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잠 한숨, 밥 한끼 더 먹는 게 낫겠는, 쓰잘데기 없는 짓을 할 뻔했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좀 다독이고, 우뇌로 좌뇌를 좀 설득했다. 반값에 혹해 몇 달 전부터 지른 e-book 리스트를 캡쳐하려는 만행을 가까스로 뿌리치고 페이퍼 창을 연다. 인증샷은 이 나이에 좀 웃기지, 여튼 그렇게 잘 참아오던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 펭귄세계문학을 지르고, 민음사,열린책들세계문학도 지르고,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대산문학전집을 기웃거리다 한 권씩 지를 때도 꿋꿋하게 참던 건데, 참아지던 건데, 궁금하지 않았는데, 심지어 공짜로 볼 엄청난 기회도 그냥 붐이라는 단어 속에 날려먹었는데 왜 이제 와서, 왜. 진짜 좋은 건지 좋다니 좋은 줄 아는 건지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특필하는 <빅 픽쳐>도 그저 그래서 한 번 더 속는 심정으로, 아니지, 스토리K 선물받은 기념으로 <파리 5구의 여인>을 지를 때도 잘 참았던 충동인데, 그랬는데, 결국 내 손으로 결제버튼을 누른다. 다 이 책 때문이다. 어쩔 수 없어, 네가 원망을 들어야 해.

 

 

 

 

 

 

 

 

 

 

 

 

 

 

책을 꽤 샅샅이 뒤졌는데 이 책의 원년도를 찾을 수가 없었다. 1999년이라고 책정보 페이지에서 알려주는데 그때 내 눈은 없었나 보다. 어떤 스웨덴 현실을 담으려 했는지 알지만 이제 북유럽의 대명사가 된 기이한 현상 '백야'만큼이나 새삼스러울 것 없는 얘기다. 다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북유럽 환상을 한꺼풀 벗겨낸지 오래란 말이다. 게다가 이 책은 그 현상 보다는 왜 그랬는지에 대해 치우쳐 설명이 다소 늘어지는 측면이 있다. 다트로 사람 눈을 맞추는 기술은 놀라운데, 그걸 한 번 배워보고 싶기도. 어릴 때 벽에 걸어놓고 가끔 던지고 놀던 다트는 놀이라기 보다는 그 자체로 위험한 일이 충분히 연상되는데도 엄마가 사준 걸 보면 신기할 정도였다. 한 국가의 전혀다른 두 얼굴. 복지국가 스웨덴과 동유럽 공산권과 손을 맞잡고 어둠의 터널을 통해 성장한 1980년-1990년대 대기업을 묵인하며 성장해온 스웨덴 말이다. 애견센터 옆에 보신탕 가게가 있는 것만큼이나 아이러니하지만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스티그 라르손을 결제하게 된 건 <미스테리오소>가 서문만 열어주고 만다고 생각해서 더 거대한 이야기가 고팠기 때문이다. 아르네 달이 스웨덴에서 유명하다고 하는데 아마 시기상으로 늦게 나오다보니 앞 타자들이 했던 얘길 반복해 듣는 셈이 된 듯하다. 범죄소설, 추리소설, 경찰소설, 탐정소설 어느 범주에 넣어도 한 권으로는 모자라는 느낌이다. 스웨덴의 굵직한 정계,재계인사들이 차례로 죽어나가는 연쇄살인상황, 단서는 '미스테리오소'라는 곡이 담긴 음반. 밝혀진 사실은 충격이라기 보다 수긍을 수반하게 한다. 예전에 하정우가 나오는 드라마 [히트]에서는 헨델의 '울게 하소서'가, 얼마 전 소지섭이 나오는 드라마 [유령]에서는 'the phantom of the opera'가 깔리는데 무서워서 한동안 그 음악을 들으면 경기가 날 것 같았다. [유령] 보면서는 혼자 있을 때 모니터 불빛만 새어나와도 깜짝깜짝 놀랐다. 나는 겁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순간적 놀람을 두려움으로 연상시키는 연쇄상상은 공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하게 하는 것 같다. 추리소설이나 공포영화가 보는 동안 무서운 게 아니라 몰라도 되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게 더 무섭다. 영화 [공모자들]은 그 자체로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굳이 영상으로 확인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그 사건 자체가 실화라서 두려운 게 아니라 그런 사건이 일어나는데도 여객선에 탄 많은 사람들이 아내를 찾아달라는 남편의 목소리를 하나같이 묵인하는 현실이 더 놀라웠다. 어쨌거나 살인사건과 음악은 진짜 찰떡궁합이다. 아마 소녀시대 노래 틀어놓고 살인하면 그걸 못 듣게 될 거야.

 

쫓겨나게 생긴 이민자가 동족을 대신해 추방에 반대하다 홧김에 벌인 인질극 끝에 감옥에서 자살하자, 그제야 법이 바뀌면서 정작 자기 가족만 추방되게 생긴 몹쓸 아이러니, 국민의 혈세로 자기 배 불리며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이들(금융인과 정치인)을 스스로 벌하려다 국민에게는 박수를, 사회에서는 연쇄살인범으로 찍히게 될 어떤 남자의 서글픈 운명. 사실상 박수라도 보내야 할 입장인데도 그러지 못할 뿐더러, 이들의 희생에도 정작 세상은 그대로다. 그래서 그런 건 아닌데 충동처럼 통장에 꽂힌 돈으로 이 책들을 결제하고 있었다. 북유럽 스릴러가 쏟아져 번역되기 시작할 때, 언론은 할리우드의 식상함과 일본의 고전적인 추리에 질린 독자에게 먼 곳의 낯선 시공간이 이질적이면서도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거라고 했고, 어느 정도 맞았다. 일본은 가깝고 미국은 날마다 접하니, 변덕 심한 독자들 어느 정도 지겨울 때도 됐다. 스웨덴을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이 완전히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제는, 이렇게 읽어가다 보면, 그 호기심 또한 곧 말라버리고 말겠지만.

 

책장 한 번 잘 넘어가네. 난 내가 책을 이렇게 빨리 읽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이 책으로 세 번째 정도 깨닫는 것 같다. 책만 재밌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마음의 평화와 몸의 여유, 시간과 집중력까지 따라줘야 가능한 일인데. 나는 뭐랄까, 이 가을이 많이 행복하다. 이유없이 룰루랄라 ♬ 이유가 분명 있겠지만 그걸 찾을 필요도 없을 만큼 신이 나 있다.

 

 

 

 

 

 

 

 

 

책을 결제하는 손은 내 손이 아니었던 게지. 그리고 나는 <미스테리오소>한테 진 거다. 인정. 그리고 요즘 눈 뜨나 감으나(응?) 재미나게 읽고 있다. 순식간에 휙휙 넘어가는 페이지가 예사롭지 않다. 영화까지 본 마당에, 알만큼 아는 스웨덴 상황에, 어느 국가든 그런 이중적 아이러니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까지 훤하면서도 재밌다. 언론, 경제 분야에서 사회적 성문제와 소수자 문제 그리고 국가 문제까지 거론하는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는 시리즈별로 각각 2005, 2006, 2007년에 출간되었다. 그리고 헤닝 만켈 얘기는 안하겠다. <비스트>와 <쓰리 세컨즈>의 안데슈 루슬룬드(전직 기자)와 버리에 헬스트럼(전과자 출신 사회운동가)도 경험과 취재로 닦은 솜씨로 빚어낸 생생한 리얼리티로 범죄소설의 한 페이지를 차지한다.

 

 

 

 

 

 

 

 

셋 아니 헤닝 만켈까지 넷 모두 성격상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사회고발형 범죄소설에 해당한다. 범죄소설과 추리소설의 내가 느끼는 차이는 범인이 누구인지, 왜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가 중요한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다. 이미 이 소설은 범인찾기가 아니라 현실 자체의 묘사가 주는 리얼리티에 초점이 가 있기 때문이다. 그 차이를 개인에 두느냐, 권력에 두느냐에 따라 혹은 탐정이 수사하느냐, 경찰이 수사하느냐에 따라 소재와 스케일이 주는 느낌이 다소 달라지긴 하지만 결국, 스웨덴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나거나 일어날 법한 범죄의 양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여기서 스웨덴 복지문제까지 거론하면 뭔가 반칙이다. 픽션과 논픽션의 차이도 있고, 재미와 지식의 차이도 있고, 현실과 환상의 차이에서도 반칙의 기운이 스멀거린다. 아주 잘 사는 나라라고 가난한 자가 없을 수 없고, 국민 전체가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들만 살 수가 없다. 가난과 부, 타락과 도덕은 상대적인 문제지 절대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절대로 근절될 수 없는 유형에 속한다. 하다못해 복지정책 자체에서도 초점을 노인에 두느냐 청년에 두느냐에 따라 사회적 효용은 달라지기 마련 아닌가. 어느 사회가 더 현명한 사회인지는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며, 동시에 서로 다른 세대를 구제하지 않는 이상,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복지의 다양성과 불균형 또한 자명한 일이다.

