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에 "내맘의 강물"이 말을 건넸다. 그는 아마 나를 잘 알고 있는 듯이 보인다. 나는 그 친구가 누구인지 모른다. 누군지 모를 이의 몇 마디에 지나간 날들이 언뜻언뜻 떠오른다.

==========

내 마음의 강물 - 이수인 시,곡




수많은 날은 떠나갔어도 내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그날 그땐 지금 없어도 내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새파란 하늘 저멀리 구름은 두둥실 떠나고
비바람 모진 된서리 지나간 자욱마다 맘 아파도

알알이 맺힌 고운 진주알 아롱아롱 더욱 빛나네
그날 그땐 지금 없어도 내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새파란 하늘 저멀리 구름은 두둥실 떠나고
비바람 모진 된서리 지나간 자욱마다 맘 아파도

알알이 맺힌 고운 진주알 아롱아롱 더욱 빛나네
그날 그땐 지금 없어도 내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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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0-16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랑 시에도 이런 비슷한 시가 있는 걸로 아는데..순수한 한글을 많이 사용했다는 공통점만 빼면 전혀 다른 어감, 다른 느낌이네요. 부러 가입을 하신 거 보니까 이누아님과 우정을 나누셨던 그리운 분인가봐요.

이누아 2005-10-16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전 자신을 먼저 알려야 한다 주의자입니다. 말만 하면 제가 알아 볼 수 있을 줄 알았나 본데 그러지 못했네요. 그 친구도 섭섭하겠지만, 찾아 준 것이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좀 섭섭해요...

내맘의 강물 2005-10-16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땐 남들 앞에서 많은 노래를 아니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그 소리를 소중히 기억해 주는 사람은 별로 없지....같이 가요방을 가도 박수만 쳐야하니...나에게도 소중한 친구고 기억인데....그 기억이 이제사 떠올라 마음이 아팠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님이 리뷰에 달아 놓으신 글을 봤습니다. 브리핑에 대한 압박은 내려 놓으세요. 괜찮아요. 그나저나 할 말이 많아서 페이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저는 님이 말씀하신 그 "평범하고 가난한 소시민들" 땜에 잠을 설칠 뻔 했습니다. "평범하고 가난한"이란 말 속에 님이 말씀하신 연민이 내재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은데...어제(12시 넘어서 하니까 오늘인가요?) 시사 투나잇을 불끄고 눈감고 잠들다가 들어서 마을 이름은 정확히 못 들었지만 내용은 시각장애인들이 한 집을 임대해 그 마을에 들어오려 하자 마을 사람들이 큰 돌과 나무로 길에 장애물을 만들어 놓고 마을로 못 들어오게 하는 겁니다. 그들이 무슨 강남 주민도 아니고, 권력기관도 아니고 제가 길가다 잠시 머물렀다면 순박하고 선한 사람들로 여겼을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좀 그럴싸한 이유를 대주기를 바랬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오면 조용한 마을이 어지러워진다, 안마사를 해서 마을을 흐려놓을 것이다(실제로 안마사 경력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라는 이유들이었습니다. 차라리 땅값이 내린다든지 하는 이유라도 있었으면 싶지만 이 시골마을에 무슨 땅값 운운 하겠습니까? 마을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병신이라서 싫다고 대놓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물론 그 시각장애인들이 더 많은 돈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내쫓겨서 그 마을에 간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면 그 마을은 돈 없고 힘 없는 우리는 장애인들하고 살아야 하나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권력이 별 겁니까? 비장애인이 장애인에 갖는 이런 태도...마을 주민 중 한 분은 나라에서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하시지만, 또 그 말이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뭐가 다릅니까? 힘없는 사람을 멸시하고, 집에 기르는 개보다 못하게 대접하는 게 말입니다.

그 장애우들은 전세를 이미 낸 상태라 가진 돈도 없는데, 정당하게 임대계약을 마친 상탠데 그 집, 아니 그 마을로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 눈 먼 사람들이니 길에 장애물만 갖도 두어도 그들은 못 들어올텐데 마을 사람들은 밤에 보초까지 선다고 합니다. 누가 눈 먼 사람들인가요?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일반인이 이반인들에게 가하는 이 폭력적인 태도에 몸서리를 치게 됩니다.

