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평점 :
나는 여백의 미학과 시공간의 초월을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해낸 소설을 여지껏 본 적이 없다. 작품을 읽은 기억은 없지만 칼럼만으로 최근 유일하게 좋아한다 말할 수 있는 작가 김연수의 글에서 이 소설을 처음 만났다. 최인훈의 [광장] 같은 부류인가 싶었던 소설의 첫 장이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시작하자 당황했던 것 같다. 18세기, 베트남으로 가는 프랑스 선교단의 바다길. 그 뱃길은 포르투갈, 모로코, 탕헤르, 아프리카 해안, 희망봉, 마다가스카르, 인도, 세일론을 거쳐 열세 달 만에 목적지에 닿는다. 이후 그들의 삶.
다다를 수 없는 땅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가. 도미니크 수사와 카트린 수녀의 사랑만큼이나 예상할 수 없는 결말. 그 허무와 공허가 [다다를 수 없는 나라]의 짙은 이미지를 형성한다. 아름답고 슬프고 청명하다. 그들의 여행길과 정착 후 삶에 대한 의미는 내게 있어 미치도록 불안한 열정이었다. 목적을 가지고 떠난 복음의 길이건만 마침 조국 프랑스에서 혁명이 발발한다. 그들은 차차 잊혀진다. 여기서 미지의 베트남은 하늘길에 닿는 비단길이고 조국 프랑스는 회귀해야만 하는 죽음의 길이다. 그들은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향하여 모두 벗어던지고 전부 얻는다. 망각은 숭고하다. 고통스러운 혁명도, 사랑과 고독의 마침표도 결국 진정한 나를 발견하기 위함이라.
한층 성숙해진다. 짧고도 아름다운 한 문장 한 문장을 통해 살아나는 나의 자아는 버림을 통해 얻고 얻고 난 다음 사라진다. 때로는 탐미스럽고 때로는 청결하고 때로는 단순한 행과 행이 만들어주는 나만의 여백 한 켠. 여백을 채우고 비워야 하는 것이 인생. 생전 처음, 삶을 받아들었다. 무겁고 휘청거리는 어떤 낯선 경험으로 인해 믿음에 대해 생각한다. 선교, 복음, 사랑, 고독. 과연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것은? 가끔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들이 있다. 나는 오래도록 마지막 장을 덮지 못한 채 도미니크 수사와 카트린 수녀를 생각했다. 그것만이 현재 허락된 유일한 행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