 

한동안 북유럽 복지플랜과 실용과 폐단에 대한 책들이 다양한 분석적 시각에서 쏟아졌다. 대부분 읽지 못했으니 다양한 시각인지 비슷한 관점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곳의 복지플랜이 뜨거운 지구상에서 가장 핫하다는 점만은 부정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복지가 가능하려면 아무리 모르더라도 몇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복지 정책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책이 제대로 기능하고 수정,보완되도록 하는 사회제도의 기준치와 제재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는 것이 먼저다. 또한 국민들의 사회적 합의인 높은 세금 부담율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애초 없는 돈으로 경제 재분배를 재촉할 순 없는 일일테니까. 그러니까 스웨덴 말마따나 사회주의에서 복지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말은 반만 맞다. 적어도 지금까지, 2000년대 들어 고성장이 압박받지 않을 때까지 스웨덴은 완벽한 모델의 복지국가가 맞았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라오스처럼 UN과 관련한 국제법상 영세중립국은 아니지만 지리상 섬나라였기에 외세 침략과 전쟁에서도 독립적 지위를 유지하기 쉬웠다. 인구가 적고 단일민족이며 두 번의 세계대전 영향에서 벗어났기에 유럽의 전쟁 이후 물결을 따라 고도의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다. 국가는 신뢰도가 높았고 정부는 성실하게 일했으며 국민은 프로테스탄트 종교적 문화로 한마음이 되었다. 사회 분위기가 그러니 기업의 도덕적 신장도 따라왔다. 따라서 전쟁의 뒷수습에 열올리던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현재 터져 나오는 복지국가 타이틀에 대한 조심스런 반납은 예고된 일이고, 스웨덴 복지정책을 따라하려는 여러 나라들의 목표는 잘못되었다. 과정은 빼고 결과만 얻어먹겠다는, 허울 좋은 심보로 남이 타던 차에 공짜편승하겠다는 뜻이다. 유럽에서도 가장 가난했던 나라 스웨덴이 성장과 분배의 파이를 최대한으로 잡아 닦아놓은 복지지도를 보며 침흘리면서, 이미 성장할 만큼 성장한 우리가 그대로 덥썩 받아물면 성공할 거라는 순진한 기대는, 지금 여기서 다시 한 번 1970년대 개발성장을 해보자는 대한민국과 뭐가 다른가. 나도 그랬으면 진심 좋겠다. 강남이든 어디든 저개발 된 곳 땅 좀 사놓게. 때문에 스웨덴 복지 또한 고도로 성장한 국가 내에서 점차 삐걱거리게 된 것이다. 새로운 플랜이 필요한 시대에 도입한 것이다. 자국 내 천연자원을 펑펑 퍼다 쓰고 더이상 쓸 수 없게 되자 아프리카와 아마존을 파헤치고 다니는 미국의 개발업자들처럼 말이다.

 

어떤 정책이 뼈대가 되어줄 순 있지만 같은 상황에서 성장과 발전을 해온 국가는 지구상에 없기 때문에 100% 재사용될 수 없다. 스웨덴의 복지정책은 정책의 방식이 옳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정책을 실현할 토대 즉, 국가(정부), 국민, 기업 그리고 지리적 위치와 역사까지 적어도 다섯 가지가 넘는 쳇바퀴가 맞물리며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제와 스웨덴을 복지모델로 무조건적 차용하는 것은 옳지 않고, 옳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수긍한다. 그런데도 스웨덴 즉 북유럽 복지에 대한 원형과 책들은 왜 한없이 쏟아지는 것일까. 그게 바로 성찰이나 과정 없이 결과만 바라는 잘못된 습성 때문 아닐까.

 

스웨덴 또한 복지정책의 꾸준한 수정이 필요하고, 그래왔을 것이다. 세계경제가 성장할 만치 성장한 지금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적어도 복지라는 분야가, 반에서 1등하기, 학교 내에서 1등하기 같은 목표는 아니기 때문에. 하다못해 그런 목표도 나보다 수학을 더 잘 하는 아이, 과학을 더 잘 하는 아이가 전학 오면 전략전술을 새로이 짜야 할 판에, 너무 안일하게 스웨덴 복지모델을 차용하고자 하는 건 시장조사 없이 뛰어든 창업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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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스웨덴. 두 가지 양상의 현상. 하나는 책, 또 하나는 정책. 스웨덴은 교육, 건강, 보육, 연금, 노인 복지 등 대부분의 분야를 무상제공해왔다. 석유가 펑펑 나기 때문에 공무원이 10시 출근도장 찍고 티타임, 점심시간 느긋하게 갖고 오후 2-3시면 퇴근한다는 중동 대다수의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무원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인력수급에 애를 먹고, 때문에 외국인에게도 개방되어 있다는 공공 직업의 자리. 어떤 나라는 그렇기도 하다. 노력 하나 없이 땅에 묻힌 지하자원으로 쉽게 돈벌고 쉽게 안락해지는데 굳이 일할 사람이 없는 게 당연하다. 안일한 국가는 국민을 무능력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들이 대한민국처럼 악착 같았다면 대한인들은 지구상에서 설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유럽 어느 나라는 파트타임을 쓸 때 한국학생이라면 반색을 한다는데, 이 나라는 왜 이렇게 자국민들을 천대할 수밖에 없게 되어가는가. 카페 알바 하나도 이리저리 잴 정도로 자리가 없고, 인턴 자리 주면서 생색내고, 남아도는 건 공장 일자리 뿐이니. 우리 중에 제일 게으른 이조차 지구상에서는 상위 5%의 부지런한 이에 들 것이다. 쉽게 얻는데 어렵게 일할 필요가 없고, 쉬울 때에는 어려움을 생각하는 사람이 적다. 묻힌 자원이 언젠가 바닥날 걸 알면서도 그게 자신의 시대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산다. 때문에 돈은 많지만, 집은 좋지만, 점심시간은 세 시간이지만, 일하는 시간이 우리나라의 절반이지만, 사회인프라 시설은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갖춰져 있질 않다. 중동은 우리에게 위험한 곳이다.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서도, 아무리 호화로운 생활이 보장돼도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곳이다. 물론 시도때도 없는 테러로 인해 만들어진 인프라 파괴마저 걱정해야 할 판에, 건설해봐야 파괴될 텐데 뭐하러, 이런 얘긴 할 필요도 없지만, 하루가 달리 죽어나가는 판에 책이라니, 영화라니. 진정한 사치다. 차라리 좀 가난해서 열심히 일하고 맛있는 밥 먹고 책 읽는 이 나라가 호사스러울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는 아무 것 가진 것 없는데다, 너무나 격렬한 경쟁과 여유 없는 현실이 인간성마저 좀먹지만, 내 입으로 이 나라가 호사스럽다는 말을 하게 될 줄, 그 시작이 스웨덴 범죄소설 몇 권과 스웨덴 복지를 얘기하는 책이 될 줄 미처 몰랐다. 더군다나 스웨덴만의 특별한 현상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내가 스웨덴에 대해 아는 게 뭐냐고?

미안하지만 없.다.

나는 많은 걸 모르지만 스웨덴에 대해서도 역시 모른다.

 

가을에 문득, 바흐가 다가왔다. 글렌 굴드도, 흑백영화도 참 아름다운 계절. 아니 그렇게 보이는 계절. 몇 개의 영화를 사랑하고 싶은데 마음이 풍선처럼 떠서 자꾸만 자꾸만 영화 앞에 나를 데려다앉히지 못한다. 날이 너무 좋아서 눈으로는 세상을 보고 귀로는 음악을 듣고 몸은 그냥 두었다. 다들 미쳐서 열심히 살아가니까 나 하나 정도는 대충 하늘 아래 바다 위를 좀 날아다녀도 괜찮겠지. 햇살이 쨍하고 바람은 다소 차지만, 어쨌거나 나는 여물고 있다. 대추도 밤도 아니면서. 추석이 지난 지가 언젠데. 빨갛고 새콤한 사과는 매일 아작아작 깨물어 먹는다. 모기가 귀환했고 피부가 거칠어졌고 내가 애정한 드라마는 끝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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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8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19 0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19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22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댈러웨이 2012-10-19 0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리언 어산지도 지금 런던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꼼작도 못하고 보호받고 있잖아요. 스웨덴이 여자 두 명을 내세우면서 말도 안되는 성폭행 혐의를 씌어서는. 아, 진짜 지난 주에 그 다큐보다가 열폭했던거 생각나네요 지금. 스웨덴이랑 미국이랑 아무래도 무슨 내통이 있었겠지 싶은데 여기 정부는 도대체 자국시민 하나 보호도 못하고 미국때문에 나몰라라 눈이나 감고 있고. 줄리언 어산지 아버지 근데 진짜 멋지다요. --;

아이님, 짠~ 하고 나타났군요. 요즘 저도 글렌 굴드 계속 듣고 있는데 저 동영상을 여기서도 보다니. ㅎㅎ 가을을 누리고 있었군요. 좋아요. 글이 좀 쓸쓸하게 읽히기도 하지만 가볍게 날아다니고 있다니, 좋아요. 리뷰도 잘 보고 가요. ^^

아이리시스 2012-10-22 17:14   좋아요 0 | URL
예전에 어느 출판사에서 나온 위키리크스를 읽는데 저는 어산지가 어느 순간 지구상에서 증발해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무서웠어요. 그분이 호주 사람이었구나.. 미국인인 줄 알았.. 아..댈러웨이님 네 줄에 음모론 있다..크.. 자국시민 하나 보호 못하는 건(시민의 기준이 다르긴 하지만) 여기 뿐만은 아닌 것 같네요!

