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혹시 당신이 고른 책도? [중앙일보]
2006 중앙일보 선정 올해의 책
2006년 출판계와 지식사회는 어떤 책으로 독자와 만나고 소통했을까요. 중앙일보는 '2006 올해의 책'을 선정해 한 해 동안의 '책농사'를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출판전문가와 학자, 작가 등 13명의 선정위원을 구성했습니다. <명단 참조> 이들로부터 '올해의 책' 2권씩, 인문.사회, 문학, 경제.경영, 과학.실용, 어린이.청소년 분야에서 3권씩을 1차 추천받았습니다. 여기서 다수 표를 받은 후보 도서를 다시 추려 2차 투표를 실시, '올해의 책'으로 문중양 서울대 교수의 '우리역사 과학기행'과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를 최종 선정했습니다. 선정 기준으로는 책의 완성도와 문제의식, 독자들의 반응 등을 두루 고려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초정리 편지'처럼 저희가 발간 당시 소개하지 못했으나, 이번 기회를 통해 '재발견'하게 된 책도 있었음을 기쁜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후보에 올랐던 책들도 소개했으니 모쪼록 행복한 책읽기에 도움 되시기 바랍니다.



당시 눈으로 보면 역사 달리 보일걸

우리 역사 과학기행
문중양 지음, 동아시아
352쪽, 1만3000원


제목보다 부제목이 책의 특징을 더 잘 보여주는 책이 많다. 부제목이 '역사 속 우리 과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인 이 책이 그러하다. 단순히 우리 조상들의 과학적 성취를 나열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면 새삼 이 책에 주목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책은 과학적 성취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주안점을 둔다. 그 기본 관점은 근대 과학의 필터를 제거하고 전통 과학을 그것이 처해 있던 특정 시대의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예컨대 현대 과학과 유사한 형태의 것에만 주목하다보면 17세기 이후 조선의 서양 과학 수용을 놓고 서양 과학의 우수성을 적극 수용하려 한 유학자들만 훌륭한 실학자로 평가하는 잘못에 빠진다. 또한 세종 대의 찬란했던 과학기술이 이후에 잘 계승되지 못했다는 인식도, 현대 과학과 유사한 형태의 전문적인 지식들이 세종 대에 방대하게 나타났다가 이후에 소멸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두 과학지식을 둘러 싼 문화적 배경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단견들이라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좀더 구체적인 예를 들면, 우리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금속활자를 이해하려 한다. 금속활자의 인쇄술로 인해 얼마나 폭발적으로 서적 간행이 이루어졌는가? 서적의 대량 유통이 중세적 지식의 틀을 얼마나 변혁시켰고 나아가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하는 데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가? 당연히 우리의 금속활자 인쇄술은 그렇지 못했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과학사에서 말하는 'why not' 질문, 즉 동양은 왜 서양과 같은 발전을 이루지 못했느냐는 질문이 돼버리는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14, 15세기 고려 말, 조선 초 우리 금속활자 인쇄술 발달의 사회적 배경은 중세에서 근대로 전환하던 유럽과 크게 달랐다. 그 시기는 우리 역사에서 유교 문화의 본격적 형성기라고 할 수 있으며, 결국 우리의 금속활자는 조선 왕조의 안정적 정착이라는 정치적 구실과 유교 문화의 형성이라는 사상적. 문화적 의의를 갖는다. 14, 15세기 우리 사회의 필요에 훌륭하게 부응한 것이 금속활자 인쇄술이었으니, 구텐베르크와 비교하면서 그 의의를 낮추어 볼 하등의 까닭이 없다.

첨성대, 석불사 석굴, 고구려 고분 벽화, 천상열차분야지도, 금속활자, 앙부일구, 훈민정음, 신기전과 화차, 거북선, 수원 화성, 혼천시계 등 우리 조상들의 다양한 과학적 성취에 대해 저자는 일관되게 그 문화적.사회적 배경과 세계관을 따져 묻는다.

