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으리.
 (p.532) 


아프간 태생이지만 전쟁즈음 아프간을 떠나 캘리포니아에서 의사로 살아가던 작가가 영어로 쓴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출간 당시 중동,아랍문화권에 무지했던 우리에게 핵폭탄급 서사를 들려주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전쟁. 정서는 달라도 우리도 아는 혼란이다. 옆나라 식민지도 되어봤고, 같은 민족에게 총칼을 겨누어도 봤으며, 여전히 지구 유일 분단국가에 산다. 중동의 슬픔, 중동 여자의 삶과는 이데올로기 자체가 다르지만 우리도 알 만큼은 안다. 전쟁의 서러움과 더러움을 굳이 학습하지 않아도 생생할 만큼 우린 전쟁과 가깝다. 그리고 여기, 전쟁중인 나라를 남자로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여자로 살아가는 일도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두 편의 작품이 있다.

소설의 중심에 목표없이 명분만 있는 '전쟁'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데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전쟁 때문에 황폐하게 메말라가는 두 여자의 삶을 담담하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수작이지만 반쪽짜리 해피엔딩으로 도저히 희망을 바라볼 수 없을만큼 암울하다. 마리암과 라일라. 누가 그들에게 살인이라는 죄를 물을 것인가. 바로 얼마 전, 전쟁 후 뒤틀린 여자의 삶을 주제로 하는 또 한 편의 작품을 보았다. 영화 <그을린 사랑>과는 '같으면서도 다른' 먹먹함에 전율이 일어난다. 아픔과 절망은 호락하지 않았다. 우린 괜찮은 나라에 살고 있구나. 오랜만의 상대평가.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그을린 사랑>이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한다면,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아프간 내전이 배경이다. 그리고 원래 나는 <그을린 사랑>이 아니라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 관한 페이퍼를 쓰려고 했다. 말이 내전이지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선진국들의 중동 식민정책이나 마찬가지라는 건 오늘날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 중동의 공산주의가 북한의 그것과는 다름이 명백한데도 오랜시간 지구촌은 중동을 악의 세력 즉 거대한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굳건하게 이미지화했다. 교묘히 기획된 서양의 식민정책 아래, 나약한 중동은 언제나 서양세력에 맞서 싸우는 권력(이슬람 추종자)과 서양에 세력을 기탁하는 권력(기독교 추종자)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이마저 종교다툼 정도로 인식시켜온 것이 사실이다.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  

 

 

 

 

 

 

 

 


현재까지도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전쟁(이슬람교와 기독교의 대립)은 사실상 서양이 중동국가를 잠식하는 과정일 뿐이다. 근 60년 전부터 시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대립은 물론이고, 레바논, 파키스탄, 아프간, 시리아, 이란, 이라크 등 많은 중동국가에서 일어나는 전투와 학살이 사실상 같은 맥락에서 처치되고 있는 현실이다. 미국은 일찌감치 이스라엘의 손을 들면서 상상불가능한 엄청난 힘을 보태주었다. 그 와중에 한국처럼 외교적으로 단단하지 못한 나라는 늘 이리저리 휘둘려 왔다. 미국의 명분은 유태인에게 새 보금자리를 찾아준 것이지만, 사실상 멀쩡히 자기 땅에 살던 팔레스타인의 민족성과 국가성을 완전히 몰살하고 가자지구로 몰아내다시피 한 행위라서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 해도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 논란이 빈번한 9.11테러, 오사마 빈 라덴 사살, 탈레반 척결, 수많은 중동국가의 공산주의화 정책, 끊이지 않는 내란과 전쟁, 혁명, 이로인해 발생하는 엄청난 수의 국제난민들. 뫼비우스의 띠처럼 지구촌으로 퍼진 중동분쟁은 단지 중동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지구촌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학살이다. 더 자세히는 서방국가가 중동국가에 행하는, 종교전쟁의 탈을 쓴 학살.   

 

그렇다면 이슬람은 중동세력, 기독교는 서양 즉 미국세력을 의미하는 다툼으로 봐야 할 것이다. 내전이라 이름 붙여도 사실상 내전이 아닌 셈. 새 식민지를 건설하는 거대한 물밑작전이자 중동을 삼키겠다는 선진국의 야욕일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이란, 이라크처럼 석유보유국에는 그나마 관심을 보여도, 이미 망가진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에 인도주의를 발휘하는 국가들이 전 세계 어느 하나 없는 걸 봐도 중동을 잠식한 전쟁은 이미 심각한 사태를 넘어섰다. 실제로도 레바논에는 자원이 거의 없는 걸로 알려졌고, 팔레스타인 땅에는 이스라엘을 세우면 그만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이슬람권의 반발이 심해져 이슬람에 이슬람이 더해지고, 기독에 기독이 더해져 각자의 세력만 커지고 있다. 이슬람 젊은층은 전 세계 각지로 퍼져 유럽계 이슬람은 날이 갈수록 늘고 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이 이슬람화 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전쟁은 이미 한 국가와 국가의 싸움이 아니라 대륙과 대륙의 싸움이자 지구촌의 세력다툼이다. 석유. 이 모든 상황은 석유를 대체하는 획기적 자원이 지구촌 각국에서 쏟아져 나오기만 한다면 과연 종식될 것인가.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속에는 우리의 조선시대를 능가하는 여성탄압이 전반에 걸쳐 등장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많은 중동국이 그렇듯,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든데, 불합리와 부조리가 대부분이라(물론 문화자체를 두고 타인의 눈으로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는 일이고, 그런 행동 또한 지양해야 하지만) 지금 현재도 국제기구와 NGO 등의 부단한 인식노력이 있는 걸로 안다. 여성에 대한 차별, 교육, 할례 등등. 오빠가 간통하면 집안 여동생이 죽어야 하는 그런 비정상적 법들.(법도 아니지 관습)  

   
  "저는 선생님을 존경하지만 아이가 어리석은 생각을 하도록 하시면 안 돼요. 정말로 저 아이를 아끼신다면, 어미와 함께 집에 있는 게 팔자라는 걸 깨닫게 하셔야 해요. 바깥에는 저 아이를 위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배척당하고 가슴앓이를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요. 선생님, 저는 알아요. 안다고요." (p.31)   
   

딸이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싶어하는데 엄마가 하는 말이다.  

 

나나는 하라미(사생아)로 마리암을 낳았다. 잘릴은 마리암을 예뻐하여 시간날 때마다 선물을 찾아와 놀아주고 안아주지만, 그는 결국 다른 처자식들이 있는 남자다. 나나는 철저히 숨겨진 여자로 살면서, 그의 사랑은커녕 딸의 탄생 또한 영광스럽지 못하게 하는 삶을 살아간다. 오로지 딸 마리암만이 나나에게는 인생이고, 세상이고, 위로이자 안락이다. 하지만 마리암은 공부를 하고 싶고 아버지에게로 가고 싶다. 마침내 그녀가 아버지에게 가기 위해 엄마를 버렸을 때, 엄마는 스스로의 삶을 버림으로서 마리암에게 복수한다. 딸을 볼모로 자신의 처지를 이겨내야 했던 나나의 삶이 서글프지만, 딸의 미래를 위해 투쟁하는 엄마가 아니라 딸의 미래를 주저앉히는 엄마였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마리암은 결국 잘릴의 집으로 가지만 아버지의 원래 가족들 때문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다. 서른살이나 많은 남자 라시드에게 던져지는 마리암의 인생은 예나 지금이나 호락하지 않다. 그녀는 고작 열다섯 살이었다.  

 

많은 상반된 가치가 충돌하고, 공산정권과 그것을 무너뜨리기 위한 또다른 유해 정권이 내전을 벌이는 통에 죄 없는 민간인들이 다치고 죽고 희생되는 상황이지만, 그래서 이 곳에는 의식이 깨어있는 현대적인 남성과 여전히 구시대적인 라시드 같은 남성이 존재했다. 마리암의 비극은 라시드가 구시대적인 남자라는 데에 있었다. 한켠에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여자들의 나체가 실린 잡지를 넣어두면서 한켠으로는 여자는 남자의 소유일 뿐이며, 아내의 얼굴은 남편만 볼 수 있고, 밖에 나갈 때에는 아무도 못 보게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남편과 함께라야 한다는 이슬람 율법을 옳다고 생각하는 남자. 그가 라시드였다. 라시드는 원래 무뚝뚝한 남자였지만, 그가 아들이라 굳게 믿었던 아이가 유산되고나자, 확 달라진다. 폭력적이고 제멋대로에 전형적인 이슬람 문화를 숭배하는 남자로. 남자가 최고, 여자는 남자의 '것'에 불과하다 믿는 바로 그 태도를 본격적으로 나타내게 된다.

같은 동네에는 라시드와는 다르게 자유와 평등을 고수하는 부부가 산다. 아들 둘을 전쟁통에 내보냈다 잃어버리고 딸 라일라만 남았다. 엄마는 아들들의 죽음에 충격받은 나머지, 무기력하게 정권이 바뀌기만을 학수고대하며 살아간다. 아버지는 라일라의 배움과 사랑, 딸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적극 지지해준다. 라일라는 얼굴도 모르는 오빠들을 잃었지만 친구이자 사랑하는 타리크와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낸다. 전쟁이 이 모든 것들을 밀어내기 전까지는 라일라와 마리암은 전혀 다른 곳에 사는 여자들처럼 상반된 배경의 삶을 살아간다. 그 중에서도 가장 다른 점은 라일라는 진정한 사랑을 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법을 아는 것, 그리고 꿈꾸는 것. 두 여자의 차이였다. 그건 여자의 인생에서 퍽 중요하고, 어쩌면 그녀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일지 몰랐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내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갖는 것. 라일라에게는 주어졌지만 마리암에게는 세상 떠나는 날까지 주어지지 못했던 일.   

 

   
  살인이나 약탈과 같은 추한 것들의 와중에서, 나무 밑에 앉아 타리크와 입을 맞추는 것은 무해한 일이었다. 사소한 일이었다.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방종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입을 맞추게 내버려뒀다. 그리고 그가 몸을 떼자, 이번에는 자신이 몸을 기울여 그에게 입을 맞췄다. 심장이 뛰고, 목이 떨리고, 얼굴이 얼얼하고, 뱃속 깊은 곳에 불이 난 것 같았다. (p.239)   
   

어렵지 않게 타리크와의 첫 사랑을 나눈 그녀가 가두고 싶어했던 시간은 이후로 오랫동안 가두어지지 못했다. 이내 심각한 내전이 일어났고, 그들이 있는 동네에서 벗어나야 했다. 먼저 타리크의 가족이 떠났고, 그녀의 가족이 떠나려 했을 때, 로켓탄 폭격이 바로 라일라의 집에 떨어져 그녀는 부모를 잃었다. 이제 그녀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야 겨우 제몸을 추스르려 했던 공허한 눈의 엄마도, 자신이 하는 일마다 응원과 사랑을 보내주었던 다정한 아빠도. 그녀를 구한 건 하필 마리암의 남편 라시드였다. 라일라가 라시드의 두 번째 아내가 된 건 뱃속의 아이를 지켜야 했던 엄마로서의 비장함이었다. 그즈음 한 사내로부터 타리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들의 인생은 라시드에게로 귀결되어 있었다. 누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얼마 지나지 않아 라일라는 예쁜 딸 아지자를 낳았고, 그녀로 인해 처음에는 데면데면했던 두 여자 사이에 우정 비스무리한 것이 삭트기 시작했다. 여자로서 여자를 이해하는 삶. 동지적 삶. 같은 시대,국면,내전을 이겨내는 삶. 같은 남자의 아내로 사는 삶. 같은 것이었다. 마리암은 여자로서의 인생과 자신으로서의 인생을 모두 내려놓는 삶을 사는 중이었다. 라일라는 그런 마리암이 두려웠다. 훗날 제 인생도 그렇게 될까 두려웠다. 그래서 두 여자는 위험한 탈출을 시도한다. 잡혀온다. 라시드는 돌처럼 딱딱한 공산주의 수장보다 더 무섭고 잔인하게 그녀들을 가두고 때렸다. 탈출실패. 그녀들은 받아들인다. 라시드가 가게를 잃고 돈줄이 끊겨서 밥을 못 먹게 되어 아지자를 고아원에 보냈을 때, 운명적이게도 타리크를 만난다. 그녀는 다시 꿈을 꾼다. 여자로서의 마지막 꿈. 라시드의 아들을 사랑하지만 아지자에게 아빠를 찾아주고자 한다. 그리고 다시 탈출시도. 마리암이 라시드의 등에 삽을 꽂아넣을 때까지 마리암과 라일라는 위태하다. 마침내, 자유로워진다.   

