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대중들에게 문학을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 지난 8월 <미스터리 게스트>라는 프랑스 작가의 전기 출간을 앞두고 이런 고민에 휩싸인 출판 제작자 제퍼리 르펜도프는 ‘YouTube(유튜브)’라는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를 홍보매체로 선택하고, 1만 달러를 투자했다. 투자금액은 책 내용을 단편 비디오로 제작하는데 고스란히 쓰였다. 책 속에 숨겨진 의미를 전달해주는 배우들의 연기, 영화적 화면, 풍부한 음향이 조화된 이 단편 비디오 클립은 동영상 사이트에 올려져 빠르게 클릭되었고, 곧 <미스터리 게스트>는 서점에서 히트를 기록했다. 영화 예고편, 즉 무비 트레일러가 아닌 ‘북 트레일러’라고 이름 붙여진 이 비디오는 새로운 영화 스타일의 ‘책 예고편’이다. 이 새로운 마케팅 전략은 출판계가 절망으로 부터 찾아낸 새로운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한 달에 약 2,000만 명의 방문객이 드나드는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사이트에서 본 책 예고편은 블로거들에 의해 여기저기 옮겨지고, 실제 구매로 연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 영화 스타일의 ‘책 예고편’의 등장과 히트는 출판계와 영화산업의 틈새시장을 반기는 영화계 모두에게 고무적이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수연 LA 통신원 200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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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0-09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에 생각나는 것은 사신 치바(지금 읽고 있어서 그런지), 커피 향기 등의 이야기가 뚜렷하고 명료한, 궁금증을 일으키기가 손쉬운 책들이에요. 혹은, 키노 님께서 보내주신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도 쉬울 것 같아요. 한 번 읽었지만 다시 아껴 읽고 있답니다. 두번째 읽는 책들은 `내가 처음 읽을 땐 이 부분에서 멈추었지'하는 생각이 들어서 오래 전의 나와 만날 수 있는 느낌이에요.

마노아 2006-10-09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아이디어 좋은걸요. 영화 예고편처럼 책 예고편을 만든다는 거죠? 전 시간 여행자의 아내가 생각났어요.(어차피 영화로 만들지만..^^;;)

키노 2006-10-11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드님/전 책이나 영화는 한번 봐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두번 보거나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 느낌도 색다르고
마노아님/저 아이디어 괜찮은 것 같아요^^
 
 전출처 : 이매지 > 중동·이슬람 문화풍물대전-무료

* 전시기간 : 2006. 10. 9(월)~14(토), 6일간 11:00~19:00 (토요일은 10:00 ~ 16:00 )
* 전시장소 :코엑스 , 3층 컨벤션홀

올해는 한국에 이슬람이 소개된 지 5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중동·이슬람 문화풍물대전」은 이슬람 문명의 인류사회에서의 기여를 이해함으로서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이슬람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이 전시회를 통해 전 세계 57개국 15억의 무슬림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들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중동과 이슬람 세계의 진솔한 삶의 모습과 문화예술의 진수를 소개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중동과 이슬람을 올바로 이해하고 다가가려는 우리의 이러한 노력이 잘 전달되어 한국과 중동·이슬람 세계간의 상호이해와 우호증진 및 협력강화를 위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평화의 중요성과 타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존경의 필요성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상호이해와 화합의 장이 될 것입니다.


<홈페이지 발췌 http://www.kyungyon.co.kr/islam/islam.php?idx=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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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그 엽기성에 관하여

추석은 가족의 시간이다. 이른바 민족 대이동이라고 불리는 그 엄청난 교통난을 겪는 것 자체가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기 위해서 벌어지는 일이고, 연휴를 만들어주는 것도 바쁜 일상에 한번쯤 시간내서 가족끼리 한번 모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풍요로운 계절, 풍요로운 마음으로 가득한 채로 가족이 모여들어 모두들 행복한 웃음을 짓는 따듯한 광경…. 뭐, 그렇게 끝나면 좋겠지만, 이야기는 계속된다. 모처럼 모였고 반갑기도 하지만, 같이 모여도 뭐 별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반가움은 한때, 무료함 내지 심한 경우 껄끄러움은 나머지 만남 내내. 게다가 만약 여성이라면 그 끝없는 가사노동은 또 어떤가. 여하튼 어서 끝나고 나머지 연휴기간 동안은 난데없던 대가족의 향연에서 벗어나 푸욱 쉬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도 그렇게 양심에 걸릴 일이 아니다.

바로 그럴 때, 만화책은 좋은 동반자다. 집에서 편안히 쉬면서 볼 수 있고, 은둔해버리지 않더라도 서로 귀찮게 하지 않고 각자 혼자 몰두하며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왕이면 가족에게 시달린(?) 김에, 만화도 가족에 관한 작품들을 한번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무슨 가족의 아름다움, 따뜻한 가족애가 지상 최고의 가치라느니 하는 감동의 교훈 작품 같은 것은 사절이다. 꼭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솔직히 이미 현실에서 가족의 감동도 스트레스도 다 받은 상황에서 별로 당기지 않을 법하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상쾌한 도피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 화끈하게 엉망진창인 가족에 대한 만화를 집중적으로 읽어볼 것을 권한다. 사실, 가족애가 전혀 없는 완벽한 콩가루 가족에 대한 작품은 드물다. 하지만 ‘알고 보니 숨어 있는 따뜻함’보다는(<이씨네 집 이야기> 등 전통 가부장 가정에 대한 찬미로 가득한 가족만화들), 확연히 드러나는 가족간 애증 섞인 알력과 그들의 좌충우돌 모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 정도만 되어도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자리에 몇 가지 그런 작품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우당탕탕 괴짜가족>(전 31권), <원조! 괴짜가족>(8권 발행 중) 하마오카 겐지/ 서울문화사

황당하리만큼 괴짜질을 일삼는 가족 성원이 한명 있다고 치자. 나머지 가족 성원은 그 뒤처리로 참 고생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아예 온 가족이 다 그렇다면 어떨까. 그렇기에 오오사와기 집안 사람들은 그럭저럭 잘 살아나간다(물론 주변 이웃과 친구들에게는 엄청나게 민폐지만 말이다). 꼬마 남자애는 막나가는 장난꾸러기, 아버지는 난폭 열혈 택시 운전사, 할아버지는 록 마니아, 어머니와 누나와 아기는 괴력 레슬러, 장남은 폐인. 이 가족이라면 하루하루가 엽기 개그가 된다. 마치 고전 우스개마냥 각종 화장실 개그로 범벅된 엉터리 이야기들이 거침없이 펼쳐진다. 둥글둥글하면서도 항상 맑은 눈으로 부담스럽게 만드는 그림체도 효과만점.

