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단과 유일이 절대권력으로 작용하던 시대, 구체제를 향한 의문과 전복을 위해 찾아든 회의주의, 그 중심에 16세기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가 있었다. 몽테뉴는 에세이(수상록)에서 '유일한 확실성은 불확실성뿐이다.'라고 말하며 회의론과 다양성에 무게를 싣는다. 판단에 있어 독단은 무지와 다르지 않으며, 아는 것이 적다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 배워야 한다고 했다. 여기, 감히 도전하지도 말았어야 할 것에 도전한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 한 편(아직 진행중인데, 쏟아지는 평과 기사들처럼 정말 이렇게 예상불가능한 드라마도 처음!). 공교롭게도 초능력(그래, 뜬금없지만 초능력이다), 초능력을 가진 이들이 벌이는 대결을 주제로 하는 두 권의 책. 솔직담백히 말하자면, 세 편의 텍스트들은 어떻게 봐도 대충 잘 받아들이는 내가 보기에도 참 재미있다. 일단 한국판이라는 사실도 그렇지만, 종이는 문학성을, 영상은 장르성을 추구하는 기존 스토리텔링의 틀을 깨부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신을 이겨보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없었음에도 그렇게 되어버렸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보겠다고 시작한 실험이 인생을 뒤흔드는 광경. 신이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한계를 너무나 잘 아는 자들이 만든 이야기.
니 말대로 향은 선물이 아니라 저주였고,
선악과는 애초에 먹지 말았어야 했고,
비밀은 비밀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고,
죽은 자를 살리는 건 감히 인간이 해서는 안되는 일이고,
그걸 꼭 부딪치고 깨지고 내 눈으로 확인해야 깨달으니
난 얼마나 어리석은지. - <나인-아홉번의 시간여행, 8회>
1년만에, 실종된 형의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포카라로 향한 선우는 늘 조금은 불안하고 떨렸던 형의 인생을 떠올리며,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형이 왜 아무도 모르게 히말라야를 오르려다 눈사태로 죽어갔는지 이해하고 싶다. 지상에 다시없을 낙원처럼 투명하고 청명한 공기, 푸른 산과 흰 구름은 사람이 죽어나가기에는 어딘가 불완전한 기시감과 위화감을 동시에 전달한다. 기자이자 앵커인 선우는 마침 히말라야 취재차 나가있는 후배 민영에게 키스하며 삼개월의 계약연애를 제안하고, 민영은 장난반 진담반으로 진행된 대화 속에서 오랫동안 동경해온 그를 향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동료들의 말에 의하면, '구걸해서 만나고, 혼나면서 데이트 할' 이들의 앞날에 어떤 가혹한 판타지가 숨겨져 있을지 꿈에도 모른 채. 포카라에서의 낮과 밤은 사랑을 시작한 연인에게 부족함이 없다.
형이 죽기 직전 피우려했던 향 한 개, 이십년전으로 이어주는 통로. 향 하나는 삼십분간의 시간여행을 허락하며, 조건은 미치오 카쿠가 말한 평행우주, 즉 이십년전과의 교집합, 평행이론. 선우는 우연히 주운 삐삐에 뜬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가 1992년의 저와 마주하면서, 그 세계로 뛰어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이 결혼한, 아버지의 병원이 통째 악마의 손아귀로 넘어가버린 날의 진실을 찾기 위해. 그는 간과한다. 이십년전의 진실이 변하면 현재의 진실 역시 변한다는 걸. 형이 죽음을 무릅쓰고 피우려했던 향, 돌이키고 싶은 과거가 하염없이 많아 전설 하나만을 믿고 나머지 향을 구하러 떠났다가 변사했다는 걸 선우가 알게됐을 즈음, 그에게도 이상징후가 찾아온다. 과거로 가서 진실을 보고, 그날 밤 있었던 사건을 막아 아버지를 살리는 일. 그는 가능할 거라고 믿는다.
진실은 역사가 되어버린 신념같은 거다. 사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도, 변해버린 후가 전보다는 훨씬 가혹하다. 아버지의 마지막은 완벽한 조작이었고, 아버지의 죽음은 누군가의 양심과 맞바꿔질 수 없었다. 아버지가 죽고나서 비로소 아버지가 반대하던 여자와 결혼한 형은 평생 불안과 우울에 시달린다. 게다가, 사랑을 잃어야 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을 혼자만 기억하는 병. 그는 원래 기억과 뒤바뀐 조작된 기억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갈 것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두 개의 기억. 그중에 하나는 물리적으로는 소멸된, 불가능한 기억. 선우는 형의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고, 사랑하는 여자의 웨딩드레스 입은 사진을 전송받으면서, 이 판타지를 스스로 끝내야겠다는 결심에 이른다. 모든 것을 아는 유일한 친구의 걱정근심을 무마시키기 위한 말.
