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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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늘 보이지 않게 흔들렸다. 시간을 죽이는 일이 어렵다는 걸 모르지 않았고 새처럼 날기 위해 그보다 몇 배 갈고 닦으며 움츠려야 한다는 사실이 낯설지 않았다. 모든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희랍어 시간]에 일어난 두 남녀의 부딪침, 상처와 트라우마, 그리고 사랑. 이런 것들에 이르기까지의 지난한 자기탐색. 시간 속에 뭉뚱그려 새롭게 피워내는 티끌만한 무엇.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오래도록 소설의 틈바구니에서 길을 잃었다. 언젠가 말간 손으로 바흐와 슈베르트를 연주하던 나와 콩쿨에 나갔을 때 객석 대신 옥상에서 한 송이 꽃을 들고 기다려주던 오빠. 가장 예쁘지 않았지만 가장 예쁜 줄 알았던 아홉 살에 세상에서 제일 잘 보이고 싶었던 이는 그 뿐이었음을, 그가 아직 남자이기 이전에.

 

언제 헤어졌었지. 잠시 살던 다세대 주택에서 잘 지어진 새 아파트로 이사오면서? 이사온 후 오빠를 만났던가, 그렇지 않았던가. 동네 아이들 모두 모아놓고 생일파티를 할 때면 생일선물로 문구세트를 사주던, 좋아하지만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은 채 잘보이려 애썼던 사람. 그러니까 내가 열한 살, 그가 열두 살 즈음 본 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소식은 간혹 들었어도, 대면할 일은 없어서 내가 그런 것처럼, 그도 간혹 나를 생각하는지, 정확히 말하면 내 아홉 살 즈음과 피아노 콩쿨 후의 장미꽃 한 송이를 내밀던 작은 손의 저를 기억하는지 묻고 싶었다. 아마 시간 속에 흩어진 추억 속에서 내가 붙잡고 싶은 건 시간일까. 그랬을 지도 모른다. 그와 그녀의 희랍어 시간처럼, 그와 그녀의 버티듯 흘러내려간 삶처럼, 그와 그녀의 하룻밤처럼, 그와 그녀가 서로를 향해 한걸음 내딪던 순간처럼.

 

나는 아직 행간 사이에 묻어나던 그 또는 그녀의 사연을 되새기고 있다. 사랑이란 것은, 그렇게 부르는 것이 맞다면, 어쩌면 내 모든 것을 까뒤집어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과거의 경험, 아픔, 시간, 실수, 기쁨, 슬픔, 어려움, 오만, 편견, 시기, 질투를 포함한, 포개지는 모든 것들을 공유하는 것은 아닐까. 현재의 남자에게 과거의 남자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명언 아닌 명언은 인간의 나태함을 부분적으로 잘 알고 공감한 사람들의 입에서 공통된 언어로 나온 말이다. 서글픔 만큼 울림도 큰 소리. 과거에 어떤 사랑을 얼만큼 했든, 미래에 만나는 남자는 내 모든 과거를 끌어안아 추억으로 공유해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내 품었다. 나는 나일 뿐, 누군가의 나였다고 해서 그게 내가 아닌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도 그를 그렇게 보듬을 것이고,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것이므로.

 

사랑의 시간. 사랑을 시간이라고 정의내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희랍어 시간] 속 남녀의 희랍어 시간을 사랑으로 뭉개버릴 수가 없어서, 사랑은 단지 시간이 아니라 앞뒤 문맥, 상황, 추억까지를 포함하기 때문에. 여자는 말을 하지 않고 남자는 지독히도 시력이 나쁘다. 둘이 영영, 어쩌면 아무 것으로도 서로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세속적으로는. 침묵과 빛이 만나는 이야기라고 작가는 썼다.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하는 두 존재가 영공 속에서 부딪치는 이야기로 나는 읽는다. 나를 털어놓고 너를 듣는다는 것은, 너를 털어놓고 나를 듣는 것만큼 중요한 얘기. 남자와 여자의 개인적인 것이 만나는 지점보다, 혼자만 자신의 것을 터지기 직전까지 안고 가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 미칠 듯 만져졌다. 잡히지 않는 것에 안달내지 않는 그들의 많은 것이 편안했다.

 

팔랑거리며 당신에게 다가가지 않더라도, 사랑해달라고 매달리지 않더라도, 존재가 존재를 알아본다면 그것은 기척이 아니라 기적이 아니겠는가. 꽃씨처럼 훌훌 날아가 앉고 싶은 곳에 살포시 내려앉아 뿌리내리면 그것이 탄생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끝없이 추락하는 [희랍어 시간]의 남자와 여자를 구해준 것은 불행히도 내가 아니다. 지독히 침잠하는, 어둠 속으로 떠밀리는, 당신의 이유가 무엇이냐고 끝내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행간과 행간, 문장과 문장 사이로 비집고 밀려들어오는 추억 때문이다. 내 추억. 궁극적으로는 내 기억. 모든 기억을 추억이라 부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행복해지기도, 아쉬워지기도, 아련해지기도 하는 삶.

 

나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날이 오면 나도 그때에 소리 없이, 빛 없이, 언어 없이, 몸짓도 없이, 사랑을. 허락없이 사랑을 가르쳐도 괜찮겠습니까. 내 마음대로 당신을 기억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때는 시간을 드릴게요. 나의 모든 시간을 내어 드릴게요. 우리, 온전한 만남을 기약할 수도 있을 거예요. 아직은 미안합니다. 나는 나입니다. 여전히 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 속에 당신이 있을 거예요. 내가 온전히 당신이 될 수는 없지만, 사랑의 시간은 내가 당신이 되는 것이나 당신이 내가 되는 것에 놓이지는 않을 거예요. 나는 언제나 당신 속에, 당신은 언제나 내 속에, 우린 그렇게 어느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서로에게 얽혀있을 테니까요.

 

두려웠어요.

두렵지 않았어요.

 

울음을 터뜨리고 싶었어요.

울음을 터뜨리고 싶지 않았어요.

 

내 몸에서 완전히 떨어져나가기 전에,

당신은 나에게 천천히 입맞추었지요.

 

이마에.

눈썹에.

두 눈꺼풀에.

 

마치 시간이 나에게 입맞추는 것 같았어요.

입술과 입술이 만날 때마다 막막한 어둠이 고였어요.

영원히 흔적을 지우는 눈처럼 정적이 쌓였어요.

무릎까지, 허리까지, 얼굴까지 묵묵히 차올랐어요. (pp.189-190)

 

 

다시 기다려 달라고 한다. 언어로 심장을 느끼게 할 수가 없어서. 당신은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희랍어를 가르치고 배우듯, 각자 살아가던 그들이 희랍어 시간에 하나로 만나듯, 우리 또한 어느 순간은 하나가 될 거라고 안주하고 있었다. 마모된 감정은 남자의 두 세계로 쪼개어져버린 정체의 자아와 미쳐서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아든 여자의 자아와 만나 더 너덜너덜해졌지만 새로운 세상으로 날아올랐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것. '이해'라는 하나만으로도 빛날 정도로 반짝이는 삶.