<납골당 모녀>(4권 발행 중) 강현준/ 학산문화사

가족이란 경우에 따라서는 취향마저 닮아버리는 법. 예를 들어서 어머니와 딸이 같은 남자 취향, 그것도 미소년 취향이면 어떨까. 가업으로 으스스한 납골당을 운영하기에 그다지 남자운이 없던 모녀가, 우연히 굴러들어온 미소년을 쟁탈하기 위해 벌이는 뜨거운 신경전과 개그로 가득한 작품. 모녀라는 관계가 오히려 서로를 잘 알기에 더욱 치열한 경쟁으로 몰아넣는 악순환이 주인공들에게는 마음의 고통을, 독자에게는 마음의 웃음을 안겨다준다. 언뜻 진지하게 나갈 법하다가도 어느 틈에 다시 욕망에 충실하기에 가족이고 뭐고 서로 골탕 먹이기에 최선을 다하는 이 가족을 보고 있노라면 현실 속 가족과의 신경전에서 온 스트레스가 어디론가 날아가버릴 것이다.

<심술가족> 이정문/ 묵찌빠닷컴(온라인)

이정문의 심술 시리즈는 한국 명랑만화 장르의 보물이다. 70∼80년대 다른 명랑만화들이 장난기 가득하고 때로는 멍청하지만 사실 더할 나위 없이 착한 개구쟁이들의 모험을 그렸다면, 심술첨지, 심똘이, 심쑥이, 심술통, 심통이와 심뽀 등등 심술 시리즈의 주인공들은 정말 심술맞다. 물론 길창덕의 ‘순악질 여사’도 심술로는 가히 최고봉이었으나, 이정문은 아예 온 가족이 다 심술꾸러기인 작품을 탄생시켰다. 애들은 애들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각자의 눈높이에서 사람들에게 마음껏 심술을 부린다. 다소 부덕한 짓을 저지른 사람들을 갖가지 사소하지만 집요한 심술로 괴롭혀서 뉘우치게 만드는 에피소드도 많지만, 역시 가장 돋보이는 경우는 가족이 심술로 서로서로를 골탕 먹일 때다. 심술의 고수가 더 엄청난 고수에게 당하는 모습의 즐거움인 셈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사악함이라기보다는 마치 놀부와 같은 해학의 묘미가 있다. 이제는 명랑만화라는 장르 자체가 고전이 돼버렸지만, 특유의 항상 화나 있는 표정의 가족을 다시 만나는 것은 역시 반갑다.

<신한국 황대장>(전 5권) 김진태/ 서울문화사 또는 이코믹스(온라인)

모 영화의 성공 덕분에 ‘한국형’ 영웅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금 꽃피고 있다. 한국형 영웅은 평범한 가장이고, 별다른 능력보다는 그냥 한국적 오기와 평범한 생활을 지키려는 가치관 하나만으로 의외로 강력한 적들도 여차저차 해치우는 것이다. 이런 흐름의 원조에 가까웠던 것이 바로 ‘황대장’이었다. 아버지는 대한민국 황대장으로 한때 활약했고, 아들 역시 영웅의 길을 걸어서 신한국 황대장이 되었다(당연히, 한창 신한국을 부르짖던 90년대 초반의 분위기도 반영되었다). 출동할 때 운동복을 주섬주섬 입고 보자기 망토를 두르는 이 영웅 부자는 필살기도 두 다리를 붙잡고 사타구니를 반복해서 밟는 ‘처절한 응징’ 등 아주 통쾌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한 집안에 대물림으로 두 영웅이 있을 때, 그 미묘한(?) 분위기는 어떨까 즐겁게 웃으며 지켜보는 것도 포인트.

<콩가루> 박성훈/하나포스+작가 홈(http://paranoia.anipy.com)에서 연재 중

진정한 콩가루 가족의 진수. 특별히 가족 성원 한명한명이 괴짜라기보다는 가족간 관계가 어느 불륜 아침드라마보다도 더 극단적으로 망가져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가족의 틀 속에서 적당히 버무려져 있기에 일류 부조리 개그가 된다. 화장실 개그나 엽기적 설정과 달리 철저하게 막나가는 관계 자체에 집중해서 웃겨주는 코미디. 은근히 진지하고 딱딱해 보이는 그림체에서 오는 괴리감이 그런 개그의 효과를 더욱 더해준다.

<폐인가족> 김풍/ 미디어다음(온라인)

사실 특별히 가족이 폐인이라기보다는 김풍 만화가가 자신의 출세작인 <폐인의 세계>에서 만들어낸 온라인 폐인 캐릭터를 사용해서 만들어낸 가족코미디. 아버지는 무능하고 어머니는 귀 얇은 주부고, 아들은 재수·삼수생이고, 딸은 영악한 고교생이다. 가장의 권위 따위는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간 지 오래며 누구 하나 서로를 존중하지 않지만, 여하튼 가족은 대충 굴러가는 상태. 어찌보면 별로 과장하지도 않은 한국식 현대 가정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폭발적 웃음의 개그보다는 사회 세태 풍자의 매력이 더 강한 작품.