 

   
 

"이 지식과 이 기도가 내가 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이야. 그것은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한 재산이야." (p.402) 

 
   

전쟁은 계속되고, 남편을 죽인 두 아내의 최후는 뻔하다. 마리암은 급히 라일라와 아이들을 타리크와 같이 떠나도록 한다. 모든 죄는 자신에게 있음을 상기시키며, 마지막까지 라일라의 행복을 빌어준다. 라일라는 행복했을까. 물론 새 가정을 꾸려 안전한 곳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간혹, 혹은 자주, 그녀의 발목을 잡는 어두운 삶의 그림자.  

 

   
 

하지만 라일라에게는 타리크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러한 불안감은 이겨나갈 만한 가치가 있다. 그들이 사랑을 할 때, 라일라는 안정감을 느낀다. 그들이 같이 사는 삶이 일시적인 축복이고 곧 그것이 다시 산산이 부서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누그러진다.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p.522) 

 
   

그녀는 타리크를 설득해 전쟁과 내전이 막바지로 치닫는 아프간으로 돌아가려 한다. 다른 곳에서 몸이 '안전'할 수는 있겠지만 마음을 안정시킬 수가 없어서이다. 그녀는 아프간이 고향이다. 폭탄이 떨어지고, 로켓탄이 온 마을을 초토화시켜도, 여기가 고향이다. 마음을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곳이다. 마리암의 희생은 라일라의 깊숙한 곳에서 아픈 용기로 승화된다. 라일라를 결국 제 고향으로 오고 말게 한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소설이 끝난 후 그에 주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이다. 라든가.  

그들은 카불로 돌아온다. 라일라는 마리암의 고향집을 찾아가 꽃한 송이 놓고 그녀의 영원한 행복을 빈다. 그녀의 희생으로 그녀가 살아있다.  

 

   
  그들이 카불에 처음 왔을 때, 라일라는 탈레반이 마리암을 어디에 묻었는지 몰라 괴로워했다. 그녀는 마리암의 무덤에 찾아가 머물다가 한두 송이의 꽃을 놓고 왔으면 싶었다. 그러나 라일라는 이제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안다. 마리암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그녀는 이곳에 있다. 그들이 새로 칠한 벽, 그들이 심은 나무, 아이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담요, 그들의 베개와 책과 연필 속에 그녀가 있다. 그녀는 아이들의 웃음 속에 있다. 그녀는 아지자가 암송한 시편, 아지자가 서쪽을 향하여 절하면서 중얼거리는 기도 속에 있다. 하지만 마리암은 대부분, 라일라의 마음속에 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천 개의 태양의 눈부신 광채로 빛나고 있다. (p.562)   
   

아픔이 대대로 이어지지 않기를 빈다. 잘마이는 결국 타리크에게 익숙해지겠지만, 그가 커서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또다시 비슷한 비극들이 일어나 그들이 절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개인의 잘못은 아니다. 누군가의 피와 눈물로 얻은 아름다운 희망을 밟고 살아가는 일. 개인의 선택은 아니다. 바꿀 수 없는, 바뀌지 않을 듯한 수많은 불합리한 체제 속에서 제도를 올바른 방향으로 바꿔온 건 결국 투쟁과 희망이었다. 마리암은 갔지만 라일라는 살아갈 것이다. 이 땅에서, 죽을 때까지. 아이들을 키우고, 사랑을 나누면서. 사랑은 그만큼 소중한 것이다. 사랑이 희생하게 하고, 사랑이 살아가게 한다. 사랑이 찬란한 태양이다. 사랑이 천 개가 될 때 찬란한 태양이 되어 소중한 것들을 지켜낼 것이다.  

여전히 전쟁중인 중동, 아프간 외 수많은 국가들. 무엇을 위한 투쟁이며, 또 전쟁인가. 그들이 자문해야 할 문제, 우리에게도 질문할 가치가 있다. 무엇을 얻기 위해 누구를 죽이는가. 결국 모두 행복해지는 길인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폐허의 잿더미, 그 속에 아직도 우리가 있다. 누군가의 희망을 절망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티끌처럼 작은 나조차도 반성될 만큼 소설이 처량하고도 아름답다. 선진국들이 품은 탐욕이 계속되는 한, 전쟁도 계속되겠지. 이슬람 문화도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여성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될 날은 언제일지. 지구촌만이라도 다같이 행복해지면 안되나. 곧 화성에서 외계인이 제 땅 내놓으라며 쳐들어올지도 모르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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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3 2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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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4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4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4 01: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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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 오브 라이프 - The Tree Of Lif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태초 내가 존재한 것은 아니다. 아빠와 엄마는 결혼 8개월 만에 날 낳았지만 난 정상적인 혼인관계에서 잉태된 허니문 베이비였다. 10월의 어느날이 예정일이었으나 그보다 앞서 나온 건 누가 말한 것처럼 엄마 몸이 약해서거나, 초산이어서, 또는 내가 빨리 나오고 싶어해서는 아니었다. 결단코 나는 이 세상에 더 빨리 나오고 싶었던 적이 없다. 내가 나올 시점을 정할 수 있었다면 나는 아마 태어나기를 포기하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주어지는 삶은 고통스럽고, 살아가는 일은 그보다 더 어렵고 힘드므로. 나는 아마도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생명의 나무, 번역 제목으로 <트리 오브 라이프>는 바로 그 지점, 나도 없고 당신도 없는 절대적 시점, 나는 없고 내가 잉태되지도 않은 바로 그 생명의 태초부터 시작한다. 시작줄기를 알 수 없는 폭포수와 원인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곳에서 서서히 이루어져온 화산폭발로 우주의 기원, 인간의 태초를 보여준다. 애초에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보여주는 영화다. 색감의 미학과 친절하지 않은 내러티브, 간혹 들어차는 생략과 여백의 아름다움까지 철저하게 계산된 영화다.  

느끼지 못할 뿐이지 영화는 분명히 드러냈다. 가야할 길을 명확하게 알고 걸어가는, 본인이 어느 지점에 얹힐지를 아는 영화다. 인간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왜 왔으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또는 언제부터 해왔는가. 시점에 관한 영화지만, 우주와 지구, 미래와 현재, 생과 사, 현실과 초월 등 이 모든 것들을 짚어내는 영화이면서도 동시에 어느 것도 불명확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시작부터 기이하고 갸우뚱한 초현실학적 화면으로 장면장면을 지루하게 이어져가던 영화가 어느새 아주 조심스럽게 우리의 존재이유를 묻는다.

성인 잭(숀펜)은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후 기억나는 어린시절과 기억나지 않는 어린시절을 동시에 떠올려 기억의 맨 처음으로 가는 타임머신을 탄다. 보는 우리도 동시에 올라탄다. 거기에 의식 강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오브라이언(브래드 피트)과 상냥하고 다정한 어머니가 있다. 보통의 가정, 보통의 부모. 보통의 시대. 잭은 본래 자신이 있던 곳에서 죽을 힘을 다해 헤엄쳐 그들의 첫 아이로 잉태된다. 문을 열어서, 넘지 못할 산을 오르고,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너서, 우주의 무한한 공간을 헤쳐 하필이면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될 사람에게로 온다. 그들의 자식이 된다. 이후 평범한 부모는 행복과 사랑으로 잭을 낳아 기른다. 노래를 불러주고, 안아주고, 키스하며, 나긋한 목소리로 귀에 속삭인다. 사랑스러운 아이야, 무럭무럭 자라라. 마치 나무가 커가는 것처럼 그도 자라난다. 쌔근쌔근, 아장아장, 뚜벅뚜벅. 동생이 생기고, 동생에게 빼앗긴 사랑을 샘내고, 동생을 주도하여 온 동네를 뛰어다닌다. 

아버지는 엄격하다. 그는 그가 아는 모든 것에 한해, 그가 보고 듣고 느낀 것 모두를 아들들에게 가르친다. 식사예절, 싸우는 방법, 상대를 제압하는 능력, 공놀이, 잡초뽑기, 나무 기르기, 말대꾸하지 않는 법. 아버지는 자신의 시행착오를 아들에게 물려주기 싫어 선택한 방법이지만 잭에게 이 모든 것들은 살아가는 데에 자신감을 잃게 하고, 반항기만 길러주는, 욕망을 누르기만 해야 하는 엄청난 감옥이 된다. 어느새 어린 잭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익숙하고 편안하지 않은, 능가해야 하고 짓밟고 싶은 반항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어느날 그가 직장을 잃고 그 커다란 날개를 꺾어버리기 전까지.  

영화는 줄곧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아들이 커가고 아버지가 늙어가는 동안 갓 심은 작은 나무도 함께 커간다. 뿌리를 내리고 커다란 심지를 박고 무성한 잎을 뻗어내며 치렁치렁 그늘을 내어줄 때까지 나무는 자란다. 생명도 자란다. 아들은 자라고 아버지는 늙어간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잭은 아들의 역할을 벗어나본 적이 없다. 내내 불안정하지만 한편으로 누구보다 더 순수하고 정 많은 아이로 자란다. 대부분의 이 세상 아들들이 그런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가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몰랐으나 자신이 아버지가 되었을 때 그는 이해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단 한 명의 아들이 된다. 아버지가 그랬고,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우주와 생명의 빈 공간에 계신 것은 역시 하느님, 신이다. 신은 모든 것을 주관하고, 아버지와 자식을 내려주며, 생명에 물과 사랑을 주어, 무럭무럭 크게 한다. 생명의 탄생은 나무의 생명과 같은 것.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주제는 '생명'이다. 아무도 의미없이, 이유없이, 노력없이, 이 세상에 온 사람은 없다. 모두 의미있고, 이유있고, 노력에 의하여 이 세상에 오는 것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아니,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잉태되기 전부터도 우리는 모두 예정되어 있던 생명이다. 하나하나 모두 소중한 존재들이다, 우리는. 비어있는 공간과 여백의 미를 우리의 상상과 생명의 존귀함으로 직접 채워야 한다. 그래서 난해하고 모호하고 신비로울 수 있다. 신비로움이란 감정은 애초 숭고함과 난해함 사이에 있다. 생명의 귀함을 각자 한 번씩 생각해야 하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보다 더 좋은 건 역시 작품의 아름다움과 낯섬을 경험하게 하는, 드라마를 SF로 승화시킨 감독이 빚어낸 영상, 즉 촬영기법에 있다.  

p.s.몇 년 안 본 사이 브래드 피트 참 많이 아저씨가 됐구나. 여전히 멋있지만, 그 멋짐도 숀펜의 카리스마에 눌리고, 아역배우의 뛰어난 기와 눈빛에 눌려서, 말이 권위적 아버지지 전혀 권위적이지 않게 느껴졌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대사없는 초반 30분과 후반 10분인데,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영화 평점을 바닥까지 내리고픈 관객들이 많은 걸로 볼 때, 이 영화는 상업영화 범주에는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될 것 같고, 2011년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임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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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10-12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내용은 완전 그레이트 대박 마음에 드는데요. 아이리시스님의 나레이션이 깔려 있는 듯한 영화 소개라 잘 읽고 봤네요. ^^ 이런 내용 전 참 좋아해요. 삶과 죽음에 대해 말이죠.
인간이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아 참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리고 알기도 힘들구요. 매일 현실의 눈 앞만 보이고 그것만 쫓아서 살다보면 언젠가 죽을 문턱에 와 있다는 사실이 참 허탈하기는 해요. 하지만 어떤 생사관을 지닌다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죽으면 과연 끝인가? 그럼 나는 왜 태어났는가?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왜 시작을 했는가 마치 뫼비우스의 끈처럼 생각은 그 끝을 모릅니다. 사실 이것이 제 인생의 연구 주제이기는 하지만 매일 쳐 들어오는 주민들을 상대하다 보면 하루를 바라보고 사는 하루살이 같다는 느낌을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어느 시점에서 아이리시스님의 서재를 알고 아이리시스님과 절친이 되는 이 만남과 인연...아~ 뭔가 신기하지 않습니까~~