저자 스스로 밝히듯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전통 과학 유산의 과학적 원리를 파악하거나, 우리 과학 문화의 우수성과 과학적 역량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독자는 실망할지 모른다. 대신 서양과학과는 다른 우리 과학의 문화적.사회적 배경과 논리 및 세계관을 이해하고픈 독자라면 흥미진진한 책이 될 것이다. 요컨대 이 책은 진정한 의미의 '과학사' 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표정훈<출판평론가>


시간·공간·지식이 부자 밑천이래요

부의 미래
앨빈 토플러, 하이디 토플러 지음
김중웅 옮김, 청림출판
656쪽, 1만9800원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이라는 강력한 은유로 일찌감치 우리에게 지식정보화 혁명이 찾아올 것임을 예고했다. 예언은 적중했으며 그가 처음으로 썼던 '재택근무' '전자정보화 가정' '프로슈머' 같은 용어는 일상어가 됐다.

지금껏 토플러는 10년을 주기로 미래를 예측했다. 1970년에는 '미래 쇼크'를, 80년에는 '제3의 물결'을, 91년에는 '권력이동'을 펴냈다. 2000년대에도 신작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으나 '권력이동' 이후 15년이 지나서야 '부의 미래'가 출간됐다. 미래학의 거장조차 부담을 느낄 만큼 변화의 속도는 빠르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 간' 우리 역시 제4의 물결이 어떻게 전개될지, 그리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국내 출간을 앞두고 초판 매진 사례가 벌어졌을 만큼 큰 파장을 불러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의 미래'는 우리가 맞고 있는 변화는 혼란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부를 창출한다고 지적한다. 부를 창출하는 시스템은 단독으로 생성되지 않으며, 새로운 삶의 방식과 문명 그리고 전통적인 역할이나 지위의 변화와 함께 등장한다. 이미 부를 창출하는 시스템이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다시 정보화 사회로 전이됐고 핵가족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으로, 수직적 위계구조는 대안적 네트워크로 변했다. 따라서 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심층기반을 이해해야 한다.

앞으로 이런 변화를 이끌 부의 심층기반이란 시간과 공간과 지식이다. 시간과 인간의 관계가 달라지며 파생되는 속도의 충돌은 사회적 갈등과 위기감을 낳을 수도 있다. 기업이 시속 100마일로 변한다면 학교는 10마일로, 정치조직은 3마일의 속도로 변하기 때문이다. 또한 부의 중심이 아시아, 특히 중국으로 빠르게 공간이동을 하고 있고 지식의 활용도가 부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덧붙인다.

이 책은 부의 개념을 돈이 아닌 인간의 사회적.문화적 욕구를 포함한 문명사적 개념으로 풀어낸 점이 돋보인다.

물론 책에서 중요하게 언급된 시간.공간.지식의 개념은 빌 게이츠, 토머스 프리드만, 다니엘 핑크 등이 이미 지적한 사실과 근본적으로 달라지거나 새로워진 점은 없다. 하지만 현상을 통해 본질로 접근하고, 개별정보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등 미래를 사고하는 큰 틀을 제시한다. 토플러 스스로도 자부심을 느끼듯 책은 경제학자나 금융전문가들이 말해줄 수도, 알 수도 없는 심층기반을 통해 미래를 직시한다. 경제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영감으로 가득 찼다는 점에서 이 책은 '올해의 책'으로 가치를 지닌다.

한미화<출판평론가>



후보에 올랐던 책들

인문·사회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영훈 외, 책세상) 역사용어 바로쓰기(역사비평편집위원회, 역사비평사) 조선의 문화공간(이종묵, 휴머니스트)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김용규, 웅진지식하우스) 오빠는 풍각쟁이야(장유정, 민음in) 읽는다는 것의 역사(로제 사르티에.굴리엘모 카발로,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한학수, 사회평론) 수사학(키케로, 길) 판단력 강의 101(데이비드 핸더슨 외, 에코의서재) 교실의 고백(존 테일러 개토, 민들레) 요리의 향연(야오웨이쥔, 산지니)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나 아렌트, 한길사)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그는 누구인가?(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까치) 근대를 다시 읽는다(윤대석 외, 역사비평사)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존 브록만, 소소) 19세기 지식인들의 생각 창고(정민 외, 돌베개) 신의 아들(조너선 D 스펜서, 이산) 철학, 삶을 만나다(강신주, 이학사) 디지로그(이어령, 생각의나무) 사생활의 역사 5: 제1차 세계대전부터 현재까지(필립 아리에스.조르주 뒤비, 새물결) 박정희 평전(전인권, 이학사) 열정적 고전읽기(조중걸, 프로네시스) 바보상자의 역습(스티브 존슨, 비즈앤비즈)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이사야 벌린, 아카넷)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김경원.김철호, 열린박물관)