오늘 플레이오프 5차전 해서(부산에서는 아니지만) 웬만하면 비바람 그쳤으면 좋겠어요^-^

비연 2012-10-19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가을날. 글렌 굴드의 음악... 정말 좋네요...아...정말 좋아요...

아이리시스 2012-10-22 17:09   좋아요 0 | URL
...속에 든 비연님 감정이 훅 다가오는 오늘은 월요일이고 비바람 불고 가을입니다.. 체감으로는 겨울 분위기인데.. 한 순간 좋으셨다니 저도 좋아요 ^_________^

오늘같은 날은 뭘 들어야 할까요. 아까 아침에 3000곡이나 뒤졌는데 뭘 들어도 귀에 쏙 박히지가 않았어요. 요즘 저는 좀 이상해졌어요ㅠ.ㅠ

맥거핀 2012-10-19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델을 좋은 거 들여오는 것도 좋지만, 일단 사고를 좀 바꿔야죠. 며칠 전에 프랑스의 고소득자 세금 정책에 대한 기사와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이 나라가 왜 MB같은 분이 대통령이 되었는지 알겠더라는..이번에는 암튼 스웨덴이군요. 세계일주만 하지 마시고, 알라딘에도 종종 나타나주세요.^^ (근데 이 많은 책은 도대체 언제 읽는 겁니까?)

아이리시스 2012-10-22 17:06   좋아요 0 | URL
맥거핀님, 시작만 하면 소설이야 몇 시간 내로 읽히는 거 아시면서..이 많은 책이라니.. 이런 거 물어보심 반칙입니다! 저는 티비 보면서 소설 읽는 건 이제 습관적이라서(ㅋㅋ)

프랑스 고소득자 세금 정책에 대한 기사 궁금하네요..링크 좀..MB같은 분도 이상하지만 대한민국에 안 이상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요즘 좀 불신주의자ㅎㅎㅎㅎ

고상하게 선언해놓고 루소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한 장 이후 멈췄습니다.. 맥거핀님께 (혼자) 약속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어..ㅠ.ㅠ

2012-10-21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역시 뭐 하나 읽었다 하면 그쪽으로 뿌리를 뽑으시는군요. 아이님은.^^
스웨덴 복지 관련 글 완전 공감하며 읽었어요. 복지는 결국 도덕성의 문제이고, 복지 실현은 진짜 조금씩 그 나라 사정에 맞게 만들어가는 과정의 문제이죠. 우리나라는 진짜, 어휴... 전, 이 나라가 매우 싫어요.ㅎ
그나저나 애정하는 드라마는 뭐였을까요? 혹시 "골든타임"?
저의 직장동료는 송지나-김종학을 좋아하여, '신의'를 강추하더군요. 마지막 남은 4화라도 보라며... 그래서 월요일부터 보려구요. 요즘음 슈스케4 빼고 티비 하나도 안 보게 된지 오래됐어요. 그나마 슈스케는 이제 정떨어져서 못 보겠게 되었고.. 맨날 책만 읽고, 음악만 듣고, 인터넷만 해요. 영화도 볼 거 없고...^^;

아이리시스 2012-10-22 16:59   좋아요 0 | URL
저 원래 집착적인(파고드는) 성격 아닌데(맞는 것 같기도하고) 이 서재는 좀 그렇게 만들어요. 좁은 바닥, 치열한 경쟁(그 경쟁심은 나만 느끼죠ㅋㅋㅋ) 홀로서기 하려면 내 분야를 파야 하는거다, 뭐 그런 느낌? 무엇보다 즐찾이웃분들 안 줄어들도록(히히히)

스웨덴 복지는 저도 잘 몰라서 책 한 권 읽으려는 상태구요, 이 나라 같은 경우엔 이민자에게도 철저히 차단되어 있는 듯한데 이민정책도 궁금하네요. 우리나라도 이제 난민법 공포됐는데 갑자기 궁금했어요. 앗, 그 직장동료분이랑 저랑 친구될래요. 소개 좀.. 저 드라마는 '신의'예요. 재밌다고 누구더러 보라거나 하는 성격 못되고 그냥 좋아요. 요즘은 연달아 두 번씩 봐요(ㅋㅋㅋ) 요즘도 제 버릇 남 못 주고 되는대로 모든 드라마를 다 챙겨보고 있는데 지난 주 끝난 '아랑사또전' 보면서 뒷머리 잡고 '골든타임'은 사실 한 달 전에 종료됐잖아요. 애정했지만 그건 뒤늦게 편승해서 사흘만에..( '') 전 원래 좀 모 아니면 도라서..

영화는 항상 좀 그런 것 같아요. 뭐 딱 맘에 드는 게 없어요..^^;;

2012-10-20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랜굴드 좋아하시나요? 전, 지식채널에서 본 '클라라 하스킬'에 관심있구요. 글구 이무지치의 사계가 너무 좋은데, 내가 좋아하는 (7700원짜리) 앨범이 절판이라 절망이에요. 그런 줄 모르고 전에 산 거 친구 줘버렸거든요. 다른 버전의 시디는 함 사서 들어봤는데 영 감이 멀던데... 엊그제 다시 라디오에 이무지치 사계의 가을이 들려와서, 다시금 또 반해서, 월요일에 지르려고 해요. 절판 아닌 앨범 두 개 다! 다른 사계로는 만족이 안 돼요..ㅠ.ㅠ

아이리시스 2012-10-22 16:50   좋아요 0 | URL
섬님, 제가 글렌굴드 좋아할 만큼 음악을 안다면 걱정도 없겠어요ㅠ.ㅠ 글렌굴드가 아니라 저는 바흐를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어요. 그리고 피아노곡을 좋아해요. 그냥 바흐의 골드베르크 검색하다 글렌굴드가 나와서 저기 퍼온 거예요, 뭐 그런 거예요^-^ 남들 듣는 만큼, 아는 만큼 딱 그 정도 글렌굴드 알고 있어요.

7700원짜리 찾아보고 옴.. 클라라 하스킬이나 이무지치 아예 모르겠습니다.. 그것보다도 다른 사계로는 만족이 안 되는 느낌은 뭐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네요..크큭. (아, 이거 좀 부러운데요..)

에세르 2012-10-29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엄청납니다.
스웨덴에 대해 여러면들을 들춰내는 압도적인 글입니다. 마지막을 갑자기 바흐로..! Anti-Climax...점강법인가요?ㅎㅎㅎ
너무 멋지네요.

아이리시스 2012-10-29 21:37   좋아요 0 | URL
엄청 많이 비장해졌죠. 북유럽을 동경만했지 지도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는데요, 이번 기회에 지명이름도 많이 외우고 또 성 같은것들도.. 푸핫. 저는 제가 유럽지도를 그릴 줄 안다고 철썩같이 자신했는데 거기 사실은 서유럽만 있더라고요. 북유럽과 동유럽은 없고..

감사하다는 말은 꼭 끝에 붙입니다, 이 얘길 하고 싶었는데 말이죠^^

이진 2012-11-10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래라아아아아- 글렌굴드 바흐는 정말 유명하잖아요.
안그래도 오늘 신나게 클래식 왕창 듣고 오는 길인데! ㅎㅎ

아이리시스 2012-11-12 19:24   좋아요 0 | URL
클래식 삼매경 소이진 어린이. (음악에 무식한) 누나한테 많이 가르쳐줘요. -_-V
 
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차백만 옮김 / 미래의창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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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반복보다 더한 강요는 없다. 강요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단순의견을 반복적으로 피력할 때에도 같은 의견을 가지지 않은 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폭력과 억압으로 변한다. 목소리가 크다고, 다수라고, 옳은 건 아니라는 것. 히친스는 '반대파'가 언제나 소수이며, 개인의 올바른 의견이 다수의 그럴 듯한 의견보다 힘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경제, 사회, 종교, 국제 분야로까지 영역을 확장시키며 온갖 분야의 다른 사고방식을 훑으며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질을 젊음이 가진 하나의 특권으로 인식시키려 한다. 그런 점에서 히친스의 주장은 다소 급진적이며 때로 폭력적이다. 히친스는 도킨스, 촘스키와 함께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 5위 안에 들면서 그의 급진적 사상 또한 관철시켰다. 철저한 무신론자이며 <자비를 팔다>에서 이 시대의 성녀 테레사 수녀를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한 인격비방이 아닌 사회복지와 종교적 차원에서의 그것이다. 이런 급진성은 더욱 뚜렷한 주장을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불일치가 불러오는 독창과 비난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껄끄럽거나 위험하다. <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는 밍밍하게 묻어가려는, 시대에 편입하지도 시대를 비판하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고하는 일침이기도 하다. 열여덟통의 편지는 '다른'입장, '다른'반대, '다른'의견을 통해 이 시대를 말하고 있다. 출간과 번역의 시차가 있지만 어색하지 않다. 

