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읽으면 안되는 책도 있는 법인데, 밤에 들어야 귀에 쏙 박히는 음악이 있는 것처럼 책도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이들이 있다. 어젯밤 잠들기 전 이병률 여행산문집을 읽었다. 중고샵 득템 3권으로 행운의 램프 응모티켓 두 장을 받아서 한 장은 꽝 되고, 한 장은 이 책, 당첨됐다. 당근 전자책. 하늘을 나는 파랑새 느낌으로. 글과 사진의 온도만큼이나 따사롭다. 평소 운으로 볼 때 두 장 다 꽝이어야 정상인데, 잠시 느끼되, 작든 크든 행운이든 행복이든 그런 건 계산하지 않아야 온다.

 

시인의 시를 모르는 상태에서 산문집만 두 권째, 첫 번째는 당연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독서하는 이, 안 하는 이 가리지 않고 모조리 읽었을, <끌림>이었다. 그 책을 개정판이 나오고 사서, 읽고는 아, 이런 책이었구나, 했었다. 나쁘지 않았지만, 별 느낌이 있지도 않았다. 마음을 뜨겁게 데워주는 책인 건 분명했지만, 전 대한민국 출판계가 들썩일, 끌림의 책은 아니었다. 아마, 처음이었기 때문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경향도 있었을테고, 뒤늦게 편입하면서 까고 싶은 묘한 심리의 기류가 흘렀을 게다.

 

그런데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는 깔끔하고, 찡하다. 전작보다 더 팔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듯한데, 인생의 대박은 단 한 번이다. 오는 행운을 잡기도 어렵지만, 유지는 더 힘들 것이다.

 

인도에서 라면 끓여먹기를 도와준 불가촉천민 가족들에게 찡했고, 아, 라면을 끓여먹어야 하나, 새벽 네 시에 심각하게 고민했고, 루마니아 택시기사는 고마웠으며, 절반 읽었을 뿐인데 여기저기서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는 느낌을 받는다. 정신이 아찔해지고, 오던 잠이 달아나고, 여행을 더 많이 가지 못한 것보다 당신의 얘기를 더 깊이 들어주지 못한 게 미안해진다.

 

 

사랑하기에는 조금 가난한 것이 낫고

사랑하기에는 오늘이 다 가기 전이 좋다.

 

만나는 문장들을 마음에 새기고 간혹 꺼내보고 싶다. 남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아서, 아니면 경험이 없어서, 나는 글을 못쓰는 것일까. 시가 아니라 글을 쓰고싶은 것 뿐이잖아.

 

사람이 사람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 건 사랑이 어디론가 숨어버려서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걸 만지고 싶어서일 텐데. 그걸 붙들고 놓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그냥 만지고 싶을 걸 텐데. 갖자는 것도, 삼켜버리는 것도 아닌, 그냥 만지고 싶은 것.

 

몽마르뜨르 언덕에서 파리시내를 내려다보던 중, 시계視界를 가리던 어떤 커플. 여자의 키스에 절대 응답하지 않던 남자의 무표정. 먼저 등을 돌려 걸어가버리는 남자를 뒤따르는 여자의 쓸쓸함. 왜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지 않는 거예요, 도대체. 나는 왜 발을 동동구르는 걸까.

 

단절이 찾아오고, 설령 마음을 거두어야겠다고, 헤어지기로 했다고 심장이 시켰을지라도 한쪽에서는 그 얼마나 갑자기 난데없을까.

 

이봐요, 남자님. 키스로 아침에 드신 빵맛이 좀 지워지면 안되는 거예요? 그런 거예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서 터져버릴 것 같은 시간보다 누구를 사랑해서 터져버릴 것 같은 시간이 낫지 않느냐고 묻고 싶다.

불가능한 사랑이어서, 하면 안 되는 사랑일수록 그 사랑은 무서운 불꽃으로 연명하게 돼 있지 않은가.

 

그녀와 헤어지고 양파를 볶다가 짐을 쌌다는 한 사내의 고백은 그녀가 되고 싶어지도록 만드는 요술 같은 힘을 가진다. 불꽃. 사랑이 아니라 사랑하는 순간이, 사랑하는 순간의 내밀한 공기가 좋다. 달콤함이 넘치는 과육의 과일마냥 싱그런 공기가 연인들의 주위를 감쌀 때, 세상이 환해지고 꽃이 만개하고 마침내 겨울이 봄으로 탈바꿈한다. 어제도 봤다. 만남과 이별 사이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어떤 커플을. 어떤 경우, 나는 사과를 깎아야 하나, 양파를 볶아야 하나, 마늘을 벗겨야 하나, 김치를 썰어야 하나, 나도 뭐 하나쯤 발명 아니 계발해두고 싶어졌다. 나만의 방법. 술 사랑하는 친구들이 청승맞다고 했던 것, 소주 병나발 같은 것. 나는 말했다. 병나발은 청승이고, 잔에 따르거나 섞어 소맥하면 청승이 아닌 거야? 그날은 소주가 달아서 홀짝홀짝 치킨과도, 파인애플 통조림과도, 즉석 김치찌개와도, 잘 어울렸다. 장을 봐온 것 외에도, 음식을 잘 하는 친구집에는 늘 맛있는 게 많다. 요리사인 아버님이 해놓으신 만찬, 요리해서 초대하길 좋아하는 친구가 만들어놓은 이것저것. 그리고 먼지도 많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혼자 술을 마시는 작업'은 내 색깔을 지우는 일이기도 하다. 너무 많은 색깔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너무 많은 색깔을 이해하려 했으므로, 고로 나는 시끄러웠으므로 나를 이루고 있는 색들을 쫓아내고보자는 셈인 것이다.

 

고민은 글로 발화한다. 계기도 있고 경험도 있고 주장도 있는데 아무도 모른다. 바람이 불어 당신이 좋다는 책의 절반을 더이상 글 없이 읽기로 했다. 생각만, 느낌만, 사유만, 정서만, 감동만 그리고 시간의 영롱함만. 그밖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들만을 곁에 둔 채로.

 

자신이 채워진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공항에 가보면 된다. 공항에 앉아 미소 지을 일들이 떠오르거나 괜히 힘이 차오르는 사람이 있고, 한없이 자신이 초라해 보이거나 마음이 어두워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공항에 가지 않는 나에게 세상은 아무것도 보여줄 게 없다. 세상의 경계에 서보지 않은 나에게, 세상은 아무것도 가져다줄 게 없다.

 

이런 말도 좋다. 특별히 사랑에 관련된 얘기들을 좋아하지 않아도, 사랑에 관한 메모에 늘 사로잡힌다.

 

그렇더라도 사랑이 없다고 말하지는 말라. 사랑은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불안해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믿으려는 것이다. 사랑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걸 못 견뎌하는 것이다. 사랑이 변했다, 고 믿는 건 익숙함조차 오래 유지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뿐이다. 사랑은 있다. 사랑이 없다면 세상도 없는 것이며 나도 이 세상에 오지 않은 것이며 결국 살고 있는 것도 아니질 않은가. 그렇다고 사랑만이 제일이라고 생각하지도 말라. 사랑은 한다고 해서 다가 아니라 사랑할 때의 행복을 밖으로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상태가 사람을 키운다. 애써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넘치는 상태만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인용을 많이 하려고 이 페이퍼를 시작한 게 아닌데, 긁적긁적.

 

생각보다 얇아서 깜짝 놀랐다. 다섯권으로 굳이, 페이지도 적구만, 소장용으로는 짱이지만, 이라면서 마냥 좋아하기엔 야금야금 읽어도 너무 빨리 읽혀서 짜증난다. 곱씹어야 하나 생각해봤는데 시대도 한참 지났는데, 세상에 곱씹어야 할 책이 얼마나 많은데 싶어 또 짜증난다. 근데 책은 예뻐. 왜 계속 네거티브로 시작해서 반전놀이하지, 요즘.

 

출판사 의도가 막강한데다 디자인과 편집에도 공을 들였다는 걸 알겠다. 과연 팔릴까, 보다는 이번엔 얼마나 나갈까, 하는 기대로 집 한 채 올릴 각오하고 있을 하루키. 아, 이렇게 모아서 '다시' 찍는 책은 인세 안 벌어들입니까(일본한테 돈 주기 싫..), 그건 모르죠, 나는 작가가 아니라서. 한 권만 봐도 느낌이 왔다. 제목별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몰라도 비슷비슷하겠지. 그다지 푹 빠져서는 못 읽었다. 하루키 에세이는 스물 세 살 이전에 다 뗐다. 소설도 몇 권 남은 것 같아서 채우고 있는데 그래도 여전히 볼 게 남은 건 좋다. 문화개방으로 일본영화를 막 들여오던 때(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였던 걸로 기억한다)부터, 일본의 순수함을 무기로 내세운 히라이켄의 곡이 극장 가득 울려퍼지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심야로 보던 시절에 말이다. 십칠 세부터 이십 삼 세 사이랄까. 감수성이 말랑말랑해서 조금 이국적인 따스함만 보여줘도 혹했던 그때 이후, 나는 쭉, 하루키의 소설이 더 좋았다. 안 읽고, 덜 읽은 꼭지가 모였다고 해도, 소장용으로 짱이라고 해도 그런 거 안 통한다.

 

동네 맥주체인점이 막 들어서던 시절, 집에서 맥주 마시고 안주 만들고 하던 일반적 시절이 아니던 때에, 동거인 혹은 애인 혹은 배우자와 가까운 단골맥주집에서 바싹한 튀김과 한 잔, 간혹 재즈가 넘실대는 분위기 좋은 bar에서 또 한 잔, 어쩔 땐 진한 커피 한 잔, 돌아오는 길에 살짝 취기 도는 어두운 밤 길목에서 우연인 듯한 필연으로 갈 곳 잃어 헤매는 외로운 검은 고양이 한 마리 만나는 것. 애인에 의하면 그게 내가 한창 하루키에 미쳐있던 스물 몇 살 때 자주 재잘거리던 꿈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소박하게, 행복하게 살자고 했단다. 그애가 말했다. 맥주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왜 고양이를 만나야 하는데? 그냥 만나야 하니까 만나는 거지. 고양이도 외롭고 맥주 마신 나도 외롭고 골목길은 어둡고 마주잡은 손은 따스하니까. 그래서 눈물겨우니까.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말은 그애 더이상 하지 않았다. 이해했을 리가 없는데, 더 물을 게 있을텐데 말이 없어서 다음 말을 꽤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더 말이 없었다.