문학(에세이 포함)

남쪽으로 튀어!(오쿠다 히데오, 은행나무) 인생수업(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이레) 글쓰기 만보(안정효, 모멘토) 히치콕(패트릭 맥길리건, 을유문화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렌 와이스버거, 문학동네) 앤디 워홀 손 안에 넣기(리처드 폴스키, 마음산책) 타샤의 정원(타샤 튜더, 윌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공지영, 푸른숲)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서해문집) 펭귄뉴스(김중혁, 문학과지성사) 씨크릿 하우스(데이비드 보더니스, 생각의나무) 모국어의 속살(고종석, 마음산책) 근대문학의 종언 (가리타니 고진, 도서출판b)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헤르만 헤세, 뜨인돌)



경제·경영

롱테일 경제학(크리스 앤더슨, 랜덤하우스) 빈곤의 종말(제프리 삭스, 21세기북스) What's Wrong Korea?(이필재 외, 중앙일보시사미디어) 야만의 주식회사 G8을 말하다(노엄 촘스키 외, 시대의창) 일상의 경제학(하노 벡, 더난출판) 남자의 미래(매리언 살츠먼 외, 김영사) 머니 사이언스(윌리엄 파운드스톤, 소소) 부동산 투자는 과학이다(고종완, 다산북스)



과학·실용

과학해서 행복한 사람들(안여림 외, 사이언스북스)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찰스 다윈, 샘터)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올리버 색스, 이마고)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대니얼 길버트, 김영사) 빛의 제국(질 존스, 양문) 검색으로 세상을 바꾼 구글스토리(존 바텔, 랜덤하우스)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스티븐 호킹, 까치)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최효찬, 예담) 사이먼 싱의 빅뱅(사이먼 싱, 영림카디널) 시인을 위한 물리학(울프 다니엘손, 에코리브르) 마인드 해킹(매트 웹 외, 황금부엉이) 행복의 심리학(대니얼 네틀, 와이즈북) 나는 침대 밑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올리버 색스, 소소) 박경미의 수학 콘서트(박경미, 동아시아) 따귀 맞은 영혼(베르벨 바르데츠키, 궁리)



어린이·청소년

짜장면 불어요(이현, 창비) 나좀 내버려둬!(박현진, 천둥거인) 금단현상(이금이, 푸른책들) 내 생각은 누가 해줘(임사라, 비룡소) 걱정쟁이 열세 살(최나미, 사계절) 나온의 숨어있는 방(황선미, 창비) 처음 가진 열쇠(황선미, 웅진주니어)레모네이드 마마(버지니아 외버 울프, 비룡소) 난 버디가 아니라 버드야(크리스토퍼 폴 커티스, 시공사) 길 위의 책(강미, 푸른책) 몽구스 크루(신여랑, 사계절) (이경화, 바람의아이들)


포토 일러스트레이션=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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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16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책을 많이 안 읽은게 티가 나네요.
내년에는 좀더 정열적으로 책에 파고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저 위에 여자가 엎드려 책보는 그림 남자가 그렸게요,여자가 그렸게요?