<쥐>(전 2권) 아트 슈피겔만/ 아름드리

지금껏 개그물을 소개했는데, 사실 뭔가 엉망인 가족 관계를 가지고 과장된 패러디와 개그가 아니라 진지한 접근을 해버리면 상당히 무겁고 부담스러운 작품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개그도 아니고 지나치게 엄숙하지 않게 접근하면서도 얼마든지 진지한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것이 가능하다.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다룬 작품 <쥐>의 가족이 그렇다. 대학살의 생존자인 아버지와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는 만화가 아들. 이들 사이에 있는 것은 서로 다른 세상을 경험하며 살아온 과정, 서로에 대한 거리감, 가족으로서 가지는 연결 등 여러 요소들의 미묘한 균형이다. 이 작품이 걸작의 반열에 오른 것은 홀로코스트의 묘사 때문이라기보다 그것이 바탕이 된 현재의 모습들, 예를 들어 ‘가족’의 관계를 파고들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제3권 태종실록편) 박시백/ 휴머니스트

가족의 굴레, 부자의 애증, 형제간의 다툼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끝나는 비극, 그 모든 것을 극복해내기 위한 정진. 때로는 어떤 가상의 드라마보다도 재미있는 것이 바로 역사다. 조선왕조 초기, 왕의 가족만큼 콩가루 가족의 진수를 보여준 것이 또 있을까. 어차피 대부분 대략의 줄거리야 잘 아는 이야기일 테지만(하다못해 드라마 <용의 눈물>을 통해서라도 말이다), 이왕이면 이번에는 정치권력의 쟁탈전보다는 가족드라마로서 한번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 정사에 충실하며 설명이 명료하고, 뚜렷한 그림체와 연출를 구사하는 작품을 통해서 말이다. 아아, 가족이란.

<문조님과 나>(6권 발간 중) 이마 이치코/ 시공사

사람 가족에 대한 작품이라면 아무리 콩가루라도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근친상간과 난교 같은 금기 소재를 마구 꺼내놓고도 명랑한 분위기를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물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면 한층 편하다. <문조님과 나>는 원래 요괴기담 만화를 통해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라든지 소외 이야기를 심어오곤 했던 작가가 펼치는 새장 속 문조 가족에 대한 관찰담이다. 그런데 문조를 많이 오래 키우다 보니 그 짝짓기의 가족 관계가 장난이 아닌 것이다! 촌수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해질 정도의 문란한 번식, 그리고 언제나 어떤 관계에서나 암컷/수컷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모습들. 행여나 그냥 동물 육성만화로 착각할까봐 작가가 중간중간 다시 가계도를 상기시켜주는 것도 여간한 악취미가 아니다. 아니 그런데, 결정적으로 상당히 가볍고 개그스러운 풍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더 즐겁다. 많은 이들은 이 작품을 애완동물 육성 만화 정도로 볼지도 모르겠지만, 이것 은근히 엽기가족만화다.

<사고뭉치! 피스전기만물상>(전 24권) 노다 다쓰키/ 대원 CI.

천재발명가 아저씨 칸타로, 그리고 그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장남 켄타로. 이들 둘이 중심이 된 피스 일가의 전기만물상에는 항상 소동이 그칠 일이 없다. 아들은 아버지를 뛰어넘고 싶어하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밀려서 뒤안길로 물러나기 싫어하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아들은 아버지를 구닥다리 취급하고 아버지는 아들을 미숙한 애 취급한다. 도라에몽(동짜몽)의 전통을 이어받은 듯한 수많은 재미있는 발명품들이 엮어가는 재미있는 소동과 모험이 주가 되지만, 어째서인지 이들 부자의 티격태격을 보는 것이 훨씬 재미있는 멋진 가족만화.

이외에도 꼭 진짜 가족은 아니더라도 의외로 가족적인 분위기의 엉망진창인 작품들도 재미있게 찾아볼 수 있다.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소규모 조폭 집단의 모습에 아기가 하나 끼어들 때 생기는 유사 가족의 모습 속에서 포복절도 개그를 만들어내는 <키드갱>(신영우/ 삼양) 같이 말이다. 혹은 전혀 관계없어 보였는데 알고 보니 모두 가족이었다는 것은 어떨까. 알고 보니 서로 피튀기며 싸운 88명의 전사들이 모두 아버지가 같았다는 충격적인 설정의 <세인트세이야>(구루마다 마사미/ 서울문화사)라든지 말이다. 여하튼 추석 연휴는 만화책을 제대로 읽기에는 너무 짧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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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의 ‘금기’에 빠져봐∼

금지곡에 대한 추억은 아무래도 ‘1970∼80년대’와 연관된다. 1990년대 이후는 금지곡의 ‘파장’과 ‘논란’이 아무래도 그때만 못하기 때문. 그렇다면 7080? 이미 상업화되어버린 이 용어를 쓰기는 찜찜하지만, 어쨌거나 그 시대로 돌아가기는 해야 할 것 같다. 단, “그때 정말 황당했어요”라는 말 이상이 필요할 텐데, 이상하게도 이때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렇게 되어버린다. 각설하고.

비틀스, <A Day in the Life> in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

‘록음악 최고의 명반’이라고 평가받는 비틀스 음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한국 발매반은 가히 만신창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초의 ‘컨셉 앨범’이라고 평가받는 이 음반에서 정작 그 ‘컨셉’을 이루는 두곡이 빠져 있다는 사실. <A Day in the Life>와 <Lucy in the Sky with Diamond>가 그 곡이다. 두곡은 ‘1967년의 알딸딸한 분위기’를 상기할 때 적절한 곡이고 이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이미 많으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 <A Day in the Life>는 존 레넌 파트와 폴 매카트니 파트가 병렬된 ‘2부작’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종 사운드 이펙트를 동원하여 긴박한 느낌을 던지고 있으니 차 안에서 들으면 정신 사나울 수도 있겠다. 오버더빙을 여러 번 해서 웅장한 오케스트라로 끝나는 엔딩 음이 유난히 길다는 점도 첨언. 이 불후의 명반의 표지도 기가 막힌데, 칼 마르크스의 그림이 있다는 이유로 배경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에게 시커멓게 덧칠을 해놓았다. ‘네거티브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야 할 만한 작품.

킹 크림슨, <The 21st Century Schizoid Man> in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1969)

‘21세기 정신분열자’라는 제목의 타이틀을 가진 곡이 심의를 통과하기는 어려웠을 게다. 게다가 그로테스크한 표정의 사람 그림이 대문짝만하게 표지를 차지하고 있으니 음반 표지도 ‘반려’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 이 앨범은 의도하지 않게 ‘편집음반’으로 발표되었다. 첫 트랙을 뺀 다음 킹 크림슨의 세 번째 앨범 <Lizard>(1970)에서 두곡을 발췌해 삽입했고, 앨범 표지로는 아예 세 번째 앨범을 사용했다. 정리하면, “표지는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이 아니지만 속 알맹이에는 이 앨범의 수록곡이 한곡 빼고 들어 있으며, 표지는 <Lizard>지만 속 알맹이는 이 앨범의 수록곡 두개만 들어 있다”는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다. 정신분열증이 걸릴 정도로 복잡하고 혼동스럽다. 그러니 교통체증이 심각할 때 <The 21st Century Schizoid Man>을 들으면서 그때의 분노를 재현해보는 것도 하나의 감상법일 수 있겠다. 금지곡은 아니었지만, 한 트랙 건너 이어지는 <Epitaph>의 “나의 묘비명은 혼동”(Confusion will be my epitaph)이라는 가사를 들으면서 고향 선친들의 묘비명을 떠올려보는 것은 조금 엽기적일까.