아이리시스 2011-10-12 22:06   좋아요 0 | URL
루쉰님, 매일 쳐들어오는 주민상대라니, 이거 뭔가 되게 영화틱하잖아요.ㅜㅜ 저는 칸영화제 취향인가 봐요. 칸영화제 출품작들은 다 좋더라고요.ㅋㅋㅋ 제대로 개봉 안하는게 문제지만. 우린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태어났는데, 그 중에 우리가 만난 것, 그것도 서재에서 만난 건 더욱 더 신기한 인연이죠! 절친이 된 것도. 매일 전장에 나가는 루쉰님, 화이팅. 그래도 저는 야근하며 떡볶이나 피자 먹고, 커피나 주스도 마시는 생활, 그리워요. 진짜 시키면 무지 싫을 것 같지만요.(이런 이중성, ㅠㅠ)

삶과 죽음, 탄생과 소멸, 더 연구해요! 그리고 논문써요, 우리.^____________^

프레이야 2011-10-12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아주 기대중인데 아직 못 보고 있어요.ㅠ
브래드는 숀에게 밀렸군요.^^
전 '나무'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우주적인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님의 리뷰로 미리 보는 영화, 좋으네요.
아주 색다른 화법일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 2011-10-13 12:44   좋아요 0 | URL
'나무'가 이렇게 생명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그래서 간혹 나무무덤을 만들어주나 봐요. 정말 나무가 쑥쑥 커가는 장면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어요. 모든 것을 흡수하고 빨아들이니까요. 범우주적인 나무. 프레이야님 서재에서 제가 훨씬 더 많이 좋은 영화들 보죠. 좋았어요, 늘. 색다른 화법, 나중에 꼭 보세요.^^

근데 [레스트리스]는 개봉하는데 [멜랑꼴리아]는 개봉 안하나 봐요. 저는 트리에와 커스틴 던스트가 더 기대되는데..^^

stella.K 2011-10-13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제법 거창합니다.
혹시 부산영화제 상영작인가요?
글치 않아도 빵 피트 요즘 뭐하나 했더니 여기 나오는군요.ㅋ
숀펜은 턱이 너무 깍아지른듯해서 부담스럽긴 하지만
연기는 정말 잘하는 것 같아요.
빵 피트는 숀펜과 같이 출연만 안했어도 나름 빛났을지도 모르는데
선택을 잘못한 걸까요?ㅋ
대사 없는 초반 30분, 후반 10분이라...
굉장히 특이하면서도 견딜만한가 의문이네요.
이런 진지한 영화 나름 관심은 가는데,
실제로 보면 어떨지 살짝...?!^^

아이리시스 2011-10-13 12:39   좋아요 0 | URL
스물두살 때 <21그램>을 보러갔었는데 그때 숀펜을 알아서, 그런데 남은 안늙고 나만 나이 먹어요, 흑흑. 하하, 빵 피트. 제가 오랜만에 영화봐서 그런 줄 알았는데, 피트 정말 오랜만에 나온 건가요?ㅋ
근데 이 영화, 딱 영화제 영화예요. 비중으로 볼 때 피트가 주연이면 숀펜은 조연인데, 영화에서 둘이 만나지도 않고 만날 일도 없고, 맞대결하지 않아요. 그래도 내용 때문인지, 존재감 때문인지, 피트가 밀리는 느낌이예요.

이거 부산영화제 상영작 맞는데, 2주후 27일에 개봉해요.^^

페크pek0501 2011-10-14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어있는 공간과 여백의 미를 우리의 상상과 생명의 존귀함으로 직접 채워야 한다. 그래서 난해하고 모호하고 신비로울 수 있다. 신비로움이란 감정은 애초 숭고함과 난해함 사이에 있다" - 이 표현, 좋고(좋코)~~~

영화 리뷰 쓰기는 어려울 것 같아 저는 엄두도 못 내고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리뷰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 잘 보고 갑니다. ^^

아이리시스 2011-10-15 01:40   좋아요 0 | URL
책은 수준인데, 영화는 그야말로 취향 같아요. 대사가 없어도 영상으로만 전해지는 게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래서 함부로 추천은 못하겠어요. 그건 제 성격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본 걸 누군가에게 보라고 하고 막 그것에 대해 얘기나누는 취미는 제게 없어요.( '') 저는 항상 제가 모르는 글을 읽고, 모르는 책의 리뷰를 읽고, 모르는 책이나 영화에 대해 얘기해주고, 제가 안읽은 책이나 모르는 분야, 안본 영화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을 좋아해요. 오스트리아 빈의 빨래방에서 빨래가 돌아가던 한 시간 동안, 제가 유럽가기 직전에 봤던 빨래방을 배경으로 한 일본영화를 얘기하니까 친구가 유심히 들어주는 것 같은 것. 저는 그렇게 들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아요. 그래서 이야기할 거리가 생겨요. 공감을 요구하거나 내가 좋은 걸 강요하지 않게 돼요.

제가 보는 리뷰는 대부분 제가 읽지 않는 분야의 리뷰예요. 그래서 저는 리뷰 보는 것으로 만족하거든요, 언제나. 내가 읽어도 처음 쓴 다른 사람보다 잘쓸 자신 없어서.^^

주말 잘 보내세요, 페크님. 이 얘기하려고 너무 말을 길게..^^
 
[천 명의 백인신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천 명의 백인 신부
짐 퍼커스 지음, 고정아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그 사람들도 아무 잘못 없었어. 작년에 헨리 대위와 버펄로 사냥꾼들은 새파 강가의 남부 샤이엔 족을 급습해서 천막촌을 태우고 그 주민을 남김없이 죽였지. 갓난아기를 갓 불에 던지고. 군은 원하는 짓은 어떤 짓이나 다 해. 신병들을 갓 뽑아다가 겨울에 알지 못하는 적을 상대로 싸우면서 고초를 겪게 해봐. 겁에 질린 자들은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어. 특히 명령이 떨어지면." 

"인디언들이 죽이는 사람도 죄 없는 사람들이야. 결론은 늘 그렇지만 이 나라에는 인디언과 백인이 함께 살 수 없다는 거야. 한 가지 확실한 건 백인들은 물러가지 않은 거라는 거.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인디언들은 이 싸움을 이길 수 없다는 거지."
(pp.445-446)

 
   

 

 

비로소 빠져나오자, 내가 딪고 서 있는 땅이 한없이 초라하게만 보인다. 비정성시(非情城市). 여기는 오색찬란한 슬픔이 깃든 비정하지만 성스러운 대한민국이고, 다녀온 곳은 1800년대 후반의 인디언 본거지다. 인간은 본디 질기디 질겨 풀 한포기 나지 않는 땅에도 기어이 뿌리 내리고 만다 했었나. 이미 결론 내어진 싸움을 두고 오래 애를 태웠더니 먹먹해져 가슴을 쓸어내린다.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를 때 언제였는지, 어느새 휑하다.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차고 나간다. 좋아하지 않는 서부 영화 한 편이 간절해진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르고, 계절이 바뀌고, 세대가 교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온한 대평원의 쨍쨍한 태양 아래 보송보송한 발바닥으로 하염없이 치달린 것마냥 피곤하다. 모두 처연한 꿈결처럼 아련하다. 가만히 인물을 하나씩 입으로 불러내본다. 아, 이런 삶도 있었지. 표면적으로는 아메리칸 인디언 멸망사, 속은 한때 거대했던 미국 역사를 아우르는 들장미 같고 들풀 같은 백인 여자들과 강인하고 올곧던 샤이엔 족의 찬란한 일대기. 오랫동안 영광스럽게도 읽었다. 참 먼 길을 걸어왔다. 저절로 고개 숙여질 만큼 앙상하고도 힘찬 길을. 그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보름달 아래 미친 듯이 휘몰아친 우리 모습은 얼마나 요란했을까. 왈츠와 지그와 폴카, 그리고 예쁜 프랑스 처녀 마리 블랑슈의 캉캉까지, 어떤 춤으로 시작했건 상관없었어. 모든 동작이 점점 빨라져서 마침내 색깔과 동작과 소리가 하나로 뒤엉켜 버렸으니까. 사람들은 번식기 새들 같았어. 깃털을 일으키고, 수컷은 가슴을 부풀리고, 암컷은 뒤집힌 엉덩이를 공중으로 쳐드는. 우리는 앞뒤로 왔다갔다 하고 또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었어. 음악 속에는 뇌조의 북 치는 듯한 울음이 들리고 지구의 규칙적인 박동이 울렸으며, 노래 속에는 천둥, 바람, 비의 소리가 들렸지. 이건 대지의 춤이었어. 하늘의 신들은 자기 창조물들을 보며 아주 즐거웠을 거야. (p.198)

 
   

 

 

샤이엔의 '온화한 주술' 족장 리틀 울프는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세상을 뒤흔들 만한 제안을 내놓는다. 천 명의 백인 신부를 선물로 주면 말 천 마리를 주겠다는 것. 철저한 모계사회이던 샤이엔 족은 백인 사회와의 결합을 위해 본인에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제안한 것이다. 한 마디로 정략결혼. 당황하던 미 행정부의 어이없음도 잠시, 놀랍게도 제안은 받아들여진다. 행정부는 이름하여 '인디언 신부 계획'의 물밑 작전을 시작하며 자원자가 부족할 경우 감옥, 감화원, 채무 감옥, 정신병원의 여자들에게 완전한 사면과 무조건 석방을 약속하며 채우기로 한다. 속셈은 단 하나. 여자들이 인디언족의 삶을 완전히 교화시켜 놓는 것. 리틀 울프의 제안이 있은 지 불과 6개월, 네브래스카 준주에 위치한 캠프 로빈슨으로 떠나는 기차에는 시카고 북쪽의 한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던 메이 도드가 친구 마사와 함께 타고 있다.    

 

이야기는 메이의 일기로 진행된다. 인디언들을 만나러 가는 길, 만난 이후, 샤이엔의 여자로 사는 삶, 그 이후. 비교적 담담하고 못견디게 자세하여 종종 목이 메일 지경이다. 대자연을 이토록 생생하게 복원한 것도, 저마다의 캐릭터와 얽힌 사연을 이다지도 매끄럽게 연결시킬 줄 아는 작가는 이미 넘버 원. 제안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제안을 수용한 것은 허구이기에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메이는 시카고 대부호의 딸이지만 별볼 일 없는 남자와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도덕성 상실'이란 진단을 받고 가족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수용된 후 지옥같은 삶을 살았다. 다시 아이들을 만나 자유를 되찾을 수 있는 길이란 인디언 신부 계획 뿐이라는 생각으로 지원한다.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해야 할 말을 참지 않으며, 때에 따라 지혜롭고 영리한 백인 여자 메이는 이 거대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파견된 부대의 존 버커 대위와 사랑에 빠진다. 인디언에게로 인도되는 바로 그 짧은 순간에도 사랑은 싹텄고, 첫날밤은 치뤄졌고, 일생일대 선택의 기로에 서야 했지만 결코 약혼녀 있는 독실한 가톨릭교 대위를 곤란하게는 하지 않았다. 메이는 존을 사랑하는 만큼 자유를 사랑했고 그래서 그의 곁을 떠나 백인 신부의 길을 계속 간다. 마침내 샤이엔 족과 조우했을 때에 메이는 첫 눈에 리틀 울프의 세 번째 부인으로 낙점된다. 프라이버시라고는 전혀 없는 부족 생활, 가족 공간 틈에서 탄탄한 근육에 말수가 적은 진중한 남자 리틀 울프와의 접촉을 간절히 기다리던 차, 백인 여자 메이에게 꿈같고 보석같은 시간이 찾아온다. 