키노 2006-12-17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가 그린 거 아닌가요?^^
 

KBS 'TV, 책을 말하다'에서 2006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키워드 7가지를 선정했다. 괴물, 명왕성, 핵, 양극화, 공부하세요, FUN, 하인즈 워드가 그것! 전문가들이 각 키워드에서 골라낸 2006년 올해의 책 7권 그리고 놓치기 아까운 책 3권까지.
당신들의 대한민국 2 박노자 교수가 말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
박노자 지음  |  한겨레신문사  |  
2001년 겨울, 한 벽안의 한국학자 출현이 한국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유창한 한국어 실력과 정교한 논리, 성역없는 비판으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들을 하나하나 들추어냈던 박노자 교수가 바로 그..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
스티븐 호킹 지음  |  김동광 옮김  |  까치  |  
“내가 더 멀리 보아왔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오.”1676년 아이작 뉴턴은 로버트 훅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쓴 바 있는데, 이것은 과학을 비롯한 문명 전체가 그 이전에 이루어진 성과 ..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1
박지향 지음  |  책세상  |  
왜 해방 전후사의‘재인식’인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70년대 박정희 정권까지 우리 역사는 반공 이데올로기 중심의 우편향적인 시각에서 서술되어왔다. 1979년 첫 권이 출간된《해방 전후사의 인식》..
빈곤의 종말
제프리 D. 삭스 지음  |  김현구 옮김  |  21세기북스(북이십일)  |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의 저서 국내 최초로 출간! 희망과 인간 존엄의 경제학을 말하다 〈뉴욕타임스〉는 제프리 삭스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로 뽑았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본문보기
올리버 색스 지음  |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임상사례를 문학으로 승화시키며 두뇌에 관한 현대 의학의 이해를 바꾼 신경정신학의 대가 올리버 색스의 대표작이자 당대 고전 시각인식 불능증, 음색인식 불능증, 역행성 기억상실증, 신경매독, 위치감각 상실,..
바보상자의 역습 대중문화가 어떻게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들었나?
스티븐 존슨 지음  |  윤명지, 김영상 옮김  |  비즈앤비즈  |  
책은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삐딱한 시각들 속에서 다음과 같은 새로운 논제를 던진다. 대중문화는 비난을 받아 마땅한가? 지난 수십 년간 '대중은 우매한 것'이라 믿었던 고정관념을 해체한다. 결국, 대중문화가 인간..
미국민중사 1
하워드 진 지음  |  유강은 옮김  |  시울  |  
노암 촘스키와 더불어 미국의 양심을 대표하는 하워드 진의 대표작이 책에도 콜럼버스와 ‘건국의 아버지들’이 비중 있게 등장한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콜럼버스 개인이 아닌, 콜럼버스와 미국 원주민들과의 상호..
아내가 결혼했다 제2회 세계문학상 당선작본문보기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두 남자와 결혼해 버린 발칙한 아내! ‘결혼’이라는 결정적 한 골을 희망한 남자와 2명의 골키퍼를 동시에 기용한 한 여자의 유쾌한 반칙 플레이 제2회 세계문학상 당선작 『아내가 결혼했다』가 출간되었다. 『아..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몬티슐츠외 지음  |  김연수 옮김  |  한문화  |  
스누피에게서 가장 훌륭한 점을 찾는다면 늘 개집 위에 타자기 앞에 앉아 있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타자기 앞의 스누피. 이 책에는 잭 캔필드, 시드니 셀던 등 유명 작가들이 들려주는 글쓰기의 삶 등이 담겨있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대니얼 길버트 지음  |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당신의 행복은 왜 항상 예측을 벗어나는가?미래에 무엇이 자신을, 얼마나 행복하게 해줄 것인지를 항상 잘못 예측하는 우리들!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되면 행복해질까? 오랫동안 벼르고 별러왔던 새 자동차를 사면,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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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과연 대중음악의 최고봉인가.



이 공식은 단지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현실에서 자주 나타난다. 음악 마니아로 살아오며 그간 주변에 존재했던 많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변해온 과정도 거의 이런 형태였고, 필자 자신도 결과적으로 저 공식의 연장선상에서 음악의 지평을 넓혀 온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이렇게 소위 대중음악의 종착역이라는 재즈. 여기에 도달하고 나면 흔히 사람들의 관점은 많이 변하곤 한다. 옛날에 들었던 팝이나 록, 메탈에 대한 사랑은 그저 어린 시절의 유치함의 결과로 잊혀져 가고 결국 재즈에 도달하기 위한 경로로나 의미가 있었을 뿐이다. 재즈만이 대중음악 범주 내에서의 유일한 '진짜 예술'로서 클래식 음악과 견줄만한 자격이 있다는 시각도 흔하다. 그럼 과연 그럴까.



필자는 그간 다양한 형태의 음악을 여러 가지 의미에서 밀접하게 다룰 기회가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록 마니아였고, 20대 중반까지는 기타리스트로서 메탈과 록을 연주했으며, 이후에는 재즈를 주로 들으며 기타 교습과 평론을, 그리고 결국 유학을 통해 대학에서 록과 재즈를 정통적으로 공부하고 연주하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 경험을 토대로 느낀 것은 재즈는 참으로 지적인 음악이라는 점이다.