 

 

오래 전에 나온 책 개정판으로 사려면 좋으면서도 어쩐지 손해보는 느낌. 인플레이션에 비하면 가격은 저렴하지만, 이자 붙여 사는 기분이라 선호하진 않지만 오랜만에 중고샵 득템. 솔직히 중고샵에서 신간 건져도 막상 1000-2000원 차인데,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당최 알짜배기만 모아서 사게 두질 않으니까, 발견하자마자 결제를 서둘러야 하는데, 그게 싫다. 하지만 상태가 새 책만큼이나 좋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세네 번 정도 샀나, 중고라도 특별히 더 사진 않았다. 개인에게는 팔아봤지만 사보진 않았다. 책정리를 하다보니 새 책이 바랜 것 보다는 헌 책이나 중고책으로 샀던 때 묻은 책에서 책벌레가 많이 발생했다. 도서관에 가서 오래된 책을 빼들고 먼지 탁탁 털고 집에 가져오면 시커먼 종이 사이로 누런 책벌레 한 마리가 기어다니는데, 워낙 벌레에 예민해서 그게 잘 보여서 더 싫었다. 그러면 그 책을 이불이나 식탁이나 하는 데서는 들고 못 읽는다. 책벌레 떨어질까봐. 자연스럽게 헌책과는 멀어진다. 책에 중고 스티커가 붙어서 오는데, 이거 뗄 수 있으면(혹은 붙어 있으면) 다시 중고샵 넘겨도 됩니까! 왜 안됩니까! 책은 돌고돌아야 하는 법인데, 딱 한 번 사고 팔아야 한다는 법도 없잖아요. 스티커 있으면 안될 것 같은데 왜 스티커 붙여서 오는 겁니까!

 

 

 

 

 

 

 

 

 

 

 

 

 

 

그렇지, 나 작년에는 <섬>도 읽었고, <알제리 기행>을 반값에 샀지만, 다 못 읽고 어딘가에 방치된 상태로 또 1년. 잃어버린 1년. 날아간 1년. 책이 어딨는 지도 모르는 1년. 그런 책이 있었는지, 그런 책을 샀었다고? 할 1년. 내 1년. 나이 먹은 1년.

 

비밀인데, 나도 개척하고 싶은 곳 있었다. 내가 어른이 돼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만큼 컸을 때는 이미 미개척된 땅이라고는 없었다. 온 사방팔방 천지에 한국인이 있었고, 한국인이라는 이름의 발자국이, 도장이, 추억이 곳곳에 존재했다. 개척되어야 할 여행지라고는, 장소라고는, 무주지 아니면 무인도 말고는 없었다. 프로방스의 낯선 꽃마을, 루마니아 어느 시골마을, 네덜란드 코코아마을, 예멘의 구석구석, 지중해 한가운데, 모로코 항구, 인도와 네팔의 국경지대, 학교에 가기 위해 열흘 여정을 떠나야 하는 중국의 고산지대 아이들 등등등 누군가의 발걸음이 닿지 않은 곳이 없고, 알려지지 않은 곳이 없고, 상품화 되지 않은 곳이 없다. 텔레비전만 켜면 온갖 채널에서 알려진 곳, 덜 알려진 곳 할 것 없이 여행, 관광, 생활, 문화, 음식을 플롯으로 다룬다. 차라리 지겨울 지경이다. 그래도 걸어서 세계 속으로처럼 촌스런 플롯이 제일 좋지만. 최근에는 EBS 다큐 프라임이 좋아졌다. 어제도 몇 개 다운했는데 볼 시간이 없다. 이렇게 엉뚱한 짓 할 시간은 있어도 진득히 앉아 다큐 볼 시간은 없..없.. 만들어보겠다! 없을 수는 없는 것 같다.

 

지중해와 카뮈 1호. 장 그르니에, 미셸 투르니에, 플로베르, 스탕달, 발자크 등 프랑스 문학 번역가이자 해설가 1호. 우린 그를 그렇게 부를 수 있다. 대상이 뭐가 됐든, 선각자가 되는 건, 처음이라는 건, 멋지고 황홀한 일. 그가 길을 낸 곳으로 따라걸을 환한 빛. 무대 위에 그가 있다. 한국문학사에 김윤식 교수가 있다면, 불문학사에 김현 교수와 김화영 교수가 있다. 이 책을 따라걷는 여정은, 지중해 기행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젊고 반짝이는 어느 한 시절을, 한 순간을 따라 걷는 길이다. 그의 영혼이 숨쉬는 과거로 돌아가, 내 젊음과 열망을 엿보는 일이다. 불살라야 하는 열정과 충격을 확인하는 일이다. 행복이 충격이라고 말하는 그의 말에 이제껏 단 한 번도 없었던 당연한 행복에 대해 생각했다. 행복은 하루키의 백일몽이 아니다. 노력과 열정과 행운이 한 지점에서 만나 발화하는 것이기도 할 터, 운이 좋았다. 그의 젊음을 불사른 지중해를 마주할 수 있어서.

 

얼마 전, 오래 앓던 지인이 지중해로 치유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크루즈를 타고 그리스와 터키를 한 달 넘게 순회하던 기간 중, 그녀는 인생을 바꿀 만한 일을 겪었고, 공부한 것이나 해오던 생활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렇게 꿈도 변했다. 그 와중에 함께할 짝도 만났고, 치유여행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았다면, 결코 스쳐지나고 말았을 인연이었다. 행복은, 충격이 맞는 것 같다.

 

여름이 가고 있고, 나는 또다른 책을 읽는 중, 이 페이퍼는 주절거림일 따름이다. 다시 보니, 책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없다. 발췌조차 내게 맞춰진 맞춤페이퍼, 하고 싶은 말을 위해 채택된 문장들, 다시 말해, 책에 대한 느낌 말고 정보는 맹세컨대, 하나도 없다. 책을 읽기를, 책정보는 책 속 어딘가 있겠지. 길을 잃지 말기를, 돌아나와야 다른 책으로 들어갈 수 있을테니.

 

그러니까, 늘, 매번, 항상, 언제나 그렇긴 하지만

나는 내가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 전혀 감도 안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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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4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늘 너무 재밌어요. 아이이리스님의 글은.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여전한 그 감성 문체로군요. 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끌림>은 그래도 괜찮게 읽었었지요. 이번 것도 읽어야겠군요. (도서관 주문 넣겠다는)
<행복의 충격>도 필독 목록에 넣고...
지중해 크루즈로 인생이 바뀐 그 친구 얘기 듣기만 해도 저까지 새로운 기분이 들어요. 저도 그런 충격이 필요~ㅎ
어쨌거나 아이리시스님이 글을 쓰며 만들어내는 그 세상, 모두 전인미답인 것 같은데요?! 늘 재밌고 새롭게 쓰시니까.^^

아이리시스 2012-09-04 17:36   좋아요 0 | URL
글도 많고 생각도 많고 오타도 많고 창피하고. 안 창피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여서 더 창피하고.
시인의 산문, 소설가의 산문, 기자의 산문.. 어느정도 포맷을 안다고 생각하는데요, 간혹 이런 책이 필요한 순간이 있지 않나 생각해요. 저는 늘 동종책과 비교해서 별점 매기거든요. 아는 선에서..

좋겠죠? 인생 바뀌어도 되니까 지중해 가보고 싶어요. 인연 안 만나도 좋으니까 푸른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바다를 떠다니는 크루즈 타보고 싶어요. 럭셔리 여행을 할 만한 여유와 돈이 올 지 모르겠어요.

늘 고맙습니다, 섬님. 저도 충격이 필요~ㅋㅋㅋ

cyrus 2012-09-04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운의 램프 당첨되는 사람이 있긴 하군요. 저는 매번 해도 꽝이던데.. ㅠ_-
근데 인용 문장이 좋은데요, 아이리시스님 글보다요,,,,,, 라고 말하면 빈정 상하겠지요? ㅋㅋㅋㅋ

아이리시스 2012-09-04 17:39   좋아요 0 | URL
아닐 걸요? 시루스님도 된 적 있을 걸요? 비싼 거 해서 안되는 거 아니에요? 500원짜리, 1000원짜리, 전자책 할인쿠폰 같은 건 간혹 되던데요? 큰 건 되어본 적이 없지만요. 사실 가지고 싶은 것도 별로 없어요. 있으니까 하는 거.. 쿠폰은 막상 책 살 때 되면 있는지 없는지 몰라서 사용하는지 마는지도 모르겠는 무심한 1인...

인용문장이 더 좋아야 시인이 먹고 삽니다, 편집장님이 먹고 살지요.
근데 나 좀 빈정 상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댈러웨이 2012-09-05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솜사탕 같은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페이퍼에요. 막 녹고 싶어요. ( ") (아무래도 아이님 팬들한테 돌 맞을 것 같지만 사랑은 쟁취하는 것... =333 )

김화영 교수 <알제리의 기행>도 있네요? <행복의 충격> 포함해서 읽어보고 싶어요.
아이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혹시 읽었어요? 정말 좋아요. 물론 글은 투르니에가 쓴 거긴 하지만요. 추천해요. 강추. 그리고 어제 책들이 와서 책 정리 하다가 <시르트르의 바닷가>가 이미 집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저도 이제 아이님 경지에 올라서려나 봐. 무슨 책이 집에 있는지 막 몰라.

책을 읽다보면 귀족들은 참 치유여행을 많이해요. 전생에 태어났으면 귀족으로 태어났을 운명이었다고 누가 그랬는데. 흠 흠...

p.s. 아, 저 하나 고백할 것 있어요. 제가 아이님 문장 하나 표절한 게 있는데... '댓글 달다 죽고 싶다'였어요. 용서해줘요.

아이리시스 2012-09-05 00:26   좋아요 0 | URL
저 그거 읽어야죠, 방드르디, 그거는요, 제목만 봐도 제가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 와요. 느낌이 대부분 맞는 것 같아요. 예전에 전혀 상관없는 분도 일생의 책이라고 막 그랬는데 그때부터 막연한 느낌이 왔어요. :)

시르트..그 책이 왜 있는 거예요? 오홋, 그런데 그 책, 별 세개 짜리 아니에요, 가독성이 그렇지, 문학적으로는 프랑스에서 상 받을 만 해요. 지겹긴 지겹지만..( '')

제 경지(도리도리), 어딨는지'만' 몰라야 돼요. 무슨 책이 있는지는 알아야 돼요. 한번씩 뒤집어 엎고나면 안보여서 그렇지,ㅋㅋㅋ (책도 별로 없으면서..)

그죠, 저는 럭셔리하게 그런 것도 가는구나, 했거든요. 아픈 사람은 오죽했겠어요?

p.s. 아, 표절시비소송 걸게요, 용서는 없음ㅋㅋㅋ

2012-09-05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06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맥거핀 2012-09-05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가지 얘기들이 많은 페이퍼군요. 최근에 하루키 에세이들이 다시 리모델링 되어서 나왔죠? (뭐 근데 리모델링이라고 하기에는 좀 칙칙하긴 하지만.) 예전에 대학교 도서관에 꽂혀있던 하루키 에세이를 꽤 읽었거든요. 그 책들 하도 많이 대출들이 되어서 책들이 거의 떨어져나갈 지경이라, 위에 딱딱한 하드커버를 덧씌웠던 책들이었는데, 왠지 하루키 에세이는 그런 책들이 아니면 안 읽힐 것 같은 느낌이라...

사랑에 대해서는 늘 남자와 여자가 많이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물론 뭐 남자도 남자 나름이고, 여자도 여자 나름이지만..나를 사랑하냐고 묻는 것을 (제가) 가끔 이해를 잘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걸 이 시점에서 묻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생각을 하죠.

중고책사서 행운의 램프를 받으셨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왜 오프라인 알라딘 중고샵에서 산 것은 행운의 램프를 안 주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중고샵에서 산 것은 중고샵에 다시 못 파나요? 그것도 좀 이상한 것 같기도....

