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 세상에서 가장 여유로운 음악 40곡
Various Artists 연주 / 소니뮤직(SonyMusic)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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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전에 비해 하루가 다르게 많은 음악들이 우리들의 주변에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그많은 음악을 소화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의미에서 기획된 음반들이 소위 컴필레이션 음반이라고하는 편집음반들인데 이 음반들은 1,2장의 음반안에 인기곡들이나 대중들이 듣고싶어하는 음악들을 수록하여 그러한 음악적 경향에 편승하고 있습니다.

'여유'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 음반도 그러한 기획의 연장선상에 놓인 음반으로 우리들의 심금을 울렸던 다양한 연주곡들을 실어두고 있습니다. 1번째 트랙의 앙드레 가뇽의 Cher Jean-Paul라는 뉴 에이지 음악에서부터 2번째 트랙의 엔리오 모리꼬네뉴의 영화 러브어페어의 배경음악인  Love Affair  요요마의 클래식 연주곡인 The Libertango, 텔로니우스 뭉크의 재즈음악인 I'm Confessin' 등의 다양한 레퍼토리는 이 음반을 다른 종류의 편집음반들과는 차별성을 두는 음반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음반이 나름대로 잘 만들어진 음반이라는 점은 이러한 다양한 레퍼토리 뿐만 아니라 선곡된 음악들이 대부분 훌륭한 곡들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수록곡들이 연주자들의 대표곡들이 아닌 곡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들어시는 분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곡들도 많으실 겁니다.

바쁜 생활 속에서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있다면 더없이 좋지 않겠습니까.그런 점에서 이 음반은 나름대로의 매력을 가진 음반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편집음반이 가진 가장 큰 취약점의 하나인 곡 전체의 연결성이 없다는 점이 조금은 아쉬운 부분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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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ba - Best Of Abba
아바 (Abba) 노래 / 유니버설(Universal)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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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가 다 되어가는 막바지에 불어닥친 아바의 열풍은 아직도 가실줄을 모르며 영화나 드라마,방송광고 등의 배경음악으로 Tm이며 심지어는 그들의 음악으로 뮤지컬까지 만들고 있으니 그들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이 갈 정도입니다.

이들이 낸 음반은 수도 없을 만큼 많으며 그 중에서도 그들의 히트곡만을 모아둔 음반도 한 두가지가 아닐 정도로 다양합니다. 얼마전에 Definitive Edition이라고 하여 시디와 디비디까지 포함된 음반이 출시되어 많은 인기를 얻은 바가 있는데 이번에 발매된 음반은 모방송의 드라마에서 이들의 음악이 많이 쓰이는 관계로 그 드라마의 인기를 등에 업고 새로운 버전으로 출시되는 조금은 상업적인 의도가 다분한 음반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 음반의 발매시 광고처럼 이 음반은 여타의 다른 베스트음반과는 다른 차별성을 보이고 있는데 그건 다름이 아니라 유독 국내에서만 인기있었던 아바의 음악을 모아두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인지 수록곡의 면면을 보면 이전의 베스트음반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곡들이 눈에 많이 들어옵니다. 2번째 트랙의 Andante, Andante, 3번째 트랙의 Move On, 9번째 트랙의 I Am Just A Girl 등 좀처럼 다른 음반에서는 접하기 힘든 곡들이 수록되어 있어서 아바를 좋아하시는 팬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차별화된 음반이 아닐까 합니다.