 

 

 

또르르 흐르는 눈물 방울 하나를 억지로 나뭇잎 위에 올려놓는다. 똑, 하고 소리나며 떨어질 때까지. 적어도 물방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마르는 것이 아니라 떨어질 것이다. 내 것들이 또는 내가 당신에게 그러하듯이. 당신도 나에게 그러길 바라지만, 어렵다면 반드시 나를 거쳐가라고, 당신의 아픔도. 왜 배우는지 모르는 희랍어를 붙잡고 씨름하던 여자와 어째서 가르치는지 알지 못하던 남자의 앞으로의 만남이 자꾸만 나를 덮치는 듯 해서 얼른 책을 치워버렸다. 어렵다, 닿는 것. 어쩌면 한 번도 그러질 못했을 거란 생각 때문에 고통스럽다. 언어로는 아무 것도 전달하지 못한다던 말은 맞았다. 아, 그렇다면 지금 내가 당신에게 전달하려는 뭉클한 이것을 당신은 알고 있겠지. 어떤 면에서 당신은 나보다 훨씬 많이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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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2011-12-08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은 언제부터 이렇게 글을 잘 썼어요? 어떻게 두 번 써도 이렇게 잘 써요-_-?
저도 이 책 읽어야겠어요. 하지만 (당연한 말이지만) 비교되니까 리뷰는 안 쓸거에요(큭큭).

아이리시스 2011-12-09 15:05   좋아요 0 | URL
샤이닝님은 언제부터 이렇게 예뻤어요? 그리고, 퍼왔지 두 번 쓴 거는 아닌걸요. 큭큭.
리뷰써요. 근데 별로 할 말이 없어지는 책이긴 해요. 언어 대신 이미지로 다가오니까.
알았죠? 리뷰 꼭 써주세요ㅋㅋㅋ

저 요즘에 <나도, 꽃!>에 미쳐있어가지고 사실 여러 드라마에 미쳐있지만요. 그저께, 더군다나 지난주, 지지난주에 읽은 책의 감동은 이미 잊었어요. 히히히. 화이팅!

프레이야 2011-12-08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 너무 사랑스러운 리뷰에요.^^

아이리시스 2011-12-09 15:07   좋아요 0 | URL
고마운 프레이야님. 사랑스럽..사랑스럽..다니, 엄청 감동이에요.ㅠ.ㅠ

맥거핀 2011-12-09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 돌아오면서 스마트폰으로 리뷰를 읽었었는데, 댓글은 이제서야 다네요. 참 리뷰가 좋네요. 뭐라고 그래야하나. 문장이 물흐르듯 읽힌다고 할까요. 다음 문장 사이에 반드시 있어야 할 그 문장이 있는 느낌이랄까. 좀 다른 얘긴데, 관계를 만드는 것은 `희랍어`같이 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어야 하는 것 같아요. `희랍어`나 `산스크리트어`나 아님 뭐..`광역학`같은;; (`희랍어시간`이 아니라, `일본어시간`이면 왠지 없어보이기도(?)하고..)

아이리시스 2011-12-09 15:13   좋아요 0 | URL
이야, 읽고 쓰기를 나누어하는 분이셨습니까, 맥거핀님은. 언제나 고마워요. 어째서 희랍어인지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지만 못했던 것을 맥거핀님이 정리해주신 것 같아요.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어야 하는 것. "일본어 시간"은 확실히 없어보이기는 하네요, 큭큭. 베트남어 시간이어봐요.ㅠㅠ 확실히 희랍어나 산스크리트어가 주는 아련한 느낌을 의도한 소설이긴 해요. 이 소설은 아련하게 다가갔다 터치도 못하고 되돌아오는 느낌이에요. 원래 고대,중세에 좀 관심이 많고, 그 웅장하고 거대하고 아련한 느낌을 좋아하는데 솔직히 얘기해서 감히 희랍어를 배우겠다 이런 결심은 못할 것 같고(그거 배워서 어디쓰게요ㅠㅠ, 필요한 것도 못하고 하기 싫은데ㅠㅠ) 플라톤은 좀 읽어야겠다 결심했어요. 그럼 저를 내년에는 여기에서 볼 수 없을 거예요, 하하.

맥거핀 2011-12-10 00:56   좋아요 0 | URL
뭐 읽고 쓰기를 나눈다기 보다는 요즘에 주로 퇴근할 때 스마트폰으로 알라딘 글들을 읽어요. 그런데 뭔가 댓글을 남기고 싶을 때도 있는데, 제가 워낙 폰으로 글을 쓰는 것을 싫어해서요. (터치 자판은 인류 최악의 발명품!)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댓글은 집에 와서 컴퓨터로 남기고 있어요. 뭐 그렇다는 얘깁니다.
아..그리고 그럼 플라톤은 읽지 마셔요.^^

아이리시스 2011-12-11 02:25   좋아요 0 | URL
엄청 힘들더라고요, 터치로 글쓰기. 저는 문자도 잘 안한다니까요. ㅠㅠ 뭐, 맥거핀님의 두 번 방문에 감사하다는 얘깁니다. 플라톤은 어쩌겠어요, 맥거핀님이 원하신다면^^

좋은 주말 되세요, 여기서 인사드려 죄송해요.^-^

마녀고양이 2011-12-09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휴, 어쩜 좋을까..

아이리시스 2011-12-09 15:15   좋아요 0 | URL
아휴, 왜 어쩜 좋을까..(하아..)

2011-12-09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9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9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9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1-12-09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어로는 아무 것도 전달하지 못한다던 말은 맞았다." - 그래서 누군가와 같은 느낌을 갖는다는 게 어려울 때가 많아요.

아이리시스 2011-12-09 16:04   좋아요 0 | URL
누군가와 같은 느낌.. 맞아요, 사랑조차도 농도와 색깔로 보면 부모-자식, 연인 간, 형제자매간, 모두 같지가 않잖아요. 참 신기해요. 언어로 전달해야 하는데 정작 중요한 것, 이를테면 마음, 같은 건 언어로 전달되지 않아요. 전달했다고, 전달하고 있는 거라 믿을 뿐이라고 저는 꽤 예전부터 종종 생각해요. 사랑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지금 내 감정이 막 달아오른 게 아닌데도 사랑한다고 말해줘야 하는 관계가 연인이기도 하고요. 아마 그런 식이라면 <희랍어 시간>의 두 남녀는 절대로 서로를 서로에게 이해시킬 수 없을 거예요. 엇나가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고, 말을 하지 않으니까요.ㅠㅠ

2011-12-10 0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1 0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르는 여인들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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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와 두 번째가 뻔.하.다.고. 느꼈다. 그녀니까 기대가 없다면 거짓말. 아무리 부정해도 그녀의 소설을 내가 좋아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렇게 또 내게 책을 들게 하니까. 세 번째와 네 번째는 괜찮을까.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는 어떨까. 그러다 비로소 일곱까지 왔다. 마지막이 표제작이었다. 중간에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다. 건조해졌다. 느끼는 내가 그럴 수 있고, 그녀의 문체는 변하지 않았을 수 있다. 요즈음 나는 아무 것도 확신할 수가 없다. 관대함을 표방한 우유부단은  매력이 없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어쭙잖은 선함보다는 차라리 악함이 낫다. 적어도 솔직하니까. 나는 지금 둘다 놓칠까 전전긍긍. 어느새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 모두에 민폐를 끼치는 중이지만, 다만 아련함이 있었다. 내 몸이 다 성장하기 전에 읽은 오래된 소설집에는 환상과 비일상이 가득했던 것 같은데, 그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거나 꿈길을 거닌 적도 있는데, 여기에는 없잖아. 실망보다는 세월이 만져졌다. 내친김에 끝까지, 마지막 페이지 전에는 일어서지 말자. 종종 내 독서에는 타협과 협상이 없다.   