 

"나는 나가지 않겠소. 당신들에겐 나를 석방할 힘이 없소. 나를 석방해서 당신들이 이득을 볼 권한은 더더구나 없소. 나는 다른 모든 이들이 석방됐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 그리고 모든 폭압적인 법이 폐지됐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 이곳에서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을 거요."

 

그 순간, 과연 권력을 쥐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는 너무나 분명했네. (그리고 그전까지 전 세계 정부들은 이 인종차별주의 정권강탈자들이 노략질한 권력을 유지하고 체면을 유지할 수 있는 온갖 터무니없는 외교적 타협안을 제안해왔다네.) (p.151)

 

27년간이나 자신을 가뒀던 권력자들의 방문을 받았을 때 그들로부터 내려온 자유를 거부하며 넬슨 만델라가 한 말이다. 이어지는 권력의 맛. 감시하고 탄압하고 사람을 감옥에 보내고 선동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일. 시몬 베유는 정의는 원래 '승자의 진영에서 도망치기 마련'이라고 했고, 이 사실로 미루어 보아 대다수 좌파, 진보 진영이 언제나 소수가 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난 지도 모른다. 마틴 루터 킹 박사는 암살되기 전날 밤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를 떨치기 위해 에로스 즉 성적 본능에 골몰해 꽤 추잡한 혼외정사를 벌였고, 이는 생식기 달린 포유동물은 누구나 벗어날 수 없는 본능적 행위를 인정하면서 영웅적 인물의 인간화(세속화)를 보여준다.

 

카뮈는 조국 알제리가 부당한 식민체제에 맞서 전쟁을 벌이자 고민에 빠졌지. 즉, 반란군들이 무작위로 폭탄테러를 벌이는 과정에서 식민군 병사들이 죽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쉽게 자신의 늙은 어머니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야. 결국 카뮈는 만약 자신이 정의와 어머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머니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네. (pp.160-161)

 

누구나 빠져들 수 있는 덫, 양날의 검, 개인인가 단체인가 등의 선택권에서 카뮈조차 자유로울 수 없음을 예로 들며 선택과 저항, 반대의 주체성을 스스로 획득하기를 촉구한다. 양심과 도덕기준. 개인과 역사. 흐르고 변하는 일련의 시간들 앞에 인간으로서 자유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히친스는 이렇게 고한다.

 

자네는 과거의 불행하고 불평등하며 비이성적인 상황에 도전했던 이들의 힘겨운 투쟁을 결코 잊어선 안 되네. 나아가 그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하네. 즉, 무리나 파벌이 제 아무리 뛰어난 사상을 지니고 있더라도 결코 그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순순히 받아들여선 안 되네. 자기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는 걸세. 자신 있게 '우리'를 내세우거나 '우리를 대신해서' 말하는 이들을 결코 신뢰해선 안 되네. 만약 이런 목소리가 자네 생각에서도 발견된다면 자네 자신부터 의심하게. 다수로부터 오는 안정감과 소속감이 늘 연대와 동의어는 아닐세. 오히려 그건 합의와 압제, 그리고 동종의식이라고 할 수 있네. '다수'를 언급하거나 '민중'을 칭송할 때도 이런 무리는 결국 개인으로 구성된다는 걸 절대 잊지 말게. (pp.165-166)

 

최근 MBC <아마존의 눈물>의 주인공 야노마미족의 몰살은 브라질에 만연한 불법 금 채굴업자의 만행과 이를 묵인한 브라질 정부의 합동작전으로 행해졌다. 단 세 사람만이 학살이 자행된 시간 사냥을 나갔다 변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종족과 터전을 잃은 이들에게 우리가 해줄 말은, 위로는, 더 보여줄 인간으로서의 도덕은 어떤 것이 있는가. 이에 대해 히친스가 살아있었다면 어떤 말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물론 원주민 학살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금이나 광산 채굴로 인해 멸종된 종족이 야노마미 원주민 뿐인 것도 아니지만, 우리가 TV로 만난, 그 정답고 해맑은 이들의 터전이 이제 없다는 사실이, 그들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 가슴 저리게 슬프다.

 

쿤데라의 <농담>에 나오는 주인공은 트로츠키에 관한 농담 한 번 잘못했다가 평생 그에 대해 해명해야 하는 저주에 휩싸인다. 어떤 시대는 어떤 말로도 해명하기 힘든 시간이 존재하는 법이다. 졸라가 타협을 피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망명할 때, 오스카 와일드는 반대로 했다가 장렬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유로 히친스는 오스카 와일드의 손을 든다. 사르트르가 반항아는 내심 세상과 체제가 지금 그대로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반면, 혁명가는 진정으로 현재 상태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길 원한다고 구분짓는다. 또한 촌철살인과 위트는 급진주의자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손꼽힌다. 키신저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두고 '이보다 더한 코미디는 없다'며 가수를 그만 둔 톰 레러, 1992년 당시 아칸소 주지사였던 빌 클린턴이 대통령 경선에서 유약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기 위해 정신지체인 흑인 리키 레이 렉터라는 사형수의 사형을 명한 일, 이 잔혹한 행위에 대한 진보주의자들의 침묵, 장시간의 지루함과 간헐적인 공포로 이루어진 전쟁을 급진주의자의 삶과 동일시한 것, 확신과 경험으로 실제 움직여야만 이뤄낼 수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미미할 수도 있는 반대파의 삶. 많은 사례들이 함께 한다.

 

시사와 논점이 분야/쟁점 가리지 않고 넘나드는 박식함 덕에 250쪽 남짓한 이 책을 보름 가까이 붙잡고 있었다. 그래봐야 밑바닥 뚫린 독서력만 확인한 셈이지만, 시야와 관심사를 더 넓혀야 한다는 것과 자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하라는 자신감 그리고 행동과 실천의 중요성을 촉구한다. 이 시대 젊은이들이 세상과 시사와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관심 가지는 정도는 얼만큼인가. 히친스가 기준이라면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나는 신이 정의롭다는 걸 상기할 때마다 내 조국을 생각하면 걱정스러워서 몸이 떨린다." (p.103)

 

토머스 제퍼슨이 미국의 원죄에 대해 한탄한 말이다. 신이 존재하는지, 국제사회 아니 이 사회만 봐도 늘 의문에 의문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책임이라던 조지 오웰의 말을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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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1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11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11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18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19 0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11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새로운 걸 많이 알게 되는 리뷰군요. 별로 즐겁지 않은 것들이지만... <아마존의 눈물> 보지 않았지만, 이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안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아이리시스 2012-10-18 18:30   좋아요 0 | URL
새로운 걸 많이 알게 되는 책이었거든요, 섬님. 마틴 루터는 좀 놀랐지만 저게 사실인지에 대한 여부와 책임은 그냥 히친스에게 떠넘기는 걸로 하겠습니다^^

<아마존의 눈물> 일은 좀 많이 놀랐어요..

ghostsoup 2012-11-01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책의 판권에 이름이 실리진 않았으나, 이 책의 기획자입니다. 낮설게 느껴질 수도 있는 책인데,
아이리시스 님의 리뷰를 읽으면 이 책이 좀더 다른 독자들에게 와닿을 수 있을 것 같네요.
감동 리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댓글 남기고 갑니다.

아이리시스 2012-11-02 16:27   좋아요 0 | URL
와우, 안녕하세요. 리뷰를 이렇게 부끄럽게 달아놔서 부끄럽습니다.. 다행이에요, 이렇게 말씀해주시면 최소한 맘속에서 민망함을 좀 내려놓을 수 있겠어요. 재밌었어요. 많이 압축된 시사의 느낌이 들어서 많이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어렵지만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히친스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만들어주세요^-^

2012-11-12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12 1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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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읽는내내 영혼을 갉아먹히는 듯하다. 검열과 통제의 아픔. 글쓰기 자체의 고통. 지나온 시대의 불운. 우리로선 일제시대에나 겪은, 공공연하게는 눈에 보이지 않게 온 세상을 휘감고 있는 구속, 그러니까 자유롭지 못한 것.