 

   
 

나는 깊은 잠에 빠져서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어. 아니면 꿈같은 일이 일어났어. 꿈이었을 거야. 남편이 나와 함께 천막에 있었으니까. 그는 아직도 소리 없이 춤을 추고 있었어. 모카신을 신은 발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부드럽게 오르락내리락 했고, 모닥불을 돌며 조롱박 딸랑이를 흔들었는데 그것도 소리가 나지 않았어. 남편은 그렇게 혼령처럼 춤을 추며 내가 누워 자는 곳을 빙글빙글 돌았어. 나는 점점 몸이 달아올랐어. 그의 춤을 보니 배 속이 짜릿해지고 가랑이 사이에서 욕망이 간지럽게 끓어올랐어. 꿈에서 나는 앞가리개 천 밑에서 그의 남성이 뱀처럼 부풀어 오르는 걸 보았어. 그는 춤을 추었고 담요에 배를 대고 엎드린 나는 그 자리에서 폭발해 버릴 것처럼 얕은 숨을 쉬었어. 내가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그는 비켜나서 내 뒤로 오더니 이제 벌거벗은 내 엉덩이에 깃털을 댄 듯 나를 간지럽혀서 나는 더욱더 흥분했어. 그런 뒤 나는 엎드린 채 엉덩이를 들어올려 나를 바쳤고, 간질거림이 거세어지자 다시 담요에 납작 엎드렸어. 몸속을 채우고 싶은 열망이 고통스러울 만큼 커졌지. 하지만 그는 계속 내 뒤에서 소리 없이 발을 들었다 내렸다 하며 가볍게 춤을 추었어. 꿈 속에서 내 목에서 어떤 소리가 났어. 다른 사람이 내는 것 같은 소리, 내가 들어 본 적 없는 소리였고 나는 엉덩이를 더 높이 올려서 천천히 돌렸어. 그건 자연 현상이었어. 다시 깃털이 다가오더니 마침내 살과 살이 가볍게 닿았고, 이빨이 목을 가볍게 물었어. 따뜻하고 건조한 뱀이 엉덩이에 내려와서 다리 사이에 놓인 채 박동치다가 내 다리를 벌리고 내 몸을 열더니 천천히 고통 없이 들어왔다가 물러났고 다시 들어왔다가 물러나서 나는 그것을 영원히 잡아 삼켜 버릴 듯 몸을 뒤로 밀었어. 그런 뒤 그것이 내 안으로 깊숙이 들어왔고, 나는 목에서 다시 이상한 소리가 나면서 몸이 덜그럭거렸고, 더 이상 독립적인 의식을 가진 개체가 아니라 무언가 더 오래고 원시적이고 진실한 것의 일부가 되었어. 동물처럼, 이라고 존 버크는 말했지. 그 말뜻을 알았어. 동물 같았어.  

거기서 꿈은 끝났고 새벽에 깨어 보니 머릿속에 다른 기억은 전혀 없지만 나는 여전히 담요에 엎드려 있고, 여전히 사슴 가죽 혼례복 차림이었지. 나는 그것이 꿈, 내가 경험한 적 없는 에로틱한 꿈이라는 걸 알아. 하지만 마술처럼 내 안에 아기가 자라나고 있다는 것도 알겠어. (pp.200-201) 

 
   

 

인디언 남자든 백인 여자든 흑인 여자든 상관없이 결합은 진정 아름다운 것. 꿈결 같은 기억처럼 몸안에 남아있는 느낌. 

 

미개인 사회의 규칙. 여자와 남자의 역할 분리. 남녀차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수없이 많은 것들 사이에서 메이는 아주 쉽고 빠르게 인내하고 변화시킨다. 메이 뿐 아니라 백인 신부 계획에 참여한 수많은 여자들 역시, 시행착오와 부딪침 속에서 깊은 평화와 만족감을 느끼며 샤이엔 족의 삶에 적응하려 애쓴다. 이들의 삶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부조리한 단어 하나로 이들을 묶어둘 수 없다.

   
 

'나는 얼마나 기이할 정도로 행운아인가.' 

그렇다, 미개인 사회의 그 모든 낯섦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새 세상은 오늘 아침 말할 수 없이 달콤해 보였다. 나는 원주민들이 대지와 전원에 묻혀 사는, 교묘하고도 완벽한 방법에 감탄했다. 그들은 봄풀처럼 이 평원 정경의 일부인 것 같다. 그림의 뗄 수 없는 일부로 여기 속해 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p.210) 

 
   

시간과 사랑. 그들을 가까워지게 하고 한 가족으로 묶는 끈은 단 두 가지 뿐이었다. 진심으로 두 가지만 있으면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리틀 울프에 대한 나의 감정이 존 버크에 대한 감정과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존 버크와의 일은 내가 평생 겪어 본 적 없는 열정, 지성과 육체, 몸과 마음, 영혼의 결합이었다. 나는 세 번의 사랑으로 벌써 세 번의 인생을 산 것 같은 느낌이다. 첫 사랑 해리 에임스와 나눈 불꽃같은 육체적 사랑은 정신병원 독방 생활의 어둠 속에 꺼져 버렸다. 그런 뒤 별똥별처럼 환상적인 새 사랑이 그것을 다시 점화시키고 지나갔다. 그렇다, 해리 에임스가 내 여성성을 끌어낸 예측 불허의 밝은 불꽃이었다면, 존 버크는 강렬하게 타오른 나의 별똥별이었다. 그리고 이 남자 리틀 울프는 내게 온기와 안전을 주는 오두막 모닥불이다. 그는 나의 남편이고 나는 그의 착하고 충실한 아내가 될 것이다. 나는 그의 아이들을 낳을 것이다. (p.223) 

 
   

 

사람과 사람, 남과 여, 어른과 아이, 어머니와 아이, 친구와 친구. 모든 관계들이 아름답지만 사랑이 제일이다. 사랑으로 못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메이는 따뜻한 마음과 충실한 의지와 끊임없는 노력으로 모두를 진정시킬 줄 아는 능력이 있다. 백인 여자와 인디언 남자의 오붓한 동거는 샤이엔 족에게 꽤 낭만적으로 보였다. 이때까지는. 마시는 알코올. 술. 술이 들어오기 전날까지는. 술만 마시면 미쳐버린다 했다. 신도 주술사도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했다. 버펄로를 잡기 위해 늑대를 죽일 수 있는 약을 놓던 샤이엔 족이 되려 약을 먹고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그들이 알아차리는 사실과도 같다. 샤이엔 족을 샤이엔 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늑대가 아니라 술, 백인 사회 또는 문명 사회가 유통시킨 바로 그 문명의 알코올이었음을. 늑대는 샤이엔 족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그들은 당장 늑대잡는 약 사용을 중단한다. 그들에 의하면 자연은 어떠한 경우에도 위대한 것이다.

백인과 흑인의 사이만큼이나 백인과 샤이엔 족의 사이 역시 멀었지만.  

   
 

"망할 놈의 술만 빼면, 아이들이 살기 좋은 곳이야. 처음에 이 사람들한테 납치당했을 때는 죽을 만큼 괴로웠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내 본래 인종은 거의 잊었어. 꼭 동화 속을 사는 것 같았지. 그리고 그 동화를 깨뜨리는 건 백인의 세계야. 어젯밤에 그런 일이 일어난 거지. 내 경우는 샌드 크릭에서 그랬고." (중략) 

"여기 생활이 그렇게 좋았다면 왜 백인 세상으로 돌아갔니, 거티?" (중략) 

"하지만 내가 백인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극복할 수 없기도 했어. 그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지." (p.276) 

 
   

동화 속 세계를 깨뜨리는 건 역시 백인의 세계. 그건 분명한 말이기도 했다. 미국 지질학자들이 인디언들의 땅인 블랙 힐스의 금광에 대한 희망적인 보고를 가지고 돌아오면서 채굴꾼들은 모여들기 시작했고, 대중들의 인디언 몰아내기 요구가 먹혀 들어갔다. 백인 개척민들의 안전을 위해 블랙 힐스에서 인디언들을 몰아내는 것. 그 작전은 은밀하고도 어김없이 진행된다. 마치 본래 자신들의 땅인 듯. 약속도, 대화도, 설득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위 또는 마구잡이 식으로.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이주시키려는 존 버크 대위와 반항하는 메이의 다툼은 이미 이 소설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예감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기대했다. 인디언들의 일상적 터전과 소소한 행복이 유지 되기를. 순진한 바람은 소설 속에서조차 오래 가지 못했고, 그들은 내가 아는 한 가장 비참하고 어이없는 방식으로 도망하거나 배반하거나 죽어갔다.  

 

하지만 그들의 자식들은 살아남아 미래를 바꾸어 나갈 것이다. 화해를 청할 것이고, 소통을 원할 것이고, 수용하는 법과 거래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메이의 일기는 반 세기 동안 오래된 빛에 갇혀 있었다. 메이의 딸이 아들을 낳고, 아들이 또 아이를 낳을 때까지. 그녀가 증조 할머니라고 불릴 때까지. 메이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용기있고 당차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백인 여자는 우둔하고 잘난 척만 하면서 남자 밝히고 쇼핑중독자일 거라는 편견을 단번에 날려주는 오래된 신 백인여자라고 해도 좋겠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장소에 적응하고, 보지 못하고 겪지 못한 생활문화에 살며시 내려앉는 것. 더불어 후회와 원망조차 하지 않는 것. 그녀는 예뻤다. 총명하고 똑똑하고 지혜로웠다. 지금 내 인생에서 그녀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생각나지 않는다. 이미 그녀가 알고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의 나 또한 변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오늘 아침 차가운 바람 속을 달리면서 이들에 대한 나의 충성은 내 가슴속에서 뛰는 심장에 의해 봉인되었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원했다 해도 내가 변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p.379) 

 
   

그래, 맞다. 심장 속에 봉인되어 있는 각인 같은 것이다. 변화라는 것은 웬만하면 자발적, 순종적, 점진적인 게 낫다. 모두 안고 갈 수 있어야 하고,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녀에 의하면 의지여야 하고, 나에 의하면 '그렇게 되어버리는 행위'여야 한다. 즉, 녹아들어감 또는 흡수. 흡수라는 단어 참 좋다. 튀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도 마음에 든다. 인디언들의 세계는 내게조차 정말로 동화 속 같았다. 대평원을 질주하는 기분과 한없이 바다 속으로 침잠하는 기운이 동시에 들곤 했다. 광활한 땅에 자신들만의 뿌리를 세우고 싶었던 인디언들에게 평화를 선물하노니 부디 편히 잠드소서. <천 명의 백인 신부>는 촌스럽고 칙칙한 표지에 비해 정말로 흡인력 높은 한 편의 서사극이다. 대장정의. 아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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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1-09-27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나는 절대로 ( 정말 절대적으로 ) 완독하지 못할 듯 한 책이예요 . 헤 .
 굿모닝 !
 

아이리시스 2011-09-27 12:50   좋아요 0 | URL
두 번은 읽고 싶지 않은 책이고, 500페이지나 되고 또, 피하고 싶은 역사죠. 헤.
굿 에프터눈 !