 

사실 작곡과 편곡, 연주 등에 대한 재즈의 접근법은 클래식을 능가할 만큼의 이론적인 토대를 갖고 있다. 재즈의 음악 이론은 20세기 초중반 클래식 음악의 고전적/현대적 이론을 흡수하여 재창조한 것으로 그 정교함이나 섬세함의 수준은 다른 대중음악 장르에서는 분명 상상하기 힘들다. 다시 말해 댄스나 발라드는 물론이고 메탈이나 프로그레시브 음악 조차도 화음이나 멜로디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재즈에 비한다면 초보적인 수준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분명 재즈는 대중음악의 가장 고급한 형태다.

또 재즈는 비록 처음에는 어렵게 들리지만 일단 특유의 화음과 즉흥 연주에 익숙해지고 나면 정형화된 다른 음악들에서는 찾기 힘든 변화무쌍함과 세련됨이라는 쾌감을 준다.

또 그런 지적인 부분이 단지 차갑고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흑인 음악 특유의 깊은 감정과 정서를 표출하는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기에 난해함이 사라지고 나면 다른 음악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깊은 정서적 감동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재즈는 아주 좋은 음악이며, 흑인의 감성과 백인의 지성이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음악을 사랑하는 입장이라면 놓치기는 참으로 아까운 음악이다.



그러나 그래서 재즈가 종착역이자 최고봉이라고 단순히 결론짓는다면 그건 곤란한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나이 들어 동요를 다시 듣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단 재즈를 한참 듣고 나서는 다시 록이나 팝을 들을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오래 들은 후에도 다른 많은 대중음악 곡들에 매력을 느끼고 또 즐겨 듣고 연주한다.

사실 장르에 의한 음악의 질적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 필자는 취향 만능주의자는 아니며 음악에도 분명 수준이라는 것이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 수준은 꼭 장르의 기준을 따라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비틀즈나 핑크 플로이드, 너바나, 들국화 같은 록 밴드들, 혹은 엘튼 존이나 아바 같은 팝, 그리고 챗 앳킨스에서 존 덴버에 이르는 컨트리 계열, 또 밥 딜런에서 김광석에 이르는 포크 등 모든 종류의 음악에 걸쳐 훌륭한 뮤지션과 명곡들이 국내외적으로 무수히 존재하며, 따라서 서로 다른 영역에서 좋은 음악을 선보여 온 이들의 수준을 서로간에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물론 재즈의 경우, 최소한 우리에게 알려질 정도의 뮤지션이라면 대부분 다른 장르를 기준으로 했을 때 최고 수준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고 따라서 전체적으로 수준 낮은 재즈라는 것이 드물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래서 다른 음악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해야만 할 필연성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관점은 예술 장르로서의 음악을 바라보기 위해 적합한 시각도 아닐뿐더러, 한때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나타난, 대중음악 전체를 쓰레기로 보는 오만한 음악 엘리트주의의 경우에서처럼 좋은 점보다 부작용이 더 많다.

이는 예컨대 음식과 같은 것이다. 훌륭한 스테이크나 궁중요리, 고급 프랑스 요리라면 아무래도 그만큼의 노력과 정성이 들어간 가치 있는 것임에는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런 것만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때로는 짜장면이나 순대, 붕어빵, 핫도그 등등도 먹고 싶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 두 범주의 음식들을 서로 비교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고 그저 특성과 용도가 다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일은 고급 요리만을 늘 먹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들이 음식으로서의 기본을 충족하고 있는지, 즉 엉터리 재료나 더러운 시설에 의해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불량 식품은 아닌지를 파악하는 것일 뿐이다. 물론 상식적으로 비싼 고급 요리라면 제대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고, 길거리에 파는 순대라면 위생상 좋지 않을 가능성이 좀 더 높을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최고급 스테이크에도 철사가 박혀 있을 수 있고 붕어빵에도 만드는 이의 정성이 가득 담길 수 있으며, 이는 결국 개별적 문제일 뿐 음식의 가격이나 종류에 의해 절대적으로 좌우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단지 음악 같은 예술이 음식과 다른 점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설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질적 판단의 기준이 눈에 확 드러나지 않게 미묘하다는 것이고, 그래서 개인 취향이나 주변 환경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 점이다. 그러나 잘 만든 음악과 그렇지 못한 음악은 분명히 존재하고, 음악을 포함한 예술은 이른바 '영혼의 양식'이라는 점에서 이 부분에 대한 변별력을 키우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단지 그것이 재즈냐 록이냐 팝이냐의 장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필자는 재즈의 열렬한 팬이고 모든 사람들이 재즈를 듣고 즐기는 날이 오기를 매일같이 바라고 있다. 모두들 댄스나 발라드, 록에 열광하는 만큼의 열정으로 재즈를 즐긴다면 결국 재즈계는 크게 융성할 것이고, 또 재즈 특유의 창조성은 음악적 영향력으로 또 다른 장르에 침투해 들어가서 각각의 장르들의 발전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재즈만을 들어야 한다거나 재즈를 들음에 우월감을 가질 이유는 없고, 또 재즈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다른 장르들을 그 기준으로 재단하고 무시할 필요는 없다. 장르 같은 형식을 통해 '최고다, 아니다' 의 배타적 기준을 만들어 거기에 맞춰 살 필요도 없다. 재즈는 훌륭한, 아니 더 나아가 위대한 음악이지만 다른 장르 속에도 그런 음악들은 많은 것이다.

