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떤날 I
어떤날 노래 / 신나라뮤직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어떤날의 음악을 처음 들으면 무척 무미건조하고 나른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기존의 노래들에 비해 특별히 사운드적으로 귀에 쏙 들어올 정도의 강렬함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담백하다 못해 너무 간결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그들의 사운드는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한국 음악계에 있어 내노라하는 뮤지션으로 통하는 그들이지만 시인과 촌장, 들국화, 봄여름가을겨울 등의 쟁쟁한 뮤지션이 등장하는 80년대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신출내기 뮤지션으로 자신들만의 독특한 사운드를 구축하며 색깔을 가지기에는 무리인 것처럼 보였지만 데뷔 앨범에서 보여준 그러한 생각이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록과 포크, 퓨전 재즈를 지향한 그들의 사운드는 이전 뮤지션들과 다른 점이라면 연주 자체가 하나의 독립적인 음악이 되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사운드를 구사한다는 것이다. 이 앨범 이후로 그들이 많은 동료가수들에 의해 자신들의 앨범에 세션으로 참여해 달라고 부탁을 받게되는데, 이는 그러한 점을 반영하는 일들이었다. 이들의 활동으로 우리 음악은 단순히 보컬에 깔리는 배경음악에 불과하던 음악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이 음반을 발매하기 이전에 벌써 최성원이 기획한 우리 노래 전시회 1에 '너무 아쉬워 하지마.'를, 들국화의 데뷔 음반에 이병우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을 수록함으로써 대중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어느 정도 알리기 시작했다.
1번째 트랙의 '하늘'은 어떤날의 음악적 색깔을 가장 완벽하게 드러내는 곡으로 두 뮤지션이 좋아하는 팻 메쓰니의 음악적 영향을 받은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특히 이병우의 기타와 백킹 코러스는 팻 메쓰니의 전형적인 사운드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에 덧붙여지는 한국적 포크 리듬으로 인하여 팻 메쓰니와는 또 다른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하늘이 점점 높아만 가는 청명한 가을에 더없이 듣기 좋은 곡이다. 플롯과 나일론 기타 소리가 사람을 무척 편안하게 만든다.
2번째 트랙의 '오랜된 친구'는 조동익의 베이스 리프를 기본으로 하여 아주 기본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는데 별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곡처럼 오랜된 친구에게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그대로 배어 나오는 곡이다.
3번째 트랙의 '그날'은 이 음반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곡으로 그들의 실험성이 녹아든 그들 의 최고의 곡이 아닐까 한다. 이병우의 기타하면 떠오르는 서정성과는 다른 록적인 성향을 강하게 띤 연주는 여느 기타리스트에 뒤지지 않는 절대적인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는데 신디사이저와의 조화는 꼭 필청을 해보아야 할 곡이다.
4번째 트랙의 '지금 그대는'은 이병우의 서정적인 기타 사운드와 힘들이지 않고 흘러가는 보컬, 플롯 연주가 아주 정제된 담백한 곡을 선보이고 있으며, 5번째 트랙의 '오늘은'에서 갑자기 연주되는 재즈적인 어프로치는 머리를 갸웃거리게 하는 대목으로 기타와 퍼커션에 의한 연주가 흡사 보사노바 리듬을 연상시키는 곡으로 당시 댄스와 트롯이 유행하던 가요계에서 본다면 신선한 사운드의 체험이었다.
6번째 트랙의 '너무 아쉬워 하지마'는 곡의 도입부가 스틸 기타로 시작하는데 마치 록 발라드의 도입부를 듣는 듯하지만 차분하게 이어지는 곡은 재즈적인 감성이 많이 뭍어 나오며 7번째 트랙의 '겨울하루'는 6번째 트랙과 달리 어쿠스틱한 기타 연주로 시작하는데 무척이나 우울한 느낌의 곡이다.
8번째 트랙의 '비오는 날이면'은 장필순이 리메이크 하기도 한 곡으로 둘의 화음이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햇살이 환히 비치는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아마도 그건 이 곡이 주는 경쾌한 분위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트랙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들국화의 데뷔음반에도 수록되었던 곡으로 계속해서 변주되는 이병우의 기타가 뉴 에이지 음악과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한다.
이처럼 이들의 음악은 대체적으로 잘 정제된 듯한 사운드를 들려주는데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귀를 자극하는 음악은 결코 아니지만 듣다보면 오랜 동안 사람의 가슴에 남아 자꾸만 듣고 싶은 마약(?)과도 같은 사운드에 빠져 들게한다. 요즘처럼 맑은 하늘이 보기 좋은 가을에 잘 어울리는 노래들이 아닐까 한다. 이들의 곡에서 느껴지는 여유와 편안함을 만끽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한번도 제대로 된 방송을 하지 않았던 그들의 음악이지만 입소문을 통하여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시작하였고 2집을 발매할 당시에는 그들의 매니아층이 많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는 매스컴을 타지 않고도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한 예로 이는 다름아닌 음악적인 완성도가 이루어진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앨범은 2집을 끝으로 더 이상 활동을 중단한 채 오랜 시간의 휴지기를 가지고 있는데 3집의 발매를 한번 기대 해본다..
참고로 조동익은 처음에 기타를 쳤었지만 이병우의 기타 실력이 워낙 탁월해 기타로는 승산이 없을 것 같아 베이스로 전환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날의 해체 후에 이병우는 기타로, 조동익은 베이스로 세견계를 평정했다고 한다. 역시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모광고가 떠오르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