사이먼 앤 가펑클, <Cecilia> in <Bridge over Troubled Water>(1970) 혹은 <Simon & Garfunkel’s Greatest Hits>(1972)

피트 시거, 밥 딜런, 리드벨리처럼 ‘사회의식적’인 포크 싱어들의 ‘저항가요’들은 아예 음반으로 접하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사이먼 앤 가펑클처럼 그닥 정치적일 것도 없고 저항적일 것도 없는 팝 포크 듀엣에 대해서도 금지곡이 있는 줄은 몰랐을 것이다. 문제의 곡은 <Celcilia>인데, 이 듀엣의 최고이자 최후의 대박이 된 앨범 <The Bridge over Troubled Water>에 마지막 트랙으로 수록된 곡이다. SG 워너비도 경하해 마지않는다는 (‘SG’가 ‘Simon & Garfunkel’의 약자란다) 이 청아한 멜로디와 하모니의 듀엣의 곡 치고는 까불거리는 분위기의 곡인데, 곡의 가사는 2층방 침실에서 자신의 연인인 세실리아가 다른 남자와 뒹굴고 있다는 ‘고려가요’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국내 발매반에서 이 곡은 ‘그레이티스트 히츠’ 앨범에서 ‘흔적’을 볼 수 있다. 앨범 표지를 유심히 보면 칼로 긁은 듯한 자국이 있다는 사실….

핑크 플로이드, <Brain Damage> in <The Dark Side of the Moon>(1971)

빌보드 앨범 차트에 741주 동안 머물렀다는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The Dark Side of the Moon>의 한국 라이선스 버전에는 여러 가지 판본이 있다. 그 하나의 판본의 콘텐츠는 원판(오리지널 에디션)의 콘텐츠를 완벽하게 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표지에는 두곡의 이름이 빠져 있다. 하나는 <Us and Them>이고 다른 하나는 <Brain Damage>. 나중에 나온 이본(異本)에는 이 곡들이 빠져 있다. 그런데 왜 표지에 곡목이 적혀 있지 않은 곡이 음반에는 수록되어 있었을까. 이유는 이 앨범이 트랙들 사이에 휴지부(pause)가 없기 때문이었다. 부연하면, 한면이 하나의 트랙처럼 수록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내 상상으로는 당시 검열을 맡았던 사람들이 ‘곡이 어디서 끝나는 거야?’라고 헷갈려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혹은 이 음반의 심의를 신청한 국내 음반사에서 기지를 발휘했을지도 모르는 법이다. 그 덕에 적어도 내가 구매한 음반은 ‘희귀본’이 되었다. 어쨌든 “광인은 당신 머릿속에 있어요”로 시작하는 <Brain Damage>는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다. 금지곡이었지만 금지되지 않은 채.

퀸, <Bohemian Rhapsody> in <A Night at the Opera>(1975)

금지곡이 한두곡 들어 있는 경우를 예로 들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이건 좀 심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서도 가장 심한 경우가 하나 더 있다. 문제의 음반은 퀸의 <A Night at the Opera>인데, “아하 <Bohemian Rapsody>를 말하는구나?”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금지곡이 하나 더 있었다는 사실은 크게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름 아닌 첫 트랙인 <Death on Two Legs (Dedicated to…)>라는 곡인데, 수려한 멜로디와 화성을 자랑하는 당시 퀸의 음악답지 않게 거세게 휘몰아치는 곡으로, 제목에 ‘사망’이 있으니 금지곡이 되는 것은 당시로서는 자연스러운 운명이었을 테지만, 문제는 이로 인해 라이선스 LP의 재생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점. <Bohemian Rapsody>는 명절 때 팝송 프로그램에서 곧잘 나오니, 다소 지겨운 느낌이 있다면 잘 알려지지 않은 <Death on Two Legs (Dedicated to…)>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앨리스 쿠퍼, <School’s Out> in <School’s Out>(1972)

1980년대 금지곡의 화살을 가장 많이 받은 장르는 단연 하드 록/헤비메탈 계열의 음악들일 것이다. 주다스 프리스트의 <Screaming for Vengeance>, 메탈리카의 <Welcome Home (Sanitarium)>, 모틀리 크루의 <Dr. Feelgood>, 데프 레퍼드의 <Run Riot>, 건스 앤 로지스의 <Nightrain> 등의 제목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데, 이 ‘형님들’ 음악 가운데 하나만 뽑으라면 아무래도 이렇게 와일드하고 엽기적인 형님들의 원조 격인 앨리스 쿠퍼의 <School’s Out>을 꼽아야 할 것 같다. 이유를 묻는다면, 앨리스 쿠퍼는 ‘전곡 금지’라는 불명예를 안았던 뮤지션이었다는 사실을 언급해야 할 듯. 이렇게 전곡이 금지당한 외국 아티스트들이 피트 시거, 리드밸리 같은 ‘사회파’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불명예는 영예가 될 수도 있겠다. 혹자는 전곡 금지의 사유가 “Don’t you know people are starving in Korea”(“Generation Landslide ’81”)라는 가사 때문(국가모독?)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 곡은 1981년에 발표된 곡이라서 그전부터 금지된 이유는 설명하지 못할 듯. 어떤 곡이든 지금 들으면 온건하고 얌전하게 들리기만 하는데….