 

아니, 불온한 자유를 희망하는 일. 절대로 허락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이 같은 극단에서 또 다른 극단으로 옮겨 가게했던 것일까? 이 문제의 배후에는 무수한 해답이 떠돌고 있을 것이다. 나도 온갖 해답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것을 느끼면서 딱 꼬집어 뭐라고 확실하게 말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극단적으로 억압된 시대는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반드시 극단적으로 방종하는 시대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그네를 타는 것처럼 한쪽 끝이 높이 올라가면 반대쪽 끝도 높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pp.193-194)

 

자유가 사라진 세상에 빛은 없다. 내가 아는 중국의 1900년대는 대충 키워드 몇 개로 정리된다. 사건 몇 개와 이름 몇 개. 관심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인데 그래도 꽤 짚어내면서 오늘날까지 온다. 중국/대만/홍콩 배우들에 빠져 무협영화나 역사드라마를 좋아하던 시절에는 어느 정도 나라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지금은 중국이란 나라, 확 쓸어내서 화성으로 보내버리고 싶다. 중국소설이나 영화는 늘 한정적인 시대와 배경을 다룬다. 어둡고 칙칙하고 자유롭지 못한 세상이란 이미지가 꽉 찬다. 작가들은 더 떨어질 곳이 없는 밑바닥 삶의 뿌리를 붙들고 일어서려는 서민의 삶을 그린다. 불행한 자가 할 말이 더 많은 법이고, 아마 그런 것들을 두루뭉술하게 그리는 것외에는 허락되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신해혁명을 다룬 [1911]이나 난징대학살을 서양인의 눈으로 본 [금릉십삼채] 같은 영화는 최근 것들. 거슬러 올라가면 [마지막 황제]나 [패왕별희], 톈안문사건을 겪은 청춘의 불안을 그린 [여름 궁전] 등이 유명하다.

 

그러고보면 신해혁명과 만주사변, 중일전쟁, 난징대학살 그리고 문화대혁명, 톈안문사건은 우리의 1960년대 출생의 작가가 5월의 쿠데타나 이어지는 학생운동과 혁명, 후일담 문학을 양성해내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짐작은 고요하고 강한데다 위협적이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서 희미하게 요동치는 어긋난 뿌리와 여전히 해갈되지 않은 동부와 서부의 빈부격차, 심지어 경제적 시차가 10년에 달한다는 코카콜라 얘기나 명절 고향에 가기 위해 열흘의 기차여행을 해야 하는 어이없는 영토크기와 인구수, 동서가 확연히 차이나는 사회인프라 시설, 다민족국가를 지향하는 중국정부의 어이없는 억압과 불평등 그리고 티벳을 향한 부조리한 강제점령. 게다가 부유한 국가, 가난한 국민들이란 불우한 슬로건을 가진 나라. 중국에 대한 지식은 하염없이 부정적이다.

 

소설<형제>와 달리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의 출판은 대만에서는 가능했으나 중국에서는 불가능했다. 장제스와 마오쩌둥의 대립결과가 반대였다면 아마 이 거대한 국가의 사정은 지금과는 판이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과 중국, 중국과 우리나라의 사정 또한 지금과는 달랐겠지. 되풀이되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형제>는 가능했고 <사람의 목소리->는 불가능했던 이유, 차이는 내용이 아니라 허구와 비허구의 사이에 있었다. 소설은 되고 산문은 안되는 것, 6월 4일은 차단되고 5월 35일은 허용되는 곳. 지금부터 하려는 말은 중국에 대한 교양지식, 위화가 살아온 땅에 대한 기원이다.

 

사실 삶과 글쓰기는 아주 간단할 때가 있다. 어떤 꿈 하나가 어떤 기억 하나를 되돌리면, 그다음에는 모든 것이 변하고 마는 것이다. (p.157)

 

목차에서 예고하는 열 개의 단어는 불온하다. 루쉰, 혁명, 독서. 특히 책이 없거나 읽을 책을 압수 당하는 사회에 대한 학창시절의 토로가 오늘날 한낱 고리타분함으로 이어지는 책의 이미지를 돌려놓는다. 책을 읽지 않아도 잘 살 수는 있겠지만 책을 읽으면 훨씬 더 풍부한 삶을 즐길 수 있다. 여기 앉아 다른 세상의 사정을 자세하게 아는 것만큼 유익한 일도 없다. 오슬로의 비행기체에 붙은 입센의 초상화로 인해 애증어린 루쉰에 대한 기억을 불러내는 일에서 마오쩌둥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의 역설적 예찬까지 이렇게 슬프면서도 위트있는 책은 오랜만이다. 마오쩌둥에 대해 회고하는 부분에서는 위화의 입장을 분명하게 느끼지 못했다. 그가 추억하는 마오쩌둥이 유신정권을 추억하는 이 시대 어른들 절반의 목소리와 닮아있기도 해서다. 그런 현실은 고통과 감동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한마디로 애증. 있었던 시대임을 인정하지만 되돌아가기는 싫은 시간들. 그는 유년과 청소년기를 관통한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를 아프게 인지하면서도 비참하게 그리지는 않는다. 격변과 혼란, 부조리를 말하지만 미래와의 소통과 화해의 제스처를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따스하고도 애정어린 시선으로 모든 것을 우리 앞으로 불러온다.

 

신해혁명기 작가로 루쉰과 펄 벅이 있다. 펄 벅은 이방인의 눈으로 본 중국을 소설 속에 담아내며, 중국의 현실과 소설의 괴리를 줄이려 애썼다. 중국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한 <대지>로 퓰리처상을, 미국 여성으로선 최초로 노벨상을 받았다. 그리고 모든 문학 앞에 루쉰이 놓인다. 하지만 중국이란 나라의 연상에는 쑨원과 서태후, 마오쩌둥과 장제스, 덩샤오핑이 먼저 온다. 자꾸 정치인들이 떠오르는 것 또한 파란만장하고 시끄러운 중국역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위화는 본인의 이야기와 삶, 생각과 의견을 문학으로 풀어냈지만 그를 읽음으로서 중국작가 모두를 동시에 불러오는 경험을 하게 한다.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인 청나라는 1911년 쑨원이 주도한 신해혁명의 성공과 부패할 대로 부패해 무너진 봉건왕조체제, 영국과의 아편전쟁에 패하면서 들이닥친 열강의 이권침탈로 1912년에 멸망한 후, 중화민국으로 이름을 바꾼다. 혁명의 선도자 겸 국민당 창시자였던 쑨원의 통일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뒤를 이은 장제스는 계속하여 공산당을 공격한다. 이 상황을 노려 중국을 먹을 심산이었던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켜 공산당과 손잡고 국민당에 대항하고, 장제스는 공산당 공격을 그만두게 된다. 이후 국공(국민당과 공산당) 내전으로 치달아 장제스와 마오쩌둥의 치열한 대립 끝에 장제스가 패하면서 타이완 섬으로 쫓겨간 국민당은 중화민국 즉, 지금의 타이완(대만)이 된다. 장제스로부터 시작된 타이완의 현 총통은 마잉주이다.

 

한편, 승리한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지금의 중국)을 선포하며 새로운 국가를 수립한다. 즉, 중화민국(지금의 타이완)의 원년은 1912년, 중화인민공화국(지금의 중국)은 1949년 건국되었다. 중국의 공산당은 장쩌민에 이어 후진타오 국가주석에 의해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 사실 굳건한지 어떤지는 잘 모른다. 위화는 중국 내에서 6월 4일 대신 5월 35일으로 그날의 사건을 말할 수 있을 뿐이며 정치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여전히 검열/통제 당한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예전부터 품었던 사소한 의문이 있다. 중국과 대만의 배우와 영화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나는 늘 궁금했었다. 탕웨이, 장쯔이, 판빙빙은 중국배우, 비비안 수, 정원창, 주걸륜은 대만배우, 그렇다면 얘들의 뿌리는 다 같은 거였다. 난 거의 매번 어떻게 구별해야 하나 헷갈리곤 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담이 생겨나듯 그렇게 장제스가 나와 그로부터 모든 후손이 태어난 건 아닐테니까.

