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명작 - [할인행사]
심광진 감독, 박중훈 외 출연 / 메트로 DVD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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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매체가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느 정도의 객관적인 점을 유지한다고는 하지만 예술이라는 장르의 카테고리안에 있는 것들이 작가들의 주관을 객관화시킨 것들이어서인지 평가가 엇갈리는 것을 많이 보게됩니다. 존 포드처럼 당대에는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후대의 평론가들에 의해 새롭게 작가주의 시선에서 인정을 받은 사람이 있는 걸보면 말입니다.

그런의미에서 본다면 이 영화의 제목인 '불후의 명작'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고 할 것입니다. 주인공 인기(박중훈)는 불후의 명작을 만들고 싶어하지만 변변한 시나리오 한편 제대로 써내려갈 재간이 없어 보이는데, 이는 어떤면에서는 감독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뭔가 대단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지만 제대로 되어주지 않는 감독의 애환과 삶을 반추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기이외에 출판사에 근무하는 여경(송윤아), 에로영화 배우인 진희(김여량)의 캐릭터들은 우리들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습니다.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어하지만 현실적인 벽에 부딪쳐 그 안에 안주하며 괴로워하는 모습들은 우리들의 삶의 일 단면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그런한 주인공들의 모습과 더불어 반딧불, 바나나 우유, 미래소년 코난, 프란더스의 개 등 우리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것들을 영화의 여기저기에 배치하고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영화들의 장면을 빌어와 보여줌으로써 영화에 대한 강한 집착을 그리고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은 단순한 이미지의 파편으로만 남아있을 뿐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내고는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러한 이미지들이 범인(凡人)이 나에게는 더 정겹고 따뜻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만한 불후의 명작들에서 느껴지는 중압감보다는 그러한 1류에는 이르지 못하였지만 우리 주변을 맴도는 잔잔한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감성이 어쩌면 나 자신에게 '불후의 명작'으로 남아있지는 않을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불후의 명작'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영화는 다분히 주관적인 면을 가진 영화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이런 멜로물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상투적인 연기라고 보는 견해도 있을 수 있지만 그 동안 코믹 캐릭터로만 많이 등장한 박중훈의 순애보적인 어딘지 모르게 약간은 어설픈 듯한 연기는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며(이명세 감독이 연출한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 보여준 캐릭터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합니다) 거기에 송윤아의 여성스런 연기는 영화에 잘 녹아들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디비디는 가격대비 화질이나 사운드, 서플을 비교한다면 괜찮은 타이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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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버튼 주연의 알렉산더 대왕 - [초특가판]
로버트 로센 감독, 리차드 버튼 외 출연 / 영상프라자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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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더 대왕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번 영화화 되었으며 최근에는 사극의 바람을 타고 거장 올리버 스톤 감독에 의해서 새로운 이미지의 알렉산더가 탄생하였습니다.지금 소개되는 영화는 1955년도의 로버트 로젠이 메가폰을 잡고 젊은 시절의 리처드 버튼이 알렉산더 대왕의 역할을 맡은 작품으로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와 비교해보면 그 시각적 효과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는 있지만 그 시대에 이러한 장대한 스케일의 영화가 만들어진 점을 감안한다면 비교의 기준이 다르다 할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알렉산더가 세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전투씬보다는 아버지와 어머니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적인 면이라든지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고뇌하는 모습에 초점을 둔 듯한 인상을 많이 풍깁니다.그렇다보니 자연히 액션씬은 크게 부각되지 않지만 마케도니아와 아테네의 케로네아 전투씬에서 보여지는 아날로그적인 액션씬은 지금의 컴퓨터그래픽에 의한 특수촬영보다는 더 정감이 가고 역동적이게 느껴집니다.


영화에서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는데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에서도 콜린 퍼렐이 노란머리를 하고 나오는데 이 영화에서도 리처드 버튼도 노란머리를 한 채 출연하고 있습니다.솔직히 알렉산더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느낌이 드는 것은 저만이 느끼는 감정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척이나 유약해보이고 어색해보인다고 하겠습니다.


고전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배우들의 연극적인 연기와 웅장하게 깔리는 배경음악은 요즘 영화에서 느낄 수 없는 강한 향수를 느끼게 합니다.