프린스, <Darling Nikki> in <Purple Rain>(1984)

프린스 본인이 주연한 영화의 사운드트랙 앨범이자,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반년 가까이 정상을 차지하고 1980년대 명반을 뽑을 때 1, 2위를 다투는 작품. 그렇지만 프린스와 한국의 인연은 악연에 가까운데 이 작품도 온전한 형태로 듣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이유인즉 <Let’ Go Crazy>와 <Darling Nikki>가 금지곡으로 지정되었기 때문. 특히 <Darling Nikki>는 흥미로운 사연을 가지고 있는데, 다름 아니라 미국의 민간음악검열단체 PMRC(Parental Music Resource Center)가 탄생하는 직접적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 사건의 발단은 앨 고어의 부인 티퍼 고어가 딸과 함께 이 노래를 듣다가 화들짝 놀라서 알음알음 모은 사람과 함께 1985년 5월 PMRC를 설립한 것. 가사는 “I knew a girl named Nikki/ I guess you could say she was a sex fiend/ I met her in a hotel lobby/ Masturbating with a magazine.” 하지만 박진영 등의 노력 덕인지 이제 이런 가사를 들어도 그러려니 할 뿐인데….

펫 숍 보이스, <West End Girls> in <Please>(1986)

험악한 사나이들의 우지끈 쿵쾅거리는 사운드만 금지의 멍에를 뒤집어썼다고 오해하는 것은 금물. 런던 출신의 멋쟁이 팝 듀오 펫 숍 보이스의 ‘댄스 음악’도 사정은 마찬가지. <West End Girls>에 대해서는 과거 나의 지인이 쓴 문구를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이 곡은 서구 문명의 몰락에 대한 전망을 한 개인의 분열증으로부터 사회주의의 황금기에서 붕괴에 이르는 거대한 역사적 드라마에서 발견하고 있다. 1절에서는 일상생활의 광기와 자살 충동에 대한 냉정한 테크놀로지에 대해, 2절에서는 현대 문명의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 이면에 있는 공허함에 대해 한탄하고 있다. 3절은 과거와 미래 모두 탈역사화되고 영원한 현재만이 남았다는 ‘역사철학’적 성찰을 보여준다.” 그렇게 깊은 뜻이? 그렇지만 경박한 댄스 리듬이 이런 ‘진지한’ 메시지를 쉽게 중화해주니, 한때 횡행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추억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

U2, <Running to Stand Still> in <The Joshua Tree>(1987)

무더기 금지곡 지정 이후 누더기가 되어 발표된 음반의 역사는 1980년대 중반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지금이니까 이렇게 말하지 그때는 반쪽이 되다시피 한 음반을 얼떨결에 구입한 뒤 분을 삭이지 못했던 기억이…. 1980년대 이후 최고의 록밴드가 된 U2의 최고 걸작 <The Joshua Tree>가 또 하나의 예다. 4, 5, 6, 7번 트랙에 해당되는 <Bullet the Blue Sky> <Running to Stand Still> <Red Hill Mining Town> <In God’s Country>가 줄줄이 금지당해 게이트 폴더(이른바 더블 재킷)씩이나 만들어낸 LP에는 A면에 세곡, B면에 네곡이 수록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게 해주는 듯한 <Bullet the Blue Sky>의 긴장감도 좋고, 아일랜드 광산촌에 와서 광부가 부르는 민요를 듣는 듯한 <Red Hill Mining Town>의 정겨움도 좋지만, ‘무언가’에 중독된 사람이 도시의 황폐한 모습을 묘사한 <Running to Stand Still>의 잔잔하고도 강렬한 감정을 추천해본다.

김추자 <거짓말이야>, 김정미 <아니야>, 이장희 <그건 너>, 송창식 <왜 불러>

마지막 10번째 트랙으로는 국내 금지곡 네곡을 메들리로 들어보기를 추천해본다. “거짓말이야”를 네번 반복하는 김추자의 목소리나 “아니야 아니야 그 사람 아니야”라는 김정미의 목소리는 육감적이고 섹시하기까지 한데, 이걸 정권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했다는 풍문이 들려온다. 이장희가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라고, 송창식이 “왜 불러 왜 불러… 이제 다시는 나를 부르지도 마”라고 외치는 것을 ‘정권에 대한 반항’으로 인식했다는 풍문도. 한편으로는 이런 풍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고(너무 황당하니까…), 다른 한편으로는 이 곡들의 가수나 작곡자들이 마음속으로는 정말 도전적이고 반항적이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너무 이상한가?). 어쨌거나 당대에는 워낙 유명했던 곡이지만 기억에서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으니 민족의 명절에 대중음악의 전통을 한번 되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메리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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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비디오 찾아 황학동에 가다
사라져가는 그 공간에 가다
2006.10.02 / 허지웅 기자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의 보고, 청계천 황학동이 그 생명력을 다해가고 있다. 과거, 전국에 유통되는 비디오가 한 번쯤 반드시 거쳐 가야했던 부가판권시장의 황금어장 황학동. 옛날 비디오를 찾아 그곳을 다시 찾았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

3년 만에 다시 찾은 청계천 황학동은, 더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아니면 순서를 바꿔 가을 겨울 봄 여름 언제 찾아가더라도 정수리와 겨드랑이, 발가락 사이로 어김없이 차오르던 찝찔한 땀내가 기억 너머에서 불쑥 떠올랐다. 이 정체불명의 더위에 대해선 TV프로에 출연해 청계천 복원사업이 서울 도심의 열섬현상을 없애줄 거라며 적외선 지도와 도표를 곁들어 설명하던 안경잡이 박사조차 끝내 설명해주지 못했다. 번번이 거리 위에 깔려 있던 차분한 먼지안개와 노란색 셀로판지를 덧대어놓은 것 같은 풍경까지 시야에 들어오자 내가 비로소 황학동에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언뜻 둘러본 3년 만의 황학동은, 상당히 정돈됐다고나 할까. 어떤 록 스타를 무척이나 닮았던 시장의 선도 아래 질서정연하게 가로 잡히고 세로 잡히고 칸을 나누고 줄을 그어 '개선'된 청계천의 도로 한 가운데를, 인간미를 찾아볼 수 없어 인조인간 로봇 마징가Z를 연상케 하는 12만 톤 검은색 물길이 관통하고 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 마징가Z는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150마력짜리 모터펌프 4대가 없으면 주저앉는다 했다. 인생을 통틀어 이곳이 아니면 결코 다시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진귀한 물건들. 그 물건들을 손수레 가득 싣고 행인을 유혹했던 노점상들의 행렬은 공룡처럼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당황스런 3년 만의 재회