다만 이 한 장의 음반으로 아바의 모든 것을 이해하시고자 한다면 그건 그들이 발표한 수많은 음반에 비한다면 무리한 욕심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최소한도의 아바의 모습과 기존의 음반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들의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음반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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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버튼 주연의 알렉산더 대왕 - [초특가판]
로버트 로센 감독, 리차드 버튼 외 출연 / 영상프라자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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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더 대왕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번 영화화 되었으며 최근에는 사극의 바람을 타고 거장 올리버 스톤 감독에 의해서 새로운 이미지의 알렉산더가 탄생하였습니다.지금 소개되는 영화는 1955년도의 로버트 로젠이 메가폰을 잡고 젊은 시절의 리처드 버튼이 알렉산더 대왕의 역할을 맡은 작품으로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와 비교해보면 그 시각적 효과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는 있지만 그 시대에 이러한 장대한 스케일의 영화가 만들어진 점을 감안한다면 비교의 기준이 다르다 할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알렉산더가 세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전투씬보다는 아버지와 어머니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적인 면이라든지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고뇌하는 모습에 초점을 둔 듯한 인상을 많이 풍깁니다.그렇다보니 자연히 액션씬은 크게 부각되지 않지만 마케도니아와 아테네의 케로네아 전투씬에서 보여지는 아날로그적인 액션씬은 지금의 컴퓨터그래픽에 의한 특수촬영보다는 더 정감이 가고 역동적이게 느껴집니다.


영화에서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는데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에서도 콜린 퍼렐이 노란머리를 하고 나오는데 이 영화에서도 리처드 버튼도 노란머리를 한 채 출연하고 있습니다.솔직히 알렉산더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느낌이 드는 것은 저만이 느끼는 감정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척이나 유약해보이고 어색해보인다고 하겠습니다.


고전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배우들의 연극적인 연기와 웅장하게 깔리는 배경음악은 요즘 영화에서 느낄 수 없는 강한 향수를 느끼게 합니다.


영화가 나온지 꽤 오래되어서 디비디타이틀의 화질이나 음질은 그렇게 크게 기대할 수준은 안되며 레터박스 처리된 화면은 고전영화에서 만끽할 수 있는 장대한 스케일의 화면을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디비디타이틀의 표지뒤에 소개된 이 영화에 대한 글은 세르게이 에이젠쉬타인의 알렉산더 네프스키에 대한 글로 잘못 인용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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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명의 성난 사람들 (1disc) - 할인행사
시드니 루멧 감독, 헨리 폰다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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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시드니 루멧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헨리 폰다가 제작과 주연을 맡은 흑백영화로 미국의 형사사건에서의 배심제도가 가지는 모순점과 더불어 동시에 한정된 공간안에서 벌어지는 인간군상들의 이면을 보여주는 영화로 단순한 법정드라마 이상의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이 영화는 CBS의 인기 드라마시리즈 중에서 레지날드 로즈가 각본을 맡았던 부분의 에피소드만을 영화로 재구성 한 것으로 18세 소년이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12명의 배심원들이 유,무죄의 결정을 내리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사실적인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영화의 처음과 끝을 제외하고는 영화내내 배심원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안에서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구조를 취한 영화의 형식은 아주 독특하였으며 그러한 상황을 긴박감있게 연출한 감독의 연출력이 빛을 발한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특별한 볼거리나 다양한 에피소드가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암시하는 날씨와 적절한 배경음악의 사용 그리고 무엇보다 각각의 배심원들이 가지는 캐릭터의 세밀한 묘사덕분이 아니었나 합니다.자신의 아픈 과거로 인하여 맹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사람,소신없이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사람,한 소년의 생명이 걸린 문제임에도 빨리 결정을 내리고 회피해버리려는 사람,뒤에서 조용히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는 사람 등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들의 모습을 묘사한 감독의 치밀한 연출력은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이 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11명의 배심원들이 유죄를 확신하지만 헨리 폰다만 증인들의 증언이 신빙성이 없다며 사건 당시의 정황을 조목조목 나열해가며 무죄를 주장해나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흑백논리와 군중심리,개인주의 등은 어떤면에서는 만장일치를 통해서만 유.무죄를 가리는 배심원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이 될 것이라는 것을 시사하는 듯 합니다만 영화는 여기에서 머물고 더 이상은 나아가지 않습니다.(우리가 잘 아는 미식축구스타인 심슨 사건도 이러한 배심제도가 가지는 취약점을 반영하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라 할 것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피고인인 소년은 아랍계의 슬럼가 소년으로 보이는 데 아무런 이유없이 맹목적으로 소년을 매도하면서 맹목적으로 유죄를 주장하는 부분이나 배심원단이 전부 백인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은 미국이 가지는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적인 감독의 시각이 아닐까 합니다.