영화가 나온지 꽤 오래되어서 디비디타이틀의 화질이나 음질은 그렇게 크게 기대할 수준은 안되며 레터박스 처리된 화면은 고전영화에서 만끽할 수 있는 장대한 스케일의 화면을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디비디타이틀의 표지뒤에 소개된 이 영화에 대한 글은 세르게이 에이젠쉬타인의 알렉산더 네프스키에 대한 글로 잘못 인용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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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명의 성난 사람들 (1disc) - 할인행사
시드니 루멧 감독, 헨리 폰다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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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시드니 루멧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헨리 폰다가 제작과 주연을 맡은 흑백영화로 미국의 형사사건에서의 배심제도가 가지는 모순점과 더불어 동시에 한정된 공간안에서 벌어지는 인간군상들의 이면을 보여주는 영화로 단순한 법정드라마 이상의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이 영화는 CBS의 인기 드라마시리즈 중에서 레지날드 로즈가 각본을 맡았던 부분의 에피소드만을 영화로 재구성 한 것으로 18세 소년이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12명의 배심원들이 유,무죄의 결정을 내리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사실적인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영화의 처음과 끝을 제외하고는 영화내내 배심원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안에서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구조를 취한 영화의 형식은 아주 독특하였으며 그러한 상황을 긴박감있게 연출한 감독의 연출력이 빛을 발한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특별한 볼거리나 다양한 에피소드가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암시하는 날씨와 적절한 배경음악의 사용 그리고 무엇보다 각각의 배심원들이 가지는 캐릭터의 세밀한 묘사덕분이 아니었나 합니다.자신의 아픈 과거로 인하여 맹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사람,소신없이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사람,한 소년의 생명이 걸린 문제임에도 빨리 결정을 내리고 회피해버리려는 사람,뒤에서 조용히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는 사람 등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들의 모습을 묘사한 감독의 치밀한 연출력은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이 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11명의 배심원들이 유죄를 확신하지만 헨리 폰다만 증인들의 증언이 신빙성이 없다며 사건 당시의 정황을 조목조목 나열해가며 무죄를 주장해나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흑백논리와 군중심리,개인주의 등은 어떤면에서는 만장일치를 통해서만 유.무죄를 가리는 배심원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이 될 것이라는 것을 시사하는 듯 합니다만 영화는 여기에서 머물고 더 이상은 나아가지 않습니다.(우리가 잘 아는 미식축구스타인 심슨 사건도 이러한 배심제도가 가지는 취약점을 반영하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라 할 것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피고인인 소년은 아랍계의 슬럼가 소년으로 보이는 데 아무런 이유없이 맹목적으로 소년을 매도하면서 맹목적으로 유죄를 주장하는 부분이나 배심원단이 전부 백인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은 미국이 가지는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적인 감독의 시각이 아닐까 합니다.


위에서 본 감독의 의도들은 오래된 영화이지만 지금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탄탄한 스토리구조와 캐릭터들에 대한 세심한 연출은 이 영화를 오래도록 보게만드는 힘이 되지 않나 합니다.마지막 부분에서 법원을 나서는 배심원들을 덤덤하게 보여주는 장면은 배심원실에서의 치열한 공방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아주 태연하게 비춰줌으로써 영화를 보는 이들로 하여금 긴 여운을 남기게 합니다.


디비디타이틀의 화질이나 사운드,서플은 아무래도 영화가 발표된 지가 오래되어서 그렇게 크게 기대할바는 못됩니다만 영화의 내용은 그러한 디비디타이틀의 결함을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을 괜찮은 영화라고 봅니다.

 

