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노가 팝송을 듣기 시작하면서 가장 좋아했던 그룹이다. 이들의 음악을 녹음해서 듣던 시절이 어저께 같은데 벌써 수많은 시간이 흘렀네용...81년도 공연실황이니 그때 그멤버들을 볼 수 있겠다. 근데 디비디의 화질이나 음질이 좋을런지는 조금 의문이다. 여태 그들의 디비디를 봐서....스페셜 피처도 없고 ㅎㅎㅎㅎ 넘 욕심을 부리는 건가.

여하튼 오늘 아침 가장 반가운 소식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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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초부터 새로운 음반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가요 중에서는 이 두음반이 가장 눈에 띄는 음반이 아닐까^^

기존의 곡에서는 느낄수 없었던 신선하고 참신함이 묻어나는 이들의 사운드로 2006년을 새롭게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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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ㅇㅎ 2006-02-04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저랑 생각이 똑같으시네요!!새뱃돈으로 질러야할 음반ㅎㅎ

키노 2006-02-04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분 좋으시겠네요..세뱃돈이 제대로된 위력을 발휘하겠군요..좋은 음악 많이 듣는 한해가 되세용^^

변덕괭이 2006-02-12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질르려고 합니다. 기대되요. !ㅎ

키노 2006-02-18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브님 반갑습니다. 한번 질러보심이^^

NAU 2006-03-26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키노님 저와도 똑같으신듯! 좀 늦긴했지만 두 음반이 지금 모두 제 수중안에 있다죠..ㅋㅋ

키노 2006-03-26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우님 반갑습니다^^ 어제 EBS공감에서 델리스파이스가 나왔더라구요 ㅎㅎㅎ 넘 좋더군요
 

아!!!! 내가 다 가진 앨범이네

이번엔 3장을 패키지로 1장 가격에 준다는 경제적인 메리트는 차지하고서라도 기존의 음반에 실리지 않았던 곡들까지 포함해서 발매한다고 한다. 아 !!! 이럴 어쩌나^^;;

영국 로맨틱 코메디 영화와 그 사운드트랙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괜찮은 기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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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02-03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팅힐은 갖고 있는데... 쩝

키노 2006-02-03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안타깝죠^^ 그래도 한장만 가지고 계시니 한번 구입해보세요. 미수록곡들도 새로 수록했던데..전 3장 다 있어서^^;;
 

중앙지법 '음란물' 선고… 인터넷기업협 반박

영상물등급심사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한 성인용 동영상을 국내 포털사이트를 통해 제공한 콘텐츠 제작업자에게 법원이 첫 유죄 판결을 내려 인터넷기업협회가 반박하고 나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이병세 판사는 1일 남녀간 성관계 장면 등이 적나라하게 담긴 동영상을 대형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제공해 게시토록 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동영상 제공업체 P사 대표 김모씨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영상물들은 일반인의 호색적 흥미를 돋운 뒤 돈을 벌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며 "노출 정도가 포르노보다 경미한 점, 음란성의 개념이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달라지고 오늘날 우리 사회의 성관념이 과거에 비해 개방된 점을 두루 감안하더라도 '음란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 영상물이 영등위의 심의를 거쳐 등급 분류결정을 받은 점은 존중돼야 하지만 영등위가 '음란'의 문제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지위에 있는 것은 아니며 최종적 판단은 사법부의 몫이다"고 못박았다.