위에서 본 감독의 의도들은 오래된 영화이지만 지금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탄탄한 스토리구조와 캐릭터들에 대한 세심한 연출은 이 영화를 오래도록 보게만드는 힘이 되지 않나 합니다.마지막 부분에서 법원을 나서는 배심원들을 덤덤하게 보여주는 장면은 배심원실에서의 치열한 공방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아주 태연하게 비춰줌으로써 영화를 보는 이들로 하여금 긴 여운을 남기게 합니다.


디비디타이틀의 화질이나 사운드,서플은 아무래도 영화가 발표된 지가 오래되어서 그렇게 크게 기대할바는 못됩니다만 영화의 내용은 그러한 디비디타이틀의 결함을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을 괜찮은 영화라고 봅니다.

 

<아래 글은 디비디 2.0에 수록된 최은영 칼럼니스트의 글입니다>

타는 듯한 여름날의 오후. 뉴욕 대법원의 법정에 앉아 있는 12명의 배심원들의 표정은 알쏭달쏭하다. 평결을 기다리는 피고인 소년의 얼굴은 절망감으로 뒤덮여 있지만 판사의 얼굴은 심드렁하게만 보인다. 결정된 사항은 아무것도 없지만, 소년의 얼굴과 법정의 분위기는 이들 간에 모종의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감지하게 한다. 미국식 민주주의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인 배심원실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시드니 루멧의 극영화 데뷔작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놀랍게도 대부분의 이야기가 오직 하나의 장소, 배심원실에서만 이루어지는 영화다. 또 하나 이상한 것은 이 영화에 단 한 명의 여자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국식 민주주의에서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제도, 즉 일반인을 배심원으로 불러 만장일치로 유, 무죄를 확정 짓는 배심원 제도는 이 영화에서 아이로니컬한 방식으로 재조명된다. 가장 공평하다고 생각되는 민주주의식 법 제도 안에는 다종 다기한 편견이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한 푸에르토리코계 소년이 아버지 살해 혐의로 기소되고, 그 재판을 위해 무작위로 추출된 12명의 배심원이 재판정에 자리한다. 사건 심리가 끝나고 배심원실에 자리 잡은 12명의 배심원들 가운데 11명은 소년의 유죄를 주장하지만, 단 한 명 8번 배심원(헨리 폰다)만이 이의를 제기한다. 만장일치로 평결을 내려야만 하는 제도의 특성상 배심원들의 논의는 계속된다. 노골적으로 불만을 피력하는 사람들 앞에서 8번 배심원은 조목조목 사건을 되짚어 나간다. 피고인 소년은 아버지로부터 학대당해 온 빈민가 출신 소년이며, 그의 살해 장면을 본 두 명의 증인이 있다. 소년에게 불리해 보였던 확고한 정황들은 8번 배심원과 그를 지지하기 시작한 다른 배심원들에 의해 다시 논의된다. 논쟁이 진행될수록 명약관화해 보였던 사건에 대한 배심원들의 태도는 급물살을 타며 변화하기 시작한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에서 보여지듯 미국의 50년대 배심원 제도에서 배심원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또한 100% 백인이어야 했다. 물론 지금은 성비가 혼합돼 남녀 12명으로 배심원이 구성된다. 미국식 민주주의의 한계는 배심원의 구성에서부터 드러난다. 피고를 유색 인종 십대 소년으로 설정하면서 감독 시드니 루멧은 이러한 한계를 보다 명확하고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이끌어 나간다. 심판하는 백인과 심판당하는 유색 인종이라는 근본적인 모순을 간과하지 않는 루멧의 태도에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가 천착하는 미국 사회의 모순에 대한 좌파적 시선이 담겨져 있다.