<아래 글은 디비디 2.0에 수록된 최은영 칼럼니스트의 글입니다>

타는 듯한 여름날의 오후. 뉴욕 대법원의 법정에 앉아 있는 12명의 배심원들의 표정은 알쏭달쏭하다. 평결을 기다리는 피고인 소년의 얼굴은 절망감으로 뒤덮여 있지만 판사의 얼굴은 심드렁하게만 보인다. 결정된 사항은 아무것도 없지만, 소년의 얼굴과 법정의 분위기는 이들 간에 모종의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감지하게 한다. 미국식 민주주의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인 배심원실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시드니 루멧의 극영화 데뷔작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놀랍게도 대부분의 이야기가 오직 하나의 장소, 배심원실에서만 이루어지는 영화다. 또 하나 이상한 것은 이 영화에 단 한 명의 여자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국식 민주주의에서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제도, 즉 일반인을 배심원으로 불러 만장일치로 유, 무죄를 확정 짓는 배심원 제도는 이 영화에서 아이로니컬한 방식으로 재조명된다. 가장 공평하다고 생각되는 민주주의식 법 제도 안에는 다종 다기한 편견이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한 푸에르토리코계 소년이 아버지 살해 혐의로 기소되고, 그 재판을 위해 무작위로 추출된 12명의 배심원이 재판정에 자리한다. 사건 심리가 끝나고 배심원실에 자리 잡은 12명의 배심원들 가운데 11명은 소년의 유죄를 주장하지만, 단 한 명 8번 배심원(헨리 폰다)만이 이의를 제기한다. 만장일치로 평결을 내려야만 하는 제도의 특성상 배심원들의 논의는 계속된다. 노골적으로 불만을 피력하는 사람들 앞에서 8번 배심원은 조목조목 사건을 되짚어 나간다. 피고인 소년은 아버지로부터 학대당해 온 빈민가 출신 소년이며, 그의 살해 장면을 본 두 명의 증인이 있다. 소년에게 불리해 보였던 확고한 정황들은 8번 배심원과 그를 지지하기 시작한 다른 배심원들에 의해 다시 논의된다. 논쟁이 진행될수록 명약관화해 보였던 사건에 대한 배심원들의 태도는 급물살을 타며 변화하기 시작한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에서 보여지듯 미국의 50년대 배심원 제도에서 배심원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또한 100% 백인이어야 했다. 물론 지금은 성비가 혼합돼 남녀 12명으로 배심원이 구성된다. 미국식 민주주의의 한계는 배심원의 구성에서부터 드러난다. 피고를 유색 인종 십대 소년으로 설정하면서 감독 시드니 루멧은 이러한 한계를 보다 명확하고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이끌어 나간다. 심판하는 백인과 심판당하는 유색 인종이라는 근본적인 모순을 간과하지 않는 루멧의 태도에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가 천착하는 미국 사회의 모순에 대한 좌파적 시선이 담겨져 있다.

협소하기 그지없는 민주주의 안에서 배심원들은 다양한 사회적 계층으로 나뉘어 있다. 최하층인 노동자 계급에서 중산층 시계 수리공, 상류층의 증권 브로커나 건축가에 이르기까지 배심원들의 출신 성분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다양해지는 의견의 스펙트럼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90여 분 동안 우리는 그들이 내보이는 인간적 면모와 정치적 태도를 지켜보게 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들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지만, 그들은 결코 섞일 수 없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대표한다. 소외 계층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차 있는 10번 배심원, 그 자신이 사형 집행인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3번 배심원은 아들과의 오랜 불화에 대한 분노를 아버지를 죽인 십대 소년에 대한 분노로 치환시켜 버린다. 빈민가에서 자라난 5번 배심원은 피고에 대한 계급 차별적 발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사건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저녁에 보러 갈 야구 게임에만 관심을 기울이거나 혹은 자신의 직업을 떠벌리는 일에만 열중하는 배심원들 또한 존재한다.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이런 풍경은 좁은 배심원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민주주의 사회’라는 커다란 외연으로 확장시킨다. 그러나 <12명의 성난 사람들>이 단순히 사회적 정의와 책임감의 문제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진정한 재미는 결국 모든 제도와 사회적 규약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바라보게 만드는 데 있다. 루멧은 전적으로 영화를 이끌어 가는 12명의 인물들의 독특한 개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그 안에서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감독은 에어컨도 선풍기도 돌아가지 않는 찌는 듯한 오후의 좁은 배심원실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딥 포커스와 극단적인 얼굴 클로즈업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폐소공포증을 극대화시키는가 하면 인물의 행동이 아닌 감정의 추이만으로 사건의 긴장감을 더한다. 실제로 영화를 연출할 때 루멧은 드라마가 전개됨에 따라 배심원실 세트의 벽을 점점 좁히면서 밀실공포의 효과를 배가시켰다. 러시아 ‘키노 프라우다’의 창설자인 전설적인 영화감독 지가 베르토프의 동생이자 장 비고의 <라탈랑트>와 <품행제로>, 엘리아 카잔의 <워터프론트>를 촬영했던 보리스 카우프만의 카메라는 강력한 감정의 스펙터클을 만들어낸다. 흑백 촬영의 대가답게 카우프만은 사소한 디테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오로지 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이야기의 묘미를 효과적으로 시각화했다.

