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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 1집
들국화 노래 / 동아기획 / 1985년 1월
평점 :
품절
한국 대중음악에서 락음악이라는 장르가 차지하는 위치는 아주 독특하다. 그 시초가 미군부대 근처의 술집에서 외국가수들의 노래를 카피해서 부르던 이들에 의해 시작되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락음악이 우리네 정서에 맞추어져 새롭게 변모하였다는 것은 더더욱 의미심장한 일이다. 단순한 카피를 넘어서 한국적인 락음악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그 계보의 정점에는 누가 뭐래도 신중현이 차지한다고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 누구 하나 이견을 다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 뒤를 이어 70년대의 산울림과 80년대의 조용필이라는 걸출한 뮤지션들이 시대적 요구에 맞추어서 자신들만의 락음악을 구사하였다
80년대 들어서면서 군사정권의 압박속에서 락음악은 쇠퇴하고 트롯트와 댄스음악, 그리고 팝송이 강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 불쑥 나타난게 그룹 '들국화'다.
이들의 음악은 언더그라운드의 라이브 무대를 통하여 실력을 쌓았던 만큼 1집 음반이 발매되자마자 한국 락음악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찬사를 받음과 동시에 당시 시대에 안주하던 포크 음악과 락음악에 대해 정서적으로 멀어져 있었던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얻으며 제도권 속으로 안전하게 진입하는 데 성공한다.
전인권(v,g), 최성원(v,g,b,key), 조덕환(g,v), 허성욱(key)이라는 4명의 멤버외에 최구희(g), 주찬권(d), 이원재(clarinet)등 당시 최고의 세션이 들려주는 연주는 신인 그룹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꽉찬 사운드를 들려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룹 자체의 이미지가 개인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다른 그룹들에 비해 들국화는 전 멤버들이 골고루 곡을 쓰고, 허성욱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보컬에 참여하고 있어 앨범 자체의 완성도와 함께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게 된다.
1번째 트랙의 '행진'은 전인권의 샤우트 창법과 주찬권의 드러밍, 후반부에서 들려지는 하성욱과 최성원의 신디사이저 사운드는 답답한 가슴을 뻥뚫리게 할 정도로 시원하고 힘이 넘치는 곡이다.
2번째 트랙의 '그것만이 내세상'은 최성원이 작사, 작곡한 곡으로 조용히 이어지는 전인권의 보컬이 드럼의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차츰 고조되기 시작하면서 절제된 듯 들려오는 노래는 '행진'에서의 거친 목소리와는 또 다른 전인권의 매력을 느끼게 하는 곡으로 그의 보컬이 가장 빛을 발하는 곡이라 하겠다.
3번째 트랙의 '세계로 가는 기차'는 조덕환이 작사, 작곡한 곡으로 전형적인 록 앤 롤 사운드를 들려주는 밝고 경쾌한 곡이며, 4번째 트랙의 '더 이상 내게'는 최성원이 작사, 작곡한 곡으로 전 멤버들의 목소리가 골고루 담겨진 아기자기한 곡이다.
5번째 트랙의 '축복합니다'는 서정적인 포크 음악의 분위기가 많이 느껴지는 곡이며, 6번째 트랙의 '사랑일 뿐이야'는 전인권과는 다른 최성원의 부드럽고 여린 감성이 뭍어나는 곡으로 전인권과 같이 보컬을 나누어서 맡고 있는데 두 사람의 음악적 색깔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다.
7번째 트랙의 '매일 그대와'는 전형적인 최성원표 곡으로 아름다운 가사와 어쿠스틱 기타의 맑은 선율, 새 지저귀는 소리가 연인들의 설레이는 감정을 매우 멋들어지게 표현하고 있다.
8번째 트랙의 이병우가 작사, 작곡한 '오후만 있던 일요일'은 이병우가 조동익과 듀엣으로 만든 그룹 어떤날과 모던 락 그룹인 델리 스파이스의 음반에도 실려있는 곡으로 이병우의 곡이라 그런지 뉴 에이지 풍의 기타연주가 인상적이다.
마지막 트랙의 '아침이 밝아올때까지'는 조덕환이 작사, 작곡을 한 곡으로 그룹에서 그의 존재를 부각시킨 곡이기도 하며 많은 사람들에 의해 들국화의 명곡이라고까지 칭해지는 곡이기도 하다.
비틀즈의 명반 'Let It Be'의 음반 자켓을 모사한 듯한 거친 입자의 사진과 최성원이 제시한 들국화라는 그룹명을 택한 그들의 이 데뷔음반은 음반 자켓이나 그룹이름에서부터 외국의 팝음악과는 다른 우리만의 락음악을 구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80년대 척박한 음악시장에서 한국의 자생적인 락음악의 물꼬를 트고 라이브 무대를 활성화 시켰다는 점에서 이 음반을 한국 락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반이라 하여도 손색이 없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