중학교 3학년 때 간질 걸린 친구가 학교에 안 나오자 선생님이 우리 반 성적이 올라가겠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 나는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저 이야기를 잊지 말아야지 했던 생각이 납니다. 아픈 그 아이가 안 보이고 성적이 보이듯이 어른이 되면 눈이 그렇게 되어 버릴까봐 무서웠습니다. 마치 그때처럼 내 안에 그런 폭력성이 있을까봐, 혹은 제가 그 마을 안에 살까봐 두려워지기까지 합니다.

장애인들에게 뭐 잘해 주려고 애쓰는 것도 그렇고 그저 우리하고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만이라도 해 줬으면 싶습니다. 지금이라도 길가다 사고가 나면 우리도 장애인이 되는 것 아닙니까?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이 달라지겠지요. 왜 그전에는 안 될까요? 

생각해보면, 이런 일은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고, 그 마을분들이 유별하게 행동하시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이상해요.  마치 믿었던 이웃이 등을 돌린 그런 기분입니다. 평범하고 가난한 저 소시민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지금의 권력자보다 더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친구 어머니가 일부러 그러신 것은 아니었겠지만 가난하다고 저를 무시하셨던 일, 목소리가 굵어서 놀림 당했던 일, 직장에서 내가 담당자라고 해도 남자 직원을 바꾸라고 하는 전화를 받던 일...이런 사소한 일들이 떠오릅니다. 이러한 사소한 놀림과 무시도 아직 잊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저를 생각해 봅니다. 들어오지 말라는 고함 소리 속에, 가로막은 돌덩이 앞에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그런 기분이 됩니다. 알고보면 우리도 간혹 길가에 서 있는 시각장애인이 될 때가 있는데 쉽게 잊어 버리나 봅니다.  

아침에 알라딘에 잠깐 들어왔다 님이 말을 건네셨기에 저도 모르게 그 프로를 볼 때의 착찹한 심정이 되살아 나서 나오는 대로 중얼거렸습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매듭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 하다가 갑자기 오늘 하루 잘 보내시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어색하고...그저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점점 뻘쭘해지네요....그럼 인사나 하고 갈께요.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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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14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5-10-14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어계신 님, 정말 그렇죠? 생각이 많아지네요. 그러나 생각들 대신 이런 상황을 타개할 단순한 행위가 우리 안에서 용솟음치기를!!

비로그인 2005-10-14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또 그런 일들이..아니, 또가 아니라 계속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평범하고 가난한 우리들이 또 하나의 평범하고 가난한 우리들을 억압하다니요. 그 인식이 무섭고, 그 편견이 끔찍합니다.

어렸을 적, 저희집도 가난했는데 부잣집 옆집 동생이 저와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언젠가 그 아이와 토끼에게 풀을 주고 있는데, 그 집 엄마가 쫓아와서 그 아이를 꾸지람하는 걸 봤습니다. 공부도 못하고 집도 가난한 얘랑은 놀지 말라구요..그리구 질질 손을 잡고 갔는데..그런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얼굴만 다를 뿐 어디서나 마주치게 되더군요.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방죽을 흐린다고 수업료를 자주 못내던 제 친구를 담임 선생님은 모욕했습니다. 그 선생님은 끝까지 그 친구의 이름을 헷갈려 하더라구요. 이렇게 말하는 저 자신도 누군가에게 스스로조차 알지 못하는 새, 끔찍한 권력을 휘둘렀을 겁니다. 반성하고, 또 반성합니다..

이누아 2005-10-14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바로 그게 두렵습니다.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그런 폭력을 휘둘렀을까봐, 휘두르고 있을까봐, 앞으로 그럴까봐...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마을 안에 살고 있을까봐 두려워집니다. 반성하고 반성합니다.

