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생은 북한서 태어나고파”
달라이라마, 16일 日 법회서 한국불자에 언급

 

[출처 : 불교신문]

 

일본 이시가화현 = 하정은 기자. 달라이라마 법문 1신.

<달라이라마의 법문을 듣는 청중들>
“다음 생에는 북한에서 태어나고 싶습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는 지난 16일 오전 일본 이시가와현 현립음악당서 거행된 ‘금택강연’에 앞서 한국불자단과 가진 사전 만남자리서 이같이 밝혔다.

40여분간 진행된 이 자리에서 달라이라마는 “(방한이 너무 어려우니) 다음 생에는 한국에서 태어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한국불자의 질문에 “46년간 조국인 티베트를 떠나 사는 동안, 공산국가도 붕괴되고 심지어 중국도 달라지고 있지만, 유독 변하지 않는 나라는 북한밖에 없다”며 “다시 태어나면 남한보다는 북한에 태어나고 싶다”고 말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달라이라마는 또 “최근 가장 머리 아픈 나라가 북한”이라며 직설적인 표현은 피했지만, 북한을 자주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에 온다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고 싶거나 어디에 가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에는 “그저 김치나 먹어보고 싶다”며 특유의 농담으로 응답했다. 티베트 독립에 대한 달라이라마의 이야기를 듣던 통역원 박은정씨와 가이드 김상길씨 등 사부대중 150여명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티베트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 돌아가길 기도한다”는 한 비구니 스님의 언급에 달라이라마는 눈물을 머금은 듯한 음성으로 “티베트를 떠난 기나긴 세월에도 고국민들은 저를 믿고 따라왔다. 그들이 나를 믿는 만큼 도움을 줄 수 있길 기원한다. 나도 내 나라로 돌아가고 싶고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내겐 여러분들과 같이 나를 걱정해주는 이들이 있어 무척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법문에 앞서 면담하는 달라이라마>
지금까지 달라이라마가 주요석상에서 ‘티베트의 자치를 희망하고, 언제나 마음은 티베트에 있다’는 언급은 해왔지만 직접적으로 “가고싶다”고 밝힌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에 달라이라마의 통역을 여러차례해왔던 박은정씨를 비롯해 참가대중들이 눈물을 훔쳤다. 달라이라마는 불교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설명했다. “불교사상의 핵심은 연기(緣起)요, 이에 대한 실천은 비폭력”이라고 전제하고, “오늘 법문 주제인 용수보살의 보리심석론을 주의깊게 들어서 무자성, 무아심을 진정으로 깨우쳐보라”고 주문했다.

죽음에 대해서도 알기쉽게 설명했다. “밀교에서 죽음은 4단계로 맞이합니다. 첫째 안개와 같은 흰색에서 붉은점으로 변하고, 마지막 검은색으로 암흑속에 있다 마침내 다음생으로 이어집니다. 보리심이나 공에 대한 깊은 수행이 몸에 배인 사람은 이 단계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수행력이 발현합니다. 만약 당사자가 수행을 하지 않았다 해도, 그의 주변에서 그를 지키는 도반이나 가족들의 수행력이 죽어가는 영혼에 들어가 다음생을 평화롭게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

<아기부처님과 달라이라마>
40여분의 사전만남이 끝나자, 달라이라마는 벌떡 일어나 대중속으로 들어가서 기념촬영을 하자고 먼저 제안해, 수행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사진을 찍은 뒤 돌아가면서 “점심 배불리 먹으라”고 농담을 던져 좌중을 웃음 속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한편 만남에 앞서 서울 구룡사가 준비해간 아기동자를 달라이라마에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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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5-05-25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안녕하세요.
나날이 좋은 날들입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다가도 중국의 눈치를 보며 달라이라마의 입국을 거부하는 일과,
입만 열면 국익차원을 되뇌이는 관료들의 사고에 진저리가 처집니다.
개구리가 올챙이적 시절 모른다고 나라잃고 중국땅을 전전하던 대한민국임시정부 시절이 백년도 안된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달라이라마의 소식을 들을 적마다 비감해집니다.

이누아 2005-05-27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입니다. 게다가 중국의 동북공정상의 역사왜곡을 보면 중국이 티벳에 하는 일이 남의 일도 아닌데 말입니다.
 