"버리고 왔어. 1992년에. 원점으로 돌아온 거야. 한달 전 향 같은 건 모르던 때로. 판타지가 없던 시절로.
너는 죽어도 못 찾을껄. 지도 검색에도 안나오는 곳이니까." - <나인-아홉번의 시간여행>
매번 우주를 뒤흔드는 경험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작은 균열 하나가 인생 전체를 뒤바꾸는 그런 경험을, 어디로 튈지 모를 시간 한줌을 붙잡기 위한 처절한 노력을 구경한다. 사람은 늘 원하는 것보다 더 원하는 것을 하거나 되기 위해 애쓴다. 생성과 소멸에 대한 고찰, 결국 뒤집을 수 없는 한계치,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삶에서 기억도, 유물도, 통증도 그대로인 삶이 과연 끝나기는 할 것인가. 질문이 많은 사람은 결코 평온해질 수 없다. 그는 주어지지 않거나 알 수 없는 것이 궁금해질때쯤, 손에 들어온 기회를 사용함으로서, 감히 단 한 번 신 행세를 하다가 된통 당한다.
'모든 정보는 추상적이다. 메타포가 들어있지 않은 정보란 쓰레기 더미에 불과하다. 사실이라고 믿는 구체적이고 계량화된 정보 대부분은 사라지고, 오직 인간의 은유적이고 불분명한 꿈의 기록만이 보존될 것이다' - <중화의 꽃, 1권>
대한민국 서울. 중국과 일본의 초능력자들이 창세기의 돌, 제네시스 록에 반응하는 '중화의 꽃'을 찾기 위해 몰래 잠입한다. 하늘, 바다, 육지를 관할하는 개별 국가기관 소속의 국정원, 군인, 경찰은 외계인에게 납치당했었다고 주장하는 이십대 여성들의 증언에 따라, 그들이 어딘가로 끌려갔다가 알몸으로 도포에 싸여 버려진 연유를 추적하는데, 실상 강간이나 폭행의 흔적은커녕, 아무 증거나 단서가 없는데다가, 여성들이 한목소리로 외계인을 봤다고 주장하면서 미궁으로 치닫는다. 소재가 초능력자라기에 판타지나 SF 액션에 나오는 유토피아/디스토피아 같은 영 낯선 세계를 떠올리고는 기겁했다. 착각이고 함정이었다. 초능력자들의 대결로 이 책을 홍보한 건 마케팅측의 오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초능력자를 소재로 한다는 얘기에 흥미진진한 소설 한 편을 근거도 없이 배제할 뻔한 나에 의하면. 초능력자는 겉으로 나, 초능력자요, 붙이고 다니지 않는다. 멀쩡하다. 숨겨져있다. 장르로 치면, 차라리 첩보에 가깝다. 모든 것이 아니라 단 한 가지만을 잘한다. 훈련되었을 수도, 타고났을 수도 있다. <중화의 꽃>에는 과거나 미래를 보는 자, 도공으로 상대의 심장을 멎게 하는 자, 장소나 물건에 대한 사이코메트리들이 나온다. 이중에 제일은 미래를 보는 자, 중화의 꽃이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단서는 충분한 그녀를 두고 벌이는 아시아 3국의 대결이다.
<궁극의 아이>에도 중화의 꽃처럼 미래를 보는 남자가 나온다. 생식력이 현저히 떨어져 대부분 스무살 이전에 죽는다는 궁극의 아이. 최초는 아니나 마지막도 아닐 궁극의 아이 중 하나인 신가야는 한국출신으로 범죄기록이 있음에도 불구, 인류의 미래 보고서라고 불리는 카이헨동연구소로 발탁된다. 범죄경력에도 타당하게 획득한 영주권에 대한 의문에 맞서듯, 그의 존재는 유일하게 사랑한 엘리스에게 역시 비밀과 환영으로 남아있다. 지금, 어떻게, 왜, 연결되었는지 모르는 세계의 다섯 거물들, 나다니엘 밀스타인, 안톤 쉬프, 조지프 체임벌린, 조나단 킨데마이어, 오귀스트 벨몽에게 차례로 한 통의 편지가 도달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거대한 테러, 죽음을 알리는 편지, 까마득한 기억들. 십년 전에 죽은 자로부터 어떻게 복수가 자행될 수 있을까. 형사 사이먼은 추적에 나선다.