배심원들은 때때로 어떤 특정한 사회적 계층이나 혹은 편견을 대변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결코 상징적인 권력으로 귀속되지는 않는다. 주인공 격인 8번 배심원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배심원들이 결국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소년의 무죄를 주장하기보다는 유죄를 단정 짓기엔 뭔가 석연치 않는 구석이 있다는 말로 사람들을 설득시킨다. 그는 말한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어요. 그 소년이 실제로 아버지를 죽였을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가 내린 유죄의 결정이 만약 틀렸다면, 그건 한 생명을 앗아가는 결과를 가져올 거요.” 루멧이 지닌 좌파적인 관점 속에는 결코 삶의 모순을 비껴갈 수 없는 불완전한 인간의 선택에 대한 심오한 이해가 자리 잡고 있다.

1954년 <스튜디오 원>이라는 제목의 텔레비전 드라마로 방영되었던 작품을 영화로 옮긴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이후 루멧의 영화 세계를 예감할 수 있는 전조와 같은 작품이다. 데뷔작인 이 영화로 베를린영화제에서 금곰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에 노미네이트되면서 그는 너무 빨리 유명해졌다. 이후 루멧은 독특한 개성을 지닌 ‘작가’라기보다는 이야기에 능통한 ‘장인’으로 알려졌다. 많은 비평가들은 그를 가리켜 감독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매끈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 칭했다. 하지만 루멧의 영화들에는 인간에 대한 어떤 공통적인 시선이 존재한다. 좌파 자유주의적 관점에 입각하고 있으면서도, 그는 자기 모순에 시달리는 인간의 나약한 심성에 대해 더없이 따뜻한 시선을 보여 주고 있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의 마지막에서 자신과 가장 극렬하게 대립했던 배심원이 잔뜩 풀이 죽어 있을 때, 주인공 헨리 폰다는 그의 어깨에(!) 웃옷을 걸쳐 준다. 루멧은 그가 싸워야 할 적이 결코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개인을 파시즘으로 몰아가는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에서 옳고 그름의 문제는 사람들이 만장일치의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 서로를 비방하고 강요하며 협박할 때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시스템과 개인의 관계라는 주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 불멸토록 반복되는 이야깃거리가 아니던가.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정의는 승리한다는 식의 지극히 할리우드적인 이야기가 아니냐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영화의 결론은 어쩌면 이상적 자유주의자들의 백일몽일지도 모른다. 온갖 종류의 편견을 넘어서 실현되는 정의란 대부분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꿈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드니 루멧의 영화에는 다수의 시선에 맞서는 외로운 투쟁 끝에 사회로부터 유배당하는 주인공이 자주 등장한다. 그것은 ‘개인’이거나 혹은 개인을 지탱해 주는 공동체로서의 ‘가족’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의 투쟁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다수라는 이름의 파시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이는 소박한 한 자유주의자가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던져 주는 간절한 충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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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보이 일반판 디렉터스컷 - [할인행사]
길레르모 델 토로 감독, 론 펄만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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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헬보이'는 '크로노스','미믹','블레이드2'등에서 이미 독특한 색채를 보여주었던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로 이 역시 이전 작품들과 비슷한 내용을 가진 영화로 마이크 미뇰라의 다크호스 코믹스 원작을 토대로 그 중에서 세편의 에피소드를 빌려와서 영화화 한 판타지 액션물입니다.

영화는 2차대전의 막바지 1944년 나치가 전세를 역전하기 위해 흑마술을 이용하여 전세를 역전시켜보려하지만 이를 눈치챈 연합군에 의해 악마의식이 진행되던 곳은 급습당하고 그 곳에서 미국 '초자연 연구 및 방어국' 소속 브룸박사는 열린 지옥문을 통해 온 악마 소년 헬보이(론 펄만)을 양아들로 삼고 데려갑니다만 60년 후 다시 부활한 라스푸틴에 의해 한바탕 혈전이 시작된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독은 이러한 만화의 소재를 가지고 악마가 지구를 지킨다는 아이러니에서 주인공인 헬보이의 악마적인 요소와 소년적인 요소를 아주 적절하게 섞어서 기존의 만화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이미지랑은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여인앞에서는 수줍은 남자가 되는 모습은 외양적으로나 행동적으로 그다지 친숙해보이지 않는 헬보이를 더욱 귀엽고 인간적으로 보이게 하는데 헬보이역을 맡은 론 펄만은 그러한 헬보이의 다층적인 심리를 아주 잘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양서류 인간 사피엔과 주변의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는 리즈,제정 러시아의 괴승 라스푸틴,태엽장치로 움직이며 몸속에는 모래가 흐르는 크뢰넨,2차대전 나치수용소의 일사,죽어도 죽지 않는 어둠의 사냥개 삼마엘 등의 실존인물과 상상속의 인물등 다양한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영화적인 재미를 더해줍니다.