풍경이야 어찌됐든, 오늘 내 목적은 추억의 옛날 비디오를 찾는 거다. 한때는 하루에 세 번 찾을 정도로 안방 같았던 황학동을 오랫동안 망각하고 있었다는, 어쩔 수 없는 다소간의 죄의식을 억누르며 오래 전의 단골이었던 비디오 가게를 찾았다. 2층에 위치한 그 비디오 가게는 아직 밀레니엄이 도래하기 전 시가 5만 원 상당의 희귀 비디오였던 한국 최초의 좀비영화 <괴시>(1980, 강범구)를 단돈 3천 원에 속여 산 기억 탓에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당시만 해도 황학동엔 그런 낭만이 있었다. ‘3일 전에 죽었던 용돌이가 살아 돌아왔다!’는 충격적인 문구로 기억되는 <괴시>는, 굳이 상도를 어겨가며 어렵게 구했던 과정만큼 즐거운 영화는 아니었다. 전혀 중국사람 같지 않은 중국배우와 전혀 한국사람 같지 않은 한국배우가 등장해 해충을 없애는 첨단 과학기계가 시체를 되살려내는 비밀을 파헤치는 내용이었는데, 어째 뭔가 이상했다. 어디서 많이 보던 내용이다 싶었더니 <Let Sleeping Corpses Lie>(1974, 조지 그루)의 토시 하나 안 틀린 완전 표절작이었던 것이다.

문을 열자 지난 장마 동안 단 한 번도 환기를 시키지 않았음이 거의 확실시되는 짙은 곰팡내와 피사의 사탑 마냥 쌓여 있어 기침만 해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비디오테이프 무더기가 손님을 맞이했다. 내일 당장 홍수가 밀어닥치는데 방주에 시동 걸 열쇠를 잃어버린 노아의 눈빛을 한 사장이 나를 발견했다. 한때의 단골을 전혀 기억 못하는 눈초리다. 좀 섭섭한데. “황학동 비디오 시장에 대해 기사를 쓰고 있는데요, 잠깐 말씀 좀 나눠볼 수 있을까요?” 뭐야 이 자식, 하는 눈초리로. “망했어. 다 망했는데 무슨 얘기를 해. 그런 소리 할 거면 나가. 요 옆 가게도 있고 저 옆 건물 1층에도 있는데 왜 2층까지 기어 올라와 지랄이야. 심난해 죽겠는데.” 순간 얼어붙었다. 어마마, 티끌만치도 예상치 못했던 반응. 창피한 일이지만 눈물까지 찔끔 지려버리고 말았다.

도망치듯 매장을 빠져나와 거리 위에 우두커니 섰다. 이토록 격렬한 반응이라니. 어쩌면 <괴시>를 헐값에 산 것에 대한 때늦은 천벌인지도 몰라. 빨리 이 충격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하늘이라도 우러러보려고 고개를 들었더니,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는 TV광고로 기억되는 주상복합단지의 반쯤 만들어진 마천루 그룹이 황학동 하늘 구석구석 빽빽이 들어차 있다. 한창 공사 중인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건물 한 가운데에는 사기분양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차후 적법한 분양공고가 있을 예정이니 기다려 달라는 내용의 대형 플래카드가 부초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난 언제쯤 이런 아파트에서 살아보나. 그러고 보면 죽네 사네 하면서도 아파트 한 채씩은 꼭 가지고 있단 말야. 판교 신도시 2차 분양 이후에는 용인이 뜬다는군. 은평 뉴타운이 민간 분양보다 평당 95만 원이 비싸다던데, 그럼 서민은 다 죽으란 말이냐, 야 다 나와, 뭐 이런 어른스런 생각을 거듭하다 마주오던 행인의 어깨에 밀려 겨우 정신을 차렸다.

대한민국 모든 비디오는 황학동을 거쳤다

복원된 청계천 물길 주변의 난간에 기대 눈앞에 펼쳐진 상가들을 바라봤다. 청계천 황학동 시장은 일반적으로 황학동 삼일 아파트 13동부터 24동까지 펼쳐진 상가 건물들과 그 주변 풍물시장을 일컫는다. 아파트는 뭐고 상가는 또 뭐냐고 묻고 싶겠지만 아파트인 동시에 상가 건물로 허가를 받은 터, 그러니까 여기 삼일 아파트나 종로 3가 세운상가, 낙원상가가 모두 주상복합건물의 원조인 셈이다. 삼일 아파트 머리 꼭대기로 닭 벼슬처럼 치솟아 오른 새 주상복합단지의 건설현장은 그래서 더욱 아이러니한 풍경이다. 황학동 시장은 여러 가지 중고물품과 도매상권으로 오래 전부터 유명세를 떨쳐왔다. 1990년대 중반, 주말이면 진귀한 구경을 하기 위해 서울시민들이 몰려들었고 노점상과 상가들 모두 인파로 몸살을 앓다시피 했다. 그러니까 바야흐로 황학동의 시대였던 것이다, 라고 하면 과장이고 어쨌든 복잡한 서울시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문화지대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게 있어 황학동 시장이라 하면 그건 그저 ‘비디오 시장’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도소매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황학동 비디오 시장은 한국 영상물 부가판권 상권의 알파요 오메가다. 대한민국에서 유통되는 모든 비디오는 그 삶이 계속되는 한 반드시 황학동을 한 번쯤 거쳐야했다. 날마다 새로 등장하는 신간 비디오들이 황학동에서 전국 비디오 대여점으로 뻗어나가고, 몰락한 대여점의 중고 비디오들이 황학동으로 돌아와 헐값에 다시 대여점과 개인 고객에게 팔려나간다. 바로 이 중고 비디오야말로 황학동의 묘미라고나 할까, 혈혈단신 서울에 똬리를 틀고 대학생활을 시작했던 1990년대 중후반, 나는 거의 일주일에 두세 번씩 중고 비디오를 찾아 황학동을 찾았다. 딱히 할 일도 없었거니와 내가 좋아하는 영화라는 것이 대부분 정상적인 비디오 대여점에선 찾아볼 수 없는 종류였기 때문이다. 그런 류의 시시껄렁한 영화들을 여의도 공원 비둘기만큼이나 발에 채이게 발견할 수 있는 황학동은 내게 있어 그야말로 잭 스패로우의 카리브 해였다. 고전 한국영화나 B급 공포영화, 고전 한국공포영화면 더 좋고, 그런 필살의 비디오들을 찾아 먹색 봉지에 쳐 넣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고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개운했으며 어떤 시리얼을 먹지 않아도 호랑이 힘이 솟아났다. 그런데 그 시리얼을 먹으면 성욕이 감퇴되고 정자 수가 준다는데, 진짜일까? 아무튼 그렇게 비디오를 사들고 오면 어김없이 피시통신에 접속해 “나 오늘 이런 저런 비디오 구했다, 부럽지?” 따위의 글을 올려놓고 저 혼자 좋아 킥킥대곤 했던 것이다. 가끔씩 나만큼 지독히 할 일 없는 인사가 답글을 달아 축하해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저 자기만족에 불과했다. 추억은 그만두고 일 해야지, 하는 맘에 발을 뗐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황학동 최고 규모를 자랑하는 비디오 상점 ‘비디오 여행’으로 향했다. 삼일 아파트 18동 2층에 자리한 가게다.