 

그럼 홍콩은? 기무라 타쿠야가 나오는(물론 양조위와 장쯔이도 나온다) 왕가위 감독의 [2046]에서 찾아보자. 영화가 나왔을 때 제목의 의미를 궁금해하던 이들에게 감독은 2046년이 홍콩반환 50주년 째라고 했었다. 제목과 내용은 영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극장에 앉아 주리를 틀었던 기억이 있다. 홍콩은 1842년 아편전쟁 때 영국에 먹혔다가 1997년 도로 뱉어져 중국 아래 존재하는 특별행정구이다. 여행하기에 되게 쏘쿨하고 멋진 곳이긴 하지만 별로 좋은 역사를 가진 국가가 아닌, 지금도 먹힐까 말까 불안하게 흔들리는 반쪽자리 자립영토로, 중국이 반환 이후 50년간 홍콩의 독립체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하면서 1국가 2체제로 유지되고 있다. 올림픽은 특수성이 인정되어 승인 받고 중국과 따로 출전하지만 국기는 없고, 상징으로 펄럭이는 건 홍콩특별행정구의 깃발일 뿐이다. 그럼 이제 홍콩배우 찾아봐야 할까? 아니, 그럴 필요 없지. 홍콩은 중국이니까. 홍콩에서 활동하더라도, 그곳 출신이더라도 전부 중국배우로 표기되겠지. 현재 홍콩은 독립적이다.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행정·입법 및 사법권을 향유한다. 하지만 2046년에는 어떨지 알 수 없다. 홍콩은 100년이나 영국 치하에 있다가 이제는 중국의 식민화에 압박당하는 중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로서는 가까운 여행지 중 하나에 대한 다양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치과의사와 소설가. 위화는 둘 중 하나의 직업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가 일하던 사회에서는 두 직업의 보수와 위상이 다르지 않았고, 부모님이 두 분 다 의사라 전자의 길이 훨씬 쉬웠을 수도 있다. 누군가 부를 가져다 줄 직업 대신 왜 소설가를 선택했냐고 물었다지만 위화의 청년시절엔 의사의 경제력이 소설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마 지금과 가장 큰 폭으로 달라졌을 놀라운 사실. 하지만 경제력 때문에 직업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부르주아 계급을 타파하려는 문화대혁명기 마오쩌둥 아래에서 성장했어도 그는 적어도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어렵게 글로 세상을 사로잡는 법을 택했고, 그로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을 한 것 같다. 루쉰도, 펄 벅도, 쑤퉁도 적어도 지금 여기쯤에서 두 작품 씩은 읽어보고 싶다. 위화는 더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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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9-29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아이님은 역사에도 빠삭하시군요. 요즘 학교에서 한국사를 배우고 있는데 역사 선생님께서 자가 주도 학습(?)을 주장하시는 터라 머릿속에 잘 들어오질 않아요. 저는 선생님께서 쫘라락 정리해주시면 이해가 잘 되는 스타일이거든요.
요새 너무 게을러요, 저. 책을 좀 읽어야 하는데 책 읽은 지가 언제였더라... 으이구 멍청아! 추석이잖아요. 아, 그런데 영어 숙제가 있구나... 책 읽고 독후감 쓰려고 했는데. 지금도 영어 숙제가 쌓여있어요. 학원이 두 시부터 시작인데 그 때까지 다 해야해요. 히히... 이만 갈게요.
추석 잘 보내셔요. 아이님은 고향 가셔요? 가시든 가시지 않든 편안하고 즐거운 휴일 보내시길! 우리는 다음 주 수요일까지 쉽니다, 무려. ㅋㅋㅋ

아이리시스 2012-09-29 12:31   좋아요 0 | URL
응, 소이진님 완전 안녕. 즐거운 명절 보내고 만나요. 헐; 오늘도 학원에 가요? 으흐흐
나는 오늘 노는데, 할머니댁 그러니까 큰집 그러니까 밀양 갈 수도 있는데 아마 안 갈 것 같아요. 지금 가야 하는데 나는 준비를 안했거든요. 아 맞다, 오늘 엄마따라 가면 기차타고 가서 일해야 하고(뭐 며느리가 많아서 시키지는 않지만) 내일 오전에 가면 동생차로 편하게 갈 수 있지만 아마 집에서 놀거예요!ㅎㅎㅎㅎㅎㅎㅎㅎ
그러니까 난 책과 티비를 맘껏 볼 수 있어. 와 기쁘다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다음주 수요일까지 쉰다고? 화욜도요? 학교 이상하네. 학원은 사악하고 학교는 올발라....

맥거핀 2012-10-02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서평단 때문에 읽고 있는 '코뮤니스트'라는 책에도 중국 얘기가 좀 나오기는 하는데, 참 생각해보면 20세기 들어 중국만큼 격변을 겪은 나라도 많지 않은 것 같아요.(그런 면에서는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지만) 봉건주의 국가에서 외세의 침입, 공산주의 그리고 현재는 자본주의(에 가까운) 길을 걷고 있는 것을 보면요. 그렇게 시대가 확확 바뀌면 결국 죽어나가는 것은 윗대가리들이라기 보다는 민중들이니까요. 예전에 어렸을 때 중국천안문 사태보면서 어린 마음에도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아..그런데 왕가위의 <2046>은 제가 꼽는 몇 안되는 정말 아름다운 영화 중에 하나인데...)

추석 잘 보내셨어요? 저는 그냥 집에서 딩굴딩굴했어요. 밀린 책을 많이 읽어야지 하고 계획을 세웠으나 별로 보지를 못했네요.^^

아이리시스 2012-10-03 04:44   좋아요 0 | URL
맥거핀님, 오늘은 제가 일찍 자가지고 두 시에, 무려 두 시에! 일어났어요. 새벽마다 폭풍 영어공부를 하고 있어서 어제부터 머리가 팽팽도는 것 같네요. 이대로 미국 가면 의사소통 잘될 듯한 미친 기분이 들기 시작해요 zZZZZZZZZZZZZZ

코뮤니스트. 그거 전에 궁금하긴 했는데 쉬워보이진 않았어요. 중국을 많이 모른다고 생각해서 이 책이 부담스럽긴 했는데 산문집이라 쉽더라고요. 어린시절 고백이나 경험, 생각이 많은데 저는 약간 더 자세하고 어려운 사실주의 문학을 기대해서.. 산문집인 거 알고 샀으면서 왜 그런 기분이었는지.. 좀 더 어려웠어도 소화했겠다, 자세히 알고 싶은데, 이런 생각했던 것 같아요.

중국, 아프리카, 남미 정치사 같은 데는 관심이 좀 가는 편이어서..

<2046> 영상미가 죽이잖아요. 저렇게 얘기한 건 주리틀던 기억만 빼고 내용이 거의 기억 안나서 그런 것이기도 합니다. 다시 봐야겠어요. 근데 늘 이 영화 보려고 하면 중경삼림이나 아비정전 보다가 끝내버려요.

저도 뭐 시골 안갔으니까요. 큰집 찍고 외갓집 돌고 그러고 오는데 저는 안갔어요. 설날에는 따라가서 신나게 놀아야지 뭐 그런 생각을.......... 큰집 사촌오빠가 지난 6월 결혼해서 네 살 어린 새언니가 생겼는데 두 달 있으면 조카가 태어난다고 해서 계속 결혼압박 받을까봐 부담스러운데ㅋㅋㅋ

책은커녕 저는 그냥 뒹굴다가 시간 다 갔어요. 내일(오늘)이 또 휴일이라니...zZZZZZZZZZZZZZZZZ

저 탕웨이 많이 보고 싶었는데 개막식 표 못 구해서(만약 정색하고 벼렀던들 살 수 있었을까요) 티켓 몇 장 사뒀어요. 일반표도 워낙 매진이 빨라서 장동건장쯔이 나오는 영화 같은 건 꿈도 안꿨고 그냥 차선에서 골랐어요. ㅠ.ㅠ

Shining 2012-10-04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화.. <인생>과 <허삼관 매혈기>가 엄청나게 좋았으나 근래작은 평작이라 한동안 안 봤는데.. 이 책은 보고 싶군요. 아이님의 리뷰를 읽으니 더더욱+_+ 그나저나 아이님의 역사에 대한 관심과 상식은.... 1/4만 제 머리로 복사해주시면 하는 건 약은거겠죠. 하하하하하.

BIFF보러 가십니꽈? 멋지다... 전 고딩때부터 가고싶었는데 여태 못 가고 있다는_- 갔다오셔서 감상평 말해주기에요!

2012-10-05 0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두 도시 이야기 펭귄클래식 135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18세기 칙칙한 뒷골목에서 훗날 두 도시를 빛낼 위대한 싹이 트고 있었다. 그곳은 버려져 있기도, 선택되기도, 생채기나기도, 아물기도 했다. 쥐와 사람이 동시에 같은 곳에서 살았다. 마부와 마차, 붉은 포도주, 쿰쿰한 냄새가 가시질 않는 다락방, 낡고 녹아내려 만질 때마다 붉은 찌꺼기가 묻어나오는 철계단, 두 도시를 오고가는 거대한 도버해협, 뱃길, 악악거리며 대거리하는 소리, 가난 속에서 흘러넘치는 침울, 울음을 가장한 진짜 울음소리, 진흙탕에 넘어진 사람 머리 처박기, 뚝뚝 떨어지는 비애와 그나마 거리를 밝히는 푸른 별빛과 노란 달빛. 한 남자는 숙녀와 함께 오래 전 잊혀진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비정한 도시에 온다. 만나기로 되어있는 사람은 런던의 유명은행에서 일하는 남자가 파리지점에 근무했을 때 알던 남자다. 어떤 연유로 유령 같은 삶을 살았는지는 모른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앓아온 정신착란을 숨기지 못한 채 노쇠하고 허약해진 다 썩어가는 눈빛으로나마 딸을 안는다. 찢어발겨진 15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그들은 이제 함께다.