서른이 되기 전에 나는 서른이 지난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생각했다. 그렇다고 채와 함께 지냈던 이십대가 즐겁기만 했다는 얘긴 아니다. 나는 채가 내 곁에 있었던 이십대를 사랑하지 않는다. 행복하다고 여겼던 적이 별로 없다. 매일매일이 막연했고 불안했고 때로는 절망스러웠다. 그래서 채를 거기에 두고 도망쳤던 것일까. 아침에 눈을 뜨기 싫어 밤에 아예 잠을 자지 않은 날도 많았다. 어렸을 때 인간의 나이는 서른까지라고 써놓았던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p.254) 

여기저기 삶의 헛헛함이 덕지덕지 묻어난다. 작품마다 페이지마다. 어쩌다 눈을 감으면 인물들이 박차고 나올 것만 같다. 우리들 뭐 하나 다를 게 없군요. 내가 당신을 읽듯 당신이 나를 읽는다면, 우린 다를 게 없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말해 무엇하나. 그조차 공허한 울림으로 퍼질 것을. 닿지 못한 공기는 되려 서리가 되어 시린 눈에 맺힐 것을. 따뜻하게 그리려는 이야기를 차갑고 건조하게 읽는 나는 어딘가 비뚤어진 곰인형같다. 강아지 다섯 마리를 마당에 풀어둔 터라 택배가 와도 우편이 와도 아빠는 대문을 열 수가 없었다. 낮은 대문 위로 손을 번쩍 올려야 택배 기사나 우체부가 건네주는 것을 받을 수 있었다. 미안합니다. 강아지가 있어서요. 자꾸 나가려 해서 문을 열 수가 없네요. 나가서 돌아오지 못한 한 마리가 눈에 밟혀 나머지 다섯 마리마저 잃을까 두려워 자꾸 문을 건다. 나도 아빠도. 친구를 잃은 녀석들은 반드시 나가려는 의지가 없는데. 하필이면 그 아이일 필요가 없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어도 반드시 그 아이여야만 했던 건 아니었다. 아픈 이유는 이어지는 일상과 드문드문 떠오르는 생각들 때문이다. 결국 우리를 힘들 게 하는 것은 부재하거나 힘들거나 윽박지르거나 싸워서가 아니라 어느 순간 일상으로 솟구치듯 떠오르는 기억이 아프기 때문이라는 게 한낱 소설 따위로 명확해지다니, 어쩐지 비참한 기분이었다. 아직 덜 배운 것이 남았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나는 늘 어제보다는 오늘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60년대보다는 70년대가 나았고 80년대보다는 90년대가 나았고, 그리고 지금이 낫다고. 개인적으로도 이십대보다는 삼십대가 좋았고 삼십대보다는 사십대가 된 지금이 나쁘지 않다. 이유는 단 하나다. 연애감정에서 멀어졌다는 것. 그토록 막연하고 불안하고 죽을 것 같은 고통스런 감정들이 모두 다 연애감정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으련만 마음이 연애감정에서 멀어지자 자유로워졌다. 쓸쓸한 자유. (p.231) 

문을 활짝 열어젖히기는 내게도 두려운 일이었다. 한데 당신은 내가 가진 걸 빼앗겠다고 한다. 나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미처 말하기도 전에 간혹 뺏기고 싶은 상대를 만날 때가 있다. 상대가 나를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는 상관없다. 취재를 하고 언론공부를 하고 기사를 쓰고 지역 신문사의 대학신문팀에서 레이아웃, 학보를 발행하고 발송하면서 먹던 점심의 자장면 맛은 오래도록 추억으로 남았다고. 울고불고 했던 나쁜 기억의 찌꺼기는 이미 다 사라졌다고. 그때 당신은 왜 그랬었냐고 물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의 신부가 예뻤냐고 묻기 전에 그때의 내가 어떠했냐고 묻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할 것 같다. 갚지 못한 빚을 평생 짐으로 안고 가야 했던 남자와 반대편에서 거꾸로 달려오는 헤드라이트를 피하지 못해 풀숲에 처박힌 남자, 너와는 더이상 새롭지 않다는 연인의 말을 들어야 했던 여자와 프랑크푸르트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여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야기들을 감당할 수는 있어도 의문이 침묵으로 치환될 수는 없을 것이다. 동질의 것이 아니라고 누군가 일갈했다.

아내를 잊지 못해 아내와 살던 집의 마당에 화분을 키우던 남자가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꽃과 나무를 훼손해버린 자괴감과 남편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기 싫어 멀리멀리 도망가버린 아내를 이해할 수 없어 20년 전 자신을 보고 도망쳤던 첫사랑을 찾아가 그때 왜 도망쳤냐고 묻는 남자의 깨달음과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을 집에 들였던 어떤 여자의 공허함을 감히 이해한다고 하지 못한다. 누군가의 삶이 누군가에게 온전히 이해를 바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이야기를 할 수는 있다. 달이 환하고 별이 반짝이는 그런 밤 아니 어둠 속에 머리나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또는 평상에 나란히 앉거나 누워 산들바람과 꽃과 나무의 소곤거림을 들으며 이야기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어느 밤, 핫바와 우동, 어묵을 먹겠다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우리와 한밤 중에 카트가 터질 만큼 장을 봐서 빈 집에 가서 밤새도록 고기를 굽고 맥주를 마시다 일어나 해장으로 라면을 끓여먹던 우리는 그렇게 탄생했다. 추운 밤에 커플끼리 거리를 달려 바닷가 앞에 차를 대고 조개구이를 먹던 일, 다 먹고 비틀비틀 방파제를 걷던 일. 우리의 이야기와 시간이 칵테일처럼 뒤섞이고 흔들려야 가능했던 모든 것들. 거기 우리가 있고 풍경이 있다.