“황학동 장사도 올해가 마지막인 셈이지”

‘비디오 여행’의 남진수 소장님이 반갑게 맞이한다. 살가운 반응에 코끝이 시큰하다. 먼저 간 가게에서는 문전박대에 욕만 듣고 쫓겨나왔다 하니 “그런 건 기자님이 이해해줘야지. 진짜로 망했는데 거짓말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하나, 그럼.” 하신다. 비디오 여행은 비슷한 이름의 공중파 영화 소개 프로그램과는 관련이 없다. 1986년부터 사업을 시작했으니 벌써 20년이 다 됐다. 비디오테이프 도소매 및 비디오 대여점 신규개업, 폐업관리로 시작해 2000년 들어서부터는 DVD 총판까지 병행하고 있다. 규모로 따지면 청계천 최고 아니냐고 물었더니 손 사레를 치며 대한민국 최고라고 강조하신다. 그냥 자랑은 아닌 것이, 인터뷰 하는 중에도 손님들이 꽤나 드나들며 불황을 무색케 했다. 그런데 어쩐지 주변에 비디오 가게가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하고 묻자 팔짱을 끼며 자못 심각하게 말씀하시길 “처음엔 한 30여 군데 넘게 있었는데 IMF 지나면서 20개로 줄어들고, 이번에 청계천 복개공사로 노점상들이 전부 동대문운동장 안으로 쫓겨나면서 또 반으로 줄어버렸어. 그나마 신 프로 다루는 매장은 5군데 정도밖에 안 돼. 복개작업 이후에 공기는 좀 좋아진 것 같은데, 그럼 뭐하나. 장사치들이 장사가 잘 돼야 행복한 거지. 여기가 도깨비 풍물시장이라는 게 다 노점상들이 있어서 가능한 감투였는데, 이제는 노점상 구경하러 왔다 비디오 구입해가는 손님들도 없고, 그저 주말에 청계천 구경하러 왔다 곱창이나 먹고 돌아가는 가족들밖에 없어. 그래서 요 앞에 먹자골목만 성황이지 다른 데는 업종 안 가리고 전부 망했어.”

유사 이래 황학동 시장을 지배해온 것은 돈, 시장논리였다. 거미줄 같은 골목길을 따라 전체를 관통하는 보이지 않는 질서다. 누구네 아들, 누구네 조카, 사돈 팔촌의 조카의 동서, 무슨 고등학교, 대학교 출신, 그리고 그 출신의 아들과 친구들이 주름잡는 한국 주류사회와는 달리 황학동만큼은 돈의 논리로 일어서고 쓰러지고 재기해왔다. 그랬던 황학동이 이젠 개발논리에 의해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이제는 그 명맥조차 유지하기 힘들게 생겼다. 황학동 시장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까지 모조리 다 철거될 예정이다. “우리 머리 위로 주상복합건물 짓고 있잖아. 개천복원에 방해돼 노점상들 내보내고, 이젠 우리 차례인 거지. 아직 시에서 공식적으로 통보가 내려온 건 아닌데, 조합 쪽으로 해서 다 얘기가 전달됐어. 청계천에서 장사하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인 셈이지 뭐.”

삶과 생존의 문제가 왔다갔다하는 와중에 옛날 비디오 찾는 미션 따위가 뭐가 그리 중요해, 라지만 결국 한쪽 구석에서 몇 개 테이프를 골라내고 말았다. <고무인간의 최후>와 <네온 익스프레스> <악마의 씨> 그리고 <마견>. 한국 비디오업계의 눈부신 작명 철학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하는 대목인데, 피터 잭슨의 데뷔작 <배드 테이스트>를 <고무인간의 최후>로, 로만 폴란스키의 <로즈메리의 아기>를 <악마의 씨>로, 그리고 사무엘 풀러의 <화이트 독>을 <마견>으로 바꿔 대중성과 오락성을 고루 겸비한 제목을 창조해낸 것이다. 그게 무슨 궤변이냐 묻는다면 <화이트 독>을 곧이곧대로 <백구>라고 했을 때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긴장감이 떨어졌을지에 대해 논하고 싶다. <배드 테이스트>라고 하면 언뜻 감이 안 오지만 <고무인간의 최후>라 했을 때는 도대체 고무인간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매우 근원적이고 본능적인 충동으로 인해 비디오를 꺼내들지 않을 수 없지 않나. 피터 잭슨은 한국 비디오업계에 감사해야 한다. 싸구려 제목에도 불구하고 꽤나 잘 만든 좀비영화 <네온 익스프레스>는 <네온 매니악>(1996, 조셉 맨자인)의 제목을 좀 더 그럴싸하게 바꿔놓은 것인데, 미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 영화가 하물며 한국시장에 버젓이 출시돼 있다는 것은 이래저래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역시 한국 비디오 시장만이 가지고 있는 낭만이랄까. 이제는 모두 옛날 일이지만.