동영상 콘텐츠 제작업자 김씨와 함께 적발된 네이버, 야후코리아 등 대형 포털사이트 등은 벌금 1500만원에 약식기소됐으나 정식재판에 회부돼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인기협 측은 "검찰의 표현대로 내용이 도가 지나쳤다는 것은 다분히 자의적인 해석일 수 있는데다, 판단하는 사람과 정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며 "어떤 기준으로 서비스를 하라는 것인지 애매한데, 처벌 이전에 하루빨리 예측 가능한 기준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화영기자@디지털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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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뮌헨>은 제20회 뮌헨 올림픽 당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도대체 그때 어떤 일이 있었고, 영화는 그것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이 외에도 올림픽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기 때문에 순수한 스포츠정신과 상관없이 각종 정치적 사건과 연루되어 왔다. 스물여덟 번의 대회를 치르는 동안 있었던, 우리가 잘 모르고 있던 올림픽 사건들.
검은 9월단 사건-제20회 뮌헨 올림픽
이는 지금까지 있었던 올림픽 사건들 중에 가장 충격적이고, 비극적이다. 1972년 뮌헨 올림픽. 8월 26일부터 9월 10일까지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9월 5일 새벽, 스스로를 검은 색으로 규정한 팔레스타인의 테러조직 ‘검은 9월단’이 ‘거사’를 결행한다. 올림픽 선수촌에 잠입해 이스라엘 선수단이 묵고 있는 숙소를 습격. 그 자리에서 2명을 죽이고, 9명을 인질로 잡았다. ‘검은 9월단’은 인질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당시 이스라엘에 억류 중인 팔레스타인 정치범 234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전 경기 중단. 서독 총리가 직접 나서 협상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모든 협상을 거부했고, 결국 독일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독일은 테러리스트들을 공항으로 움직이게 한 후 특수부대 요원이 나서서 그들과 대규모 총격전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인질로 잡혔던 선수 9명 전원, 테러리스트 5명, 특수부대 요원 1명이 사망했다. 다음날 메인 스타디움에서 장례식이 거행되고, 올림픽 경기는 속개되었다. 그러나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가만히 당하고 있을 리가 없다. 남은 선수단을 모두 귀국시킨 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에 폭탄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검은 9월단’을 지휘한 11명을 살해하기 위한 작전을 개시한다.

영화 <뮌헨>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인질로 잡힌 모든 선수들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온 이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개시한 보복 작전 ‘신의 분노의 단행’. 신을 거론하며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한 이 작전을 위해 최정예 요원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그들은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테러리스트들의 배후 인물들을 찾아 살해한다. 결국 지금까지 기소나 재판 없이 최소한 13명을 암살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급기야 그 다음해 중동전쟁에까지 이르게 돼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전쟁-제6회 베를린, 제12회 도쿄, 헬싱키 제13회 런던 올림픽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은 제28회로 공식 표기되지만, 사실 25번의 개막식만 있었을 뿐이다. 전쟁의 아픔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인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중간에 세 번이 세계대전 때문에 무산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대회가 치러진 것처럼 횟수를 인정하고 있다. 1914년. 교과서에서 ‘올림픽의 창시자’라고 배운 쿠베르탱 남작이 엄연히 살아 있던 이때. 그는 앞으로 쓰일 올림픽기를 고안했다. 하지만 그 해 6월 28일, 오스트리아 황태자와 그 부인이 세르비아 청년에게 암살당하는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났고,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 후 전쟁이 시작됐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 전쟁은 1918년까지 계속됐고, 1916년에 예정된 제6회 베를린 올림픽은 열리지 못했다.