 

릴케의 <말테의 수기>를 두 번 읽었다. 절망과 타락 그리고 영광은 언제나 함께하는 법이다. 그리고 이 타락한 도시조차 디킨스의 도입부는 멋지게 그린다. 비가 오는 거리를 미친 척 맨발로 뛰어다니던 적이 있었다. 다 커서는 아니고 학생 때 비오는 날 단짝친구와,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놀다(분신사바 유행중) 나오는 길에 그만 교문이 닫혀, 지나가는 분의 도움으로 교문을 넘다가 어차피 젖은 교복 그냥 쫄딱 맞고 강아지처럼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비는, 피하려 할 때 어렵지, 맞기 시작해서 홀딱 젖고보니 그만큼 마음 놓이고 편하고 행복하고 온 세상이 다 내 것 같은 적이 없었다. 이상했다, 비는. 아마 이 도시의 타락과 절망의 냄새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책을 펼치며 여기 앉아 뜨겁고 달콤한 커피 한 잔과 함께 꽤 오랫동안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을 듯한 기분좋은 예감이 들었다. 해협 하나 사이에 두고 닿아있는 두 나라의 정반대 분위기는 그곳을 좋아하는 일부의 이유 정도는 되었다. 환상 속에서는 유럽 보다 더 이질적인 중동이나 아프리카, 남미가 더 좋지 않을까. 그곳들의 하늘은 곧 머리 위로 부서질 것 같은 색깔이다.

 

어느 도시에 머물 때 폭격 맞은 대성당이 우뚝 선 바로 그곳, 불탄 자국 성당 샛길로 마차가 지나갔다. 케른트너 거리였던 것 같다. 영국도 파리도 아닌 곳에서 홈즈의 시대를 떠올린 건 잠시 뿐이었지만, 그 맛에 여행의 매력이 존재한다는 것 정도는 분명했다. 몽타주와 오마주가 군데군데 기시감으로 나타나는 현상, 그게 여행이었다. 온 세계 배낭여행객들이 하는 인도앓이를 유럽 어느 도시에서 마차가 지나가는 걸 보고서 실감했달까. 본인에게 익숙한 풍경과 가장 이질적인 곳에서 누구나 한 번쯤 앓게되는 게 정상 아니겠는가. 인도와 영국이 아니고, 베트남과 프랑스도 아니다. 런던과 뉴욕도 아니고 파리와 뉴욕도 아닌, 많은 것을 공유했지만 많은 것에서 대립했을 런던과 파리, 비슷한 과거를 가졌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천차만별일 두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밤. 제법 많고 깊은 시대적 배경지식을 요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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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 펭귄클래식 56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곽명단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어느 밤, 오래 전 다락방에 기어올라 읽던, 그 시절 소중한 시간들을 선사해준 동화책을 떠올리며.

 

에일리가 [불후의 명곡]에 나와 노래하는 내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싫었지만 이 한 곡 때문에(에일리가 부르는 스타일은 여전히 맘에 안든다, 그저 곡이 좋아서) 간혹 에일리가 노래하던 무대가 생각나곤 한다. 이승환 편에서도 (곡이 좋으니까) 좋았는데 거기서 하차했다. 그렇잖아도 그만나올 때 됐다 싶던 참이었다. 모름지기 연예인이 오래가려면 한창 주목받을 때야말로 치고빠지기를 잘 해야 한다. 오래된 감성과 옛날 노래의 감각을 잃기 싫어 보기 시작한 프로그램은 어느새 습관처럼 내 안에서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래봐야 원곡의 감동을 따라갈 수 없지만 나는 디지털 시대를 살고, 그들은 아날로그를 노래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여긴다. 대부분의 가수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에일리가 더 별로였던 이유는 가만히 불러도 잘 하는 노래실력을 감성을 실으려 기교를 부림으로서 상쇄시키는 느낌 때문이었는데, 어린 나이의 풋풋함 보다는 어서 어른이 되어 장렬하게 전시되고픈 야심이 느껴져서였다. 그녀가 그날 불렀던 노래는 가사도 멜로디도 딱 그때 그 시절을 내 앞으로 불러올 만큼 아련하면서도 명료했다. 강변가요제 시대를 청춘으로 보내진 않았어도 80년대 후반의 서정적 멜로디는 엄마의 영향 탓인지 늘 앓을만큼 좋.았.다. 이 노래는 스물 세 살 되던 해, 콩알만 하게 태어나 걱정시키면서 드디어 엄마 인생의 절반을 살고있다며 세상 다 가진 듯 좋아라하던 때를 헤엄치게 한다. 모든 것을 탄생시키고 또 모든 것을 소멸시킨다.

 

 

 

하룻밤의 꿈 [가사]

 

이쯤에서 돌아가려해
변함없는 이 세상 변한 건 그저 내 마음

다가서면 멀어지고 떠나기엔 가까운
너의 눈빛은 여전히 고운데

지금까지 널 사랑하며
흘린 내 눈물만큼 너와의 거릴 느끼고

너의 그 모든 마음을 갖기엔
아직도 어린 나를 알고

이토록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되는 건 없는지
사랑에 버려진 세월의 슬픔을 아는지

알 수 없는 너를 하룻밤 꿈같은 너를
언제고 다시는 찾지 않으리

나만의 기대도 한겨울 바람 같은 네 맘도
모두다 하룻밤의 꿈
잊혀져 버릴 꿈

지금까지 널 사랑하며
흘린 내 눈물만큼 너와의 거릴 느끼고

너의 그 모든 마음을 갖기엔
아직도 어린 나를 알고

이토록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되는 건 없는지
사랑에 버려진 세월의 슬픔을 아는지

알 수 없는 너를 하룻밤 꿈같은 너를
언제고 다시는 찾지 않으리

나만의 기대도 한겨울 바람 같은 네 맘도
모두다 하룻밤의 꿈
잊혀져 버릴 꿈

(알 수 없는 너를 하룻밤 꿈같은 너를)
언제고 다시는 찾지 않으리

나만의 기대도 한겨울 바람 같은 네 맘도
모두다 하룻밤의 꿈 ~

밤보다 짧은 꿈 
펼친 부분 접기 ▲

 

 

그리고 버넷의 가장 완벽한 동화 <소공녀>는 살아온 모든 순간을 밤보다 짧은 꿈으로 인식시킨다. 반드시 지나쳐야 했을, 결코 피할 수는 없었을 많은 순간순간의 선택과 시간, 그리고 소중한 인연들을.

 

아홉 살부터 열한 살, 1년 하고도 몇 달 더 살았을 그 집에서는 이십년 후가 아니라 사십년 후에 떠올려도 미소 지어질 그런 일들이 아주 많았다. 동네 아이들(언니오빠친구동생) 모두 모여 생일파티를 했고, 최고 인기선물은 연필과 수첩과 노트와 지우개 등이 가득 든 문구세트와 저금통이었다. 옆집 오빠가 좋아서 새침데기처럼 굴었고, 주차장에 주차하고 골목을 한참 걸어와야 대문에 닿았고, 마을 근처에 꽈배기 과자 공장이 있어 날마다 고소한 냄새가 가시질 않았다. 아직도 그곳을 생각하면 꽈배기 공장을 떠올리고 그러면 그 당시 동네 곳곳에 살던 친구들과 밤마다 하던 숨바꼭질이 떠오른다. 엄마가 얼른 들어오라고 부르는 소리, 아이들끼리 마음이 어긋나는 바람에 편먹고 싸우던 일까지(지금으로 치면 패싸움), 두 편으로 나뉘어 이어달리기, 술래잡기,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고무줄 놀이 같은 구식에 목숨걸던 시절.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를 놀이들. 훗날 잔세스칸스에서의 강렬한 코코아 향이 맡아지고, 그러다보면 아- 추억은 향기로 맡아지는 구나, 하며 향수에 젖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타임머신이 제멋대로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건 첫사랑이나 파리, 학창시절, 어린 연인을 그리워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가능하다. 이 시간들을 겪지 않았다면 많은 향수를 모른 채 어른이 되었을 듯한 불안한 예감 같은 것에 다름 아니다.