그저 재즈라는 음악이 지금과 달리 '고급'과 '난해함'의 개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적 가치와 노력에 어울리는 사랑을 받고 또 자리를 잡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며, 그것이 재즈계, 또 대중음악계가 풀어가야 할 숙제일 뿐이다. 그 이상의 복잡한 생각과 줄 세우기가 과연 필요할까.

   
글 / 신지

음악 포털 사이트 도시락(www.dosirak.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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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14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즈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의 글이네요.

키노 2006-12-14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은 누구나가 즐기고 기분 좋으면 되는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06-12-15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즈의 세계에 깊숙이 들어가고 싶게 만드는 글이네요. 재즈의 즉흥성에 많이 이끌려요.

키노 2006-12-17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라님 안녕하세요 !! 이 겨울에 재즈 참 좋지요^^
 

리눅스 사용자들 ‘더는 못참아’

[한겨레   2006-12-13 09: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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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기창 고려대 교수(법학)는 ‘인터넷 소수자’다. 마이크로소프트(MS)사가 만든 컴퓨터 운영체제인 ‘윈도’와 인터넷 접속 프로그램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사용하지 않는 탓이다. 우리나라 컴퓨터 이용자의 99% 이상이 쓰고 있는 이들 소프트웨어 대신, 김 교수가 사용하는 건 1%도 안 되는 ‘리눅스’와 ‘파이어폭스’다.(그래프 참조) 국제표준 외면 MS사 맞춰 설계…“정보인권 침해”외국선 아무 문제없어…소수자들, 정부상대 소송 추진

김 교수는 공개 프로그램인 리눅스와 파이어폭스가 그 철학에서나 사용의 편리함에서 앞선다는 판단에 따라 소수자의 길을 선택했지만, 그 대가로 각종 불편과 불이익을 겪어야 했다. 12일 김 교수와 똑같은 컴퓨터 환경을 갖춰 직접 금융기관과 공공기관의 누리집(홈페이지)을 이용해 본 결과, 인터넷 뱅킹을 위한 보안프로그램인 공인인증서 발급은 신청 자체가 불가능했으며, 온라인 인·허가 민원, 고충 민원, 정보공개 청구 등도 모두 불가능했다. 반면 미국 국무부, 영국 외무부의 누리집 등에선 회원 가입과 영상 보기에 전혀 장애가 발생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미국·영국·프랑스 등 외국에서는 엠에스사 제품을 사용하지 않아도 불편이 없다”며 “덴마크 정부의 경우 온라인 세금 납부, 은행 거래, 상업등기 등의 공공서비스 구축에서 ‘운영체제와 인터넷 접속 프로그램에 구애받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 어떤 컴퓨터 환경에서든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누리집은 엠에스사 이외의 제품에 대한 배려는커녕 ‘누리집 제작·기술 국제 전문가단체’가 권장하는 국제표준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오로지 엠에스사의 소프트웨어에만 기반해 설계된 것이다. 심지어 전자정부 홈페이지에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적합하게 만들어졌다’는 문구까지 넣을 정도다.