협소하기 그지없는 민주주의 안에서 배심원들은 다양한 사회적 계층으로 나뉘어 있다. 최하층인 노동자 계급에서 중산층 시계 수리공, 상류층의 증권 브로커나 건축가에 이르기까지 배심원들의 출신 성분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다양해지는 의견의 스펙트럼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90여 분 동안 우리는 그들이 내보이는 인간적 면모와 정치적 태도를 지켜보게 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들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지만, 그들은 결코 섞일 수 없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대표한다. 소외 계층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차 있는 10번 배심원, 그 자신이 사형 집행인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3번 배심원은 아들과의 오랜 불화에 대한 분노를 아버지를 죽인 십대 소년에 대한 분노로 치환시켜 버린다. 빈민가에서 자라난 5번 배심원은 피고에 대한 계급 차별적 발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사건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저녁에 보러 갈 야구 게임에만 관심을 기울이거나 혹은 자신의 직업을 떠벌리는 일에만 열중하는 배심원들 또한 존재한다.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이런 풍경은 좁은 배심원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민주주의 사회’라는 커다란 외연으로 확장시킨다. 그러나 <12명의 성난 사람들>이 단순히 사회적 정의와 책임감의 문제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진정한 재미는 결국 모든 제도와 사회적 규약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바라보게 만드는 데 있다. 루멧은 전적으로 영화를 이끌어 가는 12명의 인물들의 독특한 개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그 안에서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감독은 에어컨도 선풍기도 돌아가지 않는 찌는 듯한 오후의 좁은 배심원실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딥 포커스와 극단적인 얼굴 클로즈업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폐소공포증을 극대화시키는가 하면 인물의 행동이 아닌 감정의 추이만으로 사건의 긴장감을 더한다. 실제로 영화를 연출할 때 루멧은 드라마가 전개됨에 따라 배심원실 세트의 벽을 점점 좁히면서 밀실공포의 효과를 배가시켰다. 러시아 ‘키노 프라우다’의 창설자인 전설적인 영화감독 지가 베르토프의 동생이자 장 비고의 <라탈랑트>와 <품행제로>, 엘리아 카잔의 <워터프론트>를 촬영했던 보리스 카우프만의 카메라는 강력한 감정의 스펙터클을 만들어낸다. 흑백 촬영의 대가답게 카우프만은 사소한 디테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오로지 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이야기의 묘미를 효과적으로 시각화했다.

배심원들은 때때로 어떤 특정한 사회적 계층이나 혹은 편견을 대변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결코 상징적인 권력으로 귀속되지는 않는다. 주인공 격인 8번 배심원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배심원들이 결국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소년의 무죄를 주장하기보다는 유죄를 단정 짓기엔 뭔가 석연치 않는 구석이 있다는 말로 사람들을 설득시킨다. 그는 말한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어요. 그 소년이 실제로 아버지를 죽였을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가 내린 유죄의 결정이 만약 틀렸다면, 그건 한 생명을 앗아가는 결과를 가져올 거요.” 루멧이 지닌 좌파적인 관점 속에는 결코 삶의 모순을 비껴갈 수 없는 불완전한 인간의 선택에 대한 심오한 이해가 자리 잡고 있다.