 

어린아이의 키와 눈높이에 딱 어울릴 다락방이 딸린 방에서 네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커서는 절대로 읽은 책을 다시 보는 일이 없지만(확 줄었지만) 아홉 살 크리스마스, 엄마로부터 이 책을 선물로 받았을 때는 세라의 다락방이 마치 지도 위 어느 나라들 보다 넓고 크게 느껴졌다. 그곳은 갖가지 보물로 반짝거리는, 없는 것이 없고 있을 것만 있는, 해와 달과 별처럼 손닿을 수 없는 곳에 존재하는 거대한 상상력으로 빚어진 멋진 세상이었다. 그때부터였을 지도 모른다. 내가 종종 혼자, 외롭게, 쓸쓸히 무언가에 몰두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한 것이. 세라는 에밀리(인형)를 친구로 삼아 인도장교인 아빠와 떨어져 영국에 있는 기숙학교에서 지내게 된다. 슬픔을 감출 줄 알고, 기다릴 줄도 알며, 무엇보다 인사와 감탄과 예의를 잊지 않는, 바른 마음가짐을 가진 베풀 줄 아는 소녀다. 당시 세라보다 두 살이 더 많던 나는 세라와 닮기를 소망했다. 책이 지금보다 훨씬 귀하던 시절, 온종일 읽고는 다시 또 다시 읽으며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다. 발랄하고 성실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가 되고 싶었다.  

 

자고 일어나니 엄마가 책상 위에 올려두신 빨간장화(플라스틱)에 든 종합과자선물셋트와 동화책 한 권. 그때 우린 좁은 방에 살고 있어서 책이 많지 않았는데 좋아하기 시작한 유일한 책 속 주인공이 세라였다. 유일해서가 아니라 처음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홉 살의 여자아이에게 세라는 모든 것을 다시 쓰게 하고, 예뻐지고 착해지고 싶게 만든 주범이다. 동생은 파란장화 속 종합과자선물셋트와 <톰 소여의 모험>을 받았고, 아마도 그애는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았을 것이다. 오래된 책을 정리할 때마다 고개를 내미는 동화책은 손때와 세월의 흔적이 묻어 낡고 더러워졌다. 하지만 제자리에 꽂힌다. 다시 펼치지도 못한 채 그저 다시 꽂아놓는다. 그 책은 남아있음으로서 제 할 일을 다한다.

 

어릴 때, 학창시절에도 기숙학교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님과 하루 이상 떨어져 지낸 적이 없고, 어릴 때는 언제나 엄마가 곁에 있었는데, 가족과 떨어지거나 집을 떠나 생활할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막연히 성인이 되면 독립할 거라 맹신했다. 진심으로 떠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풍부한 상상력으로 조금 더 낯선 세계를 동경했을 뿐이다. 엄마 없이 일곱 살에 아빠 말동무가 될 정도로 철이 들어버린 아이, 아빠의 경제력과 지위로 인해 부유하게 자랐지만 예의범절과 성실과 밝음을 잃지 않은 아이, 어른스러움과 천진난만함이 세라를 더욱 빛나는 화려한 숙녀로 만들지만, <소공녀>에는 소녀시절 꿈꿨던 모든 여자아이들의 로망과 미래가 흘러넘칠 뿐 아니라, 배경묘사 또한 절절하다.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아빠와 떨어져 홀로 생활하며 친구와 자아, 꿈을 확립해가는 아직 어린 세라의 찬란한 성장담으로도 볼 수 있고, 그런 점에서는 <빨강머리 앤>과도 어느정도 상통하는 면이 많은 여자아이들의 필독서다. 하지만 '있는 집 자식'이라서 기숙학교 원장으로부터 은근히 당하는 핍박과 괄시, 조롱어린 멸시나 기득권 경쟁처럼 친구들과의 다툼에서 오는 외로움과 쓸쓸함은 둘째로 치더라도, 어린 나이의 아이들을 두고 어른들이 하는 '줄대기', '잘보이기' 같은 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썩 좋지만은 않다.

 

앤이나 주디, 캔디가 가난한 고아소녀들이라면 세라는 부유한 아빠를 뒀지만 나중에 아빠를 잃고 그들과 같아진다는 점에서 현대가 말하는 신데렐라 혹은 캔디 캐릭터는 그다지 진화되지 못했다. 꿋꿋하게 웃으며 제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고 가다가 동화 속에서 걸어나온 근사한 왕자님 하나 물면, 이 시대 브라운관을 가득 채우고도 흘러넘치는 로맨스 드라마가 되는 것이다. 여전히 슬픈 대목에서 슬프고, 우울한 대목에서 우울하고, 분노하는 대목에서 분노한다. 달라지지 않았다. 방이 한 칸 뿐이었으므로 늘 다락방에 책상을 놔달라고 조르던, 날마다 창고로 쓰는 다락방 계단을 기어오르던 아홉 살의 여자아이는 이제 없다. 세라는 여전히 풋풋한 상상력과 통통튀는 발랄함과 순하면서도 강단있는 어여쁜 여자아이로 남아있는데, 옆집 오빠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고 그의 손을 쥐고 싶었던, 작은 나만 없어졌다. 억울하진 않지만 되찾고 싶어지는 밤.

 

좁지만 북적거리던 다세대주택이 늘어선 작은 골목 안의 집 안에 들어찬 사람들.

옆집 찌개 끓이는 냄새가 집안에서도 마당에서도 맡아지던 따닥따닥 붙어있던 한 대문 안에 살던 이웃들.

더럽지만 포근하고 따스하면서 정감있던 다락방을 혼자서만 기어오르고 싶은 순수.

 

내 안의 세라와 함께 안녕.

이 세상에 나를 꼭 닮은, 나만 꼭 닮은 소녀와 다시 찾아갈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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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12-09-20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공녀>는 만화로만 잠깐 본 기억이 있고, 책으로는 읽지 않았나 봐요. 과정도 결말도 생각이 나지 않아요.
어린 시절 공기, 고무줄 놀이를 제일 많이 했어요. 한데 동네서 나는 항상 깍두기였어요. 같은 성씨를 가진 아이들(그러니까 또래의 고모와 조카였어요. 그 때는 그 관계를 이해 못했는데..) 사이에서 성도 다른 나는 왼손잡이에 공기도 어설프게 보이기도 했고 잘 하지도 못했어요.

불후의 명곡을 볼 때마다, 잊었던 노래들을 만나서 그 시절에 빠져요. 최호섭이나 양홍섭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목련 2012-09-20 21:41   좋아요 0 | URL
ㅎㅎ 이 글에는 제가 1등!!

아이리시스 2012-09-20 21:57   좋아요 0 | URL
또래의 고모와 조카.. 지금도 이해가 안가요ㅎㅎ 오홋, 자목련님 왼손잡이예요? 저는 왼손잡이가 되고 싶었어요. 왼손으로 젓가락질 하는 거랑 글씨 쓰는 게 부러웠어요. 저는 왼손잡이들을 예술에 대한 재능을 타고난 아이들로 인식했거든요. 제가 왼손으로 하는 게 하나 있긴한데 이건 담에 어떻게 비밀로..... 별 거 아니지만 되게 중요한 거예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차마 말이 안나올 것 같네ㅎㅎㅎ

에일리 어때요? 싫죠? 싫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지지난주엔 최성수 아저씨가 나오셔서 엄마가 좋아하셨어요. 이 프로그램은 항상 엄마랑 함께 보거든요!

이 글에는 제가 2등!!

Shining 2012-09-21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는 어릴적에 너무 심심하게 자랐나봐요_- 전 공기도, 고무줄놀이도 못해요; 제가 살던 동네에선(그러니까 그런 놀이를 할 때 나이쯤에 살던 동네) 밖에서 노는 애들이 없었거든요; 배울 기회를 놓쳐서 지금도 못해요_- 게다가 책에 매진하는 꼬마아이도 아니어서 소공녀, 톰 소여의 모험 등등과 인연이 없네요; 읽고 엄청 울었던 건 <플란더스의 개>에요, 그건 지금도 눈물 나-_ㅠ 어릴적엔 한국동화만 있었어요, 집에_- 쥘 베른도 스무살 넘어서 읽은것에 저는 이상한 콤플렉스가 있는데; 아이님 여러가지로 부럽군요!

아이리시스 2012-09-23 01:28   좋아요 0 | URL
보통 아파트에 살았으니까 학교 다녀오면 또래와 뛰어놀 일이 드문 것 같아요. 저때 2학년에서 4학년 정도였는데 저도 원래 아파트 살다가 좀 더 큰 집으로 옮겨가야 하는데 아파트 완공과 이사에 틈이 생겨 다세대주택으로 간 거예요. 다세대주택을 멸시하는 발언은 아니지만 거기로 들어가는 게 썩 좋은 기억은 아닐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런저런 추억을 몇 개 가지고 있어 참 좋은 것 같아요.

갑자기 옆집 오빠가 보고싶네요 :)

저는 앤과 주디와 캔디 이 모든 애들이 세라 뒤에 놓여요. 그리고 샤이닝님은 어릴 때부터도 저보다 훨씬 더 문학소녀였는 걸요! 쥘 베른은 당연히 스무살 넘어서 읽는 거죠! (저도 해저 2만 리 완역본 정독한 적이 있죠, 몇 년 전에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