2005-10-14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10-14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이누아님이나 복돌이님이 아침부터 반성하고 계신 모습 보니
거시기하네요.
물론 자신도 모르게 지은 죄나 혹시 있을지도 모를 잠재된 성향에까지
미리 눈을 부라리시는 건 알겠는데요.ㅎㅎㅎ
소시민들이라고 뭐 모두 소박하고 다정하고 그러겠어요?
없는 사람이 자기보다 없는 사람에게 가하는 그런 모욕과 멸시는
또 고스란히 누군가에게서 받게 돼 있잖아요.
아무튼 아침부터 뭔가 생각해 보게 하는 글입니다.
두 분 글 잘 읽었습니다.^^

비로그인 2005-10-14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왔나니..그래두 회개합니다..

이누아 2005-10-14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저는 고등학교 때 1년 반 동안 매주 2회 정도 청각장애우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생각한 것이 바로 사람은 같다는 것입니다. 그들 안에도 사기꾼도 있고, 선한 이도 있고...아, 나는 이 사람들을 사람으로 대해야 겠구나, 장애우라는 이름도 거추장스럽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러니 소시민이라고 다 소박하고 다정한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도 비슷한 아픔을 가졌을 가능성이 많은 사람이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복돌님, 저두요!

비로그인 2005-10-14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이누아님도 혹시 수화를 할 줄 아세요? 거참, 비슷한 시기에 이누아님도 청각장애우들을 만나셨군요. 저도 고딩 2학년 때 청각장애우들을 만나러 다녔었거든요. 근데 제시하신 것처럼 참 우습습니다. 장애우는 뭐고 비장애우는 뭐랍니까. 이 단어 정말 맘에 안 듭니다!! 이 어휘 또한 왠지 사람을 또 다른 뭔가로 분류시켜 놓는 듯 해서 기분이 좋지 않아요.

2005-10-15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5-10-15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수화할 줄 알아요. 근데 시간이 지나서 많이 잊어버렸어요. 길가다 보면 청각장애자라고 쓴 함을 들고 모금을 하는 아주머니가 계시잖아요(대구에만 있나요?) 한번 얘길 해 봤는데 반도 이해 못하겠더라구요. 어쩌면 멀리서 복돌님이 보이면 손짓으로 인사 나눌 수도 있겠네요.^^

비로그인 2005-10-15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하..아니, 이런 귀한 인연이 있나요? 그랬었군요. 전 사실 사회복지사나 수화통역사가 되려고 했었어요. 아, 저두 물론 마찬가집니다.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는 건 대충 기억이 나는데, 예전에 만났던 그 분들을 만나면 너무 손짓이 빨라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 '다시'라는 메시지만 되풀이하다 그냥 되돌아서고 맙니다. 흐흐..멀리서 보이면 손짓으로! 그러게요. 핫. 금방 보셨어요? 저, 금방 이누아님께 감사합니다, 손짓을 했답니다.^^

2005-10-15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0-16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5-10-16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고맙습니다. 지질께요!!^^

2005-10-17 2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5-10-17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님이 바남풍 해도 제가 바람풍이라고 알아 듣습니다.^^
 
산에는 꽃이 피네 (소책자)
법정스님 지음 / 동쪽나라(=한민사) / 1998년 12월
평점 :
품절


한 수행자가 있었다. 수행하는 데 쥐 한 마리가 계속 얼쩡거렸다. 그래서 쥐를 쫓으려고 고양이를 샀다. 고양이에게 줄 우유가 필요해서 암소도 샀다. 암소를 돌볼 여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결혼했고 아이를 가졌다. 그 여자와 아이가 살 집이 필요해서 집을 지었고,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는 가만히 앉아 수행할 수 없었다.