알로하 2011-09-27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간만에 와봤는데 댓글 달아주셔서 마음이 따뜻했어요!ㅋㅋ 블로그 관리 전혀 안하니까 혼자하는 느낌으로 하거든요. 이 책은 리뷰만 봐도 압도적이네요. 인디언과 관련된 내용은 항상 맘이 아픈데 이 책은 좀 다른 느낌으로 볼 수 있을까요?ㅠㅠ

아이리시스 2011-09-27 18:40   좋아요 0 | URL
그래서 자주 안오신 거군요. 소설 리뷰가 계속 올라올 것만 같은 기분에 혼자 들락날락 했는데 이제야 나타나시고, 알로하님. 이름도 예쁜 알로하님. 자주 와요, 알았죠?^^

혼자하는 느낌으로도 좋아요. 인디언의 역사는 슬프지만 이 책은 멸망이 아니라 녹아들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슬프지만 아프지 않아요. 출판사에서 더 예쁜 표지로 본격 마케팅을 했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서사가 살아있고 마음도 건드리는, 다수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근사는 영화 한 편 본 것 같거든요.^^

2011-09-27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9-27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책이 이런 내용이었군요. 천 명의 백인 신부라니.
왠지 묵직하지만, 말씀하신대로 메이는 정말 지혜롭고 사랑스럽네요.
그리고 어쩌면 인디안들의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순리적인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대평원을 질주하는 기분> <한없이 바다속으로 침잠하는 기분>이 뭔지 조금 알 것 같아요.
옛날에 고등학교 때인가. 러시아 무슨 제국의 드라마인지 영화를 본 적이 있었어요.
광활한 땅을 배경으로 하는 그 몇 부작의 이야기가 저로 하여금 몇 장의 일기를 쓰게 만들었던 기억이 나요.
아..그리고 펄벅의 <대지>를 읽었을 때도 그런 느낌이었어요.

아이리시스 2011-09-27 18:47   좋아요 0 | URL
<대지>랑 비슷한 느낌일 거란 거 알 것 같아요. 영화로는 <러브 오브 시베리아> 같은 느낌이고 음.. 잘 기억나지 않아요.ㅜㅜ 예전에는 스케일이 큰 이야기들이 좋았는데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다가 이 소설은 좀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별 다섯 개예요. 메이는 정말 사랑스러운 여자예요. 고작 스물 다섯 살이었을 뿐인데도!

인디언 멸망사 인문학책 한 권 있는데 그거 읽을까 하다가 제 관심은 언제나 단편적이니까 그냥 또 휙- 하고 날려버렸어요, 현맘님. 하하.

2011-09-27 1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1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1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1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9-27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정성스런 리뷰네요. 읽으면서 밑줄 긋기까지 일일이 하시는 거에요? 저는 게으르고 귀찮아서 밑줄 긋기 같은 거 안 하고 휘리릭 넘어가게 되는데 ㅎㅎ... 저 책 표지 보고 파울로 코엘료의 표르토벨로의 마녀인가요? 그 책이 생각났어요. 읽다 말았지만... ( '')~ 아참, 아이리시스님, 저 신간평가단 합격했어요! 호호호, 뭔가 책임감이 불끈 솟는데요? 아이리시스님은 지원 안 하셨어요?

아이리시스 2011-09-27 19:54   좋아요 0 | URL
저는 리뷰쓸 책은 포스트잇 좀 붙여놔요, 수다쟁이님. 게으르고 귀찮아서 엄청난 인내와 노력을 요구하는 행위거든요. 그래도 이제 좀 자연스러워졌어요. 사실 이렇게 쓰면 뭔가 많이 쓴 것 같지만 내용이 많이 띄엄띄엄해져요. 이게 더 정성스러워 보이지만 더 쓰기 쉬운 거예요.

신간평가단 소설분야 됐어요? 축하해요! 나는 했을까요, 안 했을까요?ㅋㅋㅋ 이따 보면 알겠죠.^-^

참, 수다쟁이님한테 보여줄 사진! 이게 여기랑 똑같은 블로그인데, 사진이 안 퍼와져가지고. 선물이에요.ㅎㅎㅎ (진짜 실망하지 말기!)

http://blog.naver.com/nmk0827/130070408438

비로그인 2011-09-27 21:57   좋아요 0 | URL
음..... 저 실망 안 했...어.. 요... ㅋㅋㅋㅋ ( '')~
가장 큰 용기는 진실과 직면하는 거에요. 정말 맞는 말이네요. 어렵게 들리는 말이고.
수잔 서랜든이 탭댄스 추는 장면이랑 마지막 미치와의 여행 장면은 잊혀지지 않을 거에요.
오늘은 할 일도 많고, 일찍 자야겠네요. 행복한 꿈나라 여행 되세요, 아이리시스님!

아이리시스 2011-09-28 00:06   좋아요 0 | URL
아........... 실망했구나. 그래서 일찍 자는구나. 미안( '') 담에 좋은 선물 줄게요. 하하하.

페크pek0501 2011-09-27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 명의 백인 신부>는 촌스럽고 칙칙한 표지에 비해 정말로 흡인력 높은 한 편의 서사극이다. " 흡인력이 높다니 읽고싶어지네요. 리뷰를 봐서도요. 그런데 500쪽이라...

오늘 알라딘에서 구입한 책 세 권이 배달되었는데, 그중 한 권이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이에요. 이게 700쪽이 넘네요. 난 요즘 게으름뱅이인데... 이걸 얼마 만에 읽을지, 내가 궁금해져요. ^^^ 그래도 책이 배달되어 오늘 엄청 행복했어요. ^^^

아이리시스 2011-09-28 00:06   좋아요 0 | URL
<도덕감정론>을 리뷰도서로 받을 뻔 하다가 다른 조라서 안 받은 적 있는데 그때 저한테 온 책도 제게는 충분히 버거웠지만, 굉장히 유익할 것 같고 또 버거워 보여요. 하지만 좋은 책 같아요. 언급되는 걸 많이 봤는데 내용에 혹했어요. 이야, 부지런히 읽으시고 저 가르쳐주세요.^-^

아메리칸 인디언을 다루는 영화 많잖아요. 그래도 백인 여자의 인디언 문화체험 일대기는 생소해서 재밌어요. 전체 틀이나 줄거리는 새로울 게 없을 지도 모르지만 작가의 자연묘사가 워낙 뛰어나요. 행복한 페크님, 굿나잇!

페크pek0501 2011-09-27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추천을 눌렀는데 왜 10에서 12가 될까요? 두 개가 추가되는 게 신기하다는 ...^^^

아이리시스 2011-09-28 00:05   좋아요 0 | URL
다른 분이랑 동시에 눌렀거나, 카운트가 늦게 뜨는 걸까요? 추천버튼은 아이피가 같으면 두 번 안 되는 것 같던데.. 어쨌거나 페크님이 두 번 추천해주신 거^^ 하하.

2011-09-28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8 1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1-09-2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거 완전 저를 위한 리뷰예요. 혼자만의 착각이라해도 할 수 없어요. 도서관 다녀오는 길에 클릭했다가 걸으면서 계속 읽었다는!! 제가 원래 이동 중에는 뭘 안 읽는데(멀미나서요) 이 리뷰는 도저히 중간에 끊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렇다고 꼭 책을 읽어보겠다는 약속은 아니라는거~^^;;

아이리시스 2011-09-28 19:17   좋아요 0 | URL
제가 포핀스님 위해 쓴 거예요, 이제 알았구나. 아하하. 도서관에 다녀왔어요? 어떤 책 대출해왔어요? 책 사고 싶은데 집에 책 많아서 그냥 있는 거 읽을래요. 가을 도서관은 청량할 것 같아요. 여기서 제일 가까운 도서관은 대학도서관이라서. 거기 열람실은 일반인이 들락날락 거려도 되는지 어쩐지 잘 모르겠어요. 대출 가능한 도서관은, 우리 집에서는 너무 멀거든요. 저는 너무나 게으르고. 책은 무겁고.

포핀스님도 메이의 매력과 광활한 자연에 푹 빠진 거예요. 어떡하지.. 아아, 이 리뷰는 도저히 끊을 수 없었구나, 포핀스님에게. 항상 고맙습니다.^^;

lazydevil 2011-09-29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없습니다. 무슨 말을 더 덧붙이겠어요^^;

아이리시스 2011-09-30 02:13   좋아요 0 | URL
제가 좀 호들갑일 수도 있겠어요. <늑대와 춤을>이나 <라스트 모히칸> 같은 영화를 못 봤어요. 서부영화를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왜 그 영화들이 나와야 되는지도 몰랐구요. 어쩌면 이 영화들이 제가 말한 이 광활한 자연, 인디언 문명사, 인간과 인간의 소통. 이런 것들을 두 시간 만에 아주 잘 보여줄 것 같기도 해요, 레이지데빌님. 그럼 저는 완전 호들갑에 뒷북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도 이 책은 정말 좋았어요. 추천할 정도인지는 모르겠는데, 제게는 너무 좋았어요.^^
 

올초, 또는 지난 겨울.

추석쯤 상견례 하고 날 잡을 거야,

말했던 그녀는 그즈음 심심하면 거제로 내려갔다. 사랑에 빠졌을 때 친구 따위는 아웃오브안중 되는 거 그거 여자라면 대부분 알 만큼 안다. 나도 당연히 안다. 맹세코 그래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당하는 기억과 상처주는 기억은 원체 다른 법이라 장담할 수는 없다. 처음에는 주말을 보내고 올라오는 낭만 데이트였다가 점점 부산 다녀왔어 할 정도가 되었고, 꼭 그래서는 아니라도 얼굴 못본 지 한참이나 되었다. 사는 게 원래 그렇다. 나이 들면 저마다 감당해야 할 무게가 너무 무거워 친구를 일으켜 세울 힘이 종종 부족해진다. 우린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죽을 때까지 서로 일으켜주며 평생 갈 수 있을까. 언젠가 우리도 제 무게마저 감당못할 날들이 오겠지. 저마다의 행복 속에서 친구의 서글픔 따위 까맣게 잊는 그런 날이 올 수도 있겠지. 살아가는 일은 그런 거니까.   

선착장에서 배로 한 시간 반이 걸린다며 몇 번이나 전화를 했다. 대단한 정성이라며 나는 종종 비웃었고,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지치지도 않았다. 사랑의 이름으로 못 할 일이 없다며 되려 행복해했다. 니가 웃으면 나도 좋아. 정도는 아니지만 아파하는 모습보다는 지금이 낫다고 말해주었다. 여기 공기 좋으니까 내려와, 거제일주 하자. J랑 같이 와도 좋아. / 됐거든.  

 

당시 우린 밥먹듯 통화하며 서로의 일상을 보고하는 사이였는데 때로 떨어져 있어야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이상한 사이이기도 해서, 아무도 없는 집에서 뒹굴거리며 떡볶이에 맥주 마시다가 <귀여운 여인>과 <로마의 휴일> 보며 질질짜는 짓 따위는 안해도 되었다. 가끔은 했는지도 모르지만. 다행이었다. 내 생각에 그건 우리 청춘에 대한 마지막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린 아무리 사랑에 상처 받아도 로맨틱한 프로포즈 받고 예쁜 드레스 입고 멋진 남자와 결혼하고 싶었다. 바로 그 멋진 남자에게로 시집가고 싶었다. 그런 바람 때문에 여전히 두 영화가 적어도 내게 낭만적임 또는 로맨틱함의 절정으로 남아있는지도.(^^) 그녀에게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누가 시집을 가거나 말거나, 다 잊고 시험에 몰두했는데 갑자기 기억난 건 이 사진 때문이다. 영화를 뒤적거리는데 사진이 나왔다. 얜 왜 예쁜 얼굴을 안 찍고 뒷모습을 찍은 걸까. 첨에 든 생각은 이거였고 이후 좀 더 농도 다른 생각이 몰려왔다. 이건 작년 사진도 아니고 아마도 더 이전 사진일텐데 그러니까 지금보다 몇 살 더 어렸을 때일텐데 나지만 전혀 나 같지가 않다. 팔다리 길고 손가락도 길고 볼륨 별로 없는 게 나 맞긴 맞는데 사진 속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꿈을 꾸었는지, 2년 뒤 이런 생각을 할 거라 예상했는지 전혀 모르겠다. 한 살 더 어릴 때가 예뻤구나. 온누리 여자의 마음이란 이런 것. 물론 과거의 나보다 지금이 더 나답구나 싶은 여자도 있고 과거따윈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나는 지금이 예뻐. 라는 여자도 당연히 있겠지만. 나는 그때 참 예뻤구나. 더 어릴 때는 더 예뻤겠지. 어른들이 젊은 사람을 보면 내가 볼 때 별로 예쁘지도 않고 딱히 변함 없는데도 어째서 예쁘다고 하는지 이해를 못했는데 나 요즘 그런 거 느끼는 스물아홉 증후군앓이 중. 이건 어쩌면 평생 직장 찾는 취업 스트레스 보다 좀 더 심각한 문제일지도 몰라. 취업은 고작 시간을 팔아 돈을 사는 일에 불과하지만(꿈도 사고) <그때 참 예뻤구나>의 문제는 존재 자체의 심오하고 찬란한 문제이기도 하니까.  