 전출처 : stella.K > 교황 집무실에 걸려 있는 한 편의 詩

출처 : 이지스

 

 

Desiderata

by Max Ehrmann


Go placidly amid the noise and haste,

and remember what peace there may be in silence.

As far as possible, without surrender, be on good terms with all persons.

Speak your truth quietly and clearly; and listen to others,

even the dull and the ignorant; they too have their story.

Avoid loud and aggressive persons; they are vexations to the spirit.

If you compare yourself with others, you may become vain and bitter;

for always there will be greater and lesser persons than yourself.

Enjoy your achievements as well as your plans.

Keep interested in your own career, however humble;

it is a real possession in the changing fortunes of time.

Exercise caution in your business affairs;

for the world is full of trickery.

But let this not blind you to what virtue there is;

many persons strive for high ideals;

and everywhere life is full of heroism.

Be yourself. Especially, do not feign affection.

Neither be cynical about love; for in the face of all aridity

and disenchantment it is perennial as the grass

Take kindly the counsel of the years,

gracefully surrendering the things of youth.

Nurture strength of spirit to shield you in

sudden misfortune. But do not distress yourself

with imaginings. Many fears are born of fatigue

and loneliness. Beyond a wholesome discipline,

be gentle with yourself.

You are a child of the universe,

no less than the trees and the stars

you have a right to be here.

And whether or not it is clear to you,

no doubt the universe is unfolding as it should.

Therefore be at peace with God,

whatever you conceive Him to be,

and whatever your labors and aspirations,

in the noisy confusion of life, keep peace with your soul.

With all its shams, drudgery,

and broken dreams, it is still a beautiful world.


Be cheerful.

Strive to be happy.

Max Ehrmann, 1927

 

 

진정 바라는 것


소란스럽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침묵 안에 평화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포기하지 말고 가능한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도록 하십시오. 조용하면서도 분명하게 진실을 말하고,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들 역시 할 이야기가 있을 테니까요. 목소리가 크고

공격적인 사람들을 피하십시오. 그들은 영혼을 괴롭힙니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자신이 하찮아

보이고 비참한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더 위대하거나 더 못한 사람은 언제나 있기 마련입니다. 당신이

계획한 것뿐만 아니라 당신이 이루어 낸 것들을 보며 즐거워하십시오.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당신이 하는 일에 온 마음을 쏟으십시오. 그것이야말로 변할 수밖에 없는

시간의 운명 안에서 진실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업상의 일에도 주의를 쏟으십시오. 세상은

속임수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미덕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치지는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높은 이상을 위해

애쓰고 있고, 삶은 영웅적인 행위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 본연의 모습을 찾으십시오. 가식적인 모습이 되지 마십시오. 사랑에 대해서 냉소적이 되지

마십시오. 아무리 무미건조하고 꿈이 없는 상태에서도 사랑은 잔디처럼 돋아나기 때문입니다.


나이 든 사람들의 충고는 겸손히 받아들이고, 젊은이들의 생각에는 품위 있게 양보하십시오.

갑작스러운 불행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면 영혼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나 쓸데없는 상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많은 두려움은 피로와 외로움에서 생겨납니다. 자신에게 관대해 지도록 노력하십시오.


당신은 나무나 별들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자녀입니다. 당신은 이곳에 머무를 권한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우주는 그 나름의 질서대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평화롭게 지내십시오. 당신이 그분을 어떻게 생각하든, 당신의 노동과 소망이

무엇이든 시끄럽고 혼란한 삶 속에서도 영혼의 평화를 간직하십시오. 서로 속이고, 힘들고, 꿈이

깨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늘 평안하고 행복하려고 애쓰십시오.



著者: 맥스 어만(1872~1945). 美國의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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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가?'

이 단순한 질문이 우리가 삶을 살면서 여러 상황을 마주칠 때마다 지혜롭게 행동하도록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 그 방법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심어준다. 우리가 날마다 어떤 결정이나 선택을 할 때 앞의 질문을 마음 속으로 던진다면, 우리 행동의 중심은 무엇인가를 부정하는 것에서 어떤 것을 추구하는 쪽으로, 곧 삶의 궁극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쪽으로 옮겨갈 것이다.