"십년 전 제가 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 <궁극의 아이>
악마개구리문양, 바다에 사는 뿔 달린 개구리로 불리는 어떤 모임. 그들은 손아귀 아래 세계를 장악한 신 같은 존재가 되어있다. 한 나라의 운명이 그들 손끝에 달려, 되살아날 수도, 의미없이 죽을 수도 있었다. 정보가 곧 힘이었다. 그들은 힘을 과시하기 시작했고, 한층 더 강력한 부와 권력을 움켜쥐길 바랐으며, 세계를 휘둘렀다.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고싶은 걸 위해서라면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고도 남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공리주의는 그들의 목표가 아니었다. 신가야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한사람이었다. 가야처럼 '궁극의 아이'로 판명난 아이들이 카이헨동연구소로 잡혀와 기억을 세뇌당하고 자유를 빼앗긴 채로, 온갖 실험과 업(카르마) 속에서 미래를 예견하다 죽어갔다. 모든 사실을 밝힐 사람은 사이먼 뿐이고, 사이먼은 아내 모니카의 죽음과도 연관있을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신가야가 사랑했다는 여자, 뚱뚱해서 제발로는 밖으로 나와 걸어다닐 수도, 앉았다 일어날 수도 없는 엘리스와 딸 미셸을 찾아가 모든 것을 털어놓고 질문한다.
엘리스는 과잉기억증후군을 앓고 있다. 일곱살 이후 벌어진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는 엘리스는 제 눈앞에서 연기처럼 죽어간 가야와의 추억 대신 미셸을 안았다.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 많은 것을 약속했지만 단 5일만이 허락되었던, 그들의 슬픈 마지막. 의문투성이 이별은 가야를 잃은 십년간 그녀를 허무와 체념에 뒤섞여 살게 했다. 사이먼은 신가야의 물음에 따라 엘리스로부터 사랑한 남자에 관한 모든 기억을 요구한다. 숨막힐 만큼 아름답고 애처로운 닷새의 기억 속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살인사건을 해결할 단서가 포착된다.
"당신은 머릿속이 온통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게 어떤 건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거예요. 그건 평생 과거라는 철창 속에 갇혀사는 거라고요." - <궁극의 아이>
눈치챘겠지만 모든 이야기의 핵심 그리고 권력은 미래를 보는 눈에 있다. 미래는 예측이 아니라 다가오는 것. 그들의 능력은 좋게 사용될수도 그 반대일수도 있지만, 궁극의 아이들은 늘 거의 언제나 이용당하다 가치가 다해지면 버려졌다. 미래를 말하기 위해 온갖 약물주사와 뇌실험으로 너덜너덜해진 삶을 붙잡고 가야는 엘리스를 만났던 것이다. 그는 엘리스와 미셸의 미래를 보았다. 서로를 다주어도 아깝지 않은 오백년같은 오일의 사랑이, 십년 후 여자와 딸을 살리는데 이용된다. 엘리스의 기억 곳곳에 남겨진 가야의 단서가 사이먼에게로, 사이먼이 잃어버린 모니카에게로. 주가를 예측하고, 전쟁을 예측하고, 이득과 손실을 예측하고, 방향을 예측하면 누군가의 손아귀에는 세상을 주무를 강력한 힘이 생긴다. <궁극의 아이>가 개인적인 사랑으로, <중화의 꽃>이 동북아 세계정세의 삼키고 뱉는 숨가쁜 역사현장으로 연결된다는 점이 다를 뿐, 두 소설은 같은 얘기를 하고있다.
누가 들어줄리도 없지만, 새삼 뒷짐지고 몽테뉴처럼 모럴리스트 노릇을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자연스럽지 못한 욕망은 결국 파멸을 향해 달려가기밖에 더할까. 슬픔과 아름다움이 마치 처음 본 풍경처럼 공존하는 눈부신 이야기들 앞에 주춤할 필요는 없다. 소설이 소설로 기능하며 역할을 다할 때, 세상은 아무런 흔들림 없을 것이다. 문제는 소설 속 모습이 미래, 초능력, 시간여행 같은 흔적만 살며시 지우면, 놀랄 만큼 현재와 닮았다는 게, 소설과 문학이 우연이 아님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에서 예견한 이슬람 세력과 중국의 부상은 여전히 진행중이고, 얼마전에는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가 분명 다르며, 정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는 책을 읽었다.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가 다른 걸 알지만 이제 세계의 의식속에서 '주의(-ism)'와 '교리'는 거의 한목소리처럼 들려온다. 아랍권, 중동국 출신들의 반인류적인 테러, 반서양주의를 반자본주의로 해석하는 것, 사회적문화적 다양성을 경제적정치적 영역으로까지 확대시키면서 나타난 세력의 갈등과 내분에서 전쟁까지.
요즘 나는 북한이 제일 무섭지만 나아가 북한만 적으로 여기는 대한민국 사람들도 무섭고, 한편 중국의 거대한 힘이 두렵다.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독특한 체제도, 법(외국인에게 참정권을 허하면!) 하나만 갈아치우면 가능한 중국의 세계권력 지배구도 장악(을 뜻하는 엄청난 수의 인구)도, 아무거나 다 먹는 식습관도, 무력에는 무력으로 맞서는 거라며 위협에 위협으로 무장하는 일본도. 내가 아는 과거 어느 시점도 동북아가 평화로운 적 없지만, 잘 살아있어야겠다. 죽기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