌하다.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지만 안부를 전해오는 그미의 문자에는 나름의 철학적 사유가 배어있다. 모기 물린 뒤에 느끼는 순간의 울림, 장마 끝에 솟구치는 내면의 잔상, 동네 할머니와 나눈 대화 등을 맛깔스런 짧은 문자로 보내오는데 그 균질하고 매혹적인 감성적 철학에 이끌려 절로 답문을 쓰게 된다. 

  어제 그미가 보내온 문자는 이러했다. ‘인연의 뿌리는 하늘이 내려줍니다. 하지만 그 뿌리, 단단해지고 줄기 살찌우는 건 사람의 몫이지요.’ 혹시라도 ‘사람 몫’을 제대로 하지 못한 건 아닌가 싶어 곧장 답문을 보냈다. 그대를 위해 잠깐 문자하는 것도 인연의 나무를 가꾸는 거겠지요, 라고.

  다음날 그미는 점심을 같이 하자며 찾아왔다. 언젠가부터 건네고 싶었다며 멋진 부츠를 챙겨왔다. 두 번 신은 것인데 굽이 너무 높아 자신은 못 신겠다는 거였다. 짧은 하체 소유자인 나에게 높은 굽은 필수이기에 잘 됐다 싶었다. 하지만 하체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나는 저 신발을 소화할 수 있을까, 하고 내심 망설이고 있었다. 내 주저를 눈치라도 챘는지 그미가 에피소드 하나를 공개한다.

  백화점에 갔더란다. 화장품 코너를 지나는데 메이컵 아티스트가 화장을 해주겠더란다.  얼떨결에 메이컵을 받고 있는데 남자 아티스트가 말하더란다. 얼굴 중 콤플렉스가 있는 부분을 얘기하면 그곳을 집중적으로 보완해 주겠다고. 그미의 대답엔 주저함이 없었단다. 저, 콤플렉스 없는데요. 남자 아티스트는 멍한 표정으로 네, 네 하기만 하더란다. 아마 그 아티스트도 나 같은 맘이었나 보다. 모든 사람은 콤플렉스가 있고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넘겨짚었음에 틀림없다.

  콤플렉스 없어요, 라고 대답한 L여사의 말엔 한 치의 거짓도 없음을 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을 말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인정한다는 뜻이 담겨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결점을 보듬는 자는 남의 약점 같은 걸 눈여기지 않는다. 콤플렉스는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정작 타인들은 상대가 어떤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지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 

  부츠 끈을 느슨하게 풀어 젖힌 뒤 조심스레 한 발을 넣어본다.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것처럼 맞춤하다. 각선미 빼어난 모델 같은 핏은 상상할 수 없지만 L여사가 준 명쾌한 답으로 자기체면을 걸어본다. 저, 콤플렉스 없는데요. 저기 저 거울 속, 제 약점을 넘어서려는 한 여자의 부츠 굽, 산봉우리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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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미 2011-01-21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어요. 여전히 열심히 글쓰시는 팜므님. 간결하고 소박하면서도 울림 있는 글, 새해에도 많이 써주시기 바래요. 새해에도 여전히 바쁘시겠지만 말이죠.
 
축구 아는 여자 2030 취향공감 프로젝트 2
이은하 지음 / 나무수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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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민지 일기




  과히 여민지 신드롬이다. 그 소녀에게 자꾸만 관심이 간다. 내가 축구를 잘 알고 좋아해서가 아니다. 십대 소녀라고는 믿기지 않는 그 정신력과 긍정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17세 이하 여자 월드컵 우승의 주역인 여민지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우승컵과 골든볼, 골든부트까지 좀처럼 나오기 어려운 대기록을 세운 것이다. 여민지 덕에 나는 골든볼(MVP)과 골든부트(득점왕)를 구별할 줄 알게 되었다. 나아가 이번 경기 우승으로 여자 축구도 월드컵 대회가 열리고, 연령별로 세분화 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역시 좋은 기량을 보여준 지소연 선수와 함께 한국 여자축구를 이끌 양대 희망봉이 될 거라고 매체들은 연일 보도한다. 그들 환상 듀오가 속한 앞으로의 경기가 자못 기대된다.

  방송과 신문에서도 여민지 특집이 한창이다. 축구를 향한 민지의 순수한 열정은 그녀가 쓴 축구 일지에 잘 나타나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이래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썼다는 그녀의 축구 일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세계적인 축구 선수는 거저 된 게 아니었다. 깔끔한 글씨체와 정돈된 경기 그림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축구를 해왔는지 알 정도이다.

  ‘축구는 예술이다, 축구는 나의 인생, 축구 없인 못살아’ 라는 말이 적힌 그녀의 노트를 사진으로 보는 순간 서늘한 감동이 밀려온다. 저토록 어린 나이에 이토록 강단 있게 제 삶의 운명을 부릴 줄 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민지는 축구를 노동이나 힘든 운동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의 인터뷰 곳곳에 묻어나는 기본 생각은 ‘축구는 정말 재밌고 즐겁다’는 것이다. 그러니 축구를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맘껏 발산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그녀의 일기장을 들여다보자.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아침 사자가 잠에서 깬다. 사자는 가젤을 앞지르지 못하면 굶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근 온 힘을 다해 달린다. 네가 사자이든 가젤이든 마찬가지다. 해가 떠오르면 달려야 한다’ (2006년 12월)

  ‘공을 차다가 잠이 오면 두 사람을 생각하라. 너의 아버지와 라이벌을. 훈련하다 포기하고 싶으면 소중한 친구들과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라. 나를 가능케 하는 건 생각이다’(2009년 9월)

  중학교 때부터 소설책보다 성공학 책을 많이 봤다는 민지답게 책에서 인용하거나 스스로 생각해낸 많은 경구들로 일기장을 빽빽이 메웠으리라. 그 어린 나이에 흔들림 없이 제 삶의 목표를 세우고 정진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누구라도 민지처럼 한 가지 생각으로 한 가지 일기를 매일매일 채울 수 있다면 성공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작심삼일로 끝나고 마는 내 일상의 설계도를 보면서 새삼 여민지가 대단하게 보인다.   

  여민지 만큼 하면 백퍼센트 성공하지만 여민지 삼십퍼센트만 해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이 될 것이다. 요즘 내 화두는 이렇다. ‘본받고 싶은 사람의 삼십퍼센트 만이라도 따라하자.’ 주변에도 여민지 못지않게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장악하고 설계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나는 그들 삶의 방식을 존경하고 배우려고 애쓴다. 그들과 똑 같이 하려고 무리하다 보면 체력 소모와 자괴감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차근차근 따라하려다 보니 삼심퍼센트라는 목표에서 타협점이 생긴 것이다.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시도하는 것이 나으니 그 정도에서 위안을 삼으려는 것이다. 모든이가 여민지 부류처럼 생활한다면 이 세상은 저마다 잘난 사람만 넘쳐날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내가 정한, 여민지 삼십프로 따라하기 프로젝트가 유용하기 위해서라도 여민지 류는 드문 게 훨씬 낫다. 부러우니 별 주접이 다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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