목련나무에 새가 날아앉아 출렁거리는 것 같아 목련나무 쪽을 쳐다보았으나 무성한 잎새가 여름 밤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뻗어 있을 뿐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여름 밤하늘엔 별들이 가득 떠 있고 산들바람을 타고 마당의 치자향이 은은히 코끝에 맡아졌다. 오래전에 헤어진 사람을 우연히 만나 날이 새도록 얘기를 하고 싶은 그런 밤이었다. (p.73) 

하지만 이제는 이야기해줄 수가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우리가 아니게 되었다. 그 공기, 웃음, 친밀감, 온도가 예전의 것들이 아니게 되었다. 모두 알고 있다. 어쩌면 바로 이 사실이 우리를 그립게 하는 지도 모른다. 치자향이나 아카시아향, 하늘하늘 흔들리는 가을의 코스모스를 알고 있다. 할아버지의 투박한 손이 시동을 걸기 시작하면 경운기의 뒷자석은 나를 포함한 꼬마들 모두의 차지가 되었다. 올라타면 터덜터덜, 덜덜거리며 논길, 밭길, 들판을 달린다. 청량한 산을 뒤로한 맑은 냇물이 흐르고, 봄이면 개나리와 진달래가, 가을이면 대추나무와 모과나무 그리고 코스모스가 우리들 옆으로 지나쳐갔다. 과거에서 끄집어 내지 않고서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말이 아니라 글로 전한다. 행동이 아니라 뜻으로 전한다. 어느새 추억이 글과 말로만 읽힌다. 서른 후의 삶을 상상할 수 없다던 어떤 이의 절규처럼. 아무리 잡으려 해도 빠져나가는 고운 모래처럼, 당신처럼 자꾸만 모든 것을 놓쳐버린다.

달을 스치고 지나가는 저 밤구름에 대해서, 어딘가 물이 많은 곳으로 흘러가고 있을 것 같은 저 느릿한 달의 움직임에 대해서. (p.115) 

말하기 어렵더라도 지금 말해야 하는 이야기다. 아련히 지나가버린 이야기지만 꺼내야 하는 이야기다. 씌어진지 오래된 일곱 편의 소설은 무지개빛으로 하늘 가까이에 떠 있다. 나를 불러내주세요. 모두 꽃처럼 나무처럼 단정하고 소중한 존재이지 않았나요. 행여 잃어버리더라도 슬퍼마세요. 시절은 시절을, 시간은 시간을, 아쉬움은 아쉬움을, 하지 못한 고백은 하지 못한 고백을, 해주고 싶은 말은 해주고 싶은 말을 불러오지 않겠습니까. 사실은 사라져버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에게는. 당신이 아무리 잊어도 나만은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설사 당신이 나를 거쳐 가더라도 혹은 갔더라도. 기억하는 것이 고통이라면 빠른시일의 망각도 능력일 것이다. 오래 기억될 이야기, 얼른 잊어야 할 이야기, 기억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 모든 것들을 작가는 꺼냈다. 감당은 독자의 몫. 책을 덮을 즈음 딱 한 가지가 궁금했다. 나에 대한 당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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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1-12-01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벌써 읽으셨군요...
부럽습니다... 하아

그런데 그러니까... 뻔해도 재밌다는 거 맞지요? ㅋㅋㅋ
아, 이놈의 이해력ㅋㅋ

아이리시스 2011-12-01 23:22   좋아요 0 | URL
다 읽은 제가 부러운 거예요?! 읽으면 되지요. 논다면서욧! 소이진님이 저는 백만배는 부럽다.. 하아.. 거 어쩌려고 그래요, 세 달 남은 강의.. 얼른 화이팅해요!^^

아, 이놈의 질투ㅋㅋ

잘잘라 2011-12-01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경숙의 <모르는 여인>들과 제가 모르는 아이리시스님만의 그(녀)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면서 끝에 가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되는.. 그런 리뷰^.^;;

아이리시스 2011-12-01 23:25   좋아요 0 | URL
저는 원래부터 소설집을 되게 싫어했어요. 아련한 옛느낌이 있는데 그게 아니라서.. 표지는 초록인데.. 모르는 여인들 되게 예뻐요. 우리처럼 글로 대화하구요, 우리처럼 서로 너무 좋아하게 돼요. 우리 너무 친해지지 마요, 어쩌면 슬퍼질 수도 있어요.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12-01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뎅과 핫바...먹고 싶어요.ㅋㅋ
신경숙의 여인들보다 아이리시스님의 그와 그녀들이 더 궁금해 지네요.

아이리시스 2011-12-01 23:29   좋아요 0 | URL
요즘 밤마다 초콜릿을 폭풍흡입하고 있는데, 우리집 차가 두 대인데(한 대는 고물) 하나는 아빠, 하나는 동생. 두 분 다 안계신다는..( '') 아아, 고속도로 어묵이랑 핫바 먹고 싶어요, 현맘님. 날씨도 춥고! 인터넷 뱅킹이 안돼서 오늘 하루종일 인터넷에 붙어 있으니 눈이 아파 죽겠어요.

저의 그와 그녀들은 어딘가에서 잘 살겠죠. 근데 그 신부를 제가 알거든요. 둘다 과선배였으니까. 자장면에 얽힌 추억은 좀 유치하고 질투나고 그런 거예요. 어이없게도, 어처구니없게도 제가 스무살일 때부터 지금까지 헤어지지도 않았다니, 어쩐지 진짜 엄청나게 어이없다.. 흙흙. 급한 김에 오뎅탕이라도 드세요, 현맘님. 겨울이 없어져버렸으면 좋겠어요.ㅡㅡ;;

2011-12-02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2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그다드 카페 UE (무삭제 확장판) - 아웃케이스 없음
퍼시 애들론 감독, 마리안느 제게 브레히트 외 출연 / 에이나인미디어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가지 말라고 붙잡지도 못하던 내게 언니는 "기어이 너를 두고 가는 나는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날 거다" 라는 메일을 보내왔다. 내 나이 스물한 살이었다. 그렇게 언니는 떠나버렸다. 가버렸다. 애인의 이별통보였음 에잇, 까짓, 하면서 침이나 퉤, 뱉어줬을 상황이었다. 나는 다 잃었다. 쓸쓸해졌다. 언니가 있던 날에도 외롭고 뻔하긴 했을 것이다. 언니가 가버린 후 달라진 것은 실제로 많지 않았다. 언니의 빈자리가 그리 크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래, 원래 난 언니 없이도 씩씩했는데 아가야- 하며 이뻐해준 언니가 곁에 있어 분명 더 행복하기도 했겠지만, 나약하게도 어째서 다시 씩씩해지지 못하는 거지, 바보같이. 그런 생각도 간혹 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잊었다 여겼지만 사실 아무 것도 잊혀진 것이 없었다. 아무 것도. 결단코. 그리고 나는 쓴다. 