김영홍 함께하는시민행동 정보인권부장은 “특정 회사의 독점적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시스템이 설계되다 보니 이를 사용하지 않는 이용자는 공공기관 누리집 접근에 제한이 생긴다”며 “국민의 정보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형록 행정자치부 전자정부 전략기획팀 담당자는 “정부기관이 민간 분야보다 먼저 이 문제를 개선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비용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참다못한 소수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에 나서기로 했다. ‘오픈웹’(open.unfix.net)에서 공동 원고를 모집하고 있는데, 현재 84명이 소송 참가 뜻을 밝힌 상태다. 내년 초 이들은 공공기관 누리집에 접근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한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이나 회원가입·민원신청 거부를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정책실장은 “더 큰 문제는 앞으로 개발·설계될 공공기관 누리집 또한 국제표준에 따르도록 강제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리눅스·파이어폭스 1989년 핀란드 대학생이 개발한 리눅스는 개인용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운영체제인데, 그 설계도에 해당하는 소스 코드를 무료로 공개한다. 이에 따라 전세계에서 500만명 이상이 참여해 지속적인 업그레이드가 이뤄지고 있다. 파이어폭스는 미국의 비영리재단인 모질라 재단이 인터넷 접속 프로그램 ‘넷스케이프’의 공개된 소스 코드를 누리꾼과 함께 향상시켜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2004년부터 무료로 제공되고 있으며 속도와 개인정보 보호에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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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12-14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컴맹에 가까운지라 리눅스를 쓰고파도 무서워서 못써요. -_-

키노 2006-12-14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얼마전 리눅스와 MS사가 업무제휴를 한 것 같던데. 여하튼 소비자를 위해 무엇이 좋은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때가 된 것 같아요. 특히나 21세기 정보화 시대에는. 이러다가 조지 오웰의 소설처럼 되는게 아닌지^^
 

◆ 컨템포러리 색소폰의 발자취

인간의 목소리를 닮은 소리, 가장 감성적인 톤, 그리고 가장 재즈적인 악기. 색소폰 예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모든 색소폰 연주가 재즈라 할 수 없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색소폰은 대중들에게 재즈의 느낌을 선물했다. 컨템포러리 재즈 색소포니스트, 굳이 재즈에 한정되지 않은 대중적인 연주음악을 소개했던 이 부류의 연주인들은 예술적 깊이가 담긴 연주의 내공만큼이나 이들의 연주에 환호하는 팬들의 성원에 화답했다. 갑자기 스포라이트를 받게 된 재즈 색소포니스트들의 등장은 재즈를 상업적으로 변질시킨다는 평자들의 혹독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아름드리 친숙한 색소폰 선율을 통해 어느덧 대중들은 재즈의 감성을 체득할 수 있게 됐다.


1.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 흑인대중음악 R&B를 인기 연주음악으로 소개

1970년대 초, 재즈 퓨전의 창궐은 재즈와 록, 팝 음악간의 폭넓은 교류의 장을 제시해줬다. 이런 분위기에서 당시 팝 음악의 주류침공을 시도한 알앤비를 재즈에 접목시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 첫 주역은 바로 색소포니스트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였다. CTI 레이블의 설립자인 크리드 테일러 사단의 막내로 데뷔한 그는 모타운 출신 가수들의 인기곡을 감미로운 색소폰 연주로 소개했다. 대표적으로 마빈 게이의 'Inner city blues(1971)' , 빌 위더스의 'Ain't no sunshine' (1971), 스티비 원더의 'You are a sunshine of my heart'(1972)를 색소폰 연주로 소개하며 빌보드 알앤비 차트에 오른다. 그의 대중 친화 전략은 지금껏 대표작으로 칭송되는 앨범 < Mr. Magic > (1975)의 골드로 이어졌고 데뷔 10년째를 맞은 1980년작 < Winelight > 에 소개된 'Just the two of us'로 정점에 다다른다. 2개의 그래미 상 수상과 52주간 빌보드 앨범 차트에 등재됐던 < Winelight >의 부상으로 그로버 워싱턴은 재즈 뮤지션으로서 최고의 스타덤을 맛본다.