아이리시스 2012-09-06 00:13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는 (어렸으므로) 하루키가 좋았던 것 같아요. 작년부터 급..책들이 다 이상합니다!
팬심으로 출간되는 책들.. 싫어요. 저는 '새 작품'을 원합니다.. 하루키님한테 좀 전해주세요 :)

맥거핀님은 솟아나는 샘물이에요? 샤이닝님도 그런데.. 요즘 샤이닝님은 한량처럼 가을에 빠져있어요. 기분이 좋아서 책도 안본대요(ㅋㅋㅋ) 사랑하냐고 저는 묻는 여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해는 잘 안갑니다.. 여자 나름입니다.. 근데 그걸 유도하는 질문을 해야..하는 이유는..알 것 같습니다^^

중고샵에서 산 책, 안된다고 한 게 아니라 제 생각에 중고 스티커가 붙은 책을 다시 가져가는 건 어쩐지 반칙 같아서요.. 스티커가 붙어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행운의 램프 저는 두 장 중 한 장은 되더라고요. 일부러 큰 걸 안해서 그런가봐요. 그러네요, 오프라인에서는 안주겠네요, 부산에 있는 곳 한 번도 못가봤는데..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무거운 거 들고 돌아다니는 거라서...............( '')

스타일이 망가지잖아요 :) 학교 땐 안 그랬는데 요즘 좀 그래요ㅋㅋㅋ
 

 

 

 

<미국 서부 여행>은 잘못 고른 책이다. 책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목적에 맞지 않았다는 뜻이다. 오히려 캐주얼하고 약간은 뻔한, 샌프란시스코 해변과 LA 디즈니랜드, 할리우드, 서부개척 같은 얘기를 할 줄 알았던, 제목만 보고 골랐던 이 책이 서부 그것도 캠핑 여행자에게 적합한 실용서였다니, 충격이 컸다. 간접여행도 말이 간접여행이지, 여행에세이 말고는 실용여행서를 본 적이 없어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랬든 저랬든 어차피 미국여행 갈 생각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아주 유용하다. 알게된 게 많다. 신이 내려준 황홀한 자연풍경을 직접 마시고 느끼기 위해 온 세계 여행자들이 한 번쯤 꿈꾼다는 미국 국립공원 여행을 전혀 몰랐었다. 미국 서부 캠핑여행을 한 번 꿈꿔볼 정도로, 이 순간 이보다 자세한 책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책으로 여행이 가능하다면, 이 세상 어느 곳도 책보다 더 흥미롭지는 않을 것이다. 표지에서 느껴지듯, 깎아지른 황토색 폐허의 산이 다소 허망하게 보여도 목적이 분명하고, 그에 맞게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가 닿도록 쓴 세심한 서술이 돋보인다. 미국, 서부, 국립공원, 오토캠핑. 저자가 얼마나 많은 밤들을 캠핑에 최적화 되어있는, 이보다 더 자연다울 수 없다 자랑하는, 미국 서부 국립공원 캠핑장에서 보냈는지 충분히 짐작될 정도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읽다가 충동적으로이긴 해도 동부 보다는 서부, 뉴욕 주 보다는 캘리포니아 주, 도심보다는 자연, 호텔보다는 캠핑, 자동차(자가용) 보다는 버스나 기차가 취향이던 로망이 떠올랐다. 떠나기엔 아는 게 너무 많고, 고생길도 훤하고, 그만큼 또 아는 게 없고, 그래서 두렵고 무섭고 엄두가 나지 않긴 하지만, 왜 하필 미국, 그것도 황량한 서부, 국립공원이어야 하는지 궁금했다. 잭 케루악은 초반 동부에서 서부로 건너가기 위해 온갖 날들을 히치하이킹에 쏟는다. 다소 지겨울 정도였지만(그가 이 차를 타든 저 차를 타든 독자인 우리와는 별 상관이 없다) 마침내 그렇게 힘들여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나마저 희열을 느낄 정도였다. 비행기 티켓만 끊어 떠나는 자유관광 혹은 배낭여행은 젊.으.니.까. 가능하다던 어른들의 말은 맞았다. 읽기만 하는 데도 숨이 찰 정도였다. 냉정히 말해 아직 그럴 정도는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책을 펼쳐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영국 BBC 방송이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50곳' 중에서 1위를 차지한 애리조나 주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이다. 시작은 미국의 국립공원 '퍼주기'의 탄생이다. '멋진 자연을 모두를 위해 남겨놓는다'는 취지에서 기획된 국립공원 지정노력은 자연주의자 존 뮤어, 국립공원 관리공단 초대 이사장 스티븐 매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등의 끈질긴 개척과 노력 끝에 탄생된 고귀한 정신이었다. '사적 소유'가 건국이념인 미국에서 누군가 '개척'하고 '소유'한 땅을 국립기념지로 지정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에 해당하기 때문에, 초기(미국 최초 동시에 세계 최초) 국립공원인 주인 없는 옐로스톤(직접 개척)을 제외하고는 죄다 힘들었다. 하지만 뜻에 반하던 사람들의 동의를 받아낼 수 있었던 건, 국립공원이 가진 생태적 가치와 공원 관리체계에 감동한 이들이 스스로 후손을 위해 이 땅의 일부를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공원 입구의 지도, 방문객 센터에서 보여주는 정보, 캠핑장과 캠프파이어 등 체계가 분명한 관리에 안정감을 느끼며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장점 덕에 이젠 국립공원 캠핑이 하나의 휴양을 넘어 소중한 한때의 축복처럼 여겨질 정도라고 한다. 캠핑장과 캠핑카가 마련된 국립공원 안은 철저히 보존된 동시에 철저히 관리되고 있어,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에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을 받는다는 숭고함이 더해져 어느 여행보다 환영받는다.

 

큰 제목은 빙하와 화산이 공존하는 로키 산맥, 트레일과 만년설을 만날 수 있는 시에라네바다 산맥, 화려한 색의 암석과 기묘한 지형의 전시장인 그랜드 서클, 리오그란데 강의 정취와 멕시코 인들의 설움이 느껴지는 뉴멕시코와 텍사스 등 지역별 산줄기를 통해 나눴고, 각각 옐로스톤, 그랜드티턴, 글레이셔/ 오세미티, 세쿼이아&킹스캐니언, 레드우드/ 그랜드캐니언, 브라이스캐니언, 자이언, 아치스, 데스밸리, 그랜드서클/ 화이트샌즈, 칼즈배드 동굴, 빅벤드 등 각 지역에 자리한 국립공원 단락으로 이뤄진다. 첫 장마다 지도를, 뒷장은 국립공원만의 특성과 매력, 역사, 구경할 곳 등을 사진과 배열해 보기좋게 살려놓았다. 산, 폭포, 후두(침식 작용으로 인해 생긴 기괴한 모양의 바위기둥을 일컬음), 나무, 절벽이 진짜 자연의 힘을 실감하게 한다. 사진만으로도 아찔할 지경.

 

네 가지 테마 속 국립공원 15곳이 이 책의 정보, 더불어 효율적 여행동선과 알찬 캠핑정보가 덤이다. 군데군데 사색이 엿보이는 건 선물이다.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는 적막하고 어두운 곳에서의 하룻밤을 상상해본다면 오토캠핑의 매력을 알 듯도 하다. 미국 서부 국립공원에서의 오토캠핑은 자율적이긴 하나, 체계적으로 국가에서 잘 관리하는 안전한 자연체험이다. 별밤 텐트 사이로 머리 내밀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만나는 별빛도 적막함을 채워줄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유일한 방법이다. 혼자가 아니지만 혼자만 존재할 수 있는 단연코 가장 아름다운 여행법이며, 먹고 입고 자는 것과 자연이 인간과 공존한다는 사실이 경이로워지는 순간이다. 이곳에 있으면 가장 익숙한 것이 가장 새삼스러운 일이 되고, 일상에서 아무 것도 아닌 것(예를 들어, 불을 구한다던가 물을 마신다던가 하는 일들)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새로운 체험일 수밖에 없다. 일부러라도 겪고 싶은 아름다운 고생일 수밖에 없다. 자국의 땅에서 온갖 종류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황혼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이 나라의 기쁨이라고 하니, 여행이 젊음의 것이라던 수없이 많은 오만한 이들의 언어는 수정되어야 한다. 참, 국립공원 여행(캠핑)은 반드시 차가 있어야만 유용하게 할 수 있단다. 버스나 기차로 주변 지역까지 가더라도 국립공원을 한 바퀴 도는 일은 직접 모는 차가 있어야만 가능하단다. 넓은 국립공원을 걸음으로 정복하기엔 무리가 따른다고. 자동차를 권유하는 여행은 처음이라 신기하다. 대부분의 여행은 길 위에서 이뤄진다고 잭 케루악이 말했기 때문이다. 홀로 자가용으로 달리는 길은 고독의 사유 외에는 배울 게 없다고 여겼으리라. 국립공원 캠핑의 자동차는 어떤 의미에서 길 위에서 청춘을 뽐내며 젊음을 마시라던 잭 케루악의 그것과 같다.

 

 

어릴 때 주로 계곡에서 완전 자유캠핑을 자주 했었다. 아빠가 좋아하셔서. 그리고 우리가 좋아해서. 여름 중 절반은 늘 그럴 정도였으니 어른은 아니었지만 나도 캠핑키드였다. 텐트치고 버너에 밥 해먹으며 물놀이 하고 파라솔에 앉아 라면 끓여먹거나 수박을 쪼개먹고 텐트에 들어앉아 라디오 듣고 일기 쓰고 하루를 마감하는 완벽한 캠핑은 이곳저곳 주말마다 가족들과 나들이가기를 꺼리지 않는 부지런한 아빠가 계셔서 가능했다. 열여덟, 고3이 되기 전 여름방학, 그때가 자유캠핑의 마지막 여름이었다. 커서 그런 추억은 아무에게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게는 대부분이었던 그 추억이 새삼 고마워 눈물을 글썽였다. 캠핑할 때는 장소가 어디냐 보다는 아빠가 언제 튜브와 보트에 바람을 넣어줄 지, 그걸 밤에 누가 몰래 훔쳐가면 어떡할 지, 무얼 해먹을 지, 무얼 들을 지, 무슨 이야기를 나눌 지, 오늘은 밤하늘의 별이 얼만큼 보일 지, 밤에 켜둔 등에 벌레가 얼마나 모일 지, 반딧불이는 또 어딨을 지, 벌에 쏘일까봐 겁먹고, 밤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면 어떡하고, 화장실이 푸세식일 수밖에 없는 야외 특성상, 배탈이 날까봐 두렵고, 어떻게 편한 잠을 잘 지, 젖은 옷과 속옷은 어떻게 갈아입을 지 같은 것들이 더 문제다. 자연은 그저, 해가 뜨고 볕이 뜨겁고, 달과 별이 뜨고, 비가 내리는 것 같은 것들이 중요했지, 다른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오롯이 자연에게만 모든 정신이 집중되는 날들. 그것이 캠핑의 삶이었다.