                                                   달라이라마. 하워드 커틀러,  [달라이라마의 행복론],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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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에 당도하고자 하는 자의 꿈


                                                                               - 정 진 규 -

 
바람, 머리칼이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날리고 있었을 때 왜
나는 자꾸 왼쪽으로 왼쪽으로만 가고 있었을까. 기우는 달빛
때문이었을까. 나무는 나무들은 바람 따라 따라서 가 주고 있
었는데, 세상의 물이란 물들이 흐르는 소릴 들어 보아도 그렇
게 그렇게 가 주고 있었는데 나는 왜 그게 아니 되었을까. 진
실이란 어떤 것일까. 있는대로 있는대로만 따라가 주는 것
일까.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는 것일까. 바람 바람이여 그 동
안 나는 꽃을 돌멩이라 하였으며, 한 잔의 뜨거운 차를 바다의
깊이로 바꾸어 놓기도 했다. 믿지 못할 일들이었다는 생각이.
부질없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지금와서 어둡게 어둡게 나를 흔
든다. 가슴을 친다. 알 수 없어라. 길 가의 풀잎에게 물어 보
았을 때 그는 바삭거리는 소리만, 바삭거리는 소리만 세상 가
득 채우고 있었다. 그때 그가 왔다. 먼 길을 걸어온 사람, 그
런 모습으로 그는 거기에 있었다. 그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그는 그의 가슴 깊이로부터 한 두레박의 물, 물을 길어 내게
건넸다. 나를 씻었다. 한 두레박의 차고 시원한 물, 이것이 바
로 영원이라 하였다. 빛이라 하였다. 늘 차고 넘쳐서 그는 하
루를 하루로 끝낼 수 없다 하였다. 늘 차고 넘쳐서 그는 하
루를 하루로 끝낼 수 없다 하였다. 하루가 모자란다 하였다.
잠들 수 없다 하였다. 영원에 당도하고자 하는 자의 꿈, 그곳
에 이르고자 하는 자의 아픔, 열리지 않은 문, 그가 나의 문
을 열고 당도한 것이라 나는 믿었다. 그는 나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하느님의 체온이 거기 머물고 있었다. 알
수 없어라. 내 가는 곳까지 아무도 바래다 줄 수 없다고 모두
들 말하지만,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알 수 없어
라. 그가 내게 당도하였다는 것은, 영원에 당도하고자 하는 자
의 꿈, 그런 꿈의 깊이에 우리는 함께 이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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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다고 이름나신 분들을 찾아뵈도 별 느낌이 없었던 터라 내 업장이 두터워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몇 년 전 링린포체를 뵙고는 변화를 느꼈다. 무엇이든 끈기있게 잘 하지 못했던 내가 그분이 가르쳐주신 만트라를 아직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분을 생각만 해도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이래서 인연이란 게 있나 보다. 내가 뵈었던 다른 분들이 훌륭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인연 있는 분을 만나면 느낌이 더 강한가 보다. 무여 스님을 가까이서 친견했을 때도 어떤 근심 하나를 없애버린 느낌이었다. 그분들을 만나고 나면 더 쉽고, 자연스럽게 불법에 다가갔다.

나는 달라이라마께는 관심이 없었다. 그나마 링린포체 때문에 링린포체에 대한 책을 구해볼 수 없었던 터라 하는수없이 달라이라마의 책을 읽었다. 철저하게 공부하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의 글을 읽으며 이상하게 공부보다는 더 순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친구가 일본에 오신 스님을 뵈러 가고 싶다고 했다. 왜 안 되는가? 가자!

