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로 유명한 탈주범 지강헌. 88년, 나도 텔레비전 뉴스에서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오늘 이야기는 꼭 그 인물 자체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빈부격차, 그 격차에 따른 불평등과 그에 대한 분노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80년대 이야기가 아닌 오늘의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혹시 나는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기웃거리고 있지는 않은가...얼마큼이 필요한 만큼일까? 서민들이 장만하려고 하는 집이 한 채 있으면 필요한 만큼일까? 아이를 낳아 대학을 졸업시키고도 노년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것이 필요한 만큼일까?
필요한 만큼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필요한 것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확실히 눈에 띈다. 그들은 집이 없고, 집을 빌릴 돈이 없으며, 대학은 고사하고 초등학교에 가는 아이에게 도시락을 싸줄 수도 없다. 그리고도 빚이 있다.
문득 어떻게 해야 바르게 사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이 칭찬이 될 수는 없다. 부자가 곧 비난이 될 수도 없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누군가를 끝없이 밀어내면서 그들의 자리를 차지해서 부자가 되고 있는 것이라면? 모든 행위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어떤 흐름에 합류하게 된다. 장애자 시설이 마을에 들어온다고 반대하는 흐름이나 갈곳없는 사람들을 몰아낸 재개발지역에 투자하는 흐름에 내가 흘러들지 않기를!! 그러나 어이하랴..내가 하는 행위조차 어디에 속해 있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할 때가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것을. 왜 이런 우려가 생기는 것일까?
물론 나는 정경환처럼 70억을 탈세한 사람이 아니다. 혹은 지금 너무 가난해서 곤란한 지경에 이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보면서 몇 십억이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되면 편한 것에 쉽게 물들 듯 그렇게 물들까 두렵고, 너무 가난해서 정치인이나 부자를 원수처럼 생각해 증오가 커질까 두렵고, 바둥바둥 앞만 보고 살아가다 내 이웃을 등질까 두렵다. 바르게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걸까?
[주역]건괘 괘사에 "군자종일근근"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사회에서 내가 아무 흐름에나 휩쓸리지 않으려면 참으로 종일근근해야 할 듯하다. 안으로나 밖으로나 깨어있지 않으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내가 무엇을 하는지 나도 모를 일이 되고 말 것 같은 두려움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