 

요즘은 그때와는 다르다. 우리나라에도 곳곳에 캠핑장이 마련되어 계절 가리지 않고 캠핑이 가능하며, 캠핑장이 마련된 곳은 잘 닦인 평지라 늘 냇가를 점령한 자갈과 돌멩이를 골라내고 종이박스를 깔아야만 남보다 평평한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던 그때와는 달라졌다. 아, 한낮에 그늘지는 나무 아래 위치하는 자리는 신이 내려준 장소다. 앞서 지나간 사람이 편하게 골라둔 자리라면 더 ok. 하지만 주위에 돌멩이에 묻힌 배설물은 각오해야 한다. 어릴 때 캠핑은 더운 여름에나 하는 물놀이의 연장선이었지만, 이제 캠핑은 자연에서 해보고 달보고 별보며 밥 해먹고 돈독한 정을 나누는 여행의 또다른 이름으로 변모했다. 물론 예전의 그 캠핑이 나는 더 좋고, 그 캠핑 스타일이 사라진 것도 아니지만, 이름모를 산이나 계곡에 들어설 때마다 인간들이 남긴 쓰레기와 오염은 다소 우려스럽다. 자연은 지키는 만큼 더 큰 것을 해줄 것이다.

 

밤하늘의 달빛 속에 별을 보며 잠드는 이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유일함, 자연에 대한 예찬의 다른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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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2-09-03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 여행을 하게 된다면 가고 싶은 곳이 많지만 저는 먼저 그랜드캐넌에 한 번 가고 싶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사람이 북적북적 거리는 도시 같은 곳보다는 사람 발길이 드문, 자연 경관이 좋은 곳에 여행 가고 싶어요. ^^
여름 방학 때 캠핑하지 못한 게 아쉬워요. 오늘 2학기 개강했어요 ㅎㅎㅎ

아이리시스 2012-09-04 02:21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은 일단, 그랜드캐넌 갈 때 저를 데리고.....캐리어에 넣어서 질질 끌고가도 좋아요!
그럼요, 하지만 저는 언제나 뉴욕 보다는 파리, 파리 보다는 밀라노..................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대한 로망이 도심의 화려함에 대한 욕망보다 언제나 더 커요.
루 살로메 스타일...............(여기서 이게 왜 나옴?)

물놀이 갔었잖아요, 계곡 좋던데, 하룻밤 자고 오죠 왜..
개강 축하해요, 내가 그걸 안 했었구나...................( '')

댈러웨이 2012-09-04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렸을 때 캠핑 많이 갔어요. 요즘 사람들 가는 그런 캠핑은 아니였지만, 그러고보면 그런 기억을 남겨준 부모님한테 새삼 감사하네요.
참, 첫문장부터 저렇게 써놓으면 누가 읽어요? ㅎㅎ 네거티브? 막 이러면서 고개 갸우뚱했어요 첨엔.

그리고, <길 위에서> 좋았어요? 저 그 책 좋았어요. 그래서 오늘 아이님한테 러브레터 보냈어요.
안녕요, 저 자러 갈 거에요. 우리 진짜로 내일 봐요. ^^

아이리시스 2012-09-04 02:35   좋아요 0 | URL
그쵸....... 좋은 책인데........ 앞문장을 바꿔야겠어요. 좋은책!!!

네, 저 책은 완전 좋은 책입니다!!!!!!사진은 얼마나 멋진데요!!!!!!!! 미국캠핑 갑시다!!!!!!!!!
(책 호객행위 중)

요즘 밤에 잠이 안와서 죽어요. 그래서 혼자 창문 열고 별세다가(응?) 어제는 이병률 시인의 산문집을 읽었더니 밤에 멜랑꼴리해져가지고 밤엔 이런 짓을 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어요.

<길 위에서>는 출간됐을 때 받은 책인데 그때는 좀 아닌 것 같았는데 좋아요, 이번엔. 곱씹으면서 따라가게 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여행이 진짜 여행인 것 같아요. 비트 세대도 모르고 재즈도 모르지만, 젊음은 제가 좀 아니까(!) 전에 부부가 아프리카 자전거 여행한 책을 읽었는데 그것만큼이나 따라하고 싶은 여행이었어요. 증거가 떡하니 있잖아요, <미국 서부 여행>......그것도 캠핑ㅋㅋ

저 러브레터는 실제로 날아오는 겁니까? 사랑엔 실체가 있어야 해요♡
굿나잇, 댈러웨이님.

transient-guest 2012-09-04 0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캠핑은 정말 로망이에요. 꼭꼭 save만 해놓고 있는. 시간도 그렇고해서 캠핑만큼은 아니지만, 하이킹이나 그냥 주립공원 숲에서 BBQ하는건 조금씩 다니고 있습니다. 하루만 다녀와도 스트레스가 확 풀리더라구요.

아이리시스 2012-09-04 17:31   좋아요 0 | URL
아니, 닉넴 왜 이러십니까!(초면에 이런..) 오래오래 계셔야지 단기체류 손님이라니, 오래오래 좋은 글 많이많이 보여주셔야 됩니다^^

미국 계시잖아요, 어느 쪽에 계세요? 거긴 덥지 않나요? 국립공원이 그렇게 좋아요?

미국생활 얘기 들려주세요, 특히 하이킹 일기 쪽으로...재밌을 것 같아요^^(멋대로 주제도 정해드림)
ㅋㅋㅋ, 책 보니까 여자에게는 추천할 수 없겠지만 남자와 함께라면, 가능하고 또 즐거울 것 같아요.

자연치유여행이란 말 믿지 않았는데 충분히 그럴 만 해요, 저는 그저 t-g님 부러울 따름. 하이킹이라니요ㅠ.ㅠ

맥거핀 2012-09-05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차를 타고 장시간 가는 것을 상당히 못견뎌 하기 때문에 미국 같은 데를 차로 여행하고 싶다거나, 버스여행을 하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별로 없어요. 영화에 나오는 그런 느낌이 좀 궁금하기는 하지만. 허허벌판에 가방 하나 가지고 내리고 버스는 등 뒤에 붕하고 떠나고 그런 거 말이죠. 저는 스케일이 작은 사람이라 아기자기한 동네가 좋습니다. 읽다보니 어렸을 때 보이스카웃에서 캠핑하던 추억이 생각이 나네요.

아이리시스 2012-09-06 00:22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 저는 자라면서, 학교 때도, 여행을 갈구하는 사람들만 두고 살아서, 잘 몰랐어요. 아무래도 성향들이 다들 몽상가적 기질이 함유된, 예술가 타입만 두고 살아서 그런가 봐요. 근데 저 대부분 공대나온 친구들인데, 웬 헛소리............( '') 기차타고 정동진 가려고 생각 중인데, 남쪽에서 올라가는 기차가 예전에는 새벽에 한 대 있었는데 요즘도 그런 지 모르겠어요. 그럼 맥거핀님은 애인하고 손잡고 기차여행 그런 것도 별로예요?

버스에서 내리고 제 뒤로 붕하고 떠나는 그런 거 저는 좋아요. 바그다드 카페 오프닝이요!

언젠 한 번 캠핑장에서 만나요~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띄엄띄엄 읽는 여름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번에는 한 권이라도 끝내보겠다는 결심이 다른 책을 쉬게 한다는 것. 무거워서 누워선 꿈도 못 꾸고 그저 책상에 좀 삐딱한 자세로 앉아 설렁설렁 넘겨본 지 어언 6년 쯤인가, 그러고 보면 학부 땐 참 좋았다. 도서관의 문학, 철학, 미학 코너를 특히 좋아했다. 미술사와 역사를 좋아한 건 한참 후였다. 온갖 책을 빼들고 커다란 테이블에 앉아 마구잡이로 넣긴 했어도 책냄새 가까이에 있었고, 그 무엇보다 책이 고귀하다는 걸 알았다. 책이 좋았지만 책보다 좋은 것들도 많았다. 강의와 강의 사이에 학교 밖을 나가 먹는 순대국과 소주라든가, 쉬림프 피자와 과일 에이드의 럭셔리한 런치세트라든가, 토마토, 바나나, 딸기, 오렌지 등등 날마다 메뉴가 바뀌는 인문대 매점 옆 생과일 주스라든가, 통학 1시간 30분 걸리는 버스 안에서 절반은 언니와 도란도란, 절반은 꾸벅꾸벅(차 안에서 절대로 독서 따위는 안해) 졸다 내려 고지대 아파트인 우리 집까지 외롭고 쓸쓸하게 걸어오던 별밤들 중 절반은 또 혼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함께 잡은 손도 있었고, 한쪽 어깨가 다 젖도록 우산을 씌워주는 든든한 팔이 있었고, 우릴 비추는 별빛도 있었다. 조금씩 커가기 시작한 어떤 커플은 이제 같은 거리를 자동차로만 다닌다.  

 



 

 


 







 

2009년 타계한 인류학의 대가 레비-스트로스는 프랑스 국적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상파울루 대학의 사회학 교수직을 맡게 되어 건너간 브라질에서 방학기간을 이용해 원주민들과 함께 거주하기 시작한다. 그의 나이 27세 때였다. <슬픈 열대>는 1937-1938년 브라질 거주체험을 토대로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 등 원주민 사회의 문화를 소개하고 분석하는 데 초점이 있다. 하지만 처음 가는 땅을 밟을 결심에 찾아가는 곳이 신대륙인 것마냥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아주 어려운 고전 같지만 인문학과 수기가 고루 섞인 전방위적으로 편안한 책이다. 그럼에도 레비-스트로스가 남긴 어떤 저작보다 유명하며, 한 권으로도 그의 사상과 철학, 일생을 바쳐 탐구했던 주제에 대해 짐작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 발전한 사회를 문명, 미개한 사회를 야만으로 재단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반기를 드는 한편, 두 사회는 그저 다른 종류의 모습일 뿐 더 우월한 사회를 가려낼 수 없음을 주장한다.


구조주의 사상/철학인들은 많다. 그래도 여러 사람들 중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것도 레비-스트로스다. 그의 업적을 평가절하해 오늘날 <슬픈 열대>를 남아메리카 대륙의 흔한 기행문으로 치부하려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사상의 질을 재단하며 우월함을 표식으로 삼는 서구의 지성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식인풍습을 절절히 묘사하면서 자신들의 전통에서 절도와 규칙을 잊지 않는 원주민들이 우리의 그것과 다를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 오직 외부인만을 그것도 다른 사람을 받아들여 동일화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는 끔찍하기도 하지만 이해못할 것도 없다. 1937년의 체험을 회상하며 1954-1955년 집필한 책. 누구나 오늘 했던 생각은 내일과는 다른 법이니 구시대적이라거나 기행문이라거나 그런 식으로 매도하는 대신 브라질의 원주민들을 보며 왜 그곳을 '슬픈 열대'라고 칭했는지, 지금은 다른지 그것만이라도 의식했으면 한다.

 

 

 

 

 

 

 

 

 

 

그 후 다시 <미션>의 오보에 소리를 듣는다면 이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흥미나 관심사가 아니라 교육으로 감상해야 느껴진다. 어느 밤, 아주 오랜만에 묵직한 작품을 틀어둔 거실은 쩅쨍하게 울려 이 세상이 아닌 듯했다. 총과 폭탄에 창과 방패로 대응하는 오프닝 장면에 사로잡혀 충격의 대치에 무기력해야 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했고, <제노사이드>에 묘사되는 문명과 야만의 기막힌 전복은 전율적이다. 시대가 달라져도 어느 대치점에서 반복되는 서구와 비서구, 문명과 야만, 우월과 원시 등 이분법적으로 결단내는 인간의 이기심과도 연통되고 있다. 초인류에 의해 전복되는 인류를 다루는 팩션까지 갈 필요도 없이, 동시대 지구를 살면서 밤낮없이 피흘리는 전쟁을 슬픈 지구라 명명한다. 아무리 구시대적이라고 해도 변화가 없다면 여전히 현재의 일이다. 바로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이 약 80년 전에도 일어나고 있었다는 뜻.