1954년 <스튜디오 원>이라는 제목의 텔레비전 드라마로 방영되었던 작품을 영화로 옮긴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이후 루멧의 영화 세계를 예감할 수 있는 전조와 같은 작품이다. 데뷔작인 이 영화로 베를린영화제에서 금곰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에 노미네이트되면서 그는 너무 빨리 유명해졌다. 이후 루멧은 독특한 개성을 지닌 ‘작가’라기보다는 이야기에 능통한 ‘장인’으로 알려졌다. 많은 비평가들은 그를 가리켜 감독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매끈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 칭했다. 하지만 루멧의 영화들에는 인간에 대한 어떤 공통적인 시선이 존재한다. 좌파 자유주의적 관점에 입각하고 있으면서도, 그는 자기 모순에 시달리는 인간의 나약한 심성에 대해 더없이 따뜻한 시선을 보여 주고 있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의 마지막에서 자신과 가장 극렬하게 대립했던 배심원이 잔뜩 풀이 죽어 있을 때, 주인공 헨리 폰다는 그의 어깨에(!) 웃옷을 걸쳐 준다. 루멧은 그가 싸워야 할 적이 결코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개인을 파시즘으로 몰아가는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에서 옳고 그름의 문제는 사람들이 만장일치의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 서로를 비방하고 강요하며 협박할 때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시스템과 개인의 관계라는 주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 불멸토록 반복되는 이야깃거리가 아니던가.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정의는 승리한다는 식의 지극히 할리우드적인 이야기가 아니냐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영화의 결론은 어쩌면 이상적 자유주의자들의 백일몽일지도 모른다. 온갖 종류의 편견을 넘어서 실현되는 정의란 대부분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꿈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드니 루멧의 영화에는 다수의 시선에 맞서는 외로운 투쟁 끝에 사회로부터 유배당하는 주인공이 자주 등장한다. 그것은 ‘개인’이거나 혹은 개인을 지탱해 주는 공동체로서의 ‘가족’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의 투쟁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다수라는 이름의 파시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이는 소박한 한 자유주의자가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던져 주는 간절한 충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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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만화의 세계 살림지식총서 120
박인하 지음 / 살림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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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서문에서 지은이는" 장르 만화는 만화와 독자가 만나는 교집합에 위치한다.하지만 우리는 애써 이 장르 만화의 존재를 무시해왔다.장르의 다양한 의미와 만화에서 장르의 특별한 의미,그리고 장르 만화로 만화가 존재하며 재생산되는 모습을 정리하고 싶었다.이 책은 그 첫 걸음이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문화의 다른 영역과 달리 만화에서 장르가 가지는 의미와 그러한 장르의 구분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다른 창작물들과 달리 우리는 만화에 대해서만 유독 좋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으며 아직도 그러한 시선의 변화는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합니다.지은이는 이러한 만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선과 그에 따른 만화에서의 장르의 무시는 만화라는 창작물이 하나의 문화적 매체로서 자리잡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지은이가 밝히고 있듯이 만화에서 장르는 수용자의 반복 체험을 통해 특정한 의미체계를 구성하고, 이 특정한 의미 체계는 수용자의 기대감을 만들어내고,장르 만화의 서스펜스를 즐기게 합니다.이처럼 장르 만화에서 만화를 소비하는 이들이 차지하는 위치는 장르만화의 출발점이자 끝이고 장르만화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인이 됩니다.

우리 만화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6,70년대의 어린이 잡지를 통한 만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여 80년대의 여러 종류의 만화잡지들이 생겨나면서 독자층도 연령대별로 확산되고 '만화도 사서 본다'는 식의 생각이 형성되면서 차츰 만화의 정착을 이루는가 싶더니만 도서대여점이 생겨나면서 한창 망울을 피우려던 만화시장은 또 다시 침체기로 접어들고마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이러한 점들은 장르만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하는 하나의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지은이는 만화를 이끌고 나가는 사람들이 먼저 장르만화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과 연구를 통한 문제를 적시하기 보다는 감정적으로 대응하다보니 장르만화는 불완전한 정착을 하게되고 이는 제작,판매,평가시스템의 왜곡을 낳게 하였으며 우리 만화의 유통,마케팅에서의 고질적인 병폐를 낳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만화시장이 침체하게 된 원인의 선,후가 무엇인지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만화를 창작하는 사람들이나 이를 소비하는 독자들의 만화에 대한 제대로 된 시각이 정착되지 않는다면 장르만화라는 것을 언급하기도 전에 우리 만화시장은 고사하고 말 것입니다.지은이의 말대로 무엇보다도 만화를 제작,유통시키는 쪽에서의 이러한 문제점들에대한 철저한 분석과 평가가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지 무조건 독자들에게 만화를 보아달라는 식의 감정적인 대응은 이제는 더 이상 먹혀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은 많지 않은 분량의 지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장르만화에 대한 지은이 나름대로의 분석과 연구가 이루어진 독창적인 책으로 우리가 여태 간과하였던 부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습니다.다만 지면관계상 언급되는 만화에 대한 단편적인 소개와 SF만화에 대한 많은 지면의 할애와 같은 지면 분배의 균형감각이 모자라는 듯합니다.아마 이는 이 책이 지은이의 원고를 초안으로해서 재작성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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