 

   

 

사진은 그녀가 찍어주었다. 몇 장은 찍히는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멍청한 표정으로도 찍혔다. 신나서 이 옷 저 옷 입어보는 중이었지 싶은데 아마 나도 모르는 새 마네킹 취급을 당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디카가 내꺼였으므로 사진은 고스란히 내게 남아있다.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당장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태지만 전화하면 목소리를 들을 수는 있겠지. 어쩌면 전화번호 바꿔버렸을지도 모르지만. 내일 전화해야지. 친구야, 시집 가도 안 미워할게. 사랑해줄게. 너는 사랑스러운 아이니까. 어느 남자에게나 넘칠 만큼 사랑받아도 괜찮을 만큼.   

 

읽다 만 책 속에 보통이 있었다. 읽다 만 책이 너무 많아서 쌓고 또 쌓고 또 쌓여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몰라 몽땅 안 읽어본 책 취급하기로 맘먹는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안면 없는 책이 될 것도 같다.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의 재출간본. 제목을 왜 바꿨을까. 5초 정도 생각하다 패스한다. 배경 일일이 신경쓰는 타입 아니고, 어차피 읽지 않았고, 소장하지 않아서 문제될 게 없다. 오래 전에 받았고 그보다 덜 오래 전에 우연히 읽기 시작했는데 끝을 보지 못했다. 사랑에 시간을 비워두지 못할 만큼 늘 맘이 급하고 예민한 상태였기에 사랑노래가 자주 지겹고 애석하게 느껴졌다. 키스는 더 그랬다.  

대학 때 참 예쁘고 똑 부러지던 동생이 있었다. 같은 과 재학중 수업이 같아 함께 구내식당과 매점, 캠퍼스와 도서관, 강의실을 누비며 그 아이는 말했다. 좋아하는 남자가 여행을 가자는 바람에 레이스 달린 예쁘고 야한 속옷 세트를 샀어요. 당시 스물 둘. 자기와 나이 차가 좀 있는 남자여서 어린 애처럼 보이기 싫었다고 했다. 여자로 보이고 싶어 준비해갔지만 남자는 사랑을 나눌 생각이 없더라고도 했다. 지켜주고 싶다나 뭐라나. 그녀는 자신이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상처 받았다고 했다. 정말 좋아했구나. 내가 말했다. 언니 그거 알아요? 키스만으로도 젖게 만드는 남자. 자기가 좋아하는 그 남자가 그만큼 키스를 잘한다는 얘기였겠지만 그건 굉장히 뭐랄까, 다른 사람은 느껴보지 못한 엄청난 느낌을 느껴본 어린 여자가 말하는 거대한 고백처럼 여겨졌다. 나도 어렸는데 뭘 얼만큼 알 수 있었을까. 남자들에게 말해주어야 하나. 사랑하지 않으면 여자에게 키스를 해서는 안된다고. 그 키스 한 번이 당신을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폭풍같이 커다란 늪일 수도 있고, 그녀를 죽고 살릴 수도 있으며, 실제로 그애는 죽고 싶어했다고.   

 

물론 그애의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 키스만으로도 여자를 젖게 만드는 남자가 스물 두 살의 어린 여자애를 사랑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나누는 말들에 대해서는 기억이 전혀 안나지만 키스라는 단어만 생각하면 종종 그애 생각이 난다. 예쁘고 사랑스럽고 똑똑한 여자애였다. 자유분방해 보이면서도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숨길 줄 모르는 아이라 말은 안했어도 속으로 내가 내내 걱정했었다는 걸 그애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졸업식에서도 못 봤고 이후로도 연락을 못했다. 연락은 물론 인연도 끊어졌다.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보통씨, 그렇다면 나를 위해 쓴 책이란 말인데 주제가 점점 삼천포로 가고 있다는 생각 안들어요? 어쨌거나 읽지 않아도 모아온 당신이니까 이번에도 모아두고 나서 읽어볼게요. 고마워요. 나를 위해 종교를 말해주어서.( ") 

어차피 당신이 하는 모든 일들은 나를 위한 거겠죠.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이렇게 믿고 싶다. 특히 상대가 남자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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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6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6 1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9-16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대박이다.... 아이리시스님 얼굴 봤네,
어우 청순에 미인형, 내가 완전 부러워하는 형이잖아요. 팔뚝도 가늘구, 난 그게 젤 부러워요, 홍홍.

어릴때는 정말 친구에게 신경쓰고 힘든 사람에게 신경쓸 에너지가 있었죠,
나이들면서 확실히 각박해지는거 같아요, 그래도 잘 늙으면 어릴 때보다 더 현명하고 따스하게
사람들과 보듬고 지낼 지혜를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고민 중이예요. 그런거 같아요,
나이 들면서 같은 나이라도 엄청 동안과 노안이 있는 것처럼, 마음도 동안과 노안이 있지 않을까...

동안과 노안이란 표현, 조금 어설픈데 무슨 말인지 내맘 잘 알자나요, 아이리시스님? 쪽~~~~~~~~~쪽쪽쪽쪽
(뽀뽀 백번 해도 감사한 마음 다 표현못 할 나의 예쁜 아가씨~)

아이리시스 2011-09-16 13:04   좋아요 0 | URL
마고님, 안녕. 페이퍼 왜 안쓰는 거예요, 버럭!! 인사시기를 놓쳤잖아요. 사진이 예뻐서 저 때의 내가 너무 부러워서 안 올리고는 못 배기는 간절함, 그런 게 문득 솟아났어요. 용기도 났어요. 그리고 저 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르니까요. 히히. 저 팔뚝 안 가늘어요. 지금을 보여주고 싶다, 진짜..^^ 그런데 손가락도 길고 팔다리도 긴 편이라 많이 먹고 들어가는 편. 갑자기 자뻑모드 -_-;; 나라도 나를 이렇게 대접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변명모드 -_-;;

공감해요. 나이 들면서 같은 나이라도 엄청 동안과 노안이 있는 것처럼 마음도 당연히 있죠. 그리고 그 마음이 같은 나이임에도 동안과 노안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싶어요. 마고님 보면 생각나는 건데 추석연휴 끝나자마자 수요일에 폭락했던 장이 어제,오늘 큰 폭 올라오고 있어요. 거참, 저는 이제 손 뗐는데 남 좋은 일 보고 있는 기분도 썩 나쁘지 않네요. 어차피 정글싸움이기도 하고 말이죠. 히히. 저 올해 많이 크고 있어요.

나의 예쁜 아가씨~ 호호호호. 완전 행복해요. 뽀뽀 백번 해줘요. 기다릴게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좋은 하루 되세요.^^

비로그인 2011-09-16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이 끝날 때까지 영원히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인연이라는 게 있을까요? 아이리시스님의 친구 이야기를 들으니까, 조금 막연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필요에 의해 서로를 찾는 순간들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씁쓸함도 입에 남구요. 그래도 살다보면 언젠가 그런 인연이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오겠죠? 내일 친구분이랑 거하게 회포를 푸셔요. 나중에 섬생활하는 게 (섬소년?) 제 꿈인데 거제도도 한 번 놀러가봐야겠네요. 거제일주, 좋을 것 같아요.

보통은 이름만 들어본 아저씨에요. [불안]이라는 책을 수학여행 가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욕 좀 먹었어요 ^^) 그 이후로는 만나보지 못했네요. 책상 위에 수도자처럼 앉아 있는 사진이 뇌리를 스치는...

아참, 두 장의 사진에 제목을 붙여봤어요. 한가한 동네 옷집에서의 패션쇼 현장. ㅎㅎ
저는 언젠가 피터팬 복장을 하고 사진을 남기겠어요.

아이리시스 2011-09-16 13: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어느 정도 그런 게 있어요. 나이들수록 필요할 때만 찾는.. 그래도 아직은 필요에 의하지 않고도 투정부리고 진상 떨 수 있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다행이고 행운이에요. 수학여행 가서 [불안]을 읽다니, 하하하. 말없는수다쟁이님도 엄청 책을 사랑하셨구나? 완벽한 문학소년이었네요.

저기 친구가 하는 옷가게 였어요. 타겟이 30대 이상이어서 우리가 입을 옷은 많지 않았어요. 지금은 아니지만요. 거제에 아예 눌러살고 잇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제가 다사다난해서 아직 전화를 못하고 있고, 날이 너무 더워요.-_-;

피터팬 복장 언제 할건데요? 네? 미리 좀 알려줘봐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tella.K 2011-09-16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련된 부산 아가씨였군요.
반갑사옵니다.^^

아이리시스 2011-09-16 13:13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세련이라는 말은 좋은 뜻을 다 포함하고 있는 단어 같아요. 짧은 말 속에 뭔가 꽉 찬 의미가 든 듯해서 좋아요. 오늘은 오랜만에 펄 매니큐어를 발랐어요. 엄마도 발라주구요. 저는 핑크를 좋아하는데 오늘은 그레이펄 이예요. 세련된 손동작을 해야 할 것 같은 날이에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은 하루 되세요, 스텔라님.^^

페크pek0501 2011-09-16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글 제목이 제 마음을 끌어당기네요. 여기서 스텔라님도 보네요.^^^

보통의 책은 다 읽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두 책은 읽지 못했어요.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예요. 이 책으로 많이 배웠어요. 흥미롭고 배울 게 많아요.

오늘 님의 사진도 보고 나이도 알게 되고... 제가 운이 좋은 것 같은데요.

우정과 연애...연애가 시작되면 연애 이외엔 모든 게 시시해져 버려서 친구도 멀어지죠. 그런데 그런 것 다 거치고 아주 늙게 되면 다시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게 친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 들어요. 60, 70대의 어머님들을 보면 알게 되죠.

좋은 하루 되세요.

아이리시스 2011-09-16 18:46   좋아요 0 | URL
네ㅡ 펙님, 보통 좋죠? 저도 생각해봤는데 감명깊게 맘속을 뚫고 지나갔던 책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뿐인 것 같아요.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불안>, <일의 기쁨과 슬픔>, <공항에서 일주일을> 그리고 위에 있는 <너를 사랑한다는 건>도 읽었던가 읽다 말았던가 한데 덜 좋아서는 아니지만 첫 책이 제일 남아요. 펙님도 그런가봐요. 그래도 여전히 보통이 읽고 싶어요. 이번책은 종교라 어떤 식으로 풀지 더 궁금한데, 표지가 대체적으로 맘에 안든다는 평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ㅋㅋㅋ

우정과 연애론은 저도 동감입니다. 우정이 멀어질 때면 연애가 가까워지고, 연애가 멀어질 때면 우정이 간절해지는. 그래서 늙어갈 수록 동반자가 중요한 것 같고, 마지막까지 함께 가야 할 친구도 소중해요. 관리라는 말 그렇지만 둘 다 잘 관리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좋은 하루 보내셨어요?