 

브라질은 라틴 아메리카 대륙의 국가 중 유일하게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 당시 브라질 영토 자체가 아마존강을 낀 절반이 삼림으로 우거진 무인지대에 가까워서 주로 해안가의 무역지가 개발대상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는 내륙지방의 아마존 원주민들과 강의 생물들까지 수난의 대상이 되는 몹쓸 광경을 본다. 자국의 자원을 흥청망청 써댄 결과, 대체품을 찾기 위해 숨겨진 남미나 아프리카 대륙을 들쑤시는 국가 선두에 단연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서구와 비서구, 문명과 야만의 전복을 주장했지만 말처럼 쉬운 전복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희망봉이나 킬리만자로의 눈, 아마존의 원시성을 상품화 해온 관광개발청과 여행객의 사상은 쉽고 빠르게 변하는 종류의 것이 아닐 수밖에 없다.

 

 

 

 

 

 

 

 

 

<제노사이드>를 읽으며 콩고를 여행하겠다는 다짐은,  K.A.가 아프리카 직항노선을 단독 운행한다고 해도, <미션>을 보며 파라과이와 브라질의 국경을 넘어보겠다는 소망은, <슬픈 열대>를 읽으며 브라질 원주민들의 삶과 풍속을 체험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얼마나 슬픈 지를 알았다. 손 꼭 잡고 더운 여름밤 좁은 골목길을 걸어 집앞까지 데려다주고선 무슨 일이 날까 들어갈 때까지 현관 계단에서 지켜보고 서 있던 스물 몇 살의 청년은 이제 없다. 대신 아파트 마당에서 자동차 헤드라이트로 라인 현관에서 집 현관까지 들어가 베란다에 불이 켜지는 걸 확인하는 서른 살의 청년이 생겨났다.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어도 추억할 수는 있는 것처럼, 오래 전 일이지만 전혀 달라지지 않은 현실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한때 공정무역에 이토록 공들였던 걸까. 커피를 제값 주고 사면 아름다운 거래를 하던 거라던 그 말에 속아 좀 더 지불하는 나는 좋은 사람이라며 자위하는 것인가. 세계 4대 박물관에 전시된 것들은 약탈의 역사라는 진실과도 상통하는, 달콤한 공정무역의 속삭임이 비정열의 위선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공정무역의 토대는 결국, 경제우월주의를 인정한 후에 받아들인 대비책에 불과하다. 당연한 걸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라고 할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리.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커피와 초콜릿을 끊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 인생 통틀어 별다방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점에서 우아떨어본 건 열손가락 이내. 시내를 꽉 채운 프랜차이즈 커피점이 이 거리 저 거리 하나둘씩 늘어나면 날 수록 그곳을 더 멀리하게 되었다. 그건 내가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국제적(지구적), 경제적, 개인적 사정이고 자존심이었다. 자존심과 고집을 지켜야 할 대상이 좀 변했을 뿐이다. 다른 하나는 동물보호다. 보호라기 보다는 사랑이고, 고기를 원래보다 덜 먹자는 것일 뿐이지만.

 

책은 광장에서 읽어도, 학교 도서관에서 읽어도, 집 가까운 대학 캠퍼스 통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읽어도 좋았다. 두 시간의 시급보다 비싼 커피와 디저트를 서구의, 젊음의, 쿨함의 인식인 양 즐기는 게 그때는, 싫었을 뿐이다. 그저 제철과일 주스를 길에서 마시고 되도록이면 먹고 마시는 건 좀 줄이고 절약하는 것. 먹지 않아도 소화를 잘 못 시키는 몸상태와는 별개로 세 끼 밥만으로도 딱히 S자 몸매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초콜릿은 못 끊었다. 초콜릿은 너무, 그러니까 너무, 여자에게 필요하다.

 

 

 

 

 

 

 

 

 

 

그래서 레비-스트로스의 다소 감상적이고, 스물 일곱 살 먹은 유럽 청년의 남미 방랑기는 신대륙 체험인 동시에, 프로이트 이론과 언어학 그리고 맑스주의에 빠져들었던 영향과 맞물려 문화우월주의를 거부하는 문화상대주의자의 면모로 나타난다. 1930년대 브라질 원주민 시대를 회상하는 1950년대 글이라 대단한 상업주의나 경제주의보다는 문화적 차이와 전통의 서술에 그쳐, 더이상 분노가 치밀지 않는다는 건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슬픈 열대>는 가벼운 수기로 읽어도 좋지만 전공자 아닌 독서가에게는 사상적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발단이 된다. 문화 상대주의의 예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비교대상이 충만하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식인풍습과 형벌제도를 다른 방식의 문화라고 인식하는 점에서는 기발하기까지 하다. 식인풍습이 대상의 힘을 끌어안는 걸로, 형벌제도가 대상의 힘을 꺾어버리는 것으로 이해하면 모든 현상에 저마다의 이유를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거꾸로 가지 않는다. 소중한 이가 죽으면 홀로 땅에 묻어놓은 게(뿌려놓은 게) 미안해 인간은 자연에서 속세로 여행 왔다가 다시 자연으로 가는 거라고 해도, 물이 온도에 따라 얼음이 됐다가 수증기가 될 수는 있는 거여도, 한 번 약탈하고 빼앗은 것을 다시 돌려준다 해서 빼앗기 전 상황으로 완벽히 복귀하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배우지 않고도 알 수 있다. 하물며 이런 바람 속에 비가 내리면 한 번 가지고 나간 우산 또한 그 이전의 우산과는 다른 법인데, 그런 생각하기 시작하자 어쩐지 좀 슬펐다. 슬픈 젊은 날 같은 것만 슬플 줄 알았는데 변하지 말아야 할 것과 지켜져야 할 것들이 그러지 못하는 상황만큼 슬픈 것도 없다. 


누군가는 유명한 사회학자의 인기도서로 선택할 수도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내게는 인류학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를 몰랐을 뿐이다. 법의학과 수사집, 판결문을 읽는다고 내가 검시관이나 형사, 검사가 되는 건 아닌 것처럼 인류학자나 사회학자가 아닌 내가 인간, 나아가 인간을 구성하는 사회, 사회의 문화와 전통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서부터 왜 이렇게 사는지에 이르기까지 알기 위해서 무얼 해야 할 지를 몰랐다. 직접 체험에서 오는 풍부한 수기는 흥미로웠는데, 식민과 원주민, 문화와 풍습의 진화는 놀라운 것과 이미 알던 것이 혼동되지만 유익했다. 내가 그곳에서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능력이나 진화의 차이가 아니라 습관이나 생각의 차이일 뿐, 어렵게만 보이던 <슬픈 열대>를 아득한 슬픔으로 기억하는 지금, 레비-스트로스의 타계는 3년 전이 아닌 지금 내게 아.프.다. 아.쉽.다. 누군가의 일생을 오롯이 이해한다는 건 아주 어렵고 고귀한 일 같다. 업적이라면 그보다 좀 덜하겠지만 일생 바쳐 이룩하거나 조사하거나 매달린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 누군가 부러워지는 날들이다. 내 질투는 주로 추상성에 기초하고 있다.

 



 

 









 

이 책으로 구조주의를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치 소설을 어느 정도 읽으면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마냥 눈에 들어왔다. 입문서조차 낑낑거리며 보게 생겼으니 지금 이 순간부터 독서일기는 모조리 다시 씌어야 할 것 같다. 레비-스트로스는 기행에 버금가는 사상철학체험을 총망라한 인문서를 내밀었다. 인문서는 딱딱하다는 편견을 씻어주고, 인문서도 감상적(감성적)으로 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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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8-28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풍에 무사하신거죠?^^

2012-08-28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8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30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30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9 0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30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맥거핀 2012-09-05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조주의..사실 처음에는 상당히 놀랐어요. 푸코, 레비스트로스, 소쉬르..어떻게 그렇게 절묘하게 딱 맞아떨어지는지..이거 정말 대단한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근데 그 이후에 구조주의의 문제점, 폐해 등을 다룬 강의를 들으면서 인식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습니다만, 아직도 그 도식들을 보면 꽤 감탄하게 되요.

근데 요즘에 매일 글을 한개씩 쓰시네요. 허허허..반성합니다.

아이리시스 2012-09-06 01:21   좋아요 0 | URL
이 페이퍼 웃기죠? 서구가 비서구를 보는 방식에서 라다크 갔다가 공정무역 찍고 약탈갔다가 유전갔다가 구조주의, 쓰고나서 내가 미쳤었구나..... 뭐 방향도 없고 아는 것도 없어서 용감했습니다ㅋㅋㅋ

그러니까 지금으로선 저 크게 넣은 최근 책이 제일 쉬운 책일까요?(전문가 도움이 필요해요)
여느 학문은 서로가 서로를 엎으려고 최선을 다하기 마련이니까요.

매일 한 개씩이면 좋겠지만, 잘 보면 뜸했을 때 있어요, 그때 써뒀던 글입니다. 하루에 저 긴 글이 뚝딱 완성되지 않..않을 뿐더러.. 요즘은 시간도 없..없어서 하나하나 리뷰써야 하는데 것도 귀찮아서 편법을 쓰는 거예요. 이걸 뭐하러 털어놓는지 모르겠네요. 가만있으면 중간은 갈텐데.(후회중)

맥거핀님, 이삿짐 정리는 끝내셨나요, 이제 극장 가시면 되는 거예요? 피에타 보러?

맥거핀 2012-09-06 22:02   좋아요 0 | URL
어..그니까 그게 대단한 거에요. 뜸했던 때도 사실 뭔가를 쓰고 있었다니..그리고 그것을 바로 올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다니..

아..피에타 개봉했나요.(개봉했는지도 모름..;;) 베를린에서 엄청 호평이라는 소식만 듣고 있습니다.
 
시르트의 바닷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1
줄리앙 그라크 지음, 송진석 옮김 / 민음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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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중. 우리의 처지다. 남발공약으로 징병제 폐지를 들먹인다거나 정치/경제/외교적으로 얽힌 독도에 깜짝쇼식으로 한 번 갔다온다거나 해서는 곤란하다.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지지 철회로 압박하는 일본도 웃기지만 그보다 웃긴 건 내부분열하는 우리다. 그래서인지 <시르트의 바닷가>가 색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독도에서는 벌써부터 군경 통틀어 풀가동 수비를 서고 있고, 윗 대가리들 싸움에 괜한 말단들만 고생하는 게 이 세계 룰이긴 하지만 휴전이 장난인가? 심심하다고? 권태? 위험과 불안을 도발해보시겠다고? 시르트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한반도에서는 무슨 일이 날 수도 있을 것 같다. 갑자기 일본과 북한과 한국의 관계가 삼각으로 섞인 게 한탄스러워져 나온 문장들.. 안보리 상임 이사국은 되고 싶고, 고귀한 역사를 지닌 타국의 영토인 독도는 자기네 땅 하고 싶은 게 지금 일본이다. 안보리의 기본적 역할에 대해 모르는 건가. 상임 이사국이 돼서 이 나라 저 나라 운명을 손에 쥐고 아무렇게나 표결만 갈기면 그게 국익인가.  