빈 자리. 대학에 들어가 처음으로 좋아한 선배와는 아무 일, 정말로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는데(대의적으로는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래서 좋아하는 게 이런 건지 확인해야 하는 첫사랑이 시작되지도 못했는데(친구들은 말리느라 정신이 없었고) 의도치 않게 배신을 거듭하던 친구 몇과의 전쟁이 끝나자마자 날 기다리던 게 맘 시린 이별, 언니와의 이런 이별이라니 당혹스러웠다. 지리멸렬한 일상이 이어지던 바그다드 카페에서 짜증만 용솟음치던 여자가 보석같은 시간을 선사해주었던 그녀를 떠나보내야 했을 때 이런 마음이었을까. 어쩌면 선물이었다. 다시 꿈을 써봐. <바그다드 카페>는 내내 너무 좋았던 시절, 어째서 좋은지 모르는 시절, 그때의 나와 언니를 떠올리게 했다. 언니가 가르쳐준 <모나리자 스마일>과 <엘리자베스 타운> 만큼이나 이 영화가 좋아졌다. 90분 러닝타임 내내 소중한 한 때가 별처럼 반짝거리는 저 너머로 간다.   

언니와는 훗날 만났다. 언니는 학교를 떠났지 날 떠난 건 아니었으니까. 반말이 존대말로 바뀔 만큼 긴 시간이었고, 스무살 내가 스물 대여섯, 일곱, 여덟, 아홉 만큼 커버리고 언니도 그만큼 더 어른에서 어른이 됐지만, 중간중간 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완전한 이별은 아니었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완전한 이별이란 없는 것 아닌가. 훗날, 내가 꾸린 첫 번째 여행의 기대를 이해하고 "네 꿈을 응원해" 라고 말해주던 언니. 생애 처음 받은 커플링에 대해 가장 먼저 "축하해" 라고 말하던 언니.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돼요? 하는 나름 심각한 질문에 귀찮아 하지않고 쿨하게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던 언니. 내 첫 책이 나왔을 때도 소리소문없이 또 한 번 내 휘황찬란한 꿈을 응원하던 언니. 한 번도 언니를 가져본 적이 없던 나는 언니가 시행착오를 통해 습득한 알짜배기 소소한 마음들을 종종 전수 받았고, 나름대로 잘 가고 있다고 믿었다. 누군가에게 나도 언니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렇게 언니 하나. 

하나를 잃으면 다음 것이 와서 빈 자리를 대신한다. 아리랑 가사를 남기고 떠난 언니가 가고 나에게는 다시 언니가 생겼다. 하늘이 언니 대신 또다른 언니를 보내준 걸까. 그것도 한꺼번에 둘이나. 우린 삼총사가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언니가 있어 좋은 점은 비벼댈 언덕이 있는 것. 나보다 먼저 온몸으로 부딪친 언니를 통해 배우므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것.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언니를 통해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알아갔다. 한 번도 언니가 필요하지 않았는데(언제나 내 꿈을 응원하는 다정한 오빠가 있었으면 했다) 언니가 있어도 나쁘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의 관계, 세상과의 부딪침, 우정과 사랑의 상관관계, 사랑의 성공담과 실패담, 어린 환상이 진짜 현실이 되는 과도기와 경계 같은 것들까지, 오빠는 가르쳐줄 수 없는 것까지 언니를 통해 배울 수 있었으니 내게 언니가 있는 건, 그것도 하나, 둘, 셋이나 있는 건(심지어 꼬맹이였던 스무살 시절부터 나를 아는 피섞이지 않은) 축복 아닌가. 두 명의 언니와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많은 이야기와 추억으로 보냈으니 내 성장은 이할쯤 언니들의 덕일지도. 

조바심은 되도록 내려놓고 살면 좋다. 다른 것들은 별로 많이 갖고 있지 않은데 늘 조바심이 많아서 날 보던 그는 간혹 불안해했다. 이 영화는 그의 손을 꼭 잡고 보는 것이 옳았다. 이십 대, 나를 뒤흔들던 많은 영화들이 대부분 그러했던 것처럼. 혼자 바그다드 카페에 가려 애를 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량하고 삭막하고 부스럭거리는 황금빛의 모래먼지가 좋았다. 어둑어둑 해가 질 때면 선홍빛 세상이 온 공기를 휩싸는 낯선 풍경을 미칠듯 갖고 싶었다. 모든 것들이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라 좋았다. 어설픈 간판에 불이 들어오는 바그다드 카페와 주유소와 모텔, 어디에나 있을 듯 하면서 어디에도 없는 곳. 오래 그리워질 것이다. 가지지 못하는 것을 욕심내는 사람은 얼마나 추한가. 지나가버린 것에 추억이 남는 거라면 아직 오지 않은 것에는 무엇이 남는가.   

창문을 활짝 열고 힘차게 달리다보면 바그다드 카페와 만날 것이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 모든 것을. 당신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은 아주 작은 곳에서 뭉개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것.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만으로 당신을 웃게 하는 일. 마술을 부려 사람들을 마법의 세계로 인도하는 일. 여기서는 불가능했던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바그다드 카페에 가면 커피와 웃음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정다운 친구가 기다리고, 황홀한 마술이 손짓하고, 하늘색 행복이 춤을 춘다. 거기에 당신과 내가 있다. 이런 안성맞춤을 나는 여지껏 본 적이 없었다. 어린 날에는 느껴지지 않던 것까지 보았다. 당신은 나의 모든 것. 당신과 나의 약속은 한 때의 아련한 추억. 바그다드 카페가 그런 것처럼 당신으로 인해 나의 모든 것이, 나로 인해 당신의 모든 것이 가능해졌으면 좋겠다. 이건 크고도 작은, 귀여운 희망사항. 당신을 위한 나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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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11-30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부르는 사막의 정경과 마술쇼가 생각나요.
더없는 위안이 되어주는 영화였어요.
아이리시스님의 글처럼 따뜻했어요.^^

아이리시스 2011-11-30 21:34   좋아요 0 | URL
어휴, 저는 계속 긴장을 했다니까요. 적막하고 메마른 땅에 저렇게 서로를 못 믿다 행여 범죄스릴러가 되지는 않을까.. 영화 봤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기억에 남아있지 않더라고요. 프레이야님 글만큼 따뜻했을까요.. 저 역시 프레이야님 글 보면서 위안을 많이 받아요.^^

2011-11-30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1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1 0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1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코렐리의 만돌린 - 할인행사
존 매든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 (Nicolas Cage)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땅이 울렁거렸다. 광활한 대지는 삼켰던 것들을 모조리 토해내고 있었다. 겨우 전쟁이 지나간 곳에 평화가 찾아오기 무섭게 다시 이 땅을 흔들어댔다. 마치 신의 목소리라도 들은냥 그렇게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 그와 그녀가 만나기로 한 땅은 폐허로 남았다. 남아있던 여자는 뒤돌아섰다. 다시 일어서서 제 집을 지어야 했다. 그리움, 후회, 애틋함, 아쉬움 같은 감정은 멋모를 때의 것으로 치부하고 잊으려 했다, 아니 묻으려 했다. 묻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날, 뒤돌아서니 그가 돌아왔다. 그가, 생사조차 알 수 없던 그가 돌아왔다. 코렐리는 거짓말처럼 펠라기아의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와 그녀는 전쟁도 지나가고 지진도 지나간 이 섬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고 끝맺으면 좋겠지만,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다. 