그렇게해서 4월 15일에서 18일의 일정으로 일본에 가게 되었다. 지방인 탓에 거의 14일에서 19일의 일정이 되어 버리긴 했지만...넓고 큰 장소에서 뵙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공간에서 친견했을 때의 느낌은 뭐라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고보니 무여 스님도 법당에서 뵈었을 때와 스님의 방에서 뵈었을 때의 느낌이 사뭇 달랐다. 아무 기대도 없이 나는 멀찍이 뒤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나는 내 몸이 전율하는 느낌을 받았다. 내 의식은 아무 변화가 없는데 내 안에 무의식이 떨고 있었던 것일까? 티벳에 가고 싶다는 스님의 말에 모두 숙연해졌을 때 티벳에 별 관심이 없던 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무엇에 떨며, 뜨거워지는가? 사람이 자신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고, 다른 이의 입장과 다른 이의 유익을 생각하는 것이 어느 경지에 이르면 너와 나라는 테두리 없이 그 느낌이 전달될 수 있는 것일까? [이연혜연선사발원문]의 "내모양을 보는 이나 내이름을 듣는 이는 보리마음 절로 나고.."하는 구절이 떠올랐다. 정말 저절로 보리마음이 일었다.

어느 나라에 태어나고 싶냐는 질문에 "중생계가 다하고 허공계가 다하도록 고통이 있는 곳에 태어나 그들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대답하셨다. 농담으로 "그럼, 북한에 태어나야 겠다"고 덧붙이셨다. 북한이 가장 고통받는 곳이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고통 있는 곳에 태어나고 싶다...나라 잃은 정치지도자로서의 고통이 지금도 진행중인데 더 고통 있는 곳에...

전에 나는 책에서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아무 망설임없이 "예"라고 대답하셨고, "당신도 외로운 적이 있지요?"라는 정신과의사의 질문에 "아닙니다. 거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신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친견 후에 그 대답이 꾸밈없는 사실임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닮고 싶었다. 이 분처럼 행복하다고 그게 아주 당연한 일인 것처럼 말하고 싶었다. 고통은 늘상 있는 것이다. 그분의 처지에서 행복이라니 싶은데, 행복은 조건이 아님을 그분을 통해 본다. 나도 그분처럼 행복하고 외롭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고통 있는 곳에 태어나고 싶다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그러나 사실, 나는 고통이 무섭다. 매일 수행하지 않으면 자비심을 잃게 된다는 그분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매일 수행함으로써 고통에 대한 두려움도 없앨 수 있으리라.  

달라이라마께서는 언제나 나는 그저 공부하는 사람이지, 깨달음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하신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철저하게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과 선배수행자들의 논장을 공부하라고 하신다. 감동만으로 부처님의 자식(불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강의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꼭 공부를 제대로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랑에게 쉴 때 함께 달람살라에 가자고 했다. 내가 그분을 다시 뵈러 인도에 가기 전에 그분이 한국에 오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이 선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을 우리나라가 거부하다니...부끄럽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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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5-04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안 들어와본 사이에 페이퍼가.. 그나저나 드뎌..일본에 다녀오셨군요. 존경하는 분, 만나뵙고..정말 잘 됐어요! 저도 사실 고통이 두렵긴 한데, 요즘엔 고통이 주는 일정한 질서에 순응해야겠단 생각을 해 봤습니다. 예를 들면 저보단 좀 더 빨리 다가올 어머니의 죽음을 서서히 받아들이는 작업을 하고 있거든요. 당신 스스로가 천천히 생을 정리해나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죽음이 주는 고통이나 슬픔보다는 어머니가 무척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라는 인간에 대한 재발견같은 거요. 그래두..여전히 생은 고통스럽고 외로울 거 같아 두렵습니다. 참내! 도사같은 소리만 합니다, 그려..흘..

이누아 2005-05-05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라이라마는 고통은 늘상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눈만 마주치면 웃고 있고, 인간이 행복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자신은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런 게 가능한가 봅니다. 그에게 가능한 일이라면 우리에게도 가능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거의 3년이 되어서야 아버지 이야기를 해도 울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라는 단어만 입에 담아도 눈물이 났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고 아프고 늙고 죽는 것은 늘상 있는 일이며 제게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슬픔이 너무 커서 복돌님처럼 아버지의 매력이나 존재에 대해 생각할 겨를을 갖지 못했었습니다. 제가 좀더 성숙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복돌님의 어머님이 그렇게 위중하신지 몰랐네요. 순응은 순응이고, 어머님이 조금이라도 더 건강해지셔서 복돌님과 좋은 시간 가지시기를 기원합니다.

비로그인 2005-05-05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흑..감솨요, 이누아님! 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