 


이 소설은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데, 오히려 문학적 도발에 10페이지 읽어내리기가 벅찬데, 문학과는 달리 세상은 참 시끄럽기만 하다. 


쥘리앙 그라크는 1951년 이 작품으로 받게 된 콩쿠르 상을 거부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왜 거부했는지에 대해서는 책날개에 씌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은둔하는 이미지를 획득하면서 주류 문단과는 영영 결별하는 셈이 되어 자국에서조차 그라크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베일에 쌓여있다고 한다. 사연이 궁금하지만 그런 건 찾지 않는 게 옳다. 알려지기 싫다잖아. 작품으로 승부하고 싶다잖아. 잊혀지고 싶은 사람은 잊혀지게 두고, 나오고 싶어할 때 반기고 그럼 안되는 걸까.

 

<시르트의 바닷가>를 읽으면서 내 안의 이중성을 발견했다. 그림에 있어 늘 초현실주의보다는 인상주의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줄거리보다는 문체에 감탄하는 취향이라 이게 문학으로 오니까 인상주의보다는 초현실주의로 탈바꿈한다. 다중이로 좀 살아보지 뭐. 라고 일단 둘러친 다음.

 

몽환적이면서 아득한 문장이다. 지루하지 않다고는 안했다. 이 지루함은 취향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지 재미없는 걸 있다고 할 수는 없는 법. 여전히 잘 읽히지는 않지만 집중하면 다음 문장을 읽지 않을 수 없게 문체의 매력이 상당하다. 그래서 호불호 또한 심하게 갈릴 것이다. 이건 문체에 대한 것일 뿐이지만 내용도 상당히 없다. 한방이 없고 여기저기 서걱거리며 겉돌기만 한다. 앞 문장이 뒷 문장을, 뒷 문장이 앞 문장을 부연하며 소설이 한 편의 시처럼 씌어졌다. 적막한 시르트 기지에서의 공허한 낮과 밤을 인상적 풍경화로 스케치하고, 탁월한 시적감각과 감수성으로 승화시킨다. 환상적이고 마술적이다. 처음에는 스페인의 극작가 로르카를 연상했지만 로르카가 아름다운 문장으로 사유한다면, 그라크는 서술을 하고있다. 상당히 다르다. 비슷하지 않다. 연상이 틀렸다. 안고 안긴 문장을 단번에 캐치하기도 어렵지만 단 한 문장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할 휘발성 마력을 지닌 글이라 탐냈다. 

 

사건이 아니라 사건이 일어나기까지를 스케치한다. 아무 일도 없는 상태를 모든 일이 있는 것처럼 그리려니 얼마나 세세한 터치가 필요했을까. 실제로도 가장 넓은 곳에서 가장 구석진 곳까지 세세히 묘사한다. 알갱이가 보라빛, 핑크빛, 회색빛으로 각각 반짝거린다. 그곳에 있는 해군과 관리들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인데 읽는 나는 망원경으로 그들이 겪는 삶의 풍경을 관찰하는 것처럼 재밌다. 날카로운 시어가 관통하는 권태로운 일상은 마치 평화를 넘어선 평화를 연상시킨다. 바다 가운데 나홀로 남은 낙후한 요새의 풍경과 일상을 한 편의 시로 쓸 줄 아는 작가라면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의 문장들은 또 얼마나 황홀할까.

 

그라크라는 작가가 세상에서 숨어버린 게 수긍이 간다.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 옳다.


은밀하면서도 경이로운 꿈이 가상 국가 오르세나의 버려진 땅 시르트로 전근간 젊은 귀족 알도의 눈을 통해 펼쳐진다. 낡게 버려진 땅, 문을 열고 나가면 끝없이 푸른 잿빛의 바다가 펼쳐져 있다. 이곳을 지키는 해군기지 간부들은 바다 건너편 이웃 국가 파르게스탄과의 휴전 이후 할 일이 끊긴 지 오래다. 권태로운 일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하는 곳. 이미 전쟁이 끊긴 지 300년 지난 이 요새 같은 곳에 모인 이들은 양치기나 동물 사냥 등 이득되는 일과 한량의 취미생활에 집중한다. 안보를 위해 파견된 땅에서 돈놀이가 급급해지고 모두들 권태에 찌들었다. 아무 일이든 일어나기만 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기대와 어떤 일도 일어나서는 안되는 규칙적 평온 사이의 갈등은 내밀하게 그려진다. 어느 쪽이 더 나은지, 어느 쪽을 더 원하는 지에 대해서는 그들 자신도 알지 못한다. 이곳을 오래 지켜온 마리노 대위는 안정을, 감찰대장으로 파견된 젊은 알도는 불안을 원한다. 고요한 물결을 흐리는 한낱 파도처럼 시르트의 기지에 폭풍전야의 긴장이 감돈다.

 

나는 규칙 없이 살았다. 시간표는 해군기지의 모두에게 단조롭지 않았다. 날씨의 우연과 바다의 변덕에 좌우되며, 느리고 매우 모호한 활동 가운데 시간표는 거의 농부들의 것에 가까운 다양함과 불연속성을 띠었고, 나는 그 누구보다도 쉽게 그것의 미미한 제한에서 벗어났다. 처음 며칠 동안 나는 자유와 공허에서 오는 일종의 얼떨떨함으로 고생했다. 나는 동료들이 즐길뿐더러 견디기 어려운 고독의 시간을 짧게 해주는 격렬한 운동에 맹렬히 뛰어들었다. (p.34)

 

알도는 금새 이유모를 불안을 감지한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데서 오는 권태적 회의와 비일상적 풍경이 주는 기시감이다. 사무실 책상 위에 해도가 펼쳐져 있다. 건너편에는 우리와 같은 이들이 지키는 요새가 있을 것이다. 미지의 공간을 공상처럼 펼치며 이 세계의 균열과 앞으로의 삶과 생활과 수없이 보내야 할 낮과 밤에 대해 생각한다. 간혹 전에 있던 도시의 화려함이 떠오르지 않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이곳에서의 예외성이 마음이 든다. 예외적 존재이자 감시관 알도를 좋아하면서도 불안해하는 마리노 대위와의 긴장감은 작품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불안을 감지하는 이, 불안에 다가가는 이, 불안을 회피하는 이, 불안에 맞서는 이들의 욕망이 한곳에서 만난다. 건너편에 존재하는 국가의 변화에 대한 미온적 감지는 이곳 사람들에게 희망인 동시에 절망이다. 희망과 절망이 서로의 반대말이 맞다면, 이 예외성은 평온한 상태를 거부함으로서 권태와 환멸을 제거한 채 올바른 위기로 기능할 것이다. 알도가 희망하면서 희망하지 않는 것, 마리노 대위가 평생을 바쳐 지키고자 한 평화 속 균열, 알도가 느끼는 이곳과 저곳의 차이, 선택의 기로, 당신은 어느 쪽을 원할 거냐는 물음까지, 소설은 완벽하게 나아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때로 더 두려운 법이다. 제거할 대상이 뚜렷하지 않을 때 제거해야 할 것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시르트는 300년간 평온 속의 불안을 견뎌왔고, 그것이 일상이 된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선다면 결말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바깥 세상과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한편 독자를 기가 질리게 만든다. 번역이 이 정도라면 원문은 어느 정도일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어딘가 갇혀 사흘쯤 아무 할 일이 없을 때, 가진 책이 달랑 이것 뿐일 때 최고속도로 읽힐 것 같다. 생각이 없으면 진도는 나아가기 마련이다. 급하지 않으면 반드시 끝을 봐야 한다는 강박도 사라진다. 한여름 전국일주를 하면서 포항과 영덕 사이 작은 해수욕장 근처 작은 민박에 묵은 적이 있다. 문을 열고 나오면 바다냄새가 훅 끼쳐오는 바닷가 마을이었는데 <시르트의 바닷가> 표지그림이 잊었던 시간을 떠오르게 한다. 문을 열면 바다로 뛰쳐나갈 수 있는 바닷가 마을을 한 군데 알고 있다. 내내 로망이었던, 하지만 살기에는 겁이 났던, 어떤 곳.

 

이 아름다운 소설이 언젠가 시르트의 바닷가 추억을 나만의 바닷가 추억으로 전환시킬 지도. 하루에 한 권, 일주일째 소설이 참 잘 읽히는 시절을 살고 있다. 시르트 바닷가에 머무른 날은 단 하루였기에, 빛나는 햇살 아래 잔잔한 물결이 넘실거리는 바다처럼 푸르고 평화로웠기에 절대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숨이 막힌다. 세상에서 버려진 땅으로 숨어버리고 싶은 또 하나의 여름을 과거로 보내는 중이다. 몸이 약한 엄마가 이 무더운 여름을 꼬박 다 보내고 여름의 막바지에 가서야 날 낳았다는 걸 믿을 수가 없다. 물론 가을 중순에 태어나야 할 내가 한 달이나 일찍 태어나 막바지 여름과 초가을 한 달을 어느 바다 동네 언덕 위에 있는 아동병원 인큐베이터에서 하루 3만원짜리 잠을 자긴 했지만. 내 처음 한 달은 고귀하고 벅차고 걱정스런 삶이었다. 거의 다 들은 말에 의한 거지만. 죽을까봐 안지도 못했다고 엄마와 아빠는 말했다. 나는 죽지 않고 살았다. 철마다 지독하게 앓는 감기몸살과 비염 외에는 아픈 적도 거의 없었고(그것들이 진짜 독했다) 내가 느끼기에도 충분할 만큼 아들인 동생보다 더 사랑받았다. 내 동생은 짧은 인생 자체가 다소 롤러코스터 같은 아이였다. 뭐 거의 본인이 저지른 일이니 훈장처럼 달고 살아도 좋겠지만. 욕심도 많고 고집도 세고 성깔도 있어서 그애가 늘 불안한 반면 또 애착이 컸기 때문에 부모님의 관심은 늘 그애에게 쏠려있었지만 내가 받은 믿음은 더 컸다. 지금은 내가 좀 더 내다버리고 싶은 자식인 것 같지만. 어쨌거나 시작부터 끝까지 내 인생은 바다를 빼면 남는 게 없다. 바다는 설렘과 고독과 시끌벅적함과 외로움과 시림과 차가움과 시원함을 동시에 가졌다. 모든 시작과 마지막을 바다에서 할 것이다. 사랑의 순간들까지도. 그 중에서도 곧 다가올, 여름이 지난 후 쓸쓸히 버려진 쌀쌀하고 달콤한 늦가을과 초겨울의 밤바다를 나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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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1 16: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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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1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1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1 19: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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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1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1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이런 책은 읽기가 버거워요. 진짜 한적한 바닷가 민박집에 이 책 한 권만 가지고 가면 읽을 수 있으려나? "내용 이전, 문체의 매력" 얘길 하니까, <작은 것들의 신> 생각이 나네요. 완전 예찬하면서 읽다가 갑자기 뚝 끊긴 이후로 5년 이상 중단된 책. 이 책도 문장이 너무 매력적이었지요. 근데 <시트르의 바닷가>는 이 책보다 왠지 '난독'으로 치면 한 수 위일 것 같은 느낌!! ^^ 이런 책도 읽다니 아이리시스님 대단!

