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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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위대한 영웅을 꿈꾼다. 위대한 영웅의 삶이란 늘 그렇듯이 모든이들에게 주목받고 마음을 움직이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뿐이며 사람들의 경외어린 시선을 염두에 두거나하지는 않는다. 그에게는 그만의 싸움이 있고 자신의 원하는 바를 완성시켜 가는데에 예상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치열한 삶을 통해 보답을 얻는다. 두려움없이 최선을 다한 삶이 곧 자신을 만족시키는 최고의 보답인 것이다.

연금술사와 산티아고의 여정 마지막에 최고의 믿음으로 성경에 이름을 남기게 된 백부장 이야기가 나온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최고의 믿음의 모델이 된 백부장 역시 자신의 행위가 후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를 생각하며 예수님을 맞이한 것이 아니었다. 그 곳에서 그 순간 그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신뢰를 예수님께 드림으로써 그는 자신의 믿음의 보답을 얻은 것이었다.

자아의 신화를 이뤄내는 것이야 말로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의무이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온 우주가 소망의 실현을 돕는다는 소설 속 멜기세덱 왕의 말은 새무얼 스마일즈의 '자조론'에 서두에 나오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철학적이고 영적인 고차원적인 주제를 누구나 저절로 이해되게 소설이란 대중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파울로 코엘료야 말로 이 시대의 연금술사임에 들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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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의 꿈 에버그린북스 1
리처드 바크 지음, 이덕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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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법을 위해 살았던 조나단... 비록 동료들에게 거부당했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고 고고히 훌륭한 삶을 살아냈던 조나단... 그의 삶은 훌륭했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이게 내가 기억하던 갈매기 조나단, 갈매기의 꿈이다. 어릴 적에 읽었던 기억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그런데 '갈매기의 꿈'을 다시 읽으면서 그 이후부터 시작되는 얘기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럼 어릴 때 읽었던 책은 편집본이었나?

아무튼 갈매기 조나단은 잘 나는 법을 깨우친 새로써 인생을 마감한게 아니었다. 그 이후 그는 천상에서 더욱 수련에 정진하고 다시금 그의 동료들 곁으로 와서 대중을 깨우치며 자신의 추종자들을 가르치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상에, '갈매기의 꿈'이 득도得道한 갈매기가 사랑을 설파하며 갈매기의 구원자이자 선생으로 그려진 이야기였다니. 옮긴이의 글을 빌리자면 작가 리처드 바크는 조나단이란 이름의 갈매기를 통해 유한한 피조물이며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으로선 도달 불가능한 단계인 '완성과 초월'에 이른다는 설정을 통해 '인간신비주의'를 실험하고 설파했다고 한다. 당연히 성직자들의 비단이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다시 읽어보는 '갈매기의 꿈'은 어릴 때의 기억과 너무도 달랐지만 그런만큼 더 색다르고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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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
파울로 코엘료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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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찾아 떠나는 순례의 길. 검은 인생의 목표이며 소망이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할 삶을 통해 여러가지 소망을 이루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마음속에 열망했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즐거움을 희생하며 때로는 굴욕을 참아내고 사랑하는 이들을 멀리하며 꿈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검을 발견하여 그 검을 얻고자 순례의 길을 떠나는 순례자가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검에 대한 소망없이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그보다 적지만 역시 그들과 다를 바없는 스스로를 이런저런 이유로 가둬서 순례의 길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다.

순례자의 길은 검을 얻기 위해 떠나는 길이 아니라 검이 필요한 이유를 발견하기 위한 길이다. 왜냐하면 검은 이미 자신이 얻고자 열망하는 순간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옳은 선택을 구했느냐는 논할 것이 안된다. 옳지 않은 선택이라면 이미 검으로써의 명분을 잃었으니까.

읽고 있는 내내 '순례자'라는 이 책은 감동을 주기보다는 당황스러움을 주는 책이었다. 기독교인인 내가 인정할 수 없는 신비주의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나에게는 장벽이었다. 픽션과 논픽션의 모호함도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순례의 길은 의문과 혼란에서 눈을 돌려 검에 집중하자 진정한 의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도망치지 않는 삶. 믿음을 가졌음에도 믿음에 대한 확신과 용기가 없기에 도망치기만 했던 삶을 되돌아 보면서 용기를 내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역시 첫번째 순례의 길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은 것을. 검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찾기위해 이미 첫걸음을 내딛었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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