어리석은 이 수행자에 대한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유는 소유를 낳는다. 이 집보다 더 큰 집으로 이사가면 가구를 바꾸고, 가전제품을 더 사야지 하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고 나면 그 집과 그 물건들을 유지하기 위해 벌이에 더 신경을 쓰게 되고, 벌이가 적어질까 전전긍긍하게 된다. 이 덫에 걸려 들기만 하면 우리가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몇 십 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 세금도 안 내고, 입에는 늘 돈이 없다는 말을 달고 지내면서 한 끼밥을 겨우 먹는 사람의 돈을 몰인정하게 빼앗는다. 그 사람은 본래 나빠서 그런 것인가? 아니다. 바로 소유의 덫에 걸려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덫인 줄을 모르면 계속해서 모자라고 모자란 돈을 버느라 무슨 짓이든지 하려고 하게 된다. 그 시작은 쥐 한 마리와 같이 사소한 것이지만 마음이란 놈은 얼마나 광대한지 곧 마을을 채울 소유물을 필요로 하게 된다.

법정 스님이 늘 경계하시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본다. 스님께서는 감옥에 갇힌 줄 알고,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벗어나고자 하는 빠삐용이 되어야 진정한 자유를 맛볼 수 있다고 하신다. 무엇으로부터 갇혀 있는가? 바로 욕망이다. 어쩌면 그 욕망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것에 대해 수행이라고 말하기보다 스님은 자연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갖고 살아가는 동물들처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 자연과 같이 침묵하는 것, 자연 속에서 홀로 있을 때 샘솟는 존재의 갈망들에 대해 이야기 하신다. 모든 여분의 것은 부자유를 부른다. 소유로부터 자유로와라. 그러려면 마음을 비워라, 맑히라...

자기 마음을 맑히라니 어떻게 맑힐 것인가. 마음을 비우라니 어떻게 비울 것인가. "관념적인 것을 갖고는 마음이 맑아지지 않는다. 물론 참선이나 염불이나 기도를 지극히 해서 마음을 맑힐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쪽에 불과하다. 자칫하면 관념화되기 쉽다. 현실적으로 선행을 해야 한다. 선행을 함으로써 저절로 우리들 마음이 열리고 맑아진다. 마치 시절 인연이 와서 연꽃이 피어나듯이 그렇게 맑아진다"(p.195)

스님은 그 선행의 일환으로 "맑고 향기롭게"에서 활동하신다. 소리도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럽게 아주 사소한 일부터 마음으로 하신다. 아주 작은 것도 소유하려 하지 않는 마음, 아주 사소한 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는가, 그저 한 사람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니 스님께서 "한 사람의 마음이 맑아지면 그 둘레가 점점 맑아져서 마침내는 온 세상이 다 맑아질 수 있다"(p.196)고 말씀하신다. 한 사람의 마음을 중히 여기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그런 생각이 아닌가 싶다. 한 사람 중히 여기는 마음이 소외된 이웃을 둘러 보게 하고, 소수의 무시당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하고, 굶주리는 한 사람의 손을 잡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책 읽는 내내 산 중턱에 걸터 앉아 스님께 이야기 듣는 기분이었다.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을 보니 내가 사랑하는 어린왕자를 사랑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또 이 책을 보니 내가 그 삶을 음미하고, 음미했던 성프란체스코를 친구처럼 여기신다. 사실, 어린왕자나 성프란치스코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나는 굳이 공통점을 발견해 기뻐하며 스님과 가을 바람을 맞고 있다.

훌쩍 떠나고 싶은 가을이다. 단풍 때문도 아니고, 하늘 때문도 아니다. 어쩌면 바람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서늘하고, 헐벗게 하는 바람이 내게도 절실히 필요한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것들은 가라, 비본질적인 것들은 가라. 이 바람에 날아가 버려라. 나무가 잎을 버려 제 안으로 침잠해 가듯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피워낸 크고 넓은 이파리들"(기형도의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중에서)은 이제 가라. 나는 그만 행복해져야 겠다.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가에 있지 않다.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에 있다. 홀가분한 마음, 여기에 행복의 척도가 있"(p.97)으니 그 불필요하고 비본질적인 것으로부터 훌쩍 떠나고 싶은 게다. 떠나야 겠다. 가을이다.