2. 데이빗 샌본-소울색 짙은 알토 색소폰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스타덤을 목격한 대중들은 비슷한 시기 그에 필적한 또 하나의 백인 색소포니스트의 등장에 환호한다. 바로 알토 색소포니스트 데이빗 샌본. 팝가수 스티비 원더의 'Tuesday heartbreak'(1972) 데이빗 보위의 'Young American'(1975)에서 소울색 짙은 울림을 선사한 스튜디오 세션맨으로 줏가를 올렸다. < Takin' off > (1975)을 시작으로 컨템포러리 재즈 뮤지션으로의 처녀비행을 감행한 그는 팝 뮤지션들과의 오랜 세션 경험을 바탕으로 재즈를 대중적으로 해석해내는 발군의 능력을 선보인다. 훗날 어반(Urban) 사운드로 통칭된 그의 연주는 재즈의 색체가 가미된 팝 연주의 선두격으로 기억된다. 앨범 < Hideaway > (1980)로 빌보드 알앤비 차트 1위에 오르며 인기 전선에 합류한 그는 이어지는 히트작 < Voyer > (1981)로 그래미 컨템포러리 부문이란 대어를 낚는다. 이후 데이빗 샌본은 1980년대 내내 컨템포러리 재즈계의 절대 강자로 군림한다.

3. 케니 G - 팝 연주음악의 황제로 등극하다.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와 데이빗 샌본의 부상은 색소폰 연주 음악이 대중들에게 충분히 어필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제 남은 건 흑인대중에게 한정된 알앤비의 장벽을 뛰어넘어 범세계적으로 어필할 색소폰 스타를 찾는 일이다. 팝가수 휘트니 휴스턴을 발굴한 아리스타 레코드의 사장 클라이브 데이비스는 팝 연주 음악의 가능성을 일찍이 간파했고 그 꿈을 실현할 주역으로 색소포니스트 케니 G를 소개한다.
예상은 적중했다. 그의 첫 앨범 < Duotones > (1986)의 수록곡 'Songbird'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라는 기염을 토한다. 애무하듯 귀에 속삭이는 소프라노 색소폰의 울림은 이후 케니 G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고 컨템포러리 재즈라는 이름 대신 케니 지의 연주 앞엔 '스무드 재즈'라는 이름이 하사된다.
케니 G의 인기는 인종과 국경을 넘어섰다. 'Going home'(1989)과 영화 < 다잉 영 > 의 메인 타이틀 'Dying Young'(1991)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케니 G 선풍은 뜨거웠다. 신문, 방송 등의 매체는 너도나도 케니 G의 인기를 대중적인 재즈의 표상인 냥 홍보했고 그 여파는 여기저기에서 나타났다. 90년대 가요 음반 세션에서 자주 등장하는 색소폰 연주는 가요가 팝 사운드로 향하게 하는 성과를 가져왔고 탤런트 차인표(1994)의 부상은 색소폰 연주를 일상의 교양으로까지 자리 매김 시킨다. 아울러 케니 G의 영향을 받은 색소포니스트 대니 정의 등장(1998) 또한 주목할 만하다.

4. 그들의 후예는 누구?

상기 언급한 컨템포러리 재즈 스타의 등장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지금까지 진한 영향력으로 남아있다.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유산은 건반주자 밥 제임스(Bob James)의 앨범 < 12 > (1984)를 통해 데뷔한 색소포니스트 커크, 휄럼(Kirk Whalrum)으로 이어졌고,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음악성을 빼어 닮은 내지(Najee)의 등장 또한 환호 받았다. 알토 색소폰의 진한 울림을 선사했던 데이빗 샌본의 흔적은 1990년대 팝스타로 나선 데이브 코즈(Dave Koz)와 캐나다 출신 여성 색소포니스트 캔디 덜퍼(Candy Dulfer), 워렌 힐 (Warren Hill)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연주 음악을 팝의 경지로까지 승화시킨 케니 G는 재즈를 넘어 가요,팝, 월드 뮤직, 클래식 등 전 장르의 음악에 영향을 준다.

클럽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카리스마적인 울림을 선사했던 색소폰은 어느덧 감미롭고 가슴깊이 스며드는 아름드리 선율 악기로 인식됐다. 컨템포러리, 스무드란 꼬리표를 달고 나온 재즈 색소폰. 분명한건 시대에 흐름에 발맞춰 여타 장르와 지속적인 만남을 가져온 것이 재즈고 그 선봉장이 바로 색소폰이었다. '가장 재즈적인 악기' 색소폰은 지금 이순간도 만인이 사랑하고 원하는 '팝'의 옷을 입고 라디오 전파와 방안의 스피커를 통해 재즈의 느낌을 전파해 갈 것이다.

  2006/12 정우식 (jasbso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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