내 인생 마지막으로 보는 비디오들

동대문 방향으로 쭉 걸어 내려오는데 반가운 이름이 눈에 띈다. 삼일아파트 15동 2층의 ‘젊은 남자’. 이 비디오 가게는 과거 김기영의 <화녀 82'>를 구입한 곳이라 잘 기억하고 있다. 그때 나랑 같이 간 사내는 보지도 않을 비디오 10편을 4천 원에 구입해 녹화용으로 쓰며 “이것이 IMF 시대를 살아가는 사나이의 진정한 삶의 지혜”라고 자랑했었다. 내부 정경은 진열대의 비디오와 포스터들이 좀 더 낡고 희미해졌음을 빼면 3년 전과 거의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척 보기에도 마지막으로 손님이 드나든 지 꽤 됐음을 알 수 있어 사장님에게 말을 붙이기가 여간 고통스럽지 않았다. 결국 애꿎은 <총알탄 사나이>를 집어 들어 1천 원을 건네며 겨우 몇 마디 나눠볼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완전 망했다”는 반종섭 사장님은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하단다. “올해까지 상가들을 다 비우고 나가야 하는데, 장지동으로 옮겨준다고 하지만 그것도 세금자료나 기타 여러 가지를 종합해 시 차원에서 결정한 소수의 선택받은 인원들이 갈 수 있는 거잖아. 아직 장지동에 상가건축도 안 들어갔는데 뭐. 들어가도 문제인 게, 청계천처럼 시내 한복판에 있어도 장사가 될까 말까 한 마당에 성남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장지동까지 누가 비디오를 사러 가나. 이젠 전부 끝난 거지. 끝.” 사장님은 아무래도 몇 편 더 샀으면 하는 눈치지만, 그냥 가게를 빠져나왔다. 매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느릿하게 짓눌린 과거의 공기가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버린 과거를 목격하게 되면 사람은 흔히 도망치기 마련이다. 딱히 비겁해서라기보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국 고전영화가 많기로 유명한 삼일 아파트 21동 1층의 ‘무비월드’를 찾았다. 한쪽 구석의 최신영화 DVD를 제외하면 매장 사 면과 가운데 선반 모두가 비디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가게다. 한국 고전영화를 찾는다면 황학동 무비월드나 을지로 쁘렝땅 백화점 지하 ‘청춘극장’을 찾는 것이 별 대단스럽지도 않은 상식이던 시절이 있었다. 임강우 사장님은 “손님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고전 한국영화를 찾는 고객들이 꾸준히 찾아온다”며 과거의 명성이 지금도 여전히 통하는 상식임을 확인시켰다. 주로 40, 50대 마니아들이 주로 찾는 이곳도 과거만큼 많은 고전영화를 보유하고 있진 않다. 이젠 더 이상 한국 고전영화 비디오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젠 더 이상 중고도 나오질 않다보니 여기 있는 비디오들이 다 팔리고 나면 그걸로 끝인 거야. 지금 보고 있는 그 비디오들이 기자선생 인생에 마지막으로 보는 것들일 수도 있어.”

이만희의 <쇠사슬을 끊어라>와 신상옥의 <여수 407호>, 장일호의 <성형미인>, 그리고 전조명의 <서산대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정형미인'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성형미인>이나 박암의 대머리가 눈에 선한 <서산대사>의 비디오는 다른 데서도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쇠사슬을 끊어라> 같은 경우는 비디오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작품이다. 황학동 시장이 한참 잘 나갔던 90년대까지만 해도 10만 원은 족히 받았을 이 비디오는 현재 4만 원에 팔리고 있었다. <일사-나치 친위대의 색녀> 류의 컨셉과 정통 탈옥영화의 장르적 특성, 그리고 한국적 신파 감성이 묘하게 버무려진 <여수 407호>는 곰털처럼 많은 신상옥의 영화들 가운데서도 나 같은 어둠의 아이들이 특별히 더 좋아했던 작품이다. 한쪽에서 왕지징의 <헬로강시>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홍콩의 유관위 류의 강시영화보다 대만의 헬로강시 시리즈를 더 좋아했던 나로선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우와! 라든가 이햐! 라든가 오호! 라든가, 뭐 이런 탄성들이 오가는 시끌벅적한 재회의 기쁨도 잠시, 이 비디오들이 전부 내 생애 마지막으로 만나는 모습일지 모른다 생각하니 슬퍼져버리고 말았다. 왜 지상 위에 모든 것들은 그 소중함을 미처 깨닫기 전에 한 발 먼저 사라져버리고 마는 걸까. 아 이 짓궂은 인생이란. 어리석은 인간이란.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의 총체

“다운로드족들을 모조리 감방에 집어 쳐넣어야” “높은 가격에 DVD 출시해 판매율 낮추고, 그나마 수시로 할인 행사하는 바람에 소비자 우롱하는 DVD 제작사는 공중 폭파시켜야” “13장을 3천 원에 파는 이 따위 비디오들, 차라리 모조리 불 싸질러 버려야지”처럼 어느 정도 과격하거나 어느 정도 정의로운 외침도 있었지만, 3년 만에 찾은 황학동 사람들은 대부분 차분한 마음으로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뭔가 부조리하다는, 개발도 좋고 발전도 좋지만 그 땅에 살아가던 사람들은 어디서 개발하고 발전하느냐는 볼멘소리도 없다. 그 스스로가 20,30년 동안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살아왔으니 니들이 정 그렇다면 이번에도 내 그러마하는 것일까. 황학동에서 동묘 방향으로 발길을 옮기는 길,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잖아. 사라져가는 지상의 모든 것들, 그러니까 이를테면 황학동 같은 공간은 세상사에 너무 밝아져버린 나 같은 인간에게 잠시 잠깐의 추억과 애잔함, 애틋함 따위를 안겨주고 사라질 만큼 너그럽거나 유약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어 터질 듯이 차올랐다.

다시 황학동 쪽으로 방향을 바꿔 삼일 아파트 맞은편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다. 시멘트 색이 그대로 드러난 구닥다리 아파트의 고르지 않은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소름>에서 광태가 살던 미금 아파트가 떠올랐다. 그만큼 무시무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초현실적이다. 옥상에 올라 황학동을 바라보니 저 멀리 종로의 빌딩숲에서부터 여기 황학동 상가를 양분 삼아 그 위로 뻗어 자란 듯한 주상복합빌딩 공사현장까지 한 눈에 다 들어왔다. 두말 할 나위 없이, 그건 현실이었다. 그제야 황학동에 올 때마다 느꼈던 사시사철 더위의 원인을 깨달았다. 사람 표정보다 더 빨리 그 모습을 바꾸는 서울, 그 서울의 한복판에서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을 우직한 표정으로 잡아 쥐고 지켜온 삶의 힘. 난 그 위대한 힘의 열기를 느꼈던 것이다. 황학동이 그립다.

사진ㅣ김수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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