=========

이 소책자는 절판되었지만 같은 출판사에서 크기를 다르게 해서 지금도 출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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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0-14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 일찍 일어나 문안인사 드리려 왔는데, 리뷰가 있네요.(브리핑의 압박!)
오..알았어요. 한 구좌 튼당게요..흐흐..
언젠가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선생님이 우스운 농담에 입을 벌려 웃으시는 겁니다. 그때 살짝 그 분의 충치를 보고 말았는데, 어떤 인간적인 연민 같은 게 느껴지더라구요. 평범하고 가난한 소시민들..이런 소시민들에게 가질 수 없는 물질은 너무 많아 보이는데, 자본은 자꾸 그것을 소비하라 유혹하쟎아요. 가끔 넘치는 활자가 머리속을 헝클여놓는 바람에 좀 책까지도 싫어지는 날에는 저도 훌쩍..훌쩍..콧물이나 닦으며..(바람을 느껴보지도, 떠나지도 못하는 가여운 이 내 신세...)

이누아 2005-10-14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님, 이 댓글에 답 달다 페이퍼로 옮겨 갑니다. 페이퍼에서 봐요.

icaru 2005-10-14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볕 좋은데 앉아서 가을 바람 맞고 싶다 합니다... 옆에 누구라고 괜찮으니...!

이누아 2005-10-14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몸살은 다 나으셨나요? 몸살은 다 낫고 바람 맞으셔야 됩니다. 부디 몸조심!!

달팽이 2005-10-14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자리에 함께 둘러앉아 바람맞고 싶군요..

로드무비 2005-10-14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낄게요.^^

혜덕화 2005-10-14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저 자신부터 더 나은 것을 소유하려는 욕심을 줄이고 있습니다. 막상 예전엔 더 좋은 제품으로 바꾸지 않으면 불편할 것 같던 마음이, 오히려 헌 것을 깨끗하게 관리하고 쓰는 동안 새것을 바꾼 것보다 더 마음에 평온을 주더군요. 소유를 줄이는 것, 노력하고 있지만 어렵군요.

이누아 2005-10-14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모두 둘러 앉아 가을 바람을 맞고 있는 듯하네요. 비본질이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날려 보내는 바람 앞에 앉아 있는 우리들...괜스레 흐뭇하군요. 혜덕화님, 복돌님도 같이 앉으세요~

혜덕화님, 저는 어느 때보다 소유의 덫에 걸려 들기 쉬운 자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님이 이 소비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먼저 실천하고 계시는군요. 저도 잘 할 수 있을까요?

비로그인 2005-10-14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푸덕!! 쿵~ ㅡ_ㅡ;;
옙! 잘 하실 수 있을 낍니다! 아, 혜덕화님께 물어보셨던 거구나..

이누아 2005-10-15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님, 고맙습니다. 힘이 됩니다. 잘할께요.^^

big_tree73 2005-10-22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을 맞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해. 바람이 몸에 닿으면 무슨 호르몬이 발생해서... 이 기억력은 어디 쓸데가 없다... 그러고 생각해보면 바람을 맞을 때는 항상 기분이 상쾌해졌던것 같아. 이 가을, 바람맞고 상쾌해져서 훌 훌 떠나보자꾸나. ^^

이누아 2005-10-23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롯하는 밝은 빛, 그것은 결코 태초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밝은 빛은 리그파의 소산으로, 어떤 부모도 없이 그 자체일 뿐ㅡ얼마나 놀라운가!

자신으로부터 유래되는 이 지혜는 누구에 의해 창조된 것도 아니니ㅡ얼마나 놀라운가!

그것은 태어나지도 않았고 죽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나니ㅡ얼마나 놀라운가!

그것은 뚜렷하게 볼 수 있건만,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하는 구나ㅡ얼마나 놀라운가!

그것은 윤회 속에서 이리저리 떠다니지만, 어떤 것도 그것을 해치지 못하는 구나ㅡ얼마나 놀라운가!

불성을 본다 해도[見性], 아무런 이로움이 없으니ㅡ얼마나 놀라운가!

누구에게나 어디든지 존재하건만,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니ㅡ얼마나 놀라운가!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이 아닌 다른 과실을 얻고자 애쓰니ㅡ얼마나 놀라운가!