아이리시스 2012-08-21 19:46   좋아요 0 | URL
이건 정말 누구한테 읽으라 그럴수도 없고..(돌 날아올테니까요) 참..근데 나름 매력은 또 있거든요. 그냥 저나 읽죠 뭐ㅎㅎ 그냥 여행 포기하고 도시로 올 듯ㅋㅋㅋ

<작은 것들의 신>이 문체가 좋구나, 저도 그 책 있어요. 작년에 샀어요. (진짜 저 뭐 안 산 책이 없나봐요) 그치만 그 책은 줄거리도 좋을 것 같아요. '난독'은 이 책이 대단해요. 이런 책은 차라리 속독해야 그나마 끝까지 볼 수 있어요. 아니면 철저히 문학적 모드로 접근해야 해요. 대단한 건지 미련한 건지..

다시 도시생활 화이팅이에요, 섬님^^

댈러웨이 2012-08-2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환적, 아득한'에서 이건 내 책이야 했다가, '문체, 세세한 터치'라고 해서 고개를 저었다가, 결과는, 올려 놓은 본문 인용 글 + 아이님 리뷰 = 책 산다.

하루에 한 권이라는 독서력은 대체 얼마의 내공을 쌓아야 가능한 거에요? 좀 알려줘요. (4일이 지나도록 지금 읽는 이 책은 이제 절반. 무슨 책인지 알죠? 처음엔 한 시간에 한 10페이지 읽었어요. 원서 읽는 것도 아니고, 나 어떻게??? ㅠ.ㅠ 문체, 중요할 텐데, 장식은, 이번에 아주 질리고 있어요.)


설령 갖다 버리고 싶더래도 고 쪼만했던 아이가 지금까지 잘 살아 주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워요. 고마워요.

아이리시스 2012-08-22 00:02   좋아요 0 | URL
책의 질이 다르면 돼요! (저 아직 안갔어요..) 에잇 모르겠다, 잘 읽히는 책 읽으면 돼요. 근데 거기에 [자기만의 방]이랑 [말테의 수기]가 들어가니까 좀 신기한 거지만.. 저는 너무 재밌더라고요. 묘사많은 거, 문체 좋은 거, 그런 거 좋아요. 댈러웨이님은 다 빡빡한 책들만(!) 보시니까 그런 거고, 저는 안 빡빡한 책도 많이 봤거든요. 거기로 건너가려면 다 한 문학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을 것도 같아요. 하루만에 확 읽혀봐요, 댈러웨이님 기둥 뿌리 뽑아야 할 거예요.

그래서 저도 그 책 가진 거.. 좀 읽었는데.. 예전에는 아름답다고는 생각을 안하고 그분이 왜 그 책이 좋다고 했을까..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을까.. 했거든요. 솔직히 얼마나 지겨워요, 댈러웨이님이 아름답다고 하셔서 아~ 하게됐죠. 주렁주렁해요, 문장이. 근데 재밌는데요, 제 기억력은 얕은 것도 아니고 아예 없나 봐요. 저는 그냥 읽을 당시에만 기억해요( '') 그 책은 꼭 봐야 해요, 제가 좋아하는 책이니까요. 오홋.

걱정마세요, 아직은 갖다버리고 싶다고는 안하셨어요ㅋㅋㅋ (아마도 참고 계실 듯..)

댈러웨이 2012-08-22 00:45   좋아요 0 | URL
잠깐만, 저 이 댓글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아, 저 이해력 지금 엄청 떨어지고 있어요. 아이님때문에 정신 공황 상태라. 무슨 책 우리 얘기하고 있는 거에요? <마담 보바리>? 저 그 책 아름답다고 한 적 없는 것 같은데. <채털리->가 아름답다고 했는데. <마담->은 지금 읽는 중이니까 끝까지 읽어야 뭐라 말할 수 있겠어요. 아이님이 좋았다면, 일단은 참을만하겠어요. 그래요, 문장이 주렁주렁, 미치겠어요 아주. ㅠ.ㅠ 이 차이가 더 극명한 이유는 로렌스 읽다가. 로렌스 문장 아주 똑똑 끊어져요. 난 이런 글이 더 좋다는 걸 이제 알겠어요.

어쨌거나, <말테->, 저 이 책도 고생 엄청했는데. 초반부에서만 좀 휘어잡혔는데 중간에서 영 삼천포로 빠졌어요. <자기만의 방>은 참 좋아요. 읽었다니 막 고마워지네요. ㅎㅎㅎ

근데, '거기로 건너가려면'이 무슨 말이에요? 불문학? 유럽문학?

p.s. 아이님 이렇게 온라인에서 오래 놀 때는 대작 준비하고 있는 거에요. 저 지금 기대 만빵하고 있어요. ㅎㅎㅎ

아이리시스 2012-08-22 00:59   좋아요 0 | URL
왜 이러는 거예요, 자꾸 이러심 진짜 김연수 미워할 거예요!(ㅋㅋㅋ) '거기로 건너가려면'은 바다 건너가면, 이란 뜻이고(배송료 엄청 든단 뜻이고). 책은 저한테 둘 다 별 차이 없거든요. 둘 다 대학 때 읽었던 거라서.. 누가 뭐래도 다 제가 읽은대로 기억하니까.. 엉뚱한 소릴 저렇게 하는 거예요ㅋㅋ 그래도 보바리가 더 좋은데, 저는 프랑스 작가가 좋아요. 다 비슷한 시절에 읽어서, 제가 쓸 때의 뜻은 김화영 쌤의 번역이 아름답단 얘기를 하는 거였을 거예요, 아마도.

로렌스는 저기 위에 [아들과 연인] 좋대요. 한 5년 전부터 보려던건데ㅎㅎ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친구가 추천해줬어요. 근데 뭐가 좋다고는 말을 안해줬는데..(안 좋으면 어쩌지..)

아니에요, 고장난 동안 못본 드라마 엄청 다운받고 있는 거예요. 아몬드 먹으면서요ㅋㅋㅋ

2012-08-22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2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2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2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8-23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다 좋아하시는구나..좋아하실 수 밖에 없나? ㅎㅎㅎ
전 바다가 없는 곳에서 살아서 자주 바닷가에 놀러갔었는데 물을 무서워해서 그런지 바다는 동경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예요. 넘실대는 파도가 배 위까지 차 오르면 그때부터 숨쉬기가 곤란해져요.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는 식성도 한 몫 할지도 몰라요. 바다 내음 나는 식품은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언젠가 포항과 부산의 도심을 걸은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화려한 도시 가운데서도 바다 냄새가 난다는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난 바닷가 도시에서는 살기 어렵겠다...는 생각도..ㅎㅎㅎ
하지만 여행은 좋아요!

벌써 1년이네요! ㅎㅎ

아이리시스 2012-08-23 16:29   좋아요 0 | URL
바다 자체보다는 바다의 상징을 좋아하는 걸 거예요. 농촌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은 도시의 편리함에 길들여지면 농촌의 한적함보다는 불편함만 눈에 들어오니까 좋아할 리가 없는 것처럼, 알기 때문에 로망도 있고ㅎㅎㅎ 예를 들어, 지금 그린란드나 노르웨이나 덴마크나 스웨덴이 그냥 북유럽으로 묶여 기억되는 것처럼.. 근데 저는 여러 바다를 알고 있으니까 바다마다 다 특색이 있는 것 같고..물놀이는 해본 적이 없는데도 바다를 배경으로 한 단막극을 잘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현맘님 들통 많이 났어요. 수영도 못하고 해산물도 안 좋아하시고! (저랑 똑같아요ㅎㅎ) 저는 원래 가리는 음식, 잘 못먹는 음식이 많은 편인데(글쎄, 그렇더라고요) 부산사람이 회나 조개구이, 해산물 못 먹는 건 외계인 같다면서요. 저는 그거 다 잘 못 먹어요. 먹는 유일한 해산물 아니 음식이 미역국.. 미끌한 거 싫은데 그건 맛있더라고요ㅎㅎㅎ 심지어 조개 넣으면 한 알 맛까지 기억해요. 싫어ㅠㅠ 이건 제가 한 수 위일 걸요. 조개국물맛이 다들 시원하다고 하니까.. 이 얘기 하니까 생각난 건데요, 콩밥이 싫은데 엄마가 자꾸 콩을 넣으려고 하셔서 맨날 싸우거든요. 그래서 엄마가 하기 전에 얼른 쌀 한바가지 퍼서 현미밥 해놔요. 007작전...ㅎㅎㅎ

아~ 그런데 정말 도심에서 바다냄새가 나요? 저는 자갈치나 송도 바닷가 정도에서 그걸 느껴요. 근데 거긴 수산시장이 있는 곳이니 당연한데, 타지역 친구들이 부산역에서 내리기만 해도 그렇다고 해서 이해를 못해요. 하긴 우리집에서도 베란다너머로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이니, 못 맡는 거지 안 난다고 하기도 어렵겠어요.

벌써 1년은 세계지도 후 1년을 말하는 거죠? (그때 주신 스케줄러는 아직도 잘 모시고 있는 중임)

저 어릴 때 강릉하고 정동진 차례로 찍었는데 좋던데, 사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바다풍경 중 하나가 해운대예요. 시끄럽고 정신없고 부딪치고 온갖 주점에다가..글쎄, 해운대 뒷골목에는 창녀촌도 있어요!

p.s. 이거 무슨 초딩 편식일기 같아요ㅎㅎㅎㅎㅎㅎㅎ

cyrus 2012-08-23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은 좀 어렵네요. 우리 집에 있는 민음사시리즈 세트에 있긴 한데, 과연 이 책을 언제 읽을 수 있을까요??
ㅎㅎㅎ 원래 여름방학 때 민음사 세트 완독 목표였는데 공부와 다른 책들에 치이다가 읽은게 별로 없네요.
그나마 읽은 게 고작 <설국>뿐이에요 ^^;;

아이리시스 2012-08-27 01:36   좋아요 0 | URL
이 책 이제 더 읽기 싫겠죠? 모르고 도전하면 나은데, 알고나면 더 힘들잖아요.

책읽기가 원래 꼬리에 꼬리를 물기 마련이라 확 쏠릴 수밖에 없잖아요. 저 지지난달엔가 세상에서 읽고싶은 책이 [십자군 이야기] 뿐이었거든요. 책만 사놓으면 안 좋은 게 사놓고 묵히다 신간가격으로 산 게 구간에 팔리고 있으면 언제부턴가 짜증스러워서 꼭 읽고싶은 것만 사기로 했는데, 그걸 하루이틀 묵히다 구입을 한 달 딱 늦췄더니 관심이 싹-하고 날아갔어요. 저는 이 정도-ㅎㅎ

언젠가 다시 보긴 하겠지만 다시 전쟁이나 세계사에 미쳐있을 때여야겠죠. 시루스님은 책 엄청 읽으시더만..^^
 
순수 박물관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7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이 파묵의 첫 타자가 되어서는 안되었다. 처음에는 몰랐고,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파묵이라는 생소한 터키 작가를 알게 한 노벨상의 존재를 고려했다면 그가 노벨상 수상 '이후' 출간한 이 책을 시작으로 삼는 건 어쩐지 반칙 같은데 이미 읽은 거 물릴 수도 없고 그래서 일단 시작을 되짚어보면, 날 혹하게 했던 '순수박물관' 이벤트가 있었다. 핑크색 글씨 속 이벤트 당첨자 명단 열 번째에 운좋게도 내가 있다. 나는 이제 다른 책을 구입하면 된다. <하얀 성>이라든가 <눈>이라든가 시린 겨울의 찬 온기를 마구 뽐내는 그런 리스트로 말이지.