1945년까지 6년 동안 계속됐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올림픽은 두 번이나 무산됐다. 1940년 제12회는 도쿄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중일전쟁(1938) 때문에 헬싱키로 옮겨 개최되는 것으로 합의가 됐다. 하지만 세계대전이 1939년 일어났고, 대회는 열리지 못했다. 전쟁은 계속되고 13회 런던 올림픽까지 개최되지 못해, 4년 동안 훈련한 선수들은 그 노력의 결과를 시험해볼 기회도 얻지 못했다. 그로부터 4년 후 런던이 드디어 올림픽의 도시가 됐다. 12년 만에 개최된 올림픽은 전쟁 후라 그 운영에 있어서 미비한 점이 많았지만, 11회 대회보다 훨씬 많은 선수들이 참가했다. 단, 전쟁에서 일찌감치 항복했던 이탈리아는 이 대회에 참가했으나, 다른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은 모습을 비추지 못했다.
폭탄 테러-제26회 애틀랜타 올림픽
근대 올림픽이 열린 지 100년이 되는 1996년에 열린다는 사실만으로 시작 전부터 애틀랜타 올림픽은 뜻 깊은 대회였다. 하지만 당시 미국이 세계로부터 받은 곱지 않은 시선은 100주년 기념 축제를 테러의 두려움 속에서 맞게 했다. 우선 대회가 개막되기 직전 TWA 항공사의 여객기가 공중에서 폭파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세계 각지로부터 손님을 받아야 하는 시기라 미국 정부가 테러에 대비해 각 공항 등에 비상경계령을 내린 상태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그런 불안한 상황에서 7월 20일, 대회가 시작됐다. 하지만 권총을 소지한 사람이 아무런 제재없이 주경기장에 들어와 후에 잡혔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많은 이들을 불안하게 하더니, 급기야 경기들이 한참 진행되던 중인 27일, 올림픽공원에서 폭탄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일반 시민들이 다니는 곳에서 감행된 테러였다. 이 사건으로 2명이 사망하고, 무려 112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후 계속되는 테러 협박 등으로 지하철은 마비되고, 세계의 축제는 싸늘한 분위기를 맞게 됐다. 대회는 계속 진행돼 마무리되었지만, 뮌헨 올림픽 이후 가장 아찔하고 충격적인 올림픽으로 기록되었다.
인종차별과 북한-제19회 멕시코시티 올림픽
대회가 열린 것이 1968년. 숫자만 봐도 이 대회가 얼마나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치러졌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가. 대회 10일 전에 학생들은 정부가 국가의 부족한 재원을 올림픽에 사용하는 것에 대한 항의 표시로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이에 정부는 강력하게 탄압해 무려 25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낳았다. 경기를 하기 위해 온 선수들이 시내에서 총알 자국을 봤을 정도였다니, 그 살벌한 분위기를 알 만하다. 인종차별 문제로 아예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초대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막된 올림픽에서는 미국 흑인 선수가 흑인 차별에 항의하는 의미를 담아, 맨발에 한 손에는 검은 장갑을 끼고 육상 200미터 시상대에 오르는 일도 있어 보는 이들을 숙연케 하기도 했다.

국제무대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북한이 움직임을 보인 것은 바로 이전 제18회 도쿄 올림픽. 하지만 당시 국가 명칭에 대해 불만을 느낀 북한은 IOC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고쳐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 IOC는 받아들이는 대신, 이번엔 그냥 ‘북조선’으로 하고 그 다음인 뮌헨 대회부터 시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북한은 그것에 불만을 품고, 선수촌에 들어가 있던 선수들을 모두 철수시켜 귀국해버리는 사건도 있었다.
집단 보이콧 사태-제22회 모스크바, 제23회 LA 올림픽
냉전시대.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IOC에서 알아서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냉전의 중심에 서 있는 동서 양국에서 연이어 올림픽이 개최되기로 한 것이다. 전쟁을 겪었으면서도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던 올림픽이건만, 이번에야말로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면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친소정권을 세웠고, 이에 당시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강력하게 대응했다. 그리고 순수한 스포츠 제전으로 마련된 올림픽을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했다. 보이콧 선언. 이에 많은 서방 국가들이 미국의 뜻을 따랐다. 물론 우리나라도. 결국 1980년 사회주의 국가에서 최초로 열린 모스크바 올림픽은 무려 67개국의 참가 거부를 등에 업은 상태에서 개막됐다. 이렇게 되니 그들도 ‘당하고만’ 있을 수 있나. 198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그 다음 대회에 동유럽 국가들이 똑같은 방법으로 불참했다.