그것은 본래 당신 자신에게 갖추어져 있는 것인데도, 그대는 다른 곳에서 찾아 헤매는구나ㅡ얼마나 놀라운가!

                                                                                          -[티베트의 지혜], pp.42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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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0-11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자신으로부터 비롯하는 밝은 빛이라는 표현이 참 좋습니다.
그런 게 있기라도 한 것처럼 위로가 되는데요?

이누아 2005-10-11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에게나 어디든지 존재하건만, 아무도 알아보지 못해서 놀랍지만 그 빛이 우리에게 갖추어져 있다고 하시네요. 그런 게 있다고 하시잖아요!!^^

비로그인 2005-10-11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제가 이 글을 보려고 오늘 하루종일 윤종신의 '오~ 놀라워라~ 그대 향한 내 모습~ 오~ 새로워라~ 처음 본 내 모습~' 그 노래를 달고 다녔나봅니다..죄송함돠, 꾸벅.

이누아 2005-10-11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모든 살아 있는 중생의 고통이

남김 없이 걷히게 하옵소서.

세상의 병든 중생을 위해

제가 의사, 약이 되게 하시옵고

또 저로 하여금 간호사가 되게 하소서.

모든 중생이 치유될 그날까지.

 

우주 공간처럼

위대한 대지처럼

한량없이 무수한 중생의 삶을

제가 언제나 뒷받침할 수 있게 하옵소서.

 

중생들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때까지

제가 또한 삶의 근원이 되게 하옵소서.

우주 공간 저 끝까지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중생들의 온갖 세계를 위하여.

                                                                                   -[티베트의 지혜], p.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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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0-11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 삶의 무게도 감당하지 못하고 비칠대기만 하는데..모든 중생을..아, 정말 그렇다면 모두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고 말 것 같아요!! .아, 근데 왜 지구를 들고 있는 헤라클레스가 떠오를까요..죄송합니다. 이누아님..

이누아 2005-10-11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구에서 달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어 아마도 지금의 우리에게 그런 일이 가능하듯이 저 불가능해 보이는 바램이 헛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실은 우리 안에 모든 존재와의 교감이 이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그 강아지의 비명이 우리의 가슴을 찌르고, 호흡을 멈추게 하겠습니까? 왜 연민이 일겠습니까? 그래서 님은 강아지를 보고, 연민과 우울을 느끼셨을 때 능숙하게 그 강아지를 구하든지 아니면 평온한 죽음을 맞게 해 주고 싶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전혀 능숙하지 않고, 당황하고, 슬프고...마주 한 상황은 얼른 피하고 싶은 현실이 됩니다. 우리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해도 아무 꺼리낌이 없는 그런 상태가 되고 싶습니다. 가엾다고 여길 때 도와주고 싶은 겁니다. 그런 상태를 염원하는 것이 바로 저 기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두려워서 내가 그렇게 할께 라고 말하지 못해서 그렇지 누구나 가슴 속에 저런 서원이 자리잡고 있는 것 아닐까요? 배고픈 사람 보면 마음 아프고, 아픈 사람 보면 눈물 나고, 집 없는 사람 보면 따뜻한 방에서 그들을 보는 것이 민망하고...

님이 뭐라고 했다고 제게 이렇게 길게 댓글을 다는 건가요? 그나저나 헤라클레스 떠올렸다고 죄송할 것까지야...오히려 님의 연상 능력에 별 다섯!!

봉준이 2005-10-12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스님께서는 추워 떨면서 밤새 산속에서 상상보시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왕자와 제비에서처럼 실제 그 보시가 이루어졌다고 하더군요.
생각지 않은 것이 이루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우주의 모든 존재가 행복해지길 원하고 원합니다.
이 순간 저는 행복합니다.
주제 넘었나요^^

이누아 2005-10-12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낙타! 누군지 몰랐잖아? 반말 써, 반말! 서재에 방금 갔다 왔다. 음~오전 열시에 서재에 들어올 시간이 있으면 안 되는데...^^ 저녁에 보자. 오늘은 산수몽, 수천수네. 책 좀 보고 갈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