June* 2011-09-1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hu - ♥
 

아이리시스 2011-09-16 18:47   좋아요 0 | URL
준님, 추석연휴에 뭐했어요? 잘 지냈어요?

cyrus 2011-09-16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이쁘시네요.(+_+) 아이리시스님의 실제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나중에 사진을
삭제하시는건 아니시겠죠? ㅎㅎ 예전에 한번 양철나무꾼님이 서재에 실제 모습을 사진으로 올리셨다는데
저는 늦게 들리는 바람에 보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었거든요 ^^:;

여자의 심리는 정말 복잡미묘한거 같아요. 모태솔로가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지만.. ^^;;
남자의 행동에 대해서 동생분이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두 사람의 사랑이 오랜 기간동안 무르익었으면 남자의 행동이 동생분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울테지만요.
모든 연인들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제 주위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면 사귄지 100일도 안 되었는데
벌써 몸으로 사랑을 확인하더군요.. ^^;; 그러다가 얼마 못가 깨지게 되고요.

아이리시스 2011-09-16 20:14   좋아요 0 | URL
삭제는 하나마나 누가 확인이나 하나요, 뭐! 정.말. 이쁜 것 까지는 아니지 않..을까요? 후덜덜. 나무꾼님은 저도 아쉬운데, 그래서 막 조르는 중이거든요. 단계별로 졸라볼까 하구요.ㅋㅋㅋ

아 맞다, 키스 잘했던 그 남자는 동생을 여자로 본 건 아니었대요. 여행을 둘이 떠난 건 맞는 것 같은데 그애 말로는 아무리 예쁜 속옷을 입었어도 침대에서는 물론 손조차 손도 안대더라고 했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하는 건 그냥 우리 생각인 것 같고, 어떤 남자는 그랬다나봐요. 남자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중이었대요. 그러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앞에 여자가 되고 싶었던 그애는 거절당하기 위해 떠난 여행인 걸 몰랐던 거예요. 남자는 처음부터 밤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은 거지요. 여행을 가니까 당연히 1박 할 거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하여튼 그애에겐 굉장한 성장통이었던 것 같아요. 사랑에 관한. 이후 연하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그 얘기도 종종 해줬는데 기억이 잘 안 나요. 예쁘고 똑똑한 여자는 모두 도도하고 지혜롭고 튕길 거라 생각하는데 그애는 예상을 벗어나는 여자였어요, 제가 생각해도요. 우리가 친해진 건 정말 우연이었는데 내 과가 아니다 싶을 정도로 자신감이 과하고 성실한 구석에다가 이해 안 가는 행동도 종종 했어요. 그게 참 예뻤어요. 자신감이 넘치는 듯 하면서도 수줍어하는 모습이 이중적이면서도 신비롭잖아요.

아, 몸으로 확인하는 사랑. 그건 현 시대 10대와 20대가 가장 공감하는 내용 아닐까 싶어요. 확인하는 속도에 따라 사랑의 기간도 정해지는..^^

아이리시스 2011-09-16 20:21   좋아요 0 | URL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키스는 왜..................(-_-;) 키스는 되고 잠은 안잔다니 무슨 마음인 거예요? 시루스님. 남자를 대표해서 한 번 말해봐요, 큭큭.

cyrus 2011-09-16 22:36   좋아요 0 | URL
ㅎㅎ 아이리시스님도 못 보셨군요.

댓글을 읽고나니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그리고 마지막 댓글은...
그냥 모른척 하고 넘어가주세요 =3=3=3

아이리시스 2011-09-17 01:28   좋아요 0 | URL
네, 그냥 넘어가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꿈꾸는섬 2011-09-16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 너무 예쁘다고 쓰려다가 정말 예쁘다로 바꿔 쓸게요.
정말 팔다리도 시원시원하고 완전 부러운 몸매까지 소유하고 계시군요.
저도 가끔 예전 사진보다보면 낯선 느낌 받는데......
전 사랑하지 않는 여자에게 키스하는 남자들은 거의 없다고 보는데, 키스는 아무하고나 안 하지 않나요?
예전 알던 XY의 말이 돈 주고 관계를 가져도 키스는 절대 못하겠다고 하더라구요. 물론 그 사람 말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냥 제 생각에도 키스 아무나하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요?
게다가 젊은 날의 관계는 지속될 수도 깨질 수도 변수가 너무 많잖아요.

아이리시스 2011-09-17 01:31   좋아요 0 | URL
꿈섬님, 안녕. 추석연휴 잘 보내셨죠? 인사를 깜빡하고 못 여쭤서 마음이 막.. 엉엉엉.
완전 부러운 몸매.는 착각하시는 거구요, 키스는 저야말로 정말 신기해요. 다른 남자와의 키스를 내가 각색했나 하는 생각까지 들어요. 하하하. 돈 주고 관계를 가져도 키스는 절대 못하겠다는 말은 저도 들었는데 아마 처음에는 만나볼까 했는데 나중에 아니게 된 건지도 모르겠어요. 키스도 아무나 하고 하면 큰일나죠. 아, 어떡해.......(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루쉰P 2011-09-19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의 읽는 즐거움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 알라딘에는 미인이 많습니다. 뇌색적 미인인 양철나무꾼님과 시크한 베리베리님 이렇게 2대 얼짱으로 나름대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고, 같은 부산 쪽에 꼬마요정님이라 하는 분은 동생 분의 미모로 유추해 보아 미인라 여겨져(동생 사진을 올리셨거든요. ㅋㅋㅋ) 트라이앵글 미인으로 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이리시스님의 사진을 뵈니 알라딘 미인 사대천황으로 정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이 네 분의 순위는 없으니 안심하시고 (순위 정했다가는 위험한 사태가 ㅋㅋㅋ) 암튼 오늘은 아이리시스님의 리뷰를 읽고 문득 연락 끊긴 제 생각도 나네요. 아 보고싶다...
근데 불교의 사대천황은 이미지 찾지 마세요. 엄청 무서버요. -.- 그런 의미의 사대천황은 아닙니당...ㅋㅋㅋ

아이리시스 2011-09-19 18:19   좋아요 0 | URL
아아, 루쉰님, 이거 리뷰 아니잖아욧!ㅋㅋㅋ 미인은 모르겠고, 사대천황은 또 바뀔 것 같은데요. 막 루쉰님 머릿속에 순위 매겨진 거 아니에요? 하하하. 위험하지 않을 거예요. 일단 저는 루쉰님 보호해줄게요. 그러면 이제 정갈한 글씨로 쓴 메모와 사진을 함께 보내줄래요? 저도 사대천황 시켜줄게요.ㅋㅋㅋ 언제 근무하는 거예요?

알로하 2011-10-12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예쁜 아이리시스님이라고 불러야겠어요.ㅋㅋ29앓이, 겪고 있는 1인으로서 격하게 공감해요! <키스하기 전에~> 이책은 왠지 보다가 말았던 책이네요. <왜 나는 너를~>은 재밌게 읽었는데 이상하게 <키스하기 전에~>는 심심하더라구요. 사랑, 전 이제 스스로가 사랑치에 가깝다는 걸 깨닫고 있어요. 내가 안다고 생각한 것들도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 것들도 다 진실은 아니더라구요. 사랑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인생 자체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이 드니까 이게 29앓이의 한 증상인가 싶기도 하고요.

아이리시스 2011-10-12 17:47   좋아요 0 | URL
아아, 그러니까 정말 신기한 우연이게도! 우리 친구란 말이죠?^-^ 그렇구나, 어쩐지! 우리 너무 심하게 앓지는 말고 지나가요. 나중에 이 순간도 추억이 되게요. 제 소원은 사랑치도 좋고 다 좋은데, 제발 별일 없이 잘 지나가는 거예요, 지금이. 꼭 내가 끝날 것만 같은 기분이 아직도 간혹 들어요. 가을 지나고 겨울 오면 더 심해질 지도 모르는데, 알로하님, 힘내요. 우리 힘내자구요. <키스하기 전에~> 저거 잘 안 읽혔어요. 그러니까 보통은 잘 쓰고 다양하게 쓰지만, 이상하게 쭉 잘 읽히는 작가는 아닌 것 같아요.( '')

댈러웨이 2012-11-14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글 안 읽고 사진만 보다가 가요. 또 보러 올거에요. 별에다가 색칠할 거에요.



땡큐.땡큐.땡큐. 오늘 노래 올려줄께요. 페이퍼 쓰고 있는데, 제 방식이 맘에 안들지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래요. 하. 심장이 뛰어요. 나 여잔데??? --;

아이리시스 2012-11-14 21:24   좋아요 0 | URL
으히히히 댈러웨이님 이러면 사람들이 누가 ㅎㅎㅎ 썼지, 클릭해서 본단 말이예요(키득키득) 지금도 저렇게 아리따우면 좋겠지만 저 때는 제가 생각해도 아리따웠던 것 같고 지금은 네버! 저렇지 않아요. 별에다가 색칠하지 마요.

앗싸! 그냥 남자해요. 조만간 꽃하고 +@ 해가지고 사들고 저 보러 와요--;;
땡큐. 오늘 노래 잘 들을게요. 댓글이 없으면 안 들은 게 아니라 심취한 걸로..
 

 

 

당파싸움은 조선후기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심이 되는 줄기다. 이전까지는 그래도 왕실의 왕위다툼 정도로 인식됐는데 조선후기 들어오면서 공신들의 힘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세력 바람에 따라 당대의 줄기가 이리저리 휘기도 한다. 피바람이 불고 왕이 끌려 내려오고 허수아비 왕이 올라가기도 한다. 고려나 조선전기에 비해 조선후기는, 서민 위주의 정책들이 많고 문화적으로도 한글소설, 판소리, 사설시조 등이 널리 퍼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왕실정치는 그들 중심으로만 돌아갔다.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을 하루에 몇 번씩 읊으며 조선시대 역사의 맥을 짚어갈 때 나는 알아야 하는 것과 몰라도 되는 것을 분별없이 수용했다. 어느새 야사는 시대의 디테일을 연결시키기 위해 알아야만 하는,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 되어버렸다.

 

 

 

 

 

 

 

 

 

역사는 그를 두고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불운한 세자라 불렀다. 어째서 세자가 다른 곳도 아닌 뒤주에 갇혀 죽어야 했는지 오늘날 그 정도는 상식이다. 놀라운 건 이유를 파헤치고 들어가보면 현 정치상황이 보인다는 것. 지금의 정당정치와 조선후기 당파싸움은 형태가 거의 흡사하다.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 이후 북학론을 받아들이자는 주장으로, 아내 강빈과 정치적 뜻을 함께한 형 소현세자 대신 왕위를 계승한 봉림대군이 효종이 되면서 조선후기 당파싸움이 본격화 된다. 눈을 씻고 봐도 그들의 싸움에 백성이 없다. 우리가 공부하는 역사란 늘 승자 중심, 높은 자 중심, 권력 가진 자 중심이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왕권을 누가 계승할 것인가, 실세는 누가 쥐게 되는가, 훗날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등 세 가지로 압축된다.    

그래서 왕실에는 피바람이 일상이다. 실제로 왕권이 강했던 시기는 손에 꼽을 정도고 늘 왕조차 안심할 수 없을 만큼 흔들렸다. 조선역사에서 그렇지 않은 부분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고려나 조선전기에는 태종, 세조 같은 찬탈로 왕이 된 이들의 궁궐 내 싸움이었고, 왕권이 그때만큼 강하지 않은 조선후기에는 측근세력들이 활기친다. 오로지 권력과 힘. 두 가지를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이 지리하다. 효종과 현종 때에는 그나마 덜했다 볼 수 있다. 청과의 싸움에 온 나라가 목매고 있었으니 주전론과 주화론(북학론과 북벌론의 대립)이 팽배했을지언정 내부적 다툼은 덜할 수밖에 없었다. 집밖에 나가 싸워 이기려면 가족끼리 똘똘 뭉치는 수 밖에 없다. 붕당정치가 시작된 시기는 임진왜란 즈음 선조나 양난 이후 광해군 시점부터지만 당시에는 안팎으로 흉흉했기에 당파들은 별 의미가 없었다. 시간이 좀 흘러 인조,효종,현종 때에는 비교적 다양한 세력이 공존할 수 있었다. 북벌 다툼은 있었으나 그 바람은 안이 아니라 바깥을 향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향한 구밀복검(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면서 속에는 칼을 차고 있음)을 알아챌 수 없었다.    