올림픽 소재 영화 베스트 3
불의 전차(1981) 감독 휴 허드슨 | 출연 벤 크로스, 이안 찰슨
1924년 제8회 파리 올림픽 대회에 출전했던 영국의 두 육상선수의 실화를 담은 작품. 케임브리지 대학을 다니고 있지만 유대인이기 때문에 당했던 부당한 대우를 이기기 위해 달리는 해롤드와 자신의 기독교적 신념을 보이기 위해 달리는 에릭이 주인공이다. 스포츠정신과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인간의 믿음을 그리고 있는 작품. 허드슨 감독의 데뷔작이며, 반젤리스의 감동적인 음악이 유명하다.

미라클(2004) 감독 개빈 오코너 | 출연 커트 러셀, 패트리사 클랙슨
지금은 2년 터울로 번갈아가며 열리지만, 1996년까지 하계와 동계 올림픽이 같은 해 열렸다. 1980년 미국 레이크 플라시드 동계 올림픽. 12년 동안 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에 걸려 있는 한 개의 금메달을 독식한 소련을 이기고, 미국이 1위에 오른 실화를 그리고 있다. 그 몇 달 후 열린 하계 올림픽은 보이콧 사태까지 벌어질 정도로 첨예한 냉전 상태였기 때문에, 이 경기는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쿨 러닝(1993) 감독 존 터틀타웁 | 출연 리온, 더그 E. 더그
1년 내내 강렬한 햇볕을 받는 나라 자메이카에서 제15회 캘거리 동계 올림픽의 봅슬레이 종목에 최초로 출전한 네 명의 육상선수들의 이야기를 코믹하고, 뭉클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육상 100미터 선수인 데리스와 주니어, 율은 국가 대표선수 선발전에서 넘어져 탈락하고 만다.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 꿈인 그들은 동계올림픽에서 단거리 선수들에게 유리한 봅슬레이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올림픽 히스토리 에피소드
여자 선수의 올림픽 출전 가능했던 것은 제2회 파리 올림픽 때부터였다.
테니스 단식에 영국의 쿠퍼 선수가 우승해 ‘올림픽 첫 여성 금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하지만 모든 종목에 여성이 출전할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올림픽의 꽃이라고 불리는 육상에 여성 선수가 레이스를 펼칠 수 있었던 건 그로부터 28년이 지난 1928년 제9회 암스테르담
대회 때부터. 국제 여자 스포츠연맹의 지속적인 요구를 통해 성사된 것으로, 당시 몇몇 선수가 실신하는 바람에 800미터 종목은 1966년까지
여자 육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사상 최초로 주요 경기들이 전 세계에 인공위성으로 중계된 제17회 로마 올림픽.
하지만 이 대회에서는 덴마크 사이클 대표 선수가 약물 복용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고를 당해 충격을 줬다. 이후 선수들에 대한 약물 복용에 대한
제재가 더욱 강화됐다.


마라톤의 ‘42.195’라는 숫자는 고대 페르시아와 아테네
사이의 전쟁에서 아테네가 이기자 그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한 군사가 달려간 거리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이미 유명하다. 하지만 그것을 바로 올림픽에
적용시킨 것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이 거리가 마라톤 경기 코스 거리로 정해진 것은 제4회 런던 올림픽 때. 그 뒤로 딱히 규정을 마련하지 않고
자유롭게 진행하다가, 8회 대회인 파리 올림픽 때에 42.195킬로미터가 공식 거리로 결정되었다.


올림픽이 갖는 신성함의 상징인 성화. 성화가 올림픽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28년인 제9회 암스테르담 대회다. 그때는 단순히 스타디움에 설치된 대형 접시에 기름을 부어 불을 붙이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지금처럼 성화를 그리스에서 채화해서 개최도시까지 봉송하는 의식이 시작된 것은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히틀러의 정치적 목적이 다분했던 이 대회
때 그리스 신전 유적에서 태양광선으로 채화된 성화가 베를린까지 봉송되었다. 나치의 모방이라는 이유로 그 다음 대회 때 말이 많았지만, 결국
줄곧 이어내려오고 있다.

박은경 기자 2006.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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