 

오르한 파묵의 '순수박물관'

 

때맞춰 찾아온 이벤트에 읽고 싶은 책을 장바구니에 넣어서 결제하고 기다리는 즐거움을 잃었다. 책을 받았다. 내게는 터키어를 전공한(정확히는 중앙아시아어다) 친구가 있고, 이스탄불이 낯설지 않다. 동양과 서양의 경계에서 두 문화의 빼어난 점만 간직한 도시라고 터키를 방문한 이들이 말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묵이 그리는 이스탄불의 1960년대 풍경이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문화적인 면에서 여자에게 기대되는 첫경험이나 순결같은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고, 이 소설의 주인공 케말이 이스탄불의 상류층 서른 살 청년이기 때문에 내가 보고 있는 이 배경이 이스탄불의 보편적 모습인지 잘 모르겠는 것만 제외하면 소설이 향하는(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완벽하다. '사랑'이다. 그것도 44일 사랑하고 평생을 찾아헤매는, 영원에 걸친 어느 남자의 어떤 여자를 향한 사랑이다. 다소 이질적인 터키식 이름이 집중도를 흩트리지만 마르케스만 할까, 제자리를 찾는 순간 곧 빠져든다. <순수 박물관>은 마법같다.

 

케말은 시벨과 결혼할 예정이다. 좋은 집안에서 우수한 교육을 받은 요조숙녀로, 꽉 막히지는 않은(그러니까 순결을 고집한다던가 하지 않는) 현대적 여성으로, 집안에서도 기대를 한몸에 받는 커플이다. 그가 이뤄온 것만큼이나 그녀와의 미래가 탄탄할 거란 걸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먼 친척뻘인 이모(고모)의 딸 퓌순을 만나면서부터다. 열 두 살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고 수줍으면서 강렬한 그녀의 매력에 하염없이 빠져들어간 그는 용기를 내보기도 전 이미 그녀의 입술을 훔치고 그녀를 끌어당겨 안아 침대로 간다. 사랑이 먼저가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이 먼저 서로를 지배한 것. 그는 그 여자를 가졌지만 계속 갖고 싶어하고(잠자리 몇 번 한 걸로 여자를 다 가졌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지만, 누구를 알기 위해선 늘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침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벨과의 결혼을 깨거나 엎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쁜 놈. 안정된 결혼과 끌어당기는 강렬한 욕망 사이에서 방황하지만 곧 시벨과 결혼하여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이 '사랑'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녀에게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모른 채 초대장을 보낸 그는 결혼식 이후 다시는 퓌순을 보지 못한다.

 

퓌순을 영원히 찾지 못하게 되고나서야 그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깨닫는다. 그녀에 대한 사랑은 저울질해서는 안되는 감정이었다는 걸 안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사랑은 늘 끝났기 때문에, 잡을 수 없어서 더 간절해진다. 이스탄불에 있는 순수 박물관에 대해 말해보자. 파묵은 이 소설을 쓰기 전부터 실제 박물관 개관을 계획했다고 한다. 소설 속에 등장한 배경과 소품, 케말과 퓌순의 사랑을 매개하는 것들을 직접 수집해 오브제로서의 박물관을 꾸렸다. 그리고 개관했다. 소설을 읽고 방문한다면 박물관에서 그들의 사랑흔적을 찾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모든 것이 있어도 케말과 퓌순은 없단다. 아쉬운 소식이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박물관은 지금껏 천안에 있는 '독립 기념관'이었다. 커서는 못 갔지만 어릴 적 몇 번의 기억만으로 시대별, 주제별로 번호가 붙어있어 하루종일 관람해도 끝까지 가기가 벅찬 이곳은 환상적이면서도 아팠던 어린 시절 가장 큰 아이러니였다. 독립하기 위해 발버둥쳤던 세월은 누군가에게 눈물이었을텐데, 아픔을 재현한 곳에서 나는 즐거워하다니 모순도 그런 모순이 없었다. 순수 박물관을 방문하는 자국인들의 마음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곳은 역사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사랑'을 담은 곳이자, 지나간 시대의 터키문화를 한눈에 전시한 곳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파묵의 <순수 박물관>의 오브제를 전열한 공간이지만 말이다.

 

예전에 전경린은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이란 소설에서 이 세상 모든 연인들이 헤어지면 함께 나눈 '사랑'은 다 어디로 사라질까 궁금해했고, 나는 지금 이 순간 잃어버린 내 순수에 대해 생각한다. '사랑'은 다시 오는 게 진리지만, 한 번 잃어버린 순수는 곧 과거와도 같아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우린 그걸 알고 있다. 오늘이 내일이 되는 순간, 오늘의 순수는 내일 속에 없다는 것을. 지금도 케말이 찾아헤맨 것이 오로지 퓌순이었는지 확신할 수가 없다. 그는 결국 잃어버린 자기 사랑과 용기내지 못했던 비겁함과 돌아오지 못할 과거의 순간을 평생토록 찾아헤맨 게 아닐까. 어떤 한 존재가 오로지 다른 한 존재를 사랑이란 이름으로 30년간이나 찾아헤매는 일이 가능할까. 늘 과거를 되새김질했지만 과거가 다시 오길 바라서는 아니었다. 시간은 수평선 위에 있지만 나는 뒤로는 절대로 움직일 수 없는 선을 일평생 살아간다는 걸 가장 잘 받아들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썼다. 파묵은 이렇게 우리의 지나간 모든 시간들을 모아 박물관을 만들기도 하니까.

 

시간은 돌아온다. 기다리지 않은 건 우리다. 순수는 그대로다. 변해버린 건 우리다. 시간이 우릴 변하게 했다고 투정하지만 우린 그저 스스로 혹은 각자가 변하고 싶었기에 변한 것이다. 이 세상 모든 박물관은 시간을 멈춘다. 변한 건 너뿐만이 아니라고 위로하는 것처럼, 도시 곳곳에 우뚝 서서 우릴 위로한다. 슬프지도, 즐겁지도 않은 순수 탐험이 책을 덮으며 나는 조금 슬펐다. 눈처럼 맑고 깨끗했던 그 시간 속에서 내가 어땠었는지 기억나지 않아서. 순수는 박제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박물관은 존재의미를 갖는다. 내가 어떤 시대를 여전히 그리워하거나 영광스러워하거나 아파하는 것처럼 그것들은 박제된 채 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린다. 케말에게 퓌순은, 언제나 제자리에서 자길 기다릴 그런 시간의 또다른 이름 아니었을까. 그게 아픔이든 슬픔이든 기쁨이든 영광이든 그에게는 상관없었을 것이다. 이스탄불을 생각하면 이 여름처럼 습기차고 뜨거운 태양 아래 작은 방 어느 침대 위 서로가 서로에게 집중하며 땀을 흘리는 남자와 여자가 떠오른다. 그곳에 훗날 무엇이 어떻게 될 것인가 따위의 계산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박물관에는 전시되어야 할, 소중히 이름붙여진 그것들만 자리한다.

 

과거에도 내가 있고 미래에도 내가 있다. 늘 지금 뿐이라는 건 너무 가혹한 오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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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2-08-18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수 박물관은 아직 안읽었지만.. 스토리는 대략 알고 있었어요.
마르케스를 언급하셔서 생각난 건데, 어쩌면 이 소설과 콜레라시대의 사랑.을 함께 읽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르한 파묵에 대한 관심이 아직 끊어지지 않으셨다면 검은 책. 을 추천드리고 싶어요.
그건 정말.. 아주 독특한 의미에서 하나의 전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이리시스 2012-08-19 00:19   좋아요 0 | URL
오, 드림아웃님 특별추천리스트입니까? 그렇잖아도 워낙 많아서 다음은 뭐가 좋을까 생각하긴 했어요. 잘 골라야 할 것 같은 본능적 감이 왔거든요. 호불호도 갈릴 것 같고 작품 편차가 있을 것 같고 아직 터키의 매력을 잘 모르겠어요. <검은 책>을 꼭 다음 타자로 삼을게요.

근데 안그래도 [콜레라-]를 읽기 시작했거든요. 완전 신기하네요ㅎㅎ 통한 건가..( '')

cyrus 2012-08-18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오르한 파묵 읽기 첫 소설이 <순수 박물관>이었어요. 처음에는 두 권짜리를 다 읽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줄거리가 너무 좋아서 끝까지 완독한 기억이 나네요, 한 여자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남자 주인공의 순수함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딱해보였어요. 시간 나면 또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

아이리시스 2012-08-19 00: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남자 주인공이 그렇게 감성주의자로는 안 보였는데, 그 사람이 찾던 건 퓌순 뿐만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당연하겠지만. '사랑'이라는 그 순수한 본연의 대상을 평생토록 찾아나선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한 사람만을 위한 사랑이 좀 애틋하게 느껴지긴 했어요.

시루스님은 또 다른 작품 뭐 좋았어요? (의견모집중)^^

댈러웨이 2012-08-18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수 박물관 두 권 짜리였어요? ㅠ.ㅠ
오르한 파묵은 정말이지 전작하고 싶은 작가에요. 때가 되면 날 잡아서 다 읽을 거에요, 반드시,라고 말은 하지만...

아이님, 마지막 긴 두 문장, 오래 읽었어요. 저런 생각은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 거에요?
그리고,,, 남녀간의 케미스트리는 원래 그런거에요. 알잖아요. ( ")



아이리시스 2012-08-19 00:08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 '순수 박물관'이 파묵의 넘버 1,2,3는 아닐 것 같아요. 뭐 쓰리쯤에 넣어줄까....요?
작품들이 각각 편차도 있을 것 같고, 상이한 매력이라 어쩌다 가끔 발이 푹 빠지기도 할 것 같아요.

다음 작품으로는 그..댈러웨이님 서재에서 본 한 권이랑 드림아웃님 추천작으로 볼 겁니다!
(저 사야될 책 천지군요!)

그래도 다시 선물받은 [롤리타] 하고 전자책에 든 [콜레라-]랑 [채털리-] 꺼내오는 참인데.. 나 책은 더 필요없어요. 후훗.( '')

2012-08-18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19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19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19 0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0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1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19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1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로하 2012-08-21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내이름은 빨강>을 인상깊게 봤는데 <순수박물관>은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기간이 지나 반납한 슬픈 역사가..ㅜ
담번에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그런데 <검은책>을 먼저 읽고 싶은 건 또 뭔지!ㅋㅋ

아이리시스 2012-08-21 17:20   좋아요 0 | URL
순수박물관까지 자국에 턱 지어놓은 파묵이 부러워요. 내이름은 빨강은 썩 끌리지가 않다가 반값할 때 책사는 것도 놓치고.. <검은 책>이 한 권짜리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