대체 섬은 어째서 이토록 아름다울까. 온종일 생각했다. 독일 연합군이 된 이탈리아군은 변방의 섬에서 적군의 명목 대신 보호국으로서 그리스를 지켜주길 원하지만 전쟁의 상황이란 녹록치 않은 현실 뿐이다. 처음에 펠라기아에게는 만데라스라는 정혼자가 있었다. 전쟁이 나면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그가 없는 섬에서 다친 사람들을 돌보며 100통도 넘는 편지를 보내지만 답장을 받지 못한다. 사랑은 힘이 없고 현실은 힘이 세다. 만데라스가 없는 동안 만난 이탈리아 대위 코렐리는 전쟁통에 만돌린을 연주하거나 해변에서 병사들과 함께 여자를 끼고 즐긴다. 펠라기아의 눈에는 비정상적 상황 천지다. 전쟁의 상황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서로에게 총과 칼을 겨누어야 할까. 코렐리는 옳았다. 펠라기아의 눈에 무모하게만 보이던 코렐리가 점점 남자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 둘은 처음으로 서로의 몸을 껴안던 날 더없는 행복을 느낀다.  

전쟁이 잦아들고 승리의 소식을 안고서 펠라기아의 정혼자 만데라스가 돌아온다. 그녀가 보낸 편지를 한껏 안고 돌아와 그녀의 추궁에, 난 읽고 쓰는 법을 배우지 않았어, 라고 대답하는 그는 처음에는 펠라기아가 다시 돌아올 줄로 믿지만 나중에는 코렐리를 살리고 둘의 사랑을 이뤄주는데에 큰 공헌을 한다. 읽고 쓰는 법 대신 멋진 남자의 뒷모습으로 펠라기아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 만데라스는 섬의 모닥불과 함께 연주되던 만돌린의 음악보다 훨씬 시리고 멋졌다. 모두를 취하게 한 연주만큼이나 아름다운 사랑.

살기 위해 섬을 떠났지만 오랫동안 서로의 가슴에 남아있던 코렐리와 펠라기아의 사랑은 그가 보낸 만돌린의 음반 속 곡들처럼 아름답고 아련하게 울려퍼졌다. 전쟁 중의 사랑. 극한의 사랑 이야기는 이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애틋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훈훈함은 코렐리가 연주하는 만돌린의 은은한 선율에서 찾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섬은 다시 섬이고, 그곳에서 다시 그들이 살아갈 것이다. 폐허를 딪고 일어선 희망처럼, 다시 찾아온 사랑처럼, 죽지 않고 살아남은 축복처럼 그렇게. 모든 것에 이유가 있듯, 그들이 살아남은 데에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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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7 15: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7 1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진 2011-11-27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줄거리와 느낌이 아주 절묘하게 섞인 멋진 리뷰입니다 ㅠㅠㅠ
저는 언제쯤 이런 리뷰를 써볼수가 있을까요... 부럽습니다 ㅋㅋㅋ

아이리시스 2011-11-28 00:56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이 열 살 더 먹으면 이것보다 100만배 훌륭한 리뷰를 쓸 수 있을 거예요. 게다가 이 리뷰는 칭찬받을 만한 리뷰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 소이진님은 역시 귀염둥이!@.@ 근데 사진.. 소이진님 아닌거죠? 저는 첨에 저게 우타노 쇼고인 줄 알았다는..( '') 미안..ㅜㅜ

노이에자이트 2011-11-27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합니다.이 영화에서 독일군이 이탈리아군을 학살하는 장면은 어떻게 나옵니까?

아이리시스 2011-11-28 01:00   좋아요 0 | URL
네, 반갑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 부분이 하이라이트라고 저는 생각을.. 좀 뜬금없이 놀라서요. 이전에 전쟁이 끝났다는 여러 명분으로 무기들을 압수합니다. 코렐리 대위가 반발하는데도요. 윗선에서 타협이 끝나고 모두 무기를 빼앗긴 상태에서 공지사항이 있다는 이유로 한데 모읍니다. 그리고는 다 넋빼놓고 있을 때에 곳곳에 숨어있던 독일군이 갈긴 총에 모두 즉사해요. 다행히 다른 병사와 함께 엎어져있던 코렐리만 살아남아서 여기 나오는 만데라스가 숨쉬며 살아남은 그를 발견하고는 펠라기에에게 데려다줍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11-28 22:15   좋아요 0 | URL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전쟁 말기에 독일군에 맞싸운 이탈리아 저항운동을 부각시키는 편이라 독일의 잔학성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고 합니다.

아이리시스 2011-11-29 14:3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탈리아 영화도 아닌데 독일을 잔학하게 그렸구나..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것만 보면 노이에자이트님은 이 영화의 핵심을 완전 훅 찌르신 거.. (이 영화가 좀 뻔하긴 해도)

노이에자이트 2011-11-29 15:55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2차대전 때 독일군의 침략을 직접 받은 나라가 아니라서 독일에 대해 관대한 것 같아요.직접 독일군의 점령을 받았거나 교전했던 나라들은 아직도 독일에 대한 원한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요즘 그리스에서 독일을 나치라고 욕하는 정서가 다시 터져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거에요.

아이리시스 2011-11-29 19:31   좋아요 0 | URL
요즘 그리스에서 그러고 있군요. 저는 그래서 이모저모 독일이 싫어가지고 여행루트에서 빼는 실수를 저질렀었어요. 프랑크푸르트에 내렸지만 그냥 통과만.. 하이델부르크에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은데.. 아직도 독일에 대한 인상은 호기심이나 궁금증보다는 이상하게 벽,답답.. 이런 것들만 생각이 나요. 그게 가해자의 국가라는 인식이 제게도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괴테가 있는데..( '')

노이에자이트 2011-11-30 16:10   좋아요 0 | URL
독일의 자연은 아름답습니다.남부의 알프스 지대는 호수도 이쁘고요...프랑크푸르트 가까이 슈바르츠발트가 있죠? 산림녹화의 상징으로 유명하더군요.

아이리시스 2011-11-30 21:26   좋아요 0 | URL
슈바르츠발트는 산맥이네요. 도시인 줄 알았다는.. 말만 들어도 예쁘네요. 한국작가들이 소설쓸 때 독일배경으로 쓴 것들이 몇몇(그래도 꽤) 있는데 다른 곳이 아니라 독일인 것도 모두 이유가 있을 듯 해요. 공지영의 <별들의 들판>은 독일 배경으로 한 연작소설이었고, 김영하의 <여행자>에도 하이델베르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실려있고, 아까는 신경숙 신작 <모르는 여인들> 읽는데 또 독일이 나왔어요. 프랑크푸르트가 나와서.. 아.. 이게 노이에자이트님과 인연인가.. 뭐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노이에자이트 2011-12-01 16:10   좋아요 0 | URL
슈바르츠발트는 검은 숲이란 뜻의 독일어입니다.드넓은 삼림지대지요.그다지 높지 않은 산악지대에 펼쳐져 있습니다.우리나라 관광객들도 많이 간다고 하네요.