 

 

 

 

 

 

 

 

 

앞서 선조 때 척신 정치의 잔재 청산에 대한 개혁문제로 소극적 기성사림과 적극적 신진사림의 갈등이 발발한다. 훗날 이조전랑직을 계기로 김효원을 주축으로 하는 신진사림(동인)과 심의겸을 주축으로 하는 기성사림(서인)으로 나뉜다. 또한 정여립 모반사건과 정철의 건저의 문제 등으로 동인이 강경파 북인과 온건파 남인으로 분리된다.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 또 편먹기는 얼마나 쉬운지 오늘날에 견주어볼 때 모르는 바도 아니면서 참 대단했구나 싶다. 현종 때에는 효종과 효종비의 죽음에 대한 복상 기간과 궁중의례 적용문제로 서인과 남인의 입장차가 생기는데 1차는 서인이 이기고 2차는 남인이 이긴다. 이를 예송논쟁이라 한다. 예송논쟁 후 잠시 남인이 실권을 잡게 된다. 이후 왕권이 바뀌어 숙종이 오를 때까지 북인과 동인, 서인과 남인이 번갈아 집권하며 꽤 균형적인 붕당정치가 운영되는 것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숙종 때 경신환국을 계기로 판세는 뒤집힌다. 왕위에 오른 숙종이 당시 집권세력인 남인을 신뢰하지 못해 다시 서인을 불러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숙종 때 집권하게 된 서인은 왕위계승 문제로 다투다 다시 (보수)노론과 (진보)소론으로 갈라진다. 기사환국(경종의 왕위계승 문제)으로 잠시 남인에게 실권이 넘어가기도 하지만 장희빈 소생의 경종 다음으로 경종의 배다른 동생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이 오래도록 집권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당시 평균수명에 비해 유난히 수명이 길었던 영조 재위기간이 50년 이상이었으니 거의 일당독재화 되었던 셈이다. 영조와 노론의 입장이 늘 같았는지는 모르지만 노론의 입김이 워낙 세서 영조 또한 노론의 눈치를 살피는 현실정치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 소생인 영조가 재위기간 내내 왕좌에서 쫓겨날까 불안해한 건 모두 아는 사실이다. 때문에 노론의 의견에 반대하면서 소론과 남인의 편에 섰던 사도세자는 늘 노론의 음해에 시달렸다. 사도세자가 왕좌를 노리기 위해 그랬는지, 정말로 옳은 소리를 내기 위해 그랬는지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자의 뉘앙스는 후자 쪽이다. 사도세자는 철저히 피해자로만 그려진다.  

또한 사도세자는 아내 혜경궁 홍씨가 서인 집안이었기에 장인 홍봉한을 주축으로 한 세력에 늘 견제당했다. 혜경궁 홍씨 또한 지아비가 아닌 가문의 편을 들면서 사도세자는 늘 외로운 싸움을 강행했다. 언제나 가지지 못한 쪽은, 간절한 쪽은 소수인 적이 많다. 영조 또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픈 의지와 욕망이 강한 임금이었기에 노론 못지않게 사도세자의 속마음을 의심했다. 아버지로서의 영조와 이 나라 최고 통치권자의 영조는 다를 수밖에 없다. 숙종 때 명분 뿐인 탕평책을 시행하면서 다음 왕인 영조도 이어갔지만 서인 중 노론이 거의 모든 정치를 장악하고 있어 사실상 공평하게 힘을 실어주는 붕당정치는 어려웠다.   

 

 

 

 

 

 

 

 

 

사도세자는 그 싸움중 음해와 시기 속에 희생되었다. 사도세자가 소론과 남인의 손을 들 때마다 눈엣가시로 여겼던 현 실세 노론은 강경하게 대처했고 하다못해 영조에게 사도세자의 비행과 정신병에 대한 거짓 상고를 올리기까지 한다. 물론 실제 사도세자가 그랬을 수도 있다. 역사의 진실을 100% 알 수는 없지만, 사도세자의 삶이 한 나라의 세자로 위엄있게 살아갔다고 보기는 힘들다. 역사적으로는 물론이고 개인적으로도 불행한 왕의 아들이었던 셈. 게다가 아내 혜경궁 홍씨 또한 사도세자의 편이 아니었으므로 일평생 어깨에 짐이 두 개 얹혀진 것처럼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가정 또한 사도세자의 비행과 정신병이 진짜였다고 보면 논할 의미가 상실되는 게 사실이다. 여하간 세상은 노론의 천하일색이었을 것이다. 견제세력 없는 집권세력의 횡포와 만행쯤이야 쉽게 짐작되고도 남는다.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 후 그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고, 정조가 되면서, 노론 강경파 대신 소론과 남인을 등용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연민과 노론세력에 대한 견제가 그의 정치 원동력이었다. 어느 정도 붕당교체가 일어나면서 새바람이 불어온다. 이때 등장한 남인 중에 정약용과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된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같은 인물들이 있다. 정조는 양반 뿐 아니라 그동안 세력에서 배제되어 있던 서얼 출신도 과감히 등용하면서 유능한 인재를 많이 발굴했다. 정조 집권기에는 비교적 영조 때와 비슷하게 어느 정도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고, 정당 또한 균형을 이루기 위해 애썼으며, 보잘 것 없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화성으로 이전하는 등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정조의 최대 딜레마는 아버지를 따르면 어머니가 울고, 어머니를 따르면 아버지가 운다는 것이었으므로 그의 고민과 시름이 얼마나 크고 깊었던 것인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는 현명하다. 억울한 아버지의 죽음을 차차 바로잡아가면서도, 어머니의 가문에 피비린내 나는 복수는 하지 않는다. 그는 연산군은 물론이고 광해군과도 달랐다. 지금도 정조는 조선후기를 통틀어 가장 어진 왕으로 평가된다.(세종대왕도 계시긴 하지만 아버지가 태종인데다 수양대군(세조) 같은 아들을 남겼으니 업적을 벗어나서 보면 돌연변이 왕 같다) 정조가 아버지의 죽음에 관여한 노론 벽파를 배제하고 그동안 정치에서 배제되어 있던 시파와 남인에게 대거 기회를 주었으므로 정조 집권기에는 노론이 칼을 갈고 있었다. 정조의 죽음 후 할아버지 영조의 계비이자 자신의 할머니인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으로 정약용 등 관련 인물들은 대부분 유배를 당하면서 다시 한 번 피바람이 몰아친다. 조선후기의 역사는 이와 같이 당파싸움을 빼고나면 남는 게 없다. 외부침입으로 인한 전쟁 같은 걸로 힘빼지 않아도 됐으니 왕위계승다툼 대신 백성들과 국가를 위해 에너지를 썼다면 조선사와 근대사는 물론 현대사도 크게 달라졌을 것 같다.

 

<사도세자의 고백>은 사도세자의 죽음에 얽힌 배경과 붕당정치의 숲을 생생하게 살려놓은 것이 특징이다. 비교적 사도세자의 편에서 서술했고, 뒤주에서 죽었다는 사도세자의 숨겨진 인생을 되살렸다. 내내 생각했다. 그가 왕이 되었다면 조선왕조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영조는 정확히 51년 8개월을 왕위에 있었다. 본인의 컴플렉스로 인한 불안과 자체 욕망도 컸지만, 때문에 더 큰 그림을 볼 줄 모르고 자식을 희생시킨 잘못이 크다. 형이었던 경종 독살설에 대한 의심과 아들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실망이 그의 재위기간 중 업적을 많이 가리는 것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어진 사람이라도 직접 자리에 앉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하물며 나라를 이끌어가는 일이 잘나고 어진 왕 하나만으로 되는 일도 아니다. 나는 사도세자의 백성이 되어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 모두가 '예스'라고 외칠 때 '노'라고 말하는 왕이었으니 적어도 욕망으로 꽉 찬 탐욕스런 왕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물론 가설이다. 

하지만 사도세자가 왕이 된다는 가설을 세우고 나서도 맘 편할 수 없는 배경들이 많다. 영조의 생명줄이 이토록 길었다면 살아생전 아들에게 왕위를 계승했을지 모르겠다. 당시 노론세력이 굉장했고, 세손 이산이 아버지와 뜻을 같이했다면 설사 사도세자가 왕이 되었다고 해도 그는 물론 세손 또한 안전했다고 보기 어렵다. 사도세자와 정조가 당시 노론세력을 완전히 잡고 진정한 탕평책을 공고히 한 채로 역사가 흘렀다면 조선후기의 왕조사는 달랐을 것이다. 그랬다면 정조가 죽자마자 세도정치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고, 세도정치로 인해 흉흉해진 세상에 흥선대원군이 힘을 행사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문' 보다 '무', '글' 보다 '칼'의 성향을 지녔다는 사도세자니까 조선은 지금과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필요 없지만, 그럴 수 있어서 나는 참 재미있다. <사도세자의 고백>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타임머신을 타고 가봤으면 싶기도 하고, 권력이 대체 무엇을 어디까지 해낼 수 있나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조선시대 당쟁사>는 한국사 수업을 듣던 교수의 조선후기 당쟁을 공부하기 위한 추천도서,  오세영의 <북벌>은 내 관심도서, 읽은 책은 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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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두 개의 별_카오스와 코스모스
    from 너의 의미 2013-06-27 07:03 
    18세기 조선을, 사화와 붕당을, 숙종과 영조와 정조를, 연암과 다산을 좋아한다. 아마 조선을 통틀어 많은 사람들이 가장 흥미롭게 여기는 대목일 것이다. 그 복잡한 붕당의 흐름과 권력암투을 따라가다보면 그것이 있어서는 안될, 없어도 좋을 당파싸움이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현대와 얼마나 많이 닮아 있는지 또 융합되지 못한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는지 놀라울 정도다. 무엇보다 이 시대 얘기들은 무궁무진하고 권력구도와 학문, 사상적 일대기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사
 
 
2011-09-12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3 0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쉰P 2011-09-13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의 가설이라고 하지만 사도세자가 왕이 되었으면 한다는 생각은 그리 나쁘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 너무나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그 사람이었으면 좋았을텐데라고 하는 사람이 간신배들에게 쉽게 모략에 빠지고 죽어 나간다는 사실이죠. 독해야 살아 남으니 말이에요.
지금도 정치판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도덕성이라는 뒤주에 갇혀 죽이고 또 다시 세를 나뉘어 너가 옳다 내가 옳다하며 싸우고 있으니 말입니다. 10.26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곽노현 교육감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들의 발판으로 만들려고 하는 꼼수도 보이니 말입니다. 조선의 당쟁사처럼 권력에 대한 다툼만 있고 민생에 대한 선의 경쟁 따위는 없어진지가 오래죠. 이렇게 쓰다 보니 슬슬 열 받는 것은 사실이네요. ^^ 인간의 권력욕 그 무한한 욕망의 끝은 참 알 수가 없습니다.
추석 때 정신 없으실 텐데 이런 학구적인 책도 보시고 욕심쟁이 ㅋㅋㅋ

아이리시스 2011-09-14 12:45   좋아요 0 | URL
히히. 루쉰님, 좀 쉬었어요? 수고했어요.^^ 저도 학구적인 사람이 되고싶어요. 방대하고 해박한 예술,문화,역사 블로그 개척이 사실 꿈인데..^^ 저는 천성적으로 루쉰님을 존경하는 루쉰님같지 못해요.ㅠㅠ 그런데 스마트폰 엄청 힘드네요.흑흑. 사도세자는 이름만으로도 아파요. 저는 요즘 네이버블로그해요. 서양미술사 포스팅하는 지인 동생이 있는데 읽고 소화하느라 숙제같아요.ㅋㅋㅋ 너무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경제방송 보고. 가끔 루쉰님 뭐하고 계실까 생각해요. 난 더 학구적인 여자가 될게요. 루쉰님은 자주 오기나 해요! 문제집 리뷰 다음으로 하루키를 보여줄게요.ㅋㅋㅋ 부활은 너무 아까워서 성경처럼 읽고있어요. 혹시 모를까봐서요.^^ 헤브 어 나이스 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