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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선을 말하다
케네스 렁 지음, 진현종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숙희야, 네 생일이 다가오는구나. 네 생일이 되면 주려고 샀던 책을 다 읽었다. 요즘은 리뷰도 안 쓰고 지냈는데 네게 줄 이 책을 빌미삼아 여기에 편지를 쓴다. 게다가 오늘은 16살, 17살의 우리가 음악회에서 처음 만난 날이기도 하구나. 그때도 우린 이런 대화를 나누었지.
이 책은 우리가 나누던 대화와 벗어나 있지 않다. 이 책에서는 책을 읽기 전에 마음을 비우라고 한다. 이 주제와 관련되어 떠오르는 모든 선입관을 죄다 떨쳐 버려야 한다(p.12)고 하는구나. 그러나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어야 야, 선입관, 저리 가 라고 할 수 있겠니?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이미 안착한 내 머리 속의 선입관이 있구나. 행여 이 책이 예수를 선에 끼워 맞추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로 책을 열었던 거다. 그 의심 덕에 처음엔 좀 엉성하고, 어색한 무엇을 느꼈다. 나중엔 점점 사라져 갔지만. 심각하지만 않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내게 아주 와닿고 재미있는 구절을 발견했다. 오늘은 이 구절만 얘기할까 싶다. 왜냐하면 너는 이 책을 읽지 않았으니 다 읽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테니 말이다.
미래에 주의를 고정시키면 불안이 끝이 없을 것이다. 예수는 지옥을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들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마가복음 9장48절)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가 말한 비유의 직접적인 출처는 예언자 이사야인 것으로 보인다. -p.206
깊은 선입관을 가지고 보건대, 이 구절은 내가 늘 말하던 그 구절이다. 나는 늘 생각을 벌레라고 표현한다. 생각의 벌레들...게다가 분노와 부정적인 감정은 불과 같다. 꺼지지 않는 불처럼 고요하다가도 바람만 불면 확 하고 타오른다. 여기에 대해 저자는 그것을 생각이나 부정적 감정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것들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
예언자 이사야가 그들의 불과 그들의 벌레라는 말을 쓴 것은 고통의 근원이 내면적인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지옥의 불이 다른 불과 달리 꺼지지 않는 까닭은 그것이 안에서부터 타오르기 때문이다. 그 불의 출처를 찾아 정신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방법을 얻지 못하면 불을 끌 방법이 전혀 없다.마찬가지로 벌레 역시 적절한 비유인데, 벌레는 안에서부터 먹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것이 죽지 않는 까닭은 우리의 내면 세계에서 자양분을 얻기 때문이다.......그들은 내면의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하늘나라가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좀비처럼 살아가고 있다. -p.207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낸 불과 벌레를 어떻게 끄고,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그것들이 처음에 왜 만들어졌을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화살을 맞아놓고 화살의 성분분석을 한 뒤에야 뽑겠다는 어리석은 사람이었구나 싶다. 지금까지. 좋은 생일맞이 책에 지옥이야기가 뭐냐고 할지 모르지만 손바닥을 뒤집기만 하면 천국이 거기에 있으니까.
손바닥을 뒤집듯 쉬운 이 일이 쉽사리 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은총이 부족한 것일까? 은총을 저자는 우아함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연습이나 행위가 바로 그 우아함의 전제조건이라고 하는구나. 예술가인 네게 유익한 내용이다. 293페이지에 있다. 안 옮기마. 아니, 그 페이지 제일 마지막 구절만,
노력할 필요가 없게 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영성의 경우 노력의 무익함을 깨닫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
요즘 읽는 모든 책에서 비슷한 구절을 발견하는구나. 노력이 필요한 강한 선입관 때문에 눈에 띄는 거겠지. 이제 눈치챘겠지만 이 책은 예수로 시작해서 예수로 끝나지만 성경 구절만 잔뜩 인용한 그런 책은 아니다. 예수를 사랑하고 싶었지만 예수를 이해하지 못해 멀어져 갔던 저자가 선수행을 통해 다시 예수를 만나고 있는 책이라 해도 되겠다. 나 역시 전체 성서 중에 요한복음이 내게 더 와 닿았던 역사적 배경도 좀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얼마전 네가 얘기했던 유다복음 같은 책들이 엄청나게 많다. 좀 황당한 내용이 많은 숱한 외경들 외에도 1945년 발견된 토마복음서 같은 것도 있다. 이 복음서에는 곽노순이란 분이 해석을 하셨는데 그게 따로 책으로 나와 있는지는 모르겠다. 우리집에 오면 잡지에 실린 복음서 내용을 보여주마. 이 책을 읽을 때 그런 복음서들의 내용이 들어있지 않을까 했는데 저자는 현재 공인된 성서의 내용들만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
이야기가 길어졌구나. 미리 생일 축하한다. 중국 다녀와서 보자. 잘 다녀와라. 네가 읽고 나서 더 풍성하게 이 책을 뜯어 먹어보자. 네 덕에 이 책을 읽었구나. 고맙다.