현란한 특수효과 기술(어떤면에서는 너무 투박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이는  다분히 감독이 의도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은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어두운 화면톤위로 헬보이의 브롬 박사와의 관계나 리즈와의 관계 등에서 느껴지는 드라마적인 요소를 더하여서 다분히 감독이 의도하는 바대로 B급영화와도 같은 독창적인 이미지를 발산하고 있는데 이는 흡사 팀 버튼의 배트맨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만 시니컬한 배트맨보다는 좀 더 쾌활하고 유쾌한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만화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음에도 만화이상의 내용을 보이며 원작이 가지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스크린에 옮겨낸 감독의 역량과 헬보이를 연기한 론 펄만이 만들어낸 새로운 캐릭터의 시작이 아닐까 하며 속편이 기대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디비디타이틀의 화질이나 사운드는 훌륭하며 서플은 감독과 배우들의 코멘터리와 원작인 만화의 내용등과 제작과정 등을 소개하고 있어서 영화의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근래에 보기 드문 쿨한 매력의 새로운 캐릭터의 탄생이 주는 재미를 만끽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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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일반판
볼프강 피터슨 감독, 브래드 피트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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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로이"는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를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으로 볼프강 페트레센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브래드 피트,에릭 바나,올랜드 블룸,피터 오툴 등의 호화배역진이 출연하는 그야말로 장쾌한 서사극입니다.

영화는 고대 그리스 시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올랜드 블룸)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와 사랑에 빠져 트로이로 도주하면서 아내를 뺏긴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우스가 자신의 형이자 미케네의 왕인 아가멤논에게 복수를 부탁하면서 엄청난 전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어가고 여기서 우리가 잘아는 아킬레스와 헥토르가 등장하면서 장대한 서사극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감독 볼프강 페테르센은 이전의 작품인 '에어 포스 원'이나 '퍼펙트 스톰' 등에서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에서도 헥토르나 아킬레스등의 용맹성이라든지 신과의 관계에 대해서 언급하기 보다는 주인공들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여 원작에서 가지는 신중심의 문학세계가 보여주는 이미지는 거의 지워져버리고 휴머니티를 강조하는 액션영화로 흘러가버리고 맙니다.

어떤면에서는 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과 비교가 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두 영화의 차이는 인간중심의 전개이냐 아니면 신중심의 전개이냐 하는 스토리구조상의 큰 차이가 전체적인 영화의 흐름을 바꿔놓는 결과가 되고마는데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웅장한 스케일의 컴퓨터 그래픽은 실질적으로 맥이 빠지는 느낌입니다.

휴머니티를 강조한 부분이 많다보니 가슴 찡한 부분도 많았는데 무엇보다도 피터 오톨이 자신의 아들인 에릭 바나의 시신을 돌려줄 것을 애원하며 브래드 피트를 ?아간 장면에서의 피터 오톨의 연기는 역시 대가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헥토르역을 맡은 에릭 바나의 왕자로서의 근엄함과 전쟁에서 느껴지는 가장으로서의 두려움을 표현한 연기는 이 영화에서 피터 오톨의 연기와 함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었으나 페리스 왕자역을 맡은 올랜드 블룸은 '반지의 제왕'에서 보여지는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다른 제 길을 ?지 못한 다소 어정쩡하면서도 나약한 모습이며 브래드 피트의 경직된 액션씬이나 다혈질적인 성격묘사,다이안 크루거의 애매모호한 연기도 이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제대로 이어주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겨주었습니다.

원작과는 완전히 같은 내용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아킬레스가 페리스왕자가 쏜 화살에 뒷발꿈치를 맞고 전사한다는 내용은 원작에 충실한 설정이긴 하지만 신중심의 서사극에서 신들의 이야기를 배제한 채 인간 중심의 이야기를 전개한 영화에서 영화가 초반부에 보여준 스펙타클한 장면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듯한 느낌의 결말로 허무하기까지 합니다.

디비디타이틀의 화질이나 사운드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지만 서플은 조금 부족한 것 같기도 합니다.브래드피트를 위한 영화라는 느낌이 많이 드는 게 저만 그런건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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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 2005-03-19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헬레나가 별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