지난 달 KBS '영상앨범 산'에서 독일 남부의 바이에른 알프스를 보여주는데 호수와 산이 조화를 이루어 멋있더라고요.

배수아 씨도 독일 배경의 소설이 있을 거에요.좀 나이든 분으로 강유일 씨 소설이 있고요...공지영 씨는 수도원 순례라는 책이 있던데 아무래도 독일에 수도원이 많다 보니 독일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 2011-12-01 17:14   좋아요 0 | URL
검은숲. 우와, 어디든 한국사람 없는 곳 없다는ㅋㅋㅋ 영상앨범 산은 우리나라만 다루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이것저것 힌트 주시니 많은 도움이 됩니다.^^ 독일에 수도원이 많은 줄은 몰랐네요. 수도하는 나라가 예전에는 왜.. 그랬는지..( '') 반성인가요?
 
피고인 - [할인행사]
조나단 캐플란 감독, 조디 포스터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충격적인 집단강간씬을 포스터는 무려 스물 일곱살에 찍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도 하고 있기 힘든 포즈로, 가장 예쁜 나이에, 가장 눈부신 나이에 입은 상처는 본인이 상대에게 어떠한 상처를 얼만큼 줬는지도 모르는 인간들에게 징역형을 내린다 해서 회복될 일이 아니었다. 몸에 생긴 상처가 아물 때에도 희미한 흉터를 남긴다. 하물며 마음에 찍힌 낙인 같은 상처는 그녀를 황폐하게 만들 것이다. 올바른 사랑과 믿음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우리가 세심히 돌봐야 한다. 나는 여자다. 누구보다 그녀를 알 수 있고 이해해야 하는 여자.

그녀의 검사로 배정된 캐서린조차 처음에는 사라가 입은 피해를 마주보지 않는다. 그녀는 애인과 동거중인데다 종종 마약과 술에 쩔어있고, 야한 옷차림으로 다니며 사내들을 유혹한다는 이유였다. 사라가 입은 강간은 명백했으나 그녀에게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고 캐서린조차 믿어의심치 않는다. 증거는 없고, 피해는 입증할 수 없어 답답하던 즈음, 포기하고 무너지는 사라를 찾아간 캐서린은 다시 한 번 사라를 돕기로 한다. 그녀를 강간한 이들과 형량협상을 끝마친 뒤지만, 집단강간인만큼 강간을 부추기고 방조한 이들의 죄를 밝히면 다시 한 번 강간범들의 형량 또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 당한 상처도 아픈데 소금 뿌리는 것마냥 증언대에 서서 자신의 피해를 고스란히 증명해야 하는 현실이 애달프다. 이것 또한 분노다.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 세상에서 아직도 남자로 인해 여자가 피해입을 수 있는 분야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여성차별이라든지, 강간이라든지, 폭행이라든지. 남자들은 모른다. 본인들을 세상에 낳아준 것도 여자라는 걸. 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의 표제작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집안에서 힘이 가장 센 오빠가 아빠 위에 존재하지만 엄마 밑에 존재하므로 집안 서열은 그렇게 잡힌다. 이건 거의 본능적이다. 본디 여자는 남자에게 힘으로 밀리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기는 일련의 피해들. 남자와 여자가 존재하는 한 인류가 멸종할 때까지 끝나지 않을 여성 피해 사건들. 그 반대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사라는 오랜 시간 술집의 온갖 남자가 박수치며 부추기고 희롱하며 지켜보는 데에서 술집 안 게임대 위에 강제로 눕혀진 채 손과 발이 결박된 채로 강간을 당했다. 울부짖으며 소리쳤지만 어느 누구 하나 그녀를 도와주는 이 없다. 그녀의 피해 사실을 신고한 학생 또한 경악해하면서도 정작 말릴 엄두를 내지는 못한다. 술집에서 서빙하던 사라의 친구도 구석에서 집단적으로 이뤄지는 폭행 장면을 보고는 도망치듯 떠나버린다. 남자들의 집단광기는 무서웠다. 그들에게 강간은 성욕을 채우려는 욕심이기보다 여자를 정복하려는 게임이었다. 서로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무기를 아무렇게나 꺼내보이며 자랑하는 저질스런 게임이었다.   

사라의 분노 앞에 당당할 자 없다. 나라면, 그 자리에서 당당히 그러지 말라고 할 수 있었을까. 그럴 거라는 확신도 그 반대의 확신도 없다. 나도 두려웠을 것이다. 나도 사라만큼 짧은 스커트를 입고 술에 취한 채로 남자들 앞에서 가슴과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여자라면, 어쩌면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강간을 당해도 마땅하다는 뜻은 아니다. 포스터는 신들린 것처럼 연기했다. 특히 캐서린이 강간범들과 형량협상을 해주고 돌아왔을 때, 그녀를 향해 내뱉는 사라의 분노와 실망, 깨진 신뢰를 표현할 때 탁월했다. 포스터는 고작 스물일곱 살이었는데. 그녀가 부러워질 만큼 뛰어난 연기였다.

<피고인>은 1988년에 만들어졌고 여성에 대한 집단강간의 법정영화로 분류되지만 충격적인 강간씬을 빼고나면 포스터의 연기를 감상하는 게 다다. 일직선으로 가는 스토리에다 지극히 뻔한 법정영화라 임팩트가 부족하다. 짧고 임팩트 있게 쓰자면, 여자는 언제나 자신의 삶을 강하고 풍부하고 보호받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그건 권리이자 의무이고,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건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자신의 소중함 때문이어야 한다. 단 한 번, 사라의 삶이 부서진 건 맞지만 다시 얼마든지 빛날 수 있는 이유다. 그녀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서 싸우려는 용기를 냈고, 맞서 싸워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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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1-11-11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엔 이 영화가 무척 충격적이었는데, 요샌 뉴스가 더 충격적이예요.
모든 피해자들은 어떤 삶을 견디고 있을까요...생각만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 2011-11-11 14:17   좋아요 0 | URL
네, 이런 걸 재미로 봐넘기다니, 저는 [로앤오더-성범죄전담반] 즐겨보는데 모든 성범죄를 종류별로 보여주는 데에는 탁월한 드라마예요. 심지어 거기 여형사는 설정 자체가 엄마가 강간을 당해 거기서 생겨난 아이로 나와요. 어른이 되고 그런 강간범들을 잡아들이는 일을 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끊임없이 트라우마에 시달리죠. 그런데 저는 처음에 신세계를 만난 것처럼 csi보다 더더더 재밌게 봤어요. 성범죄에 굉장히 무거운 형량을 내리는 미국이 합리적으로 보이고, 왜 저런 짓을 하는 가해자들이 자꾸 생겨날까 싶기도 하구요. 맞다, 현맘님. 할 말은 서재로 가서.^^

2011-11-11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1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1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2 0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진 2011-11-11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허... 마지막 사진만 봐도 영화의 전체 줄거리가 상상이 가는군요... 전에 이런 비슷한 영화를 본 적 있는데, 이 영화는 도무지 자신이 없습니다!

아이리시스 2011-11-12 01:01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태어나기도 전 영화니 볼 필요 없다는ㅋㅋㅋ(무슨 논리인지..) 그리고 미성년자 관람불가잖아요. 보지 마요, 알았죠? 선생님.ㅋㅋㅋ 빼빼로 받았어요, 아님 먹었어요? 어른 되면 그런 거 무관심해져서..

이진 2011-11-13 23:02   좋아요 0 | URL
ㅋㅋㅋ 빼빼로 아는 동생한테 받아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먹고나자 마자 빼빼로 벌레라는 충격적 기사를 읽었죠.. 웩 ㅠㅠㅠㅠㅠ

아이리시스 2011-11-13 23:21   좋아요 0 | URL
빼빼로 그래도 먹고 싶어요. 저도 그 기사를 보긴 했는데, 하하. 물티슈도 더럽다던데, 우린 우리 몸을 얼마나 죽여가며 살아가는 걸까요.ㅜㅜ

2011-11-12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2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1-11-12 17:08   좋아요 0 | URL
레이첼 와이즈도 매우 좋아하죠. 예~ 정말 좋아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여배우가 별로 없어요..--;;
레이첼 와이즈, 케이트 윈슬릿, 케이트 베킨세일, 나탈리 포트만..정도에요~ 얘네들 아주아주 애정하죠^^ 특히 레이첼과 케이트 윈슬릿은 조디의 대체자입니다.ㅎㅎ 조디의 부재중 발견한 여인네들..ㅋㅋ

아이리시스 2011-11-13 00:31   좋아요 0 | URL
완전 많은데.. 다섯이잖아욧!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그 진부한 줄리아 로버츠 빼고나면 캐서린 제타 존스, 페넬로페 크루즈 좋아하고 줄리 델피도 좋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영화를 모조리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ㅜㅜ 뭐 이런.. 논리가 있는지.. 그럼 왜 좋은 건지, 푸하하하.

페크pek0501 2011-11-13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가슴 아파서 이런 영화 못 봐요. 슬픔을 가진 분노를 느끼면서 스트레스를 받게 돼요.ㅋ 그래서 도가니도 못 보겠더라고요. 마음이 약한 편.

세상엔 슬픈 일들이, 부당한 일들이 왜 이리 많이 일어나는지...

아이리시스 2011-11-13 23:15   좋아요 0 | URL
이왕이면 나쁜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다 믿고서 맘 편히 사는 게 중요하겠지만요. 그래서 내 일이 아니다 싶어 타인의 슬픔과 아픔에 귀를 닫아서도 곤란할 것 같아요. 제가 아프고 다치고 무섭고 그런 영화로서의 현실을 종종 즐겨보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실제로는 영화는 극적인 재미가 가장 중요한 거지만요. 현실적 생활상은 드라마로, 비현실적 상황에 대한 대리만족은 영화로 채우는 것 같아요. 책은 나와 다른 타인의 생각을 엮는 과도기적 다리같은 거랄까요..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함부로 비난을 퍼부을 수가 없죠. 한 가지가 맘에 안 든다고 이런 거 안썼으면, 안만들었으면 그런 건 책임감 없는 발언이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렇다면 별 한 개짜리 책이나 영화를 골라읽은 본인의 안목도 문제인 거고..^^ 아.. 근데 누가봐도 대충 내는 책이나 영화는 누가봐도 알 수 있으니 그런 걸 말하는 건 아닙니다. 이게 오해의 소지가 많네요.ㅋㅋㅋ

페크pek0501 2011-11-14 12:52   좋아요 0 | URL
피고인 같은 영화 많이 만들어져야 해요. 아이리시스님처럼 열심히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글로 쓰는 작업을 하는 사람도 꼭 필요하고요. 이번 도가니 영화처럼 사회 이슈가 되어야 법 개선 등의 해결책도 나오는 것이니까 우리 모두 남의 불행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해요.

다만 저는 불편한 걸 잘 못 참아서 못 본다는 뜻이었어요.(오해 없으시길...) 티브이에서 아프리카 빈민국의 아이들이 먹을 게 없어서 굶주리고 병들어 있는 모습도 보다가 채널을 돌리게 돼요.
그 대신 저, '유니세프'에 매달 얼마씩 내고 있어요. 자동이체해 놔서. (이거 자랑질인가요, ㅋ)
남의 비극을 못 본다는 게 세상에 대한 무관심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기 위해 자랑질했으니 이해 바람.

참고로, 웃긴 얘기 하나. 7광구 라는 영화 봤을 때 주인공이 괴물에게 다칠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던지 그 스트레스로 영화관을 나올 때 두통을 느꼈어요. 이제 그런 영화 다신 안 볼 거예요. ㅋㅋ

좋은 하루 되세요.

아이리시스 2011-11-14 14:36   좋아요 0 | URL
오해 안했습니다, 저. 그럴 리가 있나요. 저도 그런 거 있어요. 저는 대부분 비현실로 봐넘기는 것 같지만(험한 일을 별로 안당해봐서겠지요) 감정이입하는 게 몇 개 있어요. 동물학대,아동학대,노인학대. 쓸어서 쓰레기장에 던져야 한다고 생각을;; 힘은 약한 상대에게 과시하라고 있는 게 아니죠. '유니세프' 말만 하지 실천은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가끔, 아주 간혹, 보내요. 그저께 사랑의 리퀘스트에 쓰레기마을 나왔는데, 아버지가 이주노동자로 일하러 갔다가 그 나라 실업자들에 의해 화형당한 사건. 딸이 아빠 무덤에 꽃과 나무를 심고 매일 물을 주더라고요. 저는 뭐 보면서 잘 안우는데 갑자기 눈물이...ㅜㅜ

주말 잘 보내셨어요, 페크님?

sslmo 2011-11-14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장르소설은 즐겨보는데, 이런 류의 영화는 못 봐요.
그러고 보면 제가 글자를 시각화 만드는 상상력이 영 부족한가 본데...차라리 다행이다 싶어요.
정말 우연히 이런 류의 영화나 드라마 보게 되면 식은 땀 주르르, 눈물 줄줄...몇 날 몇 일을 일이 손에 안 잡혀서 말이죠~ㅠ.ㅠ

아이리시스 2011-11-14 14:4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저는 많은 분들 불편하게 하는 거군요. 안봐도 아는 현실을 굳이 들춰내서 리뷰랑 페이퍼 쓰고 막ㅋㅋㅋ 세상을 많이 알수록 무서운 것이 많아지고, 무서운 것이 많아질수록 이런 영화나 책 보기 힘들어지는 게 아닐까요. 저는 책보면 더 무서운데, 완전 반대. 그럼 저는 상상력은 뛰어난데 이미 시각화된 건 그러려니 하는 거네요. 어제는 어느 영화 첫장면에서 차가 일부러 사람을 한 번 치니까 날아가면서 다리가 너덜너덜..ㅜㅜ